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장 신빙성 있는 것으로 알려진 E.K.채임버즈 교수의 추적에 의한 작품명 및 창작 연대는 다음과 같다.

 

1590∼1591년 《헨리 6세 2부·3부》
1591∼1592년 《헨리 6세 1부》
1592∼1593년 《리처드 3세》 《실수의 희극》
1593∼1594년 《타이터스·앤드로니커스》 《말괄량이 길들이기》
1594∼1595년 《베로나의 두 신사》 《사랑의 헛수고》 《로미오와 줄리엣》
1595∼1596년 《리처드 2세》 《한여름밤의 꿈》
1596∼1597년 《존왕》 《베니스의 상인》
1597∼1598년 《헨리 4세 1부·2부》
1598∼1599년 《헛소동》 《헨리 5세》
1599∼1600년 《줄리어스 시저》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夜)》
1600∼1601년 《햄릿》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1601∼1602년 《토로일러스와 크레시다》
1602∼1603년 《끝이 좋으면 다 좋아》
1604∼1605년 《자에는 자로》 《오셀로》
1605∼1606년 《리어왕》 《맥베스》
1606∼160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1607∼1608년 《코리오레이너스》 《아테네의 타이먼》
1608∼1609년 《페리클리즈》
1609∼1610년 《심벨린》
1610∼1611년 《겨울 이야기》
1611∼1612년 《폭풍우》
1612∼1613년 《헨리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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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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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천재 금융공학자들의 비극

“모르는 게 좋아, 내 여보는, 나중에 박수만 치면 돼”

맥베스의 역모에 동참한 친구 뱅쿼의 아들을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려는 데 대해서 불안해하는 아내를 달래며 맥베스가 한 말이다.

왕이 믿었던 신하이자 신망을 받던 장군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야심으로 덩컨 왕을 죽이고야 말지만, 마녀의 예언대로 그의 후계자는 아들이 아니라 덩컨 왕의 아들이 된다는 스토리다. 이는 인간의 야망과 탐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빠른 템포로 보여준다.

맥베스가 왕의 시해를 망설이던 찰나 부인이 해준 말은 우리 모두의 본성 그 밑바닥에 감추어진 욕망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두려운가요, 당신?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일이?”

월가의 이른바 금융공학의 ‘천재’들과 정부가 끼어들지 말아야 시장의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목청을 높여오며 오만가지 파생상품을 만들어 금융시장은 실제 규모의 수 배에서 수 십배로 부풀어 버블 붕괴를 부추겨 왔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미덕이라 여기고,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국가의 미래로 포장하던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나.

월가의 욕망을 감히 맥베스의 욕망에 비교하지 마라

월가의 욕망은 '마약왕'에 비견할 만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미국 ‘켈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의 설립자이자 CEO인 비트너와는 지난 6월 펴낸 ‘탐욕·사기·무지에 관한 내부자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업계 관행을 통렬히 비판했다. 한마디로 “금융업은 한마디로 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본질적으로 신용 평가와 그에 따른 위험 관리가 기본이지만, 업계는 탐욕과 사기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는 ‘탐욕’으로 고객들을 마구잡이로 유치하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그는 비판했다. 급기야 “월가와 투자은행은 볼리비아 마약왕들과 같다”라는 극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박한 욕망을 자신들의 블랙홀같은 욕망으로 내던져 버렸으니 '마약'보다 위험하다고 하겠다.

맥베스의 결론은 처참하지만, 어쨌든 스코틀랜드는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맥베스는 죽었고, 시해당한 왕의 아들은 왕이 되었다.
하지만 월가는 다르다. 그들의 탐욕은 그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꺼뜨리고 나서야 누그러진다.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이 미국 의회에서 부결됐지만, 월가는 이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며 '마약왕' 같은 '욕망'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개인의 사적 욕망과 집단의 사적 욕망을 비교할 수 있으랴.
통제받지 않고 베일 속에 가려져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욕망의 허망한 운명을 알고 싶다면 맥베스를 찾아가라. 

참고한 신문기사(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920025204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9291812365&code=9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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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그토록 오랜 삶이라는 재앙이 생겨나는 거야,
왜냐면 누가 견디겠는가. 시간의 채찍과 경멸을,
압제자의 횡포를, 오만한 자의 방자함을,
응답 없는 사랑의 격통을, 법의 지지부진을,
관료의 시건방을, 그리고 모욕
근사한 자가 비천한 자한테 감내하는 모욕을,
견디겠는가, 단도 한 자루면
생애를 끝장낼 수 도 있는데? 누가 이 짐을 지려 하겠는가,
지겨운 삶 아래 툴툴거리고 땀 흘리는 짐을……..(중략) –햄릿 3막 1장-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이 한 마디가 지금까지 우리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이유는 햄릿의 고민이 사실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한국에 서는 더 많은 햄릿이 존재 할 지도 모릅니다.

