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X형사 대본집 상·하 세트 - 전2권
김바다 지음 / 너와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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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너와숲 출판사에서 제작해 온 다른 드라마 대본집들보다 규격도 크고 두께도 더 두껍습니다. 또 등장인물 소개, 인물 관계도 등이 올컬러로 책 서두에 실렸습니다. 제가 대본집 리뷰를 올리면 어떤 분들은 포카 포함 여부를 묻곤 하는데, 글쎄요, 권말에 실린 (책과 같은 규격의) 16.6×23.5cm의 스틸컷과 화보를 가위로 절취하면 그렇게 쓰일 수 있을까요?(그런 식으로는 2차 시장에서 잘 유통되지 않습니다) 뭐 그것보다는, 이 대본집 전체를 하나의 굿즈로 간주하고, 드라마를 재밌게 본 시청자들이 영원히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권 전체가 세트인 이 상품은 랩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이 상권 표지에는 "전 앞으로 모든 자산을 이용해서 범인을 잡을 거에요."라는 주인공 진이수(안보현 扮)의 시그니처 대사가 있습니다. 사실 이 대사, 컨셉, 혹은 설정이라는 게 어찌보면 장르의 공식을 역으로 비튼 것이라서 흥미롭습니다.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는 뛰어난 추리력과 놀라운 지식(범죄 관련)이 자산이며, 장르 초창기에는 이처럼 지적 능력의 탁월함으로 승부를 거는 캐릭터들이 많았다가, 이후에는 별반 머리가 좋지 않아도 특유의 근성, 끈질김, 이도저도 아니면 체력이나 미모(?) 등으로 끝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들까지 나왔습니다. 독자들이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기에, 꼭 머리가 좋고 이지적일 필요가 있느냐, 무기가 뭐가 되었든 사건만 해결하면 그만아니냐는 쪽으로 장르가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이처럼 진지함을 포기하고 돈으로 다 때우는 B급감성 충만의 코믹물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돈이란 하다하다 안 될 때 기대는 최후의 보루라기보다, 자본주의 사회(하권 p163)에서 궁극의 환원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형사물에서 detective는 판사가 아니기에 용의자를 심문하거나 특정 장소를 수색하려면 따로 영장을 발급받아야 하며 자기 권한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이런 법률상, 사실상 장애물을 어떤 재치와 기지로 뚫어내느냐가 중요한 재미의 포인트인데, 이 컨텐츠(우리 나라 드라마와, 러시아 원작 드라마 Мажо́р[마조르, "금수저"라는 뜻] 둘 다)는 주인공이 정말로 돈으로, 혹은 금수저로 자란 그만의 환경이 여태 준 혜택(인맥, 감각, 기질 등)으로만 모든 장애(따라서 사소한)를 해결합니다. 주인공이 역경을 돈으로 특권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한편으로 실소가 나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돈 자체가 능력인 엄연한 현실을 확인하며 주인공의 행보에 차라리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형사가 재벌가의 젊은 자제라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대개 형사는 박봉이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직종입니다. 남다른 사명감 없이는 직무를 수행하기 힘든데, 귀한 환경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 철부지, 혹은 망나니, 나아가 양아치과가 이 일을 한다? 당연히 정식 채용 절차를 거쳐 임용된 건 아니지만(우리 나라에서는 치열한 경쟁, 비교적 어려운 필기 시험을 뚫어야 가능합니다), 기이한 계기를 통해 신분을 얻은 후에는 의외로 별난 사명감을 갖고 직무에 임합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로지 실력과 사명감으로 팀장 자리에까지 오른 비슷한 또래의 여성경찰이 그와 함께 일하는데(직책은 팀장과 팀원으로 상하관계지만 사실상 듀오 같습니다. 계급도 경감으로 같은데 물론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p64. 변호사 자격이 이미 있었기에 특채가 가능했는데 이미 백수 도련님들 명함 찍어주는 기관으로까지 평판이 나빠진 로스쿨을 풍자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이강현 팀장과 진이수의 관계는 마치 5년 전 같은 방송사에서 론칭했던 같은 시간대의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박은빈)-한재희(조병규) 사이와도 비슷합니다. 여자가 철벽을 치고 상하권력관계의 선을 분명히 그으려 하며 반대로 남자는 호감을 갖고 껄렁한 매너로 접근하려 드는 게 닮았습니다. 물론 남자 쪽도 내심은 진지한데 이게 아니면 시청자들이 싫어하며 주인공 자격도 없어집니다. 

