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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평점 :
비단 우리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불가항력적인 어떤 것들 말이다.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탄생부터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고 항변하겠지만 신의 뜻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은 예외로 치자. 다만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 가령 사랑이나 연애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흐르는 대상과 자주 부딪히다 보면 세상에는 정말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하는 자조섞인 한탄을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움에 대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에 대해 조금은 더 무뎌질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무감각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야 얻을 수 있는 '뻔뻔스러움'이라는 무기를 하나 더 획득하게 되는 셈이다.
나는 요즘 '뻔뻔스러움'이라는 무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있는 다른 수단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이르면 적당한 때에 최후의 방편이려니 하며 이 무기를 빼어들곤 한다. 젊었을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가끔씩 되풀이하다 보면 그런 대로 스릴도 있고 꽤 유용한 면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이런 낯 간지러운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독자의 취향이나 편견을 예측하지 못하면서도(사실 예측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둥, 감동적인 내용이었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는 경우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서평이 그렇다거나,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서평도 그러려니 하는 지레짐작은 하지 말기를.
독자가 쓰는 서평을 평론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는 과거에 김현 작가의 평론을 즐겨 읽었지만 작가가 죽은 후 평론은 읽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블로그에 가끔씩 서평을 올리는지라 다른 사람의 서평은 자주 읽는다. 대개의 서평은 일반 독자에 의해 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그렇게 씌어진 아마추어의 글에 딱히 장르를 부여할 수는 없겠지만 서평은 분명 평론과는 구별되는 면이 있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그렇고, 취향이 서로 다르니 호불호가 제각각인 점도 그렇다. 그러므로 어떤 서평에 대해 객관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젊은 날의 책 읽기>는 서평집이다. 서평집에 대해 서평을 쓸 때마다 매번 당황하게 된다. 마치 내 글에 대한 셀프 서평을 쓰는 것 같아서 말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경민 작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출판사를 보았다. <쌤 앤 파커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출판사일 것이다. 사실 나는 책과 출판사를 모두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 기억력이라는 게 영 형편없어서 책의 제목과 지은이를 매치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기억력으로 출판사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출판사를 기억하는 까닭은 최근의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이 출판사의 이름을 자주 보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고, 출간되는 책을 신중히 고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대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쌤 앤 파커스'에서 출간한 책이기에 무작정 읽었다. 책의 내용은 의외로 좋았다. 단순히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줍잖게 프로 흉내를 내는 작가의 글은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편인지라 오히려 이런 책에 정이 간다.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은 총 36권이다. 그 중 내가 읽었던 책은 8할을 조금 밑돌 것이다. 그래도 절반은 넘었으니 작가와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제인 에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 워낙 유명한 책들도 눈에 띄었지만 내 눈을 반짝이게 했던 책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내가 힘들어 할 때 아내가 권했던 책이고,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는 도서관 서가를 기웃대다가 책의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두 권 모두 책의 내용에 비해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책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저자의 평을 잠깐 들여다 보자.
"실제로 수용소의 포로처럼 모든 자유를 빼앗긴 인간에게 무엇이 남을 수 있었을까. 때로는 하루하루 생존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으로, 때로는 다른 이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정신과 의사로 수용소의 삶을 견딘 저자는 단 하나의 자유는 분명 남아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질 것인지를 선택하는 자유였다. 오직 이 자유에서만 적절할 정도로 희미하고 가느다란 희망인 삶의 의미가 나왔던 것이다. 조각난 삶을 이어 붙이는 유일한 접착제인 그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평 中에서 p.72-p.73)
"카톨릭 신자인 나로서는 에버렛의 무신론자 전향에 100퍼센트 공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뜨거운 존경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그는 그 전까지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편견, 신념, 가치관, 사고 체계, 보편 이론 등등을 완전히 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고 정직하게 바라봤으니까.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다름을 이렇게 바라보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기에."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서평 中에서 p.279)
누군가의 말을 100퍼센트 이해하고, 100퍼센트 공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평을 쓰는 까닭은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공감을 구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로만 보여진다. 서평을 쓰는 사람의 자세는 본인이 먼저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이해하겠다는 선언이며 자신의 의지를 담은 자발적인 각서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블로그에 서평을 쓰면서도 내 생각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그에 앞서 내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받아들임'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경민의 글은 아주 화려하거나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지도 않다. 그렇다고 못 썼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는 말이다. 아직 풋풋함이 남아있다고나 할까. 저자도 언젠가는 프로 작가의 글처럼 화려한 수사로 책의 전全면을 메울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그저 맑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쌤 앤 파커스' 출판사의 선택도 탁월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