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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지만 가물가물한 기억 탓에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책이 바로 <햄릿>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명사격인 햄릿이지만 정작 자세하게 읽었던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 <햄릿>은 나에게 희곡을 읽을 때 느껴지는 맛이 어떤 맛인지를 새롭게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의 일러두기를 보면 “운문과 산문 구분을 명확히 했고, 행갈이를 원문과 똑같이 맞추었다. 각 작품을 잘 쓰인 시집 한 권 대하듯 읽으면 적당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원문을 옮긴 김정환 님은 시와 소설을 넘나드신 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책의 내용이 다소 문장의 길이가 긴 것 같고, 또 말의 형태가 익숙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치 연극을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 내용 하나 하나가 내 앞에서 공연되어지는 진행형 대사 같다. 나도 모르게 내가 배우가 되어 햄릿을 공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니까 말이다.

다소 진부하고, 어려운 내용들의 나열로 보이는 문장들이 눈으로 소리가 나고, 저절로 읊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곡을 읽나보다.

극중의 햄릿에 대한 설명은 말이 피요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 그리고 그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서 흔들리는 마음과 내면의 상념, 자신에 대한 질책과 상황에 내몰리는 마음들이 짓눌러져서 햄릿도 어그러지고, 햄릿의 주변을 이루는 중심 인물들도 어그러진다.



그 중 가장 불쌍한 이는 오필리아이다. 사랑하는 의 마음을 알지 못해 애태우고, 그의 변화에 당황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죽음에 정신이 나가는 한 여인, 결국 물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그녀를 보면서 운명의 가혹함이 느껴진다.

셰익스피어는 <무대 언어의 마술가>로 불렸다고 한다. 가장 시적인 대사들로, 압축적이면서도 대사의 억양과 분위기와 흐름이 등장인물의 성격과 동작을 품거나 뿜어내거나 형상화하므로 등퇴장 말고는 사실상 지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만 해도 셰익스피어가 가장 위대한 연극 예술가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이유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묘미는 비록 그리스 고전 비극과 유사하지만, 좀 더 내면적인 부분에 깊이가 있어졌다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심리의 내면이 심오하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햄릿>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햄릿이 유령을 만나면서부터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모든 이들의 죽음으로 일단락되기까지의 그의 내면의 모습이 대사를 통해서 잘 전달되고 있는데, 여기서 보여지는 그이 내면이 바로 고통 중에 있으면서 고뇌하고, 늘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오늘날에도 햄릿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은이), 김정환 (옮긴이) | 아침이슬

posted by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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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에로스'다. 에로스를 살리기 위해 뮤지컬 작가는 찬탈자 클로디어스 왕의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사랑을 부각시켰고, 햄릿과 오필리아의 연인 관계를 무척 강조했다.

에로스(사랑)의 세례를 받다

11월 1일 숙명여대 '씨어터 S'에서 <뮤지컬햄릿>을 봤다. 이제까지 수많은 <햄릿>이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로 상연됐지만 원작 <햄릿>의 난해함 때문에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뮤지컬 원작자인 야넥 레데츠키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드라마를 음악을 통해 만든다는 도전은 정말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작업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번 공연의 정식 명칭을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으로 1999년 체코 프라하에서 최초로 상연했다. 당시의 평단은 "유럽의 선율 속에 가장 잘 표현해 낸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연일 만원 세례를 이루었다. (1천만 관객 동원) 2003년 브로드웨이를 평정하고 2008년부터 아시아 원정에 나섰는데, 그 첫 번째 무대가 바로 한국의 공연이다. 2010~2012년에느 도쿄, 북경 등 릴레이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에로스'다. '난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는 원작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의 전환이다. 에로스를 살리기 위해 뮤지컬 작가는 찬탈자 클로디어스 왕의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사랑을 부각시켰고, 햄릿과 오필리아의 연인 관계를 무척 강조했다. 아버지 왕의 스토리를 첨가한 것도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 즉 거트루드 왕비는 왕과의 부부관계에 심각한 애정결핍을 느끼고 있었으며, 클로디어스 왕(왕족의 신분이었을 때)과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호감이 생겼다. 그러나 그 사건은 아버지 왕에 의해 목격되고 클로디어스는 추방을 명령받는다. 나라를 떠나지 않았을 경우는 '육체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며, 나라를 떠났을 경우는 '사랑의 죽음'을 맞아야 하는 고뇌에 빠진 클로디어스가 왕을 살해한 것은 '심정적'으로는 정당방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것이 에로스의 첫 번째 세례다.

