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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먹을 수 있을까

 

내 손으로 골라 읽기를 원했지만 과연 이것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봤을 때는 무척 두꺼울 것 같더니 받아보니 의외로 얇다. 몸피도 작고.

후루룩 책장을 넘겨본 첫 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긴 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비연속적이고 짧은 글이다. 상대를 잘 모르는 사람한테 짧게 끊어 하는 말은 깊이 쫓아가기가 버겁다.

방법은 있는 힘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 발이라도 더 거리를 좁히는 것.

 

틈이 보였다

 

표지 안쪽에 저자의 사진을 본다. 오른쪽 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웃고 있다. 손바닥으로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듯, 그 연속적인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목의 주름이 낯설지 않다. 늙음은 어디나 똑같다.

신과 대립하는 것이 신의 부재가 아니라 악마이며, 우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립되어 있다. 스푼이 포크 덕택에 모성적 부드러움을 보여준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며 비로소 나는 마음이 조금 열렸다. 겨우 그를 따라 상상력을 펼쳐볼 틈을 보았다.

 

거울을 보는 시간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나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여지없이 그곳에 있다. 입꼬리가 쳐져 있어서 더 무표정해 보인다. 내 얼굴과 대립되는 것을 찾아보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재미있지도 않고, 진지해 지지도 않았다. 기어이 생각해 낸 것이 고작 나와 사막, 나와 독서 정도. 이것도 나에 대한 개념 정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

 

저자의 거울은 116개의 개념들을 보여준다. 각각이 개념들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하고 짝을 이룬다. 남자의 거울에는 여자가 비치고, 황소의 거울에는 말이 비친다. 좀 더 본다. 문화의 거울에는 문명이, 순수의 거울에는 순결이, 태양의 거울에는 어둠일거라는 생각을 뒤집고 달이 비친다.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들로 나간 끝에서 보는 거울에는 존재의 얼굴에 무가 비친다.

 

서로 대립되는가 싶은 것들의 닮음과 다름을 저자의 안내를 따라 자각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은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눈과 정신이 ‘블링블링’해 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독자의 소화 능력에 따라 눈부심의 정도가 확연해 진다.

개념을 정리하는 개론서의 성격을 갖겠노라고 했으니 각 개념들의 정의는 분명하되 지극히 문학적이어서 읽기 즐겁다. 스푼과 포크, 지하실과 다락방 같은 글들은 정말 맛있는 글이다.

 

“나무는 수직적이고, 길은 수평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무는 한군데에 붙박여 있는 안정성의 상징이다. 반면 길은 순환의 도구이다.(나무와 길)” 나무의 수직성에서 안정성의 상징을 얻어내거나 수평적 길에서 순환의 의미를 찾아내는 그의 상상력은 나같이 단순한 사람의 뇌를 즐겁게 자극시킨다. 나무와 길로 대립되는 두 개념은 균형을 이루기도 하지만 균형을 잃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도시의 두 가지 기능이 균형을 잃어가는 것이다. 거주의 기능이 순환의 기능에 의해 희생당하고 무시당한다.”

 

희생당하는 것들은 나무들이나, 분수대, 시장, 강둑 같은 것들이다.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풀이 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물론 자동차 바퀴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와 같은 통찰과 유머와 상상력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건 정말 문득 든 사족인데, 거주의 기능을 회복한다며, 시멘트와 전력으로 되돌려 놓은 서울의 청계천을 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더러, 특히 광대나 신화적 존재들을 이야기 할 때는 잘 몰라서 머쓱하고 낯설다.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깨알 같은 재미가 많은 책이다.

 

그가 단순히 철학적 사유로서 개념을 정리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문제로 상상력을 확대 시켜서 나는 더 좋다. <나무와 길>도 그렇고 <문화와 문명> 같은 글은 두고 두고 생각해 볼만한 개념의 대립이다. 보편적인 것으로 열려 있지 못한 이기적인 문명이 문화를 살해했다는 그의 말이 유난히 자극적이다.

그와 나의 물리적 거리에 대립하여 생각의 거리가 자주 좁혀지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은 무엇과 대립할까? 잠? 이 여행을 시작할 즈음 거울에 비춰본 나는 무엇과 대립할까? 이런 질문들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의미까지 있어 보인다.

대립하는 것을 찾는 과정은 한쪽의 개념을 일단 정리해야 가능하다. 개념을 정리하다 보니 대립한, 혹은 이웃한 개념을 더 많이 알게 된다. 다름을 통해 개별적인 것들의 의미를 알게 되거나 닮음을 통해 편협한 사고를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한결 즐거운 여행이 된다.

이 책은 <시간의 거울>로 오래전에 소개되었다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고 한다. 훨씬 철학적이었던 제목에서 다분히 문학적인 제목으로 ‘문패’가 바뀐 것 같다.

여행 가방을 정리하면서 여행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지금 내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상관없이 여행하는 내내 나는 즐거웠다. 아, 물론 즐거움과 대립하여 어려움 앞에서 발을 떼기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말이다. 책과 여행은 어떻게 닮아있거나 다른 지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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