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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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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미리 밝혀둬야 할 게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이 책의 저자이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썼던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  나는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반긴다.  그 정도로 좋아한다면 어떻게 서평을 쓸 수 있느냐고?  아니다.  쓸 수 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믿어도 좋다.  그러나 단 한가지, 내 서평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이고 노골적인 찬사와 미화가 없다면 진정한 팬이 될 수 없을 테니까.  아무튼 나는 밀란 쿤데라의 팬으로서 이 글을 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가수 싸이를 좋아하는 열혈팬이 있다고 치자.  그(또는 그녀)는 그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싸이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것임에 틀림없다.  설령 상대방이 노래에 관심도 없고, 더구나 싸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또는 그녀)는 그런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싸이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 음악 장르, 요즘 나온 신곡 등과 함께 강남 스타일의 작곡가와 안무, 반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려 들 것이다.  듣는 상대방은 어찌 되느냐구?  글쎄, 때에 따라서는 많은 지식을 얻게 될 수도, 또는 지루한 대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등을 돌릴 수도 있겠다.

 

<소설의 기술>은 독자에 따라 그 평이 천차만별일 것이라 짐작한다.  소설을 쓰는 실무자로서(게다가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아닌가!) 그가 밝히는 소설에 대한 여러 담론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의 기법들이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유럽의 문화적 배경(또는 문학의 역사) 속에서 현대의 소설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그의 어시스턴트인 살몽과의 대담 형식으로 또는 에세이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이 생각이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자면 많은 사전지식이 필요하다.(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밀란 쿤데라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고, 그의 지식은 끝이 없어 보이는 반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지식이 형편없음을 그를 통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소설에 대한 설명서나 이론서가 아니기에 일반 독자의 얄팍한 지식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제 소설에서 자아를 포착한다는 것은 실존의 본질적 문제를 포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실존적 약호(code existentiel)를 포착한다는 거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쓰면서 이런저런 인물의 약호가 몇 가지 열쇠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테레자에게 그것은 육체, 영혼, 현기증, 허약함, 목가, 낙원 같은 것들이죠."    (p.48)  

 

이 책의 3부에 등장하는 "<몽유병자들>에 관한 단상들"은 소설가로서의 쿤데라가 얼마나 치밀하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하여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손꼽히는 3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철학 소설이 아닌가.  그럼에도 작가는 일반 독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해력과 분석을 통하여 현대 소설의 개괄을 곁들여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소설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을 법한 이러한 분석들을 읽으면서 그의 능력에 또 다시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대충 넘기려했던 장면들을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쿤데라는 “소설은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것이며 소설가란 역사가도 예언자도 아닌, 단지 “실존의 탐구자”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설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는 실제를 통하여 소설 속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쿤데라가 보여준 놀라운 면은 4부 "예술의 구성에 대한 대담"에 있다.  소설의 구성이 그저 작가의 우연적이고도, 선험적인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쯤으로 알았던 독자라면 그가 밝히는 구성의 체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더 소설과 음악을 비교해도 괜찮겠죠.  한 부는 박자예요.  각 장은 하나의 소절이고요.  이 소절들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또는 길이가 아주 불규칙하지요.  이것은 우리를 템포 문제로 이끌어 갑니다.  제 소설들이 각 부분에는 모데라토, 프레스토, 아다지오 등과 같은 음악적 지시가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p.128) 

 

이 책의 6부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에서는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들에 대해 사전식으로 배열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자신의 소설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오류(이를테면 작가가 생각하는 의미와 번역가가 생각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오류)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마지막 7부에서는 "예루살렘 연설:소설과 유럽"이 실려있다.  연설문에서도 소설가로서의 그의 자부심과 소명의식은 잘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유럽 문화가 위협받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가장 소중한 것, 즉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독창적 사고와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안팎으로 위협받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유럽 정신의 소중한 진수는 마치 금고에 보관된 것처럼 소설 역사 속에, 소설 지혜 속에 보관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224)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작품으로만 만나는 일반 독자에게 있어 한 작가의 생각과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그럼으로써 우리는 소설가로서의 쿤데라와 한 인간으로서의 쿤데라를 이해하고 그의 작품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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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03-24 22:10   좋아요 0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꼼쥐 2013-03-28 13:46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