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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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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은 1992년에 네덜란드에서 간행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8년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스페인에 대한 여행서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이 책이 옛스럽다거나, 아니면 표현에서 뒤쳐진다고 느낀 부분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엮은이 역시 낡았다는 느낌을 받은 부분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 세스 노터봄은 스페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태생이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내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미 많은 책으로도 엮어 소개되고(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여행프로그램에서도 가끔 접했던 곳이라서,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았다.

 

 이 책은 이미 세계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여행기를 예술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역작이라는 소갯글 덕분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책을 펼쳐본 나는 조금은 놀랐다. 상당히 많은 글밥과 500여페이지의 글에 눌려 속도가 나지 않으면 책읽는 기쁨이 조금은 감량되겠구나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일다보면 저자 노터봄이 문학적으로도 상당히 감성적이지만, 예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보이는 것을 알 수있다. 책 중간중간 (흑백이긴 하지만) 실려있는 작품들을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노터봄의 지식에 감탄하게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회 :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대성당. 예수의 제자였던 산티아고(성 야고보)가 순교한 뒤 하늘에 별빛이 아타나 산티아고의 무덤을 가리켜 주었다고 해서 '별의 들판'이란 뜻으로 '캄푸스 스텔라'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나중에 산티아고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었다.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순례 성지가 되었다.





 이 책의 종점은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회이다. 사실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회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 종교가 같은 것도 아니였고, 산티아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한것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자의 배려로 그에 대해 알게 되어 기뻤다.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종교적으로 편이 갈리기도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스페인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소와 숨은 곳곳을 보여주는, 스페인을 잘 묘사해 놓은 책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스페인 여행 백서라는 말이 안 어울리는 이유는 최근에 나오는 여행서적들과 비교하면 잠잘 곳이라던가, 먹거리등을 소개하는 글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스페인의 이야기는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는 그런 모습이다.

 

 

 

 

스페인은 중세 아랍과 유대인, 기독교의 과거에 단단히 붙박여 있으며 스페인으 고집스러운 도시들은 마치 대륙처럼 광활하고 텅 빈 자연 속에 드문드문 박혀 있다. 스페인은 유럽에 매달려 있지만 유럽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녔던 길로만 가서는 스페인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미로처럼 복잡한 스페인의 역사를 거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스페인을 돌아다녀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다.

스페인은 평생을 바쳐서 사랑해야 할 땅이다. 스페인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을 모른다. (page. 10)

 

 

 초반에 그가 설명하는 스페인은 매우 미질서하고 잔인한 도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뒤따라가면 스페인은 그에게 무척이나 의미있고,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결론이다. 그의 여정 중 라 만차로 가는길( 돈 키호테의 발치)의 단락(8장)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얼마전 읽은 소설에서 등장한 『돈 키호테』고전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돈 키호테』가 꽤 흥행을 했고, 주인공의 고향이 라 만차로라고 명했기에 그곳의 명성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이 책이 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다양한 수도원을 들리고, 그곳에서 뻗어나올 수 있는 역사적인 것은 물론 철학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정말이지, 저자 노터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모든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흐름이라는 기분도 든다.

 

.....그곳에는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멤링이그린[성모와 아기]그림이 걸려 있다. 내 평생 그렇게 빨간 그림은 본 적이 없다. 성모는 꺼지지 않는 불길 같은 옷을 입었다. 그런데 성모의 옆쪽과 뒤쪽으로는 스페인에서는 보기 드문 빛깔이 보인다. 그것은 플랑드르의 푸른 들판이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과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을 사로잡고 또 스페인이 다시 하느님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그 황금 보물의 불모성이 비교되면서 나도 모르게 잠시 향수에 젖는다. 스페인이 무너진 것은 황금에 눈이 멀어, 자기가 살아야 하는 땅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page. 99)

 

부르고스 대성당안에서 본 [성모와 아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에서 스페인의 역사와 환경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림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이럴땐 오히려 삽화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할지 몰라도, 삽화가 바로 글옆에 제시되지 않기때문에 혹은 실려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얹혀 그의 글에 흘러가는 마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서서 내려다본다. 그러나 보는 눈은 내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눈이다. 그것은 그들의 시선이고, 눈앞의 장관은 목숨을 걸고 걸으면서 믿음을 잃지 ㅇ낳았던 사람들이 온당히 받아야 할 보상이다. (page. 526)

