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22 제16회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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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무대위에서
#그날, 무대 위에서
#김세화
#나비클럽
#황금펜상수상작품집
#한국추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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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김세화 작가님이 인친이기 때문. 이런 분과 인친이라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괜히 나의 사회적 위치가 급상승한 것같은 우쭐함마저 든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만한 영광도 없다.

무튼 김세화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의 인스타를 통해 접했고, 문득 읽어봐야지 싶었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어 그 낯설음을 떨쳐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릴 적 TV에 방영된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추리 드라마를 한동안 애청했지만 이전이나 이후로 소설로는 읽어본 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낯설음에 대한 우려는 괜한 걱정에 불과했음을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누군가 추리소설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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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추리문힉상 황금펜상
한국추리문학상은 1985년에 제정되어 35년간 한국 추리문학의 성장을 견인해왔으며, 특히 2007년부터 단편 부문인 ‘황금펜상‘을 신설하여 최고의 추리적 재미와 소설적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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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1편과 우수작 6편,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선택적으로 읽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정혁용 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도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김세화 작품은 자살로 추정되는 젊은 연극 배우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과정의 진지함과 더불어 공간 설정이나 다양한 인물탐구과정의 섬세함이 더없이 좋았다면, 정혁용 작품은 연신 피식, 풋거리며 읽을 만큼의 재미와 무료하고 뻔한 삶의 중년 주인공이 미스터리한 소녀와의 만남 이후 소녀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다소 도식적이긴 하나 어렵지 않게 풀어내어 좋았다.

무엇보다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는 마치 희곡을 풀어 쓴 소설같다는 나름의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소설을 희곡처럼 묘사한 것 같다거나. 개인적으로 희곡읽기를 좋아하기에 희곡이 가지는 일반적 구성에 익숙한데, 김세화의 작품이 그 구성과 많이 닮아있어서다.

그리고 작품이 참 디테일하다. 특히 공간에 대한 설명, 즉 극장의 모습이나 자살한 젊은 배우의 집 등의 공간 묘사를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놓았는지 마치 그 공간을 나조차 잘 알고 있는 듯, 한 번 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공간 묘사마저 섬세한데 작품의 내용은 더 말해 무엇할까 싶을 정도다.

무튼,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통해 추리소설이 ‘참 재밌구나.˝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단편 작품들은 선입견적으로 거리를 두는 나인데, 추리소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추리하는 것을 의외로 좋아해서 인지 개인적 선입견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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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용에 대한 소개는본 작품의 심사평에 나와있는 것으로 대신한다.)

📖
김세화 작가의 <그날, 무대 위에서>는 젊고 매력적인 남성 연극배우의 자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는 수사 과정을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및 입체적인 조명을 통해서 구체화해나가는 섬세한 서사적 건축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어쩌면 단순한 치정 살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범행의 심리적 동기를 학창 시절부터 이어지는 과거의 재구성, 인물들 사이에 작동하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사건의 단서에 제시만이 아니라 인물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여러 관점의 관찰과 기록을 통해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범행뿐만 아니라 서사적인 구성의 차원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 백영진과 살임범 ***(스포방지를 위해 *로 처리) 관계의 복잡성을 다양한 소설적 장치로 밀도있게 암시함으로써, 범인의 자백과 별개로 독자들로 하여금 추리해보게 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수준 높은 미스터리는 범인과 범행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기까지 독자들을 납득시킬 때 달성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본선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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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죄
윤재성 지음 / 새움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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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의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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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명징한 답을 내릴 사람이 과연 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정의란 개념 자체가 지극히 추상적이라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정의를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 사전은 정의한다. 하지만 이 말마저 추상적이라 ‘그래, 바로 그거!‘라 할만한 명쾌함이 없다.

1971년에 발표되어 당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후로도 정의를 논할 때마다 여지없이 교과서적 기준이 되고 있는 그 유명한 존 롤스의 <정의론>조차도 21세기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를 드러내는 이론이라 치부되고 있다.

그 선상에 마이클 샌델이 존재한다. 샌델은 바로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인물이며, 21세기를 대표하는 정의론 설파자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발표하여 21세기형 정의를 논하지만, 결국 정의에 대한 확고한 답은 내리지 못한다.

이렇든 저렇든 무지의 발로라 할지라도 이쯤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절대적 정의란 존재할 수 없다.˝일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정의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대적 정의에 대한 혼란에서 그 중심을 잘 잡아야 할 테니 말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티빙의 <돼지의 왕>과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를 생각해보면 상대적 정의에 대한 고민의 필요가 생생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학교폭력 피해자다. 그리고 주인공이 성인이 된 후 과거 학폭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복수라는 그 자체는 불의의 개념이지만 주인공들의 과거와 그들의 고통스런 삶을 조명하게 되면 그 복수가 과연 불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두 드라마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고.

학폭에 시달려 지옥보다 더 고통스런 삶을 버티고 견뎌야만 했던 피해자의 입장을 보듬어보면, 오죽하면 그래야만 할까 싶다. 더군다나 가해자들이 과거에 대한 일만의 반성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하느님은 존재하기나 하는지 울화가 치밀지 않을까...

