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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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는 문학성 넘치는 스릴러라는 호평에 이 책을 만나기전부터 설렜다. 하지만 보통의 추리소설처럼 긴장감 같은 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심리소설인가 할 만큼 주인공의 내면의 불안이나 공포가 세밀히 묘사되어 어린 범죄자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윌리스라는 이름의 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열두 살의 소년 앙투안은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 쿠르탱 부인과 살고 있다. 자신의 평판을 생명만큼이나 집착하는 쿠르탱 부인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앙투안에게 따르도록 한다. 비디오 게임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자 옆집 개 윌리스 만이 유일한 위안의 대상이다. 그 윌리스가 어느 날 자동차에 치어 옆구리와 다리가 부러졌는데, 수의사를 부르기는커녕 개 주인 데스매트 씨는 엽총으로 쏘아 죽인다. 앙투안을 그 장면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마음은 찢어진다. 우울한 성격에 분노의 성향을 갖고 있는 이 소년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자신의 아지트였던 생퇴스타슈 숲 너도밤나무 위에 지어놓은 오두막을 모조리 때려 부순다.


 하필 이 때 나타난 가여운 레미, 앙투안을 숭배하여 졸졸 따라다니던 여섯 살의 레미다. 레미를 보자 앙투안의 맹렬한 분노가 되살아나고 작대기로 마구 후려치고... 영문도 모른 채 당한 레미는 싸늘하게 죽어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앙투안, 그 맹렬했던 분노는 이제 거대한 공포로 바뀐다. 열두 살 소년의 머릿속은 이 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계산하기 바쁘다. 교도소 감방에 있는 자신의 모습,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엉엉 울고, 레미에게 왜 죽었느냐고 뺨을 후려치는 동작을 하며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경악을 금치 못 한다. 경찰에 자수해야지 하다가도 죽은 개가 담긴 쓰레기 자루의 영상이 떠올라 치우기로 한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공포 속에서 죽은 레미를 업고 얼마나 걸었을까, 앙투안은 생퇴스타슈 숲 너도밤나무가 쓰러진 구덩이 밑으로 죽은 레미를 밀어 넣는다.


 이제부터 앙투안의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발적인 일이었지만, 살인 전의 삶과 살인자가 된 시점의 사람의 내면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게 보이려고 애쓴다. 방송은 보발 지역의 여섯 살 어린 아이의 실종 소식을 전면 보도하고 군경의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의 봉사도 지원을 받는다. 앙투안은 군경의 탐문에도 응하게 되고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도 없다. 한번 거짓말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한다. 불안한 나날이 엄습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코발스키 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불려나갔다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다.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며 도망칠 생각도 하지만, 여러 가지가 발목을 잡는다.


 아직까지 레미의 죽음은 앙투안 밖에 알지 못한다. 피해자인 데스매트 씨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유괴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베르나데트 부인을 도와주고 부축해 주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앙투안은 너무 괴롭다. 레미를 살려내서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머니와 같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라니.....!

, 내가 솔직히 하나 물어보자......

그런 어린아이를 그런 식으로 유괴한다는 게.....

, 너 상상이 되니? 여섯 살 먹은 꼬마 아이를 납치한다는 게? 아니, 그리고, 대체 무얼 하려고......?

에그, 불쌍한 녀석아. 그래, 저도 이 일 때문에 힘든 모양이구나...... 정말 그 아이는 너무 착했었는데......(P124~126)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앙투안의 두려움의 심연은 레미와 자주 만난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과 영원히 숨기고 싶은 양심의 갈등으로 들끓는다.


빨리 붙잡히고 싶었다. 빨리 체포되고 싶었다.

빨리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빨리 다 털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P131~132)


 어머니의 성화로 시에서 벌이는 자원봉사 수색대에 갔다가 생퇴스타슈 숲을 수색한다는 말을 듣고 감전되듯 몸이 굳는다. 어머니의 알약을 몽땅 털어 넣고 자살 시도했다가 겨우 살아난다. 이것은 행운이 될까. 또 다른 비운의 상태에 놓이게 될까. 묘하게 어머니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앙투안은 예리하게 눈치를 챈다. 그리고 두 개의 태풍에 이은 폭우로 보발 지역은 쑥대밭이 된다. 비극의 진실이 묻힌 생퇴스타슈 숲도 나무가 모조리 뽑히고 폐허가 되어 여러 가지 단서들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이것이 앙투안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일까.


