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시선, 문화의 기억 서강학술총서 103
이재원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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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 제국주의 비판인가?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Imperialism)‘ 하면,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19세기 시대의 서구 열강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도 제국주의가 존재한다고 얘기한다면, 그 말부터 의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위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은 알지만, 그 제국주의 열강이 20세기와 21세기에 들어서 다른 국가들에게 했던 일에 대해선 상당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이라 불리기도 하는 영국을 한번 보자. 많은 사람들이 대영제국이라는 말은 알지만, 정작 그 대영제국이 20세기와 21세기에 했던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출처 불명의 명언 주인공으로 알려진 처칠이 인도와 케냐 그리고 말레이시아 등에서 식민지를 유지하려는 전쟁을 벌인 장본인이었고, 그리스 내전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영국이 21세기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리비아에서 부당한 침략전쟁을 벌인 사실에 대해 상당히 무감각한 모습을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함께 세계 분할에 앞장섰던 프랑스는 어떠할까? 프랑스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 일대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등에서 식민지 전쟁을 벌이다 패배했다. 또한 프랑스는 드골 정부 하에서 개발한 핵폭탄의 성능시험을 한때 자신들이 점령하게 된 식민지에서 100번이나 넘게 수중실험을 벌였고, 단연컨데 그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과 환경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21세기 들어 리비아에서 침략전쟁을 수행했고, 코트디부아르에서도 전쟁을 벌였다.

쉽게 말해 프랑스 제국주의라는 주제는 분명히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성을 가지는 주제임에도 국내에 관련연구를 다룬 저서를 찾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관련 연구자이자 학자인 이재원의 <제국의 시선, 문화의 기억>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서문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프랑스 제국주의를 다룬 저서들 중에 국내에 출간된 것들도 있다. 마르크 페로의 <식민주의 흑서>나 질 망스롱의 <프랑스 공화국 식민사 입문>이 있다. 이 책들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정복과 착취 그리고 지배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재원의 저서 <제국의 시선, 문화의 기억>은 이전에 국내에 번역된 책들과는 달리 프랑스 제국주의의 사회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프랑스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합리화 했고, 그런 부분들이 교육, 언론, 박물관, 일상 등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본 것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영역 중에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게되는 서구 영화들 중에 과연 그런 식민주의적 혹은 제국주의적 요소가 들어간 것이 없을까?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영화 ‘300‘만 보더라도 곳곳에서 오리엔탈리즘적 요소와 미국의 대이란 정책과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는 부분이 많이 드러났다.

이런 문제는 비단 영화 ‘300‘만의 문제는 아니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 애니 라이온 킹에서도 드러난다. 아래의 책의 내용을 보자.

˝오늘날 오모 미크로(Omo micro)와 같은 세제 선전이나 정글북(The Jungle Book)과 같은 만화영화에서, 그리고 몇몇 영화에서 원숭이가 흑인을 대체하긴 했지만, 식민지적 수사는 그대로이다. 예를 들어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영화 「라이온 킹」(1994)의 비비 원숭이 라피키(Rafiki)의 경우, 프랑스말로 더빙하면서 억양이 강한 아프리카인의 목소리를 사용했다. 반면에 아랍인은 몇몇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유머가 있고, 뤽 베송(Luc Besson)이 제작한 「택시」(1998)에서처럼 현대 도시 우화의 일종의 광대이자, 프랑스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현대의 새로운 ˝원주민˝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재원, 제국의 시선 문화의 기억, 서강대학교출판부, 2017, 237~238쪽.

그렇다면 우리가 놀러가는 놀이공원과 같은 여가 시설들은 어떠할까? 그런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일까? 아래 책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놀이공원의 시초‘이며 진정한 ‘환상의 세계‘였던 1931년 식민지박람회는 대중들을 초대하여 ˝하루 동안의 세계 일주˝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 상상으로의 여행을 통해 유럽의 ‘문명화된‘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꾸며낸 세계에 대한 믿음이, 항상 서양에 유리하고 불평등한 식민지적 관계의 사고방식이, 5대양에 걸쳐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위대한 프랑스˝라는 의식이 확산되게 되었다. 건축물과 장식의 아름다움과 장대한 정경들은 프랑스인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식민지 환상‘에 기여했던 것이다.˝

이재원, 제국의 시선 문화의 기억, 서강대학교출판부, 2017, 186~187쪽.

