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다양한 사연들과 더불어 트라우마와 관련된 얘기들과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사람들마다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르고 그에 따라 경험하는 것들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된 해결책보다는 case by case 로 저자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하는 마음들이 샘솟는 것 같다.

특별히 밑줄 친 내용중에 ‘겉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행동 뒤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는 저자의 말이 많은 공감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가진 가치관에선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가 있나 싶어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배경들이 다들 있다는 얘기인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좀 더 품을 넓게 가지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도록 해보면 좋을 듯 하다.

말은 부드럽게 전달될 때 더 편하게 받아들여지고 변화하게 됩니다. xx씨 처럼 예민한 분들에게는 더 그래야 합니다.

무례한 사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의 고리를 끊고 현재만 생각해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는 동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동료에게 털어놓고 서로 위로해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녀의 위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모든 일에 간섭하려는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손자, 손녀의 일에 신경을 쓰면서 학업, 학원 관리, 나아가서 사생활까지 챙기는 조부모가 많아졌습니다. 이를 일컬어 ‘헬리콥터 조부모‘라고 합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곁을 떠나서 유치원에 갈 때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것을 ‘분리불안‘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행동 뒤에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한 우울증‘은 환청이나 망상을 동반한 우울증으로 증상이 심해질 때 자신만의 우울한 망상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우울증은 갑작스러운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체화 장애‘는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중략)... 이렇게 되면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무의식적으로 줄어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은 심한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려는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제한되거나 혹은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경우에 생깁니다.

극단적 선택의 사망원인을 후향적으로 밝히는 것을 ‘심리부검‘이라고 합니다.

집에만 있고 바깥 활동이 없으면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경우에 봄의 계절 변화가 감정 기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 밖으로 나가서 걷고 활동하면서 일조량의 증가에 적응하는 것이 감정 기복 발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습관화된 반응이나 사고를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조정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말더듬은 특정 소리나 음절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거나 지연하는 언어 유창성의 장애를 의미합니다.

말더듬증 치료에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장을 파악하고 반복 연습을 해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말더듬은 장애가 아니고 사실 대화를 하는데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치료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더듬이 있을 때 이를 지적하지 말고 편안하게 들어주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고이탈 Tangentiality

말의 내용이 처음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으로 빠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열차가 탈선하듯이 엉뚱한 이야기로 흘러가서 처음에 의도한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우원증 Circumstantiality

핵심을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최종 목표에는 도달하지만, 도중에 지엽 말단에 얽매여 요점이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고 목표에 이르는데 시간이 걸린다.

사고이탈과 우원증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다음에 내가 할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못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사고이탈과 우원증을 유발하게 됩니다. 대화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내가 할 이야기를 거기에 맞춰 대답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마치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한 방향으로만 치닫게 됩니다. 심각하게 우울해지면 예전의 우울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상됩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정서적 방임‘이 현재의 기억과 연관되어 감정의 증폭이 이뤄집니다. ‘정서적 방임‘이란, 아동에게 필요한 애정 표현과 정서적 지지 없이 무관심으로 방치해 결핍을 남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신체적 학대에 비해 직접적인 폭력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정서적 방임의 영향은 매우 크고 성인기에 우울증이 일어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서적 방임‘을 경험한 이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존중‘입니다.

폭언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존댓말과 반말이 있습니다. 반말은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댓말을 쓰고, 내 돈 주고 서비스를 제공받았어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해봅시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경험‘을 준다면, 그건 그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동시에 내가 존중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분노는 타인을 향할 수도 있고 자신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적당한 정도의 화는 누구나 낼 수 있는 것이지만 만성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분노는 개인의 정신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분노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자신을 향한 분노는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불면증, 우울증 등 정신적인 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분노를 하게 되는 원인도 다양합니다. 분노는 첫째,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때 둘째, 타인에 자신의 갈등을 투사할 때 셋째, 충동억제가 되지 않을 때 넷째, 부도덕한 행동을 보았을 때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분노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낮추어 보거나 무시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분노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마다 자존심의 수준은 큰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분노를 느끼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게 됩니다.

성격의 유형 중에 히스테리성 성격 histrionic personality trait 유형을 가진 분들은 특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좋아하는지에 민감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예, 연예인, 디자이너, 의류업계 종사자, 고객상담실 직원, 마케팅 전문가 등)중에서 이런 타입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웃는 모습을 하고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버리지 않을까,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유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도가 적절하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을 잘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거나 사랑을 받기는 불가능합니다.

자기애적 성격 narcissistic personality trait 유형을 가진 분들은 권위와 복종의 관계에 민감합니다. 자신의 말에 다른 사람이 복종할 때 자존심이 유지가 됩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주위의 사람을 낮추어 봄으로써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겉으로는 강해보이고 단호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열등감이 많습니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동료나 상사로 있으면 무척 같이 있기 힘든 사람이지만 부하로 있으면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일을 잘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갈등이 조직 내부에 점점 커져 결국에는 사고가 나게 됩니다. 자신의 열등감이 드러날 때 갑작스러운 분노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갈등을 투사할 때도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투사는 자신의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많이 맞고 자란 사람이 자신의 무의식적인 분노를 대통령에게 돌리고 악성 댓글을 다는 것들이 예가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라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안이 없는 분노를 인터넷이나 SNS에 쏟아붓습니다. 이것을 정신의학적으로는 ‘권위자를 향한 분노 anger toward authority figure‘ 라고 합니다. 권위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어린 시절에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지요.

