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무엇이든 가능하다>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이다.

다른 곳에서 추천을 받아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는데 담담하면서 강인한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번 신작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한 작은 마을 '앰개시'라는 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이자 연작소설인데

서로 무관한듯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힘이 참 좋았다.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크든 작든, 아이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무게가 있고 비밀이 있고 세상이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계시

토미 거프틸은 한때 낙농장을 소유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낙농장은 일리노이주 앰개시 타운에서 2마일쯤 떨어져 있었다. 그 일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토미는 낙농장이 홀랑 불타버린 그날 밤 느꼈던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했다. 집도 깡그리 불탔다. 바람이 헛간에서 멀지 않은 그의 집으로 불똥을 날려보냈다.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 그는 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따. 그날 밤 그가 착유기 전원이 꺼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화재가 시작된 곳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불길은 일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번져 그곳 전체를 집어 삼켰다.

여러가지를 느꼈으나, 하느님의 현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을 명백하게 느낀 것은 집의 지붕이 폭삭 주저앉아 바로 아래쪽, 아이들 사진과 그의 부모 사진이 있는 침실과 거실로 무너져내릴 때, 그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볼 때였다. 그 순간 그는 천사들이 왜 늘 날개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의, 심지어 소리도 아닌 것의 감각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따. 이어 하느님이, 얼굴은 없으나 하느님인 그분이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무언으로 -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아주 순식간에 - 괜찮다, 토미, 라고 그가 알아들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곧 토미는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미는 선글라스를 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그 아이 - 그 어른 - 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유감이구나." 그가 말했다. "자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줄은 몰랐어."

"저희 아버지는......" 그 순간 피터의 눈에 누가 봐도 눈물로 보이는 것이 글썽거렸다. "저희 아버지는 품위 있는 분이셨어요, 토미."

"저희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한 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피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토미 쪽으로 얼굴을 조금 돌리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날 밤 그 안으로 들어가 착유기를 작동시킨 거예요. 그리고 그곳이 모조리 불타버린 거고요. 나는 그 일을 결코, 결코 잊은 적이 없어요, 토미. 그러니까,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내가 알고 있다, 그런 말이에요. 그리고 아저씨도 그 사실을 안다는 것 역시 알고 있고요."

토미가 차에 기댄 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저씨도 그걸 알고 계셨던 거고요." 피트가 마침내 말했다. "그래서 여기 오시는 거잖아요, 저를 괴롭히려고."

'그 일'이 일어나고 토미의 삶이 변했다.

낙농장과 집이 싸그리 불타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수위 일을 하게 되고, '루시'와 아이들을 만나고, 그리고 또 피트를 만난다.

화재는 자신의 실수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토미가 '그냥'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죄를 대신 고백하면서.

가끔 내가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거야~ 하는 마음에 머릿 속에서 재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왜냐면 토미는 진짜 몰랐거든.

과연 누가 불을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화재는 토미뿐만 아니라 피트의 아버지와 피트, 그리고 그 가족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토미는 그 말에 '그 일은 그냥 흘러보내라'고, '자네는 이미 충분히 충분히 많은 것들과 싸워왔다'고 그렇게 묻어둔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지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진실은 더더욱 뒤통수 맞는 충격이다.

하지만 어른인 토미 아저씨는 그렇게 그렇게 그냥 흘려보낸다.

피트의 고백이 내가 느끼기에는,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지금 아저씨에게 드디어 고백하는 거고, 아마 아저씨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어림짐작하면서 각자 처음 꺼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피트의 불편한 진실과 토미의 계시라는 고백을 처음 서로에게 말하면서 마음이 좀 더 편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더 껄끄러워지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가 밀려오고 그동안 지탱해온 믿음까지 흔들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걸 믿으세요?" 피트가 물었다.

"믿는 게 아니야." 토미가 말했다. "아는 거지."

"그 이야기를 아주머니한테도 하지 않으신 거예요?"

...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게 되는 일도 있는 것 같아."

"뭐랄까, 내 생각엔 뭘 할지와 뭘 하지 않을지 사이에는 늘 그런 투쟁이 있는 것 같아." 토미가 재치 있게 말해보려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것에 투쟁이 있는 거지. 혹은 다툼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언제나 존재하지. 내가 보기엔 그래.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토미가 운전대에 한 손을 올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가 말했다.

"지금은 그게 틀림없이 내 상상에 불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토미가 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 없어. 내가 지어낸 거야." 그가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양손을 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토미. 왜 그 일이 일어났을 리 없다고 생각해? 왜 그 일이 그날 밤 당신이 생각한 대로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토미는 깨달았다. 그들이 함께 살아온 내내 그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한 그것이 사실은 그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음을. 그리고 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할 그것 -그의 의심 - 은 처음의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비밀임을. 그가 잡힌 손을 빼냈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별스럽지 않게 한마디 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가 말했다. "사랑해, 셸리."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리고 아마 잠시 더, 그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나도 사람은 만약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불편해하는 마음, 미안해하는 마음,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피트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대신 평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묻고 살아온 멋진 토미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그래서 더 와닿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토미 아저씨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선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의 아내에게 피트의 이야기와 함께 그 날 받은 계시를 처음으로 들려주는데, 그 때 받는 또 다른 깨달음은 새로운 믿음으로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노부부가 앉아서 말을 많이도 아니고 한 마디씩 천천히 나누는 이 장면이 정말 좋다.

