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쓰리 - 균형보다 더 좋은 편향의 힘
랜디 저커버그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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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픽 쓰리>의 저자는 '저커버그'라는 이젠 너무나 유명한 이름의 랜디 저커버그!

그렇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친 누나 되시겠다.

책 중간 중간에도 나오지만,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스타트업인 페이스북을 만들어냈으며 케이티 페리, 오바마 등이 활용한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솔루션도 직접 개발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도전으로 페이스북을 떠나 '저커버그 미디어'의 CEO이자 시리우스XM 라디오의 호스트, 그리고 출판 및 강연도 하면서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지치지 않는 비결이 뭘까. 그리고 잘 해내는 비결은?

모든 것을 다 하면서, 몇 개만 선택하는 놀라운 선택과 집중의 힘인 픽 쓰리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책을 열자마자 이상한 것이 있다.

제목은 분명 '픽 쓰리', 즉 3가지를 콕콕 찝어서 고르라는건데 책 날개의 맨 뒷편에는 이렇게 5가지가 적혀 있었다.

일: 시간을 투자한 대가로 가치를 얻는 모든 활동. 돈, 열정, 의미, 공헌, 장기적 목표를 위한 디딤돌 등 다양한 형태

수면: 하루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가족: 타고난 가족, 선택한 가족 모두를 의미한다. 생물학적 가족일 필요도 없다. 어떤 정의의 가족이든 우선순위에 두는 것

건강: 더 폭넓은 자기 관리, 신체적, 정신적 건강, 감정적 안녕, 마음챙김, 스트레스 관리, 건강한 식습관 등을 추구하는 것

친구: 단순히 인간관계뿐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모든 일. 흥미를 느끼는 분야나 취미에 집중하는 것

아하! 알고 보니 매일 5가지 중 내가 집중할 수 있는 3가지를 택해서 행동하라는 뜻이다.

랜디 저커버그가 이리저리 인생의 시소를 타는 것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일, 수면, 가족, 건강, 친구 중 픽 쓰리"

-'지루함 보다는 열정으로 죽는 편을 택하겠다.' -빈센트 반 고흐

-나는 더는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맹세했다. 늘 완벽하지 못한 면, 입을 옷도 없고 몸매도 별로인 상태, 글루텐 과다 섭취, 커피 중독, 괜한 투자나 위험한 사업 결정, 메일에 답을 못했다는 죄책감, 부족한 엄마, 부족한 아내이자 부족한 친구라는 그 모든 죄책감을 말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안타까워하며 짧고 소중하 삶을 어처구니없이 낭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결국 이 모든 죄책감은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하고, 모든 게 되어야 하고, 모두를 가져야 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일, 가족, 건강, 열정, 새로운 프로젝트, 사회생활, 그 무엇에서든 뛰어나고 싶다면, 계속해서, 쉼 없이, 끊임없이 먼저 우선순위의 꼭대기에 올려야 한다.

균형 잡힌 삶, 나는 그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무엇도 포기할 필요는 없어! 균형을 잡지 말고 시소처럼 한쪽에 집중하자. 날마다 다 해내려고 하지 말고 삶의 커다란 덩어리들(일, 수면, 가족, 건강, 친구) 중 세 가지만 골라 매일 집중하는 거야! 오늘은 그 세 가지를 잘 해내고, 내일은 또 다른 세 가지를 잘 해내는 거지. 그럼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쉬는 시간도 보장되고 건강도 챙기고 성공도 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을 거야!'

-균형은 집어치워라. 재미있게 살자! 다르게 살자!

처음부터 잘 해내는 사람은 없다.

<픽 쓰리>의 랜디 저커버그도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려는 강박관념에 결국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들다가 하버드 입학 상담실에서 바로 이 '픽 쓰리', 인생의 진리이자 만트라를 발견했다.

'균형을 집어치워라'는 재밌는 발상과 함께 매일 매일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는 놀라운 힘.

나도 멀티플레이어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짧은 시간 동안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참 많다.

그래서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지만 정작 잘한 것 보다는 못하고 아쉽고 부족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없는 스트레스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은 'T자형 인재'라는 말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동시에 타 분야도 두루두루 섭렵하는 통찰력의 뎁스까지도 중요하다.

이러다 A형, B헝, C형... Z형에 A-1형까지 나오는 건 아닐지.

바로 여기서 3가지를 고르는 편향의 힘이 빛을 바랜다.

중간에 '시소 타기로 균형 잡기' 부분에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인용되는데,

'일과 삶 사이에 균형은 없다. 공들여 얻어야 할 것이라면 무엇이든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또 다시 재밌는 발상이 나온다.

그래, 균형이나 슈퍼히어로급 만능인은 없다.

심지어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들 어딘가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이 분명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Just Do it! 세 가지를 골라! 로 간다.

 

 

 

 

"혁신, 충분한 잠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다"

 

"혁신, 충분한 잠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정해진 수면 시간이 없었고 그게 문제였죠. 수면은 할 일 목록에서 늘 마지막에, 마지막이 아니라도 아주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다 보니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훨씬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생산성도 높아졌고 늘 깨어있을 수 있게 되었죠."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 포스트>, 스라이브 글로벌 설립자

-그렇다면 수면 혁명은 아리아나의 개인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생했다고 말했다. 바로 더 나은 삶이다. 그녀에게 더 나은 삶이란 구체적인 업적이 아니라, 쓰러지기 직전의 좀비 같은 상태로 버티는 것이 아닌 온전히 충실하게 사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을 위해 잠을 포기한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깨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아리아나는 분주함에 대한 집착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기술 발전이 초래한 급속도의 변화다. 그 같은 속도감의 증가로 우리는 자신의 삶조차 따라 잡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4당 5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지금보면 구시대적 사고 방식이 내가 공부할 때는 유행이었다.

