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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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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경험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다 하더라도 결국 소설 속에서 내가 좋아하게 되는(또는 맘에 드는) 인물은 하나로 국한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것이 꼭 소설 속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스토리의 정 중앙에 그 인물을 배치하고 나머지의 인물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쯤으로 치부하게 마련이다.  내가 임의로 결정한 주변인들은 그들의 말, 행동, 생각, 사상 등 우리가 독자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무의미해지고 만다.  미련하게도 말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가 살면서 중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를테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말이나 행동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한 신뢰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백화점의 점원이 권하는 옷보다는 우연히 동행한 친구의 안목을 더 신뢰하는 경우, 자신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물론 보통사람의 범주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실수, 예컨대 내가 기대했던 결과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로 혼란스러워하거나 약간의 후회를 곁들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면서 마땅히 치뤄야 할 대가라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들이 내게 준 사랑에 비하면 번거롭고 헝클어진 결과에 대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경비는 얼마나 사소하고 하찮은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그들 중 누군가와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달, 혹은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독서는 온전히 나만의 기억이며, 나만의 경험이라는 나의 아집이 산산히 부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때로는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하면서도 끝내 다시 보지 않았던 책과 지금은 내용마저 아득한 마음 속의 명저들이 왜 내 삶과 끝내 동행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삶의 번잡함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던 책은 몇 권이나 될까? 하는 낙담은 결국 '독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원을 찾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저자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어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항암치료를 기다리는 시간에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회원이 단 둘뿐인 북클럽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저명한 교육자였으며 하버드 대학교의 입학처장과 돌턴 스쿨의 대학 진학 전문 지도교사를 역임했으며 난민 구조 활동과 아프가니스탄의 도서관 건립 사업에 헌신했던 저자의 어머니는 그에게 더할 수 없이 훌륭한 독서 파트너였던 셈이다.

 

책에는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2년여의 시간 동안 그들이 함께 읽고 토론했던 28권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책들과 저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 그리고 최근에 같이 읽었던 모든 책들에 대해 모자는 서로의 생각을 듣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한 이 '마지막 북클럽'을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과 조카들이 저자의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 있다면 과거를 기념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동시에 미래도 애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어머니가 사랑했던 책을 기억하게 될 테고, 아이들이 충분히 나이 먹으면 그들에게 그 책을 주고, 그것이 바로 할머니가 사랑했던 책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무나도 어린 손주들은 결코 할머니의 눈을 통해 영국제도를 바라보지 못할 테지만, 할머니가 사랑해 마지않던 작가들의 눈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P.184)

 

저자의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가고 이를 지켜보는 저자도 슬픔과 불안 속에서 살지만 읽을 책을 고르고, 읽었던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또 다시 문득 떠오른 책을 권하면서 말기암 환자라는 생각도, 그 곁을 지키는 안타까운 보호자라는 생각도 모두 잊는다.  언젠가 어머니가 죽고 많은 시간이 흐를지라도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낡은 책장을 넘기면 그 시절의 어머니 음성이 자장가처럼 들려오지 않겠는가.  그때 읽었던 책은 죽음을 예고하는 죽은 활자의 집합체가 아니요, 대를 이어 영원히 이어지며 추억과 함께 살아 있을 벗이요, 가족인 것이다.  관계 속에서의 책, 추억 속에서의 책은 단순한 사물로서의 의미 이상인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나는 이따금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를, 보통은 당신이 분명히 좋아했을 듯한 책에 대해서 막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음에도, 어쨌든 그 내용을 이야기한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의 도서관 건립에 300만 달러를 책임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려드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이 출간될 때쯤이면, 카불의 도서관도 건립돼 있을 터다.  그 사실을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P.434-435) 

나는 저자의 '마지막 북클럽'이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소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의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저자는 여전히 어머니의 음성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물을 것이다.  "당신이 읽었던 책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안녕한가요?  그리고 내가 읽었던 책은 당신의 삶 속에서 잘 있나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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