이러한 부분을 보았을 때, 프랑스 제국주의적 유산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 저서가 다루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사회 문화적 측면은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을 뽑자면, 1930년 프랑스 식민지 박람회의 인간 동물원과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 그리고 반식민지 박람회와 앙리 마르탱 석방운동이다.

전자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면 후자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움직임을 다룬다. 후자에서 보다 주목하게 되는 점은 프랑스인들의 반식민주의 투쟁이다. 특히나 앙리 마르탱 석방운동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프랑스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인 인도차이나 전쟁에 맞섰던 앙리 마르탱의 존재도 감명깊었지만, 전단지를 살포했다는 이유 때문에 감옥에 갇힌 그를 석방하기 위해 전개된 반전운동과 석방운동도 감명깊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선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대중운동을 잘 주도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산당의 활동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필자는 이 책의 가치와 의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해 학술적으로 비판한 저서를 국내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의 프랑스 제국주의를 보게 되니, 현재 2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왜 서구가 주도하는 대러제재에 동참하지 않는지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서방세계와 자유를 지키자˝고 말하는데, 이게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를 받은 이들에게 공감될 리가 없다. 이렇게 보자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니제르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구 편을 안드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아프리카를 포함한 과거 프랑스에게 식민지 지배를 당한 국가들이 현재 NATO 대 러시아의 싸움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절대로 NATO편을 안드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면에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잔혹하고 폭력적이며 백인 우월주의적인 지배가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프랑스 제국주의의 문제는 분명히 현재성을 가진 주제다. 필자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앞으로의 세계는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세계가 되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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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
애니 제이콥슨 지음, 이동훈 옮김 / 인벤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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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영화 마블(Marvel)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악역 하이드라(Hydra)’를 대충 알 것이다. 영화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가 처음으로 맞서 싸운 대상이 바로 이 나치 소속인 하이드라였고, 이 하이드라는 다음 시리즈에서도 캡틴 아메리카의 적으로 등장한다. 놀랍게도 이 하이드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였던 이들은 70년 뒤인 미국의 여러 정치 및 군사 그리고 연구기관에 침투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지난 2023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제작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의 마지막 시리즈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Indiana Jones and the Dial of Destiny)’를 보면, 여기서 인디아나 존스의 적으로 등장한 악역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나치 과학자 위르겐 폴러(Jürgen Voller). 영화 설정을 보면, 위르겐 폴러는 1969년 아폴로호 착륙에 크게 기여한 미국의 과학자로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이나 세계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적 설정이 바로 달 착륙에 기여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10대 시절부터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에 기여한 과학자가 베르너 폰 브라운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베르너 폰 브라운이 나치 과학자 출신인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아마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소방서(사회복무요원)에서 근무 도중 유튜브(Youtube)를 통해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바로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다큐멘터리에선 베르너 폰 브라운이 나치에 협력했지만, 그리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인물로 그려진다. 따라서 아주 적극적인 나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매체들을 통해 알 수 있거나 유추해볼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것은 바로 적잖은 나치 협력자들이 미국에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311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 구경을 하는 도중 제목부터 아주 재밌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책이 바로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Operation Paperclip)이었다. 책을 보자마자 나는 도서관에서 읽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챕터 2장까지 읽었다.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아 상당히 지적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학업이라는 본업과 사회운동 그리고 여러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완독을 하는 데는 좀 오래 걸렸다. 그래도 읽으면서 흥미로운 내용들을 일부러 SNS 및 컴퓨터에 메모하며 완독했으니 만족한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 이른바 나치 과학자들을 어떻게 이주시켰는지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어떻게 미국의 군사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는지를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대다수가 과거 히틀러와 나치에 충성을 맹세하던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대다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반인륜적 전쟁범죄에도 크게 기여하기까지 했다. , 전범으로서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를 한 이들이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정착했고, 미국인이 되었으며 이후 후세대들에게 훌륭한 과학자로 기억 속에 남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 착륙에 기여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에 대해 얘기해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베르너 폰 브라운은 분명히 나치 소속의 과학자였다. 폰 브라운은 나치 소속의 과학자로서 미사일 개발에 많은 기여를 했고, 실제로 나치의 최신 미사일을 개발했다. 19449월 나치는 영국 런던에 이른바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는데, 당시 사용된 무기가 바로 V-2 로켓 미사일이었다. 그것을 제작한 인물이 바로 폰 브라운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미사일을 만든 공장은 독일 노르트하우젠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군 부대가 이 노르트하우젠에 입성하여 나치 독일의 무기 공장을 탐색했다. 그 결과 V-2 로켓미사일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수천 명의 노예노동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있는 수백 구의 노예노동자 시신도 현장에 있었다.

