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도리와 말썽 많은 숲 1 - 의뢰가 있으시다고요? 초도리와 말썽 많은 숲 1
보린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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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생에는, 자연에는, 어떤...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게 있습니다. p11에 나오듯 나무는 누가 돕거나 가르쳐 주지 않아도 빛을 향해 쑥쑥 자랍니다. 빛을 향해 자라는 걸 양성주광성이라 부르는데, 이런 성질은 식물의 몸 안에 나면서부터 심어졌고 애써 노력(내부든 외부든)이 가해지지 않아도 그대로 발현되기 마련입니다. 숲토리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제 먹거리를 찾고 키도 쑥쑥 큽니다. 그런데 숲토리 중 유독 초도리만큼은 걱정이 많다고 하네요. 걱정이 많으면 본래 이렇게 잠이 안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초도리는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날이 새면 자기 갈 길을 알아서 떠납니다. 거리도 먼 것 같은데 별 두려움도 없어 보입니다. 

해결사(p34). 초도리는 아마 몰랐겠지만 원래 숲토리들은 이 일대에서 해결사 노릇을 해 왔나 봅니다. 자기 몸보다 훨씬 큰 광대버섯(p33)을 들어 옮기는 다람쥐인 콩쥐가 초도리에게 그렇게 말해 줍니다. 그러고보면 초도리가 자신이 원래 타고난 몫을 온전히 하게 되는 데에는 이런 주변으로부터의 일깨움, 자극이 아주 없어서야 또 곤란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이 아무리 시켜 준 바가 있다 해도 게을러서 제대로 일을 안 하는 녀석들도 얼마든지 있고, 몰랑코라는 놀라운(?) 후각을 지닌 달팽이가 그걸 알아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도리는 몰랑코야말로 허풍이 심하고 게으르지 않을지 의심합니다.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땅에 씨를 뿌리고 땀흘려 농사짓는 법을 배워 오늘날까지 이어옵니다. 곡식은 저장이 비교적 쉽고 안정적으로, 또 예측 가능한 수확량을 내놓지만 야생에서의 사냥은 그렇지 않고 많은 위험이 따르며 사냥에 성공한다 해도 그 성과를 오래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도리도 몰랑코의 도움을 받아 좋은 도토리 종자를 골라 땅에 심습니다. 콩쥐는 초도리의 도움에 고마워하며 도토리를 수확하면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초도리는, 세 눈을 지닌 뭔가가 숲속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었음을 눈치챕니다. 콩쥐는 이보다 앞서, 가끔 숲에서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린다며 초도리에게 호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도리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어(p55)." 이 역시도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초도리의 능력이라든가 운명을 말해 주는 것 같네요. 누구한테 딱히 뭘 배운 적이 없었지만 알아서 척척 뭘 해 내는... 그런데 세눈박이를 언제 어디에선가는 만나게 되리라는 것, 이런 예감이 적중하는 게 그닥 대단한 재능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야 평범한 우리들도 겪곤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초도리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자신만의 관찰 수첩에 이런 이상하다 싶은 걸 꼼꼼하게 적어 둔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벌어지는데... 제 생각에는 초도리의 예감도 예감이지만 처음부터 몰랑코를 별로 믿지 않았던 콩쥐도 눈치가 꽤 빠른 듯합니다. 나무가 늦게 자란다면 모르겠으나 빨리 자라는 것도 문제일까요? 이 나무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사실 나무와 나뭇잎 병정을 탓할 것만은 아닌 게, 그들 입장에서는 애써 빚어낸 도토리를 다람쥐에게 뺏기는 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콩쥐가 착하면서도 현명한 게, 아직 어린 나무라서 다칠까봐 자신이 심하게는 반격 못하겠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나무가 다치면 결국 자신도 도토리를 얻기가 힘들어지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아무튼 이 두 번째 의뢰야말로 초도리의 어떤 진짜 능력이 증명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 의뢰(...)에서 큰 소동이 벌어지는데 도깨비(알고보니 능굴빼미라는, 두 동물의 특징을 지닌 동물이었습니다)가 나뭇잎 병정들과 콩쥐를 잡아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도리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던 게, 도깨비의 뱃속으로 같이 잡혀먹히고선 기지를 발휘하여 배설물과 함께 다른 애들까지 구해서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초도리는 언제나 그렇듯 이해관계를 조정합니다. 능굴빼미도 알고 보니 난리를 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세 가지 의뢰를 모두 해결한 초도리는 진정한 해결사로 거듭나고 숲에는 평화가 찾아듭니다. 얼핏 보아 이해가 안 되어도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음을 사려깊게 잘 살펴 준 초도리의 자질과 능력 덕분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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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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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문학관 관장이자 건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강인숙 박사는 몇 년 전 타계한 이어령 선생의 부인입니다. 이어령 선생의 취향, 성장 배경, 지적인 특징 등을 이분만큼 속속들이, 또 정확히 파악한 분은 없을 것입니다. 배우자로서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했던 이점 외에도,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벗이었고 학자로서 상당 기간 같은 지점을 바라봤던 동료였기 때문입니다. 이어령 선생은 생전 많은 저서와 강연, 대담을 통해 개인으로서 자신을 대중과 독자에게 비교적 많이 공개하신 편이었지만, 강인숙 교수의 이 책을 읽어 보니 여태 독자로서 어렴풋이, 부정확하게 파악하던 바와는 매우 다른 면모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강인숙 박사님은 이어령 선생과 동갑입니다. 그렇게 연로하신데 명징한 문장으로 이처럼 자신의 견해와 기억을 서술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우며(단 모든 글이 최근에 쓰인 건 아닙니다), 당신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을 이런 귀중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독자들과 공유해 주셨다는 점에 감사할 뿐입니다. 생전 선생의 책에서 유년기를 회고할 때는 묘하게도 결핍과 강박, 여유와 응석이 혼재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납득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친께서 지주로서 풍요를 누린 분이었으나 해방 후 토지개혁 와중에서 곤란을 겪었고 마침내 파산까지 갔다고 합니다. 또 부친이 새로운 반려자를 맞는 중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모친을 잃어야 했습니다. 선생의 회고에서 어머니만 언급되면 설움이 뜨겁게 밀려오는 듯한 어조였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던것이죠. 