10대의 꽃다운 청춘이 수능 점수와 함께 시들어 버릴 때,
포도 알처럼 새콤달콤한 푸른 꿈을 먹어야 할 20살 당신이
좁은 취업 문 앞에서 쓰디 쓴 포도주를 들이켜야 할 때,
그리고 30, 40, 50살… 해를 거듭해 갈수록 포도주의 쓴맛이 오히려 달달 하게 느껴질 때,
햄릿이 묘사한 것처럼, “그대 아무리 얼음처럼 정숙하고, 눈처럼 순결하더라도”
그대의 삶이 그대를 온갖 찌든 때로 더럽힐 때

당신은 햄릿과 함께 외칠 겁니다.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칠흑같이 어두운 광산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당신은 빛날 뿐만 아니라 단단하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만약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광산이 이리도 깜깜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이토록 아름답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삶이 광산처럼 어두울 지라도
삶이 광산 속 공기처럼 텁텁하게 당신의 숨통을 조여올 지라도
당신이 당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빛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당신이 광산 속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언젠가는 당신의 가치를 찾아 줄 광부의 손길이 닿을 것입니다.
당신의 빛과 세상이 빛이 만나는 순간
당신은 태양보다도 더 강렬하고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단, 광부가 당신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은 좀 더 열정적으로 빛을 내야 합니다.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빛을 내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폭포수, 폭풍, 그리고 말하자면 소용돌이 속에서도 절제를 주거나 자아내서 부드럽게 해야 하거든. –햄릿 3막 2장 中-

깜깜한 죽음의 유혹이 토네이도처럼 당신을 덮치려 할 때
당신의 부드러운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세요

자네는 제 것으로 도장 찍은 거야. 자네는
온갖 고통을 겪으며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했거든,
운명의 고초와 보답을 똑같이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햄릿 3막 2장-


슬픈 일이 있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기쁜 일이 생겨도 너무 기뻐하지 마세요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저 모든 순간을 감사히 받아들이세요

추호도 그리 말게. 예감이 별건가.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
그게 지금이라면, 앞으로 오지 않을 것.
앞으로 오지 않을 거라면, 지금일 것.
지금이 아니라면, 그래도 올 것이야.
흔쾌히 하는 게 최선이지.
죽으면 진정 아무것도 못 챙겨 가는데. 더 일찍 떠난들 무슨 상관이겠나? –햄릿 5막 2장-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좌절하지 마시고
엎질러지지도 않은 물잔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산다면
당신의 빛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지금 세상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쉬울 것 하나 없습니다.
와인도, 김치도 오래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지고
심지어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하찮은 돌들도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박물관에선 귀빈 취급을 받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기다림이 지루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힘내요 당신:)

 posted by Dol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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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King Lear]

장르 : 연극 지역 : 서울
기간 : 2008년 09월 04일 ~ 2008년 09월 10일
장소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 | 아침이슬 | 2008년 08월

익스피어가 왜 옛 전설인 리어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취해 비극 <리어왕>을 썼을지는 불문가지다. 자고로 늙은 권력자가 추구하는 것이라는 게 얼마나 유치하며, 인간의 관계라는 것이 또한 얼마나 얇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구겨지기 쉬운가 하는 것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재벌의 재산을 둘러싼 어머니 다른 자식들의 야욕, 설된 사랑과 어긋난 육욕 등이 다 리어왕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처럼 리어왕은 인간의 밑바닥으로, 밑바닥으로 나아간다. 가장 많이 가진 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 사이의 빈틈 없음이라고나 할까. 어리석은 욕심이 틈 따위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리어왕>을 제대로 읽어보기란 쉽지 않다. 대본이란, 더구나 1600년대의 고어투로 적힌 대사로 된 책은 원래 대중적이지 않고, 소설로 혹은 동화로까지 각색해 놓은 <리어왕>에서 대사 하나 하나에 숨은 기지, 비꼼, 처절함, 통찰을 읽어낸다는 건 어쩌면 어불성설일 수 있다.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시리즈가 주목받는 이유는 제대로 된 <리어왕>에의 갈증에 있었다. 문학적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대사의 맛과 냄새를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번역에의 갈증. 수많은 번역자들이 돈과 시간에 쫓기고, 자신이 지닌 것 이상의 역량을 내놓느라 결국 허섭스레기를 양산하는 세태를 비관하는 이들 모두가 기다리던 그런 셰익스피어.