서로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고 궂은 날, 즐거운 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사랑과 동료애로 가득 차 있있어서 좋다.

그리고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사람은 한 순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 (좋은 의미로) 변화가 좋아서 책을 읽으면 문장을 모았다.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어느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모순>, 양귀자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난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우리 집안이 조상 묘를 잘 쓴 모양이야. 어쨌거나 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인생>, 위화

"때때로 그저 짧은 만남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다."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제임스 도티

"그는 내게 자기연구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은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그냥 평범한 선물이 아니었고, 내게 일종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듯 하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존 가드너: 선생으로서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

바로 여기 <무엇이든 가능하다>에서도 단편 단편마다 그런 순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한 문장을 집을 수가 없고 통으로 좋아서 계속 읽게 되고 밑줄 긋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능해지고, 무엇이든 괜찮아지고,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기분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엄청 친하진 않지만 오며가며 얼굴을 알고 있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에 대해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바로 내 옆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이 <무엇이든 가능하다> 책으로

무엇이든 가지를 뻗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글은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천년의 질문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정래 작가님의 신작 <천년의 질문 1~3>을 일요일 하루 만에 통으로 읽었다.

인물간의 대화가 실감나고 호흡도 짧아서 한번 잡으면 200쪽 씩은 거뜬히 넘어갔다.

흡사 삼국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사 전략들과 정치 미드에서 보던 심리 싸움,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와 조폭 영화에 빠질 수 없는 치고박는 장면도 나오는 바람에 이게 소설인지, 영화인지, 고전인지 장르를 넘나든다.

<천년의 질문 1>이 기자 '장우진' 과 대학교 시간 강사 '고석민' 그리고 얽힌 성화그룹 비자금 사건이라면,

<천년의 질문 2>에서는 성화그룹 후계자 안서림 사장과 그의 허수아비 남편 김태범의 진흙탕 싸움 & 최민혜 민중 변호사와 황원준 검사 이야기가,

<천년의 질문 3>에는 이 모든게 어우러져 마무리 짓는 동시에 새로 시작된다.

이 밖에도 <천년의 질문> 속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얽혀 있어서 읽는 내내 이 사람, 저 사람 바꿔가며

"내가 장우진이라면 어떻게 할까?", "김태범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황원준 검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시사포인트> 장우진 기자입니다. 가엾은 김미주 양의 구형 공판이 일단 마무리되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그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삶의 음지에 따뜻한 마음 쪼여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검사님에 대한 마음 쏠림을 그냥 끝내기가 아까워 한번 뵙기를 청합니다. 이건 제 뜻만이 아니라 최민혜 변호사와도 마음이 합해진 것입니다. 셋이서 스스럼없이 오붓한 술자리를 가졌으면 합니다.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기자라 삽겹살에 소주밖에 못 삽니다. 술이나 안주보다는 대화가 맛있어야 하고, 대화가 맛있으면, 술도 맛있어지고, 술이 맛있으면 그 술자리 인연은 소중하고 알뜰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날짜 정도를 정해 주시면 저희가 맞추겠습니다. 문자가 너무 길었습니다. 문자 보내는 기쁨이 큰 탓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문자는 '황원준' 검사와 '최민혜' 변호사, 그리고 '장우진' 기자와의 중요한 매개체다.

세 사람의 인연이 공판으로 끝나지 않게 이어가는 소중한 불씨다.

검사는 이 문자를 읽고, 또 읽으며 마음을 사로 잡는 문장들과 문학의 아름다움, 그리고 장우진의 겸손하면서도 강단 있는 글에 매료된다.

이 시대에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만 있는 게 아니라

정의감을 놓지 않은 대한민국의 히어로 (초)능력자들을 지켜내겠다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면서 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 그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읽은 것이었다. 그때는 그저 '옳은 말씀이긴 한데......' 하는 정도로 넘겼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느낀 심정은 혼자의 힘으로 어엿한 무역 회사를 일구어낸 친구 서원섭에 대한 부러움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때는 대기업의 사위로 떵떵거리면서, 구멍가게 같은 무역 회사를 꾸려가느라고 낑낑대는 서원섭을 얼마나 하품 나오게 생각했었던가. 상대생으로서 서원섭이 모범적 성공 인생이라면, 자신은 견본적 실패 인생이었다.

'내가 이 상태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뭐지......?'

김태범은 자신의 의식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열패감과 자괴감만이 무성한 잡풀처럼 뒤엉켜 있을 뿐이었다.

권력과 돈에 취해 정신 못차리던 성화그룹 사위이자 서민 출신의 '김태범'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고되들이다.

이 부분을 읽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앞만 보고 달려왔을 땐 몰랐을 터이지만 이젠 악착같이 손 안에 쥐던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텅빈 김태범의 의식 속에서 이제 화살이 '나'에 대한 물음으로 바뀐다.

