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작전 -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프시케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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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가 본래 전공을 쓴 책이다. 기사도 시대에 특수 작전이 수행된 과정과 역할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저자가 특수 작전을 선택한 이유는 특수 작전이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기사도와 군사적 현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상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암살이 가장 효율적인 전쟁 방법이었다는데, 그게 뭐 기사도냐! ㅋ 싶지만 성유물을 훔쳐오는 특수 작전도 흔히 행해졌다는 설명을 읽으니 과연 중세로고, 싶기도 하다. 읽기 재밌다.

 

'특수작전'이란 투입된 자원에 비해 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능력이 있는 소규모 부대가 좁은 지역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수행하는 전투작전을 말한다.

- 13쪽에서 인용

 

목차가 좀 뜻밖이다. 중세 전쟁사에서 십자군 전쟁을 뺄 수야 없지만, 전체 7장 중 3개 장이 11, 12세기 십자군 시절 중동 이야기다. 개관 격인 1장을 제외하고 나면 전체의 절반 분량이다. 이스라엘 출신인 저자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일까. 그외 지역 셋은 14세기 칼레, 15세기 부르고뉴 공국, 16세기 카를 5세가 침공한  프로방스 지역이다. 그러니까 11~16세기까지다. 각 세기별로 안배해 구성했다기 보다는 작전의 특성이 잘 보이는 사건을 택한 것 같다.

 

6장의 부르고뉴 공국 공작들이 영토를 늘려 간 방식이 거의 납치 작전을 통한 상속 강요였다는 것, 재미있었다. 다른 책에서 이렇게 깊이 읽어보지 못했다. 아니, 부르고뉴 역사 자체가 독립된 한 장으로 다뤄지는 경우를 별로 못 본 것 같다. 주경철 저 <유럽인 이야기 1>외에는 거의 백년 전쟁이나 합스부르크 제국 성립과 관련해서 조금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공국의 야심찬 영토 획득 과정을 세세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제일 흥미진진한 장은 마지막 7장인 '오리올의 방앗간'이었다. 적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방앗간을 습격한다는 발상도 재미있고 그 과정 서술도 다른 장에 비해서 작가의 필력이 발휘된 것 같다. 이 작전이 수행된 1536년은 이미 근대인데 저자는 왜 기사도 시대의 작전의 마지막 장으로 이 방앗간 습격 작전을 선택했을까? 저자는 기사도의 가치관은 16세기 내내 서구의 전쟁에 영향을 끼쳤으며 화약혁명이 특수전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거기에 나는 카를5세가 중세적 제국 건설의 야망을 가진 마지막 인물이라는 점을 더하고 싶다.

 

책은 작전 수행과정 서술 위주이다. 큰 논평이나 자세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 설명은 없는 편이다. 그런 부분이 아쉬운 독자가 있다면, 마이클 하워드가 지은 <유럽사 속의 전쟁>의 중세 부분과 병행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특수작전이 지닌 문화적 매력 덕분에 특수작전이 국민들의 사기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력도 늘어났다. 국가의 이미지, 특히 국가의 남성적 이미지가 특수작전에 크게 녹아 있기 때문에, 작전이 성공하면 국민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실패하면 정규작전이 실패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크게 사기가 떨어진다. 특수작전의 성공이 언제나 화려해 보이는 만큼, 실패는 굴욕적이다. 임무에 참가한 특수부대원들은 국가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영화관과 게임 화면에서 본 특수작전과 실제 특수작전을 동일시하는 데 익숙하다.