 

, 폰 브라운은 노예노동자 수천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적잖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이 있었다. 당시 베르너 폰 브라운은 나치 친위대 돌격대 지도자였다. 군 계급으로 치자면 대략 소령 정도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전쟁 말기 나치 독일은 V-2 미사일은 영국을 포함한 연합군 점령 지역에 발사했는데,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대략 7,000명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숫자의 노예 노동자들이 폰 브라운이 실질적 책임자로 있던 군수공장에서 죽어나갔다. 그리고 폰 브라운에겐 이 노예노동자들이 반항하면 총살할 권한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거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 앞에서 폰 브라운이 보인 행동도 정말 놀라웠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발췌하겠다.

 

공포의 V-2를 만든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미군에 체포되었다는 것은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될 엄청난 소식이었다. 그들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으며 모두 미소 지었다. 폰 브라운은 V-2개발과 관련하여 으스댔다. 자신이야말로 V-2 발명가이자 독일 과학자들의 리더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미육군 제44사단 방첩대의 일부 인원들은 폰 브라운의 자만심을 눈치 챘다. 한 방첩대요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든 미군 장병과 함께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사진 속에서 폰 브라운은 미소를 짓고 미군들과 악수를 하며, 호기심이 많은 표정으로 미군들의 훈장을 가리켜댔죠. 전쟁포로라기 보다는 유명인에 가까운 태도였습니다. 병사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치 군부대 시찰 나온 국회의원마냥 상냥했습니다."”

 

애니 제이콥슨, 이동훈 옮김,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 인벤션, 2016, 117~118.

 

책에서 폰 브라운 외에 주목한 나치 신봉자는 대략 21명이다. 그 중 폰 브라운을 포함하여 오토 암브로스, 테오도르 벤칭거, 쿠르트 블로메, 발터 도른베른거, 지크프리트 크네마이어, 발터 쉬버, 발터 슈라이버 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 헤르만 괴링 등과 함께 일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독일의 권력 체계에서 과학자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인물들이었다. 21명 중 15명은 나치의 헌신적인 당원이었고, 또 그중 10명은 나치당 산하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SA)와 친위대(SS) 대원이었다. 이들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게시한 이른바 페이퍼클립 작전의 대상자였다.

 

이 페이퍼클립 작전의 목적은 나치 과학자와 기밀 군사계약을 맺고 그들을 미국으로 밀입국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나치 독일이 패망하던 19455월부터 미국 정부를 위해 연구를 재개하게 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대략 1,600명이나 되는 나치 협력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다. 놀랍게도 이들 중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과 같이 미국인들에게 영웅으로 기억에 남은 이들도 상당히 많다. 물론 전쟁 이후 냉전 초기 이들에 대한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이 기밀 처리되었고, 냉전을 거치며 포장작업을 거쳤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들을 데리고 오자 미국 내에서도 문제가 생겼는데, 당시 미국이 보인 태도는 이들에 대한 비호였다. 아래 책의 내용을 보도록 하자.

