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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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위의 역사] 저자 이덕일 님,  이분은 참 조리있게 글을 잘 써내려간다는 읽는 내내 생각을 해보았다. 딱딱한 역사 교과서 적인 애기는 한켠으로 접어 내면서도 핵심은 골라서 집어 내어 비평다운 비평을 하고 , 잘못과 잘한 부분에 대한 방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근거로 하나 하나 풀어 헤쳐 나가는 진행은  500여년전 조선 시대의 모습이 사실로 다가오는 듯 하다.

 

우리는 현재 대한 민국 21 세기에 살고 있다. 수출 약 1000억 불대를 넘게 하고 무역 수지 규모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드는 대한 민국이지만 어쩐지 매번 벌어 지는 정치 행태나 행정 / 법률 개정과 소상공인 기업들에 대한 형평성은 대기업의 안위와는 틈바구니에 끼인채 돌아가는 형국이다.

 

주변의 4국 열강 세력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형은 구한말 시대적인 상황과도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쾌거는 우리 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이후 실천적인 행동의 개선과 모습이 없어 왔기에 제자리 걸음을 하는 행보로 보여 진다.

 

조선 중기의 임진난때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과 류성륭에 대한 토팽 구사 이야기며, 응과 응보적인 친명, 배청에 대한 정첵의 말로 , 인조 반정 이후 일어난  국치에 맞먹은 삼전도의 수모는 지금도 이어지 내려져 오고 있는 듯 하다.

 

비록 , 당대의 도산 안창호나 , 해외의 지식인들이 구한국을 구출 하기 위한 외교전을 전 방면에 펼쳤으나 우물안 개구리식의 전략은 이후 가스라 -태프트의 밀약이 우선 한 미국과 일본의 동먕 , 그리고 영국과 일본의 1차 대전 이후의 승전국 사이의 동맹이라는 수순을 보면 어찌 보면 순진 하기 이를데 없는 구애책이엇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지금 이순간 순진 하게도 미국이나 중국에게 구애의 화살을 계속 내어 품고 있는지 않는지는 국세 정세에서 그 해법을 찾아 야 할 일이다. 비록 일본이 감정적으로는 싫다고 하여도 전략적으로는 공존 전략을 만들어 보는것 , 그리고 4강 열강의 틈바귀 속에서 앞으로도 생존 하여야 할 한국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과거와 근대사 그리고 현대사를 아우르는 혁사적인 가르침 속에 그 맥락이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 하고 단언 컨데 그속에서 자성의 모습과 미래 한국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 해  보아야 하지 않을가 생각해 본다.

 

스스로에게 부끄 럽지 않았던 예전 성왕들의 도와 순리의 정치 시기에 백성들이 평화로왔다고 한다면 ,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제대로된 민주주의와 서로에게 형평성있는 잣대의 판단과 순리가 민초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가져 가지 않을까 ,

 

기업과 정부가 순기능의 역할을 하고 , 국민들이 저마다의 생업에서 수탈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고 ,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것 , 어찌 보면 단순 하지만 명쾌한 논리가 뼈속 깊이 숨어 있는 우리네 역사 500년 - 천년사를 보면 그 답이 오늘에 있고 미래를 만들어갈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

 

자라나는 세대 , 청년 10명중 1-2 명이상의 사람들이 실업인 상태에서는 부가적인 역동성과 희망의 씨앗을 느끼기는 버거 웁다 ,

아프리카 난민들이 먹고 사는 생존의 피난길에서 혹은 시리아 난민 들이 수년이상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고난의 연속성에서 우리는 배우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한번 세우기는 어려워도 스스로 허물어 지거나 와해 되어 버리는 것은 어느 순간의 임계점이 넘어서면 그대로 진행 된 다는 것을 ,, 지금도 우리 주변의 세계 정세를 통해 실제적으로 보고 있다.

 

대한 민국호가 앞으로 차근차근히 잘되어 나가고 , 정치인들이 행정가 들이 그리고 군인들 , 각 역할을 담당한 일꾼들이 자신의 일들 제대로 잘 수행해 나아갈 수 잇을 시점에 어쩌면 조화롭게도 평온이 찾아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순리는 이와는 다를 수 있고 , 진실은 언제가는 밝혀 지겠지만 , 시스템적인 민주화를 이뤄 나가는 데는 아직까지도 혼란 이 가중 되는 오늘 뉴스의 현장을 통해서도 갈길이 먼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책력거99> 느끼다 .

