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드메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 많은 남자에게 라스헤르테르비그에 관해 물어볼까 생각했다. 그도 보르그외위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라스 헤르테르비그. 비드메가 말문을 열었다. 미쳐 버린 사람이지. 남자가 말했다. 비드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사람과 친척이라오. 나이 많은 남자가 말했다. - P345
작가 비드메는 어둠이 짙은 빗길을 걸으며 그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소설을 떠올렸다. 그는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그린 구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본성을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와 만나기 위해 어둠 속의 빗길을 걸었다. - P345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작가 비드메라는 사람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 그것도 여성 사제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는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거북한 일이었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의 여성 사제 이름이 마리아라는 점을 떠올렸다. 그것쯤은 기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노르웨이 교회의 여성 사제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 두기까지 했다. - P347
비드메가 본 것은 평범한 집 안의 복도였다. 그럼에도 복도에서 있던 그는 자신을 덮치는 압도적인 거부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그 무엇과마주하게 되리라는 생각, 따뜻한 커피 향과 뜨갯거리와 맞닥뜨릴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350
비드메는 자신이 사제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신성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한순간의 깨달음을 경험했다. - P352
비드메는 지금까지 신과 신성함에 관해 입에 올리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신 또는 신성함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믿었다. - P352
생각에 잠겨 있던 비드메는 이러저러한 삶의 일들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절망에 빠져 운명을 찾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 P353
무거운 어둠, 날카로운 바람, 항상 그랬듯 죽음과 연민 사이에 자리한 사랑, 거친 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훨씬 힘겹고 어려운 출산의 고통 위에는 항상 거대한 하늘이 있었다. - P353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짙은 어둠과 거센 바람. 교회와 예배당과 자갈돌들. 어둠과 빗속에 자리한 묘지. 이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 P353
작가 비드메는 지금껏 일반적인 사회 생활을 거부해 왔다. 그는 오직 사회에서 벗어나고만 싶어 했다. 그는 이처럼 제한된 삶을 지금껏 잘 살아왔고, 사회와 관련한 일에는 최대한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하지만 비드메는 사회와의 유대를 다시 잇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교회, 지금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교회지만,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소속되고 싶었다. 바로 그 때문에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했고, 지금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마리아의 집에 앉아 있는 것이다. - P353
비드메는 지금까지 사회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그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했고, 깊은 지식과 현명함을 지닌 나이 지긋한 남자 사제가 전화받기를 기대했다. 그는 삶의 희노애락을 통해 깊은 지혜를 얻은 사제가 인생의 일반적인 진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이야기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심지어 그와 함께 술을 한잔하며, 그가 읽어 주는 성경의 아름다운 한 구절을 들어 보는 일도 기대했음은 사실이다. 비드메는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나길 원했다. 그 때문에 그는 그가 사는 베르겐, 오사네 교구의 사제를 찾아 전화를 했던 것이다. - P354
매우 외로운 존재 비드메는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사제, 자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해냈던 사람, 노르웨이 교회라는 틀 안에서 일을 해 왔던 사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사제,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노년에서 죽음으로 사람들의 삶이 변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과 함께하기를 자신의 임무로 여겼던 사제, 술잔을 손에 들고 모든 이상한 사람들을 관용과 아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남용되기에 사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말을 사용하는데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사람, 신에 관해선 과다하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기대했다. - P354
작가 비드메가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 겸손한 사람, 책을 쓰거나 신문에 기고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비드메는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한 사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제, 예쁘장하고 말잘 듣는 아이들을 키우는 사제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제와는 절대 만날 생각이 없었다. 비드메가 만나고 싶었던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겠지만, 설사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를 두지 않은 그런 사제였다. - P354
비드메는 사제의 아내가 근심과 걱정, 사랑과 죽음, 연민과동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가만히 앉아서 침묵을 지키며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일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사람이길 원했다. 그가 생각했던 사제의 아내는 겸손과 존엄함으로 수치심을 숨기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허세를 떨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 P355
비드메가 상상했던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바로 그런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비드메는 지금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거실로 들어오는 여성 사제 마리아를 보고 있다. - P355
비드메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계획했던 일을 바로 해치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계획했던 일은 무엇이었던가?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일이었던가? 죽었을 때 적절한 방식으로 땅에 묻히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일까? 도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부적절한 방식으로 흙 속에 묻힐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계획했던 일은 무엇이었던가? 작가 비드메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 P356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젊은 여인과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이 상황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큰 결심, 어려운 결심을 하고 노르웨이 교회에 소속된 한 사제에게 전화를 했던 비드메는 지금 오사네에 자리한 거의 텅 빈 집에 앉아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고, 그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말. - P356
