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 나의 일본 미술관 기행
진용주 지음 / 단추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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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일본어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책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하는 바를 표현하는 통로, 그것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하나로 통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왜 미술관에 갔을까.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이른바, ‘종이밥을 먹고 살아왔던 저자는 반복적인 일상으로 피폐해진 삶을 보상받기 위하여 미술관 여행을 시작한다. 일본 열도 전국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 떠나기를 10여 년 동안 계속한 여정이 이 책에 담겨있다. 좋아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갔던 곳을 다시 가기도 했다. 계절을 달리하여 같은 곳을 찾아가 보는 일은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을까. 꽃이 있다가 녹음이 되고 단풍이 들고 마침내는 빈 가지를 드러낸 풍경 속에 놓인 미술관의 모습은 다른 얼굴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또 무엇을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해석이 먼저 따른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찾고 또 찾아가서 본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를 접하고 오해였음을 알게 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한다. 그림은 벽에 고정되어 있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 오직 보는 사람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미술관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다. 화가와 그림을 통해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읽어내고 삶의 사유로 이어진다.

 

칸다 닛쇼 기념미술관

 

 

 

 도쿄에서 태어나 척박하고 황량한 홋카이도의 토카치에서 개척 농민화가로 살다 간 칸다 닛쇼를 소개하며 그의 격투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베니어판에 그려진 유작이며 미완성 작품인 <>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혹독한 가난 속에서 분투해야 했던 닛쇼의 절실함을 보여준다. 다 그리지 못한 말의 엉덩이와 뒷다리,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음의 체념이 가득 들어있는 눈빛에서 개척농민들의 절박한 삶을 읽는다. 주어진 삶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활달한 청년이었다는 닛쇼의 그림 속에는 개척과 식민의 땅에서 하루하루 버텨야 했던 노동자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림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닛쇼를 사적 미술사에 첫 번째로 꼽는 애정을 보이며 그의 절실한 삶을 직접 보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카나자와 21세기미술관

 미술관은 왠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나 관심이 아주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많이 가지 않을까 싶다. 가고는 싶었지만(학생 때는 피카소 전시회를 본 기억도 있는데, 미술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막상 어색해져서 실천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럴 때 접근하기 쉽고 친숙한 미술관이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21세기 미술관은 마을 공원 같은 미술관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문턱 낮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으로 탄생했다. 일본의 많은 미술관이 숲 속이나 산 위에 있는 공원에 만들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도서관이 아닐 수 없다.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와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그 바람이 매년 평균 150만 명이 넘게 찾고 있으며 2015년에는 전국 미술관, 박물관 중 방문자 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니 대단하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제임스 터렐의 <블루 플래닛 스카이>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이라 한다. 전자는 터렐 방이라고도 불리는데 정사각형의 구멍을 통해 하늘과 빛을 바라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밝음과 어둠, 바람과 비와 눈, 구름을 긴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주저앉거나 혹은 누워서 바라볼 수 있다니! 또 투명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색다른 수영장을 체험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얼마나 놀랄만한 일인가.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그림과는 달리 입체적이고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느끼는 미술관이라니, 기존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장면이다.

 

건축만으론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나오시마도 안도 타다오가 처음 건축을 시작했을 땐 사람들이 잘 몰랐다. 여러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모였다. 이사 오는 사람도 생겼다. 주민 인식이 달라지면서 마을의 정체성도 생겼다. 커뮤니티의 힘이다. 지역은 건축과 삶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연환경, 역사적 재산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빌바오의 이미지를 변화시킨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이지만,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은 빌바오가 가진, 요리와 같은 독자적 바스크 문화였다.”(P247)

 

 단지 이름 있는 건축가의 힘만이 아니라 지역민의 애착과 커뮤니티의 힘도 같이 실렸을 때 미술관 건축이 지역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사느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구나 싶었다. ‘우리 마을에는 어떤 미술관이 있는가?’를 궁금해 하고 그 속으로 참여하고 공유할 때 우리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사가와 미술관

 칸사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가와택배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모은 컬렉션을 바탕으로 1998년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화호() 가까이에 지었지만 미술관 부지의 대부분을 물로 채워 섬처럼 보이는 외관이란다. 2007년에는 교토를 대표하는 장인 가문 중 하나인 도예 가문 라쿠키치자에몬의 15대 당주와 협력해서 다실과 전시실을 둔 신관을 지었다고 한다. 라쿠키치자에몬이 디자인한 신관은 센노리큐의 말에서 가져온 슈와리(守破離)’ , 지키고, 부수고, 마침내 떨어진다 는 뜻으로 다도, 무도, 전통예술 등을 배우고 익히는 자세를 일컫는 정신이 깃들어있다는데. 얼마 전 다도에 관한 책을 읽은 적도 있어서 솔깃해진다.

 

 

 

사가와 미술관의 다실 모습.

