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일본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강태웅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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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서에서 일본 통사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배우려고 찾아 읽은 책이다. 대중역사서는 아니다. 전체 5장 중 1장만 일본 역사인데 각 꼭지를 배분한 기획, 목차가 좋다.  '~ 습니다.'체, '~ 요 ' 체 문체를 써서 50쪽 안에 간결하게 일본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다. 분량상 연대순 사건 나열에 그치기 쉬운데 인과 관계와 행간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고지키>와 <니혼쇼키>라는 책에 나옵니다. 두 책이 쓰인 8세기 초는 한반도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도 당나라의 침입을 걱정하던 시기입니다.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비해서 내부 단결이 중용시되었고, 이를 위해 건국 신화부터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대두되었지요. 신화가 역사냐고요? 당시 통치자인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삼으려고 신화와 역사를 연결한 것입니다.

- 70쪽에서 인용

 

이어 2부~ 5부까지는 각각 지리, 정치, 경제, 문화, 한일관계를 다룬다. 흥미로운 전통 풍습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일본이 21세기 들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민감한 문제인 재일 교포, 영토 분쟁, 역사 교과서 문제 등까지 다룬다. 급히 일본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일본을 이해하는 거의 모든 기본 정보를 담고 있다. 예상 독자 연령대도 폭넓을 정도로 책은 쉽고도 간결하다. 깊이도 갖추고 있다.


책 완성도도 꼼꼼하다. 일본의 지리 부분에서 자연재해를 다룬 87쪽에는 메기 그림이 있다. 그림 아래에 이런 설명이 있다.  '메기가 지진을 일으키면 경기가 부흥된다는 내용을 담은 에도 시대 그림. 당시 서민들은 이런 그림에서 위안을 얻었다.' 진짜 깨알같은 정보다.

 

지리부분에서는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오키나와 주민들과 일본 정부가 대립한다는 내용이 있다. 전쟁 때 오키나와 주민이 희생되었건만, 책임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희생이 컸다는 것만 강조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저자는 이렇게 논평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 114쪽에서 인용

 

정보도 많고 시선도 정확하다. 이 책이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도판도 많이 실려 있다.

여튼, 급히 일본사 전체 빨리 읽으실 분은 이 책의 1장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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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외편집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컴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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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인 저자는 현재 60대 나이인데 프리랜서 편집자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출판사 사옥 책상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편집을 한다. 시장 조사에 연연하지 않고 뛰어들고 부딪혀서 책을 엮어 낸다. 카메라를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취재하러 떠난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받는 원고료나 인세는 큰 이득이 없지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없으니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설문조사 같은 것은 평균치이며 자신은 다수 아닌 소수를 위한 기획을 한다고 말한다. 검색해서 자료가 많으면 이미 누가 했다는 말이니 자신이 나설 의미가 없다고 하시는데,,, 보통 패기가 아니다. 책 첫 머리에서 대뜸 '출판 불황의 이유는 편집자다.' 라고  말하시니, 원.

 

책은 편집 노하우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아웃사이더 프리랜서 편집자로서 갖는 긍지나 자세를 말하는 책이다. 일본 출판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종이 매체에서 웹으로, 메일 매거진 직거래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등, 저자가 출판 시장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주도해가는 과정을 따라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제 내년이면 예순이 된다. 젊었을 때 출판사에 들어갔더라면 지금쯤 임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취재를 요청하는 전화를 간단히 거절당하고, 자식뻘 되는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존댓말로 인터뷰를 하고, 먼 곳까지 취재하러 갈 교통비가 걱정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편집자를 시작했던 40년 전의 상황과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달라진 점도 있다. 그때보다 체력은 떨어지고 수입은 줄어드는데 고생은 더 늘었다.

그래도 좋다. 매월 입금되는 돈보다도 매일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편집자로 사는 사소한 행복은 출신 학교나 경력, 직함, 연령, 수입과는 상관없이 호기심과 체력과 인간성만 있으면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 7쪽에서 인용

 

옮겨두고 싶은 문장이 많다.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주변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22쪽에서 인용

 

인터뷰에 노하우란 없다. 대화는 각자가 만들어온 호기심과 경험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불이 붙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일에 흥미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 외에 지름길은 없다.

- 192쪽에서 인용

 

최근 들어서 프로란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걸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끝없이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철학자는 평생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 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맛을 연구하는 사람이 프로인 것이다. 프로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메일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프로의 일과 그 대가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222 ~ 223쪽에서 인용

 

등등, 도움되는 내용이 많았다. 다 읽고 나니, 결국 프로가 되는 지름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오래오래 끈질기게 해 내는 자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의 말을 믿자. 호기심과 체력, 인간성만 있으면 된다. 아, 마지막이 제일 힘드네. 여튼 책 동네 관련한 업에 있는 분들께 강추한다.

