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심장을 가진 로봇 라임 그림 동화 17
알베르토 피에루스 지음, 김지애 옮김 / 라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알베르토 피에루스 퀸타나(Alberto Pieruz Quintana).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해온 작가인데 『시계 심장을 가진 로봇』으로 한국 독자들을 처음 만났지요. 제목만 보아서는 로봇이 주인공인 SF영화스타일 그림책인데, 첫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인물은 꼬마 루카스랍니다. 모두 바삐 움직이는 도시에서 시계 자주 보기를 거부하고, 시간표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소년이었지요. 그런데 소년과 함께 사는 마누티 할아버지는 시간 지키는 걸 어찌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집안 곳곳에 시계를 놓아두고 시간에 따른 규칙들도 많이 세워놓았지요. 루카스에게도 규칙과 시간 지키기를 강조했고요. 자, 과연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고 싶어하는 루카스에게 이런 규칙이 행동 다듬기에 효과가 있었을까요? 

 

 

혼자서는 그 무거운 "규칙 엄수"에의 중압감을 견딜 수가 없기에 루카스는 상상의 친구를 불러내었지요. 덩치가 아주 크고, 루카스처럼 통통 튀는 빨간 풍선을 쫒고 있던 로봇 말이에요. 로봇은, 평소 루카스가 금기이기에 넘지 못하던 선들을 쉽사리 넘었어요.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녀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는데 심지어는 욕조 수돗물을 콸콸 틀어서 온 집안을 물바다로 만들고 미누티 할아버지의 시계들도 망가뜨렸지 뭐예요. 손주를 끔찍히 아끼는 미누티 할아버지이건만, 아끼는 시계를 몽땅 망가뜨린 루카스에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죠. 루카스는 집을 떠났어요. 엄밀히는 잘못을 저지른 미안함에 도망나온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루카스와 로봇이 도착한 세계에는 시계도, 시간표도 규칙도 없었어요. 아무도 없으니 잔소리 할 사람도 없었지요. 놀고 싶을 때 놀고, 벌러덩 들판에 드러눕고 싶으면 눕죠. 자유로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이, 미누티 할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루카스. 같은 시각, 미누티 할아버지 역시 손주가 그리워 애타게 찾아 다니고 있었지요. 정확히 12시간 5분 12초 후, 미누티 할아버지는 루카스를 찾아냈고 루카스 역시 흔쾌히 집으로 돌아가자 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미누티 할아버지께 시계를 받았고, 시간의 중요함을 느낍니다.  역으로 손주에게 시계를 준 미누티 할아버지는 시계에 얽매일 게 아니라 진정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지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손주와 할아버지가 서로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동시에, 살면서 시간과 의무감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우뚝 서는 법을 깨우치게 되지요.

 

시계를 손주에게 주고난 미누티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을 뜨고 있네요. 작가 알베르토 피에루소 퀸타나는 이 그림으로 무슨 뜻을 나르고 싶었던 걸까요?  『시계 심장을 가진 로봇』을 읽으며 가장 오랜 시간 응시한 일러스트레이션이었습니다. 스페인어만 잘 한다면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물어보고 싶은 지경으로 궁금했어요.

 

 

시간 엄수 강박증에 걸린 도시인들을 등장시키는 그림책에서는 흔히 시간강박을 부정적인 태도로 묘사하는데    『시계 심장을 가진 로봇』에서는 시계로 대변되는 인간 사회의 규칙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이왕이면 시간 분배를 자기 행복 중심으로 하라는 응원도 하니 참신했습니다.

 

 8살 꼬마에게는 다소 어려운 철학적 그림책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꼬마가 써놓은 독후감을 읽어보니 루카스에게 격한 동감을 하며 8살다운 이해를 했네요. 아이도 시간에의 압박을 느껴왔고, 벗어날 수 없이 죄여드는 학원 스케줄보다는 좀 더 자기가 주인되는 능동적 시간표만들기를 원했나봐요. 독후감을 읽으며 꼬마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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