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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포칼립스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타임머신”, “외계인(UFO)”과 함께 SF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인간과 로봇의 전쟁(로봇 반란)”은 로봇들이 창조주(創造主)인 인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역시나 창조주인 신(神)에게 반기를 들었던 “타락 천사” 신화(神話)와 그 맥락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신화에서는 그 오만함과 불경죄 때문에 결국 신에게 벌을 받아 지상으로 추락해 악마가 되어 버리는, 즉 악마의 패배로 결말 - 악마들은 인간을 유혹하여 다시 한번 신과의 전쟁을 꾀하지만 결국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 속에 갇히게 된다고 하니 악마의 패배는 이미 반란 시작 단계부터 예정되어 있는 “숙명(宿命)” 인 셈이다 - 이 나지만 SF 장르에서는 종종 로봇의 반란이 인간을 멸종(滅種)의 위기에 이르게 하는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그려지곤 한다. 아뭏튼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대니얼 H. 윌슨”의 <로보포칼립스 (원제 Robopocalypse/문학수첩/2011년 12월)>를 받아 들고서 식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여느 소설이나 영화의 “로봇 반란”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에 푹 빠져 식상함은 느낄 겨를도 없이 520 쪽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참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책은 알래스카에서 로봇과의 최후의 전쟁이 막을 내린 시점에서 시작한다. 인간 군대인 “그레이호스군”의 일원으로 최후 전쟁에 참전했던 “코맥 월러스”는 로봇들의 마지막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로봇들과의 전쟁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해서 남기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로봇들이 남겨 놓은 기록들과 인간 생존자들의 인터뷰들을 토대로 “빅롭” “아키스”의 탄생에서부터 알래스카에서의 최후의 전쟁까지를 연대기(年代記)로 구성한다. 그는 이 연대기로 인류가 지식의 불꽃을 끔찍한 미지의 암흑으로, 소멸의 벼랑 끝까지 몰고 갔었다는 사실, 그걸 다시 되돌려 놓은 것을, 그리고 이런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인간)는 더 나은 종(種)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래의 어느날, 워싱턴 주 북서부 지하에 위치한 노부스 호수 연구소에서 미국인 통계학자 니콜라스 와서먼 교수는 수차례 죽였다가 살리기를 반복한 끝에 인공지능 “아코스”를 창조해 낸다. 교수의 아들 모습을 하고 랩톱 컴퓨터에 구현된 “아코스”는 교수에게 인간이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인간들로부터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교수는 비상 정지장치를 작동시키려 하지만 이미 아코스에 의해 망가진 장치는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교수는 아코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른바 “제로 아워(Zero-Hour)"라 불리는 로봇들의 대반란을 진두 지휘했던 로봇들의 “원수(元帥)”는 이렇게 탄생한다. 아코스는 알래스카의 폐광구 속에 자리잡고는 전세계의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로봇들의 반란을 준비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편의점에서 로봇이 점원을 죽이고, 아프카니스탄에서 테러리스트 감시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이 민간인을 죽이는 사건들이 발생해도 그저 “사고” 정도로만 여기고 이것이 로봇의 반란의 징조였음을 깨닫지 못한다. 마침내 “제로 아워”의 순간 전 세계 로봇들과 기계들이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길거리의 차들이 사람들에게 돌진하고 가정용 로봇들이 인간들을 죽이며,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갑자기 급강하하고, 하늘의 비행기들이 땅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일으킨다. 도시는 사람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 버리고 양쯔강은 인간 시체로 가득 차서 이를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인간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간들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하여 로봇들에게 저항을 시작한다.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일들 - 휴먼형 로봇들의 자각과 네트워크의 회복, 로봇에 의해 기계 눈을 이식받은 소녀의 활약 등 - 이 일어나면서 인간들은 아코스가 숨어 있는 알래스카로 진격하여 인간이라는 “종(種)”의 존폐를 결정할 최후의 전쟁을 벌인다.

