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다녀온 전시회들은 입소문으로는 '역대급'일지라도, 실제 가보면 인생샷 배경으로 스스로 낮춘 전시라는 인상을 받아서 웬만한 강추 리뷰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키스 해링의 작품은 어디에선 지 기억은 안 나더라도 많이 보아왔기에 왠지 겉만 알고도 아는 듯 착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의 이름이 Kiss가 아닌 Keith Haring임을 검색하다 알게 된 이상 부끄러워서라도 꼭 전시회 가봐야겠단 결심이 생겼지요. 전시회장이 유치한 DD도 평소 지나치기만 했지, 내부에 들어가 본 적 없으니 자하 하이드(Zaha Hadid)의 DDP도 구경하면, "키스 해링展" 나들이는 "꿩 먹고 알 먹고"의 보람 삼겠다는 예감이 들습니다. 그 예감, 잘 맞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운 전시 다녀와서 10,000보 걸었더라도 다리도 가뿐, 마음도 흐뭇합니다.


DDP 구조를 미리 살피고 갔더라면 헛걸음을 안 했을 텐데, 곡선 건물 외곽을 따라 반바퀴 크게 돌고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2층 내려가는 뱅뱅 맴맴을 했습니다. 헤매다 원점으로 돌아와 매표소를 찾았습니다.

매표소 못 찾아서 문의하시는 분들, 저뿐만은 아니어서 창피함은 덜 했습니다. 신한 카드 소지자는 20% 할인받으실 수 있어요. 저는 '고작 몇천 원'하며 그냥 갔다가, 기념품으로 티셔츠 2벌을 제 값 다주고 사려니 속이 쓰렸어요. Goods 구매 시, 신한카드로 결제하면 10% 할인받을 수 있거든요.


도슨트는 11시, 13시, 15시, 17시 평일에만 4회 진행합니다. 3시 20분에 입장한 저는 도슨트를 포기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어요. 신분증이 없으면 신용카드를 맡겨야 하므로, 오디오 가이드 대여하실 분은 꼭 신분증 챙겨가세요.

전체적으로 키스 해링전의 기본 설명 틀은 키스 해링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많이 의존해 짠 듯하더군요. 전시회 다녀와서 아래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는데, 전시회에서 소개했던 짤막한 동영상들 출처가 이 다큐였어요. https://youtu.be/GPlzHR_WyVA



전시장 입구에서 "키스 해링" 展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티스트 대형 사진에 대형 작품 이미지, 덕분에 입장 전부터 기대 수치가 올라갑니다. 단순화된 아이콘, 왜 키스 해링이 그래피티 하면서 최단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단순화된 이미지를 그렸는지를 금새 알게 되었어요.


전시장 들어서면, 짐작대로 "뉴욕"에서의 키스 해링부터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키스 해링이 1980년대 뉴욕 지하철에 낙서 같은 분필 그림들을 그려대면서 유명해졌다는 건, 다들 아시는 이야기니까요. 키스 해링은 경찰에 잡혀갈 위험을 되레 짜릿한 스릴 삼아, 지하철역 광고판의 검은 바탕을 생기 넘치는 선들로 채웠어요. 엄청 빠르더라고요. '치고 빠지기' 전략이 생각났어요. 잽싸게 그리고 잽싸게 자리를 뜨기. 하루에 40점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더군요.


소수 엘리트만 향유하는 예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꿨다던 키스 해링. 자신은 예술가로 태어났기에 가능한 한 많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강렬한 소명의식도 보입니다.

The Public has a right to art

The public is being ignored by most contemporary artists

....

Art is for everybody.