 그 후로 12년이 흘렀고 앙투안은 의사가 되었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에 다시 가게 되고, 어린시절 고약한 짝사랑으로 얼룩졌던 애밀리와 만났다가 하룻밤의 불장난. 이것은 앙투안에게 또 한 번 위기에 몰린다. 애밀리의 아버지가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종용하자, 이로 인해 어떤 일을 초래할지 빤한 상황이라 어쩔 수없이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디욀라푸아 박사의 자리를 이어받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난다. 항상 무섭게 느꼈던 코발스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범죄자의 두려운 내면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수상스럽게 여긴 복선을 마지막에 반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세상에,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알고 있는 눈치였어. 12년이나 잡히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생퇴스타슈 숲은 재정비되어 어린이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앙투안은 그 날 잃어버린 손목시계를 소포로 받으며 완벽하게 원죄를 구원 받는다. 그토록 증오하던 고향에서 작은 선행을 하며 속죄를 하며 살아가겠지.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받지 않고, 이렇게 도와주어도 되는 건가. 그 도움의 손길에는 자신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도 엿볼 수 있었다. 앙투안에게는 눈물의 감동이었겠지만, 레미를 잃은 데스매트 가족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이며 살인범도 못 찾고 진실은 묻힌 것이다. 그 점은 좀 씁쓸하다. 여타의 추리문학이 범인을 잡는 과정의 진행이라면, 이 작품은 우발적으로 살인자가 된 한 사람의 인생, 그 내면을 추적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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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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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출신 작가의 작품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간결하고 짧은 호흡의 이야기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마리암 마지디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나 우화 같은 이야기도 들어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가는데, 화자는 태아의 시선에서부터 한 살짜리 유아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되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아버지의 손, 어머니의 배와 눈, 할머니의 목소리를 테마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면은 좀 독특하게 느껴지며 천상 이야기꾼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독재자 호메이니에 대항하여 반정부 정치 모임에 참여하며 좀 더 나은 나라를 꿈꾸었으나 나아지지는 않고 형제, 친척, 동료들이 체포되거나 죽어간다. 폭력과 살인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혁명을 겪은 여섯 살의 마리암은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 지옥 같은 땅을 빠져나왔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할까. 나고 자란 땅에서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형제, 친척들과 동네 이웃들에 대한 미안함, 그들의 고통이 선하다. 낯선 이방인으로 살면서 정체성의 방황을 겪기도 하고 등지고 떠난 고국의 현실이 여전한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의대생이었던 어머니, 나름 풍족한 살림이었지만,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안정적인 울타리를 모두 빼앗기고 가난의 냄새가 풀풀 나는 파리의 허름한 아파트에 새 둥지를 틀게 된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그렇지만,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동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점점 말이 줄어들고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전 안 해본 막일을 닥치는 대로 하다가 목수로 이름을 날릴 정도가 되지만, 고국의 피비린내는 현실이 자꾸만 떠올라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마리암은 학교에서 먹지도 않고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낯선 아이들 속에 끼지 못해 도망쳤다가 할머니의 환영과 목소리를 듣고 힘을 얻는다.


 아직 어린 소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측은하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아이, 아빠들, 우는 엄마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토해낸다. 악몽을 꾸며 울부짖는 날이 계속된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자꾸 먹고 싶고, 고향집 아이들에게 모두 주어버린 장난감이 생각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움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며 상상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학교에 간 지 4개월이 되도록 말 한마디를 않는다며 어른들을 걱정을 시키고 벙어리, 외계인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던 마리암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과정은 새가 알을 까고 나오는 그것이었다. 어른들의 걱정과 우려를 오히려 즐기듯이 안에서 웅크리며 도약하기 위해 준비한다. 작품이 될 때까지 공을 들였다가 어느 날 폭죽을 터뜨리려고 내밀한 작업을 했던 것이다. 이런 야심찬 생각을 하다니. 그렇게 언어를 배우고 다듬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첫 이야기가 공쿠르 상 수상작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난 어딜 가도 내 나라에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프랑스에서는 다들 내가 이란 사람이라고 하고 이란에 가면 나를 프랑스 사람 취급해. 나처럼 두 문화를 가지고 싶어? 내 거 다 줄 테니까 나처럼 살아봐. 그러고 나서 그게 정말 멋지고 풍요로운지 말해주라고.”(P190)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이 말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두 문화를 가져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느냐고 부러워하는 대학 친구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살고 싶어 하는 파리도 이방인에게는 완벽한 안식처는 아닌 모양이다. 두고 온 것들이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사촌들과 보내던 추억, 유치원 운동장에 있던 떡갈나무까지, 고향에서 보고 듣던 소리가 희미해져가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간청하던 모국어 페르시아어. 너의 뿌리를 잊지 말라던 아버지의 음성이 떠올라 회한에 잠긴다.


