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포스팅에서 ‘라스‘가 내적 갈등으로 인해 굉장히 힘든 상황임을 엿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올리네‘가 들고 온 생선을 통해 ‘라스‘의 감정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해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표현 방식이 어제는 좀 직접적이었다면 오늘은 생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단계 거쳐서 간다는 점에서 어제보다는 좀 간접적이라고나 할까. 어찌됐든 어제나 오늘이나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책의 제목처럼 ‘멜랑콜리‘하게 느껴진다.

연이어 읽다가 p.413에 밑줄 친 부분에서 ‘라스‘를 찾아 헤매던 누나 ‘올리네‘가 우여곡절 끝에 ‘라스‘를 찾아서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까지의 분위기와 약간 다른 점은 얼마전에 누나에게 돌멩이까지 거리낌없이 던졌던 ‘라스‘가 누나를 보고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제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하나. 그녀도 한때는 젊음을 자랑했던 적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치지도 않고 보르그외위의 언덕 위, 무성한 덤불 사이를 뛰어다니곤 했다. 그녀는 아무리 거칠고 험한 숲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주저하지 않고 보르그외위 곳곳을 뛰어다녔다. - P407

올리네는 지금 작은집에 앉아 생선 눈알을 바라보고 있다. 생선에 묻은 피는 거의 다 말라 굳어 있었다. 올리네는 한 손을 뻗어 생선을 만져 보았다. 꾸덕꾸덕하고 찐득찐득했다. 그녀는 생선 눈알이 조금 전과 달리 그다지 날카롭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선 눈알은 꿈을 꾸는듯 몽롱하게 보였다. 그녀는 생선이 점점 쪼그라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 P407

올리네는 생선에서 손을 떼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허벅지도 나이를 이기지 못해 쭈글쭈글해졌다. 젊었을 때의 탱탱했던 피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허벅지는 핏기 없이 창백했고 쭈글쭈글했다. 문득 허벅지에 손을 대도 아무런 감각이 없음을 깨달은 올리네는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녀는 허벅지의 감각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허벅지에 손을 가져가서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올리네는 차가운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408

올리네는 난로에 불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손잡이에 걸려 있는 생선을 바라보았다. 생선은 더 이상 신선해보이지 않았다. 눈알도 몽롱해 보였다. 올리네는 바위에 앉아있던 라스가 몸을 돌려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을떠올렸다. 라스는 왜 거기 앉아서 자신을 감시하느냐고 소리쳤다.
아냐 난 너를 보고 있지 않았어.
거짓말하지 마
아니라니까.
거기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잖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니?
그런 건 아냐. - P409

나는 몸을 굽혀 돌멩이 한 개를 주워 드는 라스를 보았다.
그는 가만히 앉아 손에 든 돌멩이를 뚫어지게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뒤통수에 대고 나를 째려보았다. 라스는 내게 돌멩이를 던졌다. 얼른 몸을 피한 나는 허공을 지나 우리집을 향해 날아가는 돌멩이를 보았다. 나는 돌멩이가 집 담벼락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라스는 서둘러 바위에서 내려왔다. 누군가가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나는 대문 밖으로 나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 P409

나는 아버지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려 있음을 보았다. - P409

물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차마 라스가 돌멩이를 내게 던졌고 내가 몸을 피하는 바람에 돌멩이가 집 담벼락으로 날아들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P410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라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바닷가 근처 어딘가로 뛰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의 뒤를 밟겠다고 결심하고 나왔는데. 그는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다시 찾고 싶다면 나는 지금 당장 가야 한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 P411

나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반면 나는 돌멩이와 습지 같은 사람이다. 누런 갈색, 그다지 울퉁불퉁하지도 않고 그다지 매끄럽지도 않은 사람. 가끔 꽃을 피우기도 하는 사람. - P411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라스가 남긴 발자국뿐이었다. 그렇다면 라스는 내가 짐작했던 대로 바닷가 저편으로 뛰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모래위에 남겨진 발자국은 오래돼 보이진 않았다. 발자국을 따라가던 나는 머릿속에서 라스의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는 갑자기 화를 내며 내게 돌을 던졌을까? 나는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만약 돌을 던진 사람이 라스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 P412

나는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바위 아래에는 작은 만과 작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내 동생 라스는 바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라스.
라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누나왔어?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응.
나는 라스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얼른 이리로 와 봐. 누나에게 보여 줄게 있어. - P413

라스는 커다란 바위 아래 자리한 작은 암석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라스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따라와.
라스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암석 동굴의 입구에 서 있는 라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바로 여기야. - P413

라스가 암석 동굴의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온통 거뭇거뭇한 것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이건 석탄이야. 물과 섞은 것이지.
그래서 어쨌다고?
난 이걸 사용해.
이걸 무엇에 사용하는데?
내가 보여 줄게. - P414

라스가 바닥에 엎드리더니 엉금엉금 기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쪽은 매우 어두웠기에 라스의 윤곽만 어렵풋이 보일 뿐이었다. 라스는 잠시 후 다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는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조각난 부목 같았다. 라스는 부목 조각을 들고 고개를 돌려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 내게 뭔가를 제대로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 P414

라스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라스가 부목 조각에 그린 그림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 P415

난 석탄과 물을 사용해 작은 나뭇가지 끝을 깎아 내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손가락으로 번지게 한 거야. - P415

그는 부목 조각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부목에 그려진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그제야 나는 라스가 그린 것이 구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스가 그린 것은 움직이는 구름이었다. 훌륭한 그림이었다. 라스는 지금껏 그런 그림을 꽤 많이 그렸다고 말했다. - P415

라스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라스가 다시 기어 나와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게 부목 한 개를 건넸다. 나는 그가 그린 것이 집 뒤편의 산과 나무배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라스가 참으로 재주 많은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 P416

넌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질 때면 여기 와서 그림을 그렸던거니?
그럴 때도 있어.
나는 라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뚝뚝해졌음을 깨달았다. - P416

넌 기분이 안 좋을 때만 그림을 그리니?
라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집 뒤편의 산과 나무배를 그린 그림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그 그림이 우울할 때의 라스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론 그림 속의 산과 나무배는 눈에 익은 실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그림이 가끔 우울함에 빠져 있을 때의 라스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거뭇거뭇하고 어두운 그림은 어둠에 빠져 있는 라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생명을 머금은 어둠, 빛을 발하는 어둠이라고 해야 할까. - P417

사실 난 누나 그림을 그린 적도 있어.
라스가 내 그림을 그렸다고? 그건 내가 거부하거나 결정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내 그림을 그려 놓았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림을 가져올게.
나는 라스의 목소리가 별안간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 P417