'그런 기대를 십분 충족시켜 줄 것'으로 믿어지는 김정환 역 표지 빨간 <리어왕>을 미처 다 못 읽은 채 미추라는 극단 이름에 마음 한 자락을 기대며 연극 <리어왕>을 관람했다. 나름대로 셰익스피어 독자로서의 열렬함의 표출이었다.

결론.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책도, 연극도 고만고만했다. 책을 무작정 펼쳐 보이는 대목 하나를 옮기면 이렇다.

이 뜨거운 눈물이, 강제로 솟아 나와,
너를 그것에 합당케 하다니. 벼락 맞을 년!
아버지가 내린 저주의 적나라한 상처들이
네 모든 감각을 쑤시리로다! 늙고 어리석은 두 눈이여.
이 명분으로 다시 운다면, 뽑아버릴 것이다, 너를,
그리고 내팽개쳐 버릴 것이다. 네가 놓쳐버린 눈물과 함께.

말하자면 역자는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한 것일 터이다. 운율을 살리며 마치 운문을 읽듯이 리듬감을 타는, 그리고 도치법의 묘미가 최고로 발휘되는 원문. 그렇게 짐작된다. 아마 의역이랍시고 원문을 훼손하는 수많은 번역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이기도 했으리라.(순전히 짐작이지만). 사실 매우 실감나고, 리어의 심중에 이는 격분, 비통함이 잘 전달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낯설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번역 투의 거슬림이 이제는 오히려 완역의 장점이 되어 버린 걸까? '너를 그것에 함당케 하다니.'... 주책맞게 눈물이 흘러 마치 배반당한 자신이 뭘 잘못해서 그런 것처럼, 혹은 배신한 딸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되어 버렸다는 의미일 것인데, 혹 더 나은 문장은 없었을까?(대가라고 해도 좋을 번역가의 글에 토를 다는 것은 독자의 위대한 권리다.)

연극은, 열연이 매우 돋보였다. 리어나 광대의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고(더구나 광야에서의 광란의 밤 장면은 <리어왕>의 핵심일텐데, 이 대목에서 대사 전달이 거의 안 됐다.) '원작에 충실함'과 '현대적 재해석'이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는 느낌이 더러 있기도 했으며, 과도한 노출에 의아한 느낌을 한 번 가지기는 했지만, 연기자들의 역량과 열정이 봇물 터지듯 흘러 객석까지 적셨다. 거너릴, 에드거, 글로스터를 맡은 연기자들에게서는 포스가 뿜어나왔고, 다른 연기자들도 거친 숨소리로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보고 나오는 마음이 뿌듯했다. 그러나 매우 냉정히 말하면 '대단한' 연극은 아니었고, 볼 만한 연극이었다. 지나친 현대적 재해석에 식상한 분들에게 매우 훌륭한 노스탤지어 충족의 기회를 줄 수 있을 만한 알맞은 기획, 가격, 품질. 솔직히 말해 뭐, 나처럼 고만고만한 관객에게는 사실 매우 훌륭했다.

어쨌든, <리어왕>, 책과 연극을 묶어 감상하면서 풍성한 문화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다.

posted by 파란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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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라 '말'이었네, 유배당한 가슴아

늙었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왕의 무서운 운명.
늙은이가 요구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오로지 딸들의 사랑,
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말' 뿐이었네.



▲ 왼쪽은 극단 미추가 상연하는 <리어왕>, 오른쪽은 김정환 시인이 번역한 원작 리어왕(아침이슬)

젊을 적에는 혈기가 제어되지 않기 때문에 색을 조심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굳건하니 싸움을 조심하고, 늙으면 기력이 쇠하니 '노욕'을 조심할 지어다.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논어)


셰익스피어 비극이 문학의 고도(古都)를 이루는 이유는 어떤 세상에서 읽든 공감이 생길 수 있도록 보편적인 인간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내적 결함이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타인의 운명까지 엄청난 영향을 주는 관계망을 잘 설정했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죽어도 이유가 있고, 살아도 있유가 있는 것이다.

리어왕을 읽으면 진실한 사람들이 얼마나 배반당하기 쉬운지 알게 된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차마 비옥한 국토와 바꾸지 못한 막내딸 코델리어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 두 글자에 주옥같은 찬사를 덧붙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다.

'나는 뭐라 말하지? 사랑, 그 말이 전분데.'

