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남성들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

마돈나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7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15년 5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을 이미 여러 편 읽어봤지만 늘 한결같은 게 유쾌발랄하다는 점이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공중그네'를 비롯한 이라부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는 물론 내가 본 대부분의 작품들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도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동명 제목의 단편을 시작으로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린 이 책에선

직장 남성들의 애환을 잘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걸'에서 30대 여자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담아낸 것과 절묘하게 대비가 되는

내용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30대 직장 남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 책이 좀 더 와닿았다.

먼저 '마돈나'에서는 신입 여사원을 짝사랑하는 철부지 상사의 모습이 펼쳐진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사내에서도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이 많은 유부남이 풋풋한 여직원에게 흑심을 품는 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젊은 남자 직원과 그녀를 두고 싸우지를 않나 한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나름 공감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참한 여직원이 새로 들어오면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만의 '마돈나'를 가지고 사는 것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음 단편인 '댄스'는 회사 일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동기와 댄서가 되겠다는 아들땜에 

직장과 집 모두에서 골치가 아픈 남자의 얘기를 다룬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총무는 마누라'는 잘 나가는 엘리트 과장이 잠시 총무부로 발령받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데 내 뜻과 다르게 잘못된 관행이 있을 때의 곤란한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분명 잘못된 거라고 생각이 되어도 관례라는 걸 깨기가 쉽지 않은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타협할 줄 알아야 함을 잘 보여주었다.

'보스'는 깔끔한 스타일의 여자 상사가 오면서

남성적인 문화에 젖어 살던 부하 직원이 겪는 변화를 얘기한다.

요즘은 여자들이 관리직으로 많이 진출해 여자 상사와 일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여직원들이 많다 보니 회사 분위기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는데

아직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남자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불만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여자 상사도 나름의 애환과 인간적인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이해와 공감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인 '파티오는' 시골에 혼자 사는 아버지와 회사 주변에서 혼자 독서를 하는 노인을

동일시하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한 남자의 얘기를 그리고 있는데

나이 많은 부모를 둔 자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도 부모님들이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밖에서 어르신들을 보면 왠지 맘이 짠해 질 때가 있어 공감이 가는 단편이었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 모두 직장에서는 중견 간부이고

가정에선 가장인 중년 남자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점점 남자들이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이 책은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이라 그나마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리를 잃고

힘겨워하는 남자들의 얘기가 나오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상황까지만 해도 그나마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직장과 가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묵묵히 해야 했던 남자들의 애환을

그리 심각하지 않으면서 코믹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그려낸 오쿠다 히데오다운 작품이었다.

Girls, just wanna have fun!!!

걸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유쾌하고 엽기발랄한 닥터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한 '공중그네'를 시작으로 최근작

'침묵의 거리에서'까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술술 읽히면서도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믹한 내용들로 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오쿠다 히데오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손에 들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0대 여자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특유의 해학으로 진솔하게 그려냈다.

같은 30대지만 남자들과 여자들의 삶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사실 여자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 그리 이해도가 높진 않은 편인데

저자가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그려낸 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저자가 여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띠동갑'에선 꽃미남 신입사원을 후배로 받아 지도사원의 역할을 맡은

선배 여자 직원의 얘기가 펼쳐지는데 회사 여직원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이를 견제하며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여직원의 심리묘사가 돋보였다.

자신과 인연이 될 가능성은 희박함에도 가슴 설레이고 잠시나마 달콤한 환상에 빠지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상당수의 30대 여자들이

여전히 환상속에 살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장면이었다.

다음 작품인 '히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직장 내에서의 여자 상사의 애환을 잘 그려냈다.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이젠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고들 한다.

특히 나이 많고 경력도 풍부한 남자 부하와 나이 어리고 경륜이 짧은 여자 상사의

애매모호한 관계는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히로'에선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

남자 부하 직원에 맞서 당당하게 대처하는 여자 상사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동명의 단편인 '걸'에선 더 이상 '걸'로 대접받기 어려운 30대 여성들의 불안한 마음이 잘 드러났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이젠 예전과 같은 관심을 받기도 어렵고 자신이 원하는 그런 이성을

만나기도 어려워 과연 자신은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할 수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사는데 굳이 그런 점에 연연해하기보단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 즐기면서 사는 게 올바른 방향임을 넌지시 제시한다.

