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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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들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유일한 대표자라는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에 직면해, 정치는 '진짜' 국민과 그 적들 사이의 존재론적인 투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좌파와 우파 양쪽의 포퓰리스트들은, 그들의 힘이 커지는 만큼 점점 더 반자유주의적이다. 가면 갈수록 그들은 그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기관은 국민의 뜻을 부당히 왜곡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둘 다 없애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대중의 변덕, 그것뿐이다. (63-64)


심지어 포퓰리스트들의 민주주의 공약이 진실이라고 해도, 그들이 여전히 민주주의에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다. 뮐러가 올바르게 지적했듯, 그들의 반자유주의 성향은 그들이 만약 인기를 잃을 때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날뛰지 못하게 만들 자유 공정 선거와 같은 제도, 기관들의 유지를 해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야당을 침묵시키고 경쟁 세력을 무력화하려는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간다. 그들을 움직이는 민주적 에너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그 에너지가 얼마나 빨리 국민을 배신할 수 있는지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힐지 알 수 없다. (72)


1970년대 초, 이 모든 것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급상승과 새로운 법령에 대처하기 위해, 뛰어난 CEO들이 연방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로비스트들과 손을 잡았다. 처음에 그들의 활동은 대체로 방어적이었다. 목표는 그들에게 불이익을 줄 입법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그들의 이익도 치솟으면서, 새롭게 등장한 전문 로비스트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정부를 멀리 떨어트려 놓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와 가까워지는 일도 해낼 수 있다"며 기업을 설득시켰다. (113)


정치이론가이자 캐나다 전 자유당 당수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몇 년 전에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인들이 적enemy과 적수adversary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적수는 꺾고 싶은 상대이며, 적은 말살해야 할 상대다."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민주정치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그나티에프의 지적대로, 우리는 갈수록 "정치를 적수와의 관계까 아니라 적과의 대립 관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새로 등장한 포퓰리스트들이 그런 프레임을 주로 양산했다. (149)


이 경제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특정 미국 정치인들이 슈퍼리치와 평범한 시민들의 격차를 완화하기보다는 심화시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에 고소득자의 최고 세율을 70%에서 50%로 낮췄으며, 1986년에는 다시 한번 38.6%으로 낮췄다. 조지 부시는 2003년에 최고 소득세를 35%로 낮추고 부자들에게만 부과되었던 양도 소득세를 20%에서 15%로 낮췄다. 


정치인들은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한편, 사회의 취약 계층이 오랫동안 의지했던 많은 조항들을 파내버렸다. (28) 



구조를 바꾸려면, 유럽 정부는 인기가 없는 개혁 또한 기꺼이 이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치에 대한 사적인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의회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자체 입법 조사와 법안 작성에 필요한 충분한 보조 인력을 지원받는다면, 정보 때문에 로비스트에게 의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정치인들의 월급을 인상하여 외부의 인센티브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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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민주주의 강의
이지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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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국회가 입법권을 가진다 하더라도 선거구나 정치자금법, 의원 정소, 선거제도 등 의원들의 이해와 직결되는 사안을 국회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 기구가 있다고 해도 의회나 정당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므로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문위원회를 추첨으로 구성하여 현행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거죠. 1년 임기의 자문위원회이지만, 추첨으로 선택된 사람들만이 참여해 심의하여 결정하고 결정 사항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입니다. (109)



여기서 제안하는 '시민의원단이 더해진 추첨민주주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단원제 아래 선거를 전면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수용을 위해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단원제를 기준으로 기초지방의회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것, 비례대표부터 추첨으로 충원하면서 차차 확대해 나가는 것 등이 가능합니다. 또 하나는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헌법을 개정한 뒤, 양원 중 하나를 추첨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방의원부터 도입할 경우는 국회의원과 달리 헌법 개정 없이 공직선거법만 개정하고도 시행할 수 있으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나 덧붙인다면, 지방의희와 국회 도입을 추진할 경우,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앞서 소개했던 캐나다의 선거개혁시민총회 방식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121-122)



보통선거권이 부여되고 정기적인 선거가 치러지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정책 현안에 대해 함께 심의하고 설득하고 타협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덕성은 훈련을 통해 길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시민 덕성을 훈련하고 선보일 수 있는 일상적인 공연장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우리를 어느 날 갑자기 민주시민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5천만 명이 다 올라갈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어 줄 리 만무합니다. 이들은 단지 자기들만이 올라갈 좁디좁은 무대를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뿐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유권자들이 스스로 그 무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추첨민주주의가 그 수단이 되어 줄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보기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보통선거권을 생각해 보세요. 그 어떠한 제도보다 거센 반발에 부딪혔지만, 오랜 기간 끝에 결국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았지요. 여성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도 처음에는 추첨민주주의에 쏟아졌던 것과 유사한 냉소와 조롱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추첨민주주의 역시 보통선거권의 역사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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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체제 비교 - 개정판
안순철 지음 / 법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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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독일 하원 선거체제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1953년 채택된 2표제가 유지되고 있다. 제1투표(primary vote 또는 Erststimme)는 지역구 1위대표 선거에 던지는 것이고, 제2투표(secondary vote 또는 Zweitstimme)는 정당명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용어상 제1투표가 중요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각 당의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은 제2투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② 50대 50의 1위대표제 지역구와 명부제 비례대표제의 비율을 유지한다. 독일 통일 이후 1990년대 독일 하원(Bundestag)은 656석까지 확대되었다가 2002년 598석으로 축소되었는데 50%가 299개 1석 선거구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50%는 16개 주 단위 정당명부에서 선출된다. 