 

에필로그 ; 에전에 김훈 작가님께서 쓰신 , " 남한 산성 " 에 대한 소설책을 잘 읽었고 , 이순신 장군의 소설화인 " 명량" 도 나름대로 잘 읽었던 느낌이 있었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당시 왕이 행해야 했던 일들은 어찌보면 어찌 할 수 있지 않을 수도 있었을 수많은 과거의 선택들을 과감히 떨쳐 버리지 못한 패단에 다름 아니다. 국망을 논할 때 , 당시 주변 인들에게 휘둘리었던 인조였기에 어찌 할 수 없이 그리 되었던 것 뿐이라고 애기 한다면 , 어찌 할 수 없었던 그상황에서도 전쟁을 승리로 바꾼 이순신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 하여야 할까 ,,,, 말 그데로 백척 간두 - 라는 말의 생생함이 , 생경함으로 느껴 지는 그 느낌은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후방 3-4 미터 뒤에서 호흡을 가다 듬고 방아쇠를 당겼을  , 도마 안중근 의사의 심정 이었을까 ..

 

결국 다시 청산리 대첩이나 항일 투젱으로 보자면 , 외교전도 나름 성과를 거둔 측면은 있었지만 배후 전략을 살펴 본다면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일들이 더욱 급선무 였던 것으로 나타 난다.

 

흥선 대원군의 신미 양요의 승전 아닌 패전에서의 척화비 논쟁 또한 일찌 감치 개혁을 단행 하였어야 하는 부분 이나 가문이나 종파의 욕심으로 어찌지 못한 것은 지금과도 그 모습은 많이들 닮아 있다. 그런 의미 에서 친인척 비리를 과단히 척결 하고자 노력 했던 성군 태종에게는 박수를 보내고프다...

 

전체적으로 역사적인 개괄과 아울러 전문 지식인의 입장에서 근/ 현대사의 정세를 아우르며 현제의 우리들에게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촉구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자성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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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벌 - 기획에서 병탄, 패전까지 1854~1945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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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벌 ] 기획에서 병탄 패전 까지 라는 부제에 1854 - 1945 년도가 선명히 인쇄되어 있다. 뒤의 년도 1945년도는 7월 미국의 원자탄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져 당시 인구로도 많은 10여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순간적으로 발생 시키면서 8월 천황의 무조건 항복 문건을 받아낸 , 전세계적으로 전대 미문의 사건 이기도 하고,   한민족의 해방의 그날 이기도 하다. 

 

이후 세월이 흐른 오늘날 2015년 8월은 어느덧 광복 70 주년이 되었고 ,  당시 태어난 아이라면 , 70 세 고희를 넘긴 어르신이 된 나이이다.

 

세월을 다시 거슬러 ,  100 여년전 으로 거술러 올라가면  1910 년의 한일 합방에이르기 까지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과 수탈로 인한 민생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 이 모든것이 평화만을 사랑 한다고 해서 내 집안의 안위가 저절로 지켜지지는 않는 다는 역사의 엄연한 현실 일 뿐일 것이다.

 

일본 역시 에도 시기및 막부 정치 체제를 거치 면서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요구서를 받기 전까지는 어쩌면 일개 섬나라만으로 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조선 선조 시기 전후헤서도 왜구들의 노략질은 그치질 않았고 ,  한반도를 통한 대륙으로의 세력 확장을 꿈꾸워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17-18 세기 세계 여러나라의 제국 열강의 시기에서는 당시로는 우리나라에게는 큰 나라였던 중국의 청 왕조 마저도 영국의 아편 전쟁에서 패하여 강제 개항을 하기에 이르렸고 , 이를 본 일본 정권 세력들은 새로움에 대한 변화와 존왕양이에 대한 갈등 속에서

