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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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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 속절없이 시를 썼다. 아들딸을 잃고 시를 썼고, 때로는 불행한 부모들을 대신해서도 시를 썼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p.93)

 

자신의 유익을 탈탈 털어 세상의 무익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여전히 바보믜 무리에 속하는 천덕꾸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익이 합쳐져 세상의 빛이 되고 따사로운 온정이 된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황현산의 시 이야기 <우물에서 하늘보기>에서도 작가는 줄곧 시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오늘 내린 한파 주의보보다도 더 익숙하고 오래된 차가움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저는 '시 안 읽는 사회'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일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시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시인의 속내를 낱낱이 알지 못하더라도, 시가 전하는 그 울림만으로 설레이던 시대가 있었다. 맘에 쏙 드는 시구를 연애편지에 인용하며, 제가 쓴 것인 양 얼굴을 붉히던 그리움이 있었다. 술동무를 옆에 두고, 노래 삼아 시를 읊조리던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시를 잃고, 사랑을 잃고, 그 속에 숨겨진 설레임, 그리움, 그리고 젊음의 낭만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시를 모르고 어찌 문학을 논하랴.

시를 모른 채 어찌 사랑을 노래할 것이며, 순수의 아름다움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시를 제쳐 두고 주옥같은 언어의 향연을 어찌 즐길 수 있으랴.

시는 문학의 태동이자, 끊이지 않는 북소리이다.

시는 언어가 아닌 몸짓이며, 아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다.

시는 논리를 따라 흐르는 나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흐르는 작은 흔들림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회! 그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서 위로받을 것이며,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그 통로를 무엇에 의지하여 찾을 것인지... 시를 쓰지 못하는 문학가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하며, 그 글을 읽는 우리는 영혼을 잃은 로봇에 불과하다. 사랑은,설레임은, 그리움은,낭만은 언어가 아닌 시에 숨겨진 떨림이기 때문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햇던 27개 꼭지의 '시화(詩話)는 이육사의 시 '광야'를 비롯하여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등을 통하여 '시가 꼬투리를 만들어준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안들과 만나' 독자의 가슴에 시적인 어떤 것을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시 이야기는 단순히 시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시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숨결처럼 시를 토해내다 시러진 박정만 시인, 가난과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 진이정 시인, 자본주의적 욕망의 피안을 보여주었던 최승자 시인 등 시인의 삶을 함께 더듬고 있습니다.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p.262)

 

대한민국의 2016년 1월은 한파 주의보, 채무 주의보로 꽁꽁 얼어 붙었지만 사람들 가슴에는 온통 행복 주의보가 내려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게 됩니다. 시의 어느 한 구절이 단초가 되어 사그라들었던 희망의 불꽃을 다시 살려내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어쩌면 2016년 1월은 시의 부활, 희망의 부활을 알리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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