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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신화와 문명의 시대가 어디에서 갈라지는 지 잘 알지 못한다. 적어도 알래스카 선주민들은 신화의 시대 마지막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할 뿐이다.
인간위주의 시대가 문명 시대라면 신화의 시대에는 모든 것의 시대였다. 바람과 돌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인간은 그 모든 것의 일부분이었다. 문명은 오래된 것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 힘에 밀린 신화 시대 사람들은 이 책속의 밥 샘의 처지가 되었다. 백인(문명인)의 옷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고 린치를 당하지만 끝내 그들 세계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사라지는 것이 신화 시대의 운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신화의 시대를 취재한다. 큰까마귀 신화로 묶인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알래스카 선주민의 먼 조상이 아시아에서 건너간 인류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는 현존 하는 원로들이 사망하면 끝날 것 같다. 신화의 시대는 입에서입으로 전해지는 시대다. 시간을 이어주던 원로들이 세상을 뜨면 그 시대는 막을 내린다.
자연을 파괴하고 시간을 파헤쳐 욕을 보이는 문명이 야속하지만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다. 더 좋아지든 더 나빠지든 시대는 가고 오는 것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신화의 시대가 완전히 사라지면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우주의 시대에 진입했다고들 하지만 고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보다 우주를 훨씬 강하게 의식하지 않았을까?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깊이 맺어진 신화적 차원에서 말이야.” (169쪽)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구분이었다. 큰까마귀의 신화 안에서 오랜 시간을 겪어온 사람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들의 토템도 밥 샘의 말처럼 20년 안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사라짐을 바라 보는 것이 현재다. 다만 신화의 시대, 즉 영혼의 시대가 문명의 시대에 눌려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서글프다.
밥 샘과 저자가 주노 대빙원에서 오로라를 보면서 나눈 대화.
“어떤 시대가 올까.......”
“그러게 말이야......어떤 시대가 오려나?” (176쪽)
빙하와 고래, 곰과 어둠, 큰까마귀 전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곳이 알래스카다.
저자의 표현은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지켜본 사람의 깊이가 있다. 함께 실린 사진 속 알래스카의 이끼긴 원시림에 오래 눈길이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