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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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길 위의 시대>는 시를 사랑한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시에 무척 빠져든 적이 있었다. 내 인생이 바람앞에 있는 촛불처럼 흔들거리던 시기, 나의 청소년기에는 늘 시가 함께 했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학생들이 시에 빠져들었던 1990년대이기도 했고 말이다. 요즘은 시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순수의 시대에서 빠져나온 것일까? 성교육이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옮겨내려가는 걸 보면, 확실히 시대의 중심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에 사람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일까? 아마도, 순수의 시간은 있었지만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중국소설은 처음 만나본다. 장윈 작가는 여성스러운 시적감각으로 글을 엮었을 것 같다. 상당히 서정적이며, 아름답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국의 LA, 혹은 뉴욕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이 중국의 역사이고, 중국안의 지형이 아닐까 싶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고, 모르는 지명이름에 중국의 역사조차 잘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읽을때 막히는 부분이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어려운 단어도 많다. 어렵다는 말보다도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수없이 나열한 페이지를 보고 경악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좀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 컴퓨터 앞에서 단어장 열어놓고 읽었다. 그런 열정이 더해져 이 책에 대한 '난해함'을 좀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본다.

 

 



 

 

 

책의 등장인물 중 '망허'라는 시인은 두번 등장한다. 천샹과 예러우가 사랑한 '망허'는 동일 인물인지, 동명이인인지 책의 구성상,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 망허는 예러우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운명같은 사랑을 이어나간다. 한편으로 시인 '망허'는 천샹을 임신하게 만들고 떠나버린다. 임신한 천샹이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겠다는 라오저우. 천샹은 라오저우와 결혼하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준 라오저우에게 감사해 한다. 그리고 아들 샤오촨을 친아들처럼 아껴준다. 그러나 천샹이 사랑한 남자는 시인 망허가 아니다. 천샹은 시인이 늘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떠돌며 한곳에 머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걸 원망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게 믿고 살았는데, 막상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진짜 망허가 아니였다는 걸 안 천샹의 마음은 자신의 아들 샤오촨까지 증오하게 만든다.

 

시인은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 낮선 자극을 원하죠. 영원히 신선함을 추구하지 않늗다면 시인의 영감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P. 129 - 예러우가 망허에게 하는 말 중에서....)

 

시인 망허를 사랑한 예러우. 시를 사랑한다고 나타났던 또다른 망허를 사랑한 천샹. 반전을 드러내며 책의 흐름이 비틀어질때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사랑한 사람들의 비참함이라고 할까? 시를 사랑한게 무슨 죄인듯.... 시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에겐 완벽한 결실이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의 바탕을 드러낸다. 시를 듣고 있으면, 세상에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데, 시를 사랑한 남녀의 결말은 어떠한가. 현실이란 벽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샤오촨, 나의 아들아. 네 몸속엔 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단다. 시인이란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야. 넌 세속의 잣대로 그를 평가해서도, 세속의 가치관으로 그를 판단하거나 속박해서도 안 돼. 난 네가 이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고, 또 네가 시인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길 더욱 바란단다. (P.78)

 

 

천샹이 아들 샤오촨에게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시인이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쓴다. 그리고 사오촨에게 말한다. 시인이란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천샹이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시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인에게서 얻은 아들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며, 보물임을 알고 있다. 천샹이 젖이 나오지 않아, 6개월동안 젖 잘 돌게 하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경악하면서도 감동했다. 엄마의 마음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대목이였기 때문이다.

 

진짜 망허와 사랑을 하던, 가짜 망허와 사랑을 하던 시처럼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장윈의 시선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일치한다. 망허는 결국 시를 버리게 된다. 시는 아름답지 못하고, 잔인한 것이 되어버렸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평범을 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 책속의 이야기는 매우 순수하다. 빌딩숲에 서서 답답한 공기를 마시는 현대의 흐름과 전혀 다른 깨끗한 공기.

 

 

 책의 결말이 안타까웠다. 소설에서나마 행복을 찾고 싶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장윈의 시점이 내 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상당히 매력있다. 시적인 감성이 여기저기 넘치듯 드러나는 < 길 위의 시대>는 시를 사랑하고, 나만의 시를 쓰기 위한 누런 습자지를 생각나게 하며, 서점에 서서 시집코너에 살다시피 한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집을 찾아본다. 시를 사랑한 것인지, 겉멋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시는 지독스럽게도 내 청춘의 한 점을 채우는 아름다움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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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말 한 마디 - 세계 유명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짱젠펑 지음, 임국화 옮김 / 이코노믹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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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글 한 줄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명언집은 해를 거듭해도 여전히 출간되고 있고, 그런 명언집을 우리는 찾아 읽는다. 명언을 낳은 사람들은 들여다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었다거나, 평범한 가정이였고 혹은 우리보다 더 못한 환경에 태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명언을 남겼을까.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고 어떤 행동이 달랐을까 늘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위인전을 좋아하고, 이름모를 그 누군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같은 세상 사는 같은 인간이지만 나와 확연히 다른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글에서 나를 반추해 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바라봅니다. (P. 44)

