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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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던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톤 텔레헨의 두 번째 어른 동화 소설이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은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전작의 주인공은 소심하고 걱정 가득한 고슴도치였다는데, 이 작품은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를 보여준다. 자꾸만 떨어져 다치고 후회하면서도 매일 다른 나무에 오른다. 주변의 다른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원서에는 없다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도 들어 있어 코끼리의 마음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담한 판형에 여유있는 여백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기 쉬운 편안한 휴식 같은 느낌을 준다. 읽기에 적당한 활자와 파스텔톤의 그림도 사랑스럽다.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는 코끼리의 모습을 보니,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이는 얼마나 고정관념에 묶인 말이며 인간의 꿈과 목표에 한계를 긋는 말인가. 예전보다 유연해져서 이 속담을 곧이듣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더러는 그렇지,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곤충도 나온다. 땅 속에 사는 두더지와 지렁이, 하루살이, 바퀴벌레, 심지어 진딧물 같은 작은 생물까지 나오는데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존감이 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제각각 코끼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바쁘다. 커다란 귀와 코가 달린 자신의 모습이라든가 코끼리의 행위(나무에 오르기)를 상상해본다. 어떤 동물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엄청 부러워하기도 한다.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상상의 늪을 헤매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와, 결국은 내가 나여서 얼마나 다행인지모른다며 안심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여러 곤충, 동물들의 생각을 엿보는데,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시작은 했는데, 여기저기서 걸림돌을 발견한다. 좀 더 편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고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여기 거북이의 머릿속을 보자.

내가 코끼리라면, 코와 귀가 가장 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리고 하루 종일 나무에 올라가야 하더라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거야. 그래도 거북이 등딱지 하나 장만해둬야지.’

(중략)

만약 나무에서 떨어지면 등은 바닥을, 몸은 하늘을 향한 채 등딱지로 떨어질 거거든. 내 등딱지에는 혹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어.’(P103)

 

 아마도 여기서 등딱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덜 다치도록 하는 완충재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코끼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다리 하나는 이쪽에 걸치고 있다가 실패할 경우 돌아올 곳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생각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 이건 이런 경우구나 하고 내 결점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찔리고 웃음이 난다. 작은 곤충, 땅속 동물, 바다, 땅 위에 사는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킨 것은 수없이 다양한 환경과 다른 처지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리거나 빈정거리던 친구들이 조금씩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기에 이른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나를 둘러싼 가족이나 지인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돌아다보게 한다. 힘찬 응원을 보냈는지, 어땠는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살짝 위트 있는 그러나 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걱정은 우선 멈추고 일단 한 번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해 준다.

 

친애하는 코끼리에게

 

방금 네가 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너는 지금쯤 나무 밑 땅바닥 어딘가에 쓰러져 있겠지.

너는 아플 거고, 어쩌면 여기저기가 죄다 부러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

매번 나무에 오르고 오를 때마다 떨어지는 너를 우리가

끔찍한 바보로 여긴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 우리는 네가 바로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존경스럽기도 해!

우리는 못 하는 건 절대 안 하지만, 너는 하잖아.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하고 재고 따지는데,

너는 일단 시작하고 보잖아.

우리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 판단할까봐 두려운데,

너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것 같아.

(중략)

그러니까 코끼리야, 우리 말 듣지 말고 계속 나무에 오르길 바라!(P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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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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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고전적이고 품위가 느껴져서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영국이 낳은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로버트 해리스의 종교 스릴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교에 대한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황이란 위치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사명감 이외에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직접 만날 일도 별로 없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그 성직자들의 세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처음엔 몰입이 잘 안 되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허리를 곧추세워 앉게 만든다. 사건이 사건이니 만큼 언론과 방송은 교황청에 주목을 하고 있으며 선거의 분위가 상황을 중계하듯이 실감나게 세세하게 묘사된다. 성직자는 속세의 생활과는 매우 다르고 고귀한 인품이며 한없이 넓은 마음을 기대했는데, 읽어 나가다 보니 웬걸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성직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 성직자들의 야망이 속속 드러나고 서로를 질투하며 험담하는 분위기가 분분하다. 중간 중간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복선을 깔아놓고 여지없이 반전으로 폭죽을 터뜨린다. 독자가 생각지 못하고 건너뛸 것 같은 이야기가 반전이 된다.


