개들조차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56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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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9. 토. '개들조차도' - 존 맥그리거 / 4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나길. 누가 와주길. 뭔가......변화하길." - p.102 
 
존 맥그리거는 <너무나 많은 시작>으로 처음 만났었더랬다. 일상의 잔재들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소중히 여기는 시선이 신선한 감동을 주었었다. <개들조차도>는 또 확연히 다른 신선함으로 날 놀래켰다.
끊임없이 전복되는 문장구조와 분열된 정신 상태의 '우리'라는 화자가 나를 내내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약쟁이 노숙인들의 모습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세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시선이 내 가슴에 자꾸자꾸 생채기를 낸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가족도, 자신의 삶도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인생 여정이 가슴에 찬 바람 쌩쌩 불게 만든다. 너무 시리다.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절망감을 잊기 위해 혈관으로 꾸역꾸역 주사바늘을 찔러넣기 바쁘던 노숙인들의 분주한 일상, 죽음이 아니면 끝나지 않을 생의 좌절감이 소름끼쳤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운으로 남는 것 조차도 분에 넘치는 이들의 죽음에 애도의 눈물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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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1
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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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6. 수. '육체의 악마' - 레몽 라디게 / 3 
 
작가는 말했다. 17살에 이런 소설을 썼다고 신동 취급을 받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그것은 청년에 대한 모욕이라고.
아름다운 날의 저녁 나절에 그날의 새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매력을 비난하진 않지만 밤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새벽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놀랍다. 17살 청년 작가가 전쟁, 4년간의 여름방학처럼 느껴졌던 그 시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통하며 그 시기에 겪은 불같은 사랑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견고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전쟁터에 내몰려 신혼의 단꿈을 포기해야 하는 군인의 불행이 16세 어린 청년에게는 평생을 가슴에 품게 될 불같은 사랑을 얻는 행복의 원인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행복.
비단 불륜이나 범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행이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씨앗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이 세상,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가 가슴아프게 잃은 사랑이
누군가의 가슴을 환히 밝히는 사랑으로 다가가고
누군가가 뼈아프게 겪은 실직으로
누군가는 천금같은 직장을 얻게 되고
누군가가 미끄러져 내린 성적 등수 위에
또 누군가가 올라서게 되고
누군가가 놓친 일생 최고의 기회가
누군가에게 득이 되어 돌아가고...
세상사 돌고 도는 그 보편적인 진리를 감히 어지럽힐수도 거스를수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의 불행을 내 행복의 씨앗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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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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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5. 화. '더 리더' - 베른하르트 슐링크 / 2 

 

영화로 처음 만났을 때에는 서른 여섯 한나와 열 다섯 미하엘이 나눈 사랑, 그 에로티시즘에 놀랬고
두 번째 한국어 책을 통한 만남에서는 책을 읽어주는 관계, 내밀하면서 농밀한 관계를 부러워했고
세 번째 역시 책을 통해 만나면서 그녀와 그의 인생을 물들인 수치심이 가장 짙은 감정으로 와 닿았었다.
네 번째 영문판 책을 통한 만남에서는...
한나의 범죄를 이해하고도 싶고 유죄로 판정하고도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마비되는 미하엘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네 번째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채로 갖게 된
다섯 번째 만남에서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의 엄청난 무게감을 마주했다.
과거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몸과 영혼 위에 문신처럼 새겨진 자취라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과거를 모르거나 모른 척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피안에 그리고 어깨위에 항상 과거가 얹혀 있다는 것이 가장 깊게 와닿는다. 
 
수치심과 함께, 상처와 함께, 죄책감과 함께
항상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는 과거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가운데에도
과거만이 지니고 있는 그리움의 향수가 모든 기억을 토닥토닥 하는 느낌이 든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난 해 이맘때 쯤 독일어 원서로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픈 욕심을 냈었는데 그 욕심은 이제 지하 100층 정도로 내려앉았다. 그래도 또 모른다. 그 욕심 어느날 문득 고속 엘레베이터 타고 급상승할지도.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귀향' 외에는 이 책만을 자꾸 펼치게 되는 이유는 뭘까? 'The Reader'라는 제목이 주는 감흥이 깊어서일까?... 다음엔 꼭 그의 초창기 추리소설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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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10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자꾸 펼쳐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려나요....즐기는 향수를 고르듯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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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 토.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카밀로 호세 셀라 / 1 
 
2016년 첫 날, 핏빛 이야기로 올 해 첫 독서를 시작한 기분이 묘하다.  
 
1930년대 스페인, 태생부터 극단적인 폭력으로 물든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죽은 파스쿠알 두아르테.
파스쿠알은 자신이 던져진 사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뿌리내린 증오와 분노, 폭력의 씨를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어쩔 수 없이(?) 자신 주변을 피로 물들였다.
어느 인간 못지 않게 가족을 사랑하고
사람들 사이의 온기를 좋아하던 그이지만
증오와 분노 앞에서는 폭력으로 밖에 자신을 내보이지 못한 파스쿠알이 측은했다.  
 
사람은 사회가 만든 환경, 체제, 정신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물들어버릴 수 밖에 없는 작고 미약한 존재인 것일까.
내 안에서 싹트고 자라난 불만도 만족도 그 씨앗은 결국
나를 둘러싼 이 세상, 바람결에 실려와 내 안에 뿌리내린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
증오심이 솟아오를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칼자루를 손에 움켜쥐는 파스쿠알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무엇을 움켜쥐고 있는지,
무엇으로 평안을 찾고 소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으로 물들어 있는지 또 물들고 싶은지...
내 안에 어떤 씨앗들이 싹트고 자라났으면 싶은지... 
 
씨뿌리기 딱 좋은 2016년 1월의 첫 주말, 핏빛 소설을 뒤로 하고 홀로 비장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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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16. 화. `밍부인이 가져본 적 없는 열명의 아이들` -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72

... 우리는 상상력 없이는 현실이라는 컨테이너 안에서 서로서로 포개지고 겹쳐진, 너무나 가깝고 너무나 비슷한, 별다를 것 없는 존재들... (p.43)

그리하여 꿈과 현실 사이... 그 중간에 머물고자
오늘도 부단히 애쓴 하루.
꿈을 닮고자 하는 상상력으로 내 현실을 바라보고
내 현실이 행여나 꿈에 취해 비틀거리지는 않을까 경계하며.
밍부인의 열 명의 아이들... 진짜 가져본 적은 없으나 한 순간도 그녀의 것이 아닌 적 없는 그 아이들을 더듬어 보며.
...내가 가져본 적은 없으나 한 번도 내 것이 아닌 적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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