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더없이 맑고 깨끗한 공기가 기분마저 설레게 하는 날에는 어깨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그 감촉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첫 데이트를 앞둔 어느 소녀의 더욱 짧아진 미니스커트처럼 오늘 날씨는 그렇게 명랑했습니다. 장마도 쉬어가는 주말 휴일, 이따금 부는 바람에 더위마저 쉬어가려나 봅니다. 오늘은 소서(小暑), 본격적인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입니다.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풍장의 교실>을 읽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조안나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미소 지으며 세상에 복수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체를 흙으로 덮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風葬)이라고 한답니다. 그건 잔혹한 풍습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들판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땅을 밟고 서서 풀과 나무의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인생에 아득하게 펼쳐진 죽음의 침상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건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것에 이끌립니다." ('풍장의 교실' 중에서)

 

아픈 아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책을 잡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줄어든 탓에 한 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예전에는 몰랐던 '멍 때리기'의 효과와 나른한 오후에 즐기는 토막잠의 유익함을 기꺼운 마음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후의 여름 햇살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습니다. 가을을 닮은 어느 여름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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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7-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글은 뭔지 모를 자연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해야하나.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예
아내분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꼼쥐 2018-07-08 17:45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 님이 좋게 봐주셔서 그럴 듯합니다. 사실 제 글은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중구난방의 형편없는 글일 텐데 말이죠. ㅎ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