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달러화의 *금태환을 **금지한다! *닉슨의 일방 조치와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

:바로 이러한 딜레마의 정점에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의 *달러화에 대한 **금태환 금지 조치가 자리한다.

놀라운 것은 우선 위의 조치가 *일방적으로 취해졌다는 사실이고, 나아가 *미국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브레턴우즈 체제를 *붕괴시켰다는 점이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최고 목표는 *달러화를 중심으로 *중앙은행 간 *금태환을 *보장하는 가운데 *달러화 가치를 **확정한 후, *다른 통화의 *가치를 *재산정해 *고정시킴으로써 *환율의 **안정을 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달러화와 *금의 연계가 끊어졌다는 것은 *곧 *달러화의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브레턴우즈 체제의 기본 가정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후세의 사가들이 닉슨 대통령의 조치를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간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유로달러시장 역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했던 *기존의 규칙을 *서서히 붕괴시키고 있었다. 또 다른 체제 붕괴 요인이 활성화됐던 셈이다.

8. *국제금융은 *날개를 달지만 *환율 안정은 *포기한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

: 여기서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가 *변한다는 것은 정의상 **변동환율제를 의미했다.

*1970년을 전후해 *자본의 움직임에 대한 *통제 또한 현저히 *둔화됐으므로 *새로운 체제에서는 이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국제통화금융질서인 이른바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는 **트릴레마의 원칙상 *국제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국내경제정책의 *독립성을 취한 대신 **환율 안정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본위제 이후 트릴레마의 세 변수 중 가능한 조합의 수순은 모두 밟아본 셈이다. 이렇게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가 완전히 풀렸으므로 국제금융이 *금본위제 때와 유사하게 *날개를 달게 됐다는 점은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9. 달러화가 패권을 차지하게 된 까닭은?

: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화금융체제에 투영된 *미국의 경제패권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브레턴우즈 체제가 *달러화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고, 연장선상에서 달러화의 우위가 가시화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1960년대까지는 **영국의 파운드화의 *활용도 역시 *대단히 높았으므로 *달러화가 *패권의 지위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 중 *달러화 중심의 권역, *파운드화의 세력권,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금태환을 시도하며 금을 축적한 *금블럭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견해는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달러화가 *국제통화금융체제의 **패권적 지위에 오르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다음의 변수들이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분명했다.

우선 *1960년대 *활성화된 *런던 중심의 *민간 금융시장인 *유로달러시장에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금융의 주도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특히 중요한 변화였다.

다음으로 *파운드화가 *서서히 퇴조하면서 파운드화 영향권에 속해 있던 국가들이 *거의 대부분 *달러권역으로 편입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는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 조치가 내려진 후 *달러화에 대한 **발권력을 *사실상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게 된 *미국의 새로운 위상에 *어느 국가도 *도전하지 못했던 당시의 역학구도가 지적되고 있다.

아무튼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금지 조치를 *역사상 *가장 눈에 띄는 *통화 권력의 행사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가 들어선 후 *달러화의 패권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고 보면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달러패권 체제는 다음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역사상 처음으로 *금과 같은 **실물로 *뒷받침되지 **않는 *관리통화, 즉 **특정 국가의 지폐(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됐다.

아울러 *통화의 발행에 대한 *억제 메커니즘이 사라졌으므로 **통화가 **과잉 발행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금본위제, *전간 기간의 금환본위제, 그리고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과는 *정반대로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이 흔해지는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아가 가장 중요하게도 *미국과 같은 *기축국은 *국내외 *적자를 *달러화를 발행하거나 혹은 *해외 잉여자금을 *미국으로 *재순환시키는 방식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점이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의 가장 큰 특징임은 물론, 역류 역사상 가장 뚜렷한 통화 및 금융패권이 뿌리 내릴 수 있었던 토대임을알 수 있다.

