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의 힘 - 복잡한 세상을 푸는 단순하고 강력한 도구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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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만약 미적분학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휴대폰, TV, GPS, 컴퓨터 애니메이션도 없었을 것이고, DNA의 비밀을 밝히거나 호주머니에 5000곡의 노래를 담을 방법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며, 무사히 달에 갔다 올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식어가는 수프 그릇의 온도부터 전염병의 확산, 주식 시장의 출렁임, 행성의 궤도, 블랙홀 충돌로 발생하는 중력파에 이르기까지, 미적분학은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우주의 언어 그 자체이다.  ]]  

세계적인 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미적분의 힘』에서 미적분이 가진 위력과 원리, 그리고 미적분의 발전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부터 시작해, 아랍과 인도의 수학자들, 갈릴레이, 케플러, 페르마, 뉴턴과 라이프니츠 등 빛나는 지성들이 미적분학의 탄생에 기여했다


일반인 독자들을 위한 서설에서 저자는 최대한 가볍게 혹은 읽기 쉽고 이해 하기 쉬운 언어로 애기 하고자 하엿으나 일반 수식과 간단 명료하게 에를 드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수식이 참조 된 점은 이해할 만하다. 


아래 미적분한에 대한 사이언스 유트브 간략을 살펴 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https://youtu.be/GJO-52Xm6JU


기원전 제논과 아르키메데스 의  철학적인 논제로 부터 출발한 무한에 대한 개념부터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워 진다 수학적 무한분배와 무한대로의 여행은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 지각 하기 어려운 현상이고 난제이다. 수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초기에는 단순한 추론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거리와 시간을 쪼개는 미분화와 이를 다시 합치는 적분 ( 쌓을 적)을 이용 하여 면적과 시간의 함소도 구하고 , MRI 단충 촬영 기법과  몇해전 영화로도 나왔던  NASA 의 우주 선의 궤도 곡선을 구하는 히든 피켜스의 존슨 같은 사람이 이용한 것도 미분 방적식이다. 


https://youtu.be/ItSUOpH4A5w


우리는 고등 학교 시절 배웠던 도함수와  방정식을 다시 소환해 볼수 있다.  선생님께서 어떤 실수 또는 정수를  '0' 으로 나누는 것은 무한대를 소환해 낸다고 한다.  수치로 증명해 볼 수 는 없을까 ?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해석으로  어쩌서 무한대를 만드는지 보여 준다. 


예를 들명 , 자연수 8 이 있다.   나누기 0 을 한다면  무한대가 나오느데 잘 이해가 안되면 아래를 보자. 

0에 가까운 숫자 하나를 만든다 .   0.1 이다.     8/ 0.1  = 80이된다. , 이어서  좀더 0 에 가까운 숫자인  0.001 로 나워 본다..   8/ 0.001  = 8000 이다.  계속 0에 가까운 근사치를 넣으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8/ 0.0000001  = 80,000,000 .

8/0.0000000001  = 80,000,000,000  .....

 0.의 소수 아래 자리를 거의 무한대로 늘리면 결과는 더욱 더 큰수가 나온다....  결국 무한대로 수렴 하개 된다 . 


이해 하기 쉽게 도식화 하였지만 초기 수학자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 하고 거꾸로 추론에 맞는 방법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뉴턴 역학과 라이프 니츠의 미분 방정식이후로 ,  16- 17세기를 넘어서면  갈릴레이 ,의 천체 연구롸 케플러의 행성간의 운동 법칙 또한 미분 방정식에 따라 그 정확한 궤적을 계산해 내였고 , 현대에 와서는 슈퍼 컴퓨터의 도움으로 중력장의 간섭이 궤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 할 수 있게 되어서 천체적으로 해왕성 의 이후 행성에 대해 존재를 모르다가 계산만으로도  그 궤적을 유추 하여 명왕성을 발건한 일은 수학 . / 과학적으로도 유의미한 사건 이었다. 


수학과 과학의 발견은 발견과 발전을 거듭하여 ,  고전역학에서 아인시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러선 우주는 평평 하지 않다 ? 라는 가설을 증명해 내었고 ,  중력이 작용 하는 계에서는 시간 또한 다르게 움직인다라는 것이 증명 되어서 지금도  지구의 성층권 이상의 궤도를 도는 GPS 위성의 시계 오차는 지구상의 시계과 아주 미세한 느림이 있고 이를 보정 해 주는 작업을 해오 고 있다. 