재미있게도,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방송사의 명칭과 비슷한 SBC라는 가상의 미디어에 소속된 기자가 제법 비중이 큰데(분량은 적어도 중요도가 높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복선에도 한 발 담그고 있으며, "기레기"라는 멸칭도 어느 정도 수용하며 자기객관화도 하는 이기석 기자 같은 캐릭터도 있습니다. 인물소개란에 나오듯이 대단히 속물적이지만 어느 선은 넘지 않습니다.  

p103을 보면 다른 경찰력이 천신만고 끝에 규명할 만한 특정 모델의 인적 사항이라든가, 그로부터 짐작할 만한 용의자들의 범위, 사건의 진상에 이르기까지, 진이수는 그만의 "자산"을 활용하여 훨씬 능률적으로 알아내거나, 매우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합니다. p121을 보면 진이수는, 죽은 모델 정이나가 DN미디어(가상)의 CF를 찍었고, 그 계약과정에 대한 정보까지 아무 수고도 들이지 않고 알아내는데 이 역시도 피식 실소가 나오긴 하나 여튼 그만의 능력이요 자산입니다. DC코믹스의 베트맨, 즉 브루스 웨인은 과연 슈퍼히어로의 자격이 있냐를 두고 예전부터 논쟁이 있었는데 냉소적으로 "돈이 곧 초능력이다!"로 마무리짓기도 합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집사 앨프리드 페니워스가 있듯, 진이수에게는 최정훈 비서가 있습니다(아니나다를까 이 책 인물소개란 p13에 그 말도 나오네요). 사실 앨프리드 노인도 브루스 웨인에게 좀 과분한데, 이 드라마에서도 고작 진이수한테 저런 중견급이 뭐하러 붙어다니나 싶긴 했습니다, 솔직히. 

에피소드 4, 아니 에피소드 3의 결말에서 노영수 교수라는 인물이 죽었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이런 장르물을 여태 너무 봤나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들었습니다. 이 짧은 씬을 보자마자 누가 범인인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 훤히 짐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피소드 4에 가서 살짝 진상에 변형이 가해지고 다른 줄기가 더해지리라는 것까지...  여튼 어느 정도 뻔한 경로에 기대기는 해도, 진이수 이강현 듀오의 시원시원한 스텝과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진부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확실히 색감이 (왜 이렇게까지 공을 들였을까 싶게) 예쁩니다. 갤러리와 미술 작품들이 등장하기에 특별히 이 코멘르를 곁들입니다. 

p252를 보면 "하루이틀도 아니고 십 년을 그렇게 살았으면 당신도 문제가 있는거야."라는 진이수의 냉혹한 말에 ooo가 자해를 하는 씬이 있습니다. 자해 경위를 캐어묻다 기어이 진이수가 그런 경박한 말을 내뱉은 게 동기가 되었다는 걸 알고 이강현은 매우 책망합니다. 물론 이게 진이수의 어떤 인성을 나무란다기보다, 경찰 본분을 일깨우는 의도이기는 한데, 재벌 3세가 불우한 흑수저한테 배려없이 잔혹한 충고를 한다고 눈살이 찌푸려진다기보다는, 재수가 없긴 해도 뭐 말이야 맞는 말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치 테이블에서 디시를 넘기며 아스파라거스의 꼭지만 얄밉게 떼어내는 아이한테 비매너를 탓하자, "원래 여기가 제일 맛있는데 모르셨어요?"라며 천연덕스럽게 항변하는 꼬마처럼 말입니다. 