수능이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하루에 15시간 이상은 공부해야 붙는다는 거다.

뭐 유명 연예인도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다"는 독기어린 말을 내뱉으며 실제로 자신의 성공 비법을 말했다.

지금은 수면과 건강, 그리고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을 토대로 '수면' 이라는 게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전략적으로 보충해야 할 것임을 밝혀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잠을 줄이고 또 줄여서 그 시간에 뭔가를 한다는 성취감을 가졌고, 부족한 잠은 주말이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몰아서 자곤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저녁 늦게 돌아오면 잡고 있는 책을 끝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에 평일에도 새벽 3~4시까지 읽다가 3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나기도 한다.

사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 주어지는 선물인데 평생 읽어야 할 책과 볼 것, 들을 것, 놀 것은 많아서 너무 너무 너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잠이라는 친구는 어느새 우선순위 저 뒷편에 자리 잡는다.

여기 인용된 '아리아나 허핑턴'의 <수면 혁명>도 읽어봤는데 일과 잠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읽어보면 좋겠다싶은 부분이 많다.

'허핑턴 포스트'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잠 잘 시간도 없이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고

책상에 광대뼈를 부딪치는 바람에 깨어나보니 온통 피로 흥건했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

그 후로 허핑턴은 더이상 잠을 줄이기 않고 자신의 적정 수면 시간을 지키게 되었고 오히려 업무의 효율과 퀄리티 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나 정작 실천하기는 어려운 '잠을 줄이지 않기'는 내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주제다.

잠을 자면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아서 아쉬운 이 마음을 졸려운 눈을 억지로 뜨고 커피를 하루에 5~6잔 들이부어가며 소생시키고 있었는데

마감기한 때문에 밤새는 것이 아니라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책의 서평을 써야해서 저녁 12시 전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봤는데 의외로 하루가 개운했다.

당분간 나의 픽쓰리는 '수면'을 필수로 골라봐야겠다.

 

"할 일 목록을 해낸 일 목록으로 만들기"

 

 

-기억하라. 다섯 가지를 매일 선택하려고 하다가는 며칠 만에 지쳐 떨어질 것이다. 완벽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어쩌면 음주, 쇼핑, 감적적 문자 보내기, 초콜릿 케이크 하나 다 먹어치우기 등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이 유능한 인간이라는 건 알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멀티테스킹에 형편없다. 믿기지 않는가? 과학적 증거는 넘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사람들은 짧은 시간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일을 할 때 훨씬 행복하다.

'픽 쓰리'의 5가지 중요성을 듣고 나면 이제 직접 체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파트는 '픽쓰리 내재화하기' 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5가지의 조합을 모두 나열해줬는데 그리 많지 않고 딱 적당한 10개가 나온다.

-일, 수면, 건강

일, 수면, 가족

일, 수면, 친구

일, 건강, 가족

일, 건강, 친구

일, 가족, 친구

수면, 건강, 가족

수면, 건강, 친구

수면, 가족, 친구

건강, 가족, 친구

매일 3가지를 골라서 실천하다 보면 내가 어느 영역을 중요시 생각하는지, 어느 부분은 그다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니 균형보다 좋은 편향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매일 매일 3가지라니! 솔직히 말해서 매일 5가지, 10가지씩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지만 책을 읽고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단 오늘은 손가락 3개를 펴고, 강렬한 빨간색 책 표지같은 나만의 3가지를 콕콕 골라본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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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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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은 히틀러를 낳았고 금융위기 10년은 트럼프를 낳았다."

이번 <붕괴> 책은 경제사 연구학자이자 외교/정치 분야의 권위있는 사상가 '애덤 투즈'의 신간이다.

정성스러운 한국어판 서문, 그리고 미니북까지 함께 들어있어서 이해를 곁들이는데 분량은 960여 쪽에 달하지만 읽고 나면 분명 내가 몰랐던 세상을 깨우쳐주는 도구가 된다.

전공과 관련 있지만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부족함이 많아서 <붕괴>를 오늘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주는 책!

그럼 애덤 투즈는 2008년 금융위기는 왜 일어났고, 그 후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어판 서문

-나는 한국의 독자들이 <붕괴>를 단순히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한국처럼 고도로 국제화된 국가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물결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2009년 이후부터 한국이 보여준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며 한국의 연구 개발 분야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화는 오늘날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성장과 변화가 가능했던 건 <붕괴> 후반부에서 주로 설명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적 대격변을 한국이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포퓰리즘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과 독일 같은 유럽의 성공 사례를 한번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역사적 규모의 변화를 환기시키는 건 오랜 과거의 환영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반도를 20세기 중반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만들었던 그런 충돌의 시대를 돌이키자는 의도도 물론 아니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의 불안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붕괴>를 읽고 국내 질서는 물론 국제 질서가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릴 수도 있는 작금의 세계 상황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것이 지은이로서의 작은 바람이다.