 

스페인에서 그가 서 있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그곳에서 이야기하는 스페인의 역사 더 나아가 유럽의 역사, 그나라의 미술, 문학, 건축, 정치등 모든 분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책이 내 머릿속에서 과부하를 일으키긴 하지만,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큰줄기를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기회였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스페인의 지도를 펴 놓고, 그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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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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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행복으로 가는 직행버스티켓!
 

 이렇게 말하는 사람 과연 결혼한 사람들 중 얼마나 죌까? 아마 이 말부터 꺼낼지 모른다. " 결혼은 무덤이다."라고. 누가 이 대단한 명언을 남겼는지...... 하지만 법륜스님의 주례사를 듣고 나면, 결혼으로 인한 행복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편이다. 남편은 아이 육아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남편은 나의 생일까지도 평범한 날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남편은 나와 가장 가까운 적이다...... 이런 생각을 결혼한 사람들 그 누구든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서로 성격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성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맞춰가는게 그리 쉬운것 만은 아니다. 그러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결혼한 그 곳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행복이라는 것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결혼생활을 이어 나가는게 아닐까......

 

 

 <스님의 주례사>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법륜 스님의 글을 찾아 읽으며 결혼 전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란 찬사를 받았다. 최근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각자 자신의 선언서를 발표하는데, <스님의 주례사>의 어느 한 부분을 요약해서 서로 읽어내려가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저 좋은 덕담도 나에게 와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결혼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크나큰 영감을 준다.

 

 그렇다면 무엇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줄 때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age. 42)

 

 

 사랑하니까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나의 모든 면을 보여줘도 다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잊고 있었던 '사랑'에 필요한 전제를 알려주는 것 같다. '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결혼생활에서 없어선 안 될 전제조건임을 고작 3년이라는 결혼생활속에서 잊고 살아온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결혼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며 알려주신 선배가 생각난다. 바로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존중하라...... 어찌보면 무척 상투적이고 실천이 어려울 것 같은 말이다. 하지만 실상 이해와 존중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법륜스님의 주례사를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다.

 

상대가 고집이 센데, 그 센 고집을 꺾으려는 나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를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함께 살려면 맞춰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page. 151)

 

결혼전 남편은 나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지 않았다. 늘 무엇인가를 많이 넣고 다닌 나의 가방을 한번쯤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어달라는 부탁을 할 때까진 그런 면을 볼 수 없었다. 가방을 들어달라고 하지말고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말했던 남편. 내가 무겁다고 느낀다면 자기도 무거운 것이란다. 그리하여 그 후의 데이트에선 나는 정말 가방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처음엔 그의 행동에 화가 났었다. 그래서 전화도 먼저 안하고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내가 먼저 전화해서 화를 내고 말았다. 그의 성격에 이상이 있다고 여겼으나, 결국 그에게 내가 맞춰나가니 속이 편했다. 그러다보니 그도 나에게 맞춰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내가 힘쓰는 일은 모조리 도맡아서 해준다. 나는 그에게 이것저것 명령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조율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의 고집을 꺾으려다 스스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다. 하루종일 일은 되지도 않고, 속도 쓰렸다. 그러나 그가 싫다면 나도 바라지 말자... 이렇게 정해버리고 나니 속이 편했다. 이 경우를 법륜 스님도 말씀하신다. 남편에게 잔소리하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 그것. 그래서 아내는 결심한다. 잔소리를 하는 나 스스로부터 바꿔보자. 만약 잔소리를 하게 되면 참회를 하자. 잔소리를 할려다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답답할까요?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잔소리를 해야만 속이 시원했으나, 스스로가 탁 놔버리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 이런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되면 행복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 스스로의 삶이 변한다고 말씀하신다.