비단 개돼지같은 사람은 우뇌한 국민들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에 '나'는 어떤 사람이고 존재인지 묻지 않는 생각이 멈춘 사람도 그렇다.

성화 그룹을 떠나 멋지지만 더럽게 재기하는 김태범의 모습과 딸, 아들 두 아이를 위해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을 따내려고 치열하게 소송하는 아빠의 전쟁은 완전한 악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랬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자기 아이들은 끔찍히 생각하면서 남의 집 귀한 딸,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돈으로 입막음하려 하다니.

너무나 비겁하고 못 됐다.

이 세상에는 두 얼굴의 사람들이 참 많다. 아니, 열 개, 백 개의 얼굴 쯤 되려나.

 

 

 

 

 

"그런 안목을 갖추는 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나 요령이 있는 것입니까?"

"네, 많은 분들이 그런 의문과 궁금증을 피력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감식안을 갖추는 데는 무슨 유별난 방법이나 요령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분야의 일이 그렇듯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남다른 관심과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싶은 관심과 하고 싶은 의욕이 생동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 눈을 크게 뜬 상태에서 이론을 공부하는 동시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을 보고, 보고, 또 보는 것입니다. 그 반복 과정을 통해서 '많이 보고, 오래 보고, 깊이 보기'를 하게 되면 마음의 눈은 점점 크게 뜨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보아온 박물관이 아닌 어느 길목의 골동품 가게나, 어느 사찰의 허술한 박물관에서 새 물건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눈이 번쩍 띄면서 그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것인지 번개 치듯 판별이 됩니다. 그걸 소위 개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걸 흔히 영감이라고도 하는데, 그건 단순히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고 말하는 영감이 아니고 '그동안 계속 축적되어온 사고가 일으킨 순간적 발화'로서의 영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부터는 어떤 것을 보나 시대 측정, 나라 구분 같은 것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이 부분은 그냥 내가 좋아서 밑줄 그은 문장들.

인지부조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의 말 처럼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라는 영화평론책이 있는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좋은 문장들을 차곡 차곡 수집하고 있다.

이게 왜 좋으냐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사이트와 혜안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러기 위해선 정도의 방법으로 보고, 보고, 또 보는 것 뿐이고 많이 보고, 오래 보고, 깊이 봐서 알게 되는 수밖에.

 

 

 

 

"여기 세 권의 책을 골라 보냅니다. 이 세 분은 우리나라 3대 수필가로 받들어도 크게 그릇됨이 없을 것입니다.

... 어느 연로한 소설가가 평생의 화두로 삼아 책상 앞에 써 붙인, 지극히 평범한 듯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일게 하는 경구를 받아다가 저의 책상 앞에도 붙여놓았습니다. 그 꾸밈새를 그대로 흉내내 여기 적어 보냅니다.

문학, 길 없는 길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열릴 길

'길 없는 길'이란 불교의 <화엄경>이 품고 있는 말이고, '문학'을 '인생'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원래는 불가의 '도'를 이름입니다.

너무 외로워하거나 너무 고달파하지 마십시오. 바라보는 곳이 같으면 마음은 늘 함께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를.

이것도 장우진의 손글씨 편지에 투영된 조정래 작가님의 말씀이다.

2015년 <정글만리> 출간 인터뷰 당시 이런 글이 남아 있다.

("문학, 길 없는 길"이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지금 이런 나이에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치열성을 갖지 않으면 작가 못해요. 예술가 못한다고요. 아무나 예술 합니까?

<천년의 질문> 책에도 그 치열성과 역사적 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인생, 길 없는 길'에서 묻고 또 묻는다.

 

 

 

 

"근데, 안데르손 그 사람 말이야, 정치인이 아니라 어찌 꼭 철학자처럼 말하고 그러냐?"

... "거 있잖아, 특히 감동적이었던 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이것 참 기막히잖아?"

"예, 깊이 있고 멋진 말이에요. 근데 그 정도는 이쪽 정치인들이 갖춘 보편적인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보편적 수준?"

"예, 이쪽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독서를 일상화하고, 중·고등학교에서 토론 수업과 리포트 쓰기가 기본이고, 대학에서는 학년마다 에세이 쓰기를 인정받지 못하면 졸업이 안 되잖아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철학적 깊이와 논리적 사고 능력이 강할 수밖에요."

<천년의 질문 3>에서 장우진은 스웨덴 국회에 가서 '에릭 안데르손'이라는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민의 힘은 결국 개인의 철학적 깊이와 인문적 사고, 그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진정성과 연대감이 중요함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스웨덴이나 스위스처럼 시민의 힘이 강하고, 정치가 깨끗하고, 국력이 강한 나라는 일상에서도 가진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예전에 주 4일이었나, 수업 시간을 아주 조금 늘리는 바람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울면서 다같이 떼를 지어 시위를 하는 뉴스 기사와 사진이 떠올랐다.

우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놀토'(노는 토요일)이니 뭐니 주 5일하면 세상 망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요즘 애들은 아마 '전화해~' 라고 말하며 엄지와 약지로 전화기 모양을 만드는 것과,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 이런 이모티콘의 생소함과 더해

주 6일의 일하는 토요일을 자료에서만 접할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와 스웨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일상의 여유가 느껴져서 참 멋있었다.