 

이 한마디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 진학하고 예술박사 학위를 받은 황메이리엔 박사가 남긴 말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다. 삐뚤어진 몸, 말을 잘 안 듣는 팔 다리, 그리고 쉼 없이 웅얼거리게 되는 입.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소아마비자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박사까지 되었을까. 어느 강연회에서 한 중학생이 질문했다. " 황박사님,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줄 곧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자기자신에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랬더니 그녀는 칠판에 써내려갔다. 1. 나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2. 나는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가졌습니다. 3. 사랑하는 부모님, 그림의 재능, 귀여운 고양이..................... 마지막에 그녀는 이 한 마디로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바라봅니다."

 

 

 

미국의 강철 대왕 앤드류 카네기는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공사현장에서 사장님 같은 분을 보았다. 그분에게 물어본다. " 제가 어떻게 하면 커서 아저씨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사장님은 말한다. " 붉은색 옷을 사 입거라." 라고. 붉은색 옷을 사입는거랑 성공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자 그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저 파란 옷을 입은 많은 사람이 내 부하다. 그런데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러나 저기 빨간 옷을 입은 사람. 저 친구는 내 눈에 잘 띈단다. 나는 저 친구를 며칠 후 조수로 삼을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니?" 카네기는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다. 면접날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깔끔하게 머리를 뒤로 묶고 단정한 정장을 입었다. 여성스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투피스를 입었었는데, 엄마가 다가와선 입술을 좀 더 붉게 하라고 말하셨다. 붉은 입술은 너무 튈 것이라고 반대하자, 엄마는 그랬다. "  다 똑같은데 누가 널 눈여겨 보겠니. 붉은 입술로 무뚝뚝하게 있지 말고 붉은 입술로 활짝 웃거라."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붉은 색이 감도는 립스틱을 바르고 갔다. 엄마가 가르쳐준 눈 인사법을 머릿속으로 읊조리며 근육이 떨리도록 웃었는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9명안에 들었다. 좋은 인상이라고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 직장에 들지 못했다면 나는 먼 타지방으로 가야만 했다. 남들과 달라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내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직장생활을 무사히 해냈다.

 

 

 

존 홉킨스 대학을 세우고, 옥스퍼드 대학의 의학과 교수로 제작한 훌륭한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완전히 독립된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워라. " 버튼을 누르십시오, 아직 오지 않은 내일과 이미 지나버린 어제로 향해 있는 문은 닫아버리세요. 당신이 가진 것은 오늘입니다. 완전히 독립된 오늘을 사십시오.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진 지능과 열정을 쏟아 오늘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윌리엄 오슬러의 명 강의로 나는 새로운 내 마음속의 단 한마디를 적어 넣었다. 완전히 독립된 오늘을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정말 그의 말처럼 천국의 장미화원을 꿈꿀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장미한송이를 감상할 줄 알아야겠다고......

 


삶이 늘 진흙탕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과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위인들은 분명 평범한 나와 같은 출발선에 있었다. 어떤식의 호흡법이였는지, 어떤 특수한 신발을 신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주법을 구사했는지 그것은 그가 가진 재산이고 노력의 결과가 아니였나 싶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면 나를 채찍질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그 누군가의 명언이여도 좋고, 지인의 말 한마디여도 좋다. 중요한 건 언제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것. 세계 유명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 한 마디를 보면서 나는 다시한번 내가 달리는 길을 돌아본다. 남들보다 더 나은 달리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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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이야기 - 별난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세바퀴팀 지음 / 우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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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퀴>가 벌써 2년 반째 방영중이라고 한다. 아이 낳고 집에 앉아 TV볼때, 재방송 채널만 틀면 세바퀴가 나왔다. 재방송도 단연 1위가 아니였을까 싶다. 봐도봐도 웃끼다. 웃다가 눈물도 찔끔 흘리고, 옆에 있는 애꿎은 남편만 두들겨팼다.( 하도 웃겨서 어쩔 수 없이 구타가 유발되었다.) 그렇게 가장 힘들다던 아이들 돌 전의 육아생활을 세바퀴로 조금씩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꽤 된다. 각자의 개성이 있는 출연진들 중 가장 드센 사람들, 바로 아줌마들이였다. 이경실, 김지선, 박미선, 선우용여의 입담에 깔깔 찢어지게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가끔 자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 울곤 했다.