- 25쪽에서 인용

 

현대의 특수작전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위 부분도 흥미로웠다. 전쟁과 남성성 관련, 더 자세히 이 부분 이야기 듣고 싶었는데 이게 다였다. (레이건 시절 스크린에 등장한, 심히 남성적으로 목 굵은 람보가 생각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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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 근대의 빛과 그림자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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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6~7세기를 다룬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 오라녀공 빌렘, 루이 14, 레이폴트 1세와 카를로스 2세 등 왕가 혹은 왕에 준하는 인물들 5인과  과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예술가인 베르니니, 경제계 인물 존 로를 다룬다. 그리고 이 시대를 서술하는데 투기버블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시대의 광풍인 마녀 사냥까지. 1,2,3권 모두 저자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사건이나 어떤 시대적 징후(?)를 골고루 안배해서 책을 구성한다. 흥미로운 구성이다.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본문 서술이나 논평 뿐만 아니라 이런 점에서도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1,2,3권 모두 저자의 기존 저작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1권에는 콜럼버스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그해 역사가 바뀌다>에 있다. 코르테스, 말린체 이야기는 <대항해시대>와 그외 책들에 조금씩 있다. 3권에는 해적 이야기가 <대항해 시대>에 겹쳐 있다. 그런데 이번 2권은 기존 저작과 겹치는 분량이 가장 많다. 오라녀공 빌렘 이야기는 <네덜란드>에서, 마녀 사냥은 <마녀>에서 읽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 2권이 읽으면서 가장 심심했다. (아니, 주경철 선생님 저작은 다 읽는 고정 독자팬인데 쓰다보니 오히려 안티같이 써 놓았네? 이런 죄송할데가!  이 논평은 본책 내용이나 수준과는 상관없이 독자의 개인적 소감과 아쉬움임을 밝힌다. 그냥, 안 읽은 내용을 많은 분량으로 읽고 싶었던 욕심에서 나온 말임)

 

책은 기본적인 사실을 서술하고 각 사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저자가 유럽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입장은 명확하다. 그 인물 그 사건이 근대 유럽을 형성해가는 전체 흐름에서 어떤 시대적 의미를 갖는가, 그 인물 그 사건이 그 시점에서 왜 중요한가를 밝혀 주는 것. 아래처럼.

 

 

 

이처럼 갈릴레오는 불완전성을 키우고 세계의 조화를 깨뜨렸다. 이는 기존 신앙과 철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 111

 

그러나 너무 무겁거나 진지해서 따분하지는 않다. 아래처럼 고급 개그도 있다. 읽다 쓰러질뻔.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현재 스위스의 아르가우 지역에 위치한 하비히츠부르크(Habichtsburg, 매의 성이라는 뜻, 번역하면 응봉동) 또는 옛 독일어 ‘hab/hap’(‘여울목이라는 뜻으로, 성 앞에 여울이 있었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213 쪽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학살의 주범 악녀로 몰아가지 않은 시선도 좋았다. 그런데 카트린이 권력을 잡은 시점은 남편 사후이니까 그 이후 국정에 관여한 부분을 서술할 때는 대비라든가 모후로 칭하는 것이 좋겠다. 30쪽 같은 경우 프랑수아 2세를  섭정하는 카트린을 왕비라고 표기했다. 뭐 큰 일은 아니지만, 워낙 1권에 잘못된 호칭 가계도 표기가 많아서, 이런 사소한 부분도 좀 신경 쓰였다.

 

책 뒤쪽에 실린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가 계보도에 오류가 있다. 발루아의 엘리자베트와 펠리페 2세 사이에 오스트리아의 카를로스가 태어났다고 잘못 나와 있다. 1권에서도 그렇게 잘못 나왔는데 2권 역시 잘못 나왔다. 1권만 잘못 되었다면 실수라고 보겠는데, 1권에 이어 2권까지 잘못 나온 것을 보니, 좀 염려스럽다. 이런 걸 못 잡아내다니, 편집팀, 과로하시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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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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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권에서는 표트르 대제,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 모차르트, 볼리바르, 나폴레옹 등 6명의 특출한 혹은 문제적 개인을,  해적들과 와트 등 산업혁명기의 발명가 겸 사업가들을 통해 두 분야의 사회 현상을 다룬다.  주로 18세기이고 혁명 혹은 혁명적 변화, 그러니까 '이중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 사실을 서술하는데 충실하면서 지나친(소설로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이는 '작가의 개입'같은) 논평은 없는 편이다. 널리 퍼져있는 편견이나 오류도 잡아 준다. 프랑스 혁명기 공포 정치가 온전히 로베스피에르만의 책임은 아니라든가,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낭만주의시대 영웅화된 면이 있는 것, 볼리바르는 해방자이며 독재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산업혁명은 와트 등 어느 뛰어난 발명가 덕분이 아니라 기존 기술이 꾸준히 개량되며 진행되었다는 것 등등.  