 

가까운 사람들과 민감하게 부딪힐 일이 많은 속세의 사람들이 산속에 계시는 스님들보다 수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에 한참동안 멍~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종종낸다. 매일저녁 일기를 쓰면서 다짐하는데 다음날 또 큰소리가 난다. '화내지 말자'라는 수행을 오늘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계속 마음을 쓰면 언젠가 ' 어? 저사람 좀 변했네?"라는 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못 살겠습니다."

 

  " 그만 사세요."

 

 질문 속에 대답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묻습니다.

 

  " 남편과 날마다 싸우는데 전생에 남편과 제가 무슨 관계였는지 모르겠어요."

 

  " 원수지간이요."

 

 간단하지요? 질문자의 말 가운데 대답이 다 들어있고, 저는 그 마음을 이야기해 줄 뿐이예요.

 

( page. 133~134)

 

 



 

행복하려고 한 결혼이 불행하다면 어쩌지? 남편때문에 힘들다면 바꾸어 생각하라신다. 남편이 있어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워졌다. 두 부부만 산다면 여러 어려움이 있겠는데 아이들이 있어서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다...... 어디하나 틀림이 없다. 나는 좀 더 행복하고 싶었고, 미래를 그와 함께 설계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쌍둥이를 출산한 것이 마냥 우울하기만 했는데...... 내가 한 생각의 한면을 뒤로 뒤집기만 하면 모든 것이 행복하거늘, 나는 이 간단한 진리를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결혼에서 빚어지는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만들어낸 농축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부터 해야겠다. 나의 일상 절반은 이 생각이 말들어낸 결과들이기에, 그것을 안다면 행복을 찾는 문턱까지 오른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법륜스님의 주례사를 좀 더 일찍 접했다면.... 이 쉬운 진리를 어렵게 돌아 찾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부터 남편의 출근가방에 <스님의 주례사> 일부를 글로 적어 넣어주고 싶다. 그렇게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나누다가 이 책의 모두를 공유하고 나면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발전한 부부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결혼을 해 보려는 예비부부와 결혼생활의 금이 간 판에 서 있는 부부들에게 법륜스님의 < 스님의 주례사 >는 그 어떤 의미있는 사람의 주례보다도 축복가득하고, 가르침의 그 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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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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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일어난 일은 무엇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가 온다 리쿠. 그녀의 이 필명은 우리 나라 사람들 깊숙히 각인되어 있으며, 미스터리 하면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온다 리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크리스티의 작품을 본 적은 종종 있으나, 이 이름도 유명한 온다 리쿠의 책은 본 적이 없으니 어디다 명함내밀기도 어려운 나였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그녀의 작품 < 여름의 마지막 장미 > 를 만났다. 블랙 표지에 차가워보이는 그러나 지독히 향기로운 장미. 뭔가 섬뜻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갖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을 떨치고 책을 읽었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온다 리쿠에게는 26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2003년 일본에서 여재되었던 소설이다. 그런 작품이 이번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출판되었다. 이 글을 쓸때 ' 본격 미스터리 마스터스'에 수록될 것을 염두해 두고 썼다고 하니, 그녀의 미스터리 작품세계를 이 한권으로 가닥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된 특징은 [제1 변주]~[제 6변주]로 나뉘어진 파트마다 화자가 변화되는 점이다. 화자가 변화되면서 읽는 독자는 책속의 하나의 인물이 될 수 있다. 첫번째 등장한 화자를 통해 보여지는 진실을 두번째 화자에 의해 더욱 또렷해지는 방식. 윤곽이 드러날 때마다 퍼즐 조각은 맞춰지지만 그 퍼즐조각 자체의 존재감을 의심하게 되면서 독자의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얽힌다. 판의 조각들을 비틀어 보여주더니 다음 장에서 그것을 또 비틀어버리는 온다 리쿠식의 미스터리는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호텔에서 일어나는 사건. 이것은 밀실로 보여지는 배경을 바탕으로 그 속에 초대된 사람들과 초대자, 사와타리집안의 세 자매 (이치코, 니카코, 미즈코)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와 더해져 진실 혹은 허구에 대한 주사위를 던지게 한다. 세자매의 아버지가 지은 호텔. 호텔의 위치는 숲과 가까이한 으슥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매년 한번씩 모이는 이 모임은 어떤한 음산한 사건들을 몰고 온다. 그리고 세 자매에게 전달된 잡안을 중상하는 편지, 어린애 장갑, 그리고 어린애 줄넘기는 어떠한 사건을 예고하는 것일까?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목을 끄는 커다란 쾌종시계는 흡사 관을 연상시킨다.