 

어느날, 김지선이 다산의 여왕이라며 칭송(?)받았는데 한 프로그램에서 김지선 가족을 촬영했었다. 지금도 그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있지만, 당시 세바퀴에서 보던 김지선은 어디로 가고 육아에 힘들어하는 김지선이 보였다. ' 어? 김지선도 나랑 다를 바 없구나.' 싶었다. 아이 셋이라니... 아이 셋을 낳았다는 게 옛 어른들 눈엔 별것 아닌 거 같아도 시대가 많이 변한 만큼 아이 셋 낳은 건 좀 남다르지 않나 싶다. 다산으로 주목받는 김지선이 아이 셋 낳은 걸 개그 소재로 삼나 싶어 이상하기도 했고, 그녀 덕분에 아이 더 낳자는 소리도 있었다. 김지선 가족의 이야기를 보니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가정이고 그녀도 힘들고 남편과의 트러블도 있고 아이 교육에 열올리는 평범한 엄마였다. 게다가 늘 웃겨야 하는 직업까지 갖고 있느니 힘들다는 내색 못하는 이중적 생활이 안타까웠다.

 

 





세바퀴 사람들,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은 < 별난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그 집 이야기>는 TV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알게 되는 계기로 읽는 내내 좋았다. 꽤나 의외다. 김현철이 말 더듬으며 「PD공책」을 할때 그의 말 더듬는 모습이 싫었던 안티팬인 내가 열혈팬이 되어버렸다. 어딘듯 모자라는 것 같고 말 더듬어 더욱 그렇게 보이는데다 짜리몽땅하고 있는둥 마는둥 한 개그맨. 그런데 김현철이 말을 더듬게 된 연유를 듣고 나니 그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시절 언변이 좋아 친구들이 졸졸 따라다녔고 그가 말해주는 영화 스토리는 영화보다도 재미있어, 영화볼 돈을 친구들이 조금씩 모아주어 김현철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줬다고 한다. 그리고 김현철은 그 친구들에게 영화를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설명했다. 그렇게 말 잘하던 김현철은 왜 말 더듬이가 되었을까? 유독 말 더듬이가 많았던 웅변학원과 주인집 아들이 말더듬이였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영영~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김현철이 대학에 입학한 이야기는 기가막히면서 절묘했다. 그는 연예계에 발 들여놓을 운명이였다. 대학 입학때 받은 대본이 말 더듬는 주인공 대사였으니 만장일치로 합격을 받는 건 당여지사였겠지. 하이틴스타 임예진이 코스프레로 등장하는 세바퀴는 이제 밉지 않다. 처음엔 울렁거렸다. 낯선 모습에 임예진이 이젠 하다하다 할게 없어서 저러는구나 했는데......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그녀가 이뻐보인다. 설정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어찌되었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드센 아줌마들이 무서워 출연을 해도 걱정이다라는 말을 하는 게스트들. 이경실의 '찌릿'한 눈빛 한방에 '깨갱'하는 설정들이 나는 왠지 모르게 속시원하다. 늘 인자한 프로그램은 이제 식상하니까. 그래서 독설가 김구라가 100% 안티만 갖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서 삿대질 해줄 광대가 필요한 요즘, 광대를 자처한 이들이 그저 미울 순 없다. 연예인이라 오해도 있고, 유리집에 사는 것 처럼 자신을 내 보여야 하는 사정에 힘겹겠지만 그걸 직업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나아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을 위해 그들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웃겨줄 준비가 되어 있다. 악성 댓글에 모두다 상처받고 목을 메달면 누가 연예인 하겠나? 나 스스로가 아니라면 언젠가 그 진실은 시청자들이, 팬들이 알아 줄 것이다. 14명의 세바퀴 식구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보고 나니 별나 보이던 그들이 참으로 평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세바퀴 시청때 나의 의무(?)를 다 할 것이다. 그들 앞에 열심히 웃어주면 된다. 그들이 바라는 건 그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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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양태석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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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권의 책이 의욕없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단 한 마디가 인생의 전환을 맞게 한다.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 한권의 책으로 많은 변화를 일궈냈다. 그래서 글이 주는 힘을 그 누구보다도 믿는다. 양태석님이 펴낸 책 < 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줄>은 전에 나왔던 <365일 읽는 긍정의 한줄>과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이란 책과 비슷한 타이틀로 출간되었다. 전에 출간된 두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터라 이 책 역시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를 감동시켜 주지 않을까 싶었다. 