 

 물과 빛이 만나 일렁이고 그림자들이 춤을 추는 미술관의 풍경을 얘기하는 부분은 이렇게 멋진 미술관도 다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그림이 아니어도 풍경을 보고 삶의 기쁨과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호사야말로 누려볼 만하지 않은가.

 

와카야마 현립근대미술관

  펜의 힘은 칼보다 세다는 말이 있다. 그림은 어떨까. 그림의 힘을 보여주는 이시가키 에이타로의 <K.K.K>가 나오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19308월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마리온에서 백인 인종주의 단체 KKK(Ku Klux Klan)에 의해 흑인 청년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고 노래로 만들어졌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네

잎과 뿌리에 피가 흥건해

미풍에 검은 몸뚱이들이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내걸린 이상한 열매

-노래 <Strange Fruit>중에서(P290)

 

 

 

이시가키 에이타로의 <K.K.K>

 부당한 폭력에 분노하고 가엾게 여기는 인정이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전후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금세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 말을 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의 힘은 무척 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카즈키 야스오 미술관, 야마구치 현립미술관

 

본 것은

보았다고 해라(P396)

(시인 이시하라 요시오의 <사실>의 한 구절)

 

짧은 시구가 강렬한 울림을 준다.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안 보고도 보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구처럼 본 것을 본 대로 그린 화가 카즈키 야스오를 소개한다. 카즈키 야스오는 19434, ‘아시아-태평양 15년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당하고 패전 후에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억류당하게 된다. 만주 침략과 중일전쟁에서 침략자이자 지배자, 학살자로 군림했던 일본인들의 악행에 대한 복수로 철조망에 걸린 붉은 시체를 보고 전쟁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한다. 억류에서 풀려 돌아온 카즈키 야스오가 보게 된 히로시마의 검은 시체를 앞세워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모습은 가증스러움이었다. <수경>, <그물침대>는 부모에게 버려진 상실감과 고독이 잘 드러난 작품이며 <시베리아> 연작은 노예처럼 팔려나간 60만 명의 군인들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시베리아를 그리면서 나는 다시 시베리아를 체험하고 있다. 나에게 시베리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꿀꺽 삼키고 나를 휘몰아 갔다. 이번에는 내가 시베리아를 캔버스 속에 넣어, 비틀어 엎어눌러서라도 그것을 파악하려고 한다. 육체가 시베리아를 체험하고 있을 때, 정신이 그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가혹하고, 너무나 어지러웠다. 나의 군대 생활과 포로 생활은 다 해야 고작 4년 반에 지나지 않는다. 벌써 그 네 배의 시간을 4년 반의 체험을 반추하는 것에 썼지만, 아직도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없다. 단지 내 육체와 기억에 각인된 상처를 단서로, 내가 그때 느끼고 보던 것을 최대한 충실히 보여주려 할 뿐이다.”(P409)

 

그렇게 보여주는 것으로 지도층이 얼마나 바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려는 우리에게 카즈키 야스오는 다시 한 번 일침을 놓는다. 오늘을 오늘로서 사는 것. 산다는 것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에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은 없다. 오늘은 오늘의 그림을 그린다.”(P411).

 

