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울렸다. 여자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일어나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오피스텔에 숨을 곳은 없었다. 여자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이번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발가락 하나조차도 나오지 않게 이불 속에 파묻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몇 번 더 울리더니 그쳤다. 여자는 배달원의 발걸음이 1204호로부터 멀어지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가 배달원을 태우고 다시 내려가는 소리를 숨죽여 더듬었다.
...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1204호에 삼심 대 초반의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단편 제목인 수상한 새벽의 방문자들의 등장.
처음에는 택배 배달원이 오지만, 나중에 오는 방문자들은 낯짝 두꺼운 성매매충들이 오피스텔 호 수를 잘 못 알고 찾아온 남자들이다.
새벽의 방문자와 초인종 소리는 진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공포를 모를 것이다.
문제는 단언컨데, 대한민국 여자의 99.9999%가 겪어봤을 거라는 거다.
어느 정도냐면 택배를 시킬 때 받는 사람 이름을 '김팔두'씨라고 쓰는 게 하나의 Tip으로 공유될 정도랄까?
이런 얘기를 하면 아직도 주변에는 "괜찮아, 너 안 잡아가"라는 쌍팔년도 빻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공존한다는 거다.
자신을 잠정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는 말 만큼 어이가 싸다구를 때리는 소리다.
1+1으로 남자도 위험해라는 발언까지 더해주겠다.
이러니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OST의 제왕, 한남 가수는 밤 늦게 다니는 여자를 뒤 따라 가면서 놀래키는게 재밌다는 발언을 라디오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댈 수 있겠지.
그리고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는 택시를 타면서 공포를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거였다.
세상에나. '택시를 타면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 큰 충격이었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역발상 해보지 못한 것에 1차 충격, 그리고 저렇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 2차 충격.
우스갯소리로 마동석 같은 사람으로 살면 <새벽의 방문자들>에 나온 주인공 '여자'의 삶보다는 몇백배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불편함이 있다면 술 먹고 술자리에서 행패 부리거나 싸움을 거는 사람이 더 생기겠지 정도.
물론 안 살아봐서 감도 안 온다.
혹시라도 주인공 '여자'가 불한당들에게 당하지는 않을까 흡사 공포영화를 방불케하는 스릴러에 심장이 쫄깃해졌다.
현실 세계에는 이보다 더 나쁜 일들이 하루에도 수두룩 빽빽이니, 제발 이 책에서 만큼은 안전하게 살아줬으면.
"그러더니 겸이 묻기를, "혹시 그 반장이라는 사람, 여자야?"
"...... 응."
"어쩐지." 피식 웃는 겸. "그럴 거 같았어. 안정에만 목숨 걸잖아. 그게 편하고 안전하니까. 도전하려고 하질 않는다니까."
나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경험이야? 너 일하는 데는 죄다 남자라면서."
"뭐든 꼭 일일이 직접 다 겪어봐야 알아?"
대단한데, 겸? 나는 너라는 사람을 일일이 직접 다 겪어 놓고도 알 듯 모를 듯, 그렇거든, 묻고 싶었다. 너는 안정을 바라는 타입이 아닌 거니? 그럼 정규직은 왜 되고 싶어 하는데? 그건 안정이 아니라 도전을 추구하는 거야? 나랑 결혼하려는 건 안정이 아니라 도전을 추구하는 거야?
"겸이 다가와서 내 이마를 짚었다. 다정한 아버지처럼 에휴, 한숨을 내쉰다. "여자들 텃새가 장난 아니라던데 어떡하냐. 다녀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관둬. 또 무슨 방법이 있겠지."
겸이 흉보단 선배와 상사들이 떠올랐다. 새 기술과 방법을 익히려들지 않고 옛것만 고수하느라 효율성을 깎아먹는 데다가 끼리끼리만 어울린다던 사람들, 겸의 속을 뒤집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 새끼, 남자야?"
"...... 응."
그때부터 겸은 본격적으로 날뛰었다.
"개새끼가! 싸가지 없이 반말을 해? 당장 관둬! 내일부터 나가지 마!"
바가지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겸과 의논하고 싶었는데, 겸은 화만 냈다.
"겸! 너 흥분하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그런 캐릭터 겪어봤냐니까? 넌 남자들하고 일 많이 해봤잖아."
"인간 자체가 글러먹었는데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야!" 겸은 씩씩댔다.
아니 그럼 남자냐고는 왜 물어본 건데.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다음 바턴은 하유지 작가님의 <룰루와 랄라>.
제목처럼 룰루 랄라 신났으면 좋겠으나 매일 만나는 동네 주민 여자를 부르는 별명이랄까 애칭같은 거다.
나인 투 씩스의 정해진 시간이 없는 자유로운 보헤미안 같은 두 커플. (업무 시간만)
남자친구 '겸'은 상사가 남자냐, 여자냐의 기로에서 갈대같은 잣대를 지닌다.
누가 누굴 평가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킬링파트 구절들.
그래도 이 단편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
영화 <걸캅스>같은 사이다 한 방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끝에 나오는 '작가 노트'가 너무 좋았다.
작가노트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때때로는 절망적일지라도, 대체로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랫소리라고 믿는다.
이 소설 속에서 몇몇 사람은 노랫소리를 들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테마소설 페미니즘이라는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나온 6편의 단편이
각자 자기 만의 위치에서, 방에서, 인생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담고 있어서 곱씹을 만하다.
그리고 '형돈이와 대준이'의 <안 좋을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의 맨 뒤에 써 있는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이건 이 책의 제목이자 단편제목 중 하나인 <새벽의 방문자들>의 장류진 작가님의 '작가노트'에 실린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혹시 내 얘기는 아닐까? 0.1초 만에 퍼뜩 섬광처럼 떠올랐다!
정작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해야할 X모씨들은 안하고, 이렇게 또 공감능력 높은 특정 사람들만 돌아보는 건 아닐지 씁쓸하다.
여자소설, 여배우, 여성대통령, 여직원, 범죄자 女 라는 말이 언제쯤 뚝뚝 떨어져나갈지.
한 100년 쯤 지나면 성별에 관계 없이 살만한 세상이 올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 한 100년 쯤 지나면 지금보다는 더 성별에 관계 없이 살만한 세상이 올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