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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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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오고 또 가는 계절의 순환을 생각할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정해진 길을 쉼없이 반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이곤 한다.  그리고 우리네 인간도 저들처럼 누군가 몰래 정해놓은 길을 어김없이 걷고 있는 것일까?  오직 그 길을 걷는 우리만 모른 채, 하는 생각도 함께.  그렇다면 테잎을 갈아 끼우듯 죽음도 그처럼 쉽게 대면할 자신이 있을 듯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요즘 나는 비록 잠깐이지만 매주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의 즐거움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매주 만나서 아이들 각자에게 한 권의 책을 빌려주고 주제를 달리 하며 토론도 하고, 강의도 해보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다.  돈을 받지 않고 진행하는 봉사 차원의 수업이라서인지 아이들은 특별한 사유도 없이 빠지는 것이 다반사였고, 그렇게 한두 번 빠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결국 수업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혈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기보다는 내 성의를 몰라주는 아이들이 야속했고, '이쯤에서 그만 둘까?'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럼에도 결국 그만두지 못한 것은 매주 빠지지 않고 나오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정성과 열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논술을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전문 강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작가도 아니었으니 내 강의를 듣는 아이들의 시큰둥한 반응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두어 달을 억지춘향으로 나갔나보다.  수업하는 나도 힘들고 듣는 아이들도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대학시절의 낙서장을 읽던 중 섬광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짧은 소설이라도 쓰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만 쥐어뜯었던 기억.  나는 그때 장난처럼 썼던 소설의 첫머리만 프린트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다음에 이어질 적당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각자가 생각나는 대로 써보라고 하면 숙제가 될 터이니 나는 아이들로부터 대략의 스토리 라인만 듣고 그 이야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 그럴 듯하게 쓰는 일은 내가 하기로 했다.

 

방법은 이랬다.  아이들 각자가 상상한 이야기를 칠판에 적고 그 중 가장 개연성 있고, 흥미있어 보이는 스토리를 투표로 선정한다.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일주일 내내 내가 글을 쓰고, 프린트를 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아이들은 그 글을 읽고 이어질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고, 또 발표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저 입으로만 했던 이야기들이 활자로 찍혀지고, 한 주 한 주 점차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에 열광했다.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듯햇다.  그리고 창조의 기쁨과 성취욕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한 편의 소설은 그들이 읽었던 어느 소설을 모방한 것도 있고, 이치에 맞지 않는 비약을 보일 때도 있지만 나는 상황 자체를 차근차근 설명만 해줄 뿐 그들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차피 젊음이란 사리나 이치가 아닌 동물적 감성으로 세상을 헤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시기가 아니던가.  나는 매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이야기의 진척은 마냥 더딜 수밖에 없고, 그 결말이 궁금한 아이들은 조바심을 내지만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달쯤 전에 시작한 글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의 전부를 보여줄 수도 없고, 매주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설명할 수도 없지만 지난 주까지 썼던 이야기를 조금만 옮겨본다.(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실명을 썼다.)

 

‘크리스마스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 그렇게 며칠만 더 지나면 2009년도 조용히 잠들겠구나.’ 이런 생각이 때로는 사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

그렇게 한 일 년쯤 보내면 멀쩡히 존재하던 기억들도 모두 어둠 저편으로 사라질 듯했다. 시간은 잊혀지고 중력은 반대로 작용했다. 미라는 지면으로부터 5cm쯤 떠서 유영하며 도시라는 거대한 세트의 엑스트라들을 구경하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마음에도 한기가 불어닥치고 옷깃을 여며 봐도 차가움은 그대로 스며들었다. 스물넷의 그녀는 곧 사라지고 스물다섯의 낯선 그녀가 불쑥 찾아오겠지.

며칠째 눈도 내리지 않고 찬바람만 불었다.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 사무실 창문 밖으로 하얀 부스러기가 푸슬푸슬 떨어지더니 이내 지나는 행인들의 머리에 스티로폼 알갱이처럼 달라붙었다.

“잘 지내?”

미라는 흩어지는 눈발을 먼 발치에서 힘없이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응. 너는?”

“나도 그럭저럭.”

“나한테 화 많이 났었지?”

“화가 날 일이 뭐 있겠어? 전화도 하지 않고 찾아간 내가 잘못이지.”

미라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그날 엄마, 아빠가 갑자기 찾아와서 집으로 끌려갔었어.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너한테 전화할 생각도 못했어. 미안해.”

수진의 사과에도 미라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일상의 겉도는 말들이 눈 내리는 도시의 거리를 웅웅거리며 떠도는 듯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더불어 내가 위에서 밝힌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줄곧 내 머리를 어지럽혔던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아이들로 하여금 현실과 점차 멀어지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입학부터(어쩌면 유치원 시절부터인지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학생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젊은이들이 현실을 차근차근 제대로 배워야 할 시기에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산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하등 이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에서 제시한 50여 권의 작품과 작품 탄생에 얽힌 뒷얘기가 사실일지라도 작가에게 찾아온 우연한 영감과 작가의 천재적인 창조성만으로 작품은 탄생되지 않는다.  비록 그 작품의 시발점에서는 우연적 기회와 순간의 아이디어가 한 몫을 담당했겠지만 작가의 수많은 현실 경험과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읽고 있는 명작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명작을 선물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공부라는 틀에 갖혀 현실을 잊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소설 쓰기'를 통하여 최소한의 현실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창조의 기쁨은 크지만 그 씨앗은 언제나 현실의 토양에서 자라기에.

 

"어쩌면 이 이야기들도 문학적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작가들의 창조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들은 도처에 영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한 순간에 사람의 두뇌를 압도하다가도 다음 순간에 까맣게 잊히곤 한다.  그러나 준비가 된 사람은 영감이 머리를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작가의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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