 

어느 익명의 정보원은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1,000명 이상의 독일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입국하고 있다. 그들 모두 자발적으로 미국과 계약했으며 이들의 적응기간은 보통 6개월이고, 그 후 시민권을 신청하고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 <뉴스위크> 역시 이 기밀군사 프로그램의 이름이 페이퍼클립 작전임을 폭로했다. 육군부는 이 기사를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대중들에게 기밀을 제외하고 프로그램 전체를 알리기로 했다. 즉 라이트 항공기지의 과학자 중 몇 명을 선발해 언론 및 라디오방송, 사진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기지 개방 행사도 기획되었다. 물론 상세한 정보의 개방 수위와 사진촬영의 정도는 육군의 검열을 받았다. 행사의 목적은 미국에 들어와 있는 독일 과학자들이 결코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애니 제이콥슨, 이동훈 옮김,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 인벤션, 2016, 336~337.

 

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이른바 나치 전범들을 재판정에 세웠다. 나치 지도급 인사들은 사형 혹은 무기 징역을 받았지만, 전쟁범죄를 실질적으로 자행했던 이들 중 일부는 페이퍼클립 작전의 대상자였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 정부의 비호를 받았으며, 이후에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미국인이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나치 행적은 침묵되거나, 서류상 기밀 처리됐다. 미국은 이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원했고, 특히나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행적을 묻지 않으려 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이들이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지하 벙커를 설계한 기술은 페이퍼 클립을 통해 온 설계관여자에 의해 냉전시기 미국의 핵 대피소 기술로 사용됐다. 나치의 의학 기술이나 과학 기술이 미국의 의학 및 과학 기술에 크게 관여했는데, 이것은 당시 미국에 온 나치 협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더글라스 맥아더가 731 부대의 책임자 이시이 시로를 살려주고, 731 부대가 확보한 연구 결과가 미국으로 갔던 것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치의 기술이 이런 식으로 미국에 가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페이퍼클립 작전을 통해 미국에 정착하게 된 나치 과학자들은 미국의 독극물 개발에도 기여했다. 미국은 냉전의 흐름 속에서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지도자들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대표적으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콩고의 파트리스 루뭄바가 그 예시였다.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와 파트리스 루뭄바를 암살하기 위해 독극물을 사용했는데(이러한 미국의 암살시도는 실패했다.), 그 독극물 종류가 나치 과학자에 의해 개발된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사용한 맹독성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의 경우 나치에 협력한 과학자가 만들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총 4,315만 리터 이상의 에이전트 오렌지가 남베트남 국토의 전체 면적 24%에 뿌려졌다. 고지대와 삼림 500만 에이커, 경작지 50만 에이커가 초토화되었다. 이는 매사추세츠 주 만한 면적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나치 과학자 출신 인물들은 미국 과학기술 및 군사기술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영역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나치에 협력한 인사들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년 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를 외쳤고, 이러한 러시아의 주장은 푸틴의 선전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역사를 들어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했었고, 이 과정에서 스테판 반데라나 로만 슈케비치, 디미트리 돈초프, 미콜라 레베드와 같은 우크라이나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은 나치에 협력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과 폴란드인 학살 및 인종청소로 악명높은 나치들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소련에 맞선다는 이유로 이 나치세력을 반소-반공투쟁에 이용했다.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단행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기존의 소련사회에서 억눌려있던 극우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나왔는데, 이들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번창했다. 이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유로마이단을 전후해서였다.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유로마이단을 획책했고, 돈바스 내전에서 강력한 군대로 탄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마리우폴 포위전 당시 우크라이나군의 주력부대였던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가 있었다. 이들이 바로 돈바스 내전 당시 미국과 NATO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군의 주력부대가 된 군대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 나치과학자들을 데리고 온 역사와 현재 미국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지원이 상당히 오버랩 됐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파시즘을 물리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치독일 패망과 일제 패망에 있어 미국의 공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련과의 냉전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페이퍼클립 대상자와 같은 파시스트 지지자 및 협력자들과 결탁했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소련에 맞서기 위함이라는 명분 아래 합리화됐다. 당시 미국이 소련에 맞서기 위해 그랬다면, 현재는 러시아를 상대로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 제이콥슨의 책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은 읽는 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이다. 간만에 지적 희열을 최고조로 느낄 수 있고, 올바른 역사를 알 수 있는 책 한권을 완독했다. 그리고 이 책은 현재 미국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문제에 대해 보이는 태도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깊은 교훈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맨 마지막 장에는 질문과 토론주제목록이 있다. 이를 공유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