 

 

"할아버지에게는 이곳이 꿈이 장소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와타리 집안 전체로 보면 불행한 기억으로 점철된 곳이거든." (Page. 94)

 

 

 류스케와 혼인한 사쿠라코. 사쿠라코와 그녀의 남동생 도키미쓰의 사랑. 아름다운 남매 사쿠라코와 도키미쓰를 사랑하는 류스케. 류스케의 사촌 미즈호. 미즈호가 한때 사랑했던 남자 다쓰요시. 사쿠라코와 다쓰요시의 비밀스러운 연애. 서로 뒤죽박죽으로 얽어매어 놓은 온다 리쿠는 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호텔안의 이야기를 각 장이 발전될 때마다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준다. 그러나 각 장마다 죽음을 당한 이들은 다음 장에 등장한 화자의 눈속엔 버젓히 살아있다?

 

 



 

 

" 우리 모두가 기억을 날조하고, 자신에게 생겼던 일, 과거에 있었을 일을 날마다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Page 372)

 

 

 여름의 마지막 장미속에서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용문이 있다. 그것은 <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불멸의 연인>인데,  이 영화의 각본인 글을 인용해 놓고 글의 이음새를 메워간다. 데자뷰를 주제로 한 이 영화는 이 책의 전반의 중심을 뚫고 지나간다. 데쟈뷰. 무엇이 진실이였는지, 거짓이였는지......

 

 

  

 사쿠라코의 동생 도키미쓰는 자신이 사랑한 사쿠라코에 대한 배신감에 그녀를 죽였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등장한 류스케의 눈엔 그녀가 살아있다. 그러나 마지막 장, 일년이 지난 후 다시 모인 모임자리에서 고백한다. 도키미쓰는 그녀를 죽였다고... 분명 사쿠라코는 죽었었는데, 다음장에 살아있는 것이 의야해서 읽는 동안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과연 온다 리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저자는 책과 함께 하는 독자에게 그 답의 한켠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것이 허구였는지, 진실이였는지는 내가 판단하면 될 일이였다. 데쟈뷰......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화려하고 꿈꾸왔던 그 누군가의 소망으로 이루어진 호텔이 결국엔 불행의 소굴이였다는 것, 작게는 있는 자들의 피의 향연과 인륜을 줄에 매달린 봉제인형 다루듯 하는 만행을 고발하고 드넓게는 그 누군가의 기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그 사람도 모르는......허구와 진실을 오고가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을 꼬집는 것 같았다.

 

 

 중간에 등장하는 영화의 각본이 삽입되어 책의 흐름과 함께 해 나갔지만, 사실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강한 임팩트를 받아 이 책을 쓸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였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아니 결코 인용문이 들어있는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란 영화를 보거나 혹은 그 각본을 한번쯤 읽었더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 은 쉬웠지 않았을까......

그러나 온다 리쿠만의 독특한 트릭이 담긴 미스터리를 접했다는 것에서 나는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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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추구 - 하버드대 최고의 행복 강의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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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 교수 탈 벤 - 샤하르의 행복한 강의 <완벽의 추구>를 읽은 지금 나는 산속의 큰 나무들 사이에서 해를 드문드문 받아 웃자란 어느 풀처럼 실속없게 커버린 나를 싹뚝 자르고 새로이 시작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가능하다면 뿌리째 파버리고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풀이 되지 말고 넓은 들로 나오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그저 키가 큰 그 나무들을 닮고 싶었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봐야 나는 풀이거늘...... 억지스러운 목표를 정해놓고 살았지 않나 싶다. 드문드문 드는 해를 볼려고 키만 커가는 나였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책인거 같다.