슈뢰딩거의 양자 입자론이 나오고  푸리에 선형 방정식 풀이가 나오면서  의학 과학게에 또한 PET 단층 촬영이 가능한 공명 장치를 만들게 되었고 ,  최근 슈퍼컴퓨터의 지적 게임은 컴퓨터의 인공 지능을 활용한 그 이전 대수학자 이자 ,  최적화 알고리듬을 개척한 앙리 푸앙카레의 공적이 크다.  현대 수학자들이나 과학자 들이 느끼는 미래의 두려움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판정이나 확산이 어떤 경로로 카오스 적으로 발현 하느냐의 문제이고 이는 한때 , 신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있다라는 확정론적 세계관에서 탈피한 자유 의지론에 한발 앞서기는 하나 태초 우주에 대한 경외감을 해석 하기에는 매우 부족 하다 , 


아주 최근 , 2015년경에 인류는 우주파라는 것의 빛을 분석해 내었는데 ,  달과 지구 사이 거리의 미세힌 빞의 떨림 (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차이를 파악해 내었다고 하는데 이 빞은 우주의 탄생 이후 지구로 발사된     10억 광년 전의 빟이라고 한다.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광년이고  지구상에 생물이란 것이 생기기 이전에 어떤 미지의 항성에서 빛이 발사되어 지구에 도착한지 10억 년이 걸린 셈이니 그간 , 생물의 세포 , 단세포 , 아메바 ,  등 의 과정을 거쳐 , 호모 시피엔스 시절 약 1만년의 시간을 거슬허 현생 인류 그리고 약 1000년의 시간 동안 지구와 우주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인류가 발견 해낸 최근의 업적 이다....    도대체 , 1억 광년도 아닌 10억 광년이라는 세월은 과련 무한이라 할만 하지 않을까요 .. 그 실재 하는 빛은 존재 만으로는 우리는 우주를 관장하는 어떤 힘 의 존재에 경외감이 느껴 지는 하루 입니다..  Written E 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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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 선생 세트 - 전2권
송현 지음 / 창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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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년대 유신독재가 서퍼렀던 시절 , 일개 중등 교사의 신분으로 삭발투혼을 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 일면식도 없던 어느 사립학교로 부임 하게된 하륜 선생,  자칭 함석헌 선생의 제자이고,  외솔 최현배 국어학자의 제자이고, 공병우 박사의 한글 기계화 타자기의 국민보급에도 힘썼던 시절 ,  그 시절은 유난히도 춥고 , 어둡고 , 베고프고 , 외치고자 하여도 들어줄 사람 없는 공허한 시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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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6부작으로 이루어진 이글은 1, 2권으로 나눠져 잇으나 단막 형태이므로 중간에 흐름을 약간 끊어서 읽어도 크게 무리 없이 내용이해를 할 수 있게 구조 되었고,  저자의 학부 수업시간에 실제 행해졌던 경험치과 그간 살아낸 한 인간의 인생역정이 다름 아니다  . 


사실 이책을 선택 하게 된것은 우연하게도 " 함석헌" 이란 이름 때문이다. 위 어른의 경우 70-80년대를 통떨어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한글 말본 "씨알"을 창간 하시기도 하였다. 

아래는 간략 소개이다. 


함석헌(咸錫憲, 1901년 3월 13일 ~ 1989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출판인이며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다.


광복 이후 비폭력 인권 운동을 전개한 민권운동가이자 언론인, 재야운동가문필가 활약한 그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신천(信天), 씨알, 바보새이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당한 후, 사무원과 소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다가 1928년부터 1938년까지 오산학교의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교육, 언론 활동 등에 종사하다가 해방 후, 1947년 월남하였다. 이후에는 성서 강해 등을 하다가 1956년부터는 장준하의 사상계에 참여하여 정치, 시사 등에 대한 평론 활동, 신앙 활동, 반독재 민주화 운동 등을 하였다.

그의 종교는 초기에는 일본 유학 중에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자였다가 중기에는 기독교였으나 후기에는 장로회로 바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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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70년대와 80년대를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중등 교복 시대를 상상해 보며 이글을 읽는 다면 다소 의아해 지는 부분도 있고 , 지금 현제 시점에서 보아도 매우 자유 분방하고 자기 주체적인 생각과 삶의 자세를 강조 하엿음이 느껴지는 대목대목이 있다. 아래는 몇가지 일화를 발췌해 본다. 


우선 인사법이다. 대개의 경우, 반공 국시인 시절이라 , 당시 학도 호국단이란 것이 학교 마다 있어 왔고 교련 시간도 있어서 군사훈련에 대한 예비 지식도 받았던 시절이다...또한 학급당 인원수는 과밀 하여 현재의 20-30명 수준이 아니라 아마도 50-60명 정도 혹은 그 이상 콩나무 시루 시절의 학교의 급장( 반장)은 무소 불뤼의 완장 의 대리인 이었고 , 또한 공립 학교가 아닌 사립 학교의 경우 재단과 교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선생들의 지위는 말 그대로 갑/을 관계 내지는 종속적 관계 그 이하 , 그이상도 아니다. 


