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가 나한테 이런 밥상을 줬던가. 계란후라이니, 나물이니, 국이니 그런 게 올라온 밥상은 여기에 갇히기 전까지는 보질 못했었다. 이가 아플 정도로 딱딱하게 눌은밥에 간장만 부어 줘도 다행이었다. 숟가락 모가지에 시래기라도 한 줄기 걸리는 선짓국이면 호강인 삶이었다. 살다 보니 목구멍에 고기가 걸리는 일도 있다. 기침 멈추려고 오란씨를 들이키는 일도 있다. 거짓말 같게도 전부 눈앞의 이 깡패 새끼 집에 갇혀서 생긴 일이었다
"미아장 팔려 갔을 때, 나도 죽을 생각 안 한 거 아냐. 딱 죽어 없어지고 싶었어." 발걸음을 맞추며 이춘희를 돌아보았다. 이춘희는 앞만 보고 걸었다. "근데 억울해서 죽을 수가 있어야지. 이대로 죽으면 창녀로 죽는 건데. 날 모르는 남도 신문이나 라디오에서는 서울 어디 창녀촌에서 창녀가 죽었다더라 이렇게 들을 거 아냐.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는 것도 분한데 그렇게 죽을 수는 없어. 난 그렇겐 안 죽을 거야." "……." "우리 엄만 미아장보다도 못한 쪽방에 여자들을 넣어 놓고 팔았어. 그 여자들 상대로 일수도 놓고. 그러다 죽었어. 동네 사람들 다 그 지독한 마담 년이 죽었다고 말하더라. 웃기지. 엄마 딴엔 쪽방 주인이 인생 제일로 대단한 출세였을 텐데." 이춘희가 발을 멈추었다.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난 뭐가 돼서 죽을 거야. 뭐라도 돼서 죽을 거야." "……." "화투 공장에서 20년 동안 화투짝만 갈아도 되니깐, 악착같이 돈 벌어서 살 거야. 살아서 뭐라도 될 거야. 뭐라도 돼서, 시 쓰고 죽을 거야. 지금은 못 죽어."
나는 늘 어떻게 해서든 살았다. 욕먹고 맞으면 우는 대신 더한 욕과 침을 뱉었다. 돈 받고 몸 파는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돈 주고 사는 남자들을 등쳐 먹었다. 깡패 새끼들한테 맞으면 성한 눈깔에 지글지글 끓는 연탄재를 처넣어서라도 병신을 만들었다. 내가 살면서 만난 모든 인간들을 보면 알지. 쓰레기는 쉽게 죽는 법이 없다. 그렇게 잘만 살아 놓고 이제 와서 나 죽여 봐라, 하고 순순할 수는 없어. 죽을 때 죽더라도 경숙이한테 진 빚은 갚아야지. 깡패들 빚은 안 갚아도 경숙이한테는 뭔 짓을 해서라도 갚아야 한다. 걘 나한테 그만한 고마움을, 사는 동안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애였다.
죽음은 상상으로는 세상 제일 무섭다가도 막상 눈앞까지 오면 그렇지가 않다. 죽기 직전까지 맞아 보고, 굶어 죽기 직전까지 굶어 보고, 얼어 죽겠지 싶을 추위에 홀딱 벗고 자 보면 안다. 나처럼 남한테 빼앗길 것도, 남이 탐낼 만한 것도 가져 본 적 없는 년한테 죽음은 더는 무서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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