키스 해링의 일기장 中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키스 해링,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유명한 baby 아이콘 외에도 키스 해링의 다소 음란한 이미지 작품도 볼 수 있었네요. 또한 키스 해링이 다른 아티스트나 셀러브리티들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도 처음 알았어요. 예를 들어, 80년대 미국 자타공인 최고 미녀 브룩 쉴즈와의 사진작업, 그 전설적인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Bill T. Jones와의 바디 페이팅 작업, 스스로를 상업화시킨 아티스트라는 평가에서 공통점이 많은 앤디 워홀을 모티브로 한 'Andy Mouse'까지. 특히 저는 아름다운 뒤태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는데 빌 T. 존스의 몸이라니 작품 앞에서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빌 티 존스의 팬이라면 키스 해링과의 작업과정을 담은 아래 동영상도 감상해보세요.

https://youtu.be/iw2hADJQrmo



이 전시회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저는 키스 해링을 예술계의 엘리티시즘에 반발한 독창적 이단아이자 성공한 아티스트쯤으로 생각하고 그쳤을 거예요. 키스 해링은 31살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기 전에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냈더군요.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고 아마도 그의 작품으로 상상하건데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람들 만나고 작품 팔고 돈 벌고, 또 다시 아이들과 사회 소수자(특히 성 소수자)를 위해 그 돈 환원하고....

우주 비행선과 외계인, 우왕좌왕하거나 혹은 외계존재를 우상화하는 사람들 이미지는 키스 해링 초기 작품에서도 등장하던데, '탈핵무기'를 주장하는 포스터가 참 인상적이지요?



그 외, 앨범표지 작업도 많이 했더라고요. "Album Art" 라고 부르네요



공공 장소에 놓일 대형 조각이나 배너 등의 작업도 했습니다.



독창적인 그림책도 있습니다. 20개의 이미지를 두고, 보는 이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작품인데요. 직접 20장의 그림을 눈으로 천천히 감상하며 이야기 만들어보심이 어떠할까요?



키스 해링, Untitled (1985)

전시회 외벽 대표 이미지화한 작품인 "무제 (1985)"는 직접 보니 규모가 상당하네요. 밝음 에너지 뿜뿜. 발랄하고 통통 튀니 아무튼 가까이 두고 싶은데, 작품 메시지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키스 해링에 대한 글들을 읽다보니, 그는 반전, 소수자 인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가볍게, 대중에게 어필하도록' 표현하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고 하니까요.



말 그대로 '눈 떠보니 명예와 부'를 거머 쥔, 예술계의 스타 아이콘으로 떠오른 키스 해링. 성공하면서 삶의 반경도 분명 뉴욕 밖으로 넓어졌습니다. 일본, 이집트,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경험 세계가 깊어지자 작품에서도 그 폭과 깊이가 느껴지네요. 예를 들어 이집트 방문 경험은 아래와 같은 피라미드 형상의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피라미드를 가까이서 보면, 역시나 해링의 아이콘들이 버글버글.






마찬가지로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 토착미술에 영감 받은 작품.



죽음을 모티브로 그렸다지만, 역시나 키스해링스러운 발랄함(?)이 느껴지는 작품. 전시장의 핑크와도 색감이 어울립니다.



이 리뷰를 쓰며 키스 해링을 검색해보니, 그는 '게이 아트' 예술가라고도 불리는 군요. '아기' 형상을 대표 아이콘으로 내세우고, 평소에도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아이들과 작업도 하고 아이들을 돕는 일도 많이 했다기에 저는 그와 그의 작품에서 섹슈얼리티를 더해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막상 이번 전시회에 가보니, 눈만 크게 뜨고 본다면 엄청 섹슈얼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그의 작품에 많이 배치되어 있네요. 특히 그가 유명해지기 전 그려서 많이 팔았다는 작품의 원본 이미지들을 보니 놀라웠습니다. 하긴, 새삼 '놀랍다'고 하기엔 그는 늘 금기를 무시하고 금기를 넘으려던 캐릭터였죠?




천재는 요절한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요즘처럼 SNS 채널이 활성화되기 이전인 80년대에도 충분히 자신을 적극 드러냈기에 이름을 제대로 남기도 떠났네요.



Shop을 운영하며 대중들이 쉽게 그의 작품,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도록 팔았다네요. 이번 DDP전시에 판매 중인 작품은 생각보다 저렴했어요. sold out이 많아서 원하는 옷을 고를 수는 없었지만 저 역시 기념품을 남깁니다. 이렇게 키스 해링은 대중의 마음을, 욕구를 잘 읽었나봅니다.




일단 출구로 나오면 재입장 불가, 다시 한 번 더 들어가고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전시였습니다. 시간 여유두고 천천히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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