한국은 여러모로 특이 케이스가 많다. 열심히 하는 근성의 DNA와 함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빨리 빨리의 습관과 행동으로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고 책이나 뉴스, 그리고 어르신들이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 만큼 복지나 시민의식, 정치도 동반 성장하지는 못하여 OECD 최하위 또는 부정적인 이슈는 언제나 최상위권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이럴거면 OECD 왜 가입했냐는 소리도 참 많이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휘청~을 넘어 와르르 붕괴하고 있을 때 꿋꿋히 악착같이 현상 유지 이상으로 버텨왔던 것 같다. 그래서 저자도 서구사회의 대격변을 잘 피해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을 포퓰리즘이라 뽑았는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의견이 자유로울수록 선동어나 분위기에 휩쓸리기 좋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퓰리즘의 정의부터 다시 짚고 넘어가려고 찾아봤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검색해본 결과,

포퓰리즘(populism)은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이라 한다.

어원은 인민이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를 따왔고, 대중주의, 민중주의, 인민주의로도 불린다.

포퓰리즘은 반적으로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가리키며,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에 상대하는 개념으로 간주된다.

듣기 좋고 입에 발린 말 보다 실제로 실행 가능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합리적 제도가 기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 이어서 읽어보면서 애덤 투즈 교수님의 사상들을 배워본다.

 

 

 

 

 

-달러는 한물간 퇴물일까

-2007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위기 징후가 감지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달러화의 향방에 주목했다.

...만약 유로화가 새로운 스타라면 달러는 정말로 한물간 퇴물이 되는 것일까?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 1년 전인 2007년 여름, 폴 크루그먼은 자신이 "와일 E. 코요테의 순간"이라고 묘사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해외 투자자들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사들이는 방법 외에는 달러화의 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그렇지만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지고 있는 대부분의 부채는 그 자체가 미국의 화폐인 달러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달러화 폭락에도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독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와는 사정이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였지만 만일 미연준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갑작스럽게 올리면 미국은 대단히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 "결코 웃을 상황이 아니다." 폴 크루그먼의 결론은 이랬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고위층의 문제점으로 '잘못된 위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꼬집어 말하면서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중국의 달러화 매도와 미국의 달러 약세 영향이 아닌 서구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뽑았다.

뒤에 이어서 나오지만 '서브프라임 대출로 인한 부실 저당 증권으로 월스트리트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유럽이 위협과 타격'을 받았다는 연쇄 작용 효과를 콕 찝어 말해주었다.

여기서 나온 와일 E. 코요테가 어떤 만화 캐릭터인고 하니 루니툰에 나오는 익살스러운 바로 이 친구!

늘 절벽에서 떨어져서 두 다리를 휘잉휘잉~ 휘젓는 사고뭉치로 나오는 모양이다.

와일 E. 코요테는 귀엽지만 우리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절벽에서 떨어져 놓고 아무런 대안 없이 우왕좌왕 팔 다리만 휘젓지 말고 과거를 알고 현재를 공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루니툰의 와일 E. 코요테

 

 

 

 

 

 

 

 

"글로벌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미국의 증권화 시장의 일부 부문에서 일어난 완전한 유동성 증발로 인해 일부 자산에 대해서 그 실제 품질이나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자산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면 담보로서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담보가 없으면 단 한 푼도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금을 조달할 수 없으면 부동산 관련 투자 규모가 크든 작든 은행들은 모두 어려워진다. 이렇게 유동성 동결이 발생하면 엄청난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그러면 어떤 은행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리먼브라더스는 베어스턴스와 마찬가지로 월스트리트의 주류 금융업체가 되기 위해 부동산에 엄청난 승부를 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업 부문을 모기지 대출 증권화 과정과 완전히 합쳤던 것이다. 2008년이 시작되면서 리먼브라더스의 주식 가치는 73퍼센트나 폭락했다.

... 리먼브라더스를 벼랑으로 내몬 건 불안해하는 대출업체들의 추가 담보 요구였다.

...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의 경우는 방만한 경영이 문제였다. 극심한 경쟁 압박 속에서 두 회사는 모기지 증권화 사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박을 걸었다. 그렇지만 과연 두 회사 뿐이었을까?

-지난 1941년 이후 우리는 100년 동안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2008년의 사태와 그 여파에 대한 질문이 앞선 질문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런 질문이야 말로 발전을 뒤따라온 거대한 위기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이므로.

은행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혹시라도 내 원금+이자를 잃지는 않을까, 예금이 모조리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금 있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Run, Run, Run! 은행으로 달려가는 바로 그 '뱅크런'이 터졌다.

마치 역사 책 읽는 듯이 흐름에 따라 도미노가 무너지듯 탄탄해 보이던 글로벌 기업들이 무너지는 사태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그래프와 함께 이해를 도왔다.

부동산이 터지고 베어와 리먼이 터지고, 그리고 이후에는 대형 보험회사인 AIG까지 줄줄이 터진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쟁을 빼고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속도로 '긴급 구제금융'.

이와 관련하여 '미국 우파 붕괴'까지 오바마 대통령 당선 전 이야기들도 속사포로 쏟아졌다.

미국을 기점으로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는 분명 전 세계를 뒤흔들 엄청나게 전무후무한 사건이지만

우리나라가 직접 겪고 타격을 정통으로 맞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체감상 피부로 와닿는 차이는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니.

알면 알수록 정치 드라마 보다 더 정치스럽고, 삼국지 보다 더 전쟁스러우며,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후반부에는 기념비적인 년도, 2014년을 추가로 비교하는데 그 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100주년이 되는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2014년에서 바라보는 질문과 의문들이 2008년에 갖는 것과 놀랍도록 유사점이 있고,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지 10년 후인 2018년에도 또 다시 이 질문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없으며, 사람은 행동과 습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듯 위기와 책임과 기회는 계속 되고 있다.