치고 박고 싸우면서 한 몫 크게 해 먹는 배 뚱뚱한 국회의원이 아닌 진짜 일하는 정치판을 둔 국민의 클래스였다.

 

 

 

 

 

"'모든 권련은 횡포하고, 타락한다. 그러므로 줄기찬 감기 감동이 필수다. 그 역할을 대신 맡는 게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의 필요성과 역할을 밝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국민은 제각기 자기들 생업에 정신없이 바쁘고 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권력 집단들에게 신경을 쓴다 해도 놓치게 되고,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명해 낸 것이 바로 시민단체 활동입니다. 1차적으로 시민단체 회원으로서 후원금을 내서 활동가들이 상시로 감시 감독과 함께 저항 고발케 하고, 더 거대한 힘이 필요할 때는 2차로 회원 전체가 앞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작년의 촛불혁명 때처럼.

그럼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새로 태어날 시민단체 '너나" 사모'의 회원으로 모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너나"사모'의 캐치프레이즈가 '1,000만 명이, 1,000원씩, 100개의 시민단체'라고 했습니다. 그와 나란히 걸리는 또 하나의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시민단체, '너나" 사모'의 대화의 시간이라는 외침 연설 중 나오는 발언이다.

이는 '너와 나 나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원래 '너나나사모'가 되기 때문에 '나나'가 두 번 나와 문장부호 쉼표 두 개인 " 를 응용하여 만든 이름이다.

'너나" 사모'의 캐치프레이즈는 흡사 독립운동, 그리고 일제강점이 운동을 연상케 한다.

과거 민립대학 설립운동에서도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 이라는 구호가 있지 않았는가.

역사를 떠올리며 현 시대를 연결하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실감나는 웃음을 'ㅋㅋㅋ'과 'ㅎㅎㅎ'등을 그대로 표기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옛날 인터넷 소설과 귀여니가 유행하던 시대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다.ㅋㅋㅋ

아마 어떤 텍스트도 'ㅋㅋㅋㅋ'와 'ㅎㅎㅎㅎ'를 대체하기 어려운 미묘한 뉘앙스를 실감나는 자음 웃음 그대로 살린 걸꺼다.

또 주요 인물인 냉철한 사회학자 '고석민'과 기자 '장우진'의 눈과 입을 빌리면서 OECD 순위나 지니 계수 등 실제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부분은 우리를 또 한번 개안시킨다.

그 자료가 다 어디서 나왔는고하니 책 사이의 멋진 홍보지에 "장편 소설 <천년의 질문> 탈고 후 3,612매의 원고, 130여 권의 취재수첩과 함께한 작가."라고 적혀 있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작업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수 많은 노고를 통해 역시 작품과 삶의 치열한 단컷을 엿볼 수 있었다.

과연 그래서 장우진과 고석민과 안서림, 김태범 등 눈 뜨이고, 눈 먼 사람들은 어찌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지.

질문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의 질문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당신에게 대한민국이란 무엇입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작가정신의 승리' 조정래 작가님의 신간이.

당신에게,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이냐는 화두를 던지면서 현 시대를 바라보는 치열함과 냉철함을 담은

<천년의 질문>을 너무 늦지 않게 읽었다.

<천년의 질문 1>에는 '장우진'과 '고석민'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비메이저 '시사포인트' 신문사 직원이자, 독립운동가이 마음가짐으로 정의와 맞서는 심층추적팀 '장우진' 기자와

글 잘 쓰고 엘리트이나 인맥과 운빨이 부족해서 대학교 보따리 시간 강사로 일하는 '고석민'.

이들과 얽힌 대기업 '성화'그룹의 비자금 사건과 맞물려 정의와 부정, 진실과 거짓, 정치와 권력 등 쫓고 쫓기는 인간사가 등장한다.

 

 

 

 

작가의 말

응답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있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되풀이되어온 질문.

그 탐험의 길을 나서야 하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_2019년 6월 조정래

 

 

 

 

"도시는 밤에 깃들기 쉽지 않았다. 해가 지면서 안갯빛 어스름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시는 그 어둠살을 밀어내는 몸짓을 짓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

또 어떤 유명한 사람의 말이 루소 말의 대구처럼 떠올랐다.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이고 구호일 뿐이다.'

... 그러나 장우진은 그 두 가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자기의 또 다른 생각을 곁들였다.

'그런 기망과 배신 행위가 오로지 정치인들만의 잘못일까. 유권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유권자들은 투표를 끝낸 다음에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었을까. 얼마나 정치인들을 주시하며 감시, 감독을 했을까. 투표를 한 다음에는 할 일 다한 것처럼 정치에 아무 관심도 두지 않고, 대통령을 왕과 동일시하는 그 순진함과 단순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을 저질러대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마음 놓고 국민들을 수없이 기망하고 배신해 왔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의 응답처럼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플라톤의 말이었다."

"장우진의 혀 차는 소리가 길었다.

"아이고, 이 한심한 나라. 이걸 어째야 되는 거지요?"