어찌보면 이러한 복수라는 개념도 주인공들에게는 나름의 상대적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죄를 지었으니 죗값은 치르게 하는 것이 정의일 테니 말이다.


......


✏️ 정작 윤재성 작가의 <검사의 죄>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서론이 참 길기도 하다.

<검사의 죄>는 바로 이 상대적 정의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요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책의 뒷표지에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한다.


📖 책 뒷표지
당신이 검사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검사의 죄

검사라서 지을 수밖에 없는 ‘원죄‘
힘 있는 자에 관대하고 약한 자를 엄벌하는 죄
법집행의 수단으로써 불법과 위법을 저지르는 죄
대의를 위한 ‘내부고발자‘를 경원시하는 죄
정권에 따라 척결의 대상을 달리하는 죄

여기, 그 죄를 딛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한 평검사가 있다.

평검사 권순조. ‘법전과 합법‘만으로는 세상의 ‘거대 악‘을 단죄할수 없다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 어릴 적, ‘보육원‘에 불을 지르고 12명의 원생을 살해한 원죄에 묶인 심신불안증 환자. 그가 탈법과 위법의 경계를 위태하게 넘나들며 정계와 재계, 언론이 결탁한 공고한 카르텔 속으로 뛰어든다.


✏️ 극히 핵심적 요약이지만, 이 책은 이러한 제시로 말미암아 독자들로 하여금 바로 소설 속으로 뛰어들 열정을 심어준다. 그리고 읽어보면 바로 알게 되겠지만, 숨 막히는 이야기 전개로 인해 책에서 눈을 뗄 여지조차 찾기 힘들어진다.


📖 231쪽
타협 없는 정의는 나약했고, 나약한 정의란 불의와 같았다.
‘내 한 몸을 바쳐서라도 검찰을 바로 세우려 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흔쾌히 목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의 목숨과 빈자의 목숨. 서울에서 밀려난 일개 평검사의 목숨은 평등하게 하찮았다.


✏️ 모순에 찬 이 부분은 독자들이 고민해야 할 상대적 정의에 대한 고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한다.


📖 책 뒷표지
적법하나, 힘이 약한 ‘선택적 정의‘
위법하나, 강한 법집행의 ‘보편적 정의‘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같이 자유와 공정이 왜곡되고 정의와 상식이 혼란을 겪는 즈음에 ‘정의‘에 대한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의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무엇보다 시대를 읽고 시대가 요구하는 고민의 지점을 통찰하며 대중들에게 그 고민을 함께 하자고 과감하게 덤벼든 윤재성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이러한 작품을 출간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읽을 기회를 제공한 새움출판사에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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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죄
윤재성 지음 / 새움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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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평이 아니다. 책을 읽기 전 나의 상태를 피력하는 것이다.


✏️
아주 오랜만에 서평단에 참여했다.

예전에는 서평단 참여를 반강제적 독서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긴 했다. 40대 중후반에 늦깎이로 시작한 독서적 생활에 좀더 적극적으로 매진하기 위한 일종의 작위적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참 그랬다. 서평단 참여로 인한 독서 후 서평쓰기는 어쩔 수 없이 의무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솔직한 후기가 되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평가보고서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었다. 마치 숙제를 하는 그런 기분 탓에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다는 불온하고 안일한 의도마저 한몫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서평단 참여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느닷없이 덜컥 서평단 신청을 하고 말았다.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검사의 죄>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맞물린 탓도 있다.

일전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읽으면서 나름으로 정의에 대한 시각을 정리한 적이 있긴 했지만, 정의란 확고부동한 개념이 아니란 점에서 2023년의 정의는 무엇일까 다시금 고민하던 찰나 때마침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기도 했다.

검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이 최근 우리나라 상황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검레기, 개검, 떡검 등으로 검사의 명예가 실추된 지 오래였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검사의 위치가 무섭게 하늘을 찌르는 상황을 목도하는 요즘이다. 검사 출신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최측근 정부요인들은 죄다 검사출신들이다. 오죽하면 검찰공화국이란 회괴망측한 말이 회자되고 있을까. 그런 중에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을 장식하는 말들은 압수수색이니 검찰소환, 검찰출두 등의 전방위적으로 검찰수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검찰의 행보가 과연 정의를 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정의구현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과연 몇이나 될는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정답은 아닐지라도 윤재성의 <검사의 죄>가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제공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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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죄
#윤재성
#새움
#서평단_참여
@saeumbooks

‘검사의 죄‘를 딛고
강력한 정의를 실현하려는 평검사의 이야기

˝적법하지만, 느리고 힘이 약한 ‘선택적 정의‘
위법하지만, 빠른 ‘강력한 정의‘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들˝

평검사 권순조는 어릴 적, 납치당했던 보육원에 불을 질러 12명의 원생을 살해한 범죄자다. 또한 강박과 불안에 사로잡힌 현대인처럼 여러 가지 약을 달고 사는 심신불인증 환자이다.