방문 목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비드메는 고개를 들어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바닥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 P356
비드메는 얼른 그녀를 찾아온 목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마음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일요일 오전에 마리아의 설교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57
비드메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 마리아,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오늘 사제에게 전화를 했던 까닭은, 솔직히 말해서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랍니다. 마리아, 마리아, 그런데 나는 지금 당신의 집에 들어와서 당신과 마주 앉았습니다. 당신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군요. 나는 이곳에 들어오며 마치 어릴 때 살았던 집에 들어오는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 내 코트를 말려 주고 내게 비스킷과 차를 대접했던 당신은 내게 왜 사제를 만나러 왔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마리아, 당신은 사제니까요. 나는 당신에게 왜 사제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대답해야 합니다. - P358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마리아가 말했다. 저는 단지 사제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떤 일인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P358
당신은 신을 믿나요? 아닙니다. 비드메가 주저하며 말했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요? 네. 제가 신을 믿는다거나 또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이 신으로 존재하므로 우리 인간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드메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P359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신이 예수라는 인간의 형태로 존재했고,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 P359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죠. 혹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그건 무의미하게 돌고 도는 일종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드메가 말했다. - P360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실재했었다는 것은 믿나요? 네, 네, 복음서에 그렇게 적혀 있죠. 하지만 복음서에 적혀있는 말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복음서와 소설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 P360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믿나요? 네, 당연히.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요? 못 믿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 P360
비드메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게 꽤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이 지긋하고 지혜로운 남성 사제, 자신과 비슷한 아내를 둔 사제도 아니었지만,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60
문득 비드메는 마리아가 노르웨이의 다른 꽉 막힌 기독교 신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일부러 와인을 제안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꽉 막힌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니까!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비드메는 그것이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 P361
비드메는 자신이 신성 모독이라는 말을 떠올렸음을 되새기며, 만약 마리아도 와인을 마실 생각이라면 자신도 함께 마시겠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와인을 마실 거라고 말하며, 사실 와인을 마실 기회를 찾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이 동네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집에 홀로 앉아 와인을 마시기는 싫었다고 말했다. - P361
그녀는 대리 사제직을 맡아 가구가 딸린 이곳 관저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사실, 자신이 대리 사제직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일단 그녀는 여성이며, 목회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교를 나와 시험은 꽤 잘 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이제야 교구 일에 적응이 되었다고 말했다. - P361
비드메는 교구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매우 부적절한 말이며 신성 모독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이곳의 교구들이 다른 어떤 교구보다 더 개방적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비드메는 그녀가 의미하는 교구가 이 도시, 자신이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 도시의 특정 교구이리라고 짐작했다. - P361
문득 비드메는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런 그녀의 말에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비드메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드메는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마리아의 말에 자신이 기뻐하고 있음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 P362
그녀는 탁자에 그다지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탁자는 그녀가 이곳, 베르겐의 오사네 관저에 왔을 때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62
비드메는 마리아를 바라보았고, 마리아는 비드메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비드메는 입속 가득히 와인을 채운 뒤 잔을 내려놓았다. 비드메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상상했던 노르웨이 교회 사제와의 만남은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가 비드메는 마리아가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려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리라고 짐작했다. 비록 그녀가, 엄밀히 말하자면 대리 사제이긴하나,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P363
비드메는 다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리길 원하느냐는마리아의 질문에, 인정하기는 싫었으나 바로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임을 깨닫고 기이한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경계가 사라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드메는 자신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에게 전화를 한 까닭이 바로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였음을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노르웨이 교회 소속의 나이 지긋하고 지혜로운 사제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비드메는 그 사제가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라고 제안해 주기를 바랐다. 비드메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사제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교회에 이름을 올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비드메가 어렴풋하게 원했던 바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건 그가 지금껏 사회와 거리를 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P364