사람들이 '도람푸'라고 놀려대지만 2019년을 사는 트럼프의 빅픽처는 무엇일지 또 한번 그의 행보를 궁금해하며

수 많은 케이스 스터디에서 보고 배우듯이 금융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아카넷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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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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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무엇이든 가능하다>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이다.

다른 곳에서 추천을 받아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는데 담담하면서 강인한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번 신작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한 작은 마을 '앰개시'라는 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이자 연작소설인데

서로 무관한듯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힘이 참 좋았다.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크든 작든, 아이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무게가 있고 비밀이 있고 세상이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계시

토미 거프틸은 한때 낙농장을 소유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낙농장은 일리노이주 앰개시 타운에서 2마일쯤 떨어져 있었다. 그 일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토미는 낙농장이 홀랑 불타버린 그날 밤 느꼈던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했다. 집도 깡그리 불탔다. 바람이 헛간에서 멀지 않은 그의 집으로 불똥을 날려보냈다.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 그는 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따. 그날 밤 그가 착유기 전원이 꺼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화재가 시작된 곳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불길은 일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번져 그곳 전체를 집어 삼켰다.

여러가지를 느꼈으나, 하느님의 현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을 명백하게 느낀 것은 집의 지붕이 폭삭 주저앉아 바로 아래쪽, 아이들 사진과 그의 부모 사진이 있는 침실과 거실로 무너져내릴 때, 그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볼 때였다. 그 순간 그는 천사들이 왜 늘 날개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의, 심지어 소리도 아닌 것의 감각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따. 이어 하느님이, 얼굴은 없으나 하느님인 그분이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무언으로 -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아주 순식간에 - 괜찮다, 토미, 라고 그가 알아들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곧 토미는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미는 선글라스를 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그 아이 - 그 어른 - 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유감이구나." 그가 말했다. "자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줄은 몰랐어."

"저희 아버지는......" 그 순간 피터의 눈에 누가 봐도 눈물로 보이는 것이 글썽거렸다. "저희 아버지는 품위 있는 분이셨어요, 토미."

"저희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한 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피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토미 쪽으로 얼굴을 조금 돌리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날 밤 그 안으로 들어가 착유기를 작동시킨 거예요. 그리고 그곳이 모조리 불타버린 거고요. 나는 그 일을 결코, 결코 잊은 적이 없어요, 토미. 그러니까,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내가 알고 있다, 그런 말이에요. 그리고 아저씨도 그 사실을 안다는 것 역시 알고 있고요."

토미가 차에 기댄 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저씨도 그걸 알고 계셨던 거고요." 피트가 마침내 말했다. "그래서 여기 오시는 거잖아요, 저를 괴롭히려고."

'그 일'이 일어나고 토미의 삶이 변했다.

낙농장과 집이 싸그리 불타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수위 일을 하게 되고, '루시'와 아이들을 만나고, 그리고 또 피트를 만난다.

화재는 자신의 실수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토미가 '그냥'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죄를 대신 고백하면서.

가끔 내가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거야~ 하는 마음에 머릿 속에서 재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왜냐면 토미는 진짜 몰랐거든.

과연 누가 불을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화재는 토미뿐만 아니라 피트의 아버지와 피트, 그리고 그 가족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토미는 그 말에 '그 일은 그냥 흘러보내라'고, '자네는 이미 충분히 충분히 많은 것들과 싸워왔다'고 그렇게 묻어둔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지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진실은 더더욱 뒤통수 맞는 충격이다.

하지만 어른인 토미 아저씨는 그렇게 그렇게 그냥 흘려보낸다.

피트의 고백이 내가 느끼기에는,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지금 아저씨에게 드디어 고백하는 거고, 아마 아저씨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어림짐작하면서 각자 처음 꺼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피트의 불편한 진실과 토미의 계시라는 고백을 처음 서로에게 말하면서 마음이 좀 더 편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더 껄끄러워지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가 밀려오고 그동안 지탱해온 믿음까지 흔들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걸 믿으세요?" 피트가 물었다.

"믿는 게 아니야." 토미가 말했다. "아는 거지."

"그 이야기를 아주머니한테도 하지 않으신 거예요?"

...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게 되는 일도 있는 것 같아."

"뭐랄까, 내 생각엔 뭘 할지와 뭘 하지 않을지 사이에는 늘 그런 투쟁이 있는 것 같아." 토미가 재치 있게 말해보려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것에 투쟁이 있는 거지. 혹은 다툼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언제나 존재하지. 내가 보기엔 그래.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토미가 운전대에 한 손을 올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가 말했다.

"지금은 그게 틀림없이 내 상상에 불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토미가 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 없어. 내가 지어낸 거야." 그가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양손을 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토미. 왜 그 일이 일어났을 리 없다고 생각해? 왜 그 일이 그날 밤 당신이 생각한 대로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토미는 깨달았다. 그들이 함께 살아온 내내 그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한 그것이 사실은 그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음을. 그리고 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할 그것 -그의 의심 - 은 처음의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비밀임을. 그가 잡힌 손을 빼냈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별스럽지 않게 한마디 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가 말했다. "사랑해, 셸리."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리고 아마 잠시 더, 그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나도 사람은 만약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불편해하는 마음, 미안해하는 마음,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피트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대신 평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묻고 살아온 멋진 토미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그래서 더 와닿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토미 아저씨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선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의 아내에게 피트의 이야기와 함께 그 날 받은 계시를 처음으로 들려주는데, 그 때 받는 또 다른 깨달음은 새로운 믿음으로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노부부가 앉아서 말을 많이도 아니고 한 마디씩 천천히 나누는 이 장면이 정말 좋다.