 

 

 



 

 

 집에서는 둘째딸로 태어나 나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견을 굽히지 않는 대같은 성격이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늘 타일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타이틀로 땍땍거리는 나를 지켜봐주시곤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접하게 되면서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소통을 배웠고, 나를 단련해 나갔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19살 대입을 치르고 부모님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 아르바이트라는 좋은 건널목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페스트푸드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을 소개하는 그 짧은 시간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 나는 낙방했다. 내 인생에서 첫 낙방이였다. 하찮아보이는 이 일에 나는 심한 실망감을 느꼈다. 그것은 패배감이였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친구는 붙었는데 나만 떨어지다니.....라는 생각에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그곳에 도전했다. 그리곤 합격했다. 합격하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면접을 봤지만, 이번에 떨어뜨리면 폭발해버릴꺼다라는 표정을 비장하게 보여주면서 협박했던거 같기도 하다.

 

 이 작은 일에도 실패를 맞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 생각하니 우습지만, 나는 아주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완벽함을 사랑했다. 직장에서도 완벽할려고 하는 내가 힘겨워 후배들은 앓는 소리를 해대곤 했는데, 나 스스로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말로 달랬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실패를 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더 긴장하게 되고 일이 잘못되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실패가 두려워 내가 가능한 목표만 세우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 page. 14)

 

 

 



 

 

 

 불행한 완벽주의자 와 행복한 최적주의자 사이에서 나는 어느쪽인가?

 

둘 사이에서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같다면 과연 이 둘 사이에서 차이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목표달성 과정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에게 실패란 없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실패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적주의자는 최종 목표지점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수도 있고, 장매물을 만날 수도 있으며 지름길을 만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최적주의자가 만나는 실패는 목표지점으로 가는 길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행보다. 인생은 그래서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완벽주의자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접근방식이 결국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실패를 더 많이 해 보라고 한다. 그것은 실패를 많이 경험한다는 것이 바로 도전을 자주 시도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그 실패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 바로 완벽주의자다.

 

 

 

 



 

 

 

 

 행복한 척 하지 말라.

 

" 예전에는 소녀들이 부끄러울 때 얼굴을 붉히곤 했는데 지금은 얼굴이 붉어지면 부끄러워한다." (Page. 288)

 

 병원에서 근무할때 한 환자가 입원했다. 그 환자의 병은 외과적 질병이였으나, 그녀의 병력에 모두들 주목했다. 우울증. 메이져급이였다. 우울증으로 인해 외과적 수술후 회복이 더딜 수도 있으며 급기야 병원 옥상으로 올라가는 이도 있다. 자살하는 이도 있기에...... 우리는 특별히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울증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명랑했다. 늘 친절했고, 깔끔했으며 모든 병원에서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갔다. 하지만 수술 후 그녀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치료를 거부했고, 결국 다른 병원으로(정신과병동이 있는)이송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였나 싶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건 아니였을까.......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는 ’환벽한’ 삶을 살 수 없다. 고통스러운 감정, 실패, 두려움등을 거부할수록 완벽한 삶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것이다. 인간이 행복감만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멸종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모든 감정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처럼 거부하지 말고 용기내어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 그 크기가 작은 것일지라도 성공이라는 것을 이룩해내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실패 뒤에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가 성공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마음속의 지옥을 피하려고 하면 마음속 천국에서도 멀어진다." - by 에이브러햄 매슬로 (Page.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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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삭 사사삭 - 바람이 실어다 준 노래 저학년을 위한 마음상자 6
바바라 산투치 지음, 글마음을 낚는 어부 옮김, 로이드 블룸 그림 / 예꿈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마음을 여는 세계명작 - 북아메리카 편  ㅣ 사사삭 사사삭  ㅣ  도서출판 예꿈

 

 

 

 여러분들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그 무엇이 있으신가요?

 

할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이신 아버지와 자연히 맏며느리가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손주를 많이 기다리셨다고 해요. 그리고 결혼 2~3년만에 낳은 아이, 바로 저의 친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앞섰데요. 늦게 가진 자식인데 아들부터 낳아줬음 엄마도 마음 편했을텐데 하고 말이죠. 그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를 그 누구보다도 이뻐하셨다고 합니다. 뒤이어 태어난 아이 역시 딸. 미역국을 목으로 넘기는 것 조차 기운빠지는 일였다고 하나, 역시 할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남동생이 태어났어요. 할아버지는 우리 자매에게 평등을 가르쳐주셨고, 예절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베풀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지요.