에피소드 6에서 범인들은 영정사진(p303)을 찍어준다며 노인들의 집에 들어가서는 살인강도를 저지릅니다. 이 부분은 마치,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레드 드래곤>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여, 그런 방법으로 일관되게 죽일 수 있었던 이들이라면... 물론 이건 특정 직군을 싸잡아 범죄위험군으로 매도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지만 여튼 기발하긴 했습니다. p351에서 이강현은 선배 안병식에게 공을 넘기는데, 무슨 계산을 했다기보다 그녀만의 쿨한 성격의 발로이긴 하지만 여튼 이 행동은 나중에 가서 보상을 받습니다. 여튼 이강현도 참 냉정한 위인인데, 감정이 나빠서가 아니라 순전히 경찰의 직분 발동으로 진이수 해촉을 상신하려 하지만 p459에서 보듯 결국은 철회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또 부친의 라이벌인 왕종태 의원의 수치스러운 비밀도 덮어 주는 걸 보면 진이수도 공사 구분을 잘하는 것 같은데, 호의를 입었음에도 왕 의원은 합당한 보은을 하지 않습니다. p461에서 ooo는 마치 한니발 렉터나 윌 그레이엄처럼 사람 심리를 잘 파고드는데, "본능인가"라는 대사를 제가 TV 시청시 알아듣질 못했고(VOD로 몇 번을 다시 봤는데도), 이 대본집을 보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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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놀이의 기적
박성찬 지음 / 라온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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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고난 솜씨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이들이 마음을 달래고 자존을 되찾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을 쓴 조각가 박성찬씨는 미술도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으며, 이 놀이가 "자기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깨우는"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한 그가 지향하는 목표는 "영감을 통한 창의력, 감수성, 상상력 증진"이며, "미술을 통한 다양하고 전인적인 교육"을 추구한다고 나옵니다. 말씀만 들어도, 이미 성인이 된 독자마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선생님으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영감 넘치는 예술가로 자라나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사람의 지능을 IQ로만 평가할 게 아니라, 감성지능을 뜻하는 EQ로도 함께 측정하여 보다 종합적인 능력, 역량을 재고 나아가 갖출 것을 두루 갖춘 인재로 양성해야 한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 주장은 거의 발표되자마자 세계적 호응을 얻었는데, p62에는 "정서 지능은 교감으로 높아진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저자의 어린 따님 이야기로부터 추출한 교훈인데, 확실히 이런 이야기를 보면 어린이에게는 뭔가 애착(p65)을 갖고 오래 보살필 수 있는 대상 같은 게 필요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정서 지능은 사람 인격과 감정의 기초 공사와도 같다. 어렸을 때 정서가 올바로 성장하지 못하면,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상의와도 같아서 모든 게 틀어지고 만다." 

인간은 예측 불허의 모험, 위험을 피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특징도 있지만, 정반대로 낯선 곳을 찾아 생소한 환경을 맞딱뜨리고 무엇인가를 정복하는 쾌감을 맛보는 성향도 있습니다. p96에는 "도전의 산" 조형물에서 색다른 재미를 맛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감싸고만 돌면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라는 걸 모르고 자랍니다. 낮은 단계에서부터 하나하나 마음 속에 쌓아가는 성취감, 그 짜릿한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듭니다. "좀 위험하게 놀아도 됩니다(p102)." 뿐만 아니라 약간은 위험성도 있는 놀이를 즐겨야만 신체 제어 능력도 길러지는 것입니다. 근육이라는 것도 너무 정해진 과정에만 길들여지면 볼품 있게 자라지 못하며, 남다른 운동능력이나 반사신경도 뜻밖의 상황을 자주 마주치며 몸과 마음이 그에 적응되어야 제대로 발달하는 것입니다. 

