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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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미여사의 현대물을 정신없이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이유', '화차', '모방범', '낙원' 등 그녀의 현대물 명작들은 여러 사회문제들을 소설로 승화시켜

소설을 읽는 재미는 물론 사회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번에 나온 신간인 이 책은 기존에 내가 봤던 작품들에 비하면 너무 날씬한 분량이라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그동안 자주 거론되었던 학교 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군가', '이름 없는 독'의 스기무라 사부로가 본격적인 직업 탐정으로 등장해서 반가웠는데

또 한 명의 주연급이라 할 수 있는 후지노 료코도 '솔로몬의 위증'에 등장한 인물이라고 하니

기존의 별개 작품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한 작품에서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설정이었다.

 

세이카 학원 중등부 3학년들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1박 2일 동안 '피난소 생활

체험캠프'를 치루는데, 3학년 D반의 담임교사인 히노 다케시가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나가자 평소에도 괴롭힘을 당하던 시모야마가 선택된다.

시모야마는 교실밖으로 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그런데 히노 선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진실게임이 시작되는데,

그 문제로 교직원회의에서 언쟁을 벌이던 히노 선생은 중등부장에게 주먹을 휘둘러 징계해고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와 변호사 후지노 료코는 사건 관련 인물들을

찾아가 히노 선생과 아이들 중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히노 선생과 관련된 여러 나쁜 얘기들이 사실로 확인되지만

진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세이카 학원이라는 데가 아무리 사립학교라지만 성적순으로 

A~D반으로 나누고 히노 선생처럼 C,D반 학생들은 대놓고 무시하는 그런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인격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교사가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인생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지만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직장인에 지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고, 교사와 학생간의 끈끈한 정같은 걸 기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이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이 일어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책 제목처럼 선생과 학생,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이끄는 쪽과 따르는 쪽, 억압하는 쪽과 억압

받는 쪽의 조합부터 잘못되어,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 답만 나오는 음의 방정식의 관계가

이 책에 나오는 선생과 교사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상당 수의 학교 현장의 쓸쓸한 단면일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양의 방정식이 작용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적어도 음의 방정식이 작용하는 관계는 되지 않아야 할 것인데,

교사와 학생이라는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 사이에 음의 방정식이 작용한다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오랜만에 미미여사의 현대물과 만나서 반가웠는데, 너무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예전에 봤던 작품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왠지 소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에 나온 후지노 료코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위증'과 스기무라 사부로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으로 뭔지 모를 허전함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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