충동억제가 되지 않아서 분노가 자주 표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고난 성정이 다혈질인 경우도 있고 후천적으로 충동억제가 잘 안되는 것은 술, 담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술을 장기간 마시면 우리 뇌의 전두엽에 손상이 와서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담배도 말초 뇌혈관 등을 막아서 뇌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술 담배를 많이 한 남자들의 경우 50대가 넘으면서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고집이 세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뇌 MRI 등을 촬영해보면 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자주 느끼는 분들은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이나 주위의 누군가가 자주 분노를 표현한다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반응을 분석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문제나 그 사람의 문제를 이해하면 인간관계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분노를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인터넷이나 SNS를 보고 무척 화가 나거나 분노가 들 때 이것이 자신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글의 내용을 이해한다면 훨씬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인정하는지‘ ‘다른 사람이 내 말을 잘 듣는지‘ ‘다른 사람보다 내가 얼마나 앞서 가는지‘ 등 다른 사람에 매달려서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 영화관람, 친구들과의 대화,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서 나의 자존심을 찾는다면 분노를 이기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리더는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검증을 거칩니다. 학업, 업무, 조직 등 다양한 평가를 통과해야 하죠. 하지만 리더가 되고나면 해야 될 일이 그전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자신의 결정이 회사나 조직의 운명이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데 그 책임은 오롯이 리더의 몫이 됩니다. 이런 책임감에 짓눌려 불안하고 초조해지죠.

적당한 불안은 결정을 신중하게 내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불안은 현상을 왜곡하고 단기간 실적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불안감이 높은데 여러 사람들 앞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보면 심장박동이 증가하고 숨이 막힙니다. 소위 사회공포증 social phobia 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심한 경우에는 공황발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실수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재확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무나 회계 전문가는 물론 경영을 책임지는 리더도 이런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이 강박적인 성향으로 발전합니다. 지나치게 반복확인하는 탓에 주위사람들이 힘들어 합니다.

리더가 짊어진 압박감은 히스테리성 성향 histrionic trait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이 격해지고 주변의 관심이 떨어질 때 불안해합니다. 감정의 기복이 크고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흔하죠. 상담을 해보면 자신이 관심에서 멀어지고 비난을 받게 되면 마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을 느낀다고 해요.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집착하다 보면 결정을 내리는 일이 큰 부담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리더가 되면 자기애적 성향이 강해지죠. 자신에 대한 과장,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타인에 대한 공감의 결여가 그 특징입니다. 자신이 타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월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리더는 권력지향적이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일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주위 사람들은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에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타입은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콤플렉스는 리더가 되기까지 강력한 성취 동기가 되지만, 이것을 잘 다루지 못하면 리더는커녕 평범한 구성원조차 되기 힘듭니다. 특히나 소통이 강조되는 요즘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사실 리더가 느끼는 압박감은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 불면, 식욕부진, 두통, 근육통 등 일상적인 증상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운데도 스스로 인지하기도 어렵습니다. 곁에 있는 리더를 비난하기 전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깨닫지 못하면 주위 사람들이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점잖고 신사처럼 보이던 사람이 술을 마시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헨리 지킬 박사처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일어납니다. 술을 마시고 술자리에 있던 사람을 폭행한다거나 성추행을 하는 경우가 기사화되곤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 논란‘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갑질 논란의 중심에 술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고가 술을 마시고 난 후에 충동조절이 안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심하게 싸운적이 있거나 음주운전을 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를 ‘알코올 유발성 탈억제 Alcohol-induced disinhibition‘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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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건강염려증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다. 어제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타이밍상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책에서 우울과 불안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 부분을 읽게 되서 그 소설과 이 책을 콜라보로 이해하는 것이 뭔가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예로 망상과 관련된 내용에서 독자인 나는 어제 읽었던 ‘멜랑콜리아‘의 주인공 라스가 생각났다. 망상의 정의와 특징들을 보면서 라스가 망상에 빠져있었던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슬픔에 잠겨 살았던 라스의 모습을 그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었다.

좀 더 읽으면서 망상의 여러 종류들 중에서 라스의 망상은 과대망상 쪽에 좀 더 가까워보였다. 독일로 미술 유학을 갔을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더 높게 여겼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이러한 것들이 득보다는 독이 되어 라스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망상 외에도 트라우마라든지 가스라이팅 등 최근에 비교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뇌과학관련 내용들이나 특정 약물 성분에 대한 지식도 함께 얻어갈 수 있어서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건강염려증이란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건강염려증 Hypochondriasis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걸릴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의 건강을 비정상적으로 염려하고 집착하는 상태

우울과 불안이 심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불안, 초조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불안, 초조로 약해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비과학적인 치료방법을 경계해야 합니다.

망상과 창의력은 남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망상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창의력은 주어진 문제상황을 새롭고 적절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창출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망상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신념이나 웅변에 더 강합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나 직원들을 설득하고 함께할 수 있는 논리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

망상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기 쉽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머스크처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창의력을 곳곳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 망상적인지 창의적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이러한 특성이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조직의 리더가 망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면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망상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이를 조절하는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망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 안에서 갇혀 지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망상의 대표적인 예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조직적으로 괴롭힌다는 피해망상, 배우자가 부정을 한다는 부정망상, 자신이 과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 등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런 측면이 있다면 전문가의 정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도 망상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동반된 정신건강의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환청이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여러 명이 서로 중얼거리거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양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삐 소리가 나는 이명과는 다르고,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펜터민은 중추신경흥분제로 우리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식욕중추에 작용해서 뇌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고 포만감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뇌의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키는데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작용은 피해망상, 관계사고, 환청 등 정신병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노르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키면 심장박동이 증가하고 각성이 되어 불면증, 긴장, 불안, 공황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팬터민계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주변에 나누어준다거나 판매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가수라는 직업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 소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납니다.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이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 기복이 더 심해지고 일반인들보다도 더 정신병적 증상과 공황 증상, 불면증이 더 쉽게 생길 수 있습니다. 10대, 20대 젊은 분들은 중장년층보다도 더 쉽게 생깁니다. 약물로 발생한 증상을 조절하려다 보니 수면제 등의 다른 약물까지 함께 복용하게 됩니다.

피나스테리드 성분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모낭에서 탈모의 원인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이라는 물질로 바뀌는 것을 막게 됩니다. 이러한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분리해서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가족에게 위기가 닥칠 때 서로 돕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트라우마Trauma‘는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 물리적 통합에 위협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을 말합니다. 이는 스트레스와는 다르며 생존에 위협이 될 정도의 심각한 경험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 뇌는 긴급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부터 멀리 도망가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다시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경험을 다시 하는 경우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하게 됩니다.