라스는 다른 부목 조각들도 하나씩 차례차례 바닷속으로 던졌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나를 지나쳐 뛰어가더니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라스는 나 때문에 그림을 바닷속으로 던져 버렸다. 나는 분명 라스가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 P418

이제 우린 이곳을 떠날 거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이젠 이웃집 사람들이 우리 집에 돌을 던지기까지 하잖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너도 이해하지?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집을 부숴 버릴 거야.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다시 집을 지어 올릴 거야. - P419

나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게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신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P420

바다는 어느새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먹구름이 잔뜩낀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 P421

라스는 어디 있니?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걔가 왜 섬을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장남이라면 집안일도 좀 도와야 하는데 말이지. 식구들의 배를 굶기지 않으려면. 아버지가 말했다. - P421

나는 바람에 사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다. 나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라스가 나무배를 바다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도대체 라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미쳤나?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왜 이런 날씨에 배를 바다에 띄우는 걸까? 라스는 세찬 파도에 흔들리는 나무배에 앉았다. 나는 그가 이런 날씨에 노를 저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P422

나이가 드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드네요.
아주 많이 힘들어요.
늙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 P433

짧은 다리, 긴 허리. 라스가 걷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달랐다. 그렇다고 그가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라스는 항상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종종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의 덥수룩한 턱수염이 바람 때문에 양옆으로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갈색 눈동자는 어쩐 일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평온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렇다, 앞머리가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자리한 그의 갈색 눈동자는 매우 평온해 보였다. - P436

그는 어깨에 톱을 지고 있었다. 틀톱. 라스는 그것을 틀톱이라 불렀다. 톱 중에서 제일 좋은 톱. 나는 라스가 틀톱을 어깨에 지고 종종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라스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톱질을 해서 장작을 마련해 주곤 했다. 그는 일의 대가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거나 돈을 조금 받곤 했다. 라스는 장작을 마련하기 위해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라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의 검고 덥수룩한 턱수염 뒤로 미소가 생겨났다. - P436

그들은 예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그들은 예술을 소 똥구멍처럼 여겨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라스가 말했다. - P439

그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요. 라스가 말했다.
화가라고 해서 다 죽여 버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거의 모든 화가들을 죽여야 해요. 모든 화가들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거의 모두. 그가 말했다.
알리다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P439

그들은 죽어야 해요.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에 죽어야 해요. 그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말했다.
나는 그들을 죽일 거예요. 라스가 말했다. - P440

그땐 이미 장작을 엄청 많이 자른 뒤였죠.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을 했어요. 나는 그렇게 일을 빨리 하는 사람을 처음 봤답니다. 그녀가 말했다.
네, 라스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죠. 알리다가 맞장구를 쳤다. - P442

올리네는 알리다가 자신의 남동생 중 한 명과 결혼한 여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자식도 많이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녀의 남동생도 그녀처럼 나이가 들고 건강도많이 악화되었을 것이다. 올리네는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 P445

세상에, 내게 이런 날이오다니. 누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 P445

하지만 어쩌다 정신이 나가 버렸는지, 불쌍하기도 하죠. 알리다가 말했다.
맞아요, 불쌍한 인생이죠. 올리네가 말했다.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끝이 나 버렸으니. - P447

침대에 누워 마지막 날만 기다린다는 건 참 끔찍한 일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 P447

올리네는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내가 노망이든 게 틀림없어. 그녀는 쉬버트와 결혼한 사람이 알리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알리다는 쉬버트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이렇게 정신이 없을 수 있다니!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는 기억도 못 하고, 눈앞도 잘 볼 수 없고, 발에는 통증이 가실 날이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게다가 그녀는 소변도 참지 못한다. 대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 P449

알리다는 단 한 번도 올리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 같지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만족하지 않았고, 특히 라스에겐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라스가 없을 때면 비웃기까지 했다. 라스의 면전에서는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했지만, 라스가 없을 때면 좋은 말을 듣기가 힘들었다. - P451

알리다는 라스에게 절대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았다. 라스는 알리다를 위해 그 많은 장작을 잘라 주고 손질해 주었건만 알리다는 라스를 존중하기는커녕 때때로 비웃기까지 했다. 라스가 알리다에게서 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라스는 알리다에게서 비웃음만 되돌려 받았을 뿐이다. 알리다가 다가와서 생각에 잠겨 있는 올리네의 팔을 잡아끌었다. - P451

창밖에서는 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손에 죽을 거야. 저주받은 독일 놈 같으니 나는 라스가 장작에 도끼를 내려치는 소리를 들었다. 라스가 다시 소리쳤다. 왜, 싫어? 쓰레기 같은 놈. 왜, 싫으냐고? 싫어도 하는 수 없어! 라스는 다시 장작 위에 도끼를 내려쳤고, 알리다는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코웃음을 치며 내게 궛속말을 했다. 여기 가까이 와서 라스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세요. 알리다는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 P452

빨리 여기로 와 보세요. 알리다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알리다의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벌목 통나무 앞에서 있는 라스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틀톱은 작은집 벽에 기대어 세웠다. 한 손에 도끼를 든 라스는 야생의 미치광이처럼보였다. - P452

난 언젠가 너를 죽여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쓰레기 같은 놈!
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놈이었어. 결코! 그런데도 나는 그림을 그린답시고 다른 화가들을 괴롭혔지.
저주받을 새끼!
이곳 산드비겐, 이곳 스타방에르는 너 같은 쓰레기가 살 수있는 곳이 아냐!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선 살 수 없어 절대! 라스가 말했다. - P453

넌 도끼질도 하고 톱질도 하는구나. 내가 말했다.
난 도끼질을 하고 싶을 때는 도끼질을 하고, 톱질을 하고 싶을 때는 톱질을 해.
난 내가 원하는 걸 할 뿐이야. 라스가 말했다. - P454

알리다는 집에 남편이 아파 누워 있는데도 왜 올리네의 집에 와서 굳이 청소까지 해 주는 것일까. 참으로 이상하고 무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올리네의 부엌 바닥이 자신의 남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올리네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해도 도움이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 P455

라스는 아버지의 집 다락방에서 살았다. 그는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방문 앞에 ‘접근 금지‘라는 쪽지를 붙여 놓았다. 라스가 그 쪽지를 방문 앞에 걸어 놓았다는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함을 의미했다. 라스는 그림을 그릴 때면 창가에 앉아 창밖의 지붕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의미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 방문 앞에 걸린 쪽지에도 ‘접근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 P460

나는 내 자식들이 세례를 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어. 단 한 명도 세례를 못 받게 했지.
열두 명 중에 단 한 명도 세례를 받지 않았단다.
난 내 신념을 굽히지 않았어. 아버지가 말했다. - P462

아버지, 저는 세례를 받고 견진 성사도 받을 생각이에요.
그건 올리네도 마찬가지예요. 라스가 말했다. - P462

그건 네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야. - P4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포스팅에서 멜랑콜리아 I 이 끝났고, 오늘 부터는 멜랑콜리아 II 다. 1902년으로 시대 배경이 바뀌었고, ‘올리네‘ , ‘스베인‘ , ‘시그네‘ , ‘쉬버트‘ 등 처음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앞의 멜랑콜리아 I 과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다.
.
.
.
읽다보니 올리네에게 라스와 쉬버트가 남매관계인듯 한데, 여기서는 라스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오고 쉬버트도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듯 하다. 그나저나 라스는 멜랑콜리아 I 에 나왔던 그 ‘라스‘인 듯 한데...