 

기타,  <로드사이드 재팬 진기한 일본기행>의 성공이 신기한데, 여기에는  에도 시대 17세기부터 기행문을 간행하는 전통있는 일본의 문화적 배경이 뒷받침된 것 같다. 이어서 <진기한 세계 기행>편을 연재하게 된 것은 일본 경제 호황 덕도 본 것 같다. 경제가 호황이어야 기업들이 잡지에 광고를 많이 하고, 그래야 잡지에서 취재비를 내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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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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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기대 외로 이 책 참 좋다. 저자는 어느 스님처럼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용서해야 니 맘이 편해진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타고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생각도 없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절대 안 바뀌니 당신이 바뀌어야 산다,라고.  나르시스트 엄마의 유형과 사례 등등 분석도 많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리뷰를 검색해보실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은 해결책일 것이니 해결 쪽 내용을 길게 쓰겠다.

 

당신이 엄마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니 애초에 마음을 접어라. 엄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사전에 변화란 말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엄마 때문에 받는 정신적 상처가 클 경우에 말이다. 

 - 243쪽에서 인용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가벼운 관계 맺기'다. 딸인 당신이 연락을 더 적게 해서 모녀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것. 절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각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하라는 것. 이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여성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권한다.

 

보통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경계선 긋기를 주저하지만 사실 그것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구분 짓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앟으면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돌아서곤 하며 생각외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호한 어조로 못 박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가 딸인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든 그건 엄마의 문제일 뿐이니까. 엄마의 감정을 딸이 모두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언성 높여 싸우지도 말고 엄마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대화 방법이 있다. 딸이 본인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딸의 마음을 돌보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반응을 보이는 나르시스트 엄마의 경우,

 

엄마 : 세상에 이혼이라니! 대체 결혼생활을 뭘 어떻게 한 거야? 어디 창피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있어야지!

당신 : 엄마, 제 삶은 제가 결정해요. 지금 가장 마음 아픈 사람은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위로는 커녕 나무라기만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 253쪽에서 인용

 

일단 경계선을 긋고 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특히나 엄마가 사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경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덧붙인다. 선을 설정해 놓고 엄마가 그걸 무시하면 그 상황에서 단지 빠져나오고 감정 대립 없이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이 그은 선을 지켜내도록 하라고 권한다.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딸인 자신의 감정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알리라고. 언쟁하지도 말고 엄마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그 선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쓰라고 한다.

 

물론 엄마의 과거 학대나 폭언 등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내 감정도 자유를 얻기는 하다. 저자는 엄마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만 용서해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버려 스스로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르시스트 엄마 아래에서 학대받고 자란 딸들이 처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엄마 자격을 고민하게 되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고. 말보다 행동과 태도에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폭력적 언행을 자제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더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본인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너무 자책 말라고 위로한 후,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단지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뿐이니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권한다.

 

치유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순식간에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 마법은 없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또 수치심을 느끼지도 마라.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거듭나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자아다.

- 274쪽에서 인용

 

이렇듯 이 책에는 나르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라서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 있다. 유용했다. 약 기운이 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애써 봐야겠다.

 

읽어가다가 계속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남존여비사상(잠시 분노하고 지나간다. 뭐 좋은 거라고 '사상'이라는 이름 붙이나 모르겠다. 강간'문화'에는 그렇게 경기하는 사람들이!!!)이 창궐하여 한국만 유독 모녀 관계가 어려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서양에서도 이렇게나 망한 모녀 관계가 많다니. 뭐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서양  저자가 쓴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이건 보편적인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딱 패턴이 어머니 본인이 부모, 남편, 사회로부터 여성 약자로서 받은 억압과 스트레스를 더 약자 여성인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는 악순환이다. 그 강력한 증거가 이 책에도 나와 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자기 엄마가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인줄 모르며 엄마와 이런 관계의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여성 혐오 문화 아닐까. 아놔, 대대로 후진 패턴이 반복되며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이 문제를 어찌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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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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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를 막론하고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집을 떠난다. 자신의 운명을 찾아 과감히 떠난 아이들은 세속적인 성공은 물론, 자아의 성장과 독립도 이루게 된다. 