 

 

첫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은 핸디북 사이즈라는 점이다. 약간 두터우면서 손에 잡히는 이 사이즈를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방에 넣고 다녀도 좋고, 잠시 펼쳐놓고 보기에도 좋다. 한번에 읽어치우는 소설이 아니라서 어디에서건 펼치면 짧은 이야기 한편을 볼 수 있다.그리고 그 이야기속에 담긴 한줄은 나에게 긍정의 힘을 실어주고 때론 희망을 때론 행복을 그리고 때론 감동을 준다.

 


번뇌의 감옥 ( 소유는 점점 자유를 앗아간다.)

 

한 수행자가 숲에서 고요히 참선하며 살았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와 경전 한 권을 주고 갔는데 그 경전을 읽고 책상에 두니  그의 오두막에 살던 많은 쥐들이 책을 갉았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고양이를 먹이기 위해 필요한 우유를 얻어야 했으므로 젖소를 한마리 키웠다. 그러자 젖소와 고양이를 돌봐 줄 누군가 필요했고 그는 아내를 얻었다. 그리고 큰 집이 생겨나고, 잡동사니도 많이 늘었다. 그는 이제 가족과 재산을 지켜야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조바심을 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그 결과, 한권의 얄팍한 책이 이토록 커다란 번뇌의 감옥을 만들어낸 시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탐욕으로 채워진 소유욕. 우리는 탐욕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허락된 한 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음이라고...... 소유와 자유의 적절한 저울질이 필요한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면 한쪽은 그만큼 멀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명언을 기억하지만, 무엇보다도 에피소드가 있는 명언을 더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런 명언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느 때이건 생각난다. 특히 위기를 맞이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상심에 사로잡혀 좌절하기 쉽상이다. 그럴때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이 '이야기'이다. 나를 포함하건 나를 포함하지 않았건 간에 어떤 이야기에든 긍정의 메세지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에서 혹은 소설이나 어느 한 사람의 전기를 적은 수필에서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고독한 영혼의 가슴에 불을 밝히는 일이다. (P. 122)

 

테레사 수녀가 한 이야기들은 접할때마다 나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그녀는 내가 이제껏 본 사람 중에서 그리고 여인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또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어느 왕가의 출신도 아니고, 세계적 미인도 아닌 수녀였다. 그러나 그녀가 행한 수많은 일들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것 같다. 한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 청소를 해주다가 발견한 등. 그 등은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고 헸다. 그래서 테레사는 찾아오는 이 없어 켜질 못했던 등을 자신을 위해 켜 달라고 한다. 그리고 매일 독거노인을 찾아가게 되었고, 독거노인 집에는 등이 꺼질 날이 없었다. 그 독거노인에게는 테레사 수녀가 인생의 등불을 밝혀준 사람이였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선행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고, 엔도르핀이 3배이상 분비되어 활력이 넘치며, 혈압과 콜레스테롤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1998년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실험을통해 밝혀낸 이 결과를 ' 테레사 효과'라고 한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때 수시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따뜻한 물 한잔을 한 것처럼 혈행이 도는 것을 느끼는 것인가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행복을 선택할지 불행을 선택할지 그건 자유다. 내 한 마디 말과 행동에 행과 불행이 갈린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행복을 선택하라.

(P.69~70)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기 보단 긍정의 힘으로 매일이 새롭고 기쁘다면 좋겠다. 불쑥불쑥 생각나는 어두운 생각들은 한 줄의 이야기로 털어버릴 수 있어 다행이다. 이 책과 같은 긍정의 메세지를 담은 책을 두고 수시로 열어보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내가 선택한 긍정의 한줄로 차근차근 행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오르면 된다.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고 싶기에 나는 오늘도 그 답을 책 속에서 도움받으려 한다. 요즘 같이 시린 날, <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줄>은 무척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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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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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것은 음식이 아니라 '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정된 인생의 종착점. 죽음이다. 죽음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떠한 동요도 없고, 후회도 번뇌도 없을 텐데.... 그러나, 여기 호스피스에서 만난 이들을 보면 그것도 아닌듯 하다.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한데, 죽음은 경험이 없는 유일한 삶의 행보다. 느닷없기만 한 죽음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거북하고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렵다. 죽음의 시점에 다가갔을 때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어떤 것을 정리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유언을 써야 할까? 그리고 어떤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을까......