서로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고 궂은 날, 즐거운 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사랑과 동료애로 가득 차 있있어서 좋다.

그리고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사람은 한 순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 (좋은 의미로) 변화가 좋아서 책을 읽으면 문장을 모았다.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어느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모순>, 양귀자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난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우리 집안이 조상 묘를 잘 쓴 모양이야. 어쨌거나 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인생>, 위화

"때때로 그저 짧은 만남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다."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제임스 도티

"그는 내게 자기연구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은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그냥 평범한 선물이 아니었고, 내게 일종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듯 하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존 가드너: 선생으로서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

바로 여기 <무엇이든 가능하다>에서도 단편 단편마다 그런 순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한 문장을 집을 수가 없고 통으로 좋아서 계속 읽게 되고 밑줄 긋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능해지고, 무엇이든 괜찮아지고,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기분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엄청 친하진 않지만 오며가며 얼굴을 알고 있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에 대해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바로 내 옆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이 <무엇이든 가능하다> 책으로

무엇이든 가지를 뻗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글은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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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천년의 질문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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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님의 신작 <천년의 질문 1~3>을 일요일 하루 만에 통으로 읽었다.

인물간의 대화가 실감나고 호흡도 짧아서 한번 잡으면 200쪽 씩은 거뜬히 넘어갔다.

흡사 삼국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사 전략들과 정치 미드에서 보던 심리 싸움,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와 조폭 영화에 빠질 수 없는 치고박는 장면도 나오는 바람에 이게 소설인지, 영화인지, 고전인지 장르를 넘나든다.

<천년의 질문 1>이 기자 '장우진' 과 대학교 시간 강사 '고석민' 그리고 얽힌 성화그룹 비자금 사건이라면,

<천년의 질문 2>에서는 성화그룹 후계자 안서림 사장과 그의 허수아비 남편 김태범의 진흙탕 싸움 & 최민혜 민중 변호사와 황원준 검사 이야기가,

<천년의 질문 3>에는 이 모든게 어우러져 마무리 짓는 동시에 새로 시작된다.

이 밖에도 <천년의 질문> 속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얽혀 있어서 읽는 내내 이 사람, 저 사람 바꿔가며

"내가 장우진이라면 어떻게 할까?", "김태범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황원준 검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시사포인트> 장우진 기자입니다. 가엾은 김미주 양의 구형 공판이 일단 마무리되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그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삶의 음지에 따뜻한 마음 쪼여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검사님에 대한 마음 쏠림을 그냥 끝내기가 아까워 한번 뵙기를 청합니다. 이건 제 뜻만이 아니라 최민혜 변호사와도 마음이 합해진 것입니다. 셋이서 스스럼없이 오붓한 술자리를 가졌으면 합니다.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기자라 삽겹살에 소주밖에 못 삽니다. 술이나 안주보다는 대화가 맛있어야 하고, 대화가 맛있으면, 술도 맛있어지고, 술이 맛있으면 그 술자리 인연은 소중하고 알뜰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날짜 정도를 정해 주시면 저희가 맞추겠습니다. 문자가 너무 길었습니다. 문자 보내는 기쁨이 큰 탓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문자는 '황원준' 검사와 '최민혜' 변호사, 그리고 '장우진' 기자와의 중요한 매개체다.

세 사람의 인연이 공판으로 끝나지 않게 이어가는 소중한 불씨다.

검사는 이 문자를 읽고, 또 읽으며 마음을 사로 잡는 문장들과 문학의 아름다움, 그리고 장우진의 겸손하면서도 강단 있는 글에 매료된다.

이 시대에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만 있는 게 아니라

정의감을 놓지 않은 대한민국의 히어로 (초)능력자들을 지켜내겠다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면서 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 그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읽은 것이었다. 그때는 그저 '옳은 말씀이긴 한데......' 하는 정도로 넘겼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느낀 심정은 혼자의 힘으로 어엿한 무역 회사를 일구어낸 친구 서원섭에 대한 부러움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때는 대기업의 사위로 떵떵거리면서, 구멍가게 같은 무역 회사를 꾸려가느라고 낑낑대는 서원섭을 얼마나 하품 나오게 생각했었던가. 상대생으로서 서원섭이 모범적 성공 인생이라면, 자신은 견본적 실패 인생이었다.

'내가 이 상태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뭐지......?'

김태범은 자신의 의식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열패감과 자괴감만이 무성한 잡풀처럼 뒤엉켜 있을 뿐이었다.

권력과 돈에 취해 정신 못차리던 성화그룹 사위이자 서민 출신의 '김태범'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고되들이다.

이 부분을 읽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앞만 보고 달려왔을 땐 몰랐을 터이지만 이젠 악착같이 손 안에 쥐던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텅빈 김태범의 의식 속에서 이제 화살이 '나'에 대한 물음으로 바뀐다.

비단 개돼지같은 사람은 우뇌한 국민들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에 '나'는 어떤 사람이고 존재인지 묻지 않는 생각이 멈춘 사람도 그렇다.

성화 그룹을 떠나 멋지지만 더럽게 재기하는 김태범의 모습과 딸, 아들 두 아이를 위해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을 따내려고 치열하게 소송하는 아빠의 전쟁은 완전한 악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랬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자기 아이들은 끔찍히 생각하면서 남의 집 귀한 딸,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돈으로 입막음하려 하다니.

너무나 비겁하고 못 됐다.

