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당시 전세를 뒤집었던 대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로 인하여 세계대전의 정세는 추축국에서 연합국에게 유리해졌고, 나치 독일은 점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패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승승장구한 진격을 단번에 역전시킨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과 과다카날 전투(Battle of Guadalcanal)가 있었다면, 유럽전선에선 독일군과 소련군이 맞붙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Battle of Stalingrad)가 있다.

 

1. 배경  

1941622일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을 통해 소련 영토로 깊숙이 진격해가던 독일군은 194112월 모스크바 외각까지 진격한다. 100년 전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 전투에서 패배했듯이 히틀러의 독일군도 모스크바 전투에서 패배한다. 모스크바 전투 이후인 1942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히틀러의 독일군은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거침없는 진격을 이어갔다. 19426월 청색작전을 실행한 독일군은 A군과 B군으로 나누어 A군은 코카서스 지대로 향하게 했고, B군은 볼가강을 끼고 있는 스탈린그라드로 향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19428월 독일군은 스탈린의 도시 스탈린그라드에 도달했다.

 

2.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진입 

19428월 스탈린그라드 외각에 도달한 독일군은 도시 진입에 앞서 독일 공군인(Luftwaffe)를 투입하여 도시를 폭격한다. 탱크 사냥꾼이자 급강하 폭격기인 슈튜카와 융커스 폭격기로 이루어진 2천여대의 독일 항공기가 투입되어 스탈린그라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공군의 지원을 받은 독일군은 남쪽에 있던 제4기갑군과 합류하여 차츰차츰 소련군을 격파해 나갔다.

 

그러나 도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도시는 스탈린의 도시였고, 스탈린과 소련의 고위 간부들은 이 도시를 무조건 지키고자 했다. 그에 따라 스탈린그라드에 투입된 소련군 병사들은 폭격기의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잔해 속에서 독일군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한 독일의 기갑군단은 파괴된 잔해 속에서 진격이 늦춰졌고,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련군의 기습을 받았다. 이후 스탈린그라드의 지휘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예비대까지 투입했으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결국 히틀러는 코카서스로 가던 A군의 일부를 스탈린그라드에 투입하고, 소련군도 보다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서 이 전투는 양측 150만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194210월 독일군은 소련군과의 교전에서 점점지쳐갔지만, 도시를 점차 점령해갔고, 10월 말 독일군은 도시의 90%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3. 소련군의 반격

 

194211월 독일군이 볼가강 교두보로 내몰린 소련군 잔존 세력들을 소탕하고 있던 사이, 150만 이상의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고 있던, 독일군 사이로 집결한다.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과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장군은 루마니아군이 방어하고 있던 독일군의 측면을 공략하기로 결정하고, 남북에서 독일군을 포위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대규모의 소련군이 남쪽과 북쪽에서 루마니아군을 향해 덮쳐왔고, 194211월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수십만의 독일군을 포위한다. 포위된 독일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히틀러에게 전화하여 탈출할 것을 보고했지만, 히틀러로부터 온 답변은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라는 명령이었다.

 

194212월 소련군에게 포위당한 수십만의 독일군을 지원하기 위해, 만슈타인 장군이 이끄는 기갑부대가 출동했지만, 파울루스는 총통의 지시를 따랐다. 결국 만슈타인이 보낸 부대는 스탈린그라드로부터 철수했고, 파울루스의 군대는 탈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된다.  

19431월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군을 향해 소련군의 공세가 시작된다. 파울루스는 결국 히틀러에게 항복을 허가를 요구했다. 이를 거절한 히틀러는 130일 파울루스를 진급시켰으나, 194322일 극심한 추위와 식량 고갈 그리고 소련군의 포위로부터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결국 자신이 지휘하던 25만 명 이상의 군대와 함께, 소련군에게 항복한다. 이로써 6개월간 지속되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4. 의의

1943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소련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2차세계대전의 전세는 연합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있고 난 뒤, 소련군은 이에 힘입어 독일군을 향해 모든 전선에서 진격하게 된다. 따라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꾸고 역사를 새로 쓴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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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0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슈타인과 파파 호트의 구원군이 스탈린그라드
부근까지 접근했지만, 총통의 멍청한 사수 명령
으로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독일군 최정예 6군
의 괴멸을 가져온 것이 전쟁 국면의 대전환점
이었죠.

파울루스를 원수로 진급시킨 건, 명예롭게
자결하라는 의미였다고도 하더군요. 독일 국
방군 원수 중에 적에게 항복한 장군은 없었
다라는 이유로 말이죠.

NamGiKim 2019-02-20 22:08   좋아요 0 | URL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