"차렸" , " 경레" 라는 일사 불란한 수업 시간 시작 인사를 자연스럽게 , " 반갑습니다." 또는 " 수고 하셨습니다."로 개별적인 인사법으로 바꾸는 방법부터 ,  정무을 들어 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수위실 ( 경비실) 에 근무하는  어저씨들에 대한 인사법부터 가르친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인간의 자격이라는 말이 있다. , 그 인간의 됨됨이와 자격에 맞는 옷과 거울이 있듯이 인격에 맞는 말과 언행과 행동 습관이 있다.   그는 그러한 태도를 벗어난 것을 지적한다.  


학생들은 하나의 인격체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잘못된 세계관과 가치관 혹은 균형 잡히지 않는 지식과 편향은 얼마나 삶의 좌표를 기울 이게 할 지도 모를 일이고 이의 가장 주된 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선생님이다. 


국어교사 이엇기도 한 그는 , 참된 지식과 지혜를 학생들에게 전해 주고자 , "교밖공부" 라는 챕터를 만들고 50분 강의 중 40분은 정규 강의에 , 나머지 짧은 10분은 학생들의 스폰지 지식과 지혜를 확장 하는 일에 매진 하였고,  이의 확장은 학교내 ,외부를 넘어 외부 강의까지 들어 오게되는 바쁜 ? 일정이 생기게 된다.  30여년전에 풀어 혜진 그의 논법이지만 지금 2021년에 들어가 가슴에 와 닿고 , 뼈에 사무치는 글이 종종 눈에 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의 작법은 허투루 남의 것을 습작 하였거나 카피 하거나 , 인용 하지만은 얺았다라는 사실 이다. 


목차중 몇가지는 매우 인상적인데 다음과 같다. 

1권에서는  

1, 5분특강 예고와 정북향 

7. 위험한 일을 할까 ? 안전한 일을 할까 ? 

9. 수학자의 또라이짓- 평균치 

11. 오페라를 처음본 여자 어린이 

16. 저질 마술사와 짝통 성직자의 공통점 

20 남을 가장 잘 돕는 방법.

25. 긴꼬리도 밟히고 짧은 꼬리도 밟힌다.


3부 ; 학생 최대의 적은 교사 

4. 불신을 통과 하지 않는 신뢰는 위험하다. 

8. 가장 성공한 사람이 가장 실패한 사람이다. 

10 남의 말을 듣는 자세. 


4부 ; 칸트 오빠와 하륜 오빠 .

2. 파고다 공원의 고수 할아버지 

3. 톨스토이에게 일침을 가한 사람 

8 신춘 문예 투고용 ' 오빠의 방" 

14. 자비로운 거짓말

19. 참치 오빠이야기 


5부 송창식의 고래사냥 긴급 특강 .

7. 나훈아와 노훈아의 근본적 차이 

15 장자를 씹어 먹고 피와 살로 만들기.


6부 은혜의 나무를 눈물로 심은 제자들 , 

3. 소동파 과거 시험 문제와 답안지 

4. 헨리 포드의 아들이 배우지 못한 짓 . 

8. 일본 제국 호텔의 쓰레기통 . 

15. 가사를 목 외우는 가수와 원고를 보고 읽는 교수 

20. 용기가 최고의 덕목이다. 

22 의식을 추구하러가다

23. 희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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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나열하여 무슨 내용이랴 하실 분이 있겠지만 , 하나 하나 단편 소설 혹은 판토마임 같은 짭은 시간에 

나름 의 생활속의 혹은 세상살이의 진정한  깨달음을 학생들에게 쉬운 언어로 혹은 비유적으로 때론 문학소설로 때론 연애 편지를 빗대어 , 때론 자신의 어린 시절 회초리 맞은 이야기 돈을 도둑질 하여 양갱을 사먹은 일화까지 인간적인 면모와,  수많은 책을 섭렵하여 읽어 내거나 정독 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다방면의 깊이와 넓이에 또한 놀라웁다. 시인 이자. 소설가이기고 한 그의 업력은 마지막 페이지의 수많은 이력과 약력으로도 넘쳐 나지만 무엇 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을 위해 제자들이 학교에 기념 식수를 해 주었다라는 사실이다. 만약 

이글이 다시 읽혀지고 그 에전 교정의 추억을 회상 하는 학생 들이라면 벌써 60녀대 훌쩍 넘는 중년의 신사 들일 터이지만 어린 시절 진한 학업에 혹은 놀이로서의 학문의 향기를 보여준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  지금쯤 아마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바쁜 생활을 하는 건강한 하륜 선생을 또한 다른 자리에서 만나 뵙기를 고대 하며 이책을 덥는다.   Written by  E HAN 


Note 1:  소동파 과거 시험 문제 

Q; 군주의 정의와 자비에 대하서 논하라 

A ;  군주에게 자비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그러나 군주에게 정의는 너무 크면 안된다. 왜냐면 군주의 정의 가 너무 크면 잔인해 지기 쉽기 때문이다....