"놀다보니 토론하게 되고, 토론하다 보니 놀게 되고(p122)" 아이들은 역시 함께 자라야 사회성도 길러지고,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나와 다른 정신과 어떻게 교감하는지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판이한 성격과도 때로 타협하고 때로 투쟁하면서 원만한 사회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저자는 조형 전문가의 입장에서 우리 나라 놀이터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상상력을 못 일으키게 설계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또 아이들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안전 위주로만 설계되어 아이들이 쉽게 지루해하고 아무런 창의력도 자극하지 못하는 단점을 지적합니다. 

"놀이를 통해 세상의 지식을 배우다(p152)." 교육은 그저 지식만 머리에 장착하는 게 아니라, 인격을 함께 양성하는 과정입니다. 바깥에서의 놀이는 실내와는 달리 에너지, 칼로리 소모량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이렇게 밖에서 신 나게 에너지를 소모하며, 돌발 상황에 대비하며 근육과 운동신경이 발달해야 건강하고 외적으로도 보기 좋은 아이로 큽니다. 신체 운동은 곧 마음의 운동도 된다는 게 데이빗 엘킨드(p153)의 주장이며, 탁 트인 공간에서 해방감도 느끼고 인지 능력도 쑥쑥 자라날 수 있다고 저자는 알려 줍니다. 

회복탄력성, 유능감, 자존감... 이런 것들은 사람의 업무 능력과는 또 별개의 개념입니다. 아무리 회사에서 일을 잘해도 매번 번아웃이 오고, 타격을 입으면 쉽게 원상회복이 안 되고, 경쟁에서 이겨내려는 의욕이 쉽게 안 생기고 비관적인 느낌에 쉽게 빠지고... 이런 체험이 반복되면 당사자가 행복해지기란 참 힘듭니다. 아이는 무엇보다 자신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놀면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p177)" 미술 역시도 따분하게 테크닉만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라, 놀이처럼 매 순간 아이한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게 하는 그런 과정이어야 합니다. 미술이 놀이가 되고 교육이 되는 마법을, 다양한 실제 사례와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과 함께 목격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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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변화의 시작 -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정정숙 지음 / 행복플러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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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기독교인이 아니라 해도 매사에 감사하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알고 보면 놀라울 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으며, 단지 감사하는 눈에만 이 소중한 기회가 보입니다. 반면 감사할 줄 모르는 눈에는 그 소중한 기회들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 타락한 눈에는 허황된 일확천금만 신기루처럼 어른거릴 뿐이며 결국 아무것도 그 손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삶을 보람되고 알차며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영어 부제로 "radical gratitude"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gratitude가 무엇입니까?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태도입니다. 감사는 그저 일회성으로 좋은 말 몇 마디를 (그 사람과 그저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사치레로 건네는 제스처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기본 태도를 가리킵니다. 고대 영국에, 곤경에 처한 낙오 군인을 치료하고 돌봐주었더니 배은망덕하게도 그 은인을 무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 군인의 이마에 ungrateful soldier라는 문구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 군인은 배신과 사취와 거짓말이 자기 삶의 일부가 되었던 영혼이었습니다. 

radical이란 무엇입니까? 급격하다, 과격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들 죄 많은 영혼은 도대체가 저 배은망덕한 군인처럼, 감사라는 걸 모르는 한심한 탕아들입니다. 그래서 그저 원만한, 온건한, 뜨뜻미지근한 감사로는 우리 삶을 바꿔 놓기에 성에 차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급격하게 그 방향이 전환되어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내면이 가득해지는 방향으로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삶이, 영혼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처럼 순수하고 순결한 상태로 바뀌어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건 포유동물이 특히 잘 발달시킨 특징입니다. 이 감정이라는 것도 다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장착된 것이겠지만, 때로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게 발동하여 오히려 건강한 삶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불안, 분노, 질투, 탐욕)은 해소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게 우리 마음대로 언제나 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p51에서 조슈아 브라운, 조엘 웡(동양계 심리학자로서 평판이 뛰어난 중견 지성이죠)의 연구를 인용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그 기제가 이미 과학적으로 해명되었다고도 합니다. 