"이 지경이 된 책임이 누구한테 있을까? 백만 공무원들한테? 천만에! 바로 국민한테 전적인 책임이 있어."

"국민이요?"

사회학자가 놀라서 눈이 커졌다.

"제길, 사회학자가 이리 놀라시니 개돼지인 국민들이야 깨닫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아까 말한 것 있잖아. 국민 대중의 집단 망각증, 그리고 집단 무관심. 국민들이 이 두 가지 중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두 눈 부릅뜨고 각 분야 공무원들과 여러 권력 집단들을 감시, 감독하지 않고서는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안 고쳐져."

"이유영은 여동생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니, 형부는 바보 아냐? 나이 헛먹은 돈키호테 아니냐구. 형부가 그렇게 혼자 날뛴다고 이 세상이 끄덕이나 할 줄 알아? 형부 뜻대로 변할 줄 아느냐구. 천만에, 다 웃기는 짓이라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왜 몰라. 아니, 계란으로 치면 제 몸은 안 상하지. 형부가 잘난 척하며 하는 짓은 맨땅에 박치기 하는 바보 천치 멍칭이 짓이라구. 제 머리만 깨져. 피 철철 흘리는 멍텅구리 짓거리. 형부가 그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줄 줄 알아? 아무도 안 알아주고 사는 꼴만 이렇게 찌질하게 궁상이잖아. 언니도 물러터지게 굴지 말고 이번 기회에 정신 확 나게 잡아채라구."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장우진' 기자의 이 발언들은 <천년의 질문> 기지 속에 끊임없이 흐르는 질문들이다.

누가 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적폐청산 독재정권과, 28만원 밖에 없다는 뻔뻔한 대통령, 모 대기업 출신의 이름 남기기에 혈안이 된 대통령, 또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일까?

그렇다고 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겠으나

그렇게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담담하게 '장우진'과 '고석민'의 입을 빌려 국민들의 힘을 논한다.

저것과 비슷한 발언이 책에 진짜 많이 나온다.

잘 세어보면 한 4~5번 나오는 것 같다.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정당지지나 무관심한 시민의식, 투표 후 깡그리 없어지는 마법의 뇌를 가지고는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이 세상이 안고쳐진단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또 많이 나오는 구절은 바로 저거다.

그렇게 고고하게, 정의롭게 살면 뭐하냐고. 세상 변하냐고. 그냥 한 몫 챙겨서 편하게 살지 까불지 말라고.

돈 키호테를 운운하며 현실감 없는 사람 만들면서 윽박지른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돈 백 만원, 천 만원이 아니라 무려 억 단이다. 그것도 최소 대략 20억 원.

한 사람이 1년에 천 만원씩 저금한다고 해도 1억을 모으려면 10년이다, 10년.

'장우진'이 성화그룹 비자금 캐기를 그만두는 대가로 한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골든 티켓이 눈 앞에 있는데.

게다가 나 빼고 다른 기자들은 이미 불이나케 손 땐 사건인데?

만약 불도저처럼 계속 밀어붙인다면 나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어디론가 끌려가 협박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는데?

이건 그렇게 쉬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립투사의 의지로, 독립운동의 열정으로 사회 정의구현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게 과장이 아니다.

과연 이 질문에 몇 명이나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 않은 역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쓰고, 기록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누구나 하찮고 가소롭게 여겼다. 그런데 참여연대라는 이상스러운 단체는 어느새 지렁이에서 용으로 변해 있었다. 낙천 낙선 운동으로 국회가 업어치기 당하고 나서 국회의원들은 화들짝 놀라 참여연대를 큰 눈 뜨고 살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젊은 변호사들과 여러 분야의 젊은 교수들 수십 명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작가며 화가 같은 예술인과 서로 다른 종교인들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진보' 색채를 띤 인물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문 지식을 무보수로 바치는 이른바 '재능 기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앞에 선 조직이라면 뒤에 또 다른 조직이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시민단체'라는 간판에 걸맞게 수천 명의 시민들이 또 다달이 후원금을 내면서 뒤를 바치고 있었다. 그 두 가지 힘이 모아져 '활동가'라 부르는 행동대들이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발적 조직의 집결체가 국가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

"똑똑히 보게. 저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표야. 점점 정치하기 어려운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라구. 자네가 앞으로 정치를 하려거든 저 참여연대에 찍히지 않게만 하면 잘하는 거야. 명심해."

박 의원님의 진지한 충고였다."

초반부에 수동적인 개돼지 국민들을 묘사했다면 후반부부터는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국민들 앞에 행동가가 있고, 행동가 앞에 시민단체가 있고, 시민단체 앞에 참여연대가 서로 유기적인 공동체로 상생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봄을 찾아 행진한다.

결코 소설 속에만 나오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참여하고 까다롭고 괴롭히고 질문할수록 정치는 진보한다는 진보의 미래도 만날 수 있었다.

 

 

 

 

 

"예, 그래서 아까 해결책이 있지만 난감한 문제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노력하면 그 길이 열릴 수 있어요. 단결해서 저항하는 국민이 되는 것,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이 되는 것, 국가 권력을 직접 통제하는 국민이 되는 것, 이것이 뚜렷한 해결책이고, 우리 사회에 주어진 미래의 숙제겠지요."