 배우기를 거부했던 페르시아어를 17년 만에 다시 배우면서 마리암은 스스로와 화해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아직도 어린이를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싶고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압바스의 눈빛, 플라스틱 샌들 한 짝을 남기고 죽은 동네 젊은이, 감옥에서 만난 삼촌의 웃음, 만화 누샤베를 보며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다던 기자의 이야기 등 기억속의 이미지는 끝없이 맴돈다. 망명자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그 그늘의 안타까움을 보았다. 바꾸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세상이 여전히 공존 한다는 것도. 보고 듣고 체험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글을 쓰는 행위로 고통의 트라우마도 조금은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매혹적인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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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월송도 2 - 완결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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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로 인해 객점에서 제온과 경대승의 우연한 만남이 무척 흥미롭다. 날씨 상황 때문에 몰려온 손님으로 인해 방이 없는데, 경대승의 선심으로 제온이 묵게 되는데, 또 하나 험악한 인상의 천박한 무인 감무 강채주를 끼워 주는 바람에 좁디좁은 방 하나에서 세 명의 사내들이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좁은 방에 사내끼리 살을 맞대고 자는 것보다는 밤새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술을 사자는 강채주의 제안에 의기투합한다. 아무리 낯선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모여 앉아 내기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얘기가 술술 나오게 마련이다.


 강채주는 자신의 뛰어난 노름 기술로 여인과 혼약까지 얻어냈다고 자랑을 한다. 얘기를 주고 받다보니 경대승이 자신의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고 싫어한다는 것에 묘한 공감이 생겨 제온과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다혈질이지만 의리에 밝은 경대승은 그 혼담은 무효라며 자신이 물어주겠다고 한다. 나름 규칙을 정하는데 경대승이 이기면 은 열 근에 처녀를 넘기고, 지면 은 스무 근을 내는 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경대승이 내리 진다. 이에 제온은 은 백 냥을 걸고 자신이 이기면 계권을 찢어버리고 처녀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하자고 한다. 노름에 완전 초자 실력인 제온이 이기게 되자 경대승은 놀라며 강채주는 분을 못 이긴다. 하룻밤을 보낸 경대승은 제온에게 야릇한 호기심을 느끼는데... 이렇게 전 권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게 몰입하게 된다.


 이의방 이후의 정중부의 세상도 여전히 무법천지다. 정중부와 그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남적, 서적을 통합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승려들까지 나서게 된다. 이미 개경에는 괴이한 귀신 가면을 쓴 귀면이 나타나 무신들이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피해자는 행실이 포악하고 잔인한 자를 해치워서 민인들이 은근히 기뻐한다. 귀면은 무예가 출중해서 감히 당해낼 자가 없다. 오합지졸인 도적떼들을 한 뜻을 위해 규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붙기도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내려놓지 않는다. 권력의 안락함에 젖은 자는 뺏기지 않으려 하고 밑바닥에 있던 자들은 권력을 갖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


 제온이 충주의 사심관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만나게 된 운영. 제온의 마음과 달리 부모와 스승을 잃고 자신을 향한 자책으로 돌덩이처럼 굳은 운영의 마음속으로 좀처럼 들어갈 수 가 없다. 남편의 학대 속에 점점 미쳐버릴 것 같은 서아, 죽은 줄 알고 있었던 휘, 제온의 곁을 떠난 영로 등 제온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숨 가쁘게 진행된다.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엾기도 하고 서로 잘 맺어졌으면 해서. 휘는 또 얼마나 얼굴이 빼어나면 기녀들보다 예쁘다고 하는지. 온 상상력을 동원해서 몰입하는 재미가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눈앞에 살아있는 인물들의 영상을 보는 듯 실감난다. 자신의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한당 같은 찬술에게 온갖 협조를 제공하고는 결국 그 시커먼 손에 죽는 계랑.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약한 일개 민인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신분이 높고 재산이 많아도 마음 편히 쉴 곳, 마음 하나 나눌 사람이 없는 서아도 가엾기는 마찬가지다.