무던 히도 많은 논쟁과 내부 세력 분쟁이 있어 왓음을 역사나 이책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하지만 ,  대륙의 큰나라인 중국 마저도 신식 무기와 세로운 병력 전법으로 역지없이 무너지는 사태를 목도하게된 일본 또한 같은 길을 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유화와 평화로운 방식의 개항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메이지 유신의 단초가 되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한 개항을 통해서 , 근대화의 물결을 받아 들이게 된 샘이고 , 실제로는 1900 초반 전후 부터 일제의 간섭과 국권 침탈의 수모를 격으며 ,  아리러니 하게도 2차 세계대전의 미국과 일본의 적국 입장에서 종전이 됨으로 인해서 해방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사는 모르는 일이라서 , 1차 세계 대전의 경우 일본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 하게 되었지만 ,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주축국의 일원으로 ( 이탈리아 , 독일 , 등 ) 동맹을 맺은 관계로 ,  자국의 개항을 유도 했던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결국 패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옛말에도 있다. 과유 불급 이라고 , 넘치면 모자름만 같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그들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한 욕심은 영원 할 줄만 알았고 , 중국 만주 사변이나 , 대만을 침공 할 당시 혹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군화발 아래 놓여 지게 하는 데에는 끝모를 그네들의 욕심에 있다.  나라의 운명은 또한 바뀌고 나누어 질 수도 있는 것이 그러하다.

 

요즈음 , 혹은 최근 몇년사이의 아배 정권은 , 우익 보수 권력에의 총 정점에 서있고 , 평화 헌법을 개정하여 , 이젠 자국의 보호를 빌미로 다른 나라와도 전쟁을 불사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네 정부나 , 정치권들의 행보도 느리지는 않지만 국민들 개개인도 이러한 그들의 다시 침략 야욕이 불타 오르기 전에 미리 그 싹을 제거할 혹은 대비할 방비를 해 두는 것이  앞으로의 양국간의 관계 유지에도 유리 하지 않을까 ..

 

100여년전 힘이 없었던 조정 왕과 세력 타툼 세력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편대로 중국과 러시아 , 그리고 일본으로 붙어 있기에 바빴고 ,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각 제국주의 나라들은 한반도를 정치적 / 상업적인 교두보로 활용 하기또한 좋앗던 것이다.

 

이제는 누구라도 알고 있듯이 4대 열강 , ( 미국 , 중국 , 러시아 , 일본 ) 의 주변국으로 두고 있는 한반도의 사정은 100여년의 그 당시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만 , 분명한 것은 이리 저리 정치나 외부세력에 휩쓸려 본질적인 자국의 힘을 키워내지 못한 다면 다시 한번 그러한 역사적인 치육을 겪지 않으리라고 장담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통일 한국의 위상을 기꺼이 세우고 , 주변 국들과도 평화를 공존 하며,  서로간의 상생을 도모 하는 방안으로 가는 길을 모색  / 협력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어느때 보다도 커지고 있는 현재 이다....  < 책력거99 >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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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120년 만에 밝혀지는 일본 군부 개입의 진상
이종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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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책제목이자 곧 사건의 본말을 파혜치기 위한 화두어 이다.   2009년도, 재일교포 사학자 김 문자 선생의 < 조선왕비 살해와 일본인 > 2009년이란 책을 통해서 우치다 영사가 하라 외부 차관에게 보낸 비밀 서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 경성 수비대육군 소위에 의해 왕비가 피살되고 , 미야모토 소위가 바로 그 당사자로 보인다는 사실 관계자료에서 출발한 이책은 이전의 추리 논증이나 역사적 고찰 없이 다만 일제에 의해 전해저 내려온 그냥 단순한 낭인 폭도들의 집단에 의해 무참히 살육 당한 당시 궁궐 안의 아수라장을 생각해 볼때 일대 사건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무지 몽매한 대한 국민 백성들이 이재껏 ,  나라님의 말슴을 잘 듣고 ,  하라면 하는 시늉이나라고 밥걱정 하면서 하루 하루 연명 하던 시절, 그리고 , 을미 사변 이후의 아관파천과 더욱 복잡 다단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의 시나리오에서 결국 1905 년 한일 합방 까지 거침 없이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본다면 단순한 광기 어린 집단이 아닌 , 치밀하고도 조직 적인 군부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 작전" 의 성격인 것이다...

 

그간 많은 사료로서의 자료를 대체 해준 < 우치다 보고서> 등에서는 이미 많은 조작과 은폐가 된 상태에서의 공식 문건이므로 신회성의 가치가 떨어 진다고 하겠다.

 

비록 흥선 대원군이라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또한 조선의 마지막 군대 해산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그들을 이용하고 뒤로는 치밀하게 사건을 만들어온 그들의 진정한 배후는 당시 일제 군부의 수뇌부라는 논리에는 심증이 가는 바이다.