여우 누이, 아버지의 유물, 구렁덩덩신선비, 세상에서 제일 큰 참깨나무, 바리데기, 삼공본풀이, 장화홍련전, 심청전, 장자못 전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 등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여기에 서양 이야기를 더한다. 작가가 있는 그림동화나 페로동화라고는 하지만 구전되던 설화를 채록하여 저자가 가필한 작품들이기에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한 이야기들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잭과 콩나무, 장화 신은 고양이, 황금 거위, 흰눈이와 빨간장미 등을 다룬다.

 

저자는 길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미를 다정하게 설명해 준다. 머문자보다 떠난자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의 의지로 모험을 떠난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바리 공주, 팔려간 심청이, 숲에 던져진 백설공주처럼 피치못한 상황에 처해도 스스로 떠난 아이들처럼 살 궁리를 하고 움직여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궁전에 다녀 온 신데렐라처럼 앉아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길을 찾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화와 홍련이를 보라. 방에서 서로 끌어앉고 울기만 하다가 계모의 음모에 휘말려 죽는다. 둘은 귀신에 되어서야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산 사람은 떠나고 움직여야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 어떤 상황일지라도 창의적 사고와 도전적 태도가 중요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떠나면 살고 머무르면 죽는다'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가다가 목표를 수정하여 자신이 선택한 곳에 과감히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용기있는 선택이다. 브레멘에 가기 전 숲 속 작은집에 머무른 네 마리 동물의 경우를 보라. 악단 단원이 되겠다는 원래 꿈도 포기했지만 상관없다.

 

브레멘이란 어디 특정하게 정해진 곳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식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인생의 행복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 140쪽에서 인용.

    

구비설화라는 것이 너무 동화로만 알려져 있어서 식상한 권선징악 주제에 체제수호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없어 더 좋았다. 그림동화집에 나오는 <땅속 나라 난쟁이>의 주인공인  한스는 난쟁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버릇을 고쳐준다. 무조건 착하게 굴지 않고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고 그름을 가리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행운을 얻는다. <흰눈이와 빨간 장미>의 주인공 소녀들은 배은망덕한 난쟁이가 화를 내도 신경 끄고 쿨하게 자기 볼일을 본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데 괜히 자신들이 상처 받을 필요가 없기에. 멋진 캐릭터들이다.  내가 몰라서, 덜 읽어서 그렇지 사실 옛이야기는 그리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우리나라 구비문학 쪽 읽다보면 신동흠 선생님을 계속 만나게 된다. 제자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지만 선생님께 많은 빚을 졌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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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페미니즘 - 함께 공부하는 여성권 강의 사회운동 작은책 2
이유미 지음 / 사회운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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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분이 직접 몇 년간 페미니즘 주제로 노동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세미나에서 토론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실용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성폭력 문제를 노동권 측면에서 접근한 장점이 돋보인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 쟁점을 주로 다루어 출간된 지 몇 년 되었지만 낡은 느낌이 없다. 인용하고 있는 통계 자료만 업데이트해주면 스테디하게 사랑받을만한 책이다. 얇지만 내용이 충실하다. 콤팩트형 서바이벌 키트같은 느낌?  

 

저자는 강조한다.  성폭력 예방 문제를 매녀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되는 개인적인 문제라거나 주변에 여성이 있을 때 언행을 조심하는 정도의 도덕적인 의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서술한다.  전체적인 여성 억압의 현실이 어떤지,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이 받는 차별과 성적인 폭력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는 것. 그래서 사건 발생 때 잠깐 관심 가졌다가 마는 것 같은 문제 말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성역할 구분과 그로 인한 위계,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고 남성의 공격적 성욕을 본능처럼 생각하는 이중적 성규범,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풍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 사회적 문제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조직 안에서 여성 동료에게 술 따라라, 연애하자는 식으로 치근덕대는 행위, 밖에 나가서 성매매하고 도우미를 부르는 행위, 여성노동자가 관리자와 고객으로부터 성희롱 당하는 현실이 모두 동일한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 본문188쪽에서 인용

 

또한 성폭력은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노동할 권리를 침해한다. 가해자는 위력을 가진 직장 상사뿐만이 아니다. 온갖 갑질하는 인간들이 가해자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생기는 젠더 폭력이기 때문이다. 음란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는 콜센터 노동자라든가 백화점, 마트, 식당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당하는 성폭력도 직장 성폭력이다. 직장은 '고객이 왕'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방치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경우 파견 관리하는 정규직 남성 사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직장 성폭력은 불륜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본 노동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딛고 있는 조건을 혁신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싹틔웁시다.

- 본문 189쪽에서 인용

  

독서 모임에서 활용하기 좋게 각 챕터마다 토론 거리를 주고 있어 더욱 유용하다.  제목 대로 '지금 여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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