③ 2009년 총선부터 1987년 선거체제의 헤어-니이마이어 방식 대신 생 라그/쉐퍼스 방식으로 정당별 의석을 배정하고 있고, 2013년 총선부터는 초과의석에 의한 비례성의 왜곡을 바로잡는 추가조정의석(additional adjustment seats; Ausgleichsmandate) 제도를 도입하였다. 


④ 전국 5% 최소조건(最小條件)을 채택하고 있따. 실제 1949년 선거법에서의 '1개 주 5% 또는 1석 선거구 1석'으로 규정했었던 최소조건이 1953년에는 '전국 5% 또는 1석 선거구 1석'으로, 다시 1956년 개정을 통해 '전국 5% 또는 1석 선거구 3석'의 조건으로 변화되어 유지되어 왔다. 단 1990년 통일 직후 실시된 선거에서만은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선거의 특성상 구 서독과 동독 지역을 분리해 5% 최소조건을 적용한 바 있다.5)


⑤ 보궐선거(by-election)를 치루지 않기 위해 은퇴, 사망 등에 따른 공백은 그 주의 선거 당시 명부의 다음 순서 후보가 승계 하도록 하였다. 특히 1석 선거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공백 역시 명부상의 후보가 승계 하도록 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 규칙은 결국 명부의 중요성이 그 만큼 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248-249)




뉴질랜드에서 '혼합형 비례대표제(MMPR)'로 불리는 새 선거체제는 기본적으로 독일의 2표제 연동형 혼합 선거체제(MM-D)와 다를 바 없다. 몇 가지 부분적인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뉴질랜드의 단원제 의회는 120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70석은 63개 일반 1석 선거구(남도에 16개; 북도에 47개; 마오리족 선거구 7개)에서 1위대표제로 선출하고 나머지 50석은 폐쇄형 명부 비례제로 선출한다. 15)


② 총의석 120석을 정당투표에 따라 정당별로 배분하는데, 생 라그 방식을 사용한다(6장 참고). 


③ 연방국가임을 고려해 각 주별로 명부를 만드는 독일과 달리 뉴질랜드의 각 정당은 하나의 전국 명부(nation-wide list)를 사용한다. 따라서 의석배정이 두 단계를 거치는 독일에 비해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④ 최소조건은 5% 또는 1석 선거구 1석이다. 


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 정당이 1석 선거구에 얻은 의석수가 생 라그방식에 의해 배분된 그 정당의 의석수보다 많을 경우 그 정당이 1석 선거구에서 얻은 모든 의석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초과의석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하나의 전국 명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초과의석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볼 수 있다. (273)





단기이양식(單記移讓式), STV(single transferable votes)제는 이름 그대로 의석산정에 기여하지 못한 표, 즉 잉여표(剩餘票) 또는 사표(死票)를 투표자가 표시한 선호도의 순서에 따라 이양(移讓)함으로써 유권자의 의지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는 선거제도이다. (중략)

STV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한 다수제나 다른 비례제 선거체제와 비교할 때 독특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1석 지역구는 아니지만 다수제의 지역대표성을 나름대로 유지하는 한편 여타 비례제에 버금가는 (정당별) 비례성도 나타낸다. 투표자가 정당과 후보자 모두를 고려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자의 참여폭이 상대적으로 넓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선거체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선거제도에 대한 평가를 요청해 종합해보면 아마 STV제에 대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Farrell 1997, 110).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STV를 채택해 사용하는 국가는 아일랜드, 몰타, 오스트레일리아(상원의원 선거)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의석산정의 복잡성을 빗대 현실에의 적용이 어려운 유토피안적 제도라는 평가마저 있다. (21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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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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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미디어, 소셜미디어, 정당들이 보여주는 집단 히스테리 속에서 선거 열기는 상시적이 되어버리고 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선거와 관련된 복잡한 계산 때문에 효율성에 손상이 가고, 늘 전면에 나서려는 의욕은 정당성을 저해한다. 현행 선거체제에서는 매번 장기적인 관점과 보편적이고 공동적인 이익이 단기적 안목과 개별적 이익에 패배한다.(81)