중앙지검의 검사(칼잡이)가 된 그의 눈앞에서 선배 검사가 피살당하고 옛 원죄는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데...... 재계와 정계, 법조계마저 결탁한 카르텔을 상대로 평검사 권순죄 주저 없는 법의 집행이 시작된다.

-새움출판사 측 책에 대한 소개글을 옮겨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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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전에 책을 수령하고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이미 다 읽어낸 상황이다. 몰입감은 과연 놀라웠다. 370여 쪽의 분량이 부족하다 느낄 정도였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마무리하면 <검사의 죄>가 던지는 ‘정의‘에 대해 며칠은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책을 덮게 될 그 시간이 미리부터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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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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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_해방일지
#아버지의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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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모 방송에서 유시민 작가가 극찬하며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됨으로써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친들이 즐비하게 읽고 있음으로 인해, 또한 여러 대형서점에서 2022년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소개하는 것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한국문학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정지아‘라는 작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무안할 만큼 한국작가에 대해 얼마나 문외한이었는지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주저할 것 없이 ‘#2022년_최고의_소설‘이라고 자부함과 동시에 감히 필독을 권하면서 조심히 추천을 드려 본다.

......

📖 7쪽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첫 단락이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시작한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부고 소식으로.

작품은 아버지 고상욱의 장례를 치르는 사흘 간의 이야기이다. 이 사흘 동안 딸 고아리는 살아오면서 여태껏 자신이 알아오던 아버지와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에 찾아온 수많은 조문객들의 사연을 통해 전혀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새롭게 알아간다.


📖 68쪽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딸로서 살아오면서 알아온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었다. 혁명가였고 사회주의자였다. 역사의 굴레에서, 특히 아버지는 빨갱이였고, 고아리는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 197쪽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하지만 조문객으로 찾아온, 아버지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숱한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는 아버지는 낯설면서도 왠지 모를 연민이 닿아있다. 고아리는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아버지가 어떠한 인간이었는지를 알아가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265쪽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작품의 마지막 단락, 빨갱이의 딸로 살아온 고아리는 아버지 고상욱이 빨치산도 아니고 빨갱이도 아닌 누구보다 가장 인간적인 아버지였음을 화해의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마지막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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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좁게는 아버지와 딸로 이어지는 한 가족의 역사이지만, 넓게는 여순사건(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에는 ‘빨갱이‘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표상이 자리한다.

이야기의 한가닥만 요약하자면, 빨갱이의 딸로 살면서 숱하게 당한 사회적 외면, 즉 빨치산이자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 아버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거나 배척당하며 살아야만 했던 부당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미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연좌제적 가해에 대한 불합리함이 고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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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소설들은 흔히 그 사건의 사실적 과정을 집요하리만큼 깊이 다루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야기의 원초적 배경이 되는 여순사건에 대한 원인이나 과정을 굳이 자세히 논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 이후의 삶, 특히 빨치산으로, 빨갱이로 낙인 찍힌 한 인간과 그와 연루 또는 연관된 사람들의 삶이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부분으로 한정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부분을 한 인간(아버지)의 삶을 관통하여 도드라지게 하는 이야기 구조가 가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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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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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뒷표지)
우리는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다시 배워야 한다.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함, 실수와 기회,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무엇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찬란한 소설을 만났다. 고맙고 벅차다.
-최진영(소설가)

✏️
이토록 똑부러진 평이 또 있을까? 소설가 최진영의 평은 달리 덧붙일 만한 군더더기도 없을, 그 이상의 찬사마저도 존재치 않을 만큼 공감되는 소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공감능력이 미흡하여 벅찬감까지 표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맙고 벅차다‘는 최진영의 마지막 표현은 그 어떤 표현보다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누구든 꼭 한번은 읽어보시길, 그래서 가슴 따뜻한 작가 천선란의 이야기에 감동을 느껴보시길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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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쪽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생존율)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 113쪽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다.

📖 168쪽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 252쪽
˝그래도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 331쪽
세상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연재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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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천선란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끌리고 마음에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전히 희망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극히 고통스럽지도 않다. 언제나 희망은 존재하지만 언제나 희망적이지는 않고, 언제나 고통은 존재하지만 언제나 고통스럽지도 않다. 희망 앞에서 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고통 앞에서 늘 희망이 좌절되는 것도 아닌 것이 오늘이라는 삶이다.

희망과 고통 사이에서 방황하기 보다는 매 지금이라는 순간을 사랑하고 열정을 놓지 않은 채 살아가는 힘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하는 게 삶이고 우리라는 사람이지 않을까.

가슴 뛰는 삶, 우리는 그런 삶을 얼마나 잊고,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 301쪽
떨린다. 행복에 휩싸인 연재의 몸이 진동으로 떨렸다. 연재는 살아 있었다. 늘 살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었다. 무엇이 연재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일까.


알베르 까뮈가 그랬다.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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