"그런 게 성취할 날이 오리라 믿으세요?"

"믿고 싶고, 어느 만큼 믿고 있어요."

"믿음의 근거가 있으세요?"

"예, 그 믿음의 구체적 근거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잖아요."

"어머, 저요?"

최 변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예, 민변의 역사 30년이 바로 우리 사회의 변화, 국민 의식의 발전과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거물이에요. 50여 명으로 시작해 회원이 1,100명이 넘도록 폭증했다니, 이런 엄청난 기적은 없어요. ...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의 변화보다 앞으로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할 거예요. 난 그 바탕을 믿어요."

"여전히 장우진을 응시한 채 판사의 침묵이 길어지더니 이윽고, "왜 그렇게 힘들게 삽니까?" 그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으면서 눈동자도 미세한 흔들림이 이는 것 같았다.

"예, 한 사람만이라도, 저 한 사람만이라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쓰고, 똑바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장우진'기자의 입을 통해서 민중의 나아갈 길을 똑바로, 똑똑히 보여준다.

이건 정말 철학적이고 교훈적인 장편소설이다.

<천년의 질문 1> 에는 성화 비자금 사건에 당사자인 사위 '김태범'과 이를 밝히려는 기자 '장우진'이 교차로 나온다.

과연 대의를 위해서인지 속고 속이는 이 판 속에서

국회의원과 대필 작가 '고석민'의 고민도 숨어 있고, '장우진'의 아내이자 초등학교 교사 '이유영'의 말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슬픔도 있다.

현재와 미래를 더 잘 살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대한민국을 끊임 없이 붙잡고 흔들고 귀찮게 해야만 한다.

과연 진실을 밝혀지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 이야기는 계속 된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벽의 방문자들_장류진, 하유지, 정지향, 박민정, 김현, 김현진 저, 다산책방 출판

장류진 · 새벽의 방문자들

하유지 · 룰루와 랄라

정지향 · 베이비 그루피

박민정 · 예의 바른 악당

김 현 · 유미의 기분

김현진 · 누구세요?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현남 오빠에게>에 이은 페미니즘 도서.

이번 <새벽의 방문자들>은 '테마소설 페미니즘'으로 6명의 신진작가들이 쓴 극사실주의 페미 도서다.

최근 개봉한 <알라딘>, <토이스토리>, 그리고 <캡틴 마블>에 <맨 인 블랙:인터내셔널>... 당장 올해 개봉한 영화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공통점을 킁킁 눈치챘는가?

그건? 바로 페미코드.

이제 페미니즘은 하나의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장르이자 문화이자 일상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 불편하고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아주 짜증이 날 정도.

하지만 이런 불편스러운 책이 이 세상에, 특히 대한민국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들었다.

빻은 가치관의 한남 오빠에게, 아니아니, <현남 오빠에게>에 이어 <새벽의 방문자들>까지 못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말과 글이 쎄질 수밖에 없어진다.

프로 불편러는 아마 못 읽겠지 싶다. 그럼 안 읽으면 그만이고.

잘 될 수 밖에 없는 책이 또 탄생했다.

 

 

 

-새벽의 방문자들

 

 

"그 남자, 김은 굴지의 대기업 본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제 막 삼심 대에 접어든 여자를 제법 어리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이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괜찮은 남자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구김 없는 성품에,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유머 감각, 그리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특별히 흠잡을 만한 단점도 없는 멀쩡한 체격과 무난한 얼굴. 여자는 이 '무난하다'는 평균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희소한 것인지를 해가 지날수록 체감하고 있었다."

주인공 '여자'는 혼자 원룸에 살고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안된 직장인이다.

'저 문장은 30대 이상의 여자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장류진 작가님을 찾아보니, 빙고.

내가 20대 초중반 인턴을 할때 즈음, 같은 팀 대리님이 해주신 얘기가 바로 저 평균의 법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혼할 만한 괜찮은 남자들의 비율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특히 대학교 CC로 이미 결혼),

30대가 되면 더더욱 없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어렴풋이 그렇겠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 없겠다는 생긱이 들었다.

물론 있기야 있겠지. 만약 아니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1. 남자거나, 2. <새벽의 방문자들>, <현남 오빠에게>,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다.

 

"초인종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울렸다. 여자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일어나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오피스텔에 숨을 곳은 없었다. 여자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이번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발가락 하나조차도 나오지 않게 이불 속에 파묻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몇 번 더 울리더니 그쳤다. 여자는 배달원의 발걸음이 1204호로부터 멀어지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가 배달원을 태우고 다시 내려가는 소리를 숨죽여 더듬었다.

...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1204호에 삼심 대 초반의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단편 제목인 수상한 새벽의 방문자들의 등장.

처음에는 택배 배달원이 오지만, 나중에 오는 방문자들은 낯짝 두꺼운 성매매충들이 오피스텔 호 수를 잘 못 알고 찾아온 남자들이다.

새벽의 방문자와 초인종 소리는 진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공포를 모를 것이다.

문제는 단언컨데, 대한민국 여자의 99.9999%가 겪어봤을 거라는 거다.

