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부록 한정으로 증정한다니께,

귀가 팔랑거리잖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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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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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타인과 연결된 관계의 어려움이나 앞날의 걱정이 주는 공포, 내가 겪는 가족과의 갈등, 세상일의 많은 것이 누구에게나 어려웠을 거다. 그 모든 일 역시 내려놓음으로 달라질 것을 안다. 그 '내려놓음'의 다양한 의미와 형태도 잘 알겠는데, 한 번도 쉽지 않았다. 말로는 가능한데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건 스님의 말씀처럼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것만큼 채워지지 않아서 더 무거워진다는 결론을 얻게 하는 책이다. 정말 가능할까? 매번 의심의 눈초리로 이런 글을 대하면서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3주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 한번 가면 5~6시간을 검사와 진료로, 치료받고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갈 때마다 지친다.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부모한테 그걸 못하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 그 부모와 어떤 관계이냐 하는 게 문제다. 우리집의 가장은 엄마였고, 부모도 엄마였다. 우리 형제들은 한 번도 가장이고 부모였던 적이 없던, 존재 이유를 몰랐던 아버지에게 분노하며 자랐다. 이제 와 몸이 병들어 힘들어지니 가족들에게 뒤처리를 던져놓고 아버지 대우받으려 한다. 항상 화가 났다. 특히 남겨진 가족인 엄마와 나는, 오래된 집의 한겨울 웃풍에도 방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할 정도의 열을 품고 산다. 그런 화를 끌어안고 매번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건 나다. 갈 때마다 생각한다. 왜 내가 해야 하지? 죽을 것처럼 하기 싫은데, 미칠 것 같은데... 웃긴 건,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이 상황의 답이 없다는 거다. 아무리 화가 나고 욕이 나와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계속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화를 끌어안고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병원 대기실에서도 누가 보면 일행인지 모를 정도로 떨어져 앉는다. 유독 대기 시간이 길었던 어제, 멀찍이 떨어져 앉은 아버지를 보니 꾸벅꾸벅 졸고 계시더라.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시한부로 죽어가는 몸,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하고, 부실한 치아로 죽을 넘기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이 싸해졌다. 싸움도 복수도 되지 않을 상대를 앞에 놓고 지금 내가 무얼 하는 건가 싶었다. 순간, 미움과 분노로 가득 채운 지금 내 마음이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한번 웃어보지도 못하고 좋은 시간 흘려보내고 있다는 두려움까지. 변하지 않을 아버지의 모습과 이 상황에 나의 불행과 화가 겹쳐 보였다. 이대로라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순간도 행복해지지 않겠지. 내 안의 화가 사라질 날이 없겠지.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이 화가 수그러들지 장담할 수 없을 듯하다. 그때는 또 그때의 분노와 후회가 나를 갉아먹을 것만 같다. 결국, 행복을 위해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바꿀 일만 남았다는 건가?

 

결국 모든 상처는 그 기억을 붙들고 있는 나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누가 상처를 줘서가 아니에요. 상처받을 일이 아닌데 상처받고, 그 상처를 내면에 품고 있다가 때때로 꺼내보면서 괴로워하기 때문입니다. (85페이지)

 

그때 자꾸만 생각나는 말. 작년에 만났던 신경과 선생님도 그랬고, 지난달에 만난 친구도 그랬다. 조금만 내려놓으라고. '내려놓으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지만, 현실회피는 재발한다'며 이제는 스님까지 내려놓으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기에 반복해서 듣는 말이다. 그 내려놓음이 누구에게나 같은 모양으로 적용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일 테고. 어제 하루 내가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했던 생각을 떠올려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풀리지 않은 상태로 계속 기다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안쓰러워진다는 것을. 내가 내려놓은 것들로 내 위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쉽지 않을 것도 안다. 그동안 많이 겪어봤으니까. 다만, 그 과정의 어려움이 조금씩 옅어지기를 바라면서 믿고 싶은 거다. 불가능이 아닌 가능이라는 말로 나를 채우고 싶어져서다. 가까이서 악다구니 써가며 싸울 때는 안 보이던 것이, 지금처럼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이렇게라도 하나씩 배워가며 조금씩 내 안의 불행을 걷어내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걷어낸 불행의 자리에, 행복이 조금씩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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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 북커버와 문동세문 북커버를 준단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60308_munhak&start=pbanner#

 

아,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일정 금액 (일정 권수) 이상 구매해야 하고

마일리지 차감한다.

 

그래도 이천원에 이렇게 딱 맞는 사이즈 북커버를 득템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인데,

늘 그렇듯............. 살 책이 없다.

이미 다 샀거나,

남은 책은 내 취향이 아닌 것들 뿐...

 

그런데 북커버는 탐난다....