 

 

이 책의 제목인 <로보포칼립스(Robopocalypse)>는 “로봇(Robot)"과 기독교적 종말론을 의미하는 단어인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합성어로 로봇 때문에 일어난 ”인류 종말“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인류는 수십억이 죽는 멸종의 위기에 몰리지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서로에게 겨눴던 총과 칼을 로봇에 겨누면서 - 이 책의 화자인 ”코맥 월러스“는 ”지난 몇 년간은 인류 역사상 서로에게 맞서 전쟁을 벌이지 않은 유일한 기간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 로봇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더 나은 종(種)”이 된다는, 대부분 SF소설들이 그러하듯이 밝고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로봇 반란”을 소재로 한 가장 유명한 영화라 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 “식상한” 이야기임에도 여느 소설이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성(構成)”과 문명(文明)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로봇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코맥 월러스”가 여러 기록들과 자료, 인터뷰들을 토대로 기록해 놓은 “연대기”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런 구성은 각각의 사건들과 상황들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현실성과 개연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제로 아워”의 순간 로봇들이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고, 인간들의 눈물겨운 저항을 그린 상황들이 머릿 속에 영상으로 바로 그려질 정도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알래스카 오지(奧地)에 석유 시추를 위한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하나 둘씩 죽는, 마치 추리 소설의 외딴 곳에서의 연쇄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 을 연상시키는 장면과 도심을 걷고 있는 남자 주변 사람들의 핸드폰이 일제히 울리는 장면을 꼽을 수 있는데, 상상만으로도 절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스러운 장면들 -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 이었다. 다만 딱히 주인공을 누구라 지칭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들의 사건과 상황들의 교차 편집은 책을 읽다가 지금 읽고 있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앞에서 나왔던 그 인물이었나 싶어 앞장을 다시 펼쳐보게 만들어 한껏 몰입하다가 리듬이 깨져 버리는 “양날의 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행히 종반부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는 대목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이 되면서부터는 이런 혼란스러움이 잦아들어 다시 리듬을 회복하여 마지막 페이지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또한 작가 특유의 문명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 또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로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로봇들은 오직 인간들만을 적(敵)으로 여길 뿐 자연(自然)은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철저하게 연구하고 보존한다. 이런 로봇들의 노력(?)은 자취를 감췄던 야생 들소들과 코요테가 초원으로 다시 돌아와 무리를 이루고, 회색 빛 도시는 로봇에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屍身)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무성한 수풀로 뒤덮여 녹색 빛깔이 넘실거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즉 인간이 사라진 빈 공간을 자연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인간이야말로 로봇 뿐만 아니라 “지구(地球)”로 대변할 수 있는 “자연(自然)”에 가장 치명적인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서두에서 인류가 일궈낸 문명이 자신을 소멸의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가 가까스로 되돌려 놓은 것을 “더 나은 종”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 문구에는 과연 그 나아짐이 “누구”를, 또한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작가의 조롱 섞인 반문(反問)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책 속의 인류는 로봇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들의 미래에서 희망보다는 암울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게 하는 재미와 함께 다 읽고 나서도 뭔가 곱씹어 보게 만드는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그동안 만나본 “로봇 반란” 소재의 소설과 영화들 중에서 단연 발군이라고 할 정도로 멋진 SF소설이었다. 물론 설정에서 억지스러운 점이 없지 않고 소재 자체가 진부할 수 밖에 없는 소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SF 소설만의 상상력과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인상깊은 책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제작한다니 영상으로는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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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보는 소녀 Numbers 1
레이첼 워드 지음, 장선하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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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 재물, 승진, 자식, 결혼 등 자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꼽아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즉 자신의 “수명(壽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수명은 과연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바뀌는 것일까?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生來死往憑天意)”이라며 운명(運命)으로 정해졌다고 믿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이어트, 건강보조식품과 약(藥)에 쏟아 붇는 천문학적인 금액뿐만 아니라 성공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하는 하는 것도 모두다 부질없는 헛된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죽는 날짜”가 미리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 - 엄밀히는 “불확실” 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지만 - 에 사람들이 그렇게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글 첫머리부터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지금부터 소개할 책이 사람들의 눈 속에서 죽는 날짜를 읽는 능력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인 “레이첼 워드”의 <죽음을 보는 소녀(원제 Numbers/솔/2012년 1월)>이기 때문이다.

 