올리네는 쉬버트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문득 자신의 남동생인 라스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참 이상한 아이였다고, 독특했고 이해하기 힘든 친구였다고...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라스와 쉬버트를 포함한 올리네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치는 못했던 것 같다. 식구의 수가 많았지만 그에 걸맞는 소득 수준이 못 되었기에 가난함을 면하기가 쉽지 않았고, 올리네의 부모님은 그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바닷가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등의 활동을 매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소설 속 내용에 근거하여 생각해본 내 주관적인 추측 혹은 생각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소질이 있었던 ‘라스‘는 자신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열중하고 싶은데 반해 현실적인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아버지의 어부 일을 쉴새없이 거들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자신의 꿈을 향한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어떤 자괴감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그에 따라 자신이 꿈꾸는 이상인 ‘그림 그리는 것‘과 현실인 ‘생계유지관련 일‘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괴리감으로 인해 계속 방황하는 ‘라스‘는 근처 바닷가의 바위에 올라가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때로는 인근의 다른 섬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온다든가 하는 등의 마음의 갈피를 쉽사리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있으면 그냥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살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 쓸데없이 방황하면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냐고, 뭐 이렇게 인생 피곤하게 사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독자인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멜랑콜리아 I 에 나왔던 내용과 연계지어 본다면 ‘라스‘의 이력이라는 것이 어업과 같은 생계유지활동보다는 뭔가 좀 더 고차원의 것(?) 혹은 좀 더 고상한 것(?)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받고 교육받았던 삶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릴 때 지역 유지에게 후원을 받아서 독일로 유학을 갈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라스‘였고, 이를 통해 그림과 관련하여 그 업계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사람들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그들과 교류하고 인맥을 쌓아왔던 ‘라스‘였다. 이렇듯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꽃피우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상황에 근접했던 사람이 (이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떤 일로 인해 그 꿈을 이루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느끼는 좌절감, 패배의식 등은 그 당사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선 그 대상이 ‘라스‘로 대변되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날때부터 단순히 먹고 살기만도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애초부터 원대한 꿈이라는게 아예 없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내적인 갈등이나 괴리감 같은 것은 살면서 특별히 느낄 일도 없었을텐데,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지역 유지로부터 후원까지 받아서 유학을 와서 자신의 꿈에 거의 근접했던 사람이 궁극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패배감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없을정도로 그 데미지가 상당하다.

멜랑콜리아 I 을 읽다보면 ‘라스‘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고 그로인해 자신은 대다수의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 자신이 꿈꿨던 것을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감히 말로 하기 힘들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결국 이 엄청난 좌절감이 ‘라스‘를 미치게 한 것 같다고 보여졌다. 갑자기 뜬금없이 바닷가의 바위에 올라가서 눈물을 훔친다거나, 각종 섬들을 떠돌아다니며 혼자있고 싶으니 날 내버려두라는 등의 말들을 하는 것이 결코 생뚱맞은(?)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정말로 미치면 이 정도는 정말 일도 아닐 수도 있다. 이보다 훨씬 더 한 짓도 서스럼없이 하는 게 사람이라는 동물아닌가.

1902년 초가을, 스타방에르: 올리네는 지팡이를 짚고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바닷가의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발이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한 걸음씩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생선이 담긴 봉지를 든 올리네는 바닷가에서 그녀의 집까지 이르는 언덕길이 너무나 가파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매일 이 언덕을 올라야 했다. 그녀는 바닷가의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집에서 홀로 살았다. 그녀의 집은 언덕 꼭대기에 나란히 서 있는 집들 중에서 가장 작은 하얀 집이었다. - P375

어부 스베인. 올리네는 지금까지 그에게서 얻거나 구입했던 수많은 생선들을 떠올렸다. - P376

올리네!
올리네는 발을 멈추었다. 누군가가 분명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올리네!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올리네는 길가에 있는 집을 돌아보았다. 2층 창문이 열려 있었다. 열린 창문 뒤로 시그네의 모습이 보였다. - P376

지금 내려갈 테니 잠깐만 기다려요. 시그네가 소리쳤다.
올리네는 창문 뒤에 서 있던 시그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부른 사람은 시그네였다. 그녀는 시그네가 몇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야 그 소리를 들었음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귀도 잘 안 들리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졌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어린 시절의 일뿐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조금 전 시그네가 그녀를 불렀던가. 그렇다. 그 정도는 기억할 수 있다. - P377

시그네가 그녀를 소리쳐 부르는 일은 자주 없었다. 올리네와 시그네는 단 한 번도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앙숙으로 지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항상 예쁘고 우아했던 시그네가 올리네를 알게 모르게 경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377

올리네의 집이 지저분하다거나, 올리네의 자식들이 청결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시그네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리네는 시그네가 그런 의중을 분명히 이런저런 방식으로 내보였음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시그네는 단 한 번도 올리네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 올리네도 물론 그런 시그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올리네는 시그네와 앙숙이라 해도 틀린 말은아닐 것이다. 아니, 엄밀하게 따져서 앙숙이라기보다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 P377

시그네는 올리네가 바닷가에서 생선을 사서 매일 같은 언덕길을 오르며 그녀의 집 앞을 수도 없이 지나쳤건만 단 한 번도 그녀를 소리쳐 부른 적이 없었다. 우연이라도 두 사람이 마주친 적은 없었다. 올리네는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시그네가 자신을 일부러 피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시그네는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올리네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 P378

쉬버트 말이에요. 시그네가 말했다.
올리네는 그제야 시그네가 자신을 소리쳐 부른 이유가 자신의 남동생 때문임을 깨달았다. 올리네는 자신과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쉬버트가 무엇 때문에 시그네 같은 여인과 결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쉬버트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어요.
아무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시그네가 말했다. - P378

올리네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젠 쉬버트마저 떠나겠구나. 지난번엔 라스, 이젠 쉬버트, 두 사람은 나이도 거의 비슷했다. 올리네는 이미 라스를 떠나보냈다. 이젠 항상 건강하고 밝기만 했던 쉬버트마저 보낼 날이 다가왔다. 온종일 열심히 일을 했고 아픈 적도 거의 없었던 쉬버트마저 보내야 하다니. - P379