어느 정도냐면 택배를 시킬 때 받는 사람 이름을 '김팔두'씨라고 쓰는 게 하나의 Tip으로 공유될 정도랄까?

이런 얘기를 하면 아직도 주변에는 "괜찮아, 너 안 잡아가"라는 쌍팔년도 빻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공존한다는 거다.

자신을 잠정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는 말 만큼 어이가 싸다구를 때리는 소리다.

1+1으로 남자도 위험해라는 발언까지 더해주겠다.

이러니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OST의 제왕, 한남 가수는 밤 늦게 다니는 여자를 뒤 따라 가면서 놀래키는게 재밌다는 발언을 라디오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댈 수 있겠지.

그리고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는 택시를 타면서 공포를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거였다.

세상에나. '택시를 타면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 큰 충격이었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역발상 해보지 못한 것에 1차 충격, 그리고 저렇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 2차 충격.

우스갯소리로 마동석 같은 사람으로 살면 <새벽의 방문자들>에 나온 주인공 '여자'의 삶보다는 몇백배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불편함이 있다면 술 먹고 술자리에서 행패 부리거나 싸움을 거는 사람이 더 생기겠지 정도.

물론 안 살아봐서 감도 안 온다.

혹시라도 주인공 '여자'가 불한당들에게 당하지는 않을까 흡사 공포영화를 방불케하는 스릴러에 심장이 쫄깃해졌다.

현실 세계에는 이보다 더 나쁜 일들이 하루에도 수두룩 빽빽이니, 제발 이 책에서 만큼은 안전하게 살아줬으면.

 

 

 

 

-룰루와 랄라

 

"그러더니 겸이 묻기를, "혹시 그 반장이라는 사람, 여자야?"

"...... 응."

"어쩐지." 피식 웃는 겸. "그럴 거 같았어. 안정에만 목숨 걸잖아. 그게 편하고 안전하니까. 도전하려고 하질 않는다니까."

나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경험이야? 너 일하는 데는 죄다 남자라면서."

"뭐든 꼭 일일이 직접 다 겪어봐야 알아?"

대단한데, 겸? 나는 너라는 사람을 일일이 직접 다 겪어 놓고도 알 듯 모를 듯, 그렇거든, 묻고 싶었다. 너는 안정을 바라는 타입이 아닌 거니? 그럼 정규직은 왜 되고 싶어 하는데? 그건 안정이 아니라 도전을 추구하는 거야? 나랑 결혼하려는 건 안정이 아니라 도전을 추구하는 거야?

"겸이 다가와서 내 이마를 짚었다. 다정한 아버지처럼 에휴, 한숨을 내쉰다. "여자들 텃새가 장난 아니라던데 어떡하냐. 다녀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관둬. 또 무슨 방법이 있겠지."

겸이 흉보단 선배와 상사들이 떠올랐다. 새 기술과 방법을 익히려들지 않고 옛것만 고수하느라 효율성을 깎아먹는 데다가 끼리끼리만 어울린다던 사람들, 겸의 속을 뒤집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 새끼, 남자야?"

"...... 응."

그때부터 겸은 본격적으로 날뛰었다.

"개새끼가! 싸가지 없이 반말을 해? 당장 관둬! 내일부터 나가지 마!"

바가지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겸과 의논하고 싶었는데, 겸은 화만 냈다.

"겸! 너 흥분하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그런 캐릭터 겪어봤냐니까? 넌 남자들하고 일 많이 해봤잖아."

"인간 자체가 글러먹었는데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야!" 겸은 씩씩댔다.

아니 그럼 남자냐고는 왜 물어본 건데.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다음 바턴은 하유지 작가님의 <룰루와 랄라>.

제목처럼 룰루 랄라 신났으면 좋겠으나 매일 만나는 동네 주민 여자를 부르는 별명이랄까 애칭같은 거다.

나인 투 씩스의 정해진 시간이 없는 자유로운 보헤미안 같은 두 커플. (업무 시간만)

남자친구 '겸'은 상사가 남자냐, 여자냐의 기로에서 갈대같은 잣대를 지닌다.

누가 누굴 평가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킬링파트 구절들.

그래도 이 단편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

영화 <걸캅스>같은 사이다 한 방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끝에 나오는 '작가 노트'가 너무 좋았다.

 

 

작가노트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때때로는 절망적일지라도, 대체로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랫소리라고 믿는다.

이 소설 속에서 몇몇 사람은 노랫소리를 들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테마소설 페미니즘이라는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나온 6편의 단편이

각자 자기 만의 위치에서, 방에서, 인생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담고 있어서 곱씹을 만하다.

그리고 '형돈이와 대준이'의 <안 좋을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의 맨 뒤에 써 있는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이건 이 책의 제목이자 단편제목 중 하나인 <새벽의 방문자들>의 장류진 작가님의 '작가노트'에 실린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혹시 내 얘기는 아닐까? 0.1초 만에 퍼뜩 섬광처럼 떠올랐다!

정작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해야할 X모씨들은 안하고, 이렇게 또 공감능력 높은 특정 사람들만 돌아보는 건 아닐지 씁쓸하다.