두 번째 에로스의 세례를 받은 것은 오필리아다. 원작에서는 광기에 빠진 햄릿에 의해 조롱당하고 이용만 당하던 오필리아는 뮤지컬에서는 햄릿의 당당한 애인으로 탄생했다. 사실 원작에서도 오필리아가 함의하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주로 오필리아의 '불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뮤지컬 햄릿에서도 오필리아의 불행이 행복해지지는 않지만, 오필리아는 햄릿의 애인으로서 잠시나마 햄릿의 사랑을 얻고, 죽은 뒤에 햄릿의 추모를 받아볼 수 있었다.


▲ 오필리아는 뮤지컬 햄릿을 통해 비중은 인정받았다. 배우 이윤진은 햄릿 월드 버전이 데뷔작이었지만, 호소력 있는 표정과 연기력으로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잘 소화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원작 햄릿이 강렬하게 내뿜던 사색적인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유액에 녹아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햄릿의 '난해'가 완전히 용해된 것은 아니다. 햄릿의 운명과 운명에 대처하는 햄릿은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햄릿이 난해한 세상에 대적하는 생생한 모습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원작 햄릿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posted by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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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김정환 시인의 집을 찾아갔다. 독자 두 명과 당산동에 있는 시인의 자택을 찾았을 때 시인의 방에는 매우 익숙한 듯한 클래식 선율이 울리고 있었고 시인과 노모가 손님들을 맞았다. 김정환 시인은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우리를 맞았는데, 작업 시간을 방해한 불청객이 돼 미안한 기분도 들었지만 편안한 차림으로 '무장해제'한 시인의 면모를 보는 맛도 좋았다. 거기다 시인이 직접 타다 준 '잔칫집 커피'를 마시며 최근 번역한 '셰익스피어 시리즈'와 세상만사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눴다.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김정환 시인의 당산동 자택을 찾았다. 아침이슬 출판사에서 나온 1차분을 설명하며, 표지의 재질부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시인은 작업과정을 소개했다. 


'4대 비극'이니 '5대 비극'이니 하는 건 일본에서 건너온 편의주의

고등학교 때부터 셰익스피어를 원전으로 즐겨 읽었다던 김정환 시인이 '뒤늦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뭘까? '뒤늦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대학(서울대 영문과) 시절의 김정환씨를 알았던 친구들은 그가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한겨레 인터뷰) 시인은 "환갑이 넘으면 슬슬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 때 되면 기력이 쇠진해 총기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라며 번역작업을 서두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시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무대언어와 발성도 알아야 하고, 영어도 알고, 한글도 알고, 시도 좀 알아야" 하는데 시, 소설, 평론, 번역과 무대연출에 이른 수십 년 동안의 연륜을 통해 비로소 셰익스피어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좀 더 캐묻자 비로소 이유를 말한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낸 출판사는 <아침이슬> 출판사인데, 교육과 청소년 관련 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출판사 사장과 이야기를 하던 중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어떤 게 좋겠느냐는 질문에 "셰익스피어만 한 게 있을까요?"라고 반문했고, 이 일을 계기로 셰익스피어 번역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1차분은 이른바 '4대 비극'(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과 만년작 '폭풍우'인데, 시인은 '4대비극'이니 '5대비극'이니 하는 말은 일본에서 건너온 편의주의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분류법뿐만 아니라 일본에 해방되는 과정에서 셰익스피어가 번역되었는데, 이 때 일어 표현과 일어 문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당대의 어른들이 읽기에는 별 무리가 없지만, 한글세대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현대어에 맞는 번역이 필요했던 차에 청소년 전문 출판사와 함께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 완역본으로 거의 유일한 판본은 1964년 정음사판 세익스피어 전집(4권)인데(나머지는 대체로 5대 비극이나 4대 비극에 국한돼 있다), 희극, 비극, 사극, 시편이라는 체재로 이루어졌는데, 김정환의 아침이슬판에는 희곡(37편), 소네트(1), 장시(2)이 담길 예정이다.