 

무엇보다 나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빵 없으면 케이크 먹어라'고 한 말은 사실 아니라든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악처로 서술하지 않아서 좋았다.

 

더구나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강경파 의원 장 폴 마라가 코르데라는 여성에게 살해당한 이후 혁명의 문위기는 여성 혐오로 돌아섰다. 과거 잔인했던 여성 지배자의 악행들을 거론하며 이를 앙투아네트와 비교했다.

-131쪽에서 인용

 

위처럼, 남성들만의 박애와 형제애를 추구했던 프랑스 혁명기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 좋았다. 사실, 주경철 선생님 정도 되면 역사를 몰라서 못 쓰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가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자료를 언급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중년 이상 나이드신 남성 저자분들이 프랑스 혁명 언급하면서 마리 앙트와네트를 희화하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역사 읽고 쓰시는 분들이 린 헌트도 안 읽었나? 알면서 안 쓰는 건가? ) 나는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때, 어느 역사학과 교수가 박근혜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교하면서 사치 때문에 혁명 어쩌구 빵 케이크 어쩌구하는 논평을 쓰는 것이 의아했다. 주경철 선생님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오면 어쩌나, 나는 그럼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한다지, 하고 고민했는데 쓸데없는 여성혐오 논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저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연민어린 시선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사적인 삶을 추구한 앙투아네트를 두고 구체제의 마지막 왕비라기보다는 최초의 근대적 왕비라고 주장한 샹탈 토마의 견해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불안정과 변덕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었다고 딱 잘라 평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세 개의 거대한 혁명이 대서양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바로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근대적 자유를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 중 하나였다. 1808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2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위계적 사회 질서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다른 지역들과는 매우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

- 251쪽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유럽은 아니지만 볼리바르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과 독립 역사를 소개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해적으로 3권을 시작하는 것이 좀 의외였다. <대항해 시대>에서 읽은 내용이어서 독자 개인적으로 아쉬웠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이 역시 근대 국가 형성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겠다. 해군의 역할을 대신 하고 급료는 알아서 약탈로,,, 하다가 국가가 해군력을 갖추고 나서 하청 면허를 거두며 소탕에 나서는 과정 말이다.

 

1차 근대 서술을 잔 다르크에서 나폴레옹까지로 마무리한다는 저자 서문은 알쏭달쏭하다. 시리즈가 2차 근대 3권으로 또 이어진다는 암시인가? 그러길 기대한다. 물론, 더 읽고 싶으니까 하는 말이다. <유럽인 이야기>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능가하는 권수를 가진 시리즈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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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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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내게 힘든 일이 있었다. 성공 보장도 없는데 가던 길을 계속 힘들게 가야할지, 포기하고 안정을 택해야할지를 고민했다. 역시나 책벌레답게 책을 검색했고,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은 이랬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문인이라는 구태의연한 허상을 벗어던지고 그야말로 생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말한다. 삼십오 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내기 위한 일상적인 실천, 건전한 야심을 품고 해외시장에 도전한 개척자로서의 모험과 성공, 소설로 먹고살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생업에 대하여 지녀야 할 자질과 태도를 열두 개의 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위에서 "35년 동안 지속적으로 써내기,,,, "라는 대목에 그만 정신줄을 놓았다. 이건 무조건 읽어야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는 비법을 얻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놔,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라는 1회부터 연달아 등짝을 두들겨 맞고 혼난 기분이었다.

 

한 줄 한 줄이 눈물겹게 와 닿아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명심하고픈 부분을 옮겨 적는다.

 

제 6회인 '시간을 내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라는 꼭지에서 하루키는 매일매일 20매씩 쓰는 습관의 중요성을 말한다. 잘 써져도 20매, 잘 안되도 20매라며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아아, 그는 규칙적으로 쓰고 뛰고 맥주를 마시지만, 내가 실천하는 것은 규칙적인 맥주 마시기밖에 없었구나.