 전 세계 117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다. 콘클라베,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는 이곳 시스티나 성당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공식 명단에 없던 한 명의 추기경이 있었으니 의중 결정 추기경으로 이름을 올린 베니테스 추기경이다. 그리하여 118명의 추기경이 되었고, 선거인단 3분의 2, 79표를 얻어야 교황에 선출된다. 원칙에서 벗어난 이 추기경의 숫자는 이야기에 어떤 반전을 예고하는 건 아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추기경 단장 로멜리는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떠맡게 된다. 국가 출신도 다양한 추기경들이 후보에 오르면서 기득권의 입김이 거세진다. 물론 로마의 교회를 살리기 위해 교황직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탈리아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비밀회의가 시작되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판의 선거를 방불케 한다. 후보를 음해하고 방어하는 공작이 난무한다. 만국의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로서 이래도 될까 씁쓸해지기 시작한다. 우선 유망한 후보는 알도 벨리니, 조슈아 아데예미, 조지프 트랑블레,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이다. 전통적인 선거는 다섯 번째에 결론이 나왔다는데, 여섯 번 일곱 번째가 넘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로멜리 자신의 지지도 점점 올라간다. 자신은 자격이 안 된다며 사양하면서도 지지율이 높아지자 내심 우쭐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가 아닌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완전무결한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그보다 더 금상첨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직자도 사람일진대, 아무런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과오를 파헤치느라 여념이 없다. 총체적비리로 인해 트랑블레는 성하의 마지막에 면담으로 해고를 당했다는데, 모든 것을 숨기고 잡아뗀다. 비밀스런 밀실에서 은밀히 주고받은 대화를 무엇으로 증거를 확인할 것인가. 증인이 있는데도 중상모략이라고 밀어붙인다.


 과연 교황을 선출하고 흰색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막판 뒤집기 묘미를 보며 수년 전 대통령 선거가 생각난다. 밤을 새워 지켜본다며 잠깐 졸던 중 역전승의 환호에 잠이 달아나고 새벽이 밝아오던 기억. 일곱 번의 투표는 연습이었던 것일까? 여덟 번째에 드디어 교황이 탄생한다. 이 콘클라베의 마지막 반전은 참 웃긴다고 할까. 그간의 통념을 완전히 깨며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다. 신보다는 관직에 연연하는 성직자들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전통적이고 경직된 남성 우월의 권위적인 성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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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기술자
토니 파슨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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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품의 도입부 프롤로그는 한 소녀가 학교의 음침한 지하실에서 여러 명의 사내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대마초에 취해 몽롱한 틈을 타서 상처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탈출한다. 물론 도망가다 걸려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고 소녀는 온 힘을 다해 누군가의 눈을 푹 찌른다. 가까스로 도로까지 나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조금 전 제일 악랄하게 굴었던 뚱보 녀석, 아까 그 놈들이다! 사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는데 다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이런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면 보통은 언론과 신문에 떠들썩하고 제보를 요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난리가 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덮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다.


 화자인 울프 경장은 딸 스카우트와 애견 스탠과 같이 살고 있다. ‘죽기로 작정한 남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워 신원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스와이어 총경은 철수를 명령한다. 하지만, 울프는 명령에 불복하며 경찰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감()으로 용의자를 잡으면서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강력계의 신참이 된다.