김정환 시인은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기보다는 무척 기민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이자, 극작가, 배우, 무대연출자 같은 다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극단의 단장으로 경영까지 해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작품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들었고 '영어'를 한 단계 쇄신시켰다. 김정환 시인은 근대영어를 만든 두 사람을 꼽으라면 제임스판 성경을 주도한 제임스 왕과 바로 셰익스피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영어라는 언어가 생겨나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로부터 불과 30년 전에 통용되던 '고어'와 차별된 '현대 영어'의 보고라는 찬사다.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거나 잘 아는 사람들은 무리 없이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시인에 의하면 고전이라는 것은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동양의 사서삼경이나 산스크리트, 서양의 그리스 고전,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언어'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모음>과 독일어 사전을 편찬해 독일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내려 했던 그림 형제와는 달리 셰익스피어는 엄청난 분량의 사회적 경험과 이를 통한 다양한 인사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것을 '작품'이라는 품격 높은 형식에 담으려 했던 노력을 통해 새로운 언어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운 '현대인'이다. 때문에 빌 게이츠는 "셰익스피어는 21세기형 인간이다"는 찬사를 보냈고 엥겔스는, 다소 거칠게, "사회주의란 산업화에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환 시인의 작업실 전경. 클래식을 일상적으로 틀어놓고 볕이 잘 들어오는 큰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영어, 일어, 그리스어 등 대여섯 개의 사전을 펼쳐들고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뒷골이 쑤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술술 읽힌다"는 말 칭찬이 아니야

"번역은 너무 매끄러운 윤문을 피해, 그 과정의 맛을 살렸다. (중략) '너무 매끄러움'은 인간 사회의 온갖 신분, 온갖 직접 및 분야의 현상, 상승 및 타락, 그리고 해체 과정을 셰익스피어 '당대적'으로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을 놓치기 십상이고, 그렇게 되면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번역은 음식으로 따지자면 '거친 음식' 같다. 오래 보고 되새김질을 하면서 음미해야 하는 구절이 있고, 어떨 때는 강렬하게 한 문장만 기억에 남기도 한다. 자구나 기호 하나하나 고집스럽게 완역했고, 때로는 우리 어순을 뒤집은 표현이나 쉼표로 길게 연결된 복문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정환 시인은 "되도록이면 행들을 그대로 맞췄다. 행들을 맞춰 읽는 것은 의미 전달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세익스피어의 경우는 단지 문학작품의 언어뿐만 아니라 '무대 언어'도 무척 중요하다. 쉬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쉬어야 하며, 행을 끊어야 의미전달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세미콜론(;)'만은 넣지 않았는데, 2차분부터는 다시 담기로 했다고 시인은 말했다.

번역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시인은 '윤문'에 대한 직격탄을 날렸다. '술술 읽힌다'는 평판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500년 넘게 이어 온 문화와 역사가 있는데 '윤문'이라는 당의정을 넣을 것이라면 아예 스토리만 읽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윤문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김소월 투'(하네, 옵소서, 오리까)인데, 원작의 의미를 전혀 살려주지 못한다. 함께 인터뷰에 동행했던 독자는 처음 김정환 셰익스피어를 접했을 때 비인칭주어와 직역이 거북스러웠지만, 큰 소리로 연극하듯이 읽으니 이해가 되더라고 말했다. 시인의 명구가 이어졌다.

"거친 속에서 문장 하나가 문득 훨씬 아름답다"


김정환 시인은 '윤문'이나 '술술 읽힌다'라는 말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거친 문장들 속에서 강렬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건져내는 맛을 즐겨보라고 권유했다.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감상하는 법

 

"글쟁이라는 게 글 내놓고 한 달 동안은 술퍼먹는다. 왜 그러는지 아는가? 쪽팔리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나서는 여지 없이 부끄러움을 달래려고 술을 '퍼'마신다는 시인에게 셰익스피어 감상법을 물어봤다.

 

시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클래식에 비유할 수 있다. 햄릿은 베토벤 9번 교향곡처럼 난삽하고, 분량 길고,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햄릿의 인생과 같다.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면 대부분은 회피하거나 과감하게 껴안는 데 비해, 햄릿은 난세를 견디면서 스스로 망가지는 캐릭터라고 시인은 평가했다. 격변기의 시대상황을 가장 잘 설명한 작품이 <햄릿>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멕베스는 베토벤 교향곡 5번처럼 극적 구성이 탁월하다. 교향곡을 들으며 셰익스피어를 읽는 맛도 좋을 듯하다.

 

무대언어를 생각하며 작품을 읽는 것도 재미를 더해준다. 소리를 내고 연극처럼 읽는 것도 좋다. 우리는 대체로 셰익스피어 주요 작품의 스토리는 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음미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영국에서는 '줄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

 

영국에서는 이보다 레퍼토리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어떤 배우가 햄릿 역을 맡았기 때문에, 혹은 어떤 연출가가 이번에 연출을 맡았다던데 한 번 더 보자 하는 식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작품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함께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는 '리어왕' 연극이 있었고, 지금은 '뮤지컬 햄릿'이 한창 공연중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광기가 가득 담긴 인물이나 바보 등이 등장하고, 이들의 말은 쉽게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때는 그 앞이나 뒤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를 파악해 문맥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시인은 말했다.