해박한 미술사에 얽힌 역사적 지식과 화가, 건축가 등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에 감탄했다. 미술을 잘 모르지만 읽어가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풍경, 그림 속에 들어있는 안타까움과 고통의 이야기에 공명할 수 있었다. 좋아하다보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고 전문가가 되는 모양이다. 또 저자의 감수성은 어떻고. 왜 미술관에 가는 걸까 했는데 이제 알았다. 우리가 책을 읽고 마음의 고통이나 상처를 치유 받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그림이 말을 걸지는 않을까. 서로 대화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모두 가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데 다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다. 특히 눈 내리는 풍경 속의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산속의 무릉도원을 지향했다는 미호뮤지엄, 석양이 아름다워 폐관시간이 일몰 후 30분 후로 맞추어져 있다는 시마네 현립미술관은 꼭 보고 싶을 정도다. 삶을 성장시키는 깊이 있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열정과 내공이 깃들어 있는 미술관 여행기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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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도쿄 - 공PD의 아주 깊숙한 일본 이야기
공태희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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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가 얼마나 많은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목길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전 골목에 대한 내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여고시절 어느 토요일 방과 후에 자취방으로 신나게 뛰어가다가 골목길에서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놀라고 무서워서 몇 시간을 주변에서 뱅뱅 돌다가 해가 다 지고서야 집에 들어간 기억. 중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흔히 경험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그 이후 골목에 대한 기억은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의 민속촌 골목이 그랬고, 5년 전 가족여행으로 간 교토의 골목이 그랬다. 특히 가랑비 내리던 기온 마치의 고즈넉한 풍경의 그 골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빡빡한 일정으로 수박 겉핥기에 그쳤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오래 걸어보고 싶다. 그 후 두 번의 도쿄 여행을 하고 만나게 된 골목 도쿄가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했던 여행과 몹시 대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고민했다. 너무 재밌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음악 방송 PD가 도쿄를 다룬 첫 책이란다. <PD의 여행 수다>에 스스로 출연 신청을 했다가 그가 자신 있는 일본 이야기를 하고 예상외의 큰 반응에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 입국 도장을 무려 이백 번이 넘게 찍었다는 여행 덕후답다. 골목 이야기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철도, 음식 등 깊이 있는 이야기, 펄펄 살아있는 구수한 입담이 끊이지 않는다. 어서 빨리 가보고 싶어 근질근질할 정도로 실감나게 이야기한다. 나는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닌 거지. 대로와 빌딩숲 사이를 돌아다녔으니 오래된 골목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쿄를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몇 군데라도 가 보았을 텐데. 그래 다음에 갈 때 가면 된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도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골목, 그 안에서 오랜 세월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단골 고객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 골목 사람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히트를 친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고독한 미식가>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물론 두 드라마를 보았다. 좁디좁은 디귿자형의 카운터석에 삼삼오오 손님이 들어온다.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라, 실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심야 영업 역시 드높은 인건비 때문에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없고 드라마적 상상력과 낭만이 지나친 환상에 불과하다며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은 드라마의 성공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구나 싶다. 실제 위치한 골목은 신주쿠 가부키초의 골든가로 작고 아담한 골목이란다. 어른 두 명이 어깨를 딱 붙이고 걸으면 꽉 찰 정도의 작은 이 골목이 신주쿠의 가장 큰 길인 야스쿠니대로에서 불과 30여 미터 거리에 있다고 한다. 이런 골목길이 도쿄 어디에나 있다는데. 이쯤 되면 우리의 대도시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우후죽순 들어서는 빌딩들에 밀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쫓겨나는 상황을 두고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골목이 골목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건강한 도시생태의 지표와 같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쿄의 골목은 확실히 축복입니다. 여전히 번성하는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서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골목길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건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대도시가 아니고서는 골목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니까요. 도쿄의 골목이 여전히 건재한 반면 역시 대도시인 서울의 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도쿄, 사소하게 보이는 이 차이는 의외로 두 거대도시가 지닌 다양성의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쿄의 다양한 취향의 총합은 확실히 우리보다 커 보입니다.’(p12~13)


 대를 이어 오래도록 이어가는 가업, 오래된 건물이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 무엇이든 새로 만들고 높이 만들려는 우리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편하다는 이유로 단지 형태로 지어지는 아파트촌을 볼 때마다 착찹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꼭 필요한 개발은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간직해야 할 것은 최소한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고 자라고 이웃을 이루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수 십 년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곳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도시 뉴욕보다도 더 다양한 취향이라는 도쿄에서는 어떻게 이런 골목이 넘치는 것일까.   <고독한 미식가>그저 아저씨가 밥 먹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실상 알고 보면 대단한 가게가 아닌 평범하고 수수한 곳이다. 역에서 가까운 접근성과 아무 때나 들어가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혼밥과 혼술의 원조는 일본이 아닐까. 그들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힘든 현실을 밥 먹는 것이라도 좀 편하게 먹어보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짠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두루두루 일본 동네식당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한 동네에서 십 수 년을 살아가는 일본이기 때문에 단골이 소중하고, 50100년을 넘어 노포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다니던 닌교초, 에도 시대 제일 번화가 니혼바시, ‘긴자 오브 긴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하골목이 있는 긴자4번가로 골목 덕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일본의 역사와 어우러진 도시의 역사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다. 에도시대만 해도 도쿄의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긴자가 도쿄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고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는 신주쿠나 롯뽕기, 도쿄만 일대를 매립해 건설된 오다이바는 도쿄의 근-미래를 보여준다. 그렇게 거대한 빌딩숲 속에 조그만 골목들이 얼키설키 숨 쉬듯 살아있다니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은 물론 각지에서 찾아드는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부러운 광경이다. 니혼바시, 신주쿠, 긴자 등 도쿄의 큰 도시를 돌아보면서 사람들 물결로 넘치던 모습은 경이롭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힘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천국 일본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一生懸命,客?ばれるような?かない正直商?がけなさい

정성을 다해 고객이 즐거워하도록 거짓을 벗어버리고, 솔직한 장사를 마음에 새길 것.