 어느 날 35세의 유능한 투자은행가 휴고 벅의 시신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청소부에 의해 발견된다. 아무도 그의 비명이나 의심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새벽시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건물인데도. 소리를 치려면 공기가 필요한데 기도(氣道)가 베여서,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칼에 목을 절단하여 머리가 댕강 잘릴 뻔 한 모습... 끔찍하다. 아무 흔적 없이 살인을 하다니 그야말로 살인 기술자가 아닌가. 흔히 있을 법한 지문도 없다. 더구나 장갑지문조차도 발견되지 않아 맬러리 경감을 비롯한 수사팀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아내가 딴 남자에게 가버려서 다섯 살 난 딸과 살고 있는 외로운 형사 울프는 의외로 예리한 데가 있다. 상관인 총경의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곧이듣지 않는 강단이 있다. 여기서도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살자나 외과의, 군인 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범위를 한정한다.


 선혈이 낭자한 휴고 벅의 책상엔 일곱 명의 젊은이가 군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만이 한 장 있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상당히 의외다. 가족사진도 아니고 일곱 명의 소년티가 나는 남자들이라니. , 그때 그 지하실 사건인가.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일이 휴고 벅의 살해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나 보다, 점점 빠져들면서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빠르게 읽히며 다음 장이 궁금해서 막 넘어간다. 처음엔 휴고의 아내 나타샤가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전날 경찰이 출동하는 폭력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프는 범죄 감식현장에서 나오다가 벽에 쓰여 있는 글씨를 발견한다.


돼지

피가 말라서 거무스름해진 글씨다. 이 글씨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떤 단서가 될까.


 휴고 벅을 살해한 용의자를 찾기 위해 분분한 가운데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마약에 찌든 노숙자의 시신. 목의 기도가 잘린 모습으로 범행 수법이 똑같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인식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두고 수사방향이 확 바뀐다. 그의 이름은 아담 존스. 그의 집에서 휴고 벅스의 책상에서 발견한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발견한다. 탐문 탐색을 통해 좀 더 빠르게 윤곽이 드러난다. 이들은 포터스 필드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죽은 두 사람 외에 쌍둥이 형제 벤 킹, 네드 킹, 가이 필립스, 살만 칸, 제임스 서트클리프 이렇게 일곱 명이 확정된다. ‘포터스 필드는 성경에서 따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라는 뜻이라 하는데 마치 이들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이쯤 되면 다음은 차례는 누구일까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범행에 쓰인 무기는 페어번-사익스 군용 나이프로 맞붙어 싸울 때는 이만한 도구가 없을 만큼 확실한 도구란다. 이 중에 제임스 서트클리프는 열여덟 살에 자살한 것으로 나오는데...


 한편 도살자 밥이라는 인물이 익명 서비스와 어니언 라우터라는 보안이 강화된 매체를 이용하여 SNS에 메시지를 퍼뜨리며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중 빠지지 않는 후렴구 같은 내용은 돼지를 모두 죽여라. 어느 사회나 부자들을 향한 증오심은 팽배하다. ‘도살자 밥은 부자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빈자에겐 대리만족의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영웅으로 부각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총경을 비롯한 언론 기자 등은 도살자 밥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지만, 울프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름 열심히 조사하고 다닌다. 블랙 뮤지엄(범죄 도구 박물관)이나 전쟁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실마리를 얻기 위해 바쁘다.


