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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길 위의 시대>는 시를 사랑한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시에 무척 빠져든 적이 있었다. 내 인생이 바람앞에 있는 촛불처럼 흔들거리던 시기, 나의 청소년기에는 늘 시가 함께 했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학생들이 시에 빠져들었던 1990년대이기도 했고 말이다. 요즘은 시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순수의 시대에서 빠져나온 것일까? 성교육이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옮겨내려가는 걸 보면, 확실히 시대의 중심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에 사람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일까? 아마도, 순수의 시간은 있었지만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중국소설은 처음 만나본다. 장윈 작가는 여성스러운 시적감각으로 글을 엮었을 것 같다. 상당히 서정적이며, 아름답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국의 LA, 혹은 뉴욕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이 중국의 역사이고, 중국안의 지형이 아닐까 싶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고, 모르는 지명이름에 중국의 역사조차 잘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읽을때 막히는 부분이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어려운 단어도 많다. 어렵다는 말보다도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수없이 나열한 페이지를 보고 경악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좀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 컴퓨터 앞에서 단어장 열어놓고 읽었다. 그런 열정이 더해져 이 책에 대한 '난해함'을 좀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본다.
책의 등장인물 중 '망허'라는 시인은 두번 등장한다. 천샹과 예러우가 사랑한 '망허'는 동일 인물인지, 동명이인인지 책의 구성상,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 망허는 예러우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운명같은 사랑을 이어나간다. 한편으로 시인 '망허'는 천샹을 임신하게 만들고 떠나버린다. 임신한 천샹이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겠다는 라오저우. 천샹은 라오저우와 결혼하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준 라오저우에게 감사해 한다. 그리고 아들 샤오촨을 친아들처럼 아껴준다. 그러나 천샹이 사랑한 남자는 시인 망허가 아니다. 천샹은 시인이 늘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떠돌며 한곳에 머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걸 원망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게 믿고 살았는데, 막상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진짜 망허가 아니였다는 걸 안 천샹의 마음은 자신의 아들 샤오촨까지 증오하게 만든다.
시인은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 낮선 자극을 원하죠. 영원히 신선함을 추구하지 않늗다면 시인의 영감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P. 129 - 예러우가 망허에게 하는 말 중에서....)
시인 망허를 사랑한 예러우. 시를 사랑한다고 나타났던 또다른 망허를 사랑한 천샹. 반전을 드러내며 책의 흐름이 비틀어질때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사랑한 사람들의 비참함이라고 할까? 시를 사랑한게 무슨 죄인듯.... 시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에겐 완벽한 결실이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의 바탕을 드러낸다. 시를 듣고 있으면, 세상에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데, 시를 사랑한 남녀의 결말은 어떠한가. 현실이란 벽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샤오촨, 나의 아들아. 네 몸속엔 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단다. 시인이란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야. 넌 세속의 잣대로 그를 평가해서도, 세속의 가치관으로 그를 판단하거나 속박해서도 안 돼. 난 네가 이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고, 또 네가 시인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길 더욱 바란단다. (P.78)
천샹이 아들 샤오촨에게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시인이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쓴다. 그리고 사오촨에게 말한다. 시인이란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천샹이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시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인에게서 얻은 아들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며, 보물임을 알고 있다. 천샹이 젖이 나오지 않아, 6개월동안 젖 잘 돌게 하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경악하면서도 감동했다. 엄마의 마음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대목이였기 때문이다.
진짜 망허와 사랑을 하던, 가짜 망허와 사랑을 하던 시처럼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장윈의 시선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일치한다. 망허는 결국 시를 버리게 된다. 시는 아름답지 못하고, 잔인한 것이 되어버렸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평범을 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 책속의 이야기는 매우 순수하다. 빌딩숲에 서서 답답한 공기를 마시는 현대의 흐름과 전혀 다른 깨끗한 공기.
책의 결말이 안타까웠다. 소설에서나마 행복을 찾고 싶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장윈의 시점이 내 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상당히 매력있다. 시적인 감성이 여기저기 넘치듯 드러나는 < 길 위의 시대>는 시를 사랑하고, 나만의 시를 쓰기 위한 누런 습자지를 생각나게 하며, 서점에 서서 시집코너에 살다시피 한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집을 찾아본다. 시를 사랑한 것인지, 겉멋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시는 지독스럽게도 내 청춘의 한 점을 채우는 아름다움이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