   -(p92)-


 니혼바시에서 무려 5대째 가업으로 140년이 되어가는 요시노스시의 선대의 가르침이 묘한 울림을 준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며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이렇게 소박한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운영할 수 있는 장인 정신이 우리에겐 몇이나 될까.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인 21세기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무장한 노포들의 힘이 오늘의 일본을 이루지 않았을까. 술꾼들이 바글바글한 신주쿠의 오모이데요코초?의 정겨운 모습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가보고 싶을 정도다. ‘추억 골목이라는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딱 쇼와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좁은 골목이며, 단골과 뜨내기를 차별하지 않는 곳, 마음껏 사진 찍고 마음껏 마셔도 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환상이라는 <심야식당>이 없으면 또 어떤가. 골목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느끼고 올 수 있으면 그만이지. 오래된 가게와 골목에 대한 행간에 가득한 애정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함께 살아가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 골목은 우리들 부모 형제들의 삶의 터이기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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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 설득 -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설득 프레임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김경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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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예전에 길을 걷다가 인상이 정말 좋으시네요, 잠깐 차 한 잔 하시면서 얘기 좀 할까요?”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했다. 하지만 난 거기에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다, 절대로. 난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비싼 수업료를 치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였으니 꽤 오래된 이야기다. 어느 날 현관문을 열어둔 채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절에서 온 보살이라며 중년의 두 여자가 쑥 들어오더니 남편의 운을 재운을 좋게 하고 액땜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혼을 쏙 빼놓는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돈을 잘 벌게 된다나. 평소 입는 내복을 가져오라 하더니 불로 태우고 진지한 듯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 나더니 50만원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그 시절에 그 금액은 적은 돈도 아니다. 깜짝 놀랐지만 안 줄 수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돈을 지불한 다음에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멘붕이 왔고 부끄러워서 털어놓지도 못하고 꽁꽁 싸매고 있던 비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하고 어떻게 그렇게 깜빡 넘어갔을까 싶다. 준비도 없이 무방비상태에서 그들의 초전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나름의 위로였다고 할까.


 이 책 초전 설득은 전 세계 3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의 신작이다. 가만히 책상 앞에 편안하게 앉아서 쓴 책이 아니다. 33년 동안 연구하고 현장을 누비며 증명한 기록이다. 다단계 프로그램 교육 현장 속으로 들어가고, 자동차 영업사원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직접 수강하는 등 다양한 직업군의 훈련 프로그램에 비밀 요원처럼 잠입하여 온몸으로 체험한 경험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한마디로 실천적 삶과 소통의 지혜로 재탄생한 심리학이라는 역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설득이란 개념은 꼭 마케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눈만 뜨면 신문, 미디어 등을 통해 쏟아지는 광고와 홍보의 홍수 속에 둘러싸여있는 우리에게 있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우리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과학의 정보가 들어있고 예상외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1. 초전 설득이란 무엇인가

2. 초전 설득 상황을 설계하라

3. 초전 설득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렇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전 설득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초전 설득이란 무엇인가. ‘초전 설득(pre-suasion)’이란 상대방이 메시지를 접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P31)을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전 설득을 당한 것이다. 현관문이라도 잠가 두었다면 거절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려 있는 상태에서 그들은 발을 들여 놓았고 회색 옷을 입은 종교인이라는 외관에 큰 의심도 없이 물리치지 못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를 휘어잡을 수 있었고, 의도하던 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정통한 의사전달자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납득시키기에 앞서 무엇을 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날카로운 타이밍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새로운 점이다.’(P20)


 ‘납득시키기에 앞서 무엇을 하는가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사전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단순한 말은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쌓아야 하는 신뢰감도 있겠고 거기서 싹튼 친밀감이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컨설턴트들의 말을 빌리자면 먼저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의 지위를 획득한 후 고객으로부터 일을 받으라고 한단다. 이것과 더불어 타이밍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면 초전 설득을 위한 준비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확실한 설득 비법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설득하는 사람과 설득당하는 사람이 합의점에 도달할 확률을 꾸준하게 높이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확률을 어느 정도만 높여도 결정적인 경쟁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P34)


 특별한 비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배우고 익혀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전통적인 의미의 설득은 일종의 예술로 여겨왔지만 타고난 설득력이 있든 없든, 방법에 있어 통찰력이 있든 없든, 화려한 언어적 재능의 유무에 관계없이 과학적으로 잘 정립된 설득의 기술을 배우면 누구나 더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연구자들의 결과로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화려하고 세련된 방식보다는 좀 고리타분한 방식이 설득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것을 보면 설득이란 이론보다는 상호간의 심리와 분위기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득을 위한 사전 행동을 일컫는 용어가 나온다. 이것은 행동 과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데, 프레임frame, 앵커anchor, 점화primes, 마인드셋mindset, 첫인상first impression을 통틀어 오프너opener’로 부른다. 이것은 설득 과정을 오픈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부르는데 한 가지는 설득 과정을 시작하는 역할이며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먼저 운을 떼는 출발선이다. 두 번째 방식은 기존 장벽을 없애는 역할인데 오프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며 굳게 닫힌 상대방의 마음을 활짝 열어서 설득하려는 사람의 메시지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설득은 타이밍이다. It’s About Time(ing)(P43)

