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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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독점해 왔다고 자부하는 그 역할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데,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만큼 파괴된다는 속담도 있듯이 그것은 담배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재앙이다. 터키의 지배 하에 있던 근동 지방에서 염주가 담배나 수연통을 대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상인들은 장사가 한가해지거나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진주모, 백단, 회양목, 상아, 호박 등으로 만들어진 염주를 굴리는데,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렇게 한다.


큰 염주들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신의 아흔아홉 가지 속성에 맞추어 아흔아홉 개의 알로 되어 있는데 그 백번째 속성은 인간이 모르는 것이다. 이 뚜렷한 경계선에서 계시가 끝나고 비의(秘儀)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은 염주들은 서른세 개의 낱알로 되어 있어 손에 쥐거나 가지고 다니기에 훨씬 편하다. 그리고 그 알들을 세 번 돌리면서 〈낭송)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에서 본다면 굳이 그렇게 낭송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염주는 그저 손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고 또 정신을 쉽게 세계에 동화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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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중은 ‘축제‘화한 단기적 동원에만 효과가 있었다. 2011년 이후 일본에서도 갑자기 데모 = 동원의 계절이도래해 많은 좌익이 열광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그런 축제가 남긴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축제가 아니라 일상이다. 달리 말해 동원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연대의 이상은 정체성의 결여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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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들은 가깝지만 멀었다. 한국인들은 멀었지만 가까웠다. 해리는 나에게 자신이 겪은 숱한 모욕들을 적어 보냈다. 나처럼 멀리 있는 사람이 혜리에게는 필요했다. 가까워질 수 없고 개입도 불가능하고 그저 듣기만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임솔아, <그만두는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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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맞은편 아파트촌에서 하나둘 불이 켜졌다.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챙겨와 몇 시간이나 천변에 앉아 있었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고 낚시가 허용된 곳인지 아닌지 몰라 정미는 초조했다. 그날 역시 빈손으로 낚시를 접은 아버지는 말했다. 낚싯대 끝에 글쎄 수면에 거꾸로 비친 아파트 옥상이 드리워지더구나. 그 소리가 아버지의 다 벗어진 정수리를 볼 때처럼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게 들렸다는 건 지금의 기억 때문일까. 정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신호가 가도 통화가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시 해야지 싶을 때쯤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있지만, 사흘전인가 아버지와 통화했다. 통화 말미에 아버지는 비나 좀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는 왜요? 쓰레기 때문에, 쓰레기요? 어, 그런 게 좀 있다. 별일 없지? 라고 묻고 아버지는 정미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정미가 알기로 당분간 비 예보는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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