현대 우리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선거 근본주의의 전모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모든 정치 수단들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비뽑기는 18세기에 들어와 선거와의 대결에서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선거는 본래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으로 고안되지 않았다. 선거는 혈통에 의거하지 않는 새로운 '귀족들'을 권좌로 끌어들이도록 마련된 절차였다. 투표권이 점진적으로 확산된 덕분에 이 소수특권적인 절차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정치가와 유권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과두정치적 구분을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전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내비친 희망에 맹렬한 타격을 가하며 선거 민주주의는 민중에 의한 통치government by the people라기보다는 민중을 위한 통치government for the people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불가피하게도 선거 민주주의는 수직적인 요소와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높은 곳'과 '낮은 곳', 권위와 그 권위에 복종하는 백성들이라는 양상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투표 참여는 이로써 몇몇 개인을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승강기 역할에 그치고 만다. 이 사실로미루어 선거 민주주의에는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된 봉건주의적 특성이 남아 있으며, 우리는 일종의 내부적 식민주의 형태에 찬성한 형국이라고 봐야 한다.(139)



제비뽑기는 논리적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논리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기회를 균등하게 배분하며 불화를 방지할 수 있는, 의도적으로 중립적인 절차가 바로 제비뽑기다. 부패의 위험도 완화될 것이고 선거 망국병도 사라질 것이며 공동선을 향한 관심은 강화될 것이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발된 시민들은 직업 정치인의 역량은 갖추지 못했을지 몰라도 자유라는 또 다른 강점을 지녔다. 이들은 선거에 당선되거나 재선되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196)



오늘날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이중대표체제, 즉 선거와 제비뽑기를 결합해 대표성을 강화시켜주는 모델이다. 이 두 가지는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직업 정치인들의 역량과 선거에서 당선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민들의 자유가 바로 그 각각의 장점이다. (201)



정당정치 체제하에서 해결책을 찾기에는 너무 미묘한 분야(버리셔스 이론에서 2단계)일수록 효과적일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헌법에 관한 컨벤션이 동성애자들의 혼인, 여성인권, 신성모독, 선거법 같은 문제를 논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벨기에의 경우, 환경이나 정치 난민, 이민, 그 외 공동체 관련 안건들을 이런 방식으로 논의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의제 결정 기관, 규정 심의 기관, 감독기관 정도의 기구는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 참여 기관은 이른바 행정 군도群島 안에서 고정적인 구성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기관 각각이 고립된 섬이지만,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새로운 사회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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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한승헌 지음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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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몽양이 테러나 암살을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공하면 몽양이 통일 조선의 초대 대통령으로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돌자 대통령 자리를 노리던 정치인들의 시기 질투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중에서도 극우세력이 정계 요인 암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지 중장은 1947년 6월28일 이승만의 테러 음모를 비판하고 그 중지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낸다. 그로부터 20일 뒤에 몽양이 암살된다. 그러나 미군정의 입장에서도 차후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우려 할 때 여운형이 방해세력이 될 것으로 보았기에, 속내로는 그의 보호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는 논자도 있었다. (30-31)




이 사건[동백림 사건]에 대해서는 2004년 11월 2일 출범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워 진실위)의 조사 결과(2007년 발표)가 주목을 끈다. 


그 발표문에는 당시의 국내 정치상황과 시대적 배경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요지는 이러하다. 즉 1967년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이후의 장기집권을 위해 3선개헌을 위한 국회 의식의 개헌 정족수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6·8부정선거를 감행했고, 이에 대항하여 야당과 대학생들이 대규모 규탄시위를 전개하자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를 휴업령으로 문을 닫고 탄압하는 시점에서 이 사건을 과장 발표했다. 즉 박 정권이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임석진의 자수를 계기로 동백림 사건을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전후 7차례에 걸친 이 사건 수사 발표 이후 대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시위는 없어졌다(184-185).




김재규는 법정에서 자기와 동향(경북 선산) 출신아며 육사도 동기(2기)일뿐더러 자신을 권력자로 입신시켜주기까지 한 박정희에 대하여 시종 '대통령 각하'란 존칭을 써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버려야 했던 까닭을 막힘없이 진술해나갔다. 그는 '유신체제 완화, 통일주체대의원이 아닌 국민 직선에 의한 대통령선거, 긴급조치 해제, 1979년 9월의 부마사태 등과 관련된 건의를 거듭하면서 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과 국민의 불신을 말해주었으나 대통령은 물러설 줄을 몰랐다'며 자신의 '대의大義'를 내세웠다. 


법무사가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대통령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하고 묻자 김재규는 "예, 대통령 각하와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문제는 숙명관계가 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 각하만 희생되면 자유민주주의는 곧 회복된다, 이런 동기에서 했다?"라는 법무사의 물음에 김재규는 "대통령 각하께선 건재하시면 자유민주주의는 회복 안 된다, 이 관계는 대통령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몰고 가셨다, 이런 말씀입니다"라고 했다. 


그밖에도 김재규는 1980년 1월28일자 '항소이유보충서' 말미에 '10·26 혁명의 동기의 보충'이라는 항목을 달고,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었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다면서, 최태민 목사가 총재, 박근혜 양이 명예총재로 있는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된 부정과 원성을 거론하고, 육사생도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박지만 군의 탈선 등에 관한 언급을 하여 주목을 받았다. (32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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