선생은 모르는 게 없었던 폴리매스에 가까웠고 그래서 강 교수는 그를 초급수학보다 미적분을 더 잘 했던 기재로 기억합니다. 그러셨으려니 생각되긴 하지만 사실 그게 어떤 경지를 가리키는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미적분은 본래 수를 다루는 테크닉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고, 물리 현상에 적용하여 그 의미를 캐는 과정이 까다로울 뿐입니다. 추상 사고에 그분만큼 능한 한국인이 없었다고도 평가하시는데 그래서 우리 독자들이 그를 특별히 존경하고 감탄했던 것입니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그를 현란한 언술로 기만과 현혹에 능했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볼 것 같으면 애초에 인문 자체를 부정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어령 선생이 서울대 국문과를 다닐 때 일석 이희승이라는 국어학계의 태두가 학생들을 지도했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보다 한 살이 많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자 소설가였던 고 최일남씨도 그의 제자였습니다. 일석 이희승은 꽤 단신이었다고 하는데 최일남씨도 단신이어서 학생 시절 교수님의 뒤를 몰래 따르며 누가 더 키가 큰지 재어봤다고 하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역시 서울대 국문과 출신인 강 박사는 이 책에서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며 청년 이어령을 칭찬했던 일석을 회고(p47)합니다. 

강 박사는 남편 이어령을 가리켜 네오필리아였다고도 규정합니다. 선생은 물리적으로도 새 것을 좋아하고 기꺼이 채용하던, 요즘 말로 하면 어얼리 어댑터였겠는데, 실제로 1980년대 중반에 벌써 워드프로세서를 써서 원고 작업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부인이 회고하시는 선생은, 새롭고 낯선 지식이나 사고 방식을 기꺼이 먼저 채택하던 개척자, 파이오니어로서의 네오필리아입니다. 선생은 노령에 접어들어서도 사조(思潮)와 테크놀로지의 첨단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이를 사랑하여 그 장점을 누구보다 진정성있게 옹호 설파하기도 한 분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1933년생인 선생이 가정에서는 어떻게 배우자를 대하셨을까 하는 점었습니다. 역시 최고 엘리트답게 동년배들이 가지는 터무니없는 권위의식이나 남성우월주의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습니다. 또 니체가 말한 이른바 intelle integrity의 표본처럼 언행일치의 화신이며 어설픈 술수나 잔머리를 지성으로 착각하는 비천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분이기도 하죠. 일부 비뚤어진 참칭 페미니스트들(선생보다 한참 어린)의 리버스 가부장주의 같은 한심한 행태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우리가 고전을 통해 만난 괴테, 헤겔, 위고, 톨스토이, 졸라 같은 비현실적인 인격자 비슷한 분이 혹시 한국에 있다면 바로 그분이 이어령 선생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 박사와 이어령 선생의 학창 시절 로맨스에 대해서는 책 p114 이하에 나옵니다. 

