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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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미디어, 소셜미디어, 정당들이 보여주는 집단 히스테리 속에서 선거 열기는 상시적이 되어버리고 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선거와 관련된 복잡한 계산 때문에 효율성에 손상이 가고, 늘 전면에 나서려는 의욕은 정당성을 저해한다. 현행 선거체제에서는 매번 장기적인 관점과 보편적이고 공동적인 이익이 단기적 안목과 개별적 이익에 패배한다.(81)



현대 우리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선거 근본주의의 전모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모든 정치 수단들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비뽑기는 18세기에 들어와 선거와의 대결에서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선거는 본래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으로 고안되지 않았다. 선거는 혈통에 의거하지 않는 새로운 '귀족들'을 권좌로 끌어들이도록 마련된 절차였다. 투표권이 점진적으로 확산된 덕분에 이 소수특권적인 절차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정치가와 유권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과두정치적 구분을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전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내비친 희망에 맹렬한 타격을 가하며 선거 민주주의는 민중에 의한 통치government by the people라기보다는 민중을 위한 통치government for the people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불가피하게도 선거 민주주의는 수직적인 요소와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높은 곳'과 '낮은 곳', 권위와 그 권위에 복종하는 백성들이라는 양상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투표 참여는 이로써 몇몇 개인을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승강기 역할에 그치고 만다. 이 사실로미루어 선거 민주주의에는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된 봉건주의적 특성이 남아 있으며, 우리는 일종의 내부적 식민주의 형태에 찬성한 형국이라고 봐야 한다.(139)



제비뽑기는 논리적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논리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기회를 균등하게 배분하며 불화를 방지할 수 있는, 의도적으로 중립적인 절차가 바로 제비뽑기다. 부패의 위험도 완화될 것이고 선거 망국병도 사라질 것이며 공동선을 향한 관심은 강화될 것이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발된 시민들은 직업 정치인의 역량은 갖추지 못했을지 몰라도 자유라는 또 다른 강점을 지녔다. 이들은 선거에 당선되거나 재선되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196)



오늘날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이중대표체제, 즉 선거와 제비뽑기를 결합해 대표성을 강화시켜주는 모델이다. 이 두 가지는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직업 정치인들의 역량과 선거에서 당선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민들의 자유가 바로 그 각각의 장점이다. (201)



정당정치 체제하에서 해결책을 찾기에는 너무 미묘한 분야(버리셔스 이론에서 2단계)일수록 효과적일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헌법에 관한 컨벤션이 동성애자들의 혼인, 여성인권, 신성모독, 선거법 같은 문제를 논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벨기에의 경우, 환경이나 정치 난민, 이민, 그 외 공동체 관련 안건들을 이런 방식으로 논의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의제 결정 기관, 규정 심의 기관, 감독기관 정도의 기구는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 참여 기관은 이른바 행정 군도群島 안에서 고정적인 구성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기관 각각이 고립된 섬이지만,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새로운 사회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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