 

김정환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 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 서울 시편》《레닌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등 20여 권의 시집과, 소설 《파경과 광경》《세상 속으로》《그 후》《사랑의 생애》, 산문집 《발언집》《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 평론집 《삶의 시, 해방의 문학》, 음악 교양서 《클래식은 내 친구》《내 영혼의 음악》, 문학 창작 방법론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역사 교양서 《상상하는 한국사》《20세기를 만든 사람들》《한국사 오디세이》등이 있으며, 《더블린 사람들》《셰익스피어 평전》 등을 번역했다. 2007년 제9회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번역 1차분

 

 

 

 

 

 

 

 

 

 

 

 

 

 

 


 

posted by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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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기에서 '고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한국경제의 위기조짐을 두고 혹자는 제2의 IMF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번 위기는 단지 규모만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묻혀 있던 인간의 가치와 삶의 방식 등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에 맞춰 CEO들의 인문학강좌 열풍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몰린 증권회사의 한 간부는 "월가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에도 곧 닥치겠지만 10년 전 외환위기때와는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수강신청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시사IN 58호)
하지만 '근본적인 반성'이라는 것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우리들은 자신의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맘 편히 앉아서 사유하기가 쉽지 않다. 깊이 사유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는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고전의 진수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사색적 생활이라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던 민족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사유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고전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지에서부터 생각이 막히지만, 나는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불안정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운명과 감정을 낱낱이 드러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굳건한 지위는 협잡군은 얕은 속임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복수의 감정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진정어린 사랑과 곧은 충성심도 머뭇거림과 편견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셰익스피어의 불행한 인물들은 우리들의 삶을 지나칠 정도로 명명백백히 고발한다. 불편할 정도로.


▲ 햄릿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미쳐버린 오필리아가 물속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것은 4막 7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배신, 맹목적 복수심, 광기의 이름은 '햄릿'

삼촌(클로디어스 왕)의 존속 시해로 허무하게 아버지를 잃게 된 햄릿은 아버지 유령에 의해 사건의 전모를 알아차리고 살인사건과 동일한 설정의 연극 초연에서 삼촌 왕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실상을 모조리 알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배신과 분노는 삼촌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맙소사, 하느님은 최상의 코미디 작가지! 사람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봐, 내 어머니가 얼마나 명랑해 보이는지, 아버지가 죽은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말야.
- <햄릿>(아침이슬), 100쪽


동양적으로 표현하자면 '남편에 대한 탈상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네 영혼이 네 어머니께 어떤 벌도 획책하지 말 것. 그녀는 하늘에 맡길 것"(햄릿, 45쪽)라는 아버지 유령의 충고 때문가 햄릿으로 하여금 불 같은 증오를 표현하는 것을 막아세웠다. 햄릿이 왕비의 내실에 숨어 염탐하던 클로디어스의 충복이자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인 사건이 있고부터 국면은 급격히 악화되고 운명의 잔인한 장난이 시작된다.

맹목적 복수심에 사로잡힌 햄릿을 열렬히 사랑했던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처를 입게 되고 사랑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자살하고 만다. 이로 인해 오필리아의 오빠이자 폴로니어스의 아들인 레어트스의 복수심은 극에 달하고 클로디어스 왕은 이를 이용해 햄릿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햄릿>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햄릿의 맹목적인 복수심이 불러낸 또다른 살인과 복수, 사랑의 좌절이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레어트스와 햄릿,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가 모두 죽고 나서야 종국에 다다른다. 이 모두 삼촌인 클로디어스 왕이 불러낸 비극이지만, 사실 아버지 왕의 죽음은 이들의 가혹한 운명에 비하면 사소하기까지 하다.


▲ 햄릿의 맹목적 복수심은 또다른 불행한 복수심을 낳았다. 아버지 왕을 잃은 햄릿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레어트스가 결투하는 장면.



맹목적 신념, 절망 앞에 사라지는 삶의 가치

<햄릿>의 상황은 우리네 인생사에서 똑같이 재현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치만은 고스란히 다가온다. 경제성장이라는 맹목적 목표에 사로잡혀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삶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사소한 희생량'으로 치부해버렸던 근래의 모습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맹목적 공격은 옳은 주장도 쉽게 묵살해 버린다. 미군정, 독재 시절에 이미 사라졌어야 할 색깔론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더욱 찬란한 색깔옷으로 갈아입고 '좌파척결'이라는 치맛자락을 휘두른다.
당당한 사회의 일원인 시민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고, 삶을 포기한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사례는 너무 흔해서 뉴스에도 소개되지 않는다. 