 적절한 타이밍이야말로 설득에 성공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아닐까. 저자는 자신이 어이없이 설득에 넘어간 사례를 이야기한다. 설득이란 이렇게 상대적인 것이다. 설득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설득에 넘어간 사람이 있는 재미있는 아이러니. 저자는 유명한 경영대학원에서 이 책을 집필할 계획을 갖고 연구실을 배정받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부학장으로부터 마케팅 수업 강의를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전화를 통한 설득이었다면 거절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대학원 측의 제반 사항의 혜택을 들은 직후 감사의 말을 전하고 마주한 상황에서는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득이란 이렇게 절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설득은 자신에게 유리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없더라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친화력 또한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설득에 넘어가면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설득은 사기도 속임수도 아니고, 초점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집중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탐정 홈스처럼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설문조사에 응하게 될 때 싱글-슈트single-chute질문이나 유도된 주의channeled attention’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질문이나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상대방의 주의를 유도하는 전략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기념 축제에서 있었던 사례는 눈에 띄는 것의 중요성, 즉 관심이 집중될수록 중요한 것이 되는 사례인데, 이것은 여왕의 타고난 친절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기본 성향이라는 것을 연구 결과로 보여준다. 초점의 대상이 원인이 되는 타이레놀 사건과 피터 라일리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분석한다. 바로 당사자에게 불리한 초점의 대상이 곧 원인이 되는 현상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카메라를 찾고 의자를 움직여서 질문자와 나란히 카메라에 잡히도록 위치를 잡아야 혼자서 초점의 대상이 되는 불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박과 고통스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는 것은 더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며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조언까지 들어있다.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친절함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초전 설득 상황을 설계하라

 초전 설득 상황을 설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연상의 힘을 예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신경활동과 같은 내부적인 작용보다는 인간의 평가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과 같은 외부적인 결과에 더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고 한다. 부정적인 말, 나쁜 말은 나쁜 생각과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설득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올바른 언어를 신뢰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 아닐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하기 마련이다. 어떤 조직의 성취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달리기 경주에서 승리하는 사람 등의 관련 이미지를 붙여놓고 보게 했을 때 초전 설득효과가 발휘되어 좋은 결과를 유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활용할 만한 이런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전설의 보험왕 펠드먼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음에도 보험왕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바로 당신이 퇴장할 때 당신의 생명보험금이 입장합니다.(P173)”라는 은유적 설명으로 경이로운 성공을 거둔다.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은유 표현이 이렇게도 적용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새로운 언어심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언어의 주요 기능은 표현이나 묘사가 아니라 영향력의 행사라고 한다. 적절하게 사용된 은유가 얼마나 강한 특권을 발휘하는지 연구사례에서 알 수 있었고 최근에도 은유에 내재된 연상을 이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놀라운 설득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연상 작용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부정적인 연상을 피하라고 한다. 하루에도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걱정거리로 가득한 머릿속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20077월의 한국 교회의 후원을 받은 21명의 봉사자가 납치되었는데 그쪽의 언어인 파슈툰족 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을 투입하여 협상한 결과 석방을 이루어낸다. 바로 친밀감으로 성공의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장면을 보고 친밀감으로 느끼면서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쉬운 이름이나 발음하기 좋은 상호가 우세한 위치를 갖고 실적도 월등히 좋았다는 부분도 있어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또 공간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는 설득의 지리학 부분도 있다. 사무실이냐 자신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냐에 따라 심리적인 감정이 좌우되고 성취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과제나 작업을 할 때 공간과 장소에 따라 심리적인 부담감과 편안함 사이의 괴리를 느껴봤으리라 생각한다. 이밖에도 초전 설득은 우리가 항상 열망하는 행복에도 적용할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행복을 느낌으로써행복한 삶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좋았던 일과 감사할 일을 생각하며 내용을 적는다거나 주의를 의식적으로 집중시키는 일련의 행동을 습관화 하는 것이다.


초전 설득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상호성 Reciprocation

호감 Liking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

권위 Authority

희귀성 Scarcity

일관성 Consistency

-여섯 가지 초전 설득 원칙-


 타인을 설득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중요한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동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원칙은 듣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요소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예시와 함께 세부적인 사항을 보여준다. 이 여섯 가지 원칙은 설득의 심리학에서 다룬 주요 원칙이며, 새롭게 일곱 번째 보편적 원칙으로 연대감을 들어 함께 존재하기함께 행동하기에 대한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이 사회적동물이라는 명제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사건의 사례를 보여주는 풍부한 자료수집에 감탄하게 된다.


 상호성의 원칙에서 오사마 빈라덴의 경호팀장이었던 아부 잔달이 비밀을 털어놓은 것은 개인 맞춤형으로 호의를 베풀었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는 버핏이 50주년 기념 편지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써서 투자를 지속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을 보면 진정 초전 설득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었던 일본의 외교관인 스기하라가 수 천 명의 유대인들을 일본으로 탈출하도록 도운 이야기다. 야심찬 경력을 쌓아왔던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부모의 모습을 보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례로 우리는 연대감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


 설득이란 개념은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분야에서 꼭 필요한 것은 그 일이 과연 윤리적인 것에 바탕을 두었느냐에 있을 것이다. 부정한 사람이 있는 조직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 그것을 눈감아주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면 그런 조직은 언젠가는 붕괴하게 될 것이다. 범죄 예방 분야의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예로 든다. 자신들은 잡히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범법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는. ‘부정직한 조직에서 나타나는 3대 종양을 들어 그 폐해를 세세하게 분석한다. 끝으로 설득의 효과를 지속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약속을 언급한다. 예를 들면, 예약을 해놓고 병원에 나타나지 않아 의료 복지 분야에 커다란 비용 손실을 초래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환자 스스로에게 기록하게 하여 비용을 줄인 사례다.