Note 2; 정북향 을 찾아라 

A ; 정북향은 팩트 ( fact ) 이다. ,사실만이 정북향을 가르킨다.  인생의 정북향은 ? 


Note 3; 일본 제국호텔의 쓰레기통은 , 손님의 체크 아웃 후 24시간 후에 비워 집니다. 

A ; 손님이 떠난 후에도 그객실의 휴지를 반드시 하루를 더 목혀 둔다고 합니다....1890년대 오픈 .

손님들이 미처 찾지 못한 중요한 메모나 단서가 되는 서류 조각등을 찾기 위해 재방문시 내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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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쓰는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 게임 컨셉 디자이너와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알려 주는 실무 디자인 입문서 진짜 쓰는 시리즈
이하나(좐느).박경나(톰왔) 지음 / 제이펍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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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서두에                            

[[ 매일같이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쓰는 디자이너라도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제대로, 잘 다루고 있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매번 똑같은 기능만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제대로 알려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무궁무진한 기능을 탑재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이제 실무에서 많이 쓰고, 내게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배워 보면 어떨까요? 처음부터 제대로, 핵심 기능만 확실하게 익히면 누구든지 멋진 그래픽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대상은 주로 아래와 같다. 

                                    

이 책의 대상 독자 
- 툴을 다뤄 봤지만 스스로 실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예비 디자이너
-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실무 팁이나 유용한 기능을 배우고 싶은 신입 디자이너 
- 홍보나 개인 브랜딩, 취미 목적으로 직접 디자인을 하려는 일반인,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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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책은 실습위주의 책자 이고 어느 정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트로 작업을 하였던 디자이너 일지라도 본인이 직무상 많이 쓰던 기능 위주로만 사용 하였다면 , 아무래도 좀더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실무자들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 


아래 우선 예제 파일 또한 링크로 걸어 놓은 Notion site 로 이동하여 다운 받을 수 잇도록 해놓았다.  


https://jeipub.notion.site/4d57048b6d5f4573bc7534634bdc772d


또한 실습에 사용한 폰트를 준비 하기 위한 링크는 다음과 같다. 

스웨거 폰트 ; https://www.swagger.kr/font.html

양진체; http://supernovice.org/font/


독자 지원 폰트 목록; https://jeipub.notion.site/f8c0c48cfc6a421998a0a8baf1cc4060

또한 실습을 진행하기 위한 무료 7일간 사용 할 수 잇는 한국 adobe 센터를 방문해 보자 

https://www.adobe.com/kr/

어도비 사이트를 둘러보면 기본기능을 익힐 수도 있는 튜토리얼 안내도 잘 나와 있다. 

https://helpx.adobe.com/kr/photoshop/tutorials.html

다시 글 주제로 따라 가자면 골격은 크게 , 포토샵의 경우 , 기본 툴바와 패널 익히기 , 기본 기능으로 사진 보정해보기 , 인물과 배경, 다양한 모양 변형이 가능하다. 

또한 실무에서 많이 사용 하는 드로잉 작업시에 손 느낌을 살리며 선 추출 하기나 Pen tool 을 익숙 하게 사용 하는 방법 , 등 클리핑 마스크와 레이어 블랜드 모드를 이용한 채색의 실습 예제 또한 작업 하기에 좋다. 


여기서 잠간 저자 들이 참여한 유투브 동영상 간단 강연을 보고 가기로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94MieJ42_84

추가로 실무에서 써먹기 좋은 기능들은 이중노출과 네오사인 효과의 배너 , 패스 클리핑 마스크를 이용한 풍경 표사 등이다 .마찬 가지 방식으로 일러스트레이트를 차근이 예제에 따라 학습 하다 보면 ㅡ 왠만한 프로페셔널한 사진 보정 작업과  기본 일러스트레이트의 작업을 보다 원할하게 할 수 있는 프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래도 작업 환경이 디자인 회사 이거나 이를 활용할 목적의 학습을 병행 할 수 있는 학생이면 좀더 가시적인 효과를 배가 할 수 있고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전문가 기능을 올라 타는 기간도 좀 더 단축이 되지 않을 까 한다.   일하고 학습 하느라고 바쁘게 보낸 직장인 들이라면 ㅡ,   보다 강력한 툴기능이 탑재된 어도브 최신 버전을 PC 에 깔고 , 혹은  Ipad을 작업대 삼아서 하나 둘 만들어 가다 보면 분멸 프로의 선에 어느 순간에는 도착해 있을 것이라 믿어 본다.  일신 우일신 하는 직장인 여러분들의 열공을 빈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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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뎐 不動産傳 - 역대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재판하는 법정소설
김용민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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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체제 이자 법치 국가이다 또한 , 헌법이 명시 하는 바에 의하면  누구라도 자유로운 의사 표시와 토론 논쟁 집회 및 결사 , 또한 반대의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독 최근 수년간의 부동산 흐름을 보자면  시장 경제와 역행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것이며, 또한 원천적인 뜻 조차도 어디서 차용 되고 인용 되었는지를 모를 절반정도는 사회주의 공공정책성 경향이 짙은 토지 공개념 그리고 나아가 주택 공개념이란 개념 조차 일반인들은 생소한 용어의 잣대로 , 규제와 자본 주의 방식 제한으로 개개인 사유화에 잠금 장치를 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극대화 하는 초유의 결과를 초래한 지금의 부동산 정첵 및 시장 규제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로  , -책의 리뷰 서두를 시작 하고자 한다. 