막내딸 코델리어의 사랑은 '혓바닥보다 무겁'지만 리어왕에게는 '혓바닥'조차 무겁기 때문에 사랑의 무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 글로스터 백작은 서자 애드먼드의 참소를 그대로 믿고 충실한 아들 애드거를 죽이려 했다. 애드거는 거지로 변신해 목숨을 연명한다. 리어 왕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이를 막으려다 대역죄로 눈알이 뽑혀 자살ㅇ르 결심한다. 아들 애드거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글로스터 백작의 시중을 드는 거지 톰이 된다. 두 눈알이 찢겨져 나간 아버지의 운명을 가만히 볼 수 없어 옷깃으로 찢어지는 가슴을 표현했다.

 
고대의 양위 방식의 혈연관계나 충성 관계를 이루며 재산을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춘추시대와 이전의 시대에는 같은 형제들이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제의 나라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원수의 나라가 돼 버리고 만다. 리어 왕의 사랑 서약은 일종의 '보증'인 셈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보증'은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다.

"법률이란 종이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의 가슴에 새겨야 한다" - 리쿠르고스

불행하게도 리어 왕의 시대는 '가슴'이 보증하는 시대가 아니라 '말'이 보증하는 시대다.
달콤한 아첨과 참소는 가랑비처럼 차차 젖어서 뼈속까지 파고든다.

"사람은 때로 아부ㆍ추종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있는 수가 있다. 그러나 아부ㆍ추종의 수작을 미워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 라 로슈푸코

말이 등용되고 가슴이 배반되는 시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막내딸 코델리어는 재산 한푼 못 받고 고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고, 글로스터 백작의 장자 에드가는 미치광이로 변장해 세상을 피해다닐 수밖에 없었고, 글로스터 자신은 두 눈알이 뽑히는 신세가 되었다. 리어왕 자신은 폭풍우가 무섭게 쏟아지던 날에 자신에게 사랑의 '말'을 맹세한 딸들로부터 버림받았다.

우리도 한때는 세상의 모순을 바꿔보려고 젊음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후예들은 지금 거지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누가 독립지사의 뜻을 기억해 주는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가슴을 '유배형'에 처하고 철저한 생활인이 되었다. 스스로 사교육의 전도사가 되어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거나 아니면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독재정권의 눈치를 살살 보며 '말 장사'를 한 신문들은 '자본'의 눈치를 보며 또 다시 '말 장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가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우리 시대에 도대체 '가슴'이라는 게 필요하기는 한 걸까?



▲ 연극 <리어왕>의 연습 장면(왼쪽)과 원작 <리어왕>의 리어왕 삽화


원작과 연극의 깊이, 아쉬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저녁8시 연극을 관람하였다. 방청객들의 범람으로 의자가 모자라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방청을 한 사라만도 무려 60명이나 됐다.
나는 연극이 끝나고 팜플렛을 사려고 여유를 부렸다가 다 팔렸다는 소리만 듣고 말았다.
극단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았다. 휠체어, 뇌성마비... 리어왕은 이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주었다.

막상 극이 시작되자 양쪽에서 울려퍼지는 악단의 기악 연주와 벼락 같은 사운드가 극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개개인의 연기력은 뛰어났지만, 극적 긴장, 그러니까 물길을 터주는 데는 아쉬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사가 들리지 않아 관객들의 시선이 분산됐다. 리어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악천후에 쫓겨난 리어왕의 장면에서는 다소 추리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광대가 리어왕의 옷자락을 흔드는 방식으로 비바람을 묘사한다는 게 안타까워 보였다. 물론 사운드는 최고였다. 빨리 비바람, 천둥이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의당 그에 걸맞는 투자가 필요한 법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리어왕만 흔들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집도 흔들리고 나무도 흔들리고 바다도 흔들리고 다 흔들려야 한다.
검은 옷을 입힌 사람들이 단체로 흔들리는 세상을 묘사하는 춤을 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예산의 부족 때문인지 극적 긴장을 오로지 리어왕에게만 맡겨 놓았다.
리어왕의 목소리가 음악 소리에 살해당하자 극은 방향을 잃고 일순간 혼란이었다.

리어왕이라는 굵직한 고전극을 현대인에게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우유부단함을 노출했다.
과감하게 현대 양식을 시도하든지, 아니면 고전으로 가든지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모양은 고전으로 가면서 '말'만 현대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리어왕이 속아넘어간 '말'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극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연출을 칭찬하지 못함이 아쉽다.
각 인물들의 감초 같은 연기력과 애드리브는 일품이었다. 리어왕보다 오히려 광대가 더 돋보였을 정도다.
하인도 귀족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리어왕>을 읽고 있는데, 연극의 도움을 받아서 기쁘다.
역시 연극은 영화나 책보다 임팩트가 강해서 아직도 그 스케일과 감동에 취해 있다.
이 기분이 지나가기 전에 얼른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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