1. 이 책에서 애니 제이콥슨은 전후에 미국 정부가 히틀러의 과학자들을 밀입시키려 했던 노력을 냉철하게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전에 페이퍼클립 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 이 프로그램에서 당신이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무엇인가? - P.714

2. 연합국 정보요원들이 전후 나치 과학자들의 처분에 있어 맞닥뜨린 가장 주된 질문 중 하나는 누구를 고용하고 누구를 처형할지였다. 당신은 이 질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 P.714

3. 전후의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정말 나치 과학자들이 필요했는가? 오히려 나치 과학자들의 고용이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증폭시키지 않았는가? - P.714

4. 페이퍼클립 작전은 대중에게 선한 얼굴을 띠고 있었지만, 과학자들의 전시 행적에 대해 진실은 기밀로 처리되었다. 대중들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는가? 미국은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해야만 했는가? - P.715

5. 이 책을 읽고 미국 정부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달라졌는가? 과거의 정부기밀 프로그램 공개가, 오늘날 어떤 정부 기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 P.715

6. 페이퍼클립 작전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느낀 부분은 무엇인가? - P.715

7. 1951년, 독일 주재 미국 고등판무관 존 J. 맥틀로이는 유죄를 선고받은 다수의 나치 전범들을 사면하고 란츠베르크 교도소에서 풀어주었다. 당신은 왜 그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가? - P.715

8. 책에서 저자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정문에 적혀있는 독일속당 "누구나 과오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를 독자들에게 몇 번 환기시킨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 말은 옳은가? - P.715

9. NASA는 논란이 되는 베르너 폰 브라운, 쿠르트 데부스, 아르투르 루돌프의 전시 행적을 포함시키기 위해 그들의 전기를 수정해야만 했는가? - P.715

10. 개인적인 신념과 직업상 의무의 충돌로 인해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책에 나오는 어느 순간이 당신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한가? - P.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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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19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나치독일 부역자들과 결탁해서 그들을 ‘세탁‘한 다음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반공주의 투사‘로 둔갑시켰고, 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실무에 밝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그대로 등용해서 ‘친미파‘로 변신시킨 후 이들을 ‘공산당 때려잡는 열렬한 반공투사‘로 만들었죠. 미국은 나치 독일 부역자들과 한국의 내로라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엄벌하기는 커녕 이들을 ‘실무에 밝다‘는 이유로 그들과 결탁하여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극대화‘라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어린 시절 만화작가 이원복이 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당시 이원복이 쓴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드 편을 재밌게 읽었었는데, 당시 책에 등장한 동독의 이미지는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동독은 항상 서독에 비해 무언가 부족한 나라였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 자유를 찾아 나서는 동독인들의 모습과 소비재 부족으로 인해 서독 관광객으로부터 생필품을 갈취하는 동독 경찰의 모습이 만화에서 묘사됐다. 그리고 동독이라는 나라는 자유가 억압당하며, 공산당 독재자들이 통치하는 뭐 그런 나라로만 보였다. 이것이 단순히 이원복이 쓴 만화책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8년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 ‘벌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동독 체제에 불만을 가진 가족이 서독으로 도망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통일하면 독일식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동독에 대해 이런 식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동독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시각이다. 동독이 세운 업적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탈나치화(De-Nazification) 문제를 보면 그렇다. 동독사 연구자인 카트야 호이어에 따르면, 서독은 나치 출신을 공직계·교육계·문화계, 심지어 경찰 조직에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독일민주공화국은 반파시즘을 기본 신조로 유지했다. 소련 군정 하에서의 동부 독일과 동독 정부는 미군정 하에서의 서부 독일과 서독 정부에 비해 훨씬 광범위한 탈나치화 과정을 거쳤다. 심지어 경제에 타격이 있어도 그 과정을 거쳤는데, 공학자와 경찰이 사라진 자리는 미숙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문제가 덜한 사람들로 채웠다.