'아파트'는 가장 주체적인 30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장 내에서 자기 일을 야무지게 하고 자기 주장도 제대로 하는 그런 여직원을 찾기는

쉽지가 않은데 이 작품 속 여주인공은 정말 당차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아파트를 마련하는 모습은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워킹맘'은 말 그대로 요즘 급격하게 늘어난 직장 여성의 단면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선 싱글맘이면서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회사생활을 해나가는 멋진 직장여성이 등장한다.

보통 여자들은 여자란 이유로, 엄마란 이유로 많은 배려(?) 속에서 직장생활을 해나가는데,

이 작품 속 여주인공은 결코 그런 특혜를 받기를 거부하고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건 충분히 알고 그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걸 무슨 벼슬인 것처럼 이용하고, 대접을 받으려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일부 여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남자가 여자를 잘 안다고 해도 여자들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나름 30대 여성들의 삶과 사랑, 애환을 다양하게 그려냈지만

과연 여자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 입장에서는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또래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항상 '걸'로 남아있고 싶은 여자들에게는

역시 'Girls, just wanna have fun'이라 얘기해주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왕따 학생의 죽음의 진실과 남겨진 자들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

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2권에선 유이치와 아이들의 과거 행적과 유이치의 죽음에 대한 조사 과정이 번갈아 진행되면서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에 조금씩 접근한다.

먼저 나구라 유이치와 그를 둘러싼 아이들의 모습은 살벌한 중학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이 되면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성장의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어른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동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그대로 노출된다.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왕따로 만들어 괴롭히는 것도 지극히 유치한 행동이지만

이들에겐 눈곱만큼의 죄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이치에 대한 아이들의 괴롭힘도

일응 무책임한 아이들의 유치한 행동의 발로라 할 수 있었지만

2권에선 유이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응석받이로 자란 탓에 전혀 사회성도 없고 눈치도 없는 아이인데다

가만 있으면 동정이라도 받을 텐데 허세에 굳이 사서 매를 버는 짓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아이들이 유이치를 싫어하고 따돌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도 유이치는 상대하기 싫은, 짜증나는 스타일일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게 정당화되진 않는다.

날라리들이 괴롭히는 것은 물론 그나마 유이치를 도와주려 하던 에이스케와 겐타마저

유이치의 고자질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등을 돌리게 되고

그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던 유이치에게 결국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살벌한 학교의 상황도 그렇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누구나 남의 커다란 고통과 상처보단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지만

가족 이기주의 아래 건전한 상식과 양심은 발붙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자기 애들이 다칠까봐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남의 아이의 죽음은 뒷전이고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걱정하는 모습은 단순히 부모니까 라는 면죄부를 주기엔 씁쓸한 면이 없지 않았다.

품 안의 아이라고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부모와

학생들이 뭔 짓을 저지르는지 전혀 눈치도 못채는 한심한 교사,

그리고 인간이 아닌 짐승에 불과한 잔인한 아이들의 모습은

만약 내가 아이가 있다면 학교라는 곳에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극단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종종 언론 등을 통해 접하는 학교의 현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런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진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기우라고 치부하기엔 훨씬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피해자 부모와 가해자 부모, 그 중간에 낀 학교나 언론 등의 계속되는

줄다리기를 보면서 정말 이럴 수밖에 없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자기 입장이 우선이고 자기가 양보해서 남을 배려하긴 쉽지 않지만

자기 입장만 상대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산다는 게

진짜 어려운 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왕따와 학생의 죽음을 여러 입장의 사람들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는 별로 없지만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왕따를 당하던 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에 따른 다른 반응들

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야근 중이던 국어교사 이지마는 아들 나구라 유이치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는

유이치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학교 안을 살펴보다가 유이치가 은행나무 밑에 떨어져 죽은 걸 발견한다.

단순 사고인지 사건인지 경찰이 수사에 나서 나구라 유이치의 등을 꼬집으며 괴롭힌

겐타, 에이스케, 슈토, 가즈키 네 명을 밝혀낸다. 같은 중학교 2학년이지만 14살이 넘은

에이스케와 가즈키는 상해 혐의로 정식으로 체포되고 겐타와 슈토는 14살이 아직 안 되어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아동 상담소로 송치되는 처분을 받는데... 