쉬버트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올리네는 지금 당장 그가 숨을 거두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시그네는 틀림없이 상황을 과장해서 말한 것이다. 그녀는 항상 모든 일을 걱정하고 과장하곤 했으니까. 이제 그녀는 쉬버트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 P379

그나저나 쉬버트 생각을 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그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인가? 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쉬버트마저 세상을 떠나다니. 올리네는 곧 자기 차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리네는 지팡이를 짚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자신이 이미 세상을 떠났더라면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했다. - P382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 P384

올리네는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의 마지막 구간을 오르기 전에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 어부 보르의 집앞에서 잠시 쉬곤 했다. 그녀가 평소 발을 멈추고 쉬었던 곳은 조금 전 시그네가 잠시 불러 세웠던 그곳이 아니라, 바로 보르의 집 앞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시그네가 그녀를 불러 세웠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잠시 쉬었다. - P384

올리네에겐 자식들이 많다. 올리네는 그 작은 집에서 그 많은 아이들을 낳아 길렀다. 집이 복잡하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에겐 그 집이 크고 좋기만 했다. 게다가 그녀의 훌륭한 남동생 중 한 명은 유명한 화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어느 순간 그가 그리는 그림은 낙서처럼 변하고 말았다. - P385

그녀는 그가 그린 그림을 작은집 문에 걸어 놓았다. 낙서처럼 보이는 그림 속에서는 말을 탄 기사도 볼 수 있었다. 담뱃갑 포장지의 뒷면에 그린 그림. 그다지 눈여겨볼 만한 그림이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이 그린 그림을 문에 걸어 놓았다. 그녀는 자주 그림을 내려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거기에 걸려 있었던 그림이므로 조금 더 걸어 두더라도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손을 대지 않았다.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을 그렸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낙서 같은 그림만 그렸다니! 너무나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 거부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삶은 현재가 중요한 법. 올리네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P386

그녀의 남동생? 그녀가 남동생에게서 받았던 유일한 것은 지금 작은집 문에 걸려 있는 낙서 같은 그림이다. - P386

그녀는 그것을 화장실 문에 걸어 두었다. 결코 보기 좋은 그림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어디든 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리네는 그 그림을 작은집 문에 걸어 놓았음을 기억해 냈다. - P386

라스는 이상한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미쳐 버린 청년. 사람들은 그를 미친 라스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 외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그를 불렀다. 들쥐 라스. 들쥐. 주머니 속의 들쥐. 들쥐. - P386

그녀는 다시 발에 통증을 느꼈지만 계속 발을 옮겼다. 발을 옮겨야만 했다. 그녀는 배를 곯지 않도록 음식을 구입해야 하고, 난로에 불을 지피기위해 장작을 마련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꾸려 나가지 못한다면 최악의 가난으로 점철된 밑바닥 인생만 남을 것이기에, 그녀는 어쨌든 힘닿는 데까지 애를 써야 한다. 올리네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언덕길을 올랐다. - P387

그녀에겐 살아 있는 남동생이 없다. 올리네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남동생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던가? 그렇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다. 모두. 마지막 남은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건 불과 두어해 전이다. - P388

헤우게순 : 노르웨이 로갈란주의 북부에 위치한 도시. - P388

그녀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을 때의 삶을 샅샅이 다 아는 젊은이들은 없다. 올리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젊었을 때는 화장실에 생선을 들고 들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 P395

그녀는 조금 더 앉아 있으면 뭐라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계속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라스도마지막 순간에는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미리암이던가? 엘리네던가? 아무튼 사납기 짝이 없는 여인의 집에서 다른 저소득자들과 함께 살았고, 침대에 누워 속옷에 용변을 보았다. 사실 그건 예상했던 일이었다. - P396

그녀는 아이들 때문에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라스도 동네 아이들 때문에 편안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라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들쥐, 들쥐 라스라고 불러 대며 놀렸다. - P396

늙은 몸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행복해한다. - P397

라스의 눈, 그의 눈은 갈색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우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심지어는 식사 중에도 갑자기 울곤 했다. 그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스는 참으로 독특하고 이상한 동생이었다. - P398

라스는 결코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는 화를 자주 냈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말과 행동을 매우 조심했다. 나는 그가 살인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어쨌든 그의 성격은 매우 독특했다. 나는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 P398

내가 그의 뒤를 밟았던 날, 그의 갈색 눈동자는 검게 변해 있었다. 그날 아침 그를 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어둠이 어려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한 그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서 반짝였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제자리에서 튀어나올 듯 실룩거렸고,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았다. 그날 아침 내 앞에 서 있던 그의 눈동자는 그처럼 이상했다. - P398

왜 항상 이래야만 할까? 그가 말했다. - P400

누가 너에게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난 누가 내게 나쁜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아. 라스가 말했다. - P400

라스는 누가 자기에게 나쁜 짓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라스는 물고기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굳어진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 P401

그는 습지를 넘어 바닷가 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길을 따라 걷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발이 습지에 푹푹 빠지는 것을 보았다. 넘어졌던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켜 뛰기 시작했다. 그가 습지에 빠진 한쪽 발을 힘겹게 들어 올리면 다른 쪽 발이 습지에 잠겼다. 나는 라스가 바닷가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갑자기 습지 중앙에 있는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나는 바위에 앉아 있는 그의 등을 보았다. 나는 라스가 두 손을 올려 눈가를 닦아 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라스가 눈물을 훔친다고 생각했다. 라스는 왜 우는 것일까? - P401

나는 라스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을 보았다. 라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제발 나를 혼자 있게 해 줘! 나는 라스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날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둬. 뭐 특별한 건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 P401

나는 라스가 몸을 일으켜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발이 습지에 푹 빠졌다. 나는 라스가 습지에 빠진 발을 힘겹게 빼내어 바닷가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발이 다시 습지에 빠졌다. 그는 힘겹게 습지와 싸우며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는 조용했다. - P401

나는 라스가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가서 앉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어슴푸레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비록 내 동생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내 동생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 P402

나는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라스에게 눈을 돌렸다. 푸른 바다는 하얀 파도를 만들어 냈고, 푸른 하늘에는 하얀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었다. 좋은 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고요함과 차분함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 P402

나는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라스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옆에 앉고 싶었지만, 그러면 라스가 좋아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전에는 라스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자주 말을 걸어 보곤 했었다. 하지만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등 하며 혼자 있고 싶어 했다. - P403

그는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한 여자라고 말했다. 라스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P403

