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쭉 읽어보다가 든 생각은, 내가 정말 평범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과 오랜 시간 그 질문들의 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익숙하게, 때로는 어떤 목적을 두고, 때로는 그냥 페이지 넘기는 재미로, 때로는 가볍게 읽는 습관들. 문제가 많은 책 읽기 습관인데, 그게 또 잘 고쳐지지 않아서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럭저럭 여전히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까지 그대로다. 별거 없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아무 때나 집에서든 밖에서든 상관없이 책을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데, 주로 집에서 읽는 시간이 많고, 가끔 시간이 여유로우면 밖의 커피점 같은 데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방바닥을 뒹굴면서 읽기를 좋아한다. 자세가 불량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서 읽는 거 어렵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뒹굴면서... 그런데 이런 습관을 고쳐야 하는 절실함이 찾아왔다. 엎드려서 책 보는 습관이 눈에 상당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는데, 더는 그런 무시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내 눈 상태가 그러하므로... 심각하다. 그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 지금이다. 의자에 반듯이 앉아서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은 엎드리거나 뒹굴뒹굴하면서 읽지는 않는다. 거의 2주 정도 이러고 있는데,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섭다. 안 하던 자세로 책을 읽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어. 고쳐야지.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주로 선호하는데, 요즘엔 가끔 전자책도 읽는다. 전자책은 주로 가벼운 로맨스소설 정도 읽는데, 요즘 인터넷서점에서 전자책 구매할 수 있는 상품권을 많이 주기에 타이밍 맞으면 그 상품권 내려받아서 한두 권씩 사면서 즐겨 읽는다. 문제는, 사기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주지 못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거... 가끔 진짜 여유롭게 어디 처박혀서 가벼운 소설들 읽고 싶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읽으면서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읽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 붙여놓은 부분 다시 펼쳐본다. 그때 필요하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리뷰 작성할 때 열어놓은 한글 파일 안에 붙여 놓는다. 그마저도 안 하면 그냥 잊기도 하고... (여기서도 게으름이 표가 난다.)

 

 

Q3. 지금 침대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가 손닿는 곳에 있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너무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실상은 요리책이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책인데, 나에게는 두 번 읽힐 책은 아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술로 가는 그 길이 궁금해서 구매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술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요즘 술 못 마시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끌리는 책이다. 말술로 마시던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기도 하고, 진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기도 하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구분 없다. 그냥 높이나 공간이 맞으면 아무 데나 끼워 넣는다. 그러다가 책을 못 찾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 버릇 안 고쳐진다. 책을 배열해두는 방식이고 뭐고, 사실 책 정리를 거의 안 한다. 필요한 책 찾다 보면 어디 책탑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정리하지 않은 택배 박스 안에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책 정리는 딱 두 가지다. 책을 사고 아무 데나 꽂아두거나, 안 읽거나 한 번 읽은 책은 내보내는 거. 내보내는 방식도 두 가지, 중고로 팔리면 팔거나 기증센터에 보내거나. 엊그제도 늘 보내던 기증 센터에 책 한 박스 보냈는데, 박스를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신간이다. 담당자분 말씀이, 이용자들 반응 좋은 책으로만 꾸준히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 터라 책이 쌓이면 바로바로 보낸다.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인데, 그때마다 한 박스씩, 보통 한 박스에는 책이 대략 20~30권 정도. 그때 한 번씩 하는 일이 있는데, 이 책이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때는 도서관 자료검색을 하고 비치된 자료라면 바로 기증으로 보낼 박스에 넣고, 도서관에 없는 자료라면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한다.

결론은,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책을 안 읽고 살았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던 책이 계몽사 세계문학이었는데, 그게 있어도 나는 책을 안 읽었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웃기게도, 대학 때도 전공 서적 외에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책 거의 안 보고 살았다. 키다리 아저씨나 어린 왕자 같은 책도 나는 몇 년 전에야 읽었으니, 뭐 더 할 말이 있으랴... 내 주변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은 사람들이던데, 나는 그게 가장 부럽더라. 그런 환경이 부럽고,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으니까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거구나 싶어서 말이다.