 정균 일당과 맞닥뜨린 제온, 경대승의 대적 장면은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 정균의 호위 무사가 된 영로의 칼날이 과연 누구를 향할 것인지. 같은 동지가 되었어도 커다란 일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하나의 적을 해치우려 한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은 이렇게 끝도 없는지도 모른다. 원래 적당한 선이라는 건 없는지도. 처음부터 제온과 이상이 달랐던 것처럼 정중부 부자 일당을 제거하고도 경대승은 제온을 여전히 불편해한다.


걱정스럽다는 겁니다. 장군은 군인답게 엄격한 규율로 세상을 짜 맞추려 하지만 그 규율도 낡으면 고쳐야죠. 사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그래서 시대가 변하는데도 낡은 규율에 구겨 넣으려고 하면 저항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세상과 사람이 변했는데 완전한 복고가 가능하겠습니까.”(P430) 실권을 잡은 경대승에게 이렇게 제온이 주장하지만, 기득권층은 언제나 익숙하고 자신에게 이익 되는 방향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비극과 비리가 계속되는 거겠지.


암울했던 삶 속에서 분투했던 주인공들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길을 찾아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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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월송도 1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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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부터 강한 몰입이 느껴진다. 출생의 비밀을 논하는 부분은 더더욱 그렇다. 신분사회는 출생부터 전반적인 인생이 정해졌으니 스스로 거스르지 않으면 태어난 대로 살 수밖에 없다.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혁명을 꿈꾸는 부모에 의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말방 할멈은 어찌하여 숲 속 동굴에서 살게 되었을까.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름난 산파로 일을 했는데, 홍씨 집안의 여종의 아이를 받은 날, 그 집 주인 마님도 아이를 출산한다. 지독한 난산으로 고생하다가 가까스로 아이를 낳고는 죽는다. 이 때 할멈은 주인집이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패물을 훔쳐서 달아나다가 여종과 마주치고. 옆구리에 아이를 끼고 나가는 여종과 마주쳤으나, 서로 무언의 묵인... 이것은 나중에 어떤 사건으로 변할지, 몹시 궁금해진다. 역사와 허구  사이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빼어난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 전작 <왕은 사랑한다>에서 느꼈던 몰입력을 그대로 선사한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 후 말방 할멈은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살다가 옛날 홍씨 집안 종복들을 만나게 되고 아이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실수로 인해 잿더미가 된 집에서 겨우 빠져나와 동굴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홍씨 집안의 둘째 부인 김씨는 아들 휘를 낳았고 이미 십여 년이 흘렀다. 급제 동기로 홍규직과 절친 이었던 임진출은 왕의 상소 건으로 바쁘고, 아내마저 병으로 피접 중이라 어린 딸 운영을 그 집에 맡기게 된다. 엄마가 아픈 것 말고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운영의 눈에 비친 홍씨 집안의 풍경은 기이하고 낯설기만 하다. 부친의 친분으로 맡겨졌는데 자신을 짐짝취급하는 김씨 부인의 살갑지 않은 태도, 할 말은 서슴없이 하는 소년답지 않은 제온의 태도에 놀란다.


 무차대회(無遮大會)-승려와 속인, 남녀노소와 귀천의 구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법회(주석)-에 갔다가 제온은 노비 영로와 함께 사냥을 하겠다고 빠져 나간다.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는 형을 원망하며 울다가 동생 휘가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운영도 쫓아나갔다가 휘를 놓친다. 제온과 운영은 숲속에서 헤매다가 길을 잃고 찾아든 곳이 하필 그 말방 할멈의 동굴이었고. 말방 할멈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불한당 같은 한 사내를 포섭했는데, 홍씨 집안 큰 도령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제온은 동굴 천장 틈새로 기어 올라가 그 사내에게 활을 쏘고, 운영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열세 살 소년소녀의 재기어린 행동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모험 아닌 위기상황을 같이 하게 되면서 처음에 느꼈던 거친 말투의 개망나니 소년의 모습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쪽으로 운영의 마음은 바뀌어간다. 다행히 없어졌던 휘를 찾게 되고 차츰 분위기는 안정된다. 그러다가 다음날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와 함께 운영은 홍씨 집안을 떠나게 된다.