우리 뇌는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변화가 일어나는데 특히 매우 예민한 경우에는 변화가 더 크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뇌의 변연계에 위치한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뇌섬엽과 배측전대상피질이 불안정하게 됩니다.

편도체는 공포, 불안, 두려움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입니다. 편도체의 중심핵을 전기로 자극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반대로 편도체를 파괴하면 공포 반응이 사라져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도 공포를 인식하는 편도체가 자극되어 두려움을 느낄수 있습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긴급상황으로 인식해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트라우마의 원인으로부터 도망가 다시 경험하지 않도록 대비하게 됩니다. 전두엽에 의해 뇌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편도체에 의해서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됩니다.

뇌섬엽은 우리 몸의 내부의 감각과 외부의 세계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나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항상 멍하고 자신의 신체감각을 왜곡해서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피하게 됩니다.

뇌섬엽 Insula

‘인슐라‘는 ‘섬‘을 뜻하는 라틴어다. 이는 측두엽과 두정엽 아래쪽의 피질이 나뉘는 외측고랑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조개처럼 생겨, 바다 위의 섬처럼 다른 부분과 구별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온도, 촉감, 통증, 가려움, 근육과 내장의 감각, 호흡 곤란 등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감각기에서 생성되는 감각인 ‘내수용성 감각‘을 처리해 몸 전체 상태를 인식하게 한다. 또한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일을 경험하기 전에 미리 예상하는 능력과도 관련된다. 내부적,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뇌가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여하며, 신체를 유지하는 단순한 감각작용부터 사회적인 감정처리까지 관여한다.

배측전대상피질은 감정이나 고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거절을 당하면 힘든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이 영역의 활성화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배측전대상피질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

편도체로부터 정보를 받아 필요한 반응을 지시하며, 감정이나 고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신체적인 통증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거절을 당할 때도 이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면 뇌는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편도체가 만드는 공포의 자극이 감소하고 뇌섬엽과 배측전대상피질이 안정화됩니다. 트라우마를 감소시킬 수 있는 좋은 기억과 안전기지, 대인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잊으려 해도 잘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좋은 기억들을 만들어서 트라우마의 기억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기억은 집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집 밖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고, 재미있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안전기지는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는 쉼터의 역할을 해줍니다.

대인관계는 편안하고 안정적이라면 도움이 됩니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긍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예민한 분들은 가스라이팅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해 심리적 지배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스등Gas light》(1938)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예를 들어, ‘너는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으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트라우마general trauma, 신체적 학대physical abuse, 성적 학대sexual abuse, 방임과 정서적 학대neglect and emotional abuse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예민성이나 공격성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공황장애 등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학대의 경험은 ‘재경험‘과 ‘공포의 일반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재경험은 과거 혹은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 정서, 갈등상태의 감정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무의식중에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공포의 일반화는 과거에 경험한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의 일상적인 경험, 사건, 대인관계까지도 더 위험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위협 반응이 더 쉽게 일어납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자신이 현재 경험하는 것들이 과거와 연결된 기억을 불러오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부모와의 관계는 평생에 걸쳐 예민성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그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뇌는 현재의 좋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 그리고 편안하게 느끼는 일을 찾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자신의 직업이나 배우자, 이성친구, 좋아하는 책, 아니면 상담하는 의사가 이와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인 태도로 넘기는 사람이 결국 더 행복했다

‘평온의 기도‘

신이시여,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주변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을 때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일상을 되찾게 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지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트라우마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는 질환입니다. 흔히 우울증, 불면증, 깜짝 놀라는 반응, 멍한 느낌 등을 동반하게 됩니다.

자조모임은 같은 아픔을 지닌 유족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의 과정을 함께하는 모임입니다. 모임의 참여자와 함께 애도 과정을 공유하며 공감, 이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 간의 지지와 격려를 통해 변화를 체험하고 자기표현의 기회를 통해 절망감을 완화하고, 나아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참여자 간 다양한 시각에서 조언해줄 수 있어, 참여를 통해 자신의 상황, 감정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같은 상황을 경험한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에서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자살 유족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위로가 되는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 ‘고인도 네가 잘 지내길 바랄거야‘ ‘많이 힘들었겠다‘ ‘무슨 말을 한들 네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힘들면 실컷 울어도 돼‘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처가 되는 말‘은 ‘이제 그만 잊어‘ ‘너는 뭐하고 있었어?‘ ‘왜 그랬대?‘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 ‘다시는 그 사람 이야기하지 말아라‘ 등이었습니다.

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말‘로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유족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로도 2차적인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기 위한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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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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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이 극심한 주인공 라스와 그 주변인들의 얘기를 통해 자신이 꿈꾸던 삶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고 추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고, 뒤에 나오는 올리네라는 인물을 보면서는 인생이라는게 참 덧없음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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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올리네는 자신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심지어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온전히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몸 상태도 쇠약해졌다. 자신의 남동생인 라스는 이미 저세상으로 갔으며, 쉬버트 또한 오늘 내일하고 있다.

이렇게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올리네는 과거 주변 인물들과 나눴던 대화나 자신의 예전 기억들을 통해 ‘라스‘에 대한 일화들을 떠올리면서 독자들에게 ‘라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읽으면서 ‘라스‘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의 심리상태는 어떨지 추측해 보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딱히 정상적이지는 않아보인다.