하지만 그가 이런 상태에 있을 때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가 이런 상태에 있을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왜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그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왜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일까? 라스는 이런 상태에 접어들면 몇 시간이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갔고 어두워지면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건 없건, 그는 개의치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P403

아버지는 그에게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면 안 된다고 자주 주의를 주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끔은 아버지가 화를 낼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말수도 적고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라스에게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 P404

아버지는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서 낚시를 하거나 그물을 끌어 올리는 일 등. 라스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라스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마치 아버지의 말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마치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 P404

나는 라스에게 아버지와 약속을 했음에도 왜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을 되풀이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라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그저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싶었다고. 그는 아버지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 P404

나는 아버지가 라스에게 마음이 무거워지면 어디론가 가 보는 것도 괜찮지만, 사전에 무언가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라면 말없이 사라지는 일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만약 라스가 말도 없이 사라지면 아버지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질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도움을 얻지 못하니 말이다. 특히 그물을 끌어 올리는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면 훨씬 수월하다. - P404

라스는 마음 같아선 항상 아버지의 일을 돕고 싶지만, 눈 뒤편에서 무언가 짓누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눈알이 터질 것만 같다고 했다. 라스는 아버지에게 아들의 눈이 터지기를 바란다면 여기저기 섬을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집에 붙들어 두면 된다고 했다. 여기저기 섬을 돌아다니는 일. 그것이 바로 라스가 했던 일이었다. - P405

아버지는 라스에게 만약 그렇다면 상황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라고 말하며, 그물을 끌어 올리는 동안 나무배의 노를 저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아버지는 이미 먼 바다에 그물을 쳐 놓은 뒤였다. 라스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오솔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나는 그때 라스가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바다만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마치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마치 크나큰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라스의 얼굴을 본 나는 그가 많이 우울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405

난 아버지를 도와야 해. 라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하지 마.
알았어.
말없이 사라지진 않을게.
나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라스가 말했다.
넌 아버지를 도와줘야 해.
응. - P405

나는 라스가 몸을 돌려 집 뒤편의 작은 바위 언덕 위로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라스가 아버지를 도와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며 흐느껴 울었다. - P406

나는 라스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먼 바다에 나가 홀로 그물을 끌어 올려야 한다. 라스는 밤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다음 날 아침 초췌한 얼굴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추위에 떨며 피를 흘리며 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 라스는 피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어두웠고 난폭한 빛을 띠고 있었다. - P406

나는 그에게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다녀왔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아버지가 집요하게 질문을 되풀이했던 적은 딱 한번 있었다. 아버지는 라스에게 어디에 다녀왔느냐고 연신 물었다.
어디서 뭘 했니, 라스? 라스는 아버지의 계속되는 질문에 올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집을 나갔고, 나는 그가 언제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는지 기억할 수 없다. - P406

라스는 지금 바위에 앉아있다. 만약 그가 나를 발견한다면 당장 어디론가 뛰쳐나갈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라스가 집을 나가서 온종일 뭘 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라스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몸을 숨긴 채 가만히 서서 라스를 보았다. 그의 뒤를 밟아도 좋을까? - P4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 렙틴Leptin과 그렐린Ghrelin이라는 식욕 조절 호르몬에 대한 설명이 나왔었는데, 그 내용과 관련하여 비전형성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면서 시작한다. 이후에도 앞에 미처 나오지 못했던 비전형성 우울증의 특징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
.
.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상담 사례들을 통해 거기서 진단된 증상이나 문제점에 관해 논하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방안도 제시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느낌이었다.

비전형성 우울증에서는 렙틴의 식욕억제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 식욕이 증가하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야간에 식욕이 증가하면서 빵, 국수, 라면 등 탄수화물과 매운 것이 당기게 됩니다. 혈당이 증가하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많이 먹게 됩니다.

둘째,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심지어는 밤낮이 완전히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일찍 잠이 오지 않고 밤이 될수록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신체의 리듬이 정오가 되어야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반나절 정도 뒤로 밀립니다. 결국 새벽에 에너지와 식욕이 증가하게 되어서 정작 활동을 해야하는 낮에는 심한 무기력증을 보이게 됩니다.

셋째, 몸이 무겁고 주로 누워 지냅니다. 누워서 햄버거나 감자튀김, 치킨을 먹는 것에 익숙하고 방은 거의 치우지 않습니다. 이러한 증상을 ‘연마비‘ 라고 합니다.

연마비 Leaden paralysis

팔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운 느낌을 말한다. 비전형성 우울증에서 보이는 주요 증상 중 하나이다.

넷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요. 비전형성 우울증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합니다. 이것을 ‘거부민감성‘이라고 합니다. 그로인해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에 매우 민감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고 표정이 어떤지 예민하게 살펴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도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는 그 사람의 당시 컨디션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부민감성 Rejection sensitivity

실제로 거부를 당하거나, 거부를 당한다고 느낄 때, 혹은 비판을 받았을 때 민감하여 기분이 가라앉고 분노가 생기며 자존심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문자 메시지에 바로 응답하지 않을 때 거부민감성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서 환청과 관계사고가 생기면 아예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응급상황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환청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이때는 귀의 고막이 울리지 않습니다. 이는 뇌 속에서 발생한 소리입니다. 연구를 통해 뇌 영상을 촬영해보면 환청을 들을 때 청각 중추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관계사고란 ...(중략)...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현상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증상이 생기면 자신의 생각에 몰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방에서 더욱 은둔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서로 관계없는 두 현상을 연관시키는 것이 바로 관계사고이고 중증 우울증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조깅 시에 햇볕을 쬐면 눈으로 빛이 들어가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몸도 잠에서 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신체 리듬을 조금씩 앞당길 수 있습니다. 커피나 카페인이 든 음료나 초콜릿은 불면을 일으킬 수 있어 삼가고 빛을 충분히 쬐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밤에도 더 일찍 잠이 오게 됩니다.

대학생 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해도 힘들지 않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타인을 만나는 것이 편하고 즐거우면 더 많은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 사람의 대인관계의 양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거부민감성이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야 하고 누구에게든 싫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성향입니다.

자존감 형성에 있어 어린 시절의 ‘안전기지‘의 형성과 ‘적당한 좌절‘의 경험이 중요한 근간이 됩니다. 이 안전기지와 적당한 좌절 모두 부모님(특히 어머니가)이 그 역할을 하게 되지만 다른 보호자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우울증이 나타나면 자신의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트라우마들이 자신을 사로잡게 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울증에 의해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히게 되면 집 밖에도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는데 그러면 생각은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이때는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서 우울증에 대해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됩니다.

상실의 트라우마는 혼자 집에서 고립되어서는 해결되지 않으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될 수 있습니다.