 

단순 낭인 집단들의 폭거 엿다면 , 한국 지리에서도 비밀에 속하는 궁궐 내부 지도와 도랑을 타고 들어가는 진입로 지시까지 완벽 하게 설명 할수 있을까 . 도한 미야모토 소위가 당시 앞장서서 민비를 살해 하지 않았더라면 , 그리도 주도 면밀하게 본국으로 소환 하고 이듬해에 자의반 타의반의 전장터인 타이완의 헌병부로 발령내어  결국 전사자로 군갑 하게 만드는 그들의 용의 주도함에 치가 떨릴 뿐이다. 

 

이작전에 가담했던 일부 군인 집단과 , 작전 세력과 그 배후들 , 영사와 영사관에서는 나중에 되어야 알게 되었다고 하여도 이도한 역사적 사실 은폐에 적극 가담한 죄는 치유 될 수 없는 그들의 역사에 또한 오점을 남기지 않겠는가 ..  본국으로 소환된 사진사와 무전기사의 함구령 ,  결국 신사에 까지 합방 되지 못한 당시 살해범의 유력한 용의자인 미야모토 소위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그에 부합되던 되지 않던 사건의 객과적인 본말을 지켜 보는 입장이라면 , 우선 나라의 약함과 왜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 서로 내분만 일으켰던 조선말의 상황이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8월 에 들어서기 전 한번 조상들에게 질문 해야 한다고 본다... 왜 그리도 적들을 감싸 안고서 내부 싸음만을 일삼았느냐고 말이다. 

 

나라든 집안이든 망하기 전에 반드시 조짐이 있다고 한다.  의견 불일치의 일로 부터 , 여러가지의 세력 다툼가지 , 당시로서는 그러한 일들이 그들의 존치를 좌우 하는 일이 였기에 그렇게 처신 을 하였겠지만 , 결국 나라를 일제에게 내어 주게 된 연후도 거슬러 올라가면 벌서 1592 년 임진란 전후 부터라고 할수 있겠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국제독에 의해 1854년 2. 13일 개항을 하게 되고 이후 메이지 유신 ( 1871 ) 이 빠르게 진행되어 그 진보 세력이 주축이 되어 하나의 열강 세력으로 발전 하게 된다.  1883 년 인천항 개항이 이뤄진 조선은 이후 일본인과 러시아 중국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1871년의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의 미국과의 교전에서는 많은 인명 손실을 보았으나 지켰내었다고자평 하나 이는 또다른 괘적으로의 이행에 불과할 뿐이란것을 역사는 객관화 해서 알수 있다.... 결국 나라의 부강을 키우지 못하고 내부 분란과 외부와의 선진 기술을 제때 받아 들이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 식의 조선은 차츰 쇄국정책의 테두리안에 자업 자득을 만들어 낸 부분이 없지 않아 잇지 않을까 ,,,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이란 섬나라 보다 먼저 무기 체계를 확립 하고 , 규율이 잇어 제대로 된 군대를 만들고 , 안으로는  안정과 밖으로는 강건함을 견지 하였다면 , 이리도 쉽게 나라를 이리떼 들에게 넘어 가게 만들었을가 하는 안타가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다변화된 사회이고 , 다중 무역을 하는 시대 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지속적으로 독도 또한 자신들의 영토라는 주장을 지금껏 해오는 바이고 대부분의 초, 중등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라 나왔기 때문에 자국의 역사 틀어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또한 제대로된 역사 의식을 반영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다면 통일 이후의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라의 부강은 안으로 부터 만들어 나아가야 하고 , 밖으로의 대응도 유연 하게 하면서 받아 들일 건 받아서 배우고 또한 익혀서 나아가야만 한다.  싫든 좋든 우리는 4대 열강 나라들의 틈 바귀에 놓여져 있는 형국은  120년전 민비 왕비의 살해 당시나 현재나 변함은 없다. 다면 , 정치 , 경제적인 부분으로의 종속이냐 왜곡이냐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지고만 있을 뿐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이러한 부분을 직시 하며, 세계인의 눈에 같이 동참하고 자력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데 전 세대간의 힘이 고루 합해져야 하지 않을가 생각을 해보는 < 책력거99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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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부자들 - 나답게, 폼 나게 살아온 열 두 조르바를 만나다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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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 부자들] 저널리스트 , 칼럼리스트 조우석의 인터뷰 기록집이다... 책에는 각 분야를 망라한 인생 부자?들의 타이틀을 거머쥘 만큼 내공이 넘쳐난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가 진행 된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는 없는 것에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앗다..