추가로 기억과 관련하여 올리네의 현재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과 반대로 아주 오래전 기억은 비교적 명확하다는 얘기들이 책에 나오는데, 이는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단기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오래전에 있었던 옛날 얘기같은 것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얘기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올리네가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예전에 ‘라스‘와 있었던 일화들을 비교적 또렷이 기억해낼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해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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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네는 몸을 온전히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부 스베인의 도움으로 생활을 영위해나간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만약에 스베인이 없었다면 올리네는 배를 굶주리다가 이미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리네는 쉬버트의 임종을 앞두고 예전에 라스가 죽음을 앞두고 보였던 행동들을 떠올린다. 고개를 돌린채 아무도 보지 않으려 했던 라스처럼 쉬버트도 비슷하게 행동한다. 어찌됐건 간에 쉬버트도 결국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막판에 읽다보면 올리네의 기억의 왜곡이 점점 심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신을 도와주었던 어부의 이름이 스베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에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고, 이미 시그네의 집에 직접 가서 쉬버트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도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쉬버트를 보러 시그네의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가까워 올 수록 기억력이라는 것도 점점 왜곡되어 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p.510에 밑줄 친 내용은 라스가 자신이 꿈꾸던 멋지고 이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다만, 현실에서 이러한 모습을 경험해보지 못한채 죽음을 맞았던 라스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한편으로는 그 씁쓸함이 더욱 더 크게 배가되는 듯 하다.

마지막에 올리네가 생존을 위해 먹던 생선에 무언가 감정이입이 되면서 저자가 작품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나름 신선하게 느껴졌다.

완독 후 작품 해설에서는 대체로 작품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아, 내가 이 작품을 그래도 비교적 올바르게 읽었구나‘ 라는 안도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일부 놓쳤던 부분들에 대한 설명들도 추가로 볼 수 있어서 유익했던 것 같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일상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다. 이런일이 그녀에게 일어나다니. 그녀는 이제 자비로운 신이 자신을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은 라스도 데려갔고, 보아하니 곧 쉬버트도 데려가려 하는 것 같았다. 올리네는 조만간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P468

올리네는 라스가 그린 말을 보며 그것이 바로 라스라고 생각했다. 라스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었다. 동시에 그 말은 올리네이기도 했다. 올리네는 두 사람을 말이라 생각했다. 라스는 겁에 질린 말이었다. 라스는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대문을 두드리면 항상 어디론가 사라졌다. - P469

나는 라스가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싫어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마저 피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누나고, 그가 잘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니라면 그가 특별히 마주할 사람도 없지 않은가? 나와도 얼굴을 마주치기 싫어한다면 그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
참 안타깝구나. - P470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
가끔은 조용히 앉아 있을 때도 있어. 그럴 때면 눈이 촉촉하게 젖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어. 그러다 돌연 눈빛이 야생적으로 변하곤 하지.
난 그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저 그러려니 하세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 P470

라스는 참 특별한 아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어.
라스 같은 아이는 당최 찾아볼 수가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 P470

맞아요, 라스는 참으로 특별한 아이예요.
아버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라스는 집 부근을 벗어난 적이 없단다.
생사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면 시내에도 나가지 않을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정말 그래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도 안 갈걸.
라스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이야.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아이지. 아버지가 말했다. - P471

라스가 저러는 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 - P472

아버지는 라스가 저런 모습을 보일 때면 단 한 번도 먼저다가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스가 어떤 반응을보일지 전혀 짐작할 수 없기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라스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끔 미친 듯 화를 내는 라스를 보면 스스로 원하고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고 했다. - P472

다락방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라스가 적어도 친누나와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가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 해도 그건 그의 선택일뿐이다. 하지만 친누나와는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라스가 친누나에게 한마디쯤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문을 열 수 없었다. - P473

나는 라스가 문손잡이를 힘주어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라스는 누나가 대화를 하기 위해 찾아와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 P474

나는 다시 손잡이를 아래로 내렸다. 라스는 여전히 문을 막고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놓아 버렸다. 그 순간, 손잡이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라스를 보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의 검은 머리와 턱수염을 보았다. 그의 머리는 야생마처럼 덥수룩했고, 그의 눈동자는 검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 P474

문에 걸려 있는 쪽지가 안 보여?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라스가 소리쳤다.
나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로 했다. 라스는 ‘접근 금지‘라는 쪽지가 문에 걸려 있으면 방해받기 싫다는 의미라며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 P475

나는 라스의 화난 목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라스는 계단 위에서 사람들은 바보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했다. 그의 누나도 멍청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쳤다. 나는 그가 일을 하기 위해선 고요한 환경이 필요한데 자기에겐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 P475

라스는 가끔 정신이 홱 돌아 버릴 때가 있어. 난 그 이유를전혀 알 수가 없구나.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슬프게 흐느끼기도 해.
난 둘 중에 뭐가 더 나은지, 뭐가 더 나쁜지 모르겠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 P476

나는 단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아버지는 내게 라스를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나쁜 의도는 전혀 없다고. - P476

나는 라스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
라스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
그 불같은 성격도 그렇고.
갑자기 우는 것도 그렇고.
라스가 평범하지 않은 건 확실해. - P476

하지만 어쩌겠니. 받아들여야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 P477

등 뒤에서 종종걸음을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라스가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내 앞에서 발을 멈추고 땅을 내려다보던 라스는 내게 종이 쪽지 한 장과 그림 한 장을 건넸다. 나는 라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반짝였다. 라스는 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 P477

나는 그가 건네준 그림을 보았다. 담뱃갑 포장지의 뒷면에 그린 그림이었다. 갈색 말한 마리 말의 뒤에 보이는 뾰족한 산등성이, 그리고 사람처럼 보이는 두 개의 형상. 나는 그림 속에서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사람의 형상을 뚫어지게 보았다. 나는 집을 향해 뛰어가는 라스를 돌아보았다. 라스와 아버지가 함께 사는 집. 나는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라스를 보았다. 나는 라스가 건네준 그림을 들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P478

이제 그녀는 발이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고 바닷가로 내려가야 한다. 그녀는 내리막길이라면 그럭저럭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르막길이었다. 너무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힘들기 짝이 없었다. - P478

너무나 힘들었다. 너무나 아팠다. 사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이야. - P478

발이 아픈 건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했다. 바닷가에 이를 때까지 오직 쉬지 않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 P479

이제 그녀는 쉬지 않고 걸어 바닷가로 갈 것이다. 쉬지 않고 걸을 것이다. 올리네는 생선을 잘 간수하지 못한 탓에 고양이가 훔쳐 가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다시 바닷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행동을 했으니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 P479