24시간 홀터 심전도(하루 동안 심전도 기록계를 몸에 부착하고 생활하면서 일상생활 중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

심방 세동이란 부정맥 질환의 하나로 심방에서 발생하는 맥이 정상을 벗어나 빠르고 불규칙한 맥박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심폐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CPR이란 심장 정지가 발생했을 때 흉부 압박을 통해 비상조치를 하는 방법으로 심정지 1분 이내어 시행하면 생존율을 2~3배로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망상이란 사실과 다른 그릇된 믿음을 확신하는 상태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면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져서 혈중 산소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저하되어 저산소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뇌가 저산소증 상태가 되면 이상감각, 환청, 환시 등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우울증이 발생하면 이때의 경험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뇌 기능 저하에 의해 의식과 지남력(날짜, 장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 또한 ‘섬망‘ 이라고 합니다. 섬망 증상으로는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와 생생한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섬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갑자기 발생하지만 심장 질환이나 큰 뼈의 골절, 전신마취 수술에 의해서도 흔히 발생합니다.

섬망 상태에서는 연상 작용을 통해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과 어렴풋하게 파악한 정보를 연관해 해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상태가 호전되면 정상적인 판단력을 회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에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가족과 꼭 상의하고 전문가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두려움이 만드는 환상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분리-개별화‘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분리 개별화란 자녀가 부모와의 공생관계를 벗어나 독립적인 개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가 부모와 독립된 상태에서도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대상 항상성‘이라고 합니다. 이 대상 항상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녀는 ‘분리불안‘이 심해져 부모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부모의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의존적 성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욱 힘든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들이 부모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독립할 수 있을만큼 훌륭하게 자란 것입니다.

사소하고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족이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고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식구‘라는 말 또한 함께 식사를 하는 사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때 이야기를 나누면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 친숙하게 들리고 상대의 생각과 태도를 여유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수년간 식사를 하고 함께 이야기 하면 가족이 아닌 사람도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족과도 식사를 함께하지 않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남처럼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 모여서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행복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생기는 치매와 우울증은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치매는 ‘해마‘의 위축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대뇌에서 저장하는 장기 기억은 초반에는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 됩니다.

해마는 뇌의 양쪽에 하나씩 있으며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단기 기억 저장을 담당하는 반도체인 램RAM과 방향감각을 인지하는 GPS의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력 장애, 혼동, 공간 지각력 장애, 지남력 장애, 이름 대기 등의 언어 기능 장애, 계산 능력 저하, 판단력의 와해가 점진적으로 발현되는 가장 흔한 치매의 종류를 말합니다.

전두엽은 뇌의 이마쪽에 위치하는 부분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두엽에 손상이 오면 이전과는 다르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화를 많이 내기도 합니다.

우울증이 오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멍해져서 방금 들은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병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이에 비해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자신이 치매가 아닐까 걱정을 더 많이 합니다.

둘(치매와 우울증)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해마 손상 여부인데 해마의 기능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기 기억이 떨어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노인 우울증에서는 방향감각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치매에서 생기는 정신적인 증상을 치매의 행동 심리 증상BPSD 이라고 합니다. 성격 변화, 초조, 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 장애, 무감동 및 무관심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섬망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망은 치매 증상과 유사하지만 해 질 무렵부터 무척 심해지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헛것을 보거나 듣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뼈에 골절이 생기거나 심장질환이 있을 때도 흔히 나타납니다. 치매에서 발생하는 의심은 피해망상의 일종으로 섬망과는 다르고 하루 종일 지속됩니다.

스노든 박사는 수녀들이 쓴 글에서 단어 수가 풍부하고 어휘력이 유창할수록 치매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된 수녀의 80퍼센트는 나중에 치매에 걸렸지만, 글의 어휘가 풍부한 수녀들은 10퍼센트만이 치매가 발생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적정 체중일수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남아있는 치아가 많을수록, 어휘를 많이 사용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쓸수록 치매에 덜 걸린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부가 서로 긍정적인 대화를 많이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치매와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식물인간이란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나머지 신체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환자를 의미합니다.

‘석션‘이라고 불리는 가래 제거기

불안이 너무 높아서 혈압과 심박수가 올라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에 뒷부분에 이어서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앞에서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메인이었다면 여기서는 작가인 ‘비드메‘가 메인으로 나온다. 앞의 내용과 굳이 연결고리를 찾자면 작가인 ‘비드메‘가 쓰려고 하는 소설이 바로 앞에서 계속 나왔던 ‘라스 헤르테르비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식으로 뒷 이야기들이 흘러갈지 당장은 감이 잡히지 않는데, 일단은 비드메가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인 ‘마리아‘라는 여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
.
.
뒤이어 나오는 내용에서 왜 ‘비드메‘가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를 만나려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온다. 책에선 이유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나오는데, 핵심은 지혜가 깊은 사제를 통해 ‘인생의 일반적인 진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였다. 이와 관련하여 ‘비드메‘가 생각했던 사제의 이미지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 사제 였던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자신이 교회에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된 사제는 ‘마리아‘라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성 사제였다. ‘비드메‘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사제의 모습에 당황하는 듯 보인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비드메‘는 사제를 만나려고 했던 원래의 초심을 잃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비드메‘의 생각의 흐름으로 표현되는데, 이 책 앞부분의 주인공이었던 ‘라스 헤르테르비그‘와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독자인 내 느낌이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어나갈듯 하다. 한편 ‘마리아‘는 젊고 아름답다는 얘기를 통해 앞부분에 나왔던 ‘헬레네‘와 비슷한 느낌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독자인 내가 책을 읽을 때 이런 식으로 예상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설사 이후에 내 예상과 다른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라도 말이다.

비드메와 마리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문득 마리아가 와인을 한 잔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얼핏 보면 이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는데, 마리아의 직업이 사제인 점을 감안한다면 약간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실제로 뒤에서 비드메는 마리아와 건배사를 서로 나눈뒤 이게 뭔가 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 사제에게서 와인이 나오는 순간부터 독자인 나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쭉 읽다보니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본문 내용에 아주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마리아가 비드메를 약간은 유혹하려하는 듯한 분위기도 살짝 느껴졌었는데, 비드메는 자신이 처음에 교회의 사제를 만나려했던 근본적인 목적을 다시금 상기하며 마리아의 유혹(?)을 이겨내고 잠시나마 흔들렸던 멘탈을 다시 잡기로 선택한다. 마리아와 단 둘이 있는 그 자리를 뜨기로 결심한뒤 적절한 타이밍에 실행으로 옮긴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비드메가 갖고 있는 종교관에 대해서도 간략히 나오는데 나름대로 고민을 꽤나 한 흔적이 엿보일 정도로 중요한 맥을 잘 짚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련 내용은 p.369에 밑줄친 부분에 나와있다.