고로,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성인이 되어 읽은 <키다리 아저씨>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시집 몇 권, 소설 몇 권, 인문서 몇 권. 뭐 그 정도이고, 누가 놀랄 만한 책은 없는 것 같다. 아, 그런 건 있다. 같은 책이 두세 권씩 되는 책. 예전에 누가 왜 같은 책을 여러 권 사느냐고 물었는데,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렇게 산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더라.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취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특히 책에서는 그게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책 추천 거의 안 한다. 누군가에게 선뜻 어떤 책을 권하고, 내 취향의 책을 선물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사람들이 내가 두 권씩 가지고 있던 그 책을 궁금해하면 선물하곤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 예뻐서 두 권 세 권 구매한 책이 있다. 특별판으로 나와서 지금은 살 수 없다거나 하는 책들. 그런 책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보내는 내 마음이 괜히 더 좋아서. ^^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독자와의 대화나 작가 팬 사인회 같은 행사도 많던데, 나는 굳이 그런 거 바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냥 책으로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나는 왜 작가나, 작가에게 궁금한 게 없을까, 하고...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 나쓰메 소세키 전집, 등등 너무 많은데... 주로 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잘 읽히지 않아서 매번 포기했다. 다른 책에 밀리기도 했고... 아무 책도 안 읽고 오직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서 독방에 갇히지 않는 이상 지금 그 책들을 읽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눈이 딴 데로 가서, 다른 책들에 손을 댄다. 깊게 읽지도 않고, 끝까지 읽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그런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바닷 마을 다이어리>를 영화로 못 본 터라,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금방 읽힐 줄 알았는데 쉽게 안 읽히더라. 주변의 반응은 참으로 좋더만, 나에게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지금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고 싶다. 새로 출간된 7권도 샀단 말이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세 권이나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세 권밖에 못 가져가는 건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는데, 세 권만 가져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다. 꼭 안 가져간 책들이 더 생각나기 마련이라 고르고 골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책들로 챙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차라리 전자책으로 몇백 권 가져가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겠다. 충전을 못 하니 전자책도 못 볼 거고, 종이책으로 가져가자니 너무 무겁고... 그래도 고르라니 일단 종이책으로 골라보는데, 선택의 기준 가장 첫 번째가 이거다. 집중해서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방대한 분량이 엄두가 안 나서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가져가야겠다. 그곳에 딱 그 책만 있다는데, 그 책을 읽기 싫어도 그 책밖에 없다는데 어쩌겠어. 고를 수 없으니 있는 책으로 읽어야지. 오직 그 책만 읽을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 <돈키호테>, <주석 달린 월든>, <국어사전> 이렇게 세 권. <돈키호테>는 정말 언젠가 한 번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인데, 신간에 밀리고 게으름에 밀려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도서정가제 시행된 이후로 가장 먼저 산 책인데 말이다. <주석 달린 월든> 역시 마찬가지. 그 유명한 <월든>을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안 읽히더라. 무인도에 갇혀 있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언젠가 한 번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에 실린 모든 단어를 읽어봐야지 싶었다. 어휘가 꽝인 내가 가장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시간 남으면 또 읽고 해서 늙어가는 기억력 속에서도 단어의 저장이 깊게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의 정원 - 제1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7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너무 건조하게 살아서 그런 걸까. 그리움이란 단어 속에서 오래전 어떤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니 금방 떠오르는 게 없다. 오늘도 매일 다니는 거리, 자주 보는 사람들, 익숙한 건물. 그냥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채우는 평범한 모습으로만 보인다. 언젠가,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다르게 보일까? 선뜻 어떤 대답을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는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보니, 항상 보는 곳들이라 특별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그 장소 그 시간에 포함할 사람이 함께한다면,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무언가를 함께한 기억이 머문다면, 나는 지금의 건조함과는 다르게 오늘, 이 장소를 더 기억할 것 같다. 나의 일상을 채우는 배경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좀 더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그리움으로 저장해놓을 것 같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다가간 그 장소도 마찬가지겠지. 어떤 시간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 그게 비록 호기심일지라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채워져 있다. 오래된 연립주택에 머무는 사람들. 전직 미용사 다로는 얼마 전에 이혼했다. 같은 연립에 사는 여자 니시가 이웃집 '물빛 집'을 몰래 들여다보는 걸 알게 된다. 니시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니시는 다로에게 '물빛 집'을 찍은 <봄의 정원>이라는 사진집, 20년 전에 그 집에 살던 광고감독과 여배우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사진집으로 니시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이사할 집을 찾던 니시가 '물빛 집'을 바라보고 싶어 그 옆의 연립으로 이사와 살게 된 것까지. 그렇게 물빛 집을 관찰하던 니시를 발견한 다로가 그녀의 계획에 동참한다.