감사는 심지어 수면의 질도 높여 준다고 합니다. p67을 보면 롤런드 잰(Zahn) 박사의 연구를 인용하여 "감사에 의해 자극받은 (뇌의) 시상하부는 건강한 수면 효과로 직결된다"는 점이 치밀하게 규명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어 이 책 저자 정정숙 박사님이 직접 겪은 사례가 이어지는데, 이처럼 요즘은 저자 자신이 삶에서 체험한 바가 책에 자세히 나오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이게 경우에 따라 내밀한 개인 건강 정보와도 이어지기 때문에 책에 공개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독자의 이해를 위해 오픈해 주시는 게 고맙기도 합니다. 

운동도 그렇지만 감사하는 삶도 그저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만 갖고는 안 됩니다. 매일같이 감사하는 태도가 지속되려면 매일같은 훈련을 통해 근육이 키워져야 합니다. 저자는 "감사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도 주장하는데 p103 같은 곳을 보면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가족이란 존재를 통해 이 근육을 키우라는 조언이 있습니다. 이때, 당신이 혹 그 가족에게 아픈 상처가 있다 해도, 일단은 좋은 추억이나 생각을 우선시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써 보자고 합니다. 우리 독자들도 꼭 실천에 옮겨 보면 좋을 듯합니다. 

긍정적 정서는 그저 일회성 효과에 그치지 않고 구조로서 구축되어 항구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기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p147에서 바버라 프레데릭슨 박사의 연구가 다시 인용되는데, 이 긍정의 마음가짐이라는 게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구축되는 상향적 선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게 그 요점입니다. 그 최종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개인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그저 말초적이고 일회성이어서는 안 됩니다. 매 순간 진정성 있게 생성되어 이후의 행복과도 재생산의 담보가 이뤄지는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감사는 고난으로 가득한 우리 생에 구원을 던져줄 유일한 빛이며 희망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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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세전환 - 성공을 꿈꾼다면 먼저 태도부터 바꿔라
이시한.김진수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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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세전환이란, 보통은 갑자기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갑자기 기존의 스탠스를 바꾸는, 얍삽한 태도를 비꼬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들의 성공을 위해, 미련하게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말고 영리하게 민첩하게 다른 대안도 모색하고 전략도 융통성 있게 수시로 바꾸라는 충고의 의미로 이 말을 씁니다. 태세전환이 자유로워야, 변화하는 상황에도 잘 적응하고, 수시로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머쥐어 그로부터 이익을 현명하게 취할 수도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요즘은 고인물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환영받는 세상이 아닙니다. 수시로 직장도 옮기고 남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봐야 사람의 그릇과 기량이 커지는데, 너무 한 직장에만 몸담으면 나중에는 자기 조직의 구석구석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뻔한 자신의 루틴에 매몰되어서), 오히려 조직의 혁신에 더 방해가 되는 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책 p28에서 저자는 "이직 잘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아니 왜 하필 지금? 싶은 시점에 딱 이직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마치 코인이나 주식 잘하는 고수의 센스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자기 발전에 진심인 사람은 남들이 못 보는 무엇이 그 날카로운 눈에 따로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도 그 센스를 배워야 우리 미래가 더 유망해지지 않겠습니까? 