오늘 잡은 생선을 벌써 다 처치해 버렸으니 어떡하죠?
하지만 여기까지 걸음을 하셨으니 다른 수를 찾아봅시다.
제가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아 드릴게요.
지금 당장 바다에 배를 띄우겠습니다. 어부 스베인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올리네가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죠. 함께 바다로 가요. 고기가 잡히는지 한번 시도는 해 봐야죠. 그가 말했다. - P481

그는 올리네가 끼니를 이어 갈 수 있도록 그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올리네는 그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부 스베인은 우리가 세상에 함께 사는 이유는 서로 도와가며 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P481

올리네는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시그네는 정말 쉬버트가 올리네를 만나 보고 싶다고 말했던가? 올리네는 확실히 기억할수가 없었다. - P482

그녀는 이제 생리 현상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얼른 신이 자신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 이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 P485

통증은 여전했다. 올리네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신이 자신을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었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그녀는 얼른 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P486

지팡이를 짚고 생선을 든 채 구부정한 몸으로 힘겹게 발을 옮기던 올리네는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집 앞에 서 있는 시그네가 보였다. 시그네는 대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올리네는 시그네와 단 한 번도 사이렇게 지낸 적이 없었다. 시그네는 올리네가 길을 걸을 때 단한 번도 집 앞에 나온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녀는 올리네가 집 앞을 지나칠 때면 쏜살같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올리네는 시그네와 결코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 P487

아니, 올리네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들뿐이었다. 매우 선명하고 똑똑하게 올리네는 나이가 드니 그렇게 변했다고 생각했다. - P488

올리네는 지금 오느냐고 묻는 시그네의 목소리를 들었다. 혹시 겁이 나서 죽어 가는 동생을 아예 찾아보지도 않겠다고 마음먹은건 아니겠죠? 그 말을 들은 올리네는 그제야 남동생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맞아, 그렇지. 시그네는 이미 그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녀에게 동생을 보러 오라고 재촉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녀는 쉬버트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바닷가에 가서 생선을 사 왔다. 그녀는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이런 일이 있어난 것이 너무나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 P488

쉬버트………….
쉬버트, 넌 매우 특별한 아이였어.
너와 라스는 참으로 개성 있고 특별한 아이였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지만 너는 라스와 달리 단 한 번도 불같이 화를 낸 적이없었어.
쉬버트…………. 올리네가 말했다. - P493

그녀는 쉬버트가 가끔 고집을 부릴 때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쉬버트는 어렸을 때도 가끔 고집을 부리곤 했으니까. 그는 한번 마음을 먹으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라스처럼. 올리네는 쉬버트와 라스가 고집이 센 것으로 치자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한번 마음을 먹으면 누가 뭐라 하든 자기 뜻대로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었다. - P496

라스는 자신의 턱수염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내가 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면, 자신의 턱수염을 몇 번이고 쓰다듬기도 했다. 나는 라스가 자신의 턱수염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턱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에서 그의 자랑스러움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을 때 매우 만족해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주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못된 여인이 그의 긴 머리와 턱수염을 잘라 버린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 - P496

라스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긴 머리와 턱수염을 자른 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스에게 그처럼 끔찍한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그가 빈민가의 다락방에 홀로 누워 죽음을 기다릴 때 그를 찾아본 적이 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라스는 방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에게 나를 향해 돌아누우라고 부탁했지만, 라스는 돌아누우려 하지 않았다. 라스는 침대에 누워 벽을 바라본 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희끗희끗하고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있던 머리를 손으로 감싸려 했지만, 그의 머리에는 잿빛의 짤막하고 뻣뻣한 머리카락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라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 P497

라스, 머리와 턱수염을 잘랐구나. 네가 머리와 턱수염을 자르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
자기는 절대로 머리와 턱수염을 자르기 싫었지만 그들이 강제로 잘랐다고 힘없이 말하는 라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라스 곁에 가위를 들고 서있는 못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왜 라스의 머리와 턱수염을 잘라야만 했는지 주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청결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 P497

그녀는 방에 누가 들어오기만 하면 라스가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게보이기 싫어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유명한 시인 셀란도 그곳에 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라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 유명한 셸란이 라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왔건만, 라스는 말없이 벽을 향해 돌아누워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유명한 시인 셸란이 라스에게 말을 걸었지만, 라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라스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에겐 절대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고 한다. - P498

나는 가루 담배를 라스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라스는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나는 검고 묵직한 빛을 띤 그의 눈동자를 보았다.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변했다. 그와 동시에 라스의 태도도 변했다.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라스가 너무나 변화무쌍한 사람이라 어떻게 돌변할지 짐작조차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P499

쉬버트는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그녀를 이곳에 불렀고, 그녀는 그의 침대 옆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건넸다. 라스에게 했던 것처럼. 하지만 쉬버트도 라스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올리네는 두 동생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쩜 그렇게 똑같을까 생각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쉬버트는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자르지 않았다는 것. 올리네는 쉬버트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 P500

어부 비에른은 참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에게 생선을 주었다. 어부 비에른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은 이미 오래전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부 비에른이 하늘 왕국에서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늘의 신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도와준 어부 비에른에게 그에 걸맞은 상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504

이제 그녀는 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쉬버트에게도 가 봐야 한다. 왜냐하면 시그네가 그녀에게 쉬버트를 보러 오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그네를 통해 그녀에게 와 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시그네는 쉬버트가 올리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며 발걸음을 해 달라고 말했다.  - P504

문고리에 걸린 생선 옆에는 라스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 남자와 말,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산등성이 그림은 대부분 누런색과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라스는 어느 날 그녀에게 뛰어와서 이 그림을 주고 갔다. 올리네는 그때 라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음을 기억했다. 그림이 훌륭하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낙서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두말없이 그림을 받아서 작은집 벽에 걸어 두었고, 그 그림은 수년 동안 제자리를 지켰다. 세월이 갈수록 올리네는 그 그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라스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 라스가 그린 그림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올리네는 그것을 단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라스의 그림이 비록 낙서처럼 무의미하게 보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은 라스가 그린 것이니까. 그녀는 그림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라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그렸다면 그녀는 그림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림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 P508