 

<사사삭 사사삭>에서 만난 안나의 할아버지는 안나에게 옥수수 밭에서 바람이 실어다 준 노래를 들려줍니다. 수확이 다 되어 마주하는 옥수숫대는 늘씬한 키와 진한 갈색의 수염을 내보이는 옥수수알통배기를 자랑하듯 서 있어요. 바람이 휘익하고 들판을 쓸며 달려올때 옥수수밭의 옥수수잎들이 바람에 몸을 기대듯 사사삭 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 옥수수 밭이 노래를 부르는구나."

 

" 에이, 할아버지. 옥수수 밭이 어떻게 노래를 불러요? "

 

" 아냐, 잘 들어봐. 바람이 노래를 실어다 준단다. "

 

 

 

안나의 할아버지는 귀 옆에 손을 대고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은 뒤 조용히 들어보라고 합니다.

 

안나는 드디어 바람이 실어다 준 노래소리를 들었습니다. ' 사사삭 사사삭 '

 

 



 

 

옥수수 하나를 따서 옥수수 낟알을 떼어낸 할아버지는 쌈지에 담아서 안나에게 줍니다.

 

잘 보관해뒀다가 내년 봄에 심을 것을 부탁합니다.

 

 " 할아버지가 네게 주는 선물이란다. "

 

 



 

 

몸이 좋지 않던 할아버지는 끝내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고 
안나는 할아버지를 잃은 슾픔에 빠지죠.

 

그렇게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안나네 옥수수 농장도 분주해집니다.

 

씨를 뿌리는 시기가 왔으나, 안나는 할아버지가 준 쌈지 속 옥수수알을 심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안나에게 할아버지와 약속한 그 옥수수 알을 왜 심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 이걸 땅에 묻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릴 텐데요. "

 

안나는 땅에 심어버리면 할아버지가 남긴 그것을 
다시는 만지지도 보지도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엄마는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해요.

 

모양이 달라지는데, 해님이 도와주고 비도 도와줄 것이라는 말을 해 줍니다.

 

 

그리고 안나는 옥수수알을 모두 심게 됩니다.

 

 

 



 

 

싹이 나는 걸 지켜보는 안나, 결국 옥수수대는 비와 해님에게 도움받고, 
안나와 어머니의 보살핌속에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비를 한껏 맞은 옥수수대는 안나의 키보다 커진
 8월을 거쳐 지글지글 탕오르는 해님도 이겨냅니다.

 

그리고 10월 옥수수 수확철을 맞이합니다. 
( 옥수수는 자연속에서 자연의 도움을 받습니다.)

 

 

 



 

 

 

옥수숫대에서 옥수수하나를 따서 알을 떼어내는 안나. 
그 알을 쌈지에 담고는 내년 봄에 심을 것을 기약합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집중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바람이 실어다 주는 노래를 듣게 됩니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사라질까봐 걱정했던 안나.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합니다.

 

" 이제는 알아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요.."

 

 

 

 

 

 

 

 

 안나의 할아버지가 안나에게 물려준 유산은 바로 굴렁쇠처럼 계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엄마 혹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놀이로 세상을 배워가지요. 있다 없다를 시작으로 엄마와 떨어지는 일도 연습하고, 병아리를 키우다가 병아리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작은 어항에서 키우던 이쁜 물고기들이 사실은 고향이 바다임을 알게되고, 동물의 변은 흙으로 흡수되어 좋은 영양으로 변모하는 그 모든 흐름을 알아가게 됩니다. 변이 만들어낸 영양제로 미옥한 땅이 이루어지고 그 위에서 자라나는 식물들. 그 식물의 열매를 먹는 동물들과 우리들은 자연에게서 얻고, 또 자연에게 돌려줍니다. 그 어떤 것이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긴 여정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 비록 실제로 보여지는 모습은 옥수수알에 불과할지라도, 그 큰 뜻은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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