p212를 보면 그 이른 시기에 이상(=김해경)을 분석했던 선생, 그리고 우리들이 친일파 연구자로 잘 아는 임종국의 이름이 나옵니다(물론 이상에 대한 분석 성과로). 그러고 보니 임종국 선생도 이어령 박사와 비슷한 또래이긴 합니다(학교는 다르지만). 이어령 선생은 1980년대 거의 내내, 세 살 아래인 김윤식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사상(잡지 혹은 출판사) 자체가 선생의 자식이니 당연하지만 말입니다. 하긴 선생의 연구가 아니었다면 공사판 노동자 생활도 했던 이상(일인 감독의 착오), 김해경이 오늘날처럼 천재 이미지로 널리 각인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부록으로 다른 친척분들의 이어령 선생에 대한 회고담들이 함께 실려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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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경영의 시대가 온다 - 국내 최고 안전경영 전문가가 말하는안전경영과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든 것
홍성훈 지음 / 라온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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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및 시행에 따라, 우리 나라도 이제 사업장에서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아직은 사업주들이 이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며, 혹시 큰 규모의 재해라도 발생하면 해당 노동자에게 일어난, 안타깝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사업주에게 가해지는 처벌과 금전제재도 막대하여 더이상 사업을 이어갈 수 없고 남은 근로자들도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직장은 이제 체질과 구조부터가 안전 지향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합니다. 홍성훈 교수의 이 책은 그런 구조개혁을 위해 아주 좋은 한 권의 지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p30 이하에서 기업 현장의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안전을 소홀히하는 직장에서 생산성(productivity)인들 높아질 리 만무합니다. 나의 신체에 언제 심각한 위험이 가해질지 모르는데 일엔들 전념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장이 직원의 안전에 대해 무심하면 현장 감독, 관리자도 자연히 근로자의 건강과 안위를 도외시하고 그저 눈앞의 수율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독촉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나기 마련입니다. 

어떤 형식적인 절차, 또는 시설 구비도 중요하겠으나, 그보다는 임직원 모두의 안전 우선 문화 정착, 혹은 의식 깊은 곳으로부터의 상호 존중, 배려 같은 게 직장 구석구석에 정착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저자는 한만두식품의 예를 드는데, 사장님부터가 일상의 인사로 "사랑합니다"를 몸소 습관화하자, 직원들도 결국은 모두 애사심과 최선의 봉사가 몸에 배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전이라는 덕목도 시스템이나 설비 장착 이전에, 사원과 관리자와 경영자의 의식에, 몸에, 하나의 습관으로 정착되어야만 합니다. 

안전문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p95에서 보다 엄밀하고 정제된 언어로 정의합니다. 일단 위험은 상황(또는 환경)에서도 기인할 수 있고, 구성원들의 행동, 행위에 의해 촉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요소에 대해, 구성원들의 인식이 그 방향을 돌려야 하며, 그로 인해 생성된 인식은 바로 실천적 처분으로까지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그 결과, 안전을 지향하는 행동 양식(저자가 "습관"이라는 말로 이미 강조했었습니다)과, 정신적 가치의 공유로 직장 내에 현시(顯示)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psychic value라는 용어로 책에서는 규정되는데, 여기서 psychic이란 심령술 같은 걸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심리 저변까지 침투한 근원적 가치관을 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지향문화는 의식의 레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가시화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visible, tangible하게 안전가치가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tangible이란 손에 잡힐 만큼 유형화(有形化)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모든 프로세스를 과학화하며, 직장 내 모든 층위의 성원들에게 실천적이고 세부화한 설문을 배포하여 안전의 세부 사항에까지 정밀 점검, 내면화를 유도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직장의 안전문화를 철저하게 점검, 분석하여 강점은 더욱 발전시키고 약점은 즉각 보완해야만 합니다. 특히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약점 보완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4가지 플랫폼을 설치 운운영하여 지속적으로 직장 내 안전 가치를 제고할 것을 제안하는데, 첫째 준비, 둘째 변화, 셋째 내면화(internalization), 넷째 수준진단(survey)라고 합니다. 플랫폼이라 하면 그만큼 구성원 상호간의 밀접한 의사소통, 완전한 컨센서스, 단합된 솔선수범이 동시에 작동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전을 위한 경영자의 각성과 노력은 공동체의 복리 증진으로까지 연결되며 저자는 이를 safety leadership으로 표창합니다. 