<햄릿>이 절박한 우리 삶의 단면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은 좌절과 불행에 대한 카타르시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햄릿>에서 보이는 불행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아버지 왕의 불행을 첫 번째 불행이라고 한다면, 복수에 사로잡힌 햄릿이 불러낸 불행은 두 번째 불행이다. 첫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없었지만, 두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햄릿> 비극의 핵심이다. 어려운 경제상황,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탄압, 날마다 나를 괴롭히는 좌절과 공포는 피하기 어려운 불행일 수도 있지만, 이후에 만나게 되는 자살과 패배감 등의 불행은 피할 수 있는 불행이다. 누구나 불우한 순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다음의 불행을 자초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 이번에 새로 번역된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은 번역자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작업으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필의도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실제로 번역 문장 한줄 한줄에 번역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posted by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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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화재로 까맣게 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내부가 공개됐다. 최초 발화지점이 있던 B구역은 전체가 검게 타거나 그을린 모습이었다. 화재가 난 맞은편 구역의 고시원 내부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보여주듯 개인 물건들이 방안에 어지럽게 널려있다(연합뉴스)

논현동 방화사건, 제노포비아,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죽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묻지마 방화와 살인이 동시에 일어났다.
검거된 범인은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가 싫었다."고 대답했다.
참으로 슬픈 것은 세상에 무시당한 사람이 하필이면, 같이 무시당하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점이다.
약자가 약자에게 복수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제노포비아(Xenophobia)다. 외국인에대한 혐오증,공포증,기피증을 뜻하는 말이지만, 단순히 기피현상이 아니라 경제, 사회, 민족, 종교적인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복합적인 현상이 바로 제노포비아이다. 예컨대 100개의 빵 중에 부자들이 10명의 부자들이 90개의 빵을 다 먹어치워 버렸는데, 남은 90명이 10개의 빵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데, 옆 동네에서 빵을 좀 얻어먹으려 한다면 90명은 10명의 부자보다 옆 동네 사람들에게 커다란 증오심을 느끼게 된다. 부자들의 갈취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옆동네의 행동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논현동 방화살인범 역시 제노포비아의 패턴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시원에 사는 60여 명은 중국인 교포 등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들이 구성원의 전부다. 방화살인범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죽일 수 없기 떄문에, 힘 없고 가난한 이웃을 죽인 셈이다. 이번 사건이 참혹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개인적인 질투와 복수가 부른 참혹한 파멸의 노래, 오셀로

오셀로 장군의 깃발장교인 이아고는 자신이 '부관'으로 진급하지 못한 데 대해 앙심을 품는다. 더군다나 오셀로 장군은 비천한 무어 인(이슬람교를 가리킴)이므로 경멸감은 더하다. 그런 비천한 종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데스데모나에게도 증오심이 끓어오른다.
데스데모나에게 마음을 빼앗긴 어리석은 로드리고와 아내 에밀리아, 부관 캐시오와 캐시오를 사랑하는 고급창녀 비앙카를 이용해 오셀로의 오해와 증오를 부추기고 오셀로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기까지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대체로 협잡이나 아첨, 모함에 쉽게 감응해 불행을 자초하지만, 오셀로처럼 참혹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오셀로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아내의 부정을 용납할 수 없어 제손으로 직접 아내를 죽이지만, 전모가 밝혀지고 나자 아내를 죽인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그리도 허망하게 목숨을 끊어 버렸다.

논현동 방화살인사건과 오셀로의 공통점은 자신의 헛된 증오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허무한 죽음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만 오셀로의 이아고는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을 분명히 보고 있었지만, 논현동의 방화살인범은 헛된 곳에서 증오를 해결하려 했던 점이다. 최근 일본 대도시 한복판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학교내 총기살인사건이 끊이지 않고, 우리나라 역시 묻지마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묻지마 테러는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세계인의 감정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몰렸으며, 살인사건이나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 때는 이미 사회적 병폐가 곪을 대로 곪은 이후다.
살인범에게는 중형이 선고되고, 고시원을 기피해 집값이 떨어지는 등의 홍역을 앓겠지만, 고시원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묻지마 살인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차라리 오셀로의 참혹한 비극이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몇 번의 무참한 죽음이 이어져야 사회는 사회적 불만과 스트레스에 대해서 반응하기 시작할까. 현재 눈에 보이는 정책이나 경제, 사회적인 담론들은 반복되는 비극을 재촉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로 인해 삶의 기반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보상 수단을 제공할 동기도 방법도 없다.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무순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오셀로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은 셰익스피어 비극보다 더 가슴아픈 비극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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