 

원고 고칠 때 상대의 조언을 받는 자세에 대해 쓴 부분도 실용적 조언을 담고 있어서 옮겨 놓는다.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 157쪽

 

원고에 시간을 투자한 차이에 대해 온천물과 가정욕조물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세 군데 인용해 놓는다.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역력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 167쪽

 

시간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 165쪽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시간에 컨트롤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

- 167쪽

 

특히 제 7회 꼭지인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란 대목은 줄 쳐가며 눈물 닦으며 읽었다. 글 쓰기란 고독한 작업이니 내 육체를 다스려 참을성 있게 묵묵히 꼼꼼히 하라는 것,,,,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 180쪽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 편으로 만들 것.

- 181쪽

 

책  좋았다. 참 좋았다. 위에 옮겨 놓은 부분이 특히  내게는 현실적인 조언이 되어 주었다. 꼭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혼자서 외롭게 작업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오랜 시간 한길을 가야 성과가 조금 보이는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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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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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융심리학의 대가 가와이 하야오를 교토로 찾아가 두 밤 동안 이야기 나눈 기록이다. 두 대가는 한신 대지진과 전쟁 등 커다란 재난을 당하며 변한 일본인들 전체 혹은 개인의 마음 상태라든가 결혼 같은 개인사를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실의 삶 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무라카미 : 인간은 누구나 병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예술가나 창작을 하는 사람도 병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가와이    : 물론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 거기에 대해 건강한 상태여야 하는군요.

 

가와이    : 그것은 표현이라는 형태의 힘을 가져야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예술가는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는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병을 앓으면서도 개인적인 병을 얼마간 초월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병을 초월해서,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음으로써 그 사람의 표현이

 

               보편성을 갖게 됩니다.

 

- 본문 88쪽에서 인용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마지막 꼭지인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을 읽고, 도대체 하루끼란 이 남자가 이토록 절절히 인간적 매력을 그리워하여 애도하는 하야오란 이 남자는 누군가, 하는 생각에 찾아 읽었는데,,, 나 역시 이 남자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뭐랄까, 바탕은 다정한데 산전수전 다 겪어 삶이 심드렁해졌기때문에 단순한 조언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괴물들의 입에 먹이를 물려주며 달래는 능숙한 조련가같기도 하고,,,,  아아,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기빨리거나 나쁜 영향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

 

대화는 덤덤한데, 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라카미가 자신의 집필 전환점이 된 <태엽 감는 새>를 쓰게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딱 그 작품부터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무라카미의 팬인 글벗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다 <상실의 시대>의 재탕 아닌가요? 라고 말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이런 나의 무식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대화를 나눠준 친구들은 나의 하야오 선생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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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3-24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이 책이 생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20대때 무라카미 책을 열심히 재밌게 봤고, 융심리학 책도 조금씩 봐둔터라, 기대가 컸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라카미 소설의 활기나 융심리학의 어떤 활기를 많이 깊히 느끼기는 어려웠고, 그런 활기들을 느낀 책들(무라카미의 소설 자체와 융 분석심리학파의 심리학자들의 주옥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인거 같습니다. 그래도 일본의 융 심리학 소식은, 제게는 엄청 흥미로운 영역인 거 같습니다. 예전의 인류학적인 관점인 <국화와 칼>이나, 일본스러움을 다양한 관점으로 소개하는 책들 속에서도 흔치 않은 관점인거 같습니다.

자유도비 2018-03-28 11:13   좋아요 0 | URL
조금 아쉬운 부분 말씀에 이어서,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쓰신 부분에 동감합니다. 저도 윗글 본문에‘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썼는데, 비슷한 느낌이지 않나 싶습니다.
말씀하신 <국화와 칼>처럼 외국인 저자가 일본에 대해 쓴 책이 더 일본스러움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기호의 제국>도 그렇고. 아, 최근에 읽은 책 중, <인간 증발>에서 독특한 일본스러움을 느꼈어요. ( 읽고 리뷰는 안 썼어요.)
그건 그렇고, 마일즈님과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은 늘 재미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