단일 사업장 안에서도 모든 구성원이 안전을 위해 혼연일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안전은 그에 그쳐서는 철저하게 달성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건물 붕괴 사고에서도 드러났지만 안전불감이나 위험요소는 한 직장에서만 고립적으로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재해의 잠재적 요인이 협력업체(이른바 하청업체)로 크라우딩아웃된다면. 내가 입을 피해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협력 체인 단위에까지 안전의 가치가 속속 구현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저자는 전략과제로서 붐업(boom-up) 이벤트를 제안합니다. 실천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이 세밀하게 제시되어 교과서로도 현장 매뉴얼로도 손색이 없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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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
김규범 지음 / 대한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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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IT를 전공한 김규범 강사, 작가의 고전 22편에 대한 수상록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또 즐겨 읽던 작품들이지만 저자의 시선으로 재해석되고 새로운 비전이 깃든 감상 같아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섯 챕터로 나뉘었고 각각의 챕터에 두어 개의 키워드가 내용을 이끄는데, 읽어 보면 삶의 건강한 도약, 의지의 강화 등이 주제로 심어진 덕에 뭔가 기분도 개운해지는 느낌입니다. 인생이란 이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야 하겠습니다. 

1장 "생각의 모양"에서는 헤세의 <싯다르타>와 쿤데라의 <참을...>이 소개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며, 프로타고니스트 싯다르타가 어떤 고립된 우월함, 내적인 장벽 등을 걷어내고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저자의 해석이 돋보입니다. "좋음, 옳음"은 어떤 고정된 의미가 아니며, 세상의 다양한 면모를 두루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이 어느 독자에게라도 신선하게, 또 계도적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내 행동 중 나만의 개성을 이루는 독특함, 그 근본은 바로 "키치"이며 이 키치 때문에 무려 스탈린의 장남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는 소설 속의 아이러니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저는 소령입니다. 제가 코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어떤 정해진 틀 안에 나건 남이건 가두면서 별 필요도 없는 형식을 구태여 관철하려 드는 것도 어색합니다. 사람은 물론 주어진 육신에 갇혀 생리적 제약을 받으면서, 또 대지를 거닐면서는 중력의 제한을 받으며 힘들게 한세상 살다 수명이 다하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태어나기를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저자는 이 챕터에서 고골의 <코>를 인용하는데, 인간의 모순과 어리석음을 유머러스한 필치와 비유 속에 재미있게 표현한 이 명작은 성인이 되고 나서 읽어도 그 울림이 남다릅니다.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는 사실 깡패 크로머 앞에서 끽소리도 못하는 찌질한 면모만 오래 기억되지만 중후반부를 읽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취약한 상태에서 데미안 같은 존재를 만났으면 평생 그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될 만도 하지만, 오히려 경계심, 차별화, 묘한 경멸감까지 살짝 가지며 데미안과 갈등하는 모습이 이 소설의 진짜 재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에 공존, 타협, 갈등, 공감 같은 단어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어린 독자들이라면 깊이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몸이 아픈가, 왜 누군가는 이유 없이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 이게 바로 인생의 부조리입니다. 저자는 카뮈가 <이방인>을 지을 때 프랑스인들이 현지에서 나치 점령 하에 겪었던 무력감, 좌절감 등을 부조리라는 말로 압축하고 이를 이 고전의 주제로 승화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 자신도 부조리한 존재이지만, 타인과 외부의 부조리함에 맹렬히 저항하고 끝까지 자유를 추구하기도 하죠. 이 뫼르소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타매를 받기위해 세팅된 캐릭터는 아닌데(카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죠), 무슨 권선징악 신파극 감상문 쓰듯 미친듯이 욕을 하는 사람은 자기 정신의 일차원성과 무지함,도덕감으로 위장한 자신의 비틀린 인성만 폭로하는 거죠. 

사실 돈키호테는 그 사람 개인으로만 보면 정직하고 용감하고 성실한 인격자입니다. 다만 그 가치관이 너무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은 것이며,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데 비극이 있었죠(소설 초반에 정신병 발병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또 이 양반도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느 남자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육점 딸 둘시네아에게 그 고귀한 기사도를 발휘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양반은 소외되고 불운한 처지(자신이 그에 처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불운한 자들 포함)의 모든 여성들에게 챔피언 구실을 해 준 셈이니 얼마나 이타적입니까. 사람은 일평생 한 번만이라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제 처지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운이 좋아서 그 자리까지 간 요행수는 생각도 못하고 큰 피해자나 된 양 앙앙불락하는 꼴을 보면 인간의 존엄이란 말이 참 공허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당대에 화를 받는다고 애가 그모양이죠. 

