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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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작가의 활동 시대가 시대인 만큼 좀 고루한 배경과 통속적인 인물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전형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모습들이 눈에 띤다.

주인공인 루시 게이하트의 눈부신 재능과 주변까지 밝혀주는 환한 기운은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그 시절의 주인공다운 이기적인 모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에 못지 않은 관습에 얽매인 자존감 높은 남자 해리와 함께 이 둘이 함께이건 아니건 자존감 덩어리인 커플이구나 싶다.

그래서인지, 동생을 응원하고 뒷바라지하는 언니 폴린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재능은 모자랄지언정, 실질적으로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에 대한 생각.
어서 둥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큰 동생을 바라보는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생각.
응접실 고양이와 부엌 고양이의 입장 차이.

해리가 청혼이랍시고 루시의 귀여운 모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 때 그야말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비극을 마주하고 혼란스럽던 루시를 거절당했다는 분한 옹졸한 마음으로 외면하는 해리..
그리고 이어지는 더 커다란 비극.
해리의 회한으로 서술되는 뒷부분은 그다지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이란.... 정말이지.. 이런 류의 스토리를 좋아했던 것 같단 말이지.....


-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 36

- "자 루시......" 해리의 목소리에 깃든 애정과 위엄에 루시는 이어질 말이 두려워졌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 됐지? 우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야. 네 귀여운 모험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넌 세상을 전부 보고 싶겠지. 나와 함께라면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거야. 시간 낭비할 이유 없잖아?" - 117



2024. may.

#루시게이하트 #윌라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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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 김미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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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작가에게 찾아온 학대당하던 떠돌이 개 예스. 

존중받지 못한 생명, 자연에 대한 사색들이 가득하다.

여성주의 생태학에 대해서 생각할 계기가 되어준다.

한 평생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동지, 파트너의 존재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는 글.

그들은 마치 추방된 무리, 미친 사람들, 현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존재들 같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 자기 방에서 내려온 그리그는 회색 머리칼에 닷새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고 목에는 붉은 반다나를 두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다. 그는 항상 무덤덤한 사람, 매사에 무관심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실패와 아울러 노쇠한 몸을 이미 받아들여 이제는 실제 세상보다 책들의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담배와 소설과 밤의 냄새를 풍기며 늘 그렇듯이 방해받아 언짢다는 듯 투덜거리며 다가왔을 때, 개는 내 발 아래에 몸을 피했다가 이제는 드러누워 젖꼭지들이 점점이 박힌 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지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개는 '예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 14

- 세상을 뜻하는 단어는 숲이다. (The word for world is forest.)
여성을 뜻하는 단어는 황무지다. (The word for woman is wilderness.)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정원이 필요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부아바니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 24

- 세계가 느닷없이 우리 앞에 비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무의식이 활짝 열린 하늘로 터져 나온 것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최악의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은 일어났다. 우리는 돌연 인간 및 동식물의 사체 더미를 상시적으로 마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이런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전 지구적 공포의 시대. 누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있겠는가?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말기를. - 44

- 나는 이 세상의 인간을 찬성한다. 다시 한번 모순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가당착에 빠진다. 모순은 세상의 법칙이며, 그로부터 그 두 단어를 탐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간에 찬성한다. 인간을 다루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지구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니까. 긍정적인 영웅이라니 그건 안 될 소리다. 절대, 절대 등장시켜선 안된다. 그런 건 사람들이 읽다가 집어치울 것이다. 멋진 악당이 낫다. 그가 처형당할까? 궁지에서 빠져나올까? 출구를 찾을까?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무엇보다도, 특히 결말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결말을 아는 인간은 없다. 그를, 인간을 의지하지 말 것.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못된다. 인간을 경계하라. 이것들은 전부 내가 종종 생각하는 주제다. - 182