이 세상에는 두 얼굴의 사람들이 참 많다. 아니, 열 개, 백 개의 얼굴 쯤 되려나.

 

 

 

 

 

"그런 안목을 갖추는 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나 요령이 있는 것입니까?"

"네, 많은 분들이 그런 의문과 궁금증을 피력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감식안을 갖추는 데는 무슨 유별난 방법이나 요령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분야의 일이 그렇듯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남다른 관심과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싶은 관심과 하고 싶은 의욕이 생동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 눈을 크게 뜬 상태에서 이론을 공부하는 동시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을 보고, 보고, 또 보는 것입니다. 그 반복 과정을 통해서 '많이 보고, 오래 보고, 깊이 보기'를 하게 되면 마음의 눈은 점점 크게 뜨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보아온 박물관이 아닌 어느 길목의 골동품 가게나, 어느 사찰의 허술한 박물관에서 새 물건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눈이 번쩍 띄면서 그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것인지 번개 치듯 판별이 됩니다. 그걸 소위 개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걸 흔히 영감이라고도 하는데, 그건 단순히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고 말하는 영감이 아니고 '그동안 계속 축적되어온 사고가 일으킨 순간적 발화'로서의 영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부터는 어떤 것을 보나 시대 측정, 나라 구분 같은 것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이 부분은 그냥 내가 좋아서 밑줄 그은 문장들.

인지부조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의 말 처럼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라는 영화평론책이 있는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좋은 문장들을 차곡 차곡 수집하고 있다.

이게 왜 좋으냐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사이트와 혜안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러기 위해선 정도의 방법으로 보고, 보고, 또 보는 것 뿐이고 많이 보고, 오래 보고, 깊이 봐서 알게 되는 수밖에.

 

 

 

 

"여기 세 권의 책을 골라 보냅니다. 이 세 분은 우리나라 3대 수필가로 받들어도 크게 그릇됨이 없을 것입니다.

... 어느 연로한 소설가가 평생의 화두로 삼아 책상 앞에 써 붙인, 지극히 평범한 듯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일게 하는 경구를 받아다가 저의 책상 앞에도 붙여놓았습니다. 그 꾸밈새를 그대로 흉내내 여기 적어 보냅니다.

문학, 길 없는 길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열릴 길

'길 없는 길'이란 불교의 <화엄경>이 품고 있는 말이고, '문학'을 '인생'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원래는 불가의 '도'를 이름입니다.

너무 외로워하거나 너무 고달파하지 마십시오. 바라보는 곳이 같으면 마음은 늘 함께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를.

이것도 장우진의 손글씨 편지에 투영된 조정래 작가님의 말씀이다.

2015년 <정글만리> 출간 인터뷰 당시 이런 글이 남아 있다.

("문학, 길 없는 길"이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지금 이런 나이에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치열성을 갖지 않으면 작가 못해요. 예술가 못한다고요. 아무나 예술 합니까?

<천년의 질문> 책에도 그 치열성과 역사적 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인생, 길 없는 길'에서 묻고 또 묻는다.

 

 

 

 

"근데, 안데르손 그 사람 말이야, 정치인이 아니라 어찌 꼭 철학자처럼 말하고 그러냐?"

... "거 있잖아, 특히 감동적이었던 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이것 참 기막히잖아?"

"예, 깊이 있고 멋진 말이에요. 근데 그 정도는 이쪽 정치인들이 갖춘 보편적인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보편적 수준?"

"예, 이쪽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독서를 일상화하고, 중·고등학교에서 토론 수업과 리포트 쓰기가 기본이고, 대학에서는 학년마다 에세이 쓰기를 인정받지 못하면 졸업이 안 되잖아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철학적 깊이와 논리적 사고 능력이 강할 수밖에요."

<천년의 질문 3>에서 장우진은 스웨덴 국회에 가서 '에릭 안데르손'이라는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민의 힘은 결국 개인의 철학적 깊이와 인문적 사고, 그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진정성과 연대감이 중요함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스웨덴이나 스위스처럼 시민의 힘이 강하고, 정치가 깨끗하고, 국력이 강한 나라는 일상에서도 가진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예전에 주 4일이었나, 수업 시간을 아주 조금 늘리는 바람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울면서 다같이 떼를 지어 시위를 하는 뉴스 기사와 사진이 떠올랐다.

우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놀토'(노는 토요일)이니 뭐니 주 5일하면 세상 망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요즘 애들은 아마 '전화해~' 라고 말하며 엄지와 약지로 전화기 모양을 만드는 것과,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 이런 이모티콘의 생소함과 더해

주 6일의 일하는 토요일을 자료에서만 접할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와 스웨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일상의 여유가 느껴져서 참 멋있었다.

치고 박고 싸우면서 한 몫 크게 해 먹는 배 뚱뚱한 국회의원이 아닌 진짜 일하는 정치판을 둔 국민의 클래스였다.

 

 

 

 

 

"'모든 권련은 횡포하고, 타락한다. 그러므로 줄기찬 감기 감동이 필수다. 그 역할을 대신 맡는 게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의 필요성과 역할을 밝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국민은 제각기 자기들 생업에 정신없이 바쁘고 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권력 집단들에게 신경을 쓴다 해도 놓치게 되고,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명해 낸 것이 바로 시민단체 활동입니다. 1차적으로 시민단체 회원으로서 후원금을 내서 활동가들이 상시로 감시 감독과 함께 저항 고발케 하고, 더 거대한 힘이 필요할 때는 2차로 회원 전체가 앞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작년의 촛불혁명 때처럼.