비드메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드메는 각자 잔을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드메는 마리아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사제와의 면담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마리아에게 말하기 싫었다. 그런 말을 하면,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인 마리아가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 비드메는 자신이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마리아가 원하지 않는다고 짐작했다. - P365
마리아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한숨을 크게 내쉬며, 비드메는 종교적 신비주의자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비드메는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해하기론 적어도 노르웨이 교회에서는 신비주의자를 환영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은 누군가 신비적 가치에 관해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내면 쉽사리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며 다시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 P366
그녀는 비드메를 바라보며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관저에 그의 책을 가져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책을 읽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의 책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선뜻 단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그녀는 그의 책을 읽은 뒤에, 그가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P366
비드메는 자신이 종교적 신비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쨌거나 그가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노르웨이 교회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며, 교회에 갈 때마다 일종의 공허감과 두려움을 경험했음은 사실이니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매우 불쾌하고 거북하며 파멸적인 경험이었다. 비드메는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를 수없이 나열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런 단어들에 혐오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것은 그러한 표현을 나열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도 그런 단어들을 의미 없이 나열하기를 피해왔다. - P367
저는 노르웨이 교회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자 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 말을 이해하십니까? 비드메가 말했다. 마리아는 고개를 젓다가 생각을 바꾸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P368
마리아는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없는, 집 안의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탁자 앞으로 몸을 숙이고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었다. 마리아는 양손의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뺨을 감싼채 붉은 와인이 반쯤 들어 있는 와인 잔 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 비드메를 빤히 쳐다보았다. 비드메는 자리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며 마리아와 함께 이렇게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른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거니와, 게다가 그녀 스스로도 성직자가 될 마음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현재 사제로 일하는 교회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드메는 그녀의 집에서 당장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절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P368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사제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는 사제에게 왜 전화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바로그 때문에 그는 하얀 티셔츠 아래 커다랗고 둥그런 가슴을 지난 여인, 연하늘색 청바지를 입은 여인, 맨발로 갈색 슬리퍼를 신은 여인, 마리아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드메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368
비드메는 사제도 아니고, 사제가 될 마음이 없었음에도 사제들을 존중했다. 비록 노르웨이 교회에 속할 마음이 없더라도 일단 사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비드메는 그렇게 생각했다. - P369
비드메는 결코 자신감이나 용기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드메는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들처럼 어떤 특정한 일에 그토록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삶에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종교에 귀의하기 때문이다. - P369
비드메는 확신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빛을 향해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종교라고 생각했다.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다. - P369
집을 나설 채비를 마친 그는 마리아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마리아도 그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와인을 대접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 비드메는 대문 밖으로 나왔고 비와 바람과 어둠 속에서 자기 집을 향해 발을 옮겼다. - P370
비드메는 길을 걸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를 하라는 마리아의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비드메에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던가. 그녀는 이 도시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가 찾아오면 무척 기쁘리라고 말했다. 베르겐 오사네의 노르웨이 교회소속 대리 사제 마리아는 비드메가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만약 그런다면 자기자신은 물론 비드메까지 피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드메는 길을 걸으며 그녀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그가 집으로 찾아오는 건 좋다고 했다. 언제든 와서 초인종 누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에 찾아와서 설교를 듣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P371
비드메는 빗속을, 바람 속을, 어둠 속을 걸었다. 비드메는 다시 마리아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비드메는 마리아를 다시 찾아갈 일이 없으리라 확신했다. - P371
빗속을 걸어 집에 도착한 비드메는 젖은 옷을 벗었다. 그는 먼저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여전히 비 내리는 창을 바라보며 글을 쓸 것이다. 그는 오늘 새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으나, 글을 쓰는 대신 그가 사는 지역인 오사네의 사제에게 전화를 걸었고, 젊은 여성 사제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그에게 차와 와인을 대접했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비드메는 그런 말을 듣는 걸 매우 싫어했기에 다시는 마리아에게 전화하거나 그녀를 방문하는 일은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 P371
그는 다른 어떤 사제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 매일 글을 쓰리라고 다짐했다. 그는 글을 쓰기위해 신의 자비를 구했다. 그에겐 신의 자비가 필요했다. 그는 글을 써야 한다. 작가 비드메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글을 쓰기 위해선 신의 자비가 필요하다고.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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