그는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문득 나는 그의 눈동자가 하늘처럼 커다랗다고 느꼈다. 그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는 하늘을 머금을 만큼 거대했다. 라스가 몸을 돌려 내게 소리쳤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나를 따라오지 마. 나는 나무배 위로 오르는 라스를 보았다. 멋진 보라색 양복을 입은 라스의 모습은 평소와 너무나 달랐기에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검은 머리는 길고 매끈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늘어질 정도로 길었다. 그의 검은머리카락은 그의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에 닿았다. 그는 한쪽 겨드랑이 밑에 검은 가죽 가방을 끼고 있었다. 라스는 선착장에서 있던 내게 미소를 지었다. - P509

그는 가죽 가방 안에 화구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그렸던 훌륭한 그림을 내게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는 여름에 집에 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그는 독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더 많이 배울 것이라고 했다. 라스는 독일에서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 보름뒤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고 했다. 그는 여름이 되면 노르웨이에 머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 독일에서 돌아온 라스는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들에게 각각 포옹을 건넸다. 그날 아침, 심지어는 아버지도 스타방에르의 선착장에서 라스의 포옹을 받았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갔다.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검은 화구를 담은 검은 가죽 가방을 겨드랑이에 낀 라스, 검고 윤기 나는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라스는 너무나 멋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 멋진 청년을 라스라고 짐작했음이 틀림없었다. 너무나 그림을 잘 그렸기에 지역 유지의 후원을 받아 독일로 갔던 라스.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해 독일로 유학 갔던 라스, 라스는 자랑스럽게 스타방에르 거리를 걸었다. 아버지는 라스가 신문에도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라스의 기사를 오려 집에 잘 보관해 두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신문에는 라스에 관해 갖가지 좋은 얘기만 실려 있었다고 했다. 라스는 스타방에르 거리를 걸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옆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함께 걸었다. - P510

나는 바닥만 내려다보는 라스를 바라보며 그런 라스의 모습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스타방에르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간혹 집 밖에 나가더라도 그는 종종걸음으로 급히 걷기만 했다. 바로 그 때문에 라스는 가우스타 정신병원에 가야만 했다.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 P511

넌 성인이야. 적어도 조금은 집에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라스가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반 라스는 더 이상 스타방에르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시내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를 만나는 것도 피했다. 나는 바닷가로 뛰어가는 라스를 보았다. 그는 보트 창고 외벽에 기대앉아 비스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크고 온화했다. 그의 얼굴 주위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는 벽에 기대앉아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그의 머리를 에워쌌다. 나는 하늘을 보며 앉아 있던 라스가 홀로 코웃음을 치는 것을 보았다.  - P512

지금 생선은 작은집 문에 걸려 있다. 아, 죽은 생선의 커다란 눈알이란! 생기라곤 전혀 없는 거뭇거뭇하고 커다란 생선 눈알은 뻣뻣하게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올리네는 생선 눈알이 자신의 영혼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선 눈알은 그녀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뻣뻣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눈알은 단지 공허하게 허공을 쏘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선 눈알. 그것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생선 눈알이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라스가 생선 눈알을 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라스가 생선의 검고 뻣뻣한 눈알을 통해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영혼을? 그녀의 깊숙한 영혼을?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에게 내면 깊숙한 것이 있긴 할까? 어쩌면 그녀에겐 외면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진정 내면이라는 것이 있을까? - P513

올리네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검고 뻣뻣한 생선 눈알 속을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그녀가 생선의 눈알이 된 것 같았다. 올리네는 생선의 눈알을 빌려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닌, 생선 눈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올리네는 검고 뻣뻣한 생선 눈알을 바라보며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생선 눈알도 평온해졌다. 뻣뻣한 생선 눈알이 변했다. 그녀는 아무리 원한들 그 눈알을 지닌 생선을 먹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올리네는 숨결이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올리네는 알리다에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리네는 자신의 숨결이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갑자기 너무나 피곤해졌다. 온몸이 축 늘어짐과 동시에 너무나 평온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생선 눈알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생선 눈알과 라스의 그림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평온함에 몸을 맡기며 벽에 몸을 기댔다. 벽에 머리를 댄 채 앉아 있던 올리네는 그제야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생선 눈알과 평온한 빛뿐이었다. - P514

저자는 문학을 통해 정상성이나 차분함에 다가서기보다, 변화무쌍하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인간 내면의 비밀, 어둠, 광기를 표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 P519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서 그 특유의 아름다운 리듬감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터다. -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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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팅에서 ‘라스‘가 내적 갈등으로 인해 굉장히 힘든 상황임을 엿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올리네‘가 들고 온 생선을 통해 ‘라스‘의 감정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해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표현 방식이 어제는 좀 직접적이었다면 오늘은 생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단계 거쳐서 간다는 점에서 어제보다는 좀 간접적이라고나 할까. 어찌됐든 어제나 오늘이나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책의 제목처럼 ‘멜랑콜리‘하게 느껴진다.

연이어 읽다가 p.413에 밑줄 친 부분에서 ‘라스‘를 찾아 헤매던 누나 ‘올리네‘가 우여곡절 끝에 ‘라스‘를 찾아서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까지의 분위기와 약간 다른 점은 얼마전에 누나에게 돌멩이까지 거리낌없이 던졌던 ‘라스‘가 누나를 보고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제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하나. 그녀도 한때는 젊음을 자랑했던 적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치지도 않고 보르그외위의 언덕 위, 무성한 덤불 사이를 뛰어다니곤 했다. 그녀는 아무리 거칠고 험한 숲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주저하지 않고 보르그외위 곳곳을 뛰어다녔다. - P407

올리네는 지금 작은집에 앉아 생선 눈알을 바라보고 있다. 생선에 묻은 피는 거의 다 말라 굳어 있었다. 올리네는 한 손을 뻗어 생선을 만져 보았다. 꾸덕꾸덕하고 찐득찐득했다. 그녀는 생선 눈알이 조금 전과 달리 그다지 날카롭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선 눈알은 꿈을 꾸는듯 몽롱하게 보였다. 그녀는 생선이 점점 쪼그라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 P407