- 타고난 성품이 강인한 소녀들은 맹렬히 물어뜯긴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가장 뛰어난 이들조차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기억한다. 플랑튀, 사랑스러운 플랑튀, 천재 플랑튀가 그리그와 내가 무너져가는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을 아직 시청하던 시절 밤 인사를 하면서 그레타 툰베리를 히스테리 환자로 취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비열한 우리 지도자들에 맞서 분노를 표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가 웃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항의한다.
나는 다음의 글을 금언처럼 기록해 두었다. 글쓰기는 저항으로부터 탄생하며, 일종의 참여 또는 항의가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한 바였다.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혹은 투쟁하는 날이 있고, 쓰러지는 날도 있다는 것. 작가는 어떻게 투쟁하는가? 그리고, 구별 지어지는 '여성' 작가는 어떻게 투쟁하는가? 그녀들의 무기는 '남성' 작가들의 무기와 다른가? 나는 그들의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가? - 229

- 그리그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려고 들었다. 동시에 내가 그 짓을 완전히 포기하기를 바랐다. 그는 우월한 태도로 말했다. 여보, 그곳에 가서 그 혼란 속에서 한몫하려는 건 그만둬.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애쓰지마.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있을 거야. 더러운 역사로. - 295


2024. apr.

#내식탁위의개 #클로디윈징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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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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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던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면.

4권 말미에 등장하는 환이의 독백, '허무'에 수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저 살아남는 일, 꾸역꾸역....

- 그들도 다른 노비들과 마찬가지로 나라 형편이나 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우국하기에는 그들의 일상이 국사와 너무 멀기도 했었다. 다만 눈에 비친 조준구가 친일파였기 때문에 일본이 망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 53

- 지금 동방의 작은 등불 같은 조선의 백성들은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새벽잠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무거운 오수에서 눈을 뜬 혼미한 얼굴이며 한밤중 뇌성벽력에 잠이 깬 경악의 얼굴이며 주야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지도 못하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개명의 물결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 여러 해 동안을. - 59

2024. may.

#토지 #1부4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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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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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김평산의 집안.
그에 수치심을 느낀 음전한 함안댁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참으로 매정하달까.

목맨 나무부터 새끼줄 하나까지 몽당 몽당 부적으로 나누어 가지는 메마른 민심.

시절이 하수상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씁쓸한 마음이 드는 장면이고, 인상에 깊이 남는 장면이다.
그렇게 몰락한 집안의 심성이 곧은 아들 한복이의 미래도 몹시 기대되는 점이고.

'사람 병신쯤이야 가문 병신보다는 나을 테니'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가문의 명예와 지위가 아직은 중요한 사회라는 인식이 일제강점기 하에서 점차 어떻게 바뀌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다.

거의 십 년 전쯤 읽다 만 토지를 나이를 먹고 다시 도전해 읽으면서, 그때도 느낀 점이긴 한데, 보이는 점 느끼는 점이 나이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지는구나 하는 것은 재독으로 느끼는 재밌는 지점이다. 

그리고 억척스럽고 질투만 가득한 여인으로 그려지던 강청댁의 시집오던 날의 스케치는.... 사람 사는 일에 대한 덧없음이 느껴지는 쓸쓸한 장면으로 남았다.

- 쓴웃음을 띠고 윤씨 부인은 햇빛이 튀고 있는 강변을 바라본다. 머지않은 날 최 참판댁의 그 기나긴 역사는 끝이 날 것이요 양반계급이 무너질 것을 예감하는 것이다. 기골이 좋았던 시할머님, 시할머님은 생산을 많이 했으나 자식들을 다 기르진 못했다고 했다. 참판부인이던 증조할머니, 참판의 모친이던 고조할머니. 그러니까 타성의 여인들 오 대가 최참판댁을 이룩하였고 지켜왔으며 마지막 최씨의 피를 받은 서희로써 끝이 난다. 다른 핏줄의 여인들이 지켜 내려온 가문은 제 핏줄의 여인으로 하여금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야릇한 운명 같기도 했다. - 124

- 일반 서민들 역시 권위는 두려운 것이며 피하는 것이 상수라 생각한다.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그만큼 수탈만 당해온 역사였으니까. - 381
2024. apr.

#토지 #박경리 #1부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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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라즈 에그 타르트 SHURAZ CAKE RECIPE BOOK 2
박지현 지음 / 더테이블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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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용 대용량 레시피와 홈베이킹용 소량 레시피를 같이 제시해주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에그 타르트는 꽤 자주 땡기는 디저트라 맛집의 레시피가 궁금해 사보았다.

해볼 만한 레시피가 잔뜩이라 신난다.

2024. apr.

#슈라즈에그타르트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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