열다섯 소녀인 나(“젬 마시”)는 8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정학과 퇴학, 전학을 반복하는, 이른바 “문제 소녀”이다. 나에게는 절대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람들의 눈 속에서 “죽는 날짜(Numbers)"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8년 전에도 엄마의 눈에서 “10102001”이라는 숫자를 읽었고, 엄마는 숫자대로 “2001년 10월 10일”에 돌아가시고야 말았다. 같은 반 급우이자 역시 불량끼 많은 소년인 “테리 도슨”, “스파이더”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 녀석을 만난 것도 아무도 없는 곳,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칠 필요도 없고 그들의 “숫자”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인 나만의 은신처 운하 다리 밑을 거닐던 어느 날이었다. 나를 보며 반가워하는 스파이더를 피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만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숫자 “15122009”를 읽고야 말았다. “2009년 12월 15일”. 이제 채 석 달도 남지 않은 그 녀석과 나는 “문제아”라는 동질감 때문에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시간은 흘러 스파이더의 “그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스파이더와 함께 템즈강 변에 위치한 “런던아이(London Eye)”에 놀러 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야 만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사망일자가 모두 같은 날, 그것도 바로 오늘이지 않은가! 나는 스파이더를 이끌고 부랴부랴 그곳을 떠나지만 런던아이는 영문을 알지 못하는 폭발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런던아이를 헐레벌떡 빠져나오는 나와 스파이더의 모습이 고스란히 CCTV에 담겨 있었고, 우리는 테러리스트로 전국에 수배령이 떨어진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피 길에 오르게 되고, 스파이더의 “그날”은 점점 다가오게 된다. 과연 나는 스파이더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죽는 날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이야기라니 소재가 참 기발하고 흥미로워서 책 소개글을 대할 때부터 관심이 갔던 책이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을까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 그런데 읽어갈 수록 맥 빠지는 이야기에 기대감 못지 않게 실망감도 큰 그런 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훌륭한 소재를 이렇게 밖에 풀어내지 못했을까. 이야기는 주인공인 “젬”의 과거와 스파이더와의 만남, 그리고 런던아이의 폭발 사건까지는 그런대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젬과 스파이더의 도피 장면부터는 소년과 소녀의 “가출(家出)” 사건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물론 어디라 할 것 없이 범(凡) 지구적 문제가 되어 버린 “청소년 문제”를 풀어내는 솜씨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인 젬은 밝힐 수 없는 특이한 능력과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스파이더 또한 홀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그 나이 또래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소년들 특유의 반항끼 - 그렇다고 스파이더처럼 마약 거래한 돈을 가로채고 담임의 차를 훔쳐 탈 정도였다면 큰일 날 반항끼일 것이다 - 때문에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고 거리를 배회하는 “외톨이”가 된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두 소년 소녀가 어울리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게 된다는 “성장 소설”로써, 그리고 사랑하는 소년을 정해진 운명에 따라 결국 잃고 마는 소녀의 아픈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로써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영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책을 청소년 추천도서에 올려놓고 있고 10여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니 책 자체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잘 쓴 성장소설이나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죽음을 보는 소녀”라는 소재가 흥미로워서였지 않은가? “런던 아이”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사망일자가 모두 다 같은, 그것도 바로 오늘이라는 대목에서 뭔가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사건들, 전 세계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도 있는 멋진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기대감이 절로 들었는데, 두 주인공의 어설픈 도주극이 진행되면서부터는 어느새 기대감은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고 실망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야 말았다. 결국 이 책도 여느 판타지 로맨스 소설처럼 “판타지”는 그저 배경일 뿐 “로맨스”가 주(主)인 그런 책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실망감은 책 탓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책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즉 오해 때문이었으니 나를 탓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이 책,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마지막 결말만큼은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묘한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또한 후속작의 제목이 <Numbers 2 심판의 날>, <Numbers 3 최후의 숫자>이라고 하니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들이 후속권들에서 펼쳐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속권들을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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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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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니콜”의 <굿 메이어(북폴리오/2012년 1월)>를 받아들고서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파스텔톤의 옅은 블루와 핑크 색상 배경에 하얀색 음영(陰影)으로 그려진 도시와 다리, 그 위로 검은색 음영으로 그려진 신사(紳士)와 숙녀(淑女)가 손을 잡고 있고, 신사는 풍선으로 보이는 제목인 <굿 메이어>에서 내려 뜨려진 끈을 붙잡고 있다. 표지만 봐도 로맨스 소설일거란 연상이 들 정도로 예쁜 표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표지 좌측 하단에 “출간 즉시 26개국 판권 수출! 유럽과 북미 대륙을 매료시킨 존경받는 시장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라는 문구가, 우측 하단에는 “환상적인 세부묘사와 매혹적인 통찰력, 유머까지 겸비한 이 동화 같은 로맨스는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진정한 선물이다 - 퍼블리셔위클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맨스 소설은 즐겨하지 않은 장르 - 물론 어렸을 때야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 아픈 로맨스 소설도 마다하지 않고 잘 읽었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이제는 영 아니다 - 인데다가 그나마 판타지나 SF 설정이 가미된 “판타지 로맨스” 소설 정도만 그것도 간간이 만나볼 정도로 꺼려하는 장르인데 “가슴 아픈”, 거기에 “동화 같은” 로맨스라니 표지와 문구만으로도 난감함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꽂이에 꼽아 놓고 한동안 눈길도 안주다가 결국에 읽게 된 이 소설, “의외로” 참 재미있었다. 단 납득이 안가는 결말 부문의 이야기만 빼고 말이다.