올리네는 생선에서 손을 떼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허벅지도 나이를 이기지 못해 쭈글쭈글해졌다. 젊었을 때의 탱탱했던 피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허벅지는 핏기 없이 창백했고 쭈글쭈글했다. 문득 허벅지에 손을 대도 아무런 감각이 없음을 깨달은 올리네는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녀는 허벅지의 감각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허벅지에 손을 가져가서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올리네는 차가운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408

올리네는 난로에 불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손잡이에 걸려 있는 생선을 바라보았다. 생선은 더 이상 신선해보이지 않았다. 눈알도 몽롱해 보였다. 올리네는 바위에 앉아있던 라스가 몸을 돌려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을떠올렸다. 라스는 왜 거기 앉아서 자신을 감시하느냐고 소리쳤다.
아냐 난 너를 보고 있지 않았어.
거짓말하지 마
아니라니까.
거기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잖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니?
그런 건 아냐. - P409

나는 몸을 굽혀 돌멩이 한 개를 주워 드는 라스를 보았다.
그는 가만히 앉아 손에 든 돌멩이를 뚫어지게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뒤통수에 대고 나를 째려보았다. 라스는 내게 돌멩이를 던졌다. 얼른 몸을 피한 나는 허공을 지나 우리집을 향해 날아가는 돌멩이를 보았다. 나는 돌멩이가 집 담벼락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라스는 서둘러 바위에서 내려왔다. 누군가가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나는 대문 밖으로 나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 P409

나는 아버지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려 있음을 보았다. - P409

물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차마 라스가 돌멩이를 내게 던졌고 내가 몸을 피하는 바람에 돌멩이가 집 담벼락으로 날아들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P410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라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바닷가 근처 어딘가로 뛰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의 뒤를 밟겠다고 결심하고 나왔는데. 그는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다시 찾고 싶다면 나는 지금 당장 가야 한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 P411

나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반면 나는 돌멩이와 습지 같은 사람이다. 누런 갈색, 그다지 울퉁불퉁하지도 않고 그다지 매끄럽지도 않은 사람. 가끔 꽃을 피우기도 하는 사람. - P411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라스가 남긴 발자국뿐이었다. 그렇다면 라스는 내가 짐작했던 대로 바닷가 저편으로 뛰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모래위에 남겨진 발자국은 오래돼 보이진 않았다. 발자국을 따라가던 나는 머릿속에서 라스의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는 갑자기 화를 내며 내게 돌을 던졌을까? 나는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만약 돌을 던진 사람이 라스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 P412

나는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바위 아래에는 작은 만과 작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내 동생 라스는 바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라스.
라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누나왔어?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응.
나는 라스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얼른 이리로 와 봐. 누나에게 보여 줄게 있어. - P413

라스는 커다란 바위 아래 자리한 작은 암석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라스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따라와.
라스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암석 동굴의 입구에 서 있는 라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바로 여기야. - P413

라스가 암석 동굴의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온통 거뭇거뭇한 것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이건 석탄이야. 물과 섞은 것이지.
그래서 어쨌다고?
난 이걸 사용해.
이걸 무엇에 사용하는데?
내가 보여 줄게. - P414

라스가 바닥에 엎드리더니 엉금엉금 기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쪽은 매우 어두웠기에 라스의 윤곽만 어렵풋이 보일 뿐이었다. 라스는 잠시 후 다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는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조각난 부목 같았다. 라스는 부목 조각을 들고 고개를 돌려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 내게 뭔가를 제대로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 P414

라스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라스가 부목 조각에 그린 그림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 P415

난 석탄과 물을 사용해 작은 나뭇가지 끝을 깎아 내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손가락으로 번지게 한 거야. - P415

그는 부목 조각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부목에 그려진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그제야 나는 라스가 그린 것이 구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스가 그린 것은 움직이는 구름이었다. 훌륭한 그림이었다. 라스는 지금껏 그런 그림을 꽤 많이 그렸다고 말했다. - P415

라스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라스가 다시 기어 나와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게 부목 한 개를 건넸다. 나는 그가 그린 것이 집 뒤편의 산과 나무배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라스가 참으로 재주 많은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 P416

넌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질 때면 여기 와서 그림을 그렸던거니?
그럴 때도 있어.
나는 라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뚝뚝해졌음을 깨달았다. - P416

넌 기분이 안 좋을 때만 그림을 그리니?
라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집 뒤편의 산과 나무배를 그린 그림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그 그림이 우울할 때의 라스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론 그림 속의 산과 나무배는 눈에 익은 실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그림이 가끔 우울함에 빠져 있을 때의 라스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거뭇거뭇하고 어두운 그림은 어둠에 빠져 있는 라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생명을 머금은 어둠, 빛을 발하는 어둠이라고 해야 할까. - P417

사실 난 누나 그림을 그린 적도 있어.
라스가 내 그림을 그렸다고? 그건 내가 거부하거나 결정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내 그림을 그려 놓았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림을 가져올게.
나는 라스의 목소리가 별안간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 P417

라스는 다른 부목 조각들도 하나씩 차례차례 바닷속으로 던졌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나를 지나쳐 뛰어가더니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라스는 나 때문에 그림을 바닷속으로 던져 버렸다. 나는 분명 라스가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 P418

이제 우린 이곳을 떠날 거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이젠 이웃집 사람들이 우리 집에 돌을 던지기까지 하잖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너도 이해하지?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집을 부숴 버릴 거야.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다시 집을 지어 올릴 거야. - P419

나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게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신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P420

바다는 어느새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먹구름이 잔뜩낀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 P421

라스는 어디 있니?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걔가 왜 섬을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장남이라면 집안일도 좀 도와야 하는데 말이지. 식구들의 배를 굶기지 않으려면. 아버지가 말했다. - P421