오쿠다 히데오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공중그네'와 한국영화로 제작된 '남쪽으로 튀어' 등의

여러 작품이 출간되어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일본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톡톡 튀는 발랄함과 술술 읽히는 가독성으로 무장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작품은

그의 최고 걸작이란 발칙한 홍보 카피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실 소재 자체는 왕따를 당하던 학생의 죽음이란 일본 소설에서 자주 다뤄지는 얘기라

그리 낯설지 않았는데, 이 책에선 유이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과

각자의 입장에 따른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전에 읽었던 '십자가'란 작품도 떠올리게 해줬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십자가'에선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 자살한 게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이 책에선 유이치의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아님

살인사건인지가 불명확한 상태라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하나뿐인 금쪽같은 아들을 잃은 유이치 부모의 입장이야 두말 하면 잔소리겠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의 태도는 정말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잘 보여줬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남의 아이를 죽게 만들었으면 정말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의 자책감을

느끼는 게 정상일 것 같은데 가해자 아이들 부모들은 오로지 자기 아이들만 걱정한다.

내가 부모가 아니라 부모 심정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자기 애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모습에 한심할 따름이었다.

어느 정돈 부모의 마음으로 인지상정이라 여기겠지만 남의 아들은 죽었는데

자기 아들이 처벌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부모들의 이기심의 극치였다.

학교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려고만 들었지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는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이런 무책임하고 한심한 학교환경에 아이들을 보낸다는 게

정말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일 것 같았다. 암튼 1권에선 유이치에 대한 폭행 혐의만 인정했던

네 명이 무사히 풀려나오는 상황에서 유이치의 죽음에 대한 조사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과연 유이치의 죽음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2권을 어서 읽어야겠다.

좌충우돌하는 20대 청춘의 풋풋한 얘기

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나고야에 있는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쿄에 있는 입시학원을 다니겠다는

핑계로 무작정 도쿄로 상경한 다무라 히사오의 20대 시절의 얘기를 담은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1970년대말에서 1980년대말까지의 일본 사회를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가 나와서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다면

이 책은 80년대에 일본에서 20대를 보낸 사람들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 충분했다.

나고야 출신의 다무라 히사오는 재수를 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애당초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그는 연극부에 가입하고 거기서 같은 학년인 고야마 에리와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히사오는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대학을 중퇴하고

영세한 광고대행사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거기서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조금씩 카피라이터로서의 실력을 쌓아가는데

시간이 지나 무능한(?) 후배들을 거느리면서 속이 썩기도 한다. 

어머니의 성화로 동향 출신의 까도녀를 만나 파란만장한 데이트도 하는데

결국 카피라이터로 성공하고 사랑하는 여자도 만나 청춘의 끝(?)인 30대를 맞이한다.

히사오의 20대를 압축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나의 20대는 어떠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히사오처럼 대학진학을 하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까지는 비슷한데

그 이후의 삶은 영 딴판인 것 같다.

하시오가 온갖 경험을 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나는 편하게 공부만 한 것 같다.

물론 그나마 공부도 제대로 안 했지만 히사오처럼 20대를 돌아오면

불쑥 떠오를 추억들과 보고싶은 사람들이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그래도 히사오가 음악(특히 락)과 영화를 좋아해서 80년대의 인기 팝이나 락 음악과

영화들을 언급하는 부분에선 공감할 때가 더러 있었는데

역시 그 시대의 문화를 공유한다는 게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선 각 장마다 그 당시 중요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언급하는데

나고야가 88년 올림픽 개최를 두고 서울과 경쟁을 벌이다 탈락한 거나 존 레논의 암살사건,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 나름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순간의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비타민 주사부터 놓고 시작하는 엽기 정신과 의사인 이라부가 주인공인

'공중그네' 등과 못 말리는 운동권 과격파 아버지 때문에 괴로운 아들의 얘기를 그린 '남쪽으로 튀어',

욕망으로 일그러진 도시를 그린 '꿈의 도시'까지 하나같이 생생한 캐릭터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흥미로운 사건들로 읽는 내내 웃음을 선사했는데

이 책도 히사오의 좌충우돌하는 청춘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기에 충분했다.

지나고 나니 더욱 아쉬움이 남는 싱그러운 20대로 잠시나마 돌아간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 나이가 더 들면 지금의 30대도 그리운 시절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20대 청춘의 부러운 점은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일이나 사랑이나

치열하게 살았던 히사오를 통해 청춘의 아름다운 특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