 

별것 없어 보였다. 니시의 기억 속의 생각들과 현재 눈앞에 보이는 물빛 집을 향한 호기심이 전부인 것 같았다. 오늘을 사는 여자가 과거의 기억으로 이어져 온 집을 보고 싶은 간절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지. 사진집 <봄의 정원>의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 와 사진집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독자의 마음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한때 누군가 행복하게 살던 장면을 보는 기분은 어떠한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이사하게 눈길이 더 머무는 건, 그 안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표정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광고업자와 여배우 부부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흐뭇함이 우리가 바라는 삶을 비춘다. 물빛 집 정원의 나무들이 자라고 가꿔지는 시간 동안 그들의 시간도 함께 자랐을 거다. 변한 것 없어 보이는 욕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 니시가 손에 피를 보면서까지 그 집 욕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그녀의 마음속에 그려놓은 젊은 부부의 시간을 새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한때를 그렇게 저장해놓고 싶었는지도...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는 몰랐던, 생각나지도 않던 일들이, 소설이 끝나갈 무렵에는 하나씩 내 머릿속으로 찾아왔다. 책상에 줄 그어놓고 넘어오지 말라고 싸우던 짝은 어떤 아줌마가 되어있을지 궁금했다. 세상 그따위로 살지 말라며 싸우고 헤어진 옛 남자는 지금 어느 거리를 걸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갑자기, 10여 년 전 요리학원에서 만난 언니의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었는데, 그날그날 살아가면서 겪고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움과 섞여 마음속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지금 이 거리를, 이 시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소설로 듣는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품고 있어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수 없는 일로 머물지 몰라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늘 이 시간의 풍경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오늘이다. 주말의 낮에, 조금 늘어지게 늦잠을 잤고, 뒤늦은 아침을 먹고 다방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쌓여있던 잡지를 몇 권 뒤적거렸고, 읽고 싶은 책을 꺼내 놨다. 온 집안의 창을 열고 청소를 하고, 밀린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가 다 되는 사이 오랜만에 친구랑 통화하면서 며칠 전 내린 비로 다 떨어져 버린 봄꽃 이야기를 했다. 짧은 봄이 가는 게 아쉽다며 곧 시간 내서 얼굴 보자는 말로 인사를 했다. 나의 이런 오늘 하루가 누구나 비슷하게 보낼 수 있는 평범한 주말의 하루인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이 보내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 오늘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미리 말해주는 소설이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이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이 우리의 소중한 시간으로 저장되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

 

바쁠 때도, 시간 여유가 있을 때도, 빠르다는 이유로 KTX를 선호하곤 했다. 기차 좌석에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어디를 가든 빨리 출발하고 일찍 도착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KTX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모든 기차역에 정차하던 완행열차가 떠오른다. 천천히 가면서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게 하고, 모든 역에 정차하면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보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느긋하게 앉아있던 그 불편한 좌석이 그리워진다. 다시 만나지 못할 기억과 시간이어서, 오래된 앨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사진처럼, 마음속에만 머물 수 있어서 더 그럴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아 절대 뽑지 마라 - 치과의사가 말할 수 없었던 치아 관리법
기노 코지.사이토 히로시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황미숙 옮김, 이승종 감수 / 예문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 소개글 보고 많이 궁금해졌다. 요즘 치과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낯설지 않은 설명에 눈길이 간다. 그동안 양치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양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올바른 양치법과 치아 관리법, 적절한 치료법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게 있다.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몸이 아픈 것도,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대개 전조를 보이지만 그 전조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그럴 리가 없어, 아직은 아닐 거야, 하는 마음의 안심이 그 위험을 감지하는 걸 막는다. 나에게도 그렇게 전조를 무시하다 일어난 일들이 몇 가지 있지만, 여기서 그 얘기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마이클 길모어가 전하는, 사형수 가족의 이야기는 그 전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의 형 게리가 살인자가 된 건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게 아닐까 싶은 위험스러운 생각이 들면서도, 그 전조가 마이클에게 적용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기도 하다.