문학동네 시인선 3권을 사?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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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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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는데 읽다 보니 재밌다. 저자의 전작 『동사의 맛』은 크게 관심도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초반부를 읽다가 만 것을 보면, 이번 책이 내 눈에 들어올 만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쉽게 잘 읽힌다. 문장을 쓸 때 자주 실수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기본이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듯한 말투가 듣기 좋다.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들리지 않아서 좋다는 거다. 이런 책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저자가 하는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니어서 특별할 게 없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또다시 듣게 되는 이유는 그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 나를 알고 있어서다. 특히 예시로 든 문장들이 너무 흔한 문장들이어서 그런 걸까.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부터 계속 뜨끔거려 혼났다. 아, 이런 고질병.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건 익숙해서라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이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문장들이서, 그게 ‘이상’하다고 느낄 이유가 사라지는 거다. 이게 왜? 뭐가? 어디가 이상해? 이런 말이 부끄럽지만,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 무시할 때도 많았다. 나는 게으른 독자이기도 하지만, 게으른 리뷰어니까. ㅠㅠ 귀에 딱지가 앉게 듣는 말도 자주 까먹고, 몇 번을 들어도 ‘그런 말이 있었나?’ 싶게 집중해서 듣지 못할 때가 많고, 알아도 귀찮아서 손대지 않을 때도 있다. 저자는 문장을 손보는 여러 가지 이유와 방법을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우선 필요한 건 게으름을 탈피하는 거다. 두 번 세 번, 그것도 부족하다면 열 번이라도 보고 무엇이 이상한지 계속 살펴보는 반복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자가 하는 말에 온전한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22페이지)

 

이십 년 넘게 남의 문장을 다듬어온 저자다. 문장을 다듬는 일에 법칙이나 원칙이 분명하진 않지만, 문장 안에 반복해서 등장하고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은 주의해야 할 표현목록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목록이 바로 이 책이라고. 뭘 자꾸 더해서가 아니라, 내가 써놓은 문장에서 어색한 표현들을 발견하고, 그걸 빼거나 대체해서 깔끔한 문장을 만든다. ‘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33페이지)’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그 단어(문장)를 빼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뺄 건 빼고 간결하게 만든다. ‘-적’, ‘-의’, ‘것’, ‘들’과 같은 말만 빼도 문장이 훨씬 좋아진다고, 필요 없는 요소를 가능하면 덜어내는 게 좋은 문장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한다. (많이 들어봤쥬?) 아, 이렇게 다시 강조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본 중의 기본을 왜 자꾸 잊는 건지. 게다가 ‘있다’로 어색해지는 문장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눈을 가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외국어에서 온 표현이라도 필요하다면 쓸 수 있지만, 한국어 표현을 어색하게 만들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문장을 쓸 때 특히 더 주의해야 할 동사와 명사 등을 언급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명확하고 잘 전달하게 한다.

 

이 책은 이렇더라, 하는 것보다 직접 펼쳐보고 자기 경험에 맞춰 골라내어 활용해도 좋겠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들에서 어디 하나 틀린 게 없는 듯하나, 자기가 고수하는 방식과 다를 수 있으니 굳이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경험한 것에 비춰보면 나 같은 경우 저자의 지적이 반복되어 들려와도 괜찮다는 거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 알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다시 들으며 한 번 더 따끔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어색한 문장을 다듬는 방법 중간에 작가와 교정자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들이 주고받는 메일에서 보게 되는 것도 교정 교열에 관한 내용이어서 볼만하다. 빨간 펜으로 그어지고 삭제되는 자리에 채워지는 문장들과 그 기준점을 살짝 엿볼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인 문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어떤 책의 문장이 저자 혼자 만들어낸 것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전문가의 교정으로 문장이 어떻게 변해 내 앞에 놓여있는지 알게 되는 부분도 있다. 새삼 몰랐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한 번 읽고 끝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잊을 때마다 한 번씩 꺼내서 살펴보고 싶은 책이다. (‘나’라는 인간을 내가 아니까...) 앞에서 나의 게으름에 반복하는 실수를 언급한 것처럼, 몇 번씩 보고 또 보는 노력을 해야만 좋은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결론이 뻔히 보이므로, 그 방법밖에는 없으므로. 분명 내가 썼는데 이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도 모르겠고, 한국 사람이라 한국말을 쓰고 있는데 이게 어색한지 어떤지도 모르겠는 때 펼쳐보면 좋겠다. 물론, 한 번에 완벽하게 배우고 적용하면서 실수를 없앨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별수 있나. 반복해서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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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김밥을 못 싼다. 초등학교 소풍 때부터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 간 적이 없다. 지금에야 드는 의문인데, 분명 유치원 때도 소풍을 갔고, 엄마도 같이 따라갔는데, 그때는 어떤 도시락을 싸갔던 걸까?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 소풍 도시락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그런 기억에서 엄마가 김밥을 싸주지 않은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사실인데 어쩌랴. 가까이 사는 친구 엄마가 내 것 김밥까지 싸주시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소풍 도시락을 거의 안 가지고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가방도 안 들고 소풍을 다녔으니 뭐, 도시락이 문제였겠나. 그런데도 유독 초등학교 소풍 도시락이 생각나는 건, 누구나 다 싸서 왔던 그 '김밥'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데 있다. 그 나이의 소풍 도시락에 김밥이 없다는 건 큰 슬픔이었고, 창피함이었고, 엄마를 원망할 만한 일이었던 거다. 지금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싸는 김에 우리 딸 것도 하나 싸줘.'라고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고, 친구 엄마가 도시락을 싸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김밥을 못 싼다는 게 무슨 큰일인가 싶지만, 그땐 그랬다. 지금은, 가끔 밥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동네 분식점에서 김밥 두세 줄로 한 끼 때우는 엄마와 나를 떠올려보면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말이다. (여기서 살짝 투정을 더 부려보자면, 우리 엄마는 김밥도 못 싸지만, 떡볶이도 못 만들고, 카레도 못 한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ㅠㅠ) 나를 슬프게 했던 김밥이 이제는 그저 그런, 한 끼를 채우는 음식이 되어버렸다는 게 웃음 날 뿐.