10. 달러화의 *패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 여기서 *브레턴우즈 체제 말기부터 족쇄가 풀리기 시작한 *금제금융의 *팽창은 단연 *중요한 변수였다. 특히 *민간금융 기관의 *투자 형식으로 *해외자금이 *미국으로 *재순환 투자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제금융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현상에 *기초해 *달러패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므로, 역사가들은 **브레턴우즈 체제를 *미국의 뛰어난 **산업력에 기초해 *미국의 *영향력이 행사됐다고 해석하는 반면,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이 *쇠퇴해가는 *산업력을 *우월한 **금융력으로 **대체하며 *새로운 통화 및 *금융패권을 창출한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

금본위제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랬지만, 국제통화와 금융을 함께 분석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로써 분명해진다. *미국으로의 *자금 재순환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잉여 달러화를 *미국으로 *재투자하는 경우와 *민간금융기관이 *달러화를 *미국에 *투자하는 경우로 구분되는데,

*후자가 전자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수상의 과감한 **자본자유화 조치 이후였다. 따라서 *과거 *영국의 영향력이 *파운드화의 발권력 혹은 *압도적인 사용 빈도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주로 *우월한 금융제도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과는 사뭇 다르게,

*미국의 경우는 *달러화의 **발권력에 기초한 **통화패권과 압도적인 **금융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금융패권을 동시에 쥐고 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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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트릴레마의 원리
: 세 마리 토끼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 불변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제경제질서 분석에 가장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트릴레마(trilemma) 원리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그것이 밝혀지는 과정과 구체적인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트릴레마는 *국제경제와 *국내경제의 가장 중요한 연계 변수인 *환율의 안정,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 그리고 *국내통화 및 재정정책의 독립성 중 **둘을 취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원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금본위제의 경우는 *환율의 안정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취한 대신 **국내 경제정책의 독립성은 포기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있다.

그러나 *금본위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통화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지만 지하에서 *채굴해야만 하는 *금의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통화량이 *늘 부족했다는 사실이고, 다음으로 *정교한 시장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었으므로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체제 자체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대표적으로 *위기 시에는 *일반 국민들의 동요 때문에 *지폐를 *금으로 *태환하려는 수요가 **폭증하게 되고(bank run), 그 결과 *금태환이 중지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었다.

5. 제1차 세계대전과 흔들리는 금본위제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충격은 금본위제의 약점을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금본위제는 *붕괴됐지만,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금본위제의 장점에 대한 *향수는 여전했으므로 주요 국가들은 금본위제로의 *회귀를 적극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금으로의 복귀는 다음과 같이 *금본위제의 *약점을 극복하는 조치를 필요로 했다.

우선 *금이 부족한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금화를 퇴출시키는 대신 *금태환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지폐를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됐고(*금괴본위제, gold bullion standard), 그 연장선상에서 *금태환이 보장된 *지폐를 국제통화로 활용하는 이른바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가 활용됐다.

하지만 전후의 새로운 환경은 유사금본위제의 작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을 품고 있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전쟁 당사국들의 국내경제 *상황이 워낙 어려웠으므로 *모든 국가는 *국내경제정책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취하게 되고, 여기서 트릴레마의 원칙이 보여주듯 *국내경제정책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이 *금본위제의 **전제 조건이므로 논리상 *새로운 금본위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각국은 *무역 혹은 *자본이동을 통해 *외환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경우, 그것과 일치하여 *국내통화량의 *증감을 *결정해야 하지만, 국내경제 상황을 *우선 고려, 이 원칙을 파기하며 *통화량을 *임의로 *조정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또한 *국제거래를 통해 얻은 *외환을 그대로 *보유한 채 이를 *국제거래에 *재사용해야 한다는 *금환본위제의 전제 조건을 *무시한 채, *획득한 외환에 대해서는 *외환을 발행한 발행국에 *금태환을 요구함으로써 *금만을 *일방적으로 *축적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국가가 영국이었는데, 특히 프랑스가 *자국 통화를 *의도적으로 *저평가, *국제수지 흑자를 내고 그 결과 수취한 *파운드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금태환을 요구한 사실은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아무튼 *전후 정치경제적 *혼돈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하자 금본위제는 다시 한 번 붕괴됐고,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한 차례의 대규모 전쟁이 세계를 휩쓸게 된다.