독일의 경제 또한 그렇다. 물론 동독이 서독 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 해서 못사는 나라는 절대 아니었다. 1990년 기준 당시 서독과 동독의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그렇다. 당시 서독의 1인당 GDP는 15,300 달러였고, 동독은 9,679 달러였다. 당시 소련이 대략 9,100~9,200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동독의 경제력은 결코 낙후되지 않았었다. 물론 이원복 또한 동독이 전후재건에 성공하여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 비교적 잘 살았다는 점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문제는 ‘사회주의=가난’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데에 있다. 사회주의 국가하면 무조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동독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굶주렸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동독의 지도자에 대해서도 ‘독재자’ 혹은 ‘권력가’라는 단어로만 해석한다. 소위 한국에서 민주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 또한, 현실 사회주의권 지도자나 제3세계 지도자를 보면 항상 그 수식어로만 보는 경향이 크며,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처럼 독재한 사람일 뿐이다.”는 매우 지엽적인 편견에 빠져있다. 구사회주의권 지도자들이 이른바 ‘서기장’이나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을 들어 그저 장기집권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독재자라고 단순무식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이나 한국처럼 4년이나 5년에 한번 씩 대통령을 선출해야만 민주주의라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빠져있기도 하다.


물론 1당 독재도 엄밀히 말해서 독재는 맞다. 그러나 그 독재의 성격이 어떠한지는 전혀 보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 체제가 무슨 우리가 생각하는 인민을 대량 학살한 체제인지 박정희 정권처럼 치마 길이까지 검열하는 체제였는지, 경찰의 공권력이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던 시절 대한민국 만큼이었는지를 진지하게 분석조차 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리비아를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해 독재자 혹은 망나니라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카다피의 정치통치 방식인 자마히리야의 적용을 보면, 소위 서구가 주장하는 민주화(라고 쓰고 색깔혁명 혹은 폭동이라 읽는다.) 이후보다 선거제도와 지방자치제도가 자리 잡혔었다. 자미히리야(인민의회) 의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여성과 소수민족이었던 만큼 지역간 갈등 완화나 소수자 인권 보호에도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한국의 이승만 독재나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 이렇게 존재한다. 이런 리비아가 “과연 박정희나 전두환 보다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폭압적인 독재통치라고 말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선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도 이러한 접근이 과거에 존재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필요하다. 즉, 단순히 지도자가 1당독재를 했다고 해서 1인체제를 유지했다고 해서, 소위 미국이라는 세력의 우산 아래 있던 친미 성향의 자본주의적 독재자와 같은 선상에서만 놓고 보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동독의 경우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하면, 억압·자유의 부재·검열·통제·생필품 결핍 등 절대 긍정적일 수 없는 요소들만 생각하지만, 동독의 사회를 들어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서 리비아의 사례와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의 그것과 단순히 비교해서 “독재 통치일 뿐이다.”는 식의 관점도 어찌 보면 단순도식화다.


따라서 에리히 호네커에 대한 분석도 단순히 독재자라는 식의 관점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본다. 호네커 시절 동독 사회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호네커 시절 동독은 나름 청소년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서방의 의류 등을 수입했고, 음악에 대해서도 풀어주며 서독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서독 문화가 크게 금지됐던 것고 아니고, 정부의 일부 정책에 반하는 행동이 전면적으로 금지가 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삼는 행위는 금지가 됐는데, 이것은 소위 자본주의 국가들도 같은 선상에서 막는 부분이다. 참고로 에리히 호네커의 전임자인 발터 울브리히트의 경우도 서구의 시각에선 동독의 독재자로 규정받는데, 울브리히트는 1971년 수상직에서 사임했다. 이것이 무슨 이승만처럼 4.19 혁명과 같은 일로 사임한 것인가를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다. 