그럼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새로 태어날 시민단체 '너나" 사모'의 회원으로 모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너나"사모'의 캐치프레이즈가 '1,000만 명이, 1,000원씩, 100개의 시민단체'라고 했습니다. 그와 나란히 걸리는 또 하나의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시민단체, '너나" 사모'의 대화의 시간이라는 외침 연설 중 나오는 발언이다.

이는 '너와 나 나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원래 '너나나사모'가 되기 때문에 '나나'가 두 번 나와 문장부호 쉼표 두 개인 " 를 응용하여 만든 이름이다.

'너나" 사모'의 캐치프레이즈는 흡사 독립운동, 그리고 일제강점이 운동을 연상케 한다.

과거 민립대학 설립운동에서도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 이라는 구호가 있지 않았는가.

역사를 떠올리며 현 시대를 연결하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실감나는 웃음을 'ㅋㅋㅋ'과 'ㅎㅎㅎ'등을 그대로 표기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옛날 인터넷 소설과 귀여니가 유행하던 시대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다.ㅋㅋㅋ

아마 어떤 텍스트도 'ㅋㅋㅋㅋ'와 'ㅎㅎㅎㅎ'를 대체하기 어려운 미묘한 뉘앙스를 실감나는 자음 웃음 그대로 살린 걸꺼다.

또 주요 인물인 냉철한 사회학자 '고석민'과 기자 '장우진'의 눈과 입을 빌리면서 OECD 순위나 지니 계수 등 실제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부분은 우리를 또 한번 개안시킨다.

그 자료가 다 어디서 나왔는고하니 책 사이의 멋진 홍보지에 "장편 소설 <천년의 질문> 탈고 후 3,612매의 원고, 130여 권의 취재수첩과 함께한 작가."라고 적혀 있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작업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수 많은 노고를 통해 역시 작품과 삶의 치열한 단컷을 엿볼 수 있었다.

과연 그래서 장우진과 고석민과 안서림, 김태범 등 눈 뜨이고, 눈 먼 사람들은 어찌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지.

질문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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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질문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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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에게 대한민국이란 무엇입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작가정신의 승리' 조정래 작가님의 신간이.

당신에게,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이냐는 화두를 던지면서 현 시대를 바라보는 치열함과 냉철함을 담은

<천년의 질문>을 너무 늦지 않게 읽었다.

<천년의 질문 1>에는 '장우진'과 '고석민'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비메이저 '시사포인트' 신문사 직원이자, 독립운동가이 마음가짐으로 정의와 맞서는 심층추적팀 '장우진' 기자와

글 잘 쓰고 엘리트이나 인맥과 운빨이 부족해서 대학교 보따리 시간 강사로 일하는 '고석민'.

이들과 얽힌 대기업 '성화'그룹의 비자금 사건과 맞물려 정의와 부정, 진실과 거짓, 정치와 권력 등 쫓고 쫓기는 인간사가 등장한다.

 

 

 

 

작가의 말

응답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있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되풀이되어온 질문.

그 탐험의 길을 나서야 하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_2019년 6월 조정래

 

 

 

 

"도시는 밤에 깃들기 쉽지 않았다. 해가 지면서 안갯빛 어스름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시는 그 어둠살을 밀어내는 몸짓을 짓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

또 어떤 유명한 사람의 말이 루소 말의 대구처럼 떠올랐다.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이고 구호일 뿐이다.'

... 그러나 장우진은 그 두 가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자기의 또 다른 생각을 곁들였다.

'그런 기망과 배신 행위가 오로지 정치인들만의 잘못일까. 유권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유권자들은 투표를 끝낸 다음에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었을까. 얼마나 정치인들을 주시하며 감시, 감독을 했을까. 투표를 한 다음에는 할 일 다한 것처럼 정치에 아무 관심도 두지 않고, 대통령을 왕과 동일시하는 그 순진함과 단순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을 저질러대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마음 놓고 국민들을 수없이 기망하고 배신해 왔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의 응답처럼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플라톤의 말이었다."

"장우진의 혀 차는 소리가 길었다.

"아이고, 이 한심한 나라. 이걸 어째야 되는 거지요?"

"이 지경이 된 책임이 누구한테 있을까? 백만 공무원들한테? 천만에! 바로 국민한테 전적인 책임이 있어."

"국민이요?"

사회학자가 놀라서 눈이 커졌다.

"제길, 사회학자가 이리 놀라시니 개돼지인 국민들이야 깨닫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아까 말한 것 있잖아. 국민 대중의 집단 망각증, 그리고 집단 무관심. 국민들이 이 두 가지 중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두 눈 부릅뜨고 각 분야 공무원들과 여러 권력 집단들을 감시, 감독하지 않고서는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안 고쳐져."

"이유영은 여동생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니, 형부는 바보 아냐? 나이 헛먹은 돈키호테 아니냐구. 형부가 그렇게 혼자 날뛴다고 이 세상이 끄덕이나 할 줄 알아? 형부 뜻대로 변할 줄 아느냐구. 천만에, 다 웃기는 짓이라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왜 몰라. 아니, 계란으로 치면 제 몸은 안 상하지. 형부가 잘난 척하며 하는 짓은 맨땅에 박치기 하는 바보 천치 멍칭이 짓이라구. 제 머리만 깨져. 피 철철 흘리는 멍텅구리 짓거리. 형부가 그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줄 줄 알아? 아무도 안 알아주고 사는 꼴만 이렇게 찌질하게 궁상이잖아. 언니도 물러터지게 굴지 말고 이번 기회에 정신 확 나게 잡아채라구."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장우진' 기자의 이 발언들은 <천년의 질문> 기지 속에 끊임없이 흐르는 질문들이다.