 『설득의 심리학이 설득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면 초전 설득언급한 여섯 가지 원칙에 윤리의식과 과학적 접근법을 규칙으로 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무엇이 아니라 언제에 초점을 맞추느냐하는 설득의 타이밍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설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필수적인 정보를 먼저 알고 제대로 활용함으로써 초전 설득의 엄청난 위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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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인도사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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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나의 인도라는 문인들의 여행 에세이를 읽어서인지 이 책이 이벤트로 나온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고 책과의 대면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안쪽 표지의 저자 소개를 읽고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순진무구한 저 눈빛과 표정은 말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약간 수줍은 듯 밝은 웃음의 얼굴은 경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책을 읽는 중간에도 앞으로 와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의 힘, 바로 이런 느낌이 인도라는 나라의 신비가 아닐까. 또한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인도라는 나라를 이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흡족한 기대감으로 읽어나갔다. 약간 큰 판형에 매끈한 종이의 재질과 선명한 색조의 풍부한 그림과 사진의 자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을 기획한 의도에서 밝혔듯이 역사의 서술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각 나라를 직접 탐방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생생하고 흥미로운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은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의 하나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장선에서 기획되었으며 2010년 터키사를 시작으로 미국사, 인도사, 일본사, 중국사를 펴냈고 인도사는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개정판으로 출간했다한다. 인도를 떠올리면 일단은 카스트제도나 남녀차별, 종교분쟁 등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한 나라가 장점이 하나도 없는 일은 없을 텐데도 말이다. 이는 역시 교과서의 서술 방식에 있음을 프롤로그에서 설명하고 있다.

 

 분량으로 볼 때 서양사에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하거나 내용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서양사에 비해 남부 아시아사는 여전히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종교 중심의 서술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 카스트제도에 대한 것도 원래는 직업구분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이나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부분은 인정하는 교과서는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역사의 서술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본래의 내용이 희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렇게 지엽적으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고 인더스 문명이 탄생한 시점부터 근현대까지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학생시절의 역사 공부를 떠올리면 단편적이고 암기식 학습이어서 뭔가 알다만 것 같아 갈증이 났는데 인도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생하고 꽃을 피웠던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을 맞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자연환경의 변화, 홍수, 가뭄 등의 자연재해와 아리아인의 이동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은 아수라장이 된다.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아리아인의 유입이 이어지면서 기존의 인더스 문명 사람들과 자주 다투게 되면서 그들을 쫓아내고 아리아인이 북서부의 중심 세력이 되어간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주로 목초지와 가축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잦았는데 숫자적으로 우세하게 되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이 기존 인도인들이 내쳐진 것이다. 본래는 직업적 의미가 강한 무사, 사제, 평민만 있었는데 아리아인들의 계급의식이 강해지면서 네 개의 바르나(산스크리트어로 색깔이라는 의미.)가 만들어졌는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이다.

 

 인도에 들어온 아리아인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농사를 인도인에게 배우고 철을 이용해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다. 점점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로 성장하는데 기원전 6세기경에는 16개의 도시국가가 생겨나고 이들은 서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전쟁을 벌이고 국왕의 권위가 강화되는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장의 권위도 따라서 강화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는 브라만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의식을 크고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언제나 힘든 사람은 계급의 하위 층이다. 권력층에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계급제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그 차별을 받는 것이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인도인의 삶이 요즘 시대와 대비되어 짠하게 느껴졌다. 권력층을 위한 하나의 시스템이 체제가 되가 되어 관습으로 굳어진 셈이다. 이에 브라만들의 횡포와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어지면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새로운 종교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제국의 통치자에 따라 종교도 달라진다.

 

 기원전 4세기경 난다 왕조 시기의 마가다 왕국은 최초의 제국 마우리아 왕조의 기초를 만들어준 나라다. 한 나라가 멸망하는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요인은 백성이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마가다 왕국도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세금을 부과한 것이 화근이 되었고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게 마우리아 왕조를 선사한 셈이 되었다. 그의 손자 아소카는 마우리아 제국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그 영역은 남부의 일부를 제외한 인도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다.