 한 사람씩 죽어가고 모교에서 친구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아담 존스만 빼놓고 나머지는 부유층이다. 은행가, 체육교사, 정치인, 현직 군인 대위, 변호사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있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남아 있는 친구들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단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섹스중독자인 휴고와 마약 중독자인 아담이 죽어도 싸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신변에도 위험이 닥칠까 차츰 불안에 사로잡힌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뚱보 필립스와 면담하려고 포터스 필드에 갔다가,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필립스를 마주하게 되고... 자살한 친구 포함 네 명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쌍둥이 형제, 살만 칸 이렇게 셋이다. 엄청난 반전이 있고 작은 반전들의 연속이다. 법의학자의 명쾌한 감식과 울프와 형사 연수생 에디 렌의 척척 맞는 조합도 재미있다. 놀라운 작가의 필력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니 파슨즈를 기억해야겠다. 범인은 진짜 생각지 못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음악의 천재였던 아담 존스는 친구들을 잘못 만나 마약에 찌들게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변태성욕자인 선생으로부터 정신적, 성적 학대를 받으며 일그러졌다. 면담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그들의 어두운 과거는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의 미래여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사람이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복수해 준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이다. 허점투성이인 학교, 경찰, 법원 등 지역 사회가 못해 준 일을 누군가 나서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둘렀다. 마지막까지도 숨겨져 있던 반전을 발견하며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자신이 쌓아올린 안위를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을 욕되게 하는 인간의 파렴치함을 보았다. 선함 속에 숨어 있는 악은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모른 척하고, 누군가가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있다. 이를 두고 생각나는 속담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하는 것일까. 하나의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 모든 국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지역, 국가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커다란 악을 생산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우리사회의 교육, 행정 등 지역사회의 작동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는지 여부에 일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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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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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이언 맥과이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2016년 맨부커상 후보작, 2018년 더블린 국제 문학상 후보작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배가 출입하는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부두의 풍경이 나오는데, 보통 소설처럼 평범하지 않다. 일꾼들의 고함 소리를 비롯한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한다. 특히 뱃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칠고 원색적인 욕설이 너무 놀랍고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팍팍함인가 싶어 그 오싹함에 움츠리게 되고 행여 이런 사람들 꿈에라도 만날까 두렵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 온 감각이 총동원되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석유가 등장하기 전에 불을 밝히는 연료는 고래 기름을 썼다는데, 말 그대로 고래를 잡아야 했으니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학대하고 살육을 통한 문명의 역사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자본가 백스터의 배 볼런티어호에 승선한 선원 생활 30년 경력의 선장 브라운리, 군의관 출신의 섬너가 주축이 되어 일등 항해사 캐번디시, 작살수 드랙스 등 선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섬너는 퀸즈 부두로 가는 길에 만난 다리 없는 거지에게 길을 묻다가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브라운리랑 배를 탄다고? 신세 조졌구먼. 빼도 박도 못하지.”

쪽박을 차고 싶거나, 다시는 집 구경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해줄 거야. 그 모든 걸 다 해낼 능력자니까. 퍼시벌호 얘기는 못 들었나? 그 망할 놈의 퍼시벌호 소문을, 자네가 들었어야만 하는데.”(P42)


 하지만, 광란의 인도 전선에서 푹푹 찌는 더위와 추잡함, 잔혹한 만행, 지독한 악취에서 빠져나온 섬너는 출항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다. 자연의 위대한 경이를 스케치 하려고 그림 도구와 폭넓은 독서를 할 요량으로 호메로스나 일리아드도 챙겼으며, 그 지옥 같은 인도와는 전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얼어붙은 바다 북극과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과연 섬너의 기대는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선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선장 브라운리는 급사한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으며 뜻밖의 횡재를 얻었다는 섬너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는지 의아해 한다. 웬만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하게 간파하지만, 섬너의 속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댔지만, 섬너의 속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배신, 굴욕, 가난, 불명예, 양친을 모두 티푸스로 잃은 것까지 좋은 기회와 운을 여러 번 날렸고 계획은 금세 엉망이 된다. 어쨌건 악운과 불행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들 했다.


 살아남은 것 자체를 운이라 생각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 포경선을 탄 섬너는 서서히 깨닫는다. 북극곰을 사냥하면서 짜릿한 흥분과 장인의 자부심을 느끼는 드랙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덮으려는 분위기에 자신이 포악한 무법자들 틈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장 브라운리는 돈만 아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악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눈감아 주는 사람이다. 다른 두 인물 작살수 드랙스와 섬너의 대결 구도가 단연 돋보인다. 드랙스는 악랄한 성격에 생각 자체는 없고, 바로 행동이 먼저인 흉악한 인물이다.


생각은 무슨?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란 사람은 내키는 바를 따를 뿐이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필요하면 하는 거지생각 같은 것은 별로 안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생사를 같이 한다니 볼런티어호 사람들이 온전할까 간담이 서늘해진다.