누가 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적폐청산 독재정권과, 28만원 밖에 없다는 뻔뻔한 대통령, 모 대기업 출신의 이름 남기기에 혈안이 된 대통령, 또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일까?

그렇다고 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겠으나

그렇게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담담하게 '장우진'과 '고석민'의 입을 빌려 국민들의 힘을 논한다.

저것과 비슷한 발언이 책에 진짜 많이 나온다.

잘 세어보면 한 4~5번 나오는 것 같다.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정당지지나 무관심한 시민의식, 투표 후 깡그리 없어지는 마법의 뇌를 가지고는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이 세상이 안고쳐진단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또 많이 나오는 구절은 바로 저거다.

그렇게 고고하게, 정의롭게 살면 뭐하냐고. 세상 변하냐고. 그냥 한 몫 챙겨서 편하게 살지 까불지 말라고.

돈 키호테를 운운하며 현실감 없는 사람 만들면서 윽박지른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돈 백 만원, 천 만원이 아니라 무려 억 단이다. 그것도 최소 대략 20억 원.

한 사람이 1년에 천 만원씩 저금한다고 해도 1억을 모으려면 10년이다, 10년.

'장우진'이 성화그룹 비자금 캐기를 그만두는 대가로 한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골든 티켓이 눈 앞에 있는데.

게다가 나 빼고 다른 기자들은 이미 불이나케 손 땐 사건인데?

만약 불도저처럼 계속 밀어붙인다면 나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어디론가 끌려가 협박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는데?

이건 그렇게 쉬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립투사의 의지로, 독립운동의 열정으로 사회 정의구현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게 과장이 아니다.

과연 이 질문에 몇 명이나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 않은 역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쓰고, 기록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누구나 하찮고 가소롭게 여겼다. 그런데 참여연대라는 이상스러운 단체는 어느새 지렁이에서 용으로 변해 있었다. 낙천 낙선 운동으로 국회가 업어치기 당하고 나서 국회의원들은 화들짝 놀라 참여연대를 큰 눈 뜨고 살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젊은 변호사들과 여러 분야의 젊은 교수들 수십 명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작가며 화가 같은 예술인과 서로 다른 종교인들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진보' 색채를 띤 인물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문 지식을 무보수로 바치는 이른바 '재능 기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앞에 선 조직이라면 뒤에 또 다른 조직이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시민단체'라는 간판에 걸맞게 수천 명의 시민들이 또 다달이 후원금을 내면서 뒤를 바치고 있었다. 그 두 가지 힘이 모아져 '활동가'라 부르는 행동대들이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발적 조직의 집결체가 국가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

"똑똑히 보게. 저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표야. 점점 정치하기 어려운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라구. 자네가 앞으로 정치를 하려거든 저 참여연대에 찍히지 않게만 하면 잘하는 거야. 명심해."

박 의원님의 진지한 충고였다."

초반부에 수동적인 개돼지 국민들을 묘사했다면 후반부부터는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국민들 앞에 행동가가 있고, 행동가 앞에 시민단체가 있고, 시민단체 앞에 참여연대가 서로 유기적인 공동체로 상생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봄을 찾아 행진한다.

결코 소설 속에만 나오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참여하고 까다롭고 괴롭히고 질문할수록 정치는 진보한다는 진보의 미래도 만날 수 있었다.

 

 

 

 

 

"예, 그래서 아까 해결책이 있지만 난감한 문제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노력하면 그 길이 열릴 수 있어요. 단결해서 저항하는 국민이 되는 것,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이 되는 것, 국가 권력을 직접 통제하는 국민이 되는 것, 이것이 뚜렷한 해결책이고, 우리 사회에 주어진 미래의 숙제겠지요."

"그런 게 성취할 날이 오리라 믿으세요?"

"믿고 싶고, 어느 만큼 믿고 있어요."

"믿음의 근거가 있으세요?"

"예, 그 믿음의 구체적 근거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잖아요."

"어머, 저요?"

최 변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예, 민변의 역사 30년이 바로 우리 사회의 변화, 국민 의식의 발전과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거물이에요. 50여 명으로 시작해 회원이 1,100명이 넘도록 폭증했다니, 이런 엄청난 기적은 없어요. ...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의 변화보다 앞으로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할 거예요. 난 그 바탕을 믿어요."

"여전히 장우진을 응시한 채 판사의 침묵이 길어지더니 이윽고, "왜 그렇게 힘들게 삽니까?" 그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으면서 눈동자도 미세한 흔들림이 이는 것 같았다.

"예, 한 사람만이라도, 저 한 사람만이라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쓰고, 똑바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장우진'기자의 입을 통해서 민중의 나아갈 길을 똑바로, 똑똑히 보여준다.

이건 정말 철학적이고 교훈적인 장편소설이다.

<천년의 질문 1> 에는 성화 비자금 사건에 당사자인 사위 '김태범'과 이를 밝히려는 기자 '장우진'이 교차로 나온다.

과연 대의를 위해서인지 속고 속이는 이 판 속에서

국회의원과 대필 작가 '고석민'의 고민도 숨어 있고, '장우진'의 아내이자 초등학교 교사 '이유영'의 말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슬픔도 있다.

현재와 미래를 더 잘 살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대한민국을 끊임 없이 붙잡고 흔들고 귀찮게 해야만 한다.

과연 진실을 밝혀지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 이야기는 계속 된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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