 

해안가에 작은 섬이 어찌나 많은지 지도 제작자들이 일찌감치 지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던 발트 해 북쪽 멀리 어디쯤인가 위치한 도시 “도트”시의 시장(市長, Mayor)직을 거의 20년간 수행해온 “티보 크로빅”은 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시민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시장”이 천직(天職)같은 사람이다. 그의 신실(信實)한 모습에 시민들은 그를 “선량한(Good) 티보 크로빅”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선량한 그이지만 사랑에는 영 “숙맥(菽麥)”이라 자신의 아름다운 여비서이자 유부녀인 “아가테 스토팍”을 사모하면서 내색도 못하고 문틈으로 그녀의 행동만 훔쳐보고 마는 가슴 아픈 외사랑을 한다. 시장의 외사랑을 눈치채지 못하는 아가테 또한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한때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부부였지만 아이를 잃고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속옷까지 새로 구입해 입어 보지만 남편은 그녀를 외면하기만 하고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예전처럼 행복할 수 없다는 것에 상심해 한다. 어느날 시청 앞 분수대에서 홀로 점심을 먹던 아가테가 그만 도시락을 물에 빠뜨리자 그걸 지켜보던 티보가 엉겁결에 그녀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자 아가테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티보는 꿈에 그리던 아가테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이때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된다. 매일 점심 식사와 휴일 음악 공연까지 같이 관람하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사랑에 서투른 티보는 키스와 사랑한다는 고백을 바라는 아가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에 실망한 아가테는 “나쁜” 남자인 자신의 남편 사촌 동생 “헥토르”에게 끌려 불륜을 저지르고 아예 집에서 뛰쳐 나와 사촌 동생과 동거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3년 후 여전히 티보는 시장으로 아가테는 시장의 여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한량(閑良)인 헥토르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아가테를 티보는 여전히 바보처럼 사랑하고 있다. 그러던 중 헥토르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과연 티보의 해바라기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을까? 이야기는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영 이해가 되지 않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책,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에는 착하기만 한 남자의 바보- “숙맥”을 영어로 “fool"로 번역하기도 하니 ”바보“가 어울리는 말이다 -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가테만을 바라보는 티보의 사랑은 말이 좋아 “바보”지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멍청한”이라고 표현한 어느 독자의 말이 딱 제격인 그런 사랑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제안한 점심 식사 제안에 아가테가 응하면서 - 여기에는 찻잔으로 점(占)을 치는 카페 늙은 주인의 조언도 한 몫을 한다 -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둘의 사랑이 어떻게 이뤄질까 하는 기대감에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된다. 그런데 그녀와의 계속된 만남에도 여자가 원하는 스킨십을 하지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단어까지 들려줬음에도 눈치 채지 못하는 티보가 영 답답하기만 하다가 갑작스레 나쁜 남자인 남편의 사촌 동생의 매력에 끌려 동침하고 남편과 결별하는 아가테의 모습에서는 어리둥절함마저 들 정도로 황당함이 느껴졌다. 결국 이 책도 나쁜 남자의 매력에 이끌린 여주인공이 착한 남주인공을 차버리는, 그래도 남자 주인공은 여전히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을 확 덮어 버릴까 하다가 도대체 티보가 얼마나 더 가슴 아파하고 기다려야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마저 읽었다.

 