호네커 시절의 동독은 여성인권에 있어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이는 동독의 여성 취업자 수치를 보면 명확하다. 동독의 여성 취업자 수는 1989년 기준 130여만 명으로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나 비생산 영역에선 여성 취업률이 1950년대 50% 수준, 1960년대 60% 수준, 그리고 1970년대 이후 70% 수준을 넘어가면서 남녀 동등한 비율의 취업률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고용률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독 사회의 여성 고용률을 살펴보면, 괄목할만한 변화를 알 수 있다. 동독이 탄생했던 1949년 전체 취업인구 731만 3,000명 중 여성이 298만 9,000명으로 40.9%를 차지했으며, 취업인구에서 차지하는 남녀 비율은 60:40이었다. 이러한 비율은 1970년대 말에 들어 여성 비율이 50%를 넘기면서 남녀 간 완전한 고용평등을 달성했다. 비록 1980대를 거치며 하락하여 1989년에는 40% 수준에 머물렀지만, 여성 고용률 50% 달성은 비생산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1949년 비생산 영역 취업활동 인구 90여만 명 중 여성이 54만 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1949년부터 1989년까지 비생산 영역 취업인구는 180여만 명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다. 즉, 이런 나라가 어떻게 해서 박정희 시절 훅은 전두환 시절의 독재정권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될 수 있는지 심히 의심이 든다.


즉, 이와 같은 변화가 에리히 호네커 시절 동독에서 있었다. 노동 시간에서도 선진적이었다. 이해영이 집필한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에 따르면, 동독에서는 근로자의 약 75%는 1주에 43.75시간을 근무했고, 16세 미만의 청소년과 임산부의 경우, 야간작업이 금지되었으며 6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여성과 돌보아야 할 식구를 거느린 근로자는 야간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다.시간 외 근무는 예외적인 경우, 노동자위원회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며, 연간 20~26일의 휴가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동독의 경우 노동의 권리(Recht auf Arbeit)는 인간 기본권으로써 헌법으로 보장받았다. 그러니까, 근로기준법 조차도 없었고, 노동자를 굴리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민주화 된 이후에도 주 120시간 노동을 지껄이는 윤석열이 집권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무작정 독재자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은 앞서 언급한 것들을 전혀 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네커는 단순히 군사독재에 복무한 사람이거나, 과거 나치에 협력하며 민족반역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에리히 호네커는 열렬한 사회주의 혁명가였고 투사였다. 1920년대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며, 1930년대 국제레닌대학교에서 유학하며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을 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나치 독일 치하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1935년 투옥되어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독일이 해방될 때까지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쉽게 말해,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저항한 열렬한 혁명가였던 것이다. 도데체 어떻게 해서 호네커라는 인물이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과 같은 이들과 동일선상의 독재자 프레임으로 엮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까지 “에리히 호네커를 단순히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이 왜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사회주의 지도자에 대해 단순히 자유주의적 관점에 따라 독재자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의 독재를 생각하며 같은 선상에 일단 놓고 보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렇게 했을 시 생기는 오류가 분명히 있다. 따라서 나는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이런 관점이 진지하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따라 억압의 강도가 강할 수 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자본주의 국가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면, 사회주의 국가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리히 호네커를 단순히 ‘동독의 독재자’ 프레임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가 존재하는 것이다. 에리히 호네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선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에 다뤄볼 예정이다.


참고문헌


이해영,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푸른숲, 2000.

정재훈·박수지, 『동독 사회보장제도: 역사와 변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카트야 호이어, 송예슬 옮김, 『장벽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서해문집, 2024.

Honecker Erich, From My Life, Pergamon Press, 1981.

Murphy Austin, The Triumph of Evil: The Reality of the U.S. Cold War Victory, European Press Academic Publishing,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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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1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리히 호네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낡아빠진 ‘반공주의‘ 사상이 낳은 산물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우리 머릿속에 ‘사회주의 국가‘하면 ‘가난하다‘, ‘억압적 통치가 이루어진다‘라는 의식이 너무 뿌리깊게 (반공주의에 찌든 나머지) 박혀있지만, 사회주의 국가 중에도 동독과 같이 잘 사는 국가도 존재했고, 자본주의 국가 중에 가난한 나라들(과테말라, 필리핀...)도 꽤 많았습니다.
 

우뽕들에 대한 박상후의 일침.

정말 그러하다.

그러니 러시아 침략 빼애애액 하며 미국 편 드는거다.

박상후의 ‘문명개화‘가 날카로운 팩트폭격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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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전쟁과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
이재원 지음 / 홍문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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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런 양질의 책이 출간됐군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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