 경인(庚寅)8월 국왕이 폐신들과 놀러 간 보현원 근처에서 왕의 호위를 맡았던 무신들 중 이의방(李義方)의 주도하에 정변이 발생한다. 왕을 호위하던 문신들과 환관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개경으로 올라와 궁궐에 난입해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으며, 함께 행동하지 않은 문신들도 도륙한다. 한바탕의 피바람이 지나자 패기어린 유생들은 민인들의 힘겨운 삶에는 안중에도 없는 왕에 대한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를 구해야겠다며 분연히 모여든다. 병든 고려를 향한 시무책을 써서 놀라게 했던 제온을 필두로 문사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허름한 술집에서 의논을 거듭한다. 그리고 제온의 스승 안장효와 그의 친구 어사대부 임진출을 초대하여 거사를 일으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 전왕의 복위를 앞세워 과거를 회귀하려는 임진출의 의견과 낡고 부패한 세상을 개혁으로 고려를 중흥시켜 민생을 구하자는 제온과 맞서게 된다. 거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단의 무신과 남적을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임진출은 5년 전 이미 원수가 된 홍규직에 대한 극심한 반감으로 그의 아들의 진실한 강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사로운 감정이 대의를 그르치는 것이다. 개혁을 꿈꾸는 자들이 첫 번째로 죽이고 싶어 할 만큼 모두가 증오하는 홍규직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아들일 수 있을까 놀라워한다.


 가뭄과 수탈에, 죽은 시체를 먹으며 핍박받은 민인들은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란다. 개혁을 꿈꾸던 쪽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정변이고 반역이 된다. 기득권층은 이미 익숙해진 그들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게 마련이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들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실정의 책임이 있는 전왕은 청산해야 할 구태의 상징인데, 그 전왕을 다시 섬기자는 것은 나라를 망쳐버린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기득권층의 관습이다. 제온의 이상은 누구든지 신분 때문에 능력을 썩히지 않는 세상이다.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그러나 세상은 불공평한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자신들의 득세를 위해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실천과 이상 사이에 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음서의 혁파를 주장했던 제온도 한 가지 실수를 범했으니, 아버지의 음직 권유를 끝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추악한 재욕에 눈이 먼 부친에게 분노를 느끼면서도 결국 내키지 않는 혼인을 거부하는 것을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거사 준비를 위해서라는 명분이었지만, 언행일치의 모순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정변이 나던 날 밤 다시 만나게 된 제온과 운영은 부모의 눈을 피해 만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한없이 자신의 존재를 자책하던 제온은 운영에 의해 자존감을 찾게 된다. 부모들에 결정된 혼사에 아무런 저항 없이 순종해야 했던 여인들의 고통의 수난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노비들의 주인을 향해 환심을 사기 위한 그들의 암투도. 무신 현장군의 딸 현서아는 남편인 줄 알았던 홍제온이 자신의 큰아들이 된 것에 기막히지만 체념하고 만다. 친정마저 홍규직에게 설설 기는 판국이니 무엇을 따질 수 있겠는가. 가문을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되는 여인들의 인생이다.


 결국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든 임진출의 실책으로 거사는 실패하고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잡혀 들어가고 또다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편 아버지의 계책으로 영로의 술잔을 받아 마시고 비몽사몽 깨어난 제온은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어디 감사할 수 있는 일인가. 뜻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무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아버지에게 오히려 구원을 받다니 묘한 기분이다. 잿더미가 된 임진출의 집에 가서 무언가 찾으며 헤집고 다니는데...


 어린 시절 휘는 제온에게 제온은 영로에게 의지하면서 버팀목이 되었던 그들에게 어떤 인생은 펼쳐질까. 병든 어머니를 이유로 제온을 거절했던 운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잔학무도했던 아버지에게 감금과 학대를 받고 두 어머니의 죽음,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한 제온. 이제 겨우 좋아하는 여인 운영을 만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는데, 운명은 과연 이들의 편이 되어줄까. 달빛 아름다운 송도에서 위대한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사랑,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응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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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구입하고 저자 소개를 보니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읽어나가면서 기우였음을 알았다. 내가 전에 읽었던 뇌 과학 책에서 본 내용을 만났을 땐 반가웠다. 과학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10년 동안 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온 뇌 과학 강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강연 12편을 묶어서 새롭게 덧붙여 구성했다고 한다. 강의형식으로 되어있고 경어와 적당한 추임새도 들어있어서 마치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궁금해서 아들에게 혹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쓴 이 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 때 필독서여서 읽었다고 했다. 과연, 출간한 지는 상당히 된 책인데 나는 처음 알았다.