 

 

 

 

 

 

 

 

 

<바나나 우유>저자 김주현의 기억 속, 세월 속 음식들도 그런 걸까. 어떤 간절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들이다. 좋아서 같이 먹고 싶었던, 따뜻해서 포근했던,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서 생각나는 맛. 오늘을 사는 모든 순간에, 그렇게 한 번씩 치고 올라오는 감정이 동시에 따라오는 음식이 있던 거다. 가족, 사랑, 일상, 여행. 삶을 채우는 어떤 테마를 떠올려도 따라오는 음식이 있다. 오늘의 절망을 목으로 넘기며 진한 한숨의 캬아~ 소리 내고 싶은 소주 한 잔, 너무 짧게 왔다 가는 벚꽃이 아쉬워 차로 마시는 봄날의 시간, 기어코 나오려고 하는 그 울음을 참아야만 했던 날 마시는 아포가토, 청춘의 사랑이 상큼하게 혀끝에 닿는 아이스티, 어려운 시절 최고의 음식이었던 탕수육과 비프가스, 늦은 밤 퇴근길 부모님이 품에 안고 왔을 뜨끈한 만두, 그리고 빨간 소시지 달걀말이. 아, 나도 잊을 수가 없다. 분홍 소시지...

 

나는 그걸 분홍 소시지라고 부르는데, 어렸을 적 항상 도시락 반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음식이다. 지금이야 몇 천원이면 큰 거 하나 사놓고 몇 날 며칠을 먹을 수 있는 양인데, 그땐 그거 한 조각이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무 날에도 생각나지만, 특히 명절날 더 생각이 난다. 핑계 삼아 큰 거 하나 사두려고.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전 부친다고 엄마가 장 볼 때, 나는 꼭 분홍 소시지 하나를 카트에 넣는다. 엄마는, 입안에서 달라붙고 밀가루 범벅이라 맛도 없는데 뭐하러 그걸 사냐고, 먹을 사람도 없다면서 잔소리를 한다. 그렇다고 안 살 나도 아닌지라, 내가 혼자 다 먹겠다며 기어코 하나 사서 명절 전 부칠 때 같이 부쳤다. 그러고 나서, 명절날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하는데, 제부가 분홍 소시지를 엄청 맛있게, 많이 먹는 거였다. 엄마가 놀라 제부에게 물었다. “아무개야, 그 소시지가 그렇게 맛있냐?”, “어머니, 저 이거 학교 다닐 때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고 싶었는데 못 했어요. 저희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엄마가 이걸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신 적이 거의 없어요. 너무 맛있네요. (쩝쩝~)” 와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분홍 소시지를 보고 나만 그런 기억이 있는 게 아니었던 거다. 내 눈은 찌릿~ 엄마를 한 번 향했고 엄마는 의외라는 듯 웃고 말았다. 그 후로 엄마는 명절이 되면 꼭 분홍 소시지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늙어서도 말 안 듣는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뭘 먹어도 예쁘기만 한 막내 사위를 위해서... 엄마의 예쁜 막내 사위가 좋아하는 분홍 소시지의 발견 내가 했거든?!

