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이름을 담을 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언제나 ‘단수적’이고 급진적으로 ‘창의적‘이어야 한다. 즉 용서를 기존 지식 · 도덕·법·윤리 · 문화·철학 등으로 환원하거나 그러한 것들의 재생산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를 받고 나면 ‘용서받을 만한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식으로 제시한다면 이미 용서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용서가 이루어지자마자 그 용서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서란 숙달 가능한 것이 아니며, 내가 통치할 수 있는 의도적 결과가 아니다. 용서는 책임성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비밀스러움‘,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과 연결되어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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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은 상상과 대립한다. 부재하는 무언가를 현존시키는것이 상상이라면, 현존하는 것의 공성空性을 직관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파상이다. 연인과의 이별 이후, 연애의 모든 추억들은 신기루와 같이 실체성을 상실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던 추억들은 깨지고, 부서지고, 분할되고, 탈 - 의미화되어 순간적으로 폐허성을 띤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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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는 신비감이 동반된다. 다른길이 아니라 그 길로 가서 살았거나, 그 열차가 아니라 다음열차를 타서 살았다는 것. 왜 그 길로 갔으며, 왜 다른 열차를탔는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그들이 죽었고) 내가 죽지 않았는가? 왜 나는 구제되었는가? 왜 그 질병이 나를 빗겨갔는가? 해답이 있기 어렵다. 생존은 해명될 수 없는 현상이다. 생존 현상을 깊이 파고 내려가면 우리는 은총 현상을 만난다. 은총은 생존선의 나타남이다. 생존이라는 개념이생명이나 존재라는 개념보다 더 심오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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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몽테뉴가 오늘 우리 시대와 비슷한 시대에스스로의 내면을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었는가, 우리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우리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만 그에게서 감동과 열정을 얻는다.
나는 그를 지상의 모든 자유인의 조상이자 수호성인이며친구라고 여긴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맞서 자신을 지킨다는 이 새롭고도 영원한 학문에서 그는 가장 뛰어난 스승일 것이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 자신의 ‘본질‘을 혼탁하고 독성이 짙은 시대의 거품에 뒤섞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운 사람은 세상에 드물고, 내적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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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지킬 생각만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아이가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운명의 타격을 견딜 수 있도록, 때로는아이슬란드의 얼음 속이나 말타 섬의 뜨거운 바위 위에서도 혼자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지 않도록 매우 조심을 하지만 소용없는일이다. 그 아이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를 가르치기보다 아이를 올바로 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산다는 것은 숨쉬는 일이 아니라 활동하는 일이다. 우리의 기관 · 감각 · 기능, 즉 우리가 생존해 있음을 의식하게 해주는 우리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는 일이다. 가장 장수한 사람은 가장 오랫동안 산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가장 굳세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낳자마자죽었다 해도 장수를 누린 것과 같다. 그러나 고령에 이르도록 살아가기에만 급급했다면, 이러한 사람은 일찍 죽는 게 나을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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