헤스터는 사실 본인은 아무 잘못도 없이, 말그대로 주홍글자를 억울하게 낙인받은 비운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비겁 그 자체의 처신을 보인 딤스데일이야말로 그 이마에다 주홍을 넘어 껌정글씨를 박아넣어야 할 한심한 인간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치욕의 A를 전혀 다른 의미로 승화시켰던 그녀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였음을 저자는 강조하는데, 말그대로 22편의 고전에서 어떤 일관된 메시지 하나를 힘입게 깔끔하게 끌어내는 능력에 독자로서 감탄하게 됩니다. 청소년 독자들에게 바른 인생관을 함양할 수 있는 좋은 책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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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기후적응 시대가 온다 - 종말로 치닫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김기범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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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도 과거에 우리들이 적응했던 날씨 패턴과 너무도 달라진 온도, 습도 등의 조건 때문에 다들 힘들어합니다. 그저 몸이 좀 힘들다, 불편하다 정도가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낼 수도 없는 농산물의 작황이 크게 달라져서, 전에 풍족하게 먹던 음식들이 현재 비싸져서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게 많아졌습니다. 덩달아 다른 물가까지 크게 올라,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때문에 곤란을 겪는 시국입니다. 저자는 이 외에도 전지구적으로 사람 사는 조건이 크게 바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선제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심각하게 충고합니다.    

p38에서 저자는 난민 문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돌이켜보면 흉년이나 전쟁 등은 언제나 있었지만, 난민이 이처럼 전지구적으로 늘어난 건 여태 본 적이 드물었습니다. 우리들이 난민 신세가 될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도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18년에 지구 반대편의 예멘 난민 수백명이 제주를 찾은 일이 있었는데, 난민을 무작정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안 받을 수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무작정 안 받으면 국제 사회에서 평판이 나빠지겠으며 혹시 우리가 재난을 당할 경우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난민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절박한 문제이며 애초에 난민이 생기지 않게 우리들도 국제 사회에서 부과하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p59을 보면 그린워싱이란 말이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환경의 가치를 워낙 강조하다 보니, 환경가치에 찬동하지 않으면서도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이런 책략을 부린다는 건데 보통은 기업들이 자주 이러지만 이 책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자총회를 억지스럽게 유치하려 드는 산유국을 꼬집는 데 쓰입니다. p71을 보면 전북에서 아열대과수 10여 종이 재배되는 등 전에 없던 이상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에는 재배되던 작물이 전혀 안 자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연 이런 기후변화가, 수십 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가 큰 스케일로 보면 통상 겪던 변화를 겪을 뿐일까요? p82를 보면 그런 기후변화가 가속되는 건 사람 때문이라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그러니 어떤 시늉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정성있게 이에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농가들이 주기적으로 고생하는 게 조류독감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이 한번 돌면 사육하던 가금류룰 다 살처분하게 될 수도 있고 뉴스에도 자주 나옵니다. 야생동물과의 무분별한 접촉이 전에는 몰랐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은 늘 있었습니다. 진드기 매개의 SFTS 같은 게 언제 전면적으로 확산하여 인간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지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고 합니다. p153에는 기후 변화에 제대로 적응 못한 동물들이 가차없이 멸종해 나가던 대열에, 우리 인간이 호모 클리마투스가 되어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저기 합류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2016년 우리 한국에 큰 불명예가 된 어떤 발표가 있었습니다.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 어느 외국 단체가 호주, 사우디, 뉴질랜드 등과 함께 우리 나라를 기후빌런, 그것도 탑 랭크로 꼽은 것입니다. 물론 이 단체가 절대적 공신력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국제 사회에 어떤 걱정을 끼치는 나라(p212)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국제 사회는 1.5도를 넘어간 온도 상승폭을 놓고 이를 다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하는데(p48에 나온 책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바로 오른쪽 페이지에 보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내놓은 보고서에서 발췌한 도표가 하나 나오는데, 상황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는 건 우리 후손들에 대한 심각한 직무유기이며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범죄가 될 것이라는 점 이 책 저자는 목놓아 호소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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