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질 좋은 양분을 찾아 산문들을 뒤적인다. 이미 몇 권의 책을 사두 고도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하건 '어린 시절 나는 한 마리 소를 사랑했다'라는 첫 문장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마리 소'와 '소 한 마리'는 분명 그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 전부터 울컥함이 밀려온다. 그것은 소의 인생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가 도살직전 머뭇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영상을 본 뒤로는 그런 생각이 더 하다 )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다 보면 그때는 몰랐던 깨달음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당시는 절대 모를 진리들이 지금에 이르러 하나 둘 그럴듯한 의미를 찾아간다. 인생의 깨달음은 후회와 함께 뒤늦게 찾아온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지 않음에 반갑고 말의 결함이 내가 살아온 삶의 결함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문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처럼 모호한 단어들을 하나씩 하나씩 명백한 단어들로 뒤바뀌기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p.52

 

소와의 애틋한(?) 추억은 소설가라는 그의 꿈과 소의 목숨을 맞바꾼 것에 대한 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소는 그의 운명대로 간 것뿐이라고 여긴다면 결코 문학이 될 수 없다. 인간이라면 가련하고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시장에 소를 내어 놓고 술 없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그냥 소 한 마리를 키운 것이 아닌 한 마리 소로 인해 그는 인생의 슬픔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여느 산문집이 그렇듯 작가의 인생과 생각이 문장의 곳곳을 밝히고 있고 소설가로서의 지닌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 여러 여행지에서 새로이 만난 경험, 그가 읽은 책에서 얻은 깨달음 등을 읽으며 나의 모자란 부분을 메워갔다. 나는 글만 읽고서 작가가 꽤 연륜이 있는 분인 줄 알았으나 나와 별 차가 나지 않아 놀랐다) 누군가의 글이 내 인생의 굴곡을 다듬어주고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게 해준다면 그만한 즐거움도 없을 테니까.

 

소 때문에 울컥하다 수박이 아니라 참외 때문에 우프기도 했고 버스를 향해 양팔을 휘저으나 속도를 못 내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라 빵 터지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모습도 지금 그 나이가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듯 부모의 역할보다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 앞에서 아버지는 아마도 인생의 절망을 경험했으리라. 그러나 불행을 견디는 쪽을 택하신 아버지의 삶도 틀렸다고 볼 수 없듯이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법을 들여다볼 수 있다. 버스를 향해 달리던 노인으로 인해 사람과 세계에 대한 예의를 깨닫고, 공터에서 피어난 개망초를 바라보며 인간애를 다시 생각하며, 어린 시절 편견이 불러온 잘못에 뜨끔했던 순간을 꺼내보고, 품앗이를 통해 인간 노동력의 가치를 재고하는 일은 우리가 늘 고심하며 살아야 할 것들이다.

 

노인에 관한 명상에서 유독 속도를 늦춘 것은 요즘 부쩍 부모님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서이다. 자식의 손길이 절실한 노인들을 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이 요한다. 그래서 작가의 생각에 더 기대어 보았다. 아버지의 절망과 어머니의 두려움을 헤아려 보는 것,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던 작은 할머니의 진심, 자취방 노부부를 돕게 되면서 깨달은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한층 관계를 성숙하게 해준다. 그들의 언어에 나의 언어를 덧붙임에 있어 편견과 오만을 버려야 관계를 오래 지켜나갈 수 있음을 알지만 내가 덜 영글어서일까. 여전히 진심으로 체득하지 못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년을 장담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금 노인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맞추며 살아야겠다.

 

삭막한 세상에서 인간혐오와 인간 상실에 지쳐가는 이들을 위한 한편의 글 '어느 무화과 씨의 꿈'이라는 우화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으니 이제 인간이 되어야 한다. p.159는 말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올 줄이야.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원작을 찾아보았는데 짧은 이야기지만 깨닫는 바가 많았다. 무화과 씨의 바람대로 인간들이 교훈을 깨닫고 나아갔다면 인류는 훨씬 인류애를 실천하며 살아갈것이다. 그러나 늘 우리는 인간이라는 고민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벽을 허물다 자신의 삶마저 포기한 무화과 나무를 보며 그것이 끝이 아님을, 살아남아 깨우친 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희망은 남았노라고 p. 90

 

그런 이유로 문학은 절망을 다루고 그 절망을 노래하며 꿈을 꾸게 해 준다. 더 나은 인간 세상을 위해. 깊은 절망은 깊은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p.78는 작가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절망과 슬픔이 이끄는 문학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문학 코드가 별로라는 글들을 보기도 하고 자기 계발서는 읽어도 문학 따위는 별로라는 이들의 의견도 본 적이 있다. 나도 어떤 소설은 적응이 안 되기도 하고 난해한 글에 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는 것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공감하는 게 더 필요하겠다. 사회는 더 각박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로 인해 아픔을 공유하는 법을 잊고 살아서는 안된다. 아픈 자식을 잃은 이들과 사라져간 젊은 노동자의 꿈을 보며 그들의 가슴을 후벼파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불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잠복해 있다가 드러날 뿐이라는 사실을, p. 95 요즘 부쩍 느껴서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지독히도 모자라고 부족한 시절을 지난 문학에 대한 성찰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그는 왜 쓸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오래전 소설가를 꿈꾸었고 여전히 글을 쓰면서도 소설가가 꿈이라는 작가. 헛것들과 불한당의 소설사라는 두 미니픽션을 읽고 나니 여태껏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문학의 진정성은 고독한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워가는 이들의 몫임을 되새겼다.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 가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p.241

이야기꽃은 남루한 삶 한가운데서 피어나 우리의 사연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꽃이다. p.318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사랑이 없이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어딘가에서 절망을 위로할 좋은 문장들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문학이 우리에게 하는 역할이 무엇일지 고심해 보게 되어 좋았다. 함께 걷는 이의 옷깃을 여며주는 일, 미끄러질까 옆 사람을 꼭 잡아주는 다정함처럼 문학은 늘 우리 곁에서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내 슬픔의 근원을 찾다 나 또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그곳엔 가정에 무심한 아빠와 죽어라 일만 하던 엄마의 모습과 늘 혼자 집을 지키던 내가 보였다. 결국 아버지와는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지금은 엄마와 살면서 엄마의 낯선 모습들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을 되새길 특별한 추억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밀려오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나이가 되다 보니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에 안쓰러운 마음도 생겨 난다.

깨달음의 순간은 오한이 찾아오는 순간과 비슷하다. p.36

 

지금은 나 자신의 상처보다 내 아이의 상처가 더 걱정되고 그럴 때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생각이 많아지지만 결국은 자신의 몫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곁에서 문학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 하루 햇살이 가장 좋은 시간을 걷다 문득 내리쬐는 볕을 잡아 주머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볕이 더욱 소중한 계절이니 말이다. 아이의 주머니와 두 손에 따스한 온기를 담아주며 살아야겠다. 아이는 나의 어린 시절보다 더 따스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기에.

 

퇴근시간 무렵에 길거리에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피곤한 얼굴로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오른손을 달래기 위에 왼손을 살포시 얹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아이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다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점점 드물어질 테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리라.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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