 항해 중에 열세 살의 사환인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남자아이가 성인 남자에게. 이상하게도 아이는 누가 그랬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브라운리는 매켄드릭을 의심하여 취조하고 투옥시키지만, 의사인 섬너는 특유의 예리한 촉각과 직업적 감각으로 전말을 밝혀낸다.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릴 있고 가독성이 있다.


 결국 포경선 볼런티어호는 난파되고 선원들은 하나하나 죽어가고 마지막에 한 명만 남는다. 작살수이지만 신비주의자인 오토의 예언대로. 억세게 운이 좋은 섬너라고 해야 할까. 결국은 돈이 걸린 문제였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울타리에서 온갖 피비린내와 악취를 풍긴 셈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사지로 내몰고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선한 끝은 있지만, 악한 끝은 없다더니 드랙스는 백스터의 계획과 달리 섬너의 손에 죽는다. 그렇다면 섬너는 진정 선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선한 부류에 속하지만, 선을 끝까지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다. 볼런티어호에서 벌어진 진실을 알리려 했던 섬너는 백스터를 만나러 갔다가 돈을 받고 타협한다. 진실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이다. 근본적인 진실이 두려워 외면하는 부류가 되어가는 자신이 소름끼치면서도.


 어쩌면 작가는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살육을 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서 벌인 온갖 악행에 대한 벌을 불협화음, 살인, 조난, 난파의 고통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퍼시벌호에 탄 선원들이 모두 죽거나 미쳐가는 사고를 내고도 브라운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볼런티어호를 운항한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듯이 온갖 악은 우리의 삶에서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극한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 묘사와 생생한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나, 생각지 못한 반전의 연속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길 밖에 안 되는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무한하지 않은 인생, 자연을 둘러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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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책읽기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의 종류와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사실 책 한 권을 읽어내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지식과 교양의 배양이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힘든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등 많은 이유로 책을 읽지만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원하는 만큼 지식이 쌓이거나, 획기적으로 삶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왜 그 소수의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핑계는 여러 가지가 나올 것이다. 이 만큼만 하는 정도로 만족하거나 소위 변화를 부르는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하는, 끈기와 용기가 부족함 일수도 있다. 책읽기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으로 나온 책 인 것 같다. 이 작품은 대학시절 글쓴이가 책이 과연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란 주제로 토론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모두 담았다 한다.


 이 책을 접하면서 책과 고양이라는 소재도 물론이거니와 우선 작가의 이름에서 묘한 호기심이 일었는데, 나의 추측도 맞아떨어졌음을 알게 되어 무척 흥미를 끌었다. 바로 열렬한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자 고양이 마니아로 알려진 의사이기도 한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草枕)의 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적절히 조합하여 따온 이름이 나쓰카와 소스케 라고 하니 그 재치와 기발함에 미소가 절로 난다. 고양이 마니아답게 살짝 냉담하면서 철학이 엿보이는 얼룩고양이를 등장시켜 가벼운 환타지를 가미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다. 소설 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는 다큐 같은 느낌도 든다.


 고등학생인 나쓰키 린타로는 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한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매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살다가 가장 가까웠던 혈육이 갑작스레 떠나자 그 충격 때문인지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서점에만 박혀있다. 다른 사람이 걱정하니까, 학교에 나오라며 친절한 말로 배려를 하는 단골손님인 선배 아키바, 특별히 친하진 않지만 가끔 알림장을 건네주러 반장 유즈키 사요가 들를 뿐이다. 일면식도 없던 린타로의 고모는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 여러 도움을 주고는 서점 문을 닫고 고모네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이 공간이 유일한 피난처이며 안식처였던 린타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서점이 문을 닫을 상황임을 알게 된 아키바는 프루스트 전집이며 좋은 장서를 가지고 있는 서점은 여기 말고 없다면서 애석해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딱히 마음의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린타로를 둘러싼 환경에도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갑자기 얼룩고양이가 나타나더니, 어느 장소에 책이 많이 갇혀 있으니 그걸 구하려면 네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린타로는 꿈을 꾸는 것인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데 여전히 눈앞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이 기묘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하지만,


중요한 건 항상 이해하기 힘든 법이지. 2. 많은 사람들이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P33)라며 어린 왕자의 구절을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신기해하며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간다.