나는 바람에 사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다. 나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라스가 나무배를 바다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도대체 라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미쳤나?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왜 이런 날씨에 배를 바다에 띄우는 걸까? 라스는 세찬 파도에 흔들리는 나무배에 앉았다. 나는 그가 이런 날씨에 노를 저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P422

나이가 드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드네요.
아주 많이 힘들어요.
늙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 P433

짧은 다리, 긴 허리. 라스가 걷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달랐다. 그렇다고 그가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라스는 항상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종종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의 덥수룩한 턱수염이 바람 때문에 양옆으로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갈색 눈동자는 어쩐 일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평온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렇다, 앞머리가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자리한 그의 갈색 눈동자는 매우 평온해 보였다. - P436

그는 어깨에 톱을 지고 있었다. 틀톱. 라스는 그것을 틀톱이라 불렀다. 톱 중에서 제일 좋은 톱. 나는 라스가 틀톱을 어깨에 지고 종종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라스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톱질을 해서 장작을 마련해 주곤 했다. 그는 일의 대가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거나 돈을 조금 받곤 했다. 라스는 장작을 마련하기 위해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라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의 검고 덥수룩한 턱수염 뒤로 미소가 생겨났다. - P436

그들은 예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그들은 예술을 소 똥구멍처럼 여겨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라스가 말했다. - P439

그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요. 라스가 말했다.
화가라고 해서 다 죽여 버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거의 모든 화가들을 죽여야 해요. 모든 화가들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거의 모두. 그가 말했다.
알리다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P439

그들은 죽어야 해요.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에 죽어야 해요. 그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말했다.
나는 그들을 죽일 거예요. 라스가 말했다. - P440

그땐 이미 장작을 엄청 많이 자른 뒤였죠.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을 했어요. 나는 그렇게 일을 빨리 하는 사람을 처음 봤답니다. 그녀가 말했다.
네, 라스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죠. 알리다가 맞장구를 쳤다. - P442

올리네는 알리다가 자신의 남동생 중 한 명과 결혼한 여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자식도 많이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녀의 남동생도 그녀처럼 나이가 들고 건강도많이 악화되었을 것이다. 올리네는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 P445

세상에, 내게 이런 날이오다니. 누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 P445

하지만 어쩌다 정신이 나가 버렸는지, 불쌍하기도 하죠. 알리다가 말했다.
맞아요, 불쌍한 인생이죠. 올리네가 말했다.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끝이 나 버렸으니. - P447

침대에 누워 마지막 날만 기다린다는 건 참 끔찍한 일이에요. 올리네가 말했다. - P447

올리네는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내가 노망이든 게 틀림없어. 그녀는 쉬버트와 결혼한 사람이 알리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알리다는 쉬버트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이렇게 정신이 없을 수 있다니!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는 기억도 못 하고, 눈앞도 잘 볼 수 없고, 발에는 통증이 가실 날이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게다가 그녀는 소변도 참지 못한다. 대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 P449

알리다는 단 한 번도 올리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 같지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만족하지 않았고, 특히 라스에겐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라스가 없을 때면 비웃기까지 했다. 라스의 면전에서는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했지만, 라스가 없을 때면 좋은 말을 듣기가 힘들었다. - P451

알리다는 라스에게 절대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았다. 라스는 알리다를 위해 그 많은 장작을 잘라 주고 손질해 주었건만 알리다는 라스를 존중하기는커녕 때때로 비웃기까지 했다. 라스가 알리다에게서 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라스는 알리다에게서 비웃음만 되돌려 받았을 뿐이다. 알리다가 다가와서 생각에 잠겨 있는 올리네의 팔을 잡아끌었다. - P451

창밖에서는 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손에 죽을 거야. 저주받은 독일 놈 같으니 나는 라스가 장작에 도끼를 내려치는 소리를 들었다. 라스가 다시 소리쳤다. 왜, 싫어? 쓰레기 같은 놈. 왜, 싫으냐고? 싫어도 하는 수 없어! 라스는 다시 장작 위에 도끼를 내려쳤고, 알리다는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코웃음을 치며 내게 궛속말을 했다. 여기 가까이 와서 라스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세요. 알리다는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 P452

빨리 여기로 와 보세요. 알리다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알리다의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벌목 통나무 앞에서 있는 라스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틀톱은 작은집 벽에 기대어 세웠다. 한 손에 도끼를 든 라스는 야생의 미치광이처럼보였다. - P452

난 언젠가 너를 죽여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쓰레기 같은 놈!
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놈이었어. 결코! 그런데도 나는 그림을 그린답시고 다른 화가들을 괴롭혔지.
저주받을 새끼!
이곳 산드비겐, 이곳 스타방에르는 너 같은 쓰레기가 살 수있는 곳이 아냐!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선 살 수 없어 절대! 라스가 말했다. - P453

넌 도끼질도 하고 톱질도 하는구나. 내가 말했다.
난 도끼질을 하고 싶을 때는 도끼질을 하고, 톱질을 하고 싶을 때는 톱질을 해.
난 내가 원하는 걸 할 뿐이야. 라스가 말했다. - P454

알리다는 집에 남편이 아파 누워 있는데도 왜 올리네의 집에 와서 굳이 청소까지 해 주는 것일까. 참으로 이상하고 무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올리네의 부엌 바닥이 자신의 남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올리네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해도 도움이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 P455

라스는 아버지의 집 다락방에서 살았다. 그는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방문 앞에 ‘접근 금지‘라는 쪽지를 붙여 놓았다. 라스가 그 쪽지를 방문 앞에 걸어 놓았다는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함을 의미했다. 라스는 그림을 그릴 때면 창가에 앉아 창밖의 지붕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의미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 방문 앞에 걸린 쪽지에도 ‘접근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 P460

나는 내 자식들이 세례를 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어. 단 한 명도 세례를 못 받게 했지.
열두 명 중에 단 한 명도 세례를 받지 않았단다.
난 내 신념을 굽히지 않았어. 아버지가 말했다. - P462

아버지, 저는 세례를 받고 견진 성사도 받을 생각이에요.
그건 올리네도 마찬가지예요. 라스가 말했다. - P462

그건 네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야.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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