한편 마리아와 함께 있던 자리를 뜬 비드메는 다시는 마리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뭔가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단순히 마리아 사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한 때 존중하고 높이 우러러 봤던 사제라는 직업자체에 대해 커다란 실망감을 느낀듯 보였다.

어찌됐든 이 일을 계기로 비드메는 자신의 본업인 작가 일에 전념하기로 다짐하면서 사제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신의 자비를 구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1부가 마무리된다.

비드메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 많은 남자에게 라스헤르테르비그에 관해 물어볼까 생각했다. 그도 보르그외위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라스 헤르테르비그. 비드메가 말문을 열었다.
미쳐 버린 사람이지. 남자가 말했다.
비드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사람과 친척이라오. 나이 많은 남자가 말했다. - P345

작가 비드메는 어둠이 짙은 빗길을 걸으며 그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소설을 떠올렸다. 그는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그린 구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본성을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와 만나기 위해 어둠 속의 빗길을 걸었다. - P345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작가 비드메라는 사람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 그것도 여성 사제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는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거북한 일이었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의 여성 사제 이름이 마리아라는 점을 떠올렸다. 그것쯤은 기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노르웨이 교회의 여성 사제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 두기까지 했다. - P347

비드메가 본 것은 평범한 집 안의 복도였다. 그럼에도 복도에서 있던 그는 자신을 덮치는 압도적인 거부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그 무엇과마주하게 되리라는 생각, 따뜻한 커피 향과 뜨갯거리와 맞닥뜨릴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350

비드메는 자신이 사제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신성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한순간의 깨달음을 경험했다. - P352

비드메는 지금까지 신과 신성함에 관해 입에 올리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신 또는 신성함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믿었다. - P352

생각에 잠겨 있던 비드메는 이러저러한 삶의 일들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절망에 빠져 운명을 찾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 P353

무거운 어둠, 날카로운 바람, 항상 그랬듯 죽음과 연민 사이에 자리한 사랑, 거친 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훨씬 힘겹고 어려운 출산의 고통 위에는 항상 거대한 하늘이 있었다. - P353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짙은 어둠과 거센 바람. 교회와 예배당과 자갈돌들. 어둠과 빗속에 자리한 묘지. 이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 P353

작가 비드메는 지금껏 일반적인 사회 생활을 거부해 왔다. 그는 오직 사회에서 벗어나고만 싶어 했다. 그는 이처럼 제한된 삶을 지금껏 잘 살아왔고, 사회와 관련한 일에는 최대한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하지만 비드메는 사회와의 유대를 다시 잇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교회, 지금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교회지만,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소속되고 싶었다. 바로 그 때문에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했고, 지금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마리아의 집에 앉아 있는 것이다. - P353

비드메는 지금까지 사회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그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했고, 깊은 지식과 현명함을 지닌 나이 지긋한 남자 사제가 전화받기를 기대했다. 그는 삶의 희노애락을 통해 깊은 지혜를 얻은 사제가 인생의 일반적인 진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이야기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심지어 그와 함께 술을 한잔하며, 그가 읽어 주는 성경의 아름다운 한 구절을 들어 보는 일도 기대했음은 사실이다. 비드메는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나길 원했다. 그 때문에 그는 그가 사는 베르겐, 오사네 교구의 사제를 찾아 전화를 했던 것이다. - P354

매우 외로운 존재 비드메는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사제, 자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해냈던 사람, 노르웨이 교회라는 틀 안에서 일을 해 왔던 사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사제,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노년에서 죽음으로 사람들의 삶이 변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과 함께하기를 자신의 임무로 여겼던 사제, 술잔을 손에 들고 모든 이상한 사람들을 관용과 아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남용되기에 사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말을 사용하는데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사람, 신에 관해선 과다하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기대했다. - P354

작가 비드메가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 겸손한 사람, 책을 쓰거나 신문에 기고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비드메는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한 사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제, 예쁘장하고 말잘 듣는 아이들을 키우는 사제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제와는 절대 만날 생각이 없었다. 비드메가 만나고 싶었던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겠지만, 설사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를 두지 않은 그런 사제였다. - P354

비드메는 사제의 아내가 근심과 걱정, 사랑과 죽음, 연민과동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가만히 앉아서 침묵을 지키며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일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사람이길 원했다. 그가 생각했던 사제의 아내는 겸손과 존엄함으로 수치심을 숨기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허세를 떨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 P355

비드메가 상상했던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바로 그런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비드메는 지금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거실로 들어오는 여성 사제 마리아를 보고 있다. - P355

비드메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계획했던 일을 바로 해치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계획했던 일은 무엇이었던가?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일이었던가? 죽었을 때 적절한 방식으로 땅에 묻히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일까? 도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부적절한 방식으로 흙 속에 묻힐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계획했던 일은 무엇이었던가? 작가 비드메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 P356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젊은 여인과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이 상황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큰 결심, 어려운 결심을 하고 노르웨이 교회에 소속된 한 사제에게 전화를 했던 비드메는 지금 오사네에 자리한 거의 텅 빈 집에 앉아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고, 그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말. - P356

방문 목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비드메는 고개를 들어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바닥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 P356

비드메는 얼른 그녀를 찾아온 목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마음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일요일 오전에 마리아의 설교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57

비드메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 마리아,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오늘 사제에게 전화를 했던 까닭은, 솔직히 말해서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랍니다. 마리아, 마리아, 그런데 나는 지금 당신의 집에 들어와서 당신과 마주 앉았습니다. 당신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군요. 나는 이곳에 들어오며 마치 어릴 때 살았던 집에 들어오는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 내 코트를 말려 주고 내게 비스킷과 차를 대접했던 당신은 내게 왜 사제를 만나러 왔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마리아, 당신은 사제니까요. 나는 당신에게 왜 사제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대답해야 합니다. - P358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마리아가 말했다.
저는 단지 사제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떤 일인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P358

당신은 신을 믿나요?
아닙니다. 비드메가 주저하며 말했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요?
네.
제가 신을 믿는다거나 또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이 신으로 존재하므로 우리 인간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드메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P359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신이 예수라는 인간의 형태로 존재했고,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 P359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죠. 혹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그건 무의미하게 돌고 도는 일종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드메가 말했다. - P360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실재했었다는 것은 믿나요?
네, 네, 복음서에 그렇게 적혀 있죠. 하지만 복음서에 적혀있는 말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복음서와 소설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 P360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믿나요?
네, 당연히.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요?
못 믿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 P360

비드메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게 꽤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이 지긋하고 지혜로운 남성 사제, 자신과 비슷한 아내를 둔 사제도 아니었지만,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60