 그래서 얼룩고양이와 함께 기이한 모험을 떠나는데...

어두컴컴한 서점 안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통로를 따라 신비한 모험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흔히 책벌레들의 몇 가지 유형을 만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자신은 책을 아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면서 한 번은 읽지만, 두 번 다시는 읽지 않고 오 만 권이 넘는 책을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하고 있는 대 저택에 사는 남자다. 책을 가둬 두고 있는 셈이다. 남에게 과시하려는 허영심과 보인다. 겉모습은 있는 척 하면서 내면에는 알량한 껍데기만 쌓여있는 빈곤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아차, 하고 놀라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P65) 린타로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떠올리며 남자에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며 당신은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에 처음엔 오만불손했던 사내가 망연한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별안간 갇혀 있던 책들이 수많은 철새들처럼 날아오른다. 사물이 날아드는 환타지의 전형적인 장면. 이리하여 첫 번째 미궁에서 갇힌 책을 구하는 임무 완료다.


 이렇게 얼룩이와 모험은 계속된다. 두 번째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들으면서 독서의 효율화라는 연구를 위해 책을 싹둑싹둑 자르는 학자를 만난다. 자신의 연구가 완성되면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파우스트도 단 2분이면 읽을 수 있다면서. 이미 책은 세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계속해서 나오는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빨리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그다지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속독을 하기 위해 줄거리만 요약한 책에서 독자들은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책이 어렵고, 그래서 읽지 않고 사라지는 책을 방지하기 위한 핑계로 압축시켜야 한다는 이 연구자를 이번에는 어떤 재치로 설득시킬 것인가...


 세 번째 모험은 팔아치우는 자바로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다. 꽤 오래전부터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진열되고 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분야든 더 이익을 주는 효자상품이 있기 마련이다. 책도 고전이나 명작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팔리지 않는 책은 서점에 구비하지 않게 되고 실용서, 베스트셀러 위주의 소위 이익을 많이 안겨주는 책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자극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폭력이나 노골적인 성행위를 안겨주면 돼요. 상상력이 없는 독자에게는 실화라고 한마디만 곁들이면, 그것만으로 발행 부수가 수십 퍼센트 올라가고 매출은 순조롭게 성장해서 만만세!”(P186)

참으로 출판계의 현실을 꼬집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자극에 예민하게 환호하는 독자를 끌어들이고, 업계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곧 식상해진 독자에게 또 다른 책을 들이밀게 될 것이다. 모든 책에서 배울 게 있다고는 하지만, 출판계는 양서를 발굴하고 책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험이 진행될수록 만나게 되는 상대는 좀 더 어려워지고 책에 대한 이야기도 심도 깊은 주제가 된다. 책의 힘이란 무엇일까,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주제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미궁에서 린타로는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끌려간 유즈키를 구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해서 구해 낼까. 어쩌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얼룩고양이와 함께한 환상적인 구성으로 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잊고 있던 것에 되새김을 주는 것 같다.


책에는 마음이 있지. 소중히 대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을 가진 책은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반드시 달려가서 힘이 되는 법이야.”(P228)라는 생각이 린타로의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얼룩고양이와 린타로, 유즈키와 함께 제각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기이하고 유쾌한 모험이었다. 린타로가 많이 들었던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얼룩고양이는 갑작스레 떠난 할아버지가 보낸 분신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갑작스레 떠난 할아버지가 없는 쓸쓸한 공간에 놓여 있는 의기소침한 손자가 안쓰러워서, 학교도 나가지 않고 서점에 처박혀 있는 손자에게 앞으로 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준 것은 아닐까.

 

 새벽 6시에 일어나 서점을 청소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는 린타로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하다. 예전에 막연하게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생각. 돈을 벌기 위한 서점은 힘들고 복잡해질 것 같다. 돈 이야기 말고 책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 작품이 대리만족으로서 서점주인 린타로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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