 벌써 서문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101번 고속도로의 광고판에 적힌 문장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라는 의미가 되는데 구글의 직원 채용 방식 중 하나였다니 창의성을 중시하는 기업은 뭔가 달라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열 두 발자국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이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라는 ’, 그 신비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접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도 뇌는 소중한 신체기관이며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2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2부에서는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첫 강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계획을 세우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공부, 운동을 계획하고, 부자가 되기 위한 재테크 계획, 노후 준비 등 어쩌면 계획만 세우다가 실행에 이르지도 못하고 마는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선택의 과정에서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시멜로 챌린지(marshmallow challenge)’라는 게임 이야기로 이해를 도와준다. MBA학생, 변호사, 유치원생, 건축가, CEO, CEO와 비서 팀에게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주고 18분 동안 제일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게임이다. 여기서 유치원생이 쌓은 탑이 훨씬 높게 나오는데 어른들과 다른 점은 계획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저것 재보는 계획보다는 실행력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또 인센티브를 건 실험에서는 조급함과 무모한 도전으로 시야가 좁아져서 올바른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획과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한다는 조언과 함께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정 장애, 요즘 세대를 결정 장애 세대(generation maybe, 메이비 세대)라고 하는데 2012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적인 산물일 수도 있다. 예전과 달리 풍족한 시대인 만큼 학원이나 과외 등 모든 것을 아이가 원하기 전에 부모가 다 알아서 챙기다보니 결핍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핍이 욕망을 만드는 것인데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지 못하다보니 스스로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결정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소개한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두려움 없이 선택을 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할 일을 미루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우리 뇌도 새로 고침을 할 수 있을까, 미신에 빠지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시절엔 아무나와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천진함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비슷한 무리로 구분을 짓고 한계를 긋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이다. 무엇을 지향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하고, 일과 놀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획했던 운동이 흐지부지 된다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습관의 힘이며,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메카니즘의 한 방편이었다니 흥미롭다.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무엇엔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은 싹 소거하는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형인간이 되어보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절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뇌의 새로 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저자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나는 내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주장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이 시뮬레이션이야말로 영장류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도 사회에도 미신은 존재한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데스노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것이 얼마나 유행이었는지 모른다. 제목도 섬뜩해서 그런 것 읽지 말라고 채근했었는데 과학자인 저자가 좋아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금기했던 기억, 운동선수들의 각종 징크스 등의 사례,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분신사바, 행운의 편지 이야기 등 한번은 겪었음직한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이제는 과감히 탈피해보자고 말한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뇌 공학 분야의 신경과학자들의 실험으로 fMRI 안에 실험참가자들을 눕혀놓고 그들의 뇌를 찍은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전두엽과 후두엽,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가장 고등한 영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치 사람들도 혼자보다는 협업을 통해서 큰일을 이루는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왠지 나와는 관계가 먼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몇 가지 중에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운동과 건강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운동은 건강에도 유익하지만 뇌를 좋게 활성화 시킨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또 수면도 중요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독서, 여행,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를 하고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부분은 깊은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약간 어렵게 느껴졌지만 유익했다. 인간의 기술로 인공지능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들의 세대는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렵다고 공부하지 않고 눈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등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앞에 닥친 혁명의 물결은 오래 걸리더라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 없이는 하루가 암흑세계로 느껴질 만큼 문명의 이기에 푹 빠진 시대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10년이 지난 요즘 실리콘밸리는 차세대는 어떤 미디어 플랫폼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흔히 인터넷 사용이나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기억력이 저하 등 뇌를 적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한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뇌를 쓰고 있을 뿐 뇌를 적게 써서 바보가 되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의 기술 혁신으로 편리함과 효율성, 놀라운 생산성을 주었지만 이제는 우리를 지배하는 뇌가 되려고 한단다. 왠지 소름이 돋는다. 아직 잘 와 닿지 않는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는 무척 아름다운 기술이라고 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데 아름답다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정교하게 엮어놓았고 사용하게 되면 경제적 혜택이 명확하며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라고 말이다.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차피 혁명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과정의 삶을 살아가려면.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는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것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공생을 말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배워야 한다는 조언에 수긍이 갔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잘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바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문제를 푼다는 데 있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해와 더불어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고등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감정 읽기 능력,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어느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혁명은 시작된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미래의 비전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혁명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 든든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숲에서 다양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뇌 과학자의 뇌는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새로운 혁명의 과도기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주위도 돌아보며 공감하는 삶을 연습해 간다면 제4차 산업혁명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 같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좋은 책을 읽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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