소설 형식을 띤 책자 이지만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의 부동산 성공 / 실패 정책들을 나열 하며 하늘 재판 형식을 빌은 내용이지만 , 주요 본질은 부동산에 접근 하는 정부의 자세와 정책 그리고 그로인한 결과물의 현실이다. 


많은 대다수의 일바 소시민들이 느끼는 주택에 대한 소유 채감성은 너무나도 커서 이제는 영끌을 모아서도 내집 하나 장만 하기 어렵다는 애기가 들려오고 이런 소리에 발맞춰 , 어느 정치가는  1세대당 1채의 주택만을 허용 하는 ?   공산화한 법제화도 시도 한다고 하니 , 어떤 영문인지는 파악해 보아야 할 듯 하다. 


또한 , 주택 공급 보급률이 거의 90% 이상을 육박 하고 지역에 따라 100% 초과 한 지역도 있는 마당이나 현실 시장 경제 입장에서 보자면 주택을 소유 할 수도 있고 , 투자의 목적으로 볼 수도 있으며,  본인이 자본이 있더라도 다른 투자를 하기 위하여 주택을 임시 거주나 , 임대의 사용목적물로 보기도 한다. 하여 세계 어느나라의 빅데이터 통계를 보더라도 주택 보급율이 거의 95- 100% 되더라도 자가 소유율은 거의 50-60% 에 머물 드며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 이런 시장 현상을 정부와 언론이 나서서 소유룰이 90% 가 안되기 때문에 집을 많이 가진 사함들이 팔아야 하고 , 없은 사람른 쉽게 구매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 이 과연 합당 한 일인가를 떠나서 , 공공이 주도 하는 규제와 공급 정책 또한 너무나도 관제화 되어 있다라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거꾸로 애기하면 실상은 집을 소유의 대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수를 차지 한다라는 것이 현실 경제이다.  그와중에 투자와 투기도 일어나고 , 본인이 투기의 꼭지라고 판단 되면 손해를 보면서도 팔려고 하면 , 자연스럽게 균형점이 생기고 , 안정화도 생기는 법이다. 


이제까지의 규제 카드는 어쩌면 공영 개발이 앞장서서 , LH 나 기타 개발 건설사들의 수익률을 극대화 하는데 방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마저도 하게되며, 최근의  성남시 대장지구의  화천 대유 사건등과 같은 초 법적인 사태도 발생의 빌미를 이미 제공 하였다라고 하면 과언이 아니다. 


공공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와야 하고 , 형평성과 효율성이 강조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 한국 감정원이나 국토부 소속의 감정 평가들의 잣대는 정부나 LH 시행 예정상의 토지 수용 보상과 맞물려 있어 적정 보상가라는 명목 하에  보다 공사 쪽에 유리한 시세 감정을 하고 이를 근거로 토지 수용 보상법을 적용 하면 일반 토지주들은 손실이나 인센티브를 보상 받을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 1948년 정부수립후 약 10 수년 이상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가 당시 집을 지을 수 있는 집 터 보다 가격이 비쌌다고 한다. 이후로 60년대 - 70년대 공공 개발과 새마을 운동을 시작 하면서 도시 라는 것이 좀더 편리성과 도로와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수도권과 서울로 개발 압력을 받게 된다. 이후는 우리가 알다시피 70년대 후반 80년대 강남 개발 축과 맞물리면서 다수의 기업들과 투자자들이 서울과 강남으로 몰리게 된다.  노태우 정권에서의 200만호 건설이 1기 신도시 건설에 불일 지폈고 이고 수많은 행정 도시 건립과  미니 신도시들이 건설되기에 이른다.. 밀레이얼 시대인 2000년대를 넘어서 2008년 리먼 사테에 이르기 까지 , 수도권의 집중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기에 이르렀고 , 중심지 이론에 따른 원뿔 중심가격 상승세는 강남을 위시하서 더욱 가파르게 오른다. 