독자인 저도 10여년 전에 모 인터넷 서점 선정 서평단 자격으로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를 읽고 리뷰도 썼었는데요. 저자도 p108 같은 곳에서 그 책을 인용하며 기버 타입(계산 잘 안 하고 남한테 베푸는 유형)이 호구잡히기도 쉽지만 대신 크게 성공하기도 쉬운 타입이라고 합니다. 애덤 그랜트도, 이 저자도 그 지적을 하지만, 무조건 기버(giver)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기버는 오히려 호구잡히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머리를 쓰면,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도 알아야 인심을 얻습니다. 그래서 크게 잘되는 타입도 (의외로) 기버이며, 반대로 테이커는 짧게 보면 와 세상 영리하게 산다 싶어도 끝에 가 보면 피 보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무슨 바보가 아닌데 언젠가는 그 사람한테 응징을 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가속화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화된 세상입니다.(p124)" 저는 저자의 이 말에 엄청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성공의 척도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의 성패를 잴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루저 취급 받는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문제는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돈을 많이 벌면 그만이지 딱히 개같이 번다고 지탄받지는 않습니다(물론 불법은 제외하고요). 

저자는 여기에서, 장인정신이 아니라 상인정신을 추구하라고 독자들에게 말합니다. 장인정신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뜻인데, 최고가 된다는 게 너무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택이며, 리스크가 큰 투자입니다. 축구에서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은 110만(오천만이라고 해도 됩니다) 중에 세 명뿐인데 우리가 그게 가능하겠습니까?(저자가 책에서 직접 든 비유입니다) 

반면 상인정신은 그게 아닙니다. 요리조리 여러 방향을 보면서 좋은 기회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내게 이익이 되는 모든 소스를 다 내 손에 넣어 내것화하는 좋은 예가 p128 이하에 나오는 오영재 대표의 성공사례입니다. 읽으면서, 21세기에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p132에 나오는 F&B 4단계 프로세스가 단지 F&B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p143을 보면 저자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싱어게인>을 보면(비단 이 프로그램뿐은 아니지만) 간혹 보면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심사 패널이 있습니다. 저 나이와 연륜에 누굴 심사할 수가 있나?하고 의아해지기도 하지만 그게 그만의 강점이 있습니다. 또 그 재미에 시청자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것입니다. 저자가 감탄하는 건 시니어들이 그런 새까만 후배들의 평가질에 격분(?)하지 않고 다 받아주는 그 아량입니다. 그 세대는 정작 윗세대로부터 온갖 꼰대질 갑질을 다 당했는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조직내 썩은 관행은 어느 누가 반드시 나서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반대로, 무조건 다른 사람한테 맞춰 주는 사람도 경계해야 하는데, 조직에 융화를 잘하는 것과 "무조건" 맞추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에 벗어난 듯해도 알고보면 폐부를 찌르는 좋은 가르침이 너무 많은 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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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김민경 외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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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발간되는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작품집입니다. 비록 "스토리대상"이라고는 하지만 작품들은 단편소설로서 다들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책 뒤에 나오는 심사위원평들도 이 작품들이 장르물로서 이미 완성된 수준임을 전제로 하고 논평을 전개합니다. 우리 독자들은 재미있게 이들 작품들을 읽고 스토리의 경쾌한 진행과 플롯의 기발함이 주는 쾌감을 마음껏 맛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편의점 같은 데를 갔을 때 언제나 점원들이 빠릿빠릿하게 응대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p30(<그 많던 마법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김민경 作)에서처럼 좀 버벅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진상짓을 떨 것 같던 남성에 대해, 송하나는 그의 기를 팍 누르고 궁지에 몰릴 뻔하던 점원을 돕습니다. 음... 학교 후배였던 마법소녀 소희를 겨우 따라간 하나는 마법에 대해 몇 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남을 돕는 게 핵심이며, "정화(淨化)"라는 과정이 또 중요합니다. 알고 보니 그랬던 겁니다. 세상 이치에는 역시 공짜라는 게 없으며, 착한 일은 대개는 그 보상이 따릅니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경기가 잘 풀리면 쓰레기를 잘 주운 덕이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어느 야구 감독도 생각이 나더군요. 