 

길모어 집안에서 폭력과 학대가 시작된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 없었다. 한 살인자의 가족으로, 동생으로 살면서 그가 파헤쳐간 그의 가족의 역사는 평범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속한 길모어 집안의 폭력과 학대의 역사는 게리가 그런 괴물이 된 이유를 비춘다. 잠깐의 기간이 아닌, 그의 부모와 조부모, 증조 부모까지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지속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자비와 용서를 모르는 모르몬 교도 부모 밑에서 자랐다. 저자가 그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하지 않았던 게 행운이었을까. 혹시 저자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계속 자랐다면 또 한 명의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을까?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저자의 길모어 가족 역사는 끔찍했다. 게리가 괴물이 되었던 배경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한 가정의 이런 모습이 그 안에서 자란 아이를 모두 범죄자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 환경이 아이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비단 저자가 들려주는 길모어 가정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사형제도가 거의 사라지던 때 부활한 사형제도의 첫 번째 사형수가 된 게리 길모어. 이미 게리의 이야기가 한번 나왔음에도 저자는 형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떤 근원을 찾아내어 정리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 모든 저주 같은 흐름을 끊어내고 싶은 걸까? 저자의 형들은 변해간다. 그들 중 게리의 살인은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드러낸 위험의 경고처럼 보였다. 사형대에 오름을 선택한 게리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궁금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듯하다. 이렇게 한 번 다 쏟아내고, 자기가 속한 가족의 역사를 풀어내고 나면 게리의 잘못도, 자기 가족의 어둠도 조금은 걷히지 않을까 싶은...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저자가 이 책으로 건넨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졌을지는 저자 자신만이 알 테니까. 다만, 이 이야기로 우리가 듣고 느끼게 되는 게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범죄자의 탄생 이면에 상당히 다양한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가족, 그 부모의 영향으로 기인하는 경우, 남겨진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 거기에 저자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여기는 부분의 답을 찾는 일까지. 아프지만 꼭 한 번은 확인하고 싶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책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말로 대신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죽음이 끝일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이쯤에서 끝이었을 것 같은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물고 늘어졌다. 읽는 중간 중간, 나의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선뜻 말문이 트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읽기도 했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적나라한 그들의 가족사가 분명 어떤 답을 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분노가 일기도 했다가, 시무룩 절망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널을 뛰고 있었다. 결국, 끊어낼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된 게 우리 운명인 건지,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시작된 운명을 거둬낼 수 없다는 건지... 저자의 글은 끝났는데, 나는 이제부터 이 글이 시작하는 것만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여행을 꿈꾼 적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거나,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추적하듯 찾아가는 길. 오래전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미 어떤 소설 속 장소들을 밟아갔더라. 그것도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이어서 더 관심 두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바랐던 일을 그 블로거는 상상으로만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바람을 실행으로 옮겨 이미 이뤄낸 여행이었다. 그냥 발을 내디디면 되는 거였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었는데, 나의 게으름은 그걸 이루기 어려운 꿈으로만 새겼던 듯하다. 근데 정말 괜찮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는 게 멋져 보이지 않나? 이 책의 저자 서정이 들려줄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방을 걸었다』도, 나는 그런 흔적을 밟는 거로 생각했다. 유럽의 어느 곳을 따라 걷는 길. 어떤 작가의 흔적을 찾아 차곡차곡 밟아가는 시간. 낯설지만 친숙하게 새겨지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뭐, 나의 바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어려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러시아에 거주하는 저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럽과 러시아 문학, 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었나 보다. 푸시킨, 톨스토이, 카잔차키스, 고흐, 샤갈, 쇼팽 등 다양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각 작가와 예술가의 고뇌를 풀어내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의 흔적까지 들춰낸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독자도 많겠지만, 나처럼 평소에 즐기지 않은 분야의 독자라면 이런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흥미롭게 들린다. 앞에서 내가 말했던, 작가나 작품 속을 따라가는 여행을, 저자는 두 가지 다 이뤄내고 보여준다. 예술가의 삶을 좇다가, 소설 속 주인공을 비추는 여행도 풀어낸다. 거기에 저자 자신의 여정까지 보탠다. 뭐랄까, 저자가 그곳에 사는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진다고 말해도 되려나. 고전 속 주인공의 모습이나, 평범하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에 저자의 발자취까지 같은 흐름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문 저자에게서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비슷한 향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았지만, 그리 편하게만 읽히지는 않았다는 거다. 내가 너무 무지해서인지 공부하는 마음으로 따라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것저것 찾아가면서 읽기에는 에세이라는 분야의 편안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뭔가를 좀 덜어내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풀어내던지, 아니면 뭔가를 더 보태 전문적인 장르로 엮어내든지 했다면 좀 더 분명한 책으로 남았을 것을... 어쩌랴,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건 그저 나의 무지함이 첫 번째 원인인 것을.

 

저자가 언급한 작가, 예술가의 흔적들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만 본다면, 거장이라 불리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기에 조금 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느리게 페이지를 넘길 시간이 있다면 좋을 듯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