토지는 사유제인가 공공제인가 에 따른 논쟁을 가속화 한 것이 그 즈음이기도 하고 기록원의 기록에 의한 토지 공개념 도입 탄생 배경을 보기로 하다.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6153&pageFlag=&sitePage=1-2-1

근거    

「부동산종합대책」(1988년 8월 10일)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1989년 12월 18일)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


배경  

1986년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토지가격은 1987년 이후 다시 상승하였고,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고 경제가 호황에 접어들고 올림픽 개최 주택 2백만 호 건설 공약 등으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1988년 8월 10일 부동산가격상승 심리를 냉각시키기 위해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조치의 주요내용을 보면, 특정지역을 확대 고시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고, 공공주택을 개발하고 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고,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토지거래허가제의 확대 실시하고 관인계약서 추진하고 등기의무화를 추진하고, 과표현실화를 통해 부동산보유세를 강화하고 양도소득세를 누진 과세하고, 토지보유과다보유세를 개선하여 1990년부터 종합토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토지전산화작업을 완결하도록 하였다.


정부가 이 조치를 발표하면서 토지의 공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로 하고 토지공개념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토지공개념의 도입방안을 검토하도록 하였다. 


정부가 당시에토지공개념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화, 산업화로 토지수요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토지공급이 제한되어 주택 등 건축가능한 1인당 평균대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둘째, 지가가 지나치게 상승하여 이로 인한 소득불균형이 심화되고, 공공사업비가 증가하고 물가불안도 커진다. 셋째, 토지개발에 따른 지각의 급격한 상승으로 개발이익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토지소유주 개인의 사익으로 변질되고 있다. 넷째, 법인이 과도하게 토지를 소유하여 개인의 토지가 적고, 그것도 소수에 집중되어 있다.


토지가 사유재인 동시에 공공적인 특성을 가지므로 공익을 우선으로 하여 토지소유를 제한하여 토지소유를 적정화하고, 토지거래를 규제하여 실수요자의 토지소유를 지원하고, 개발이익을 불로소득으로 환수하고, 기업의 과다토지 보유를 억제하여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토지공개념 도입의 취지이었다. 정부가 이러한 취지에 따라「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토지초과이득세」라는 토지공개법 3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들은 국회를 통과하여 1989년 12월 18일에 공포되었다. 이 법의 기초가 되는「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도 제정․공포되었다.


내용    

토지공개념 3법이라는「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토지초과이득세법」을 말하는데 각 법의 주요내용을 다음과 같다.


「택지소유상한제」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서울 등 6대 도시는 200평, 시급도시는 300평, 읍면지역은 400평을 지역별 한 가구당 택지소유 상한을 설정하였고, 법인에 대해서는 택지사용계획은 허가로 받도록 하였다. 법 시행 2년 후부터는 나대지는 연 6%(두 번째 부과시부터 연 11%), 주택부속토지는 연 4%의 초과소유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하였다. 다만 새로 주택을 구입해 이사가는 사람이 일시적으로 1가구 2주택을 소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6개월의 적용유예기간을 설정하였으며, 기업이 종업원용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취득하는 택지에 대해서는 동 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개발이익환수법」에 의하면, 도시계획사업 등 개발사업, 토지의 형질변경사업 및 이와 유사한 사업을 대상으로 하고, 개발이익은 개발완료시기의 지가- [개발사업 착수시의 지가 + 개발기간중 정상지가 상승분 + 개발비용 + 적정이윤]에 의거 환산하고, 공익사업을 제외한 1천평 이상의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얻는 개발이익의 50%를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하도록 하였다. 이 징수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반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이 법은 1990년 3월부터 시행되었다.



「토지초과이득세제」는 법인소유 토지 중에서 정당한 사유없이 고유업무에 사용하지 않은 토지와 각종 유휴토지에 대해 매 3년마다 가격을 조사하여 정상 지가상승분을 초과하는 금액, 즉 개발이익에 대해서는 50%의 토지초과이득세를 부과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요하는 토지, 도로, 하천 등 공공용지, 개발부담금 부과대상 토지는 이로부터 제외하기로 하였다. 이 징수금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반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이 법의 최초 과세기간은 1990년 초부터 1992년 말까지 3년간으로 하고 납세시기는 과세기간 종료일 다음 해 9월 중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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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합리적인 골자인듯 하지만 토지 초과 이득이라는 기준과  개발이익에 대한 기준에 대한 불명확함, 그리고 그러한 공시지가를 공공의 권력이 가지고 있는 기관에서 책정 , 공시 한다라는 점에서 일반 국민들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다. 또한 ,  택지 소유 상한제등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발의 가능한 초유의 개인 재산 침해 사항이기도 하다.  위내용중  이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예 되기도 하고 개정 되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대선론이 나오면서 대두되는 것이 이러한 공공정책 사항 들인 것이다. 