 

 뒤를 이어 페르시아 계열의 쿠샨족이 세운 쿠샨 제국은 카니슈카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민족 출신이었지만 인도의 여러 종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에 기존의 인도인들에게도 인도의 지배자로 인정받았으며 불교 진흥에 힘쓸 만큼 독실한 불교도이기도 했다. 번영했던 쿠샨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4세기 초반에는 찬드라굽타 1세가 굽타 왕조를 열고 갠지스 강 일대를 모두 차지한다. 굽타 왕조의 전성시대를 연 것은 찬드라굽타 2세로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넉넉해지면서 학자와 예술가들을 보호하는 등 이들에 대한 후원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문학 부분에서는 인도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라마야나>가 오늘날의 형태로 정리된 것도 이 때라고 한다.

예술 분야는 아잔타 석굴 사원에서 이전의 간다라 불상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고 한일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자연과학, 수학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아라비아숫자로 불리는 숫자의 기원이 인도였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인도 특유의 사회 체계인 카스트의 유래를 설명하는 그림이 있는데 각 역할이 있다. 머리, , 배와 넓적다리, 발로 나누어진 그림인데 브라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카스트제도를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도에 들어온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로 포르투갈어로 가문, 또는 혈통을 뜻하는 까스타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기에 복잡한 제사 의식과 제물을 간소화해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 브라만교는 힌두교로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힌두교가 널리 확산되면서 브라만의 권위 또한 강화된다. 엄격한 신분 질서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의 구분이 명확해지는데 <마누 법전>은 종교적 계율인 동시에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가장 강력한 규범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굴 제국 때 지어진 타지마할의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미는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타지마할은 이슬람 문화의 꽃으로 평가된다. 힌두교의 나라에 이슬람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모습에서 인도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 여러 제국이 생성되고 전성기를 이루다가 무굴 제국에 이르러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는데 서양 열강이 들이닥치면서 인도는 영국에 의해 식민지가 되는 고통을 겪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두세를 받기 시작하면서 반발이 이어지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제국 멸망의 타당한 이유로 본다.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려든 영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벼이 보았다는 것이다. 영국은 인도의 악습인 사티를 금지시키며 자신들이 인도주의자인양 행세하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것이 인도인에게 근대화라는 축복이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또 인도의 다양한 세력을 이간질하거나 반목하게 하고 종교와 카스트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법으로 분리 통치 정책을 하면서 야금야금 인도를 집어 삼키려고 하였다. 언제나 작게 얕보고 무시하는 일에서 큰일은 시작되는 법이다.

 

 간디, 네루 등 지각 있는 지식인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200년 동안의 식민지하에서 벗어나지만 종교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독립을 이룬 몇 안 되는 나라이기에 인도의 독립은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간디는 끝까지 하나 된 인도를 외쳤으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립 이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네루는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외교정책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독립 이후 40년 가까이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며 나라의 재건에 힘썼지만 정치적으로는 딸에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세습된 네루 왕조라는 비난을 받으며 인도 민주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인도를 언급할 때 다양한 인종과 언어의 다양성을 든다. 너무 다양하다 못해 복잡한 언어는 1652개에 이르고 있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될 정도여서 국어가 없고 공용어만 있다고 한다. 언어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정치, 경제, 종교적인 배경까지 아우른 인도 통합이란 무척 요원한 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 종교와 광대한 땅의 인도연방공화국과 남부아시아의 면적은 유럽의 모든 나라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하여 흔히 인도 아대륙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인종, 언어, 종교, 계층을 가진 인도의 다양성과 다원성은 때로는 충돌하기도 했지만 인도인들은 이를 포용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 인도사회의 문화는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인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나라의 생성과 발전을 거듭한 역사가 안팎으로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읽는 인도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인도라는 국가의 시스템과 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거리감을 좁혀주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계 각국에서는 아직도 종교 문제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IS 등의 행동에 항상 혐오감이 먼저 앞섰는데 종교 선택으로 인해 나라가 분리되는 인도의 경우를 보면서 그들에겐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분쟁으로 인해 무고한 인명의 살상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인도의 역사 이야기는 국가에겐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개인에겐 한 사회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 장이 되리라 생각해 보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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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 내 주머니에 꽂은 빨대처리법
김종삼 지음 / 스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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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의 제목을 보고 심리학 관련 책인가 했는데 소개를 보니 대한민국 최고 시스템전문가의 생활진단&문제해결을 다룬 이야기였다. 그 아래의 당신은 누군가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는 문장이 비로소 와 닿기 시작했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군에서 시스템 장교로 근무했으며 이 경험으로 사회시스템전문가로서 30여 년간 강의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냉장고 속 이야기부터 4대강까지 개인적인 생활패턴의 모습은 물론 각종 국가정책의 부조리한 일면을 속속들이 이야기한다. 과연 사회시스템전문가라는 명함에 걸맞게 구석구석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폐해를 읽어내는 직업이구나, 실감했다. 소설도 아닌데 공감을 자아내며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속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내 모습도 보였기 때문이다.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책 미니멀리즘도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이 책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가 좀 더 잘 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려면 각자의 현명한 판단과 그 총합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너머 사회라는 세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함은 당연할 것이다. 풍족한 물자와 문명의 이기로 더욱 편리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가 힘들다는 세상이다. 우선은 를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진단해 보고 그 시선을 주변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발전하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를 사는 우리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광고에 현혹당하고 세뇌당하며 살고 있다. 갖고 싶어서 꼭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필요이상의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당신을 위한 상품은 없다 2장 끌려다니지 않기