대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목소리가 밝고 경쾌한 여성들이 전화를 받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그 일에 종사하거나 인접 직역 근무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주인공 송하나의 직업을 상담사로 설정하고 그에 마법을 연관시킨 작가의 마음씀씀이 같은 게 느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상담사가 아니라 마법사가 되어버린 송하나의 마지막 대사에서 뭔가 불꽃이 터지는 느낌도 저는 받았습니다.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고나 할까요. 

지방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입니다. "영롱농장도 폐업 신고했고...(p48)" 그런데 이 작품 <내림마단조 좀비(김호야 作)>에서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무슨 드론 폭격을 당하고, 일꾼들이 곤죽이 되어 할멈의 연구소로 끌려오고, 좀비 액화 비료가 생산성 향상에 극적인 효과를 내는 등 초현실의 배경입니다. 농업은 수천 년 동안 발전을 거듭했으나 그에 상응하여, 아니 그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바람에 역사의 상당 기간 인간은 굶주림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던 게 질소비료의 발명으로 수확량이 개선되어 기아선상의 공포는 면했으나, 대신 화학물질의 섭취에서 비롯한 부작용을 걱정하게 되는데... 이제 이 소설에서는 좀비액비라는 혁신이 등장했으니... 

다크투어라는 게 있습니다. 바람직하고 자랑스럽거나 밝은 기억, 추억이 담긴 명소를 방문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의의를 가진 곳을 찾아 색다른 기분을 맛보는 건데...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치유 대상이 아닌 처리 대상인" 좀비가 비참한 상태에 처한 농장을 구경하며 묘한 쾌감을 맛보는 것입니다. JFK라는 약칭은 들어 봤어도 ZFK는 처음 듣는데, 이게 좀비 해방 단체의 두문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참 복잡한 동물입니다. 어느 하나로 태도가 수렴하여 의견이 일치할 것 같은 문제에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반대 스탠스를 취해서 기어이 분란을 빚고야 말죠. 변함없는 것은 높이 떠 누리를 환히 비추는 보름달(p75)입니다. 

어느날 자고일어나 보니 일개 벌레로 추락해있던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만, <슬롯파더(이리애 作)>에서 아빠는 처량하게도 건조대 신세로 떨어집니다. 슬롯은 슬롯머신이라고 할 때의 그 슬롯인데, p91 같은 데에서 슬롯이 팽팽 돌다 7에서 멈춘다는 서술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게 뭐라고 기계인 채로 있어요.(p98)" 너무도 슬픈 대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수행하는 직분이나 지위, 재산에 불구하고 가족으로부터, 혹은 누구한테라도 고유의 인격을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가족 앞에서 한갖 건조대 취급을 받는 처지라니...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나 이쁠 때지 조금민 지나면..." 결국 플러그가 뽑혀 봐야 우리는 진짜 자신과 알몸으로 대면할 수 있습니다. 

<수호전>에서 인육으로 만두를 빚어파는 무서운 부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p122(<인형 철거>, 임규리 作)에서는 등산객들을 죽이고 금품을 가로채온 무서운 부부가 운영해 온 식당 이야기가 있습니다. 봉제인형이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으스스한 effigy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데 모든 게 다 결국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인간만 인형에게 애착을 갖는 게 아닙니다. 인형도 마찬가지이죠(p132)." 우리는 간혹, 누군가로부터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만 불리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럴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느낍니다. "날 수호라고 불러 주세요." 제대로 이름이 불렸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섭고 오래된 숨바꼭질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사람이란 때때로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죽는 건 또 아닙니다. 사람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몸 곳곳에 지방을 저장해 놓는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뚱보들은 미래에대한 준비성이 철저하다며 칭찬을 들어야 마땅합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보다 날렵하다는 걸 알았죠(p191)." 엄마 품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그립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항구와도 같습니다. 유류품, 유류품... 세상에는 망자가 있고 그 망자의 소유물은 어떻게든 처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끝내 누군가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되는 우리의 미소와 기도, 눈빛... 이단에게 수현은 이제 어디도 갈 수 있다며 자신하지만 과연 그럴까요.(<문을 나서며, 이단에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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