기준 잣대를 흔들어 버리거나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시합을 하는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공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따라 흘러가 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현상이 오늘의 규제 공화국의 현주소이고 , 이로 인해 벌어진 변동성은 또다른 투기의 장으로 변질 되었으며 이또한 서민들은 자금력이 없거나 , 은행 대출 규제로 막아 놓아 ,  부동산 게임에 시작 참여 조차 할수 없게 만들어 버렸고 ,  반대로  부를 가진 혹은 현금화가 준비된 기업이나 개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린 것이 현실 이다.  


아래는 국토 종합개발 계획의 변천과 개요 이다. 


국토종합개발계획(國土綜合開發計劃)은 한 나라의 국토를 종합적·유기적·합리적으로 개발·이용·보전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국민의 복지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가 계획을 말한다.

과밀이나 과소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역의 차를 시정하기 위하여 신 산업도시나 공업정비 특별지역의 산업진흥정책을 중심으로 거점개발방식에 의한 장기적·종합적인 국토개발을 행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작성·실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 실례로 1910년부터 일본제국의 식민정치 하에서 파행적으로 발전해온 한국경제는 6·25전쟁으로 더욱 침체되어 강력한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국토종합개발이 시급히 요청되던 바로, 1961년 민주당 정부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국토건설단장에 처음에는 장면이었다가 후임으로는 장준하가 맡았다.

1963년 국토건설종합계획법이 제정된 이후 국토건설종합계획(전국계획), 특정지역건설종합계획(특정지역계획), 도건설종합계획(도계획), 군건설종합계획(군계획)으로 체계화되었다. 국토건설종합계획은 매 10년 단위로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국토의 체계적 개발에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환경 훼손, 거점개발 전략에 따른 지역간 격차 발생, 중앙집권식 하향개발이란 문제점이 부각되고, 국토의 지속가능한 관리가 강조되면서 계획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2003년 국토건설종합계획법이 국토기본법으로 개편되었으며, 국토건설종합계획의 명칭도 국토종합계획으로 변경되었다. 명칭의 변경에서 보듯이 기존 사업적 성격이 약화되고 전략적 개발방향 제시가 강조되었고, 국토의 개발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 국토관리 내용이 강화되었다. 계획 수립기간도 기존 10년에서 20년으로 변경되었으며 매 5년마다 여건을 고려해 수정하고 있다.

2012년,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2011-2020)이 수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제5차 국토종합계획을 수립해 2021년부터 2040년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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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통털어서 공공정책의 규제만으로 이러한 사회 정의가 실현된 나라는 아직 까지 없다. 단지 도시 국가인 싱가폴 정도 만 사회 자본 주의 정책으로 공공의 규제와 발전 정도에 따라 국가가 어느 정도 개입할 따름이다. 시장 경제의 선순환 혹은 자연스런 균형점을 찾기 전까지 과도한 정부의 규제나 간섭이 오히려 역효과를 발휘 하는 것이 오늘날 부동산의 현주소 이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왓을 때에도 혹은  1920년대 말 대공황 시기에 도래 해서도 나라간 혹은 지역 경제는 그 상황에 맞춰서 어느정도의 선에서만 정부의 개입이 있거나 ㅡ 규제가 있어 왓다..  [ 토지 공개념] 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공공정책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변동성이 가속화되는 최근의 부동산 시장이 염려 스럽다.  허나 이또한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투자의 틈새라고 보아도 무방 할 수 있겠다. 누군가의 지론에 의하면 말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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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비밀
어맨다 시아폰 지음, 이지민 옮김 / 성안당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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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세계화가된 음료이자 이름만으로도 맛을 아는 브랜드 코카 콜라이다. 