 

그리고 아무래도 인터뷰의 특성상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주로한 주제가 아닌지라 인생을 풍부하게 살것만같은 분들을 모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 , 전직 대통령등으로 주제가 벗어나 버리 겠지만 말이다..

 

여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하나의 공통 점이 보인다.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 하고 있는 그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하여 여유 롭다 여유 로운 여백이 느껴 지는 만큼 인생을 살아온 내공이 슬며시 느껴 진다.

 

산전 수전 , 공중전을 다 겪고 소리꾼으로 거듭난 장사익 이라든가,  의외로 유치원을 운영 하면서 일상의 소소함을 행복으로 채운 김미숙 옌예인 .  거칠은 창법으로 유명했던 한대수의 가수 인생은 그분 자체로만도 책 한권 분량이 나올 듯한 스케일이다.

사진계의 기린아 혹은 독특한 관점을 가진 - 김 아타라는 작가 . 그리고  소녀 시절 이미 불가를 꿈꾸었던 야무진 정목 스님 .

벤처 기업을 하다가 시인이 되어 버린 류근시인  , 천안의 시외 버스 터미널을 고가의 미술품으로 전시해 놓은 특이한 이력의 기업가 김창일 회장 ..

 

이 곳에 모아 놓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여백이 있어 언제든 채우고자 하면 , 자신의 색깔을 내어 주변부와 조화를 이룬다.  과거의 맞지 않았던 부분도 이들의 프레임에 들어오면 하나의 정물이 된다.  그림이 그렇고 , 사업이 그렇고 , 사는 것 또한

멋지게 정할수 있는것이다. 

 

누군가는 애기 한다. 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 세상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거 아니냐고 , 그렇지만 인생 부자들은 달리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구하는 세상이 방 4평 짜리에서 행복을 추구하면 절로 노래가 나오는 것이 나의 인생이다 라고 하는 한대수의 인생관에선  그러함이 묻어 난다.

 

누구나 영혼의 속도는 다른 법이라는 것을 일찌 감치 깨달고 불가에 귀의한 정목 스님 또한 소녀 시절의 순정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본다는 것 ,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항상 TV 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듯이 , 자신만의 인생을 가지는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다른 곳을 지향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또하나 여기 소개된 사람들의 공통 점은 제각가 다른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라는 것이 공통 점이다. 자신만의 생활 철학을 갖는 다는 것 , 이로 인해 자신의 갈길이 정해지고 타인들에 대한 관계도 보다 원할 해지는 영리한 방법을 터특 하는 길이  남과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풍요 롭게 헤줄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자문 해 본다.

 

마지막으로 ,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인터뷰어는 인생 부자 일까 ?  인터뷰 하는 내내 행목 하였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된다.  일로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러한 거리감을 떨쳐 버리고서 상호간 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는 듯 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현시대의 자유인 - 누구나가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 보고 싶다고 말들은 하지만 사실  상대적인 자유를 가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사실 자체가 행복인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의 비중 만큼이나 이러한 존재를 고마와 해야 하는 건지 조차도 ....

 

좀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인터뷰 2탄이 언제 나올까 문득  궁금해진 < 책력거99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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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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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원제 [ The rape of Nanking ] 의 저자 아이리스 장은 지금 이세상에 없다. 국수주의 적인 일본 우익 단체들의 협박과 압력 , 그로인한 심신의 피로도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 , 서평전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  

 

어느 역사나 그러할지 모르지만 특히 전쟁의 역사 ,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쟁 와중에 겪어야 하는 민중들의 고초는 말로 다 할수가 없다. 근대사의  한국 전쟁이 그러했고 ,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만주 사변이나 이책에서 집중 조명한 난징 대 학살이 그렇고 , 2차 세계 대전시의 유태인의 학살을 주도한 독일의 나치 정권이 그러하다...

 