여자소설, 여배우, 여성대통령, 여직원, 범죄자 女 라는 말이 언제쯤 뚝뚝 떨어져나갈지.

한 100년 쯤 지나면 성별에 관계 없이 살만한 세상이 올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 한 100년 쯤 지나면 지금보다는 더 성별에 관계 없이 살만한 세상이 올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새벽의방문자들, 장류진, 룰루와랄라, 히유지, 다산북스, 페미니즘, 페미, 페미니즘책, 페미책, 책, 도서, 리뷰, 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니가 돌아왔다_C. J. 튜더 저, 이은선 역, 다산책방 출판

The Taking of Annie Thorne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게리는 시골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열린 문 사이로 기분 나쁘게 달짝지근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끈적끈적하고 후텁지근한 복도에는 파리 뗴가 날아다니고 그것이 이 집이 비정상적이라는 결정적 증거, 상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장 심하게 비정상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지 몰라도, 정적이 결정타다."

이번 책은 여름과 아주아주 잘 어울리는 오싹한 공포/스릴러 소설...!

<초크맨>으로 유명한 C. J. 튜더의 신작 <애니가 돌아왔다>이다.

원래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은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은 450여 쪽이 훅훅 넘어갈 만큼 빠르게 읽었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지!

그리고 주인공은 왜 자꾸 위험한 일에 말려드는지!

당장 말리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 그리고 매듭을 짓기 위해 더더욱 그 일에 착수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포일러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애니가 돌아왔다>를 읽고 느낀 감상 위주로 써본다.

그러고 보니 책 제목도 되게 무섭네...! <애니가 돌아왔다>.

겉 표지도 그렇고!!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폐가 같은 곳에 뒤돌아 서있는데 고개는 오른쪽을 향해 있다.

무언가를 주의 깊게 보는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의 키보다 훨씬 높은 천장의 구도는 불안함을 더한다.

 

"처참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의 착각이었다. 이건 염병할 악몽이다.

...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색이다.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빨간색이다. 아이의 시선 위쪽 벽에 대문자로 휘갈겨 써있다.

내 아들이 아니야"

"절대 돌아가지 마.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상황이 달라져 잇을 거라고. 기억하는 것과 다를 거라고.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물론 맨 마지막 충고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는 자꾸 되살아나는 성향이 있다. 꼭 맛없는 카레처럼."

"사람들이 말하길 시간은 치유의 힘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 말은 틀렸다. 시간은 지우는 힘이 엄청날 따름이다. 무심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조각들만 남을 때까지 불행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낸다.

무너진 가슴은 다시 맞출 수 없다. 시간은 그 조각들을 거두어 곱게 갈 뿐이다."

주인공 '손'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인 안힐 마을로 되돌아 온다.

동네 주민들끼리 소문이 빠르게 퍼질 정도로 작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이다.

그리고 한 학생 하나와 그 아이를 처참하게 살해한 어머니이자 학교 선생님의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인 '애니'는 주인공의 하나 뿐인 여동생이자 어린 아이이다. (왜냐하면 슬프지만 더 이상 크지 못했으니까...)

'손'은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도박에 손을 대고 주변 사람들의 충고는 듣지 않으면서 마이웨이하는 성격 때문인지

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다.

옛 패거리 '스티븐'을 중심으로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다니는데 '손'은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지만 옆에서 방관자로 함께 있거나 말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손'은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 그런지 학교 폭력이나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악습은 계속 되고 안 좋은 역사는 반복되는 법.

전형적인 악인 '스티븐'의 아들 '제러미'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버지의 빽으로 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사고를 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은 폐광이라는 죽음의 장소이자 과거 안 좋았던 일들의 근원지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아이들을 발견한다는 대목이 있다.

무섭지만 그렇게 아이들을 또 끌어 낸다.

 

 

 

 

"마리가 많이 아프거든요."

"암이죠. 알아요."

"말기예요. 남은 날이 몇 달, 어쩌면 몇 주밖에 안 돼요. 죽어가고 있어요."

...

"아무리 스티븐이라도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절박한걸요. 그리고 절박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게 되어 있어요. 기적을 찾으러 다니고요." 그녀는 몸을 앞으로 구부려 차갑고 건조한 손을 내 손 위에 얹는다. "물론 그들이 기적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죠. 이제 내가 선생님이 돌아와주길 바란 마음을 알겠어요?"

알겠다. 그 깨달음이 내 안에 깊고 서늘한 균열을 만든다.

"스티븐은 마리를 살리고 싶어 하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손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인물인 옛 선생님 '미스 그레이슨'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악연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손'이라고 도움을 청한다.

과연... 전형적인 방관자이자 아싸 스타일인 주인공은 여동생 '애니'의 아픔을 치유하고 '스티븐'과 폐광에 얽힌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장소가 아이들을 찾아낸 것처럼, 이야기가 주인공을 불러들인다.

실종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애니'와 같은 사람들은 정말 전에 알던 사람이 맞을까?

도대체 그 장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스티븐'에게 받을 빚은 무엇인지 끝까지 읽어봤다.

나도 모르게 '손'을 응원하면서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