아래는 간략 역사 0---------

1886년에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약사인 존 펨버턴은 코카의 잎, 콜라의 열매, 카페인 등을 주원료로 하는 새로운 청량 음료를 만들어 상품화하였다. 당시에는 첨가물 없이 순수히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 원액과 탄산수로 만들어졌었으며, 원래는 자양강장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첨가물을 더 넣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콜라이다. 그의 약국의 소다수 판매 진열대에서 잔 당 5센트로 판매되었지만 별로 판매량이 좋지 않았고 2년 후 그는 이 청량음료에 대한 제조, 판매 등 모든 권리를 단돈 122만 2천 원에 팔아 버렸다. 이 음료의 새로운 소유주는 약제 도매상인 에이서 캔들러였다.[1] 에이서 캔들러는 1919년에 현재의 회사 조직을 설립하고 청량 음료로서 판매를 개시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은 캔들러가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응모한 유리병 공장의 직원 루드가 디자인한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방성의 후원으로 매출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최대의 '셰어'를 자랑하며 국외에서도 아메리카니즘의 대명사로 쓰일 만큼 보급되어 있다. 코카-콜라는 본사에서 원액(제법 미공개)만을 제조하여 국내 및 해외의 특정 회사에게만 공급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특정 회사에서는 본사에서 공급받은 원액에 물, 탄산, 설탕 등의 첨가물을 배합하여 병 또는 캔에 넣고 직매 방식에 의하여 판매한다. 국외의 회사에 대해서는 자본·종업원 등에 관하여 철저한 현지주의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제외한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1위를 오래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세부적으로 기업의 제조공장은 850대, 기업의 인원들은 평균 146만 명에 육박하고 운송업체 차량, 비행기 등 60만 대가 넘는다. 현재 2016년 전 세계에서 코카-콜라를 판매하는 매장만 2천만 매장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루에 소비되는 코카-콜라 제품만 해도 7억3천만 잔 정도다. 브랜드의 가치는 705억 5,200만 달러(약 80조 원)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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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도에 발명된 코카콜라의 기원은 이제 거의 100년이 월씬 넘어가는 세월의 브랜드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소 발명이후 이의 비밀 스런 제조법은 아직까지는 비공개되고 있고 특허와 되어 있지도 않아서  그 누구도 소수만을 제외 하고 접근 할수가 없다. 


지금의 수많은 프랜차이즈 사업 방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보틀링 시스템에 좀더 알아보자. 


보틀링 정책[편집]

코카-콜라가 가지고 있는 사업상 강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국가의 현지 시장을 개척함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규모로 코카-콜라 사업을 운영하는 능력이다. 코카-콜라의 이러한 노력과 핵심이 바로 보틀러 조직이다. 코카-콜라사는 원액과 시럽을 생산 판매하고, 이 원액과 시럽은 코카-콜라의 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전 세계의 보틀러 파트너 기업에게 공급 된다. 코카-콜라 보틀러란 코카-콜라의 여러 완제품을 생산, 유통,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회사를 일컫는다.


보틀러의 역할을 정해진 현지 시장 내에서, 그리고 제품의 품질과 일관성을 최고로 보장한다는 조건 아래서 코카-콜라사의 제품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것이다. 또한 보틀러는 토지, 빌딩, 시설물, 트럭, 그리고 각종 제품포장 자료에 필요한 투자를 맡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코카-콜라 보틀러들은 할당된 지역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코카-콜라 보틀링 공장들이 현지 소유이고 현지인들에 의해서 운영된다. 


코카-콜라 컴퍼니는 생산, 유통 그리고 마케팅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특정 보틀러에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틀러에게는 이러한 투자가 곧 상자 당 판매량과 순 세입 증가로, 그리고 코카-콜라 컴퍼니의 경우, 원액과 시럽 판매 증가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코카-콜라 컴퍼니와 보틀러 협력자들 모두 판매증가, 원활한 현금흐름 그리고 주가 상승과 같은 장기적인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보틀러 조직 개발은 코카-콜라 컴퍼니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되었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급속히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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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8nKCPOk6Y8


https://www.coca-colacompany.com/company

현제 코카 콜라사의 총 시가 는 약 232. 6 Billion 정도 이다  평균 주가는 약 54-53 달러에 거래되고 있는 이회사는 그동안 몇번의 부침과  시장의 도전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체계화된 보틀링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글로벌 확충으로 오히려 세계 시장은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다국적화된 세계화 브랜드의 대표작으로 손 꼽힌다.  전세계 어디에서는 동일 한 맛과 품질을 관리하는 그들만의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이후 수많은 브랜드들의 탄생을 예고 했고 그렇게 진행 되었다.  맥도널드 햄버거, KFC ,  스타 벅스 등등 ..  


초창기 그들의 사업모델에서 만약 생산의 집중화와 자본의 균일 통제를 중앙에서 하려 했다면 이렇게 까지 시장의 흐름에 따라 규모가 커지지는 못했을 터이다 , 초창기 남미 콜롬비아나 , 인디아 ( 인도 ) 등지에서 로컬화 하는 전략에 따라 철저히 현지 시장의 방식을 맞추되 일관된 핵심 레서피과 관리기법은 중앙에서 통제하여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따른 제약을 벗어 나게 한 방식은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기법이었다.  자칫 하면 핵심 원료의 공개나 제조법의 비밀이 새어 나갈 우려도 많았던 시절이엇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다른 청량음료 들이 시장에 나타나고 사라지고를 반복 하고 있지만 이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맛에 톡 쏘는 제품으로 아직까지도 매일 14억잔 이상 판매되는 음료의 기록을 당분간 바꾸기는 어려울 듯 하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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