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의 형성

: 전쟁 전의 교훈이 있었으므로 전후의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축됐다. 우선 *역사상 처음으로 *정교한 계산에 기초해 *국제통화 및 *금융체제가 만들어진다.

*이 점이 브레턴우즈 체제라 불리는 전후 질서의 *가장 큰 특징임은 물론이다. 과거의 장점은 취하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자는 것이었으므로 애초 아이디어는 대단히 좋아 보였다.

*금본위제의 *장점인 *국제통화 가치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당시 *유일한 금본위 국가였던 *미국의 **달러화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약간은 변형된 *금환본위제가 채택됐다.

다음으로 전쟁 전에는 주요 국가들이 *금리 및 통화량을 *자의적으로 *조정한다든가 혹은 *외환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통해 *환율을 임의로 설정한 결과, 환율이 *불안정하게 움직였으므로 이를 *극복하기위해 *각국의 *환율은 새로운 *국제경제기구인 **국제통화기구(IMF)에 등록한 후 *고정시켰다.

다음으로 과거처럼 독립성을 상실한 가운데 새로운 국내경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았으므로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적인 *국내경제정책을 허용하는 조치가 뒤를 이었다.

상황이 이런 경우 **트릴레마의 원칙에 따라 *국제적으로 *자본의 이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브레턴우즈 체제는 회원국의 **자본 통제를 합법화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를 *국제금융의 **암흑기로 간주하는 이유는 분명 있는 셈이다. 아무튼 *과거 금본위제와는 달리 *환율의 *안정과 *국내경제정책의 *독립성을 취한 대신 *국제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는 *제한이 가해졌으니, 세 변수 중 과거와는 다른 조합이 선택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우선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각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IMF와 약속한 대로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막대한 외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후 *파운드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사실상 **기축통화는 **달러화로 *단일화됐으므로 *외환을 축적한다는 것은 **달러화를 보유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당연한 결과로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체제의 **최대 약점이었는데, 바로 그 현상을 분석한 것이 유명한 **트리핀(Triffin)의 *딜레마였다.

즉 **기축통화의 *수요가 증대되면서 *기축통화의 *발행량이 많아지는 것과 비례, *기축통화의 *신뢰도에는 *금이 간다는 지적이었다.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하자, 특히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국가들이 이미 축적한 *잉여 달러화에 대해 **금태환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금보유고가 줄어들고 당연히 *달러화의 신뢰도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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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 영국의 중앙은행은 원래 민간은행이었다?

최초의 국제통화체제로 인식되고 있는 금본위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미 1600년대 말에 영국은 통화가치의 안정 없이 자본주의가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미 깨우치게 되는데, 철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학자로도 활약한 로크(John Locke)가 이사실을 관철시킨 장본인이었다.

그의 주도하에 당시 금화와 은화에 포함된 귀금속의 순분량과 실제 가치를 일치시키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고(대주조, Great Recoinage), 이후 영국에서는 통화의 팽창 혹은 가치하락 때문에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 Bank of England)이 1694년 9년 전쟁의 비용을 왕에게 빌려주면서 민간은행으로 출범한 역사적 사실도 소개되어 있다.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이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국의 중앙은행은 그렇게 출발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민간은행으로서는 더 이상 발권과 같은 주요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1946년 국유화될 때까지 민간은행으로 존속하며 영국 국제통화금융의 전성시절을 열게 된다.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 시기에 이른바 자유방임의 논리가 등장한 것도 실은 중앙은행의 운영 자체가 정부의 간섭이 최소화된 가운데 시장원리와 민간은행의 사적인 이익 추구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금본위제가 정착된 것은 위대한 물리학자 뉴턴의 계산실수 탓

금본위제 역시 시장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이 책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흥미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1821년 법적으로 금본위제가 확정되기 전 영국은 금과 은을 같이 사용하는 복본위제(bimetallism)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은이 해외로 유출되었는데, 은의 유출 현상을 막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금만을 사용하는 금본위제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돌아간 배경의 한가운데는 1717년 당시 조폐국장을 역임하던 위대한 물리학자 뉴턴(Isaac Newton)이 있었다.