 

먹는 것에 관심 없어 하면서도 가끔 허기질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배고파...’ 하고 혼잣말을 할 때, 그럴 때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더라. 평소 먹던 양의 몇 배를 먹어도 배부름을 느낄 수가 없다. 늘 그렇듯,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런 때는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거다. 그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유명 맛집의 소문난 음식도 아니다. 그때 그 순간, 내가 기억하는, 나를 데워줄 음식이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 불러도 좋을 것들. 저자도 마찬가지였겠지. 웃고 울던 시절의 그리움에 음식을 부른다. 서글펐던 사랑이 끝나고도 어김없이 위로의 음식을 떠올린다. 뒤늦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채곤 미안함에 후회도 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눈물 나려고 할 때, 뜨거운 국물 한 모금에 오늘을 견뎌내기도 하는, 그런 일상. 특별할 건 없지만 어느 순간 특별해지고야 마는 마법을 일으킨다. 저자가 이야기를 시작하던 그때, 저자만의 특별함이 시작되었을 때, 공감을 일으키며 읽는 이들의 기억을 소환한다.

 

세월이 흘러서 뒤를 돌아보면,

아, 그때, 그 시각, 그 1초가 생각나.

그때 그 말을 할 걸, 그때 시원하게 화를 낼 걸, 그때 웃어줄걸…….

타이밍을 놓친 파스타는 형편없지. (111페이지)

 

2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며 노란 표지와 바나나 우유를 지긋이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에 잠깐 당황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흐르는 시간 속 맛있는 음식들로 다가와서 웃음 나고 재밌었고,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눈과 입이 행복하기만 했다. 이번에 다시 만나는 이 글에서는 담담하지만 조금 더 깊어진 울림이 있더라. 지금 내 마음이 그때보다 더 고요해져서 그런지 왜인지... 그냥, 막연하게 떠올리는 음식이 아니라, 나에게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흘러서 되돌아보면 오늘을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음식이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우리가 과거의 한 때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또 생길 텐데, 그 매개가 음식이라니 글이 더 맛있어진다.

 

작년에 접했던 어떤 글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왜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에 열광하느냐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맞다. 사람이 자꾸 뒤를 되돌아보기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데, 이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어서 긴장했었다. 여전히 지나간 시간만 떠올리고 그리워한다면 좋을 건 없을 거다. 내일을 살기 위해 우선 앞을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오늘을 조금 더 버티게 하고, 어제의 추억으로 오늘이 웃는 날이 된다면 가끔은 이런 그리움을 불러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전히 앞을 보고 살아가고 달려야 하는 게 우리 삶이지만, 우리 추억 속에 이런 음식 하나 없다면 사는 게 너무 서늘하잖아. 맛있는 위로가 뭔지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건 별로다. ^^ 저자를 위로해준 게 팔 할이 음식이었다는 게 나와는 좀 다르지만, 그 위로의 지분이 좀 다를 뿐이지 음식이 그 위로에 들어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지나간 사랑도, 울고 웃으며 묶여있는 가족도, 힘들어서 잘라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힘든 세 세상살이에서도, 음식이 불러오는 화해와 뜨끈함, 개운함, 쫀득함, 쌉싸래함이 있어서 다행이다. 삶을 아우르는 다양한 맛을 이렇게 알아간다...

 

아쉬워서 그리운 것들,

혹여 한번 다시 찾을 날이 있겠거니,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진 한 장 품고 사는 거. 심장에 그런 아쉽고 그리운 순간들을

진 한 장처럼 품고 사는 거. 그게 꼭 바보 같기만 한 일은 아닌 듯하다. (248페이지)

 

노트를 펴고 먹고 싶은 목록을 하나씩 채우는 요즘이다. 얼마 전부터 치과 진료를 받고 있다. 이 치료가 다 끝나려면 빠르면 1년, 길게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에 ‘음, 그렇구나.’ 하며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는 삼겹살까지 먹고 싶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에 엄마가 삼겹살 먹고 싶다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먹으러 갈 것을. 엄마와 나는 식성이 달라서 같이 외식하기가 쉽지 않은데, 삼겹살도 그중 하나다.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상황이 되고 보니 엄마가 먹고 싶다던 음식부터 평소에 내가 좋아하지도 않던 음식들까지 떠오르곤 한다. 거기에 보태져 항상 맛있게 먹던 음식까지 덩달아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바삭한 튀김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셔야지. 절반쯤 익힌 스테이크도 먹고 싶은데. 엄마가 맛있게 담근 총각김치도 손으로 집어 먹어야겠고. 아주 진~한 초콜릿무스 케이크도 목록에 올렸다. 아, 김밥도 꼭 먹을 거다. 이번엔 사 먹지 않고 내가 직접 싸서 엄마에게도 줘야지. 하아, 슬프게도,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배고픔도 커진다.

 

시간이 많이 흘러 오늘을 떠올릴 때, 나는 무슨 음식을 소환하고 있을까.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웃음 나게 했던 음식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 꼭 그게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시간을 불러오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은 충분히 맛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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