 

" 마지막 식사, 어떤 음식을 먹겠습니까?"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만난 호스피스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함께 혹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준비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가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로이히트포이어 (등대의 불빛) 호스피스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하루를 길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면 죽음은 먼나라 이야기인듯 느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환자들은 다르다.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갔다는 것은 의사도 더이상의 치료를 포기한 것이며 자신의 몸은 어떻게든 복구될 수 없는 상태임을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삶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여남은 몇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내일이면 죽을꺼야.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제 곧 죽을꺼야. 죽을텐데 말은 해서 뭐하고 음식을 먹으면 뭐해.' 라는 생각들로 보낼 것 같던 그들은 오히려 죽음을 담담하게 기다리며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소망을 이루어도 본다. 그들에게 그 짧은 시간은 추억을 머금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자고, 먹고, 배설하는 것 세가지가 얼마나 큰 행복을 줄 수 있을지도 알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그야말로 남은 생애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의 호사다.

 

 

생애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인가. 생명의 촛불이 흔들리는 그 순간 그들은 그 어떤 대단한 요리보다도 평소 즐겨먹었던 요리를 원했다. 매우 소박하고 개인적인 음식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니 그저 생각나는 사람, 엄마다. 대장암 말기 전위성 간암 말기. 초기 진단이 이 모양이였으니 엄마의 남은 생애를 계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짧게 3개월 길게 6개월이다. 이건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말이다. 의사가 선고라고 말 하지 않아도 우리 가족들은 알았다. 틀에 박힌 이 예후기간을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사셨다. 복수가 차 오르기 전까진 그런대로 잘 지냈다. 하지만 간이 점점 커져 장기를 내리누를때 눌린 신경 덕분에 어깨가 무너진다고 고통을 호소할 때에 나에게 부탁한 요리가 있다. 바로 무 시래기 조림이였다.

 

 

막연하게 무 시래기 조림이라면 누구는 고등어를 넣고 조리고, 누구는 그냥 무 시래기만 넣어 조린다. 상세한 요리법을 설명하지 않으면 모를 지극히 개인적인 요리법. 이 책 속 어느 부부가 즐겨먹던 응유디저트 처럼 만들기 쉬운 요리는 그들이 먹던 방식의 차이로 똑같이 만들어내기 어렵다. 요리사는 수차례 반복하고 조금씩 맞을 맞춰나간다. 나 역시 엄마에게 무 시래기 조림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파서 말 할 힘도 없는 엄마를 성가시게 굴었다. 그리고 아빠와 나는 각자의 방법대로 만들었고 각자 3~5번의 실패끝에 성공해냈다. 엄마는 무 시래기 조림에 오징어내장을 넣어주길 원했다. 참 간단한 요리법인데 그토록 맛이 다르다니...... 루프레히트 요리사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했지만 이런 전통음식을 만들면서 실패를 맛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요리법에 대한 자부심보다 환자의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더 소중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기뻐했다.

 


 

먹고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환자들은 먹는 즐거움을 빼놓지 않고 만끽한다. 호스피스에 들어오기 전 삶을 포기해 버린 환자가 음식의 즐거움을 느끼고 다시 생기를 찾는다는 것 또한 요리사로써 더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호스피스에 들어온 환자 대부분이 저세상으로 떠나지만 떠나기 전 머무는 정거장, 호스피스에서 남은 생애를 따뜻하게, 잔잔하게 보낼 수 있다면 참 다행일 것 같다. 물론 주변의 환경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고 먹는 즐거움이 없으란 법은 없다. 인간의 본능, 먹는 욕구가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집착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살아 있음에 더없이 감사하고 가족과의 지난날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니 참으로 인간답지 않은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동안 부모님 물건을 손대지 않았소.

1년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치웠소.

물건들과도 작별할 시간이 필요하다오.

(P.215 중에서)
 


 

 

 

삶에 등 돌리는 적절한 순간이 언제인지, 늘 궁금하다. 하지만 때론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래도록 살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엔 고통없이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하다. 가끔 나의 종말을 생각해본다.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때론 갑작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죽을까봐서도 겁난다.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죽으면 내 가족들은 그 아픔을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세상 최고로 고통스러웠다. 아픈 사람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못할 짓이였으나......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엄마가 자신의 죽음을 알았다면( 비밀로 했었다...... 끈질기게도 나는 간경화라고 속였다.)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 삶을 정리할 시간을 앗은 죄인이였다. 김치에 삼겹살을 넣어 볶은 것이 먹고 싶다며 웅얼거리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먹지 못했을지라도 입에 넣고 우물거리게라도 해 줄껄 하는 후회감이 밀려든다.

 

 

만약 내 생애를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는 그 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행복해 했던 그 음식을 기억해 내고 싶다. 아직 메뉴를 정하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행복이 담겼던 그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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