문득 비드메는 마리아가 노르웨이의 다른 꽉 막힌 기독교 신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일부러 와인을 제안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꽉 막힌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니까!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비드메는 그것이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 P361

비드메는 자신이 신성 모독이라는 말을 떠올렸음을 되새기며, 만약 마리아도 와인을 마실 생각이라면 자신도 함께 마시겠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와인을 마실 거라고 말하며, 사실 와인을 마실 기회를 찾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이 동네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집에 홀로 앉아 와인을 마시기는 싫었다고 말했다. - P361

그녀는 대리 사제직을 맡아 가구가 딸린 이곳 관저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사실, 자신이 대리 사제직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일단 그녀는 여성이며, 목회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교를 나와 시험은 꽤 잘 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이제야 교구 일에 적응이 되었다고 말했다. - P361

비드메는 교구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매우 부적절한 말이며 신성 모독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이곳의 교구들이 다른 어떤 교구보다 더 개방적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비드메는 그녀가 의미하는 교구가 이 도시, 자신이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 도시의 특정 교구이리라고 짐작했다. - P361

문득 비드메는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런 그녀의 말에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비드메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드메는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마리아의 말에 자신이 기뻐하고 있음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 P362

그녀는 탁자에 그다지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탁자는 그녀가 이곳, 베르겐의 오사네 관저에 왔을 때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62

비드메는 마리아를 바라보았고, 마리아는 비드메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비드메는 입속 가득히 와인을 채운 뒤 잔을 내려놓았다. 비드메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상상했던 노르웨이 교회 사제와의 만남은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가 비드메는 마리아가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려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리라고 짐작했다. 비록 그녀가, 엄밀히 말하자면 대리 사제이긴하나,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P363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길 원하느냐는마리아의 질문에, 인정하기는 싫었으나 바로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임을 깨닫고 기이한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경계가 사라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드메는 자신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한 까닭이 바로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였음을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노르웨이 교회 소속의 나이 지긋하고 지혜로운 사제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비드메는 그 사제가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라고 제안해 주기를 바랐다. 비드메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사제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비드메가 어렴풋하게 원했던 바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건 그가 지금껏 사회와 거리를 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P364

비드메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드메는 각자 잔을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드메는 마리아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사제와의 면담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마리아에게 말하기 싫었다. 그런 말을 하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인 마리아가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 비드메는 자신이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마리아가 원하지 않는다고 짐작했다. - P365

마리아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한숨을 크게 내쉬며,
비드메는 종교적 신비주의자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비드메는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해하기론 적어도 노르웨이 교회에서는 신비주의자를 환영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은 누군가 신비적 가치에 관해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내면 쉽사리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며 다시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 P366

그녀는 비드메를 바라보며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관저에 그의 책을 가져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책을 읽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의 책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선뜻 단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그녀는 그의 책을 읽은 뒤에, 그가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P366

비드메는 자신이 종교적 신비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쨌거나 그가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노르웨이 교회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며, 교회에 갈 때마다 일종의 공허감과 두려움을 경험했음은 사실이니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매우 불쾌하고 거북하며 파멸적인 경험이었다. 비드메는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를 수없이 나열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런 단어들에 혐오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것은 그러한 표현을 나열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도 그런 단어들을 의미 없이 나열하기를 피해왔다. - P367

저는 노르웨이 교회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자 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 말을 이해하십니까? 비드메가 말했다.
마리아는 고개를 젓다가 생각을 바꾸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P368

마리아는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없는, 집 안의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탁자 앞으로 몸을 숙이고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었다. 마리아는 양손의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뺨을 감싼채 붉은 와인이 반쯤 들어 있는 와인 잔 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 비드메를 빤히 쳐다보았다. 비드메는 자리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며 마리아와 함께 이렇게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른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거니와, 게다가 그녀 스스로도 성직자가 될 마음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현재 사제로 일하는 교회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드메는 그녀의 집에서 당장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절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P368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사제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는 사제에게 왜 전화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바로그 때문에 그는 하얀 티셔츠 아래 커다랗고 둥그런 가슴을 지난 여인, 연하늘색 청바지를 입은 여인, 맨발로 갈색 슬리퍼를 신은 여인, 마리아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368

비드메는 사제도 아니고, 사제가 될 마음이 없었음에도 사제들을 존중했다. 비록 노르웨이 교회에 속할 마음이 없더라도 일단 사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비드메는 그렇게 생각했다. - P369

비드메는 결코 자신감이나 용기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들처럼 어떤 특정한 일에 그토록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삶에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종교에 귀의하기 때문이다. - P369

비드메는 확신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빛을 향해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종교라고 생각했다.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다. - P369

집을 나설 채비를 마친 그는 마리아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마리아도 그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와인을 대접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 비드메는 대문 밖으로 나왔고 비와 바람과 어둠 속에서 자기 집을 향해 발을 옮겼다. - P370

비드메는 길을 걸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를 하라는 마리아의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비드메에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던가. 그녀는 이 도시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가 찾아오면 무척 기쁘리라고 말했다. 베르겐 오사네의 노르웨이 교회소속 대리 사제 마리아는 비드메가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만약 그런다면 자기자신은 물론 비드메까지 피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드메는 길을 걸으며 그녀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그가 집으로 찾아오는 건 좋다고 했다. 언제든 와서 초인종 누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에 찾아와서 설교를 듣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P371

비드메는 빗속을, 바람 속을, 어둠 속을 걸었다. 비드메는 다시 마리아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비드메는 마리아를 다시 찾아갈 일이 없으리라 확신했다. - P371

빗속을 걸어 집에 도착한 비드메는 젖은 옷을 벗었다. 그는 먼저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여전히 비 내리는 창을 바라보며 글을 쓸 것이다. 그는 오늘 새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으나, 글을 쓰는 대신 그가 사는 지역인 오사네의 사제에게 전화를 걸었고, 젊은 여성 사제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그에게 차와 와인을 대접했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비드메는 그런 말을 듣는 걸 매우 싫어했기에 다시는 마리아에게 전화하거나 그녀를 방문하는 일은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 P371

그는 다른 어떤 사제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 매일 글을 쓰리라고 다짐했다. 그는 글을 쓰기위해 신의 자비를 구했다. 그에겐 신의 자비가 필요했다. 그는 글을 써야 한다. 작가 비드메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글을 쓰기 위해선 신의 자비가 필요하다고. - P3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테스가 도망치다가 숨어든 장소에서 사냥꾼들에게 총에 ...

혹여나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1년 전 오늘 보았던 테스의 깨달음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핵심 요지는 세상에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 (여기서는 사냥꾼의 총에 맞은 새bird로 나오지만)도 얼마든지 많이 있기에 어떤 역경과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쉽사리 좌절하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