뉴턴은 은의 대외 유출을 막기 위해 금화를 평가절하시켰지만 그 비율을 잘못 계산, 애초 의도와는 반대로 은의 유출을 막지 못함으로써 금본위제가 정착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웃지 못할이야기다. 당시 영국이 워낙 잘살았기 때문에 영국의 제도는 모두 좋게 비쳐졌고, 그 결과 영국의 금본위제는 마치 영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처럼 간주됐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통일된 직후인 1871년 독일이 흠모하던 영국을 따라 복본위제를 버리고 금본위제를 채택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연구는 당시 독일이 금본위제와 복본위제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금본위제가 영국에서는 위와 같이 어설프게 시작됐고, 독일 또한 영국을 모방하며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프랑스와 같은 다른 국가들도 대세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1870년대 금본위제는 국제통화체제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3. 금본위제의 막강한 안정성

그러나 금본위 국제통화체제의 실제 운영에서 드러난 뛰어난 장점은 지금도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선 통화가 금의 가치와 수량에 연계됨으로써 통화의 남발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효과적으로 억제될 수 있었다.

당연한 결과로 각국의 통화는 대단히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각국의환율 또한 거의 완벽한 수준에서 고정될 수 있었다. 환율이 안정되자 국제무역이 발전했고, 바로 그런 안정 메커니즘 때문에 국내 통화정책 또한 특정 국가의 입맛에 맞게 자의로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안정 메커니즘은 금의 자유로운 주조와 수출을 전제하고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으니, 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유명한 흄(David Hume)의 가격정화흐름(price-specieflow) 이론이다.

한 마디로 금의 유출입이 국제적으로 자유로운 경우 금과 연계된 국내통화량이 무역과 자본의 국제적 결제를 통해 자동 조절됨으로써 경제는 균형을 창출할 수 있다는 원리였다. 유명한 ‘금본위제의 자동조절 메커니즘’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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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윌리엄 제임스에게 *종교의 **근원적인 의미는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표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표현들을 존재하끔 해준 종교적이고 **내적인 경험들.

이를테면 양심의 갈등, 죄의식, 구원받았다는 확신, 소망, 기쁨, 감사, 겸손, 자비, 공허감 등등 인간 *개개인이 표현하는 **감정들과 **행위들 속에 놓여 있다. - P226

제임스는 궁극적으로 *성스러운 것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경험을 우위에 두고, 그밖의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종교전통의 *객관적이고 *외면적인 요소들을 *상호 비교해보면 *시대나 종파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종교적 경험의 표현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음을 제임스는 이 책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제임스가 생각하고 있는 종교의 의미이다. - P226

/ 종교적인 삶과 감정의 영역

우리의 경험세계는 항상 두 부분, 즉 **객관적 부분과 **주관적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중 전자는 후자보다 엄청나게 포괄적이지만, 후자는 결코 생략되거나 억제될 수 없다.

객관적 부분은 우리가 어느 때라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를 모두 합친 총계이다.

*주관적인 부분은 사고력이 미치는 *내면적 상태이다.

우주적 대상물은 경험이 그것을 잉태하는 한, 우리가 그 존재를 내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외적으로 가리킬 수밖에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이상적 표상이다.