3장 한쪽만 보다가는 많은 것을 잃는다 4장 그들이 만든 세상


 기업과 삶, 업자와 기득권에 끌려다니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맨 처음 삶을 힘들게 하는 다섯 가지는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5천만 개의 빨대가 되는 통신비, 안 내도 되는 보험료를 몇 개씩 내고 있으며, 할부, 세금, 기름값 등, 아파트 대출금, 학원비 등 어느 가정에서든 고정지출 항목이 된 지 오래다. 열 가지를 가지면 열 가지 걱정이 있다고 했다. 한번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에 발을 들이게 되면 거기서 헤어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조금씩 줄이고 잘라내는 결단이 지갑을 두둑하게 할 것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끌어당기기 쉬운 대상>

청소년

노인

전업주부

할 일 없는 사람(P28)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다. 현란한 광고로 유혹하고 보이스피싱으로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냉장고를 구하라.

 이건 무척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마트가 멀리 떨어져 냉장고가 꼭 필요한 미국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험의 사례에서 냉장고 안에 쌓여있던 각종 식품들이 40여 일분이나 된다니 놀랍고도 웃음이 난다. 남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 같다. 오래전에 냉장고를 청소하느라 모두 바닥에 꺼내 놓았는데 좀 보태면 1톤 트럭의 양은 되겠다 싶어서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겁이 나서 다 들어내지 않고 부분적으로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제발 버릴 것 버리고 정리를 해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겠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빵집, 양조장 주인들이 관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과 스스로 삶을 관리하는 주체성을 잃지 않을 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전에 어떤 배우의 여러분~ 부자되세요~ 라는 멘트가 금세 떠오를 정도다. 잘 살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공부해서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에 다니지만 모두들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행복할 거야, 로 위안을 삼으며 일상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어떤 사람이 영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레틀의 말을 인용하여 미래에 얼마나 그 사람이 행복할지 정확하게 아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그것은 지금 그 사람이 행복하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회자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몰입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행복은 돈(Rich)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삶(Well Being)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높고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라도 자신의 힘으로 달성하여 소소한 기쁨을 자주 맛볼 때 행복은 배가될 것이다.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골목길이 사라졌다. 넓고 확 트인 도로 신식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는 정말 삭막하기만 하다. 어쩌면 가는 곳마다 그렇게 신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과 논밭이 파헤쳐져 있는지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이래서는 무엇을 보겠다고 관광객들이 올까 싶다. 고속철이 생기고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기존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 매몰되는 현상을 보았다. 4대강 사업으로 수천억을 들이고 강은 죽어가고 있다.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방식과 업적주의에 끌려다닌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인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천문학적인 손해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게 되니 피폐한 삶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철도의 원조국인 영국이 아직도 고속철도가 없다는 것에 놀랐다. 김해시는 경전철을 도입하여 하루 2억 원씩 손해를 보고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가 70%의 비용을 지원하는 지하철에 비해 경전철은 100% 전액을 지방예산으로 건설한단다. 모든 운행 시스템을 새로 갖추어야 하니 부대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전거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창원시의 경우도 이용객이 줄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의 신도시 캔버라를 벤치마킹했다는데 자동차 도시답게 전국에서 유일한 골목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단다. 이런 사례가 모두 기득권의 이익과 업자들의 이익을 남겨주었음은 물론이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추억이 서려있는 골목이 없어진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최소한의 골목을 보존하여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풍광에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길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는 정책에서 함께 하는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편익을 도모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례 중에서도 다행으로 생각된 것은 람사르가 인정하는 습지 순천만의 경우였다. 환경운동가 출신의 시장이 선출되면서 오염되어 죽어가는, 쓸모없는 이곳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순천만 국가정원이 만들어졌다 한다. 그저 편하고 속도만을 중점으로 하지 않는 함께 살아가고 숨 쉬는 공간, 나중에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을 대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고심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놓고 애물단지가 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업자들, 정치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회의 구석구석의 모습을 매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 덕분에 우리가 사는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착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로 사용되는지 관심도 없었던 무관심을 반성하게 되었다.

 “도덕적인 가치관이 없고, 물질의 욕망이 가득한 사람들을 다스리기가 가장 쉽다.”(P66)고 했던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정치는 물론이고 물건을 팔기에도 한국처럼 좋은 나라가 없다는데, 더 이상 호갱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사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의 공간을 단순하고 쾌적하게 정돈하고 싶어졌다. 개인의 생활 진단의 문제해결, 나아가 사회 현상을 읽어내는 시스템전문가의 이야기는 심플한 삶과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조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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