난징에서 학살로 숨진 추정 사망자는 대략 30만에서 ~ 40만 사이라고 한다. 이는 두번의 원자탄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두 도시 사망자 총수를 뛰어 넘는 것이고 ,  1937년 중/일 전쟁이 선전 포고 없이 발발 하면서 그해 12월 약 6주 정도의 짧은 시간안에 인명 대청소를 시행한 광폭한 폭도들의 군인 집단이 살상이 가능한 최대 수치 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견할 만한 것이  독일 나치에 저질 러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이다.  제너사이드 가 가능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어떤 것이지가 궁금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책 기록에서도 일부 일본 군인들은 사람들을 구타 하는 것 조차 두려워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기회에 살인과 폭력을 일삼게 되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에서 아무런 법질서 없이 행해진 죄악이 집단 면죄부를 받는 다고 생각 하는 순간  이들 개개인의 양심은 다를 지 모르지만 집단 광기의 흐름은 그 누구도 제어 할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라와 , 정치 , 그리고 군대 조직이 지탱 하기 위한 기반에는 규율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컨트롤 하는 집단 우두머리들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의 위계 질서를 깨드리면서 까지 평화 행동에 나서는 무리들은 전쟁 중에는 당연하게도 배척 되었고 배제 되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원제 그래로 라면 최악의 집단 강간 살해가 일본 군국주의 자들의 치밀한 계획아래 , 합법적으로 저질 러진 만행이 난징 대학살 사건 이다... 아직까지도 국가적인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당시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껏 절규 하고 있다... 세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지만 일본 국수주의 자들의 조직적인 방해공작 또한 만만 치가 않다.. 자국의 교과서에서는 전혀 그러한 내용을 표기 하지 않는 역사의 왜곡 , 날조

심지어 ,  전쟁중의 일이라 어쩔 수 없다라는 어처 구니 없는 문건의 글을 보면 , 이나라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을것이라 확신 한다. 

 

독일 또한 비숫한 과오를 저질럿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 국가의 총수 , 미르켈 총리는 언제나 반성과 화해의 모드로 타국민의 정서와 국제법에 준한 피해 보상을 약속 하고 절차에 따른 이행을 하고 있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현제 2014년 일본은 가장 우익 스러운 아베정권이 국정을 좌지 우지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중국 전쟁에 대한 피해 보상은 커녕  자국의 이익을 구하기에 급급 하다.  그런 마당에 신사 참배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 까지 하다.  한국민에 대한 위안부 논쟁 또한 그들의 눈엔  버들나무 바람 날리기 이다.

 

생각해 본다.  일본인이 살고 있는 나라 자체가 이러한 광기를 저면에 가지고 있는 민족성인가. 아님 그 시대가 그러한 광기의 역사를 묵인해 준 손쉬운 방편 이었는가 ,  1980년대 후반까지 천수를 누리다 제명에 죽은 히로 히토 천황은 그저 살아 있는 신인가 ? 아님 그네들의 그간 피묻힌 역사의 면죄부의 대리인지 파악해 보고 싶다..

 

역사를 다시 돌아가 ,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을 앞서 개항 시키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 그리고 이후 40년 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하지 못햇더라면 ,- 난징의 비극은 없었을 텐데 ...  1904년 러일 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은 이후 1910년의 한일 합방은 아주 손쉬운 먹이감이었다..   당연하게도 1931년 만주 사변을 고의로 일으켜 중국과의 마찰로 전쟁의 빌미를 잡은 그들은 1937년  선전 포고 없는 대 중국 전쟁을 하게 된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마무리 되고 나서 1946 년5월 ~ 1948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이 개정 되었고 A 급 전범 7명이 사평 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 졌지만 최고 지도자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면죄부를 받았다.   기소 조차 되지 않은 그를 보면서  수많은 우익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동일하게 전쟁의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 하는 지도 모른다.

 

집단적 광기는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도 있다. 중국 난징 에서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 하지만

전쟁의 죄악을 반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대로된 절차 없이 무마하거나  그러한 일이 아니라고 왜곡 시킨다면

그나라의 장래는 불확실 하고, 또다른 광기의 분출구를 찾는 다른 목적에 의해 언젠가 터질 지 모르는 화산섬이기도 하다.

 

불행 하게도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러한 화산섬을 옆에 두고 이렇게 무심히 생활 하고 있다.. 위로는 개념없는 어린 통치자가 할아 버지 흉내를 내느라 과잉 정책을 편다.

 

이 첵 프롤 로그에 이런 말이 있다 [ 역사를 무시 하는 사람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by 폴리처상 수상자 , 카를로스 로물로 . 

 

난징의 강간 - 은 지금도 진행되고 치열하게 작용 하는 세계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과도 같다고 애기 하고 싶다. 우리는 이 정의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  가녀린 목소리로 자신이 겪어 보지도 못했던 참혹한 일들을 하나 하나 재구성에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의 책으로 발간하게 된 그녀의 용기와 그들을 도와 진실의 목소리를 오늘도 전파 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끝나지 않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고야 말리라는 것에 세계 정의의 미래를 걸어 봅니다. <  책력거99 >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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