반면에 *내적인 상태는 우리의 *경험 바로 *그 자체이다. *그것의 실재와 *우리 경험의 실재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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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영향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최대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징표는 **학습하고 **적응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엄청난 크기의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두뇌라는 *거대한 하드 드라이브를 장착한 채 태어나는 것이다. - P166

*문화(culture)란 *집단이 공유하는 행동, 생각, 태도, 가치 그리고 전통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침팬지는 때때로 나뭇잎을 사용하여 몸을 씻고, 주의를 끌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흔들며,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천천히 자신의 몸을 드래냄으로써 일종의 *‘기우제’를 드리는 등의 관습을 만들어내며, 또래와 후손들에게 그 관습을 전달한다.

*문화는 *집단에 이점을 제공해주는 *학습된 행동을 전달함으로써 동물종의 생존과 번식을 지원한다. 그렇지만 인간 문화는 *그 이상의 것이다. - P167

*언어를 숙달한 덕분에, 인간은 *’새로운 기술의 보존’을 향유한다.

- *규범: *용인되고 기대되는 행동에 대한 규칙, 규범은 ‘적절한’ 행동을 처방한다. - P167

*단일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바람이 부는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뒷바람이 우리를 *밀어줄 때는 *바람이 **존재하는지조차 *깨닫기 어렵다. *맞바람을 *거슬러 나아가고자 할 때는 *그 힘을 느낀다.

*각 문화집단은 자체적인 *규범 norm, 즉 용인하고 기대하는 행동에 관한 규칙을 발전시킨다.

그렇지만 *규범은 *사회라는 기계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하며,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문화가 충돌할 때, 서로 다른 규범이 *혼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기대하는 것이나 용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 문화 충격 culture shock을 경험하기도 한다.

*유전자 집단은 너무나 *느리게 변하기 때문에, *문화의 *빠른 변화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다양하다. 문화는 변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 개인주의자 individualist

만일 *개인주의자라면, 여러분의 *정체성은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독자적인 ‘나’라는 느낌 그리고 여러분 나름의 *독특한 *개인적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자들은 *개인 목표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개인특질에 따라서 정의한다. 이들은 *개인적 제어와 *성취를 추구한다. - P168

북미, 서유럽,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는 개인주의를 중시한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을 *차별화시키고자 원하였던 정착민들의 후예인 미국인들은 *개척자 정신을 높이 평가해왔다.

대략 *85%의 미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주의자들도 인간의 *소속욕구를 공유한다. 이들은 집단에 가입하지만, *집단의 조화와 *집단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을 덜 맞춘다.

자기 본위의 개인주의자는 사회집단에 보다 쉽게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결혼은 서로가 사랑할 때까지만 지속하기 십상이다.

/ 집단주의자 collectivist

문화 내에서 개인들은 다양하지만, 문화에 따라서 개인주의나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

*집단주의가 *낯선 땅에 표류하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해주었던 사회적 연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집단 정체성은 *소속감, *가치관, 보살펴주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확실한 *안전을 제공해준다.

그 보상으로 집단주의자는 *자신의 집단, 즉 가족이나 씨족 또는 *회사에 더욱 깊고 안정적인 *애착을 갖는다. 어르신들은 상당한 존경을 받는다. - P169

집단주의자는 직접적인 *맞대결과 *퉁명스러운 정직성 그리고 *불편한 화제를 피한다. 자신의 *중요성이 아니라 *겸손함에 가치를 부여한다.

집단주의자들은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서 수줍음을 표시한다.

우선권이 *’나’가 아니라 *’우리’에 있을 때, 개별적인 주문이 북미인들에게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서울에서라면 지나치게 이기적인 요구로 드릴 수 있다.

경작하기 어려운 작물인 *쌀을 *대량생산함으로써 주민들 간의 협력을 수반하기 십상인 지역에서 집단주의적 사고가 더 높다.

집단주의적인 일본에서도 개인주의 정신이 북쪽에 위치한 북해도를 풍미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속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지리적으로 가족의 제한을 덜 받고, 사생활을 더 많이 즐기며, 개인적 성취에 더 많은 자부심을 느낀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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