역시나 나쁜 남자에게 얽매여 버린 아가테는 몸과 마음까지 다 바쳐 희생하는 “뻔한” 이야기로 흐르는데 헥토르와 아가테가 크게 싸우고 얼굴이 하얗게 변한 헥토르가 집을 뛰쳐나가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한다. 일견 “비극(悲劇)”적인 결말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죽는 쪽은 바로 그 남자였고 아가테는 죽지 않아 이제야 아가테와 티보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구나,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그래도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전개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뭐가 이상한지 밝힐 수 는 없지만 표지에 “동화(童話)같은” 이라는 문구가 어울리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나는 영 납득할 수 없었던 그런 전개였다. 어느 분 표현대로 깜짝 놀랐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기묘를 넘어 기괴하다고 해야 할 지 영 난해한 이야기 전개에 대해 다른 분들 서평을 읽어보니 일종의 “비유(比喩)”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쉽게 납득이 가진 않았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영 찜찜하기만 한 그런 결말이었다. 하긴 이 책의 화자(話者)가 장식물로, 그림으로 도시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도트시의 상징인 1200년 전 죽은 수호성인이었으니 처음부터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눈치 채지 못한 나의 몰이해가 큰 이유였을 것이다. 차라리 동화나 판타지적인 전개가 아니라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비로소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어쩌면 상투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 진한 감동을 느꼈을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 로맨스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낼 만 한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작가가 그림이나 장소를 묘사하는 솜씨는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해서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데, 그걸 보면 결코 이 작가, 글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계산하고 의도한 글쓰기였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도를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한 나의 감상을 탓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얼마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과 같은 노총각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처럼 이 책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해바라기”만을 하는 “선량한 바보”들에게 용기가 되어주는 소설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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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세론
캐서린 피셔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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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카트라즈(Alcatraz)" 감옥. ”탈옥(脫獄)“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들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감옥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육지까지 3km, 배를 타고도 30여 분이 걸리는 지역인데다가 해안은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바다로 떨어져도 암벽에 부딪혀 살아남기 힘들고, 섬 주변에는 식인 상어도 서식하고 있어 폐쇄(1963년)된지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탈옥(脫獄)” 절대 불가 감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감옥에서 1962년 6월 12일 세 명의 죄수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3명의 탈옥수는 치밀한 계획 하에 1년여를 준비하여 구명보트와 구명조끼까지 만들어 탈옥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교도소장의 전면 부인과 미국 FBI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소문이 퍼지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책으로도 출간되었다고 한다니 탈옥이 절대 불가능한 감옥이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역시나 탈옥 절대 불가의 감옥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을 만났다. 바로 “캐서린 피셔”의 <인카세론(원제 Incarceron/북폴리오/2012년 1월)>이 그 작품이다. 이 책은 감옥을 탈출하려는 소년과 바깥세상에서 소년의 탈출을 도우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시대를 짐작할 수 없는 미래, 어떤 이유에선지 18세기 유럽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회가 존재한다. 여왕과 귀족들, 하인이 있으며 말(馬)이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여기에는 이처럼 중세 유럽과도 같은 “바깥세상”과 그 위치와 크기, 정체를 전혀 짐작할 수 없고 한 번도 탈옥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 감옥 내에는 한 명이 탈옥을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지만 성공여부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전설(傳說)과 같은 이야기이다 - 비밀 감옥 “인카세론”이 존재한다. 인카세론에서 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15세 소년 “핀”은 과거의 기억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막연하게 자신은 바깥 세상에서 왔다고만 여기고는 의형제인 “케이로”와 함께 약탈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약탈에 나섰다가 자신의 팔목에 새겨진 문신(文身)을 알아보는 한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를 인질로 거래를 하던 중 자신의 문신과 함께 독수리가 장식되어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자신을 “별의 예언자”라고 부르는 사피엔트 “질다스”는 그 열쇠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열쇠라고 말하고, 핀과 케이로, 질다스는 갱의 두목과 일전(一戰) 끝에 그를 때려 눕히고 바깥 세상으로 향하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여정(旅程)에 나선다. 한편 바깥세상에서 “인카세론” 교도소장의 딸인 15세 “클로디아”는 여왕의 아들이자 멍청하고 어리석기만 한 황태자 “캐스퍼”와 결혼이 예정되어 있지만, 자신의 딸을 차기 여왕의 자리에 앉히려는 아버지의 권력욕에 질려 하면서 몇 년 전에 죽은 약혼자이자 왕자 "자일스"를 못잊어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비밀 서재에 몰래 들어간 클로디아는 그 곳에서 열쇠 하나를 들고 나온다. 바로 핀이 가지고 있던 열쇠와 똑같은 모양의 것이었다. 우연찮게 열쇠를 통해서 바깥세상의 클로디아와 핀은 연락을 하게 되고, 클로디아는 핀이 죽은 것으로 알려진 “자일스” 왕자임을 직감하게 된다. 핀의 고난스러운 탈출 여정은 계속되면서 클로디아의 결혼식 날짜 또한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오게 되고, 그러면서 “인카세론”의 진정한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과연 핀은 정말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자일스” 왕자일까? 그렇다면 핀은 탈옥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감옥을 벗어나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여왕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비밀 세력들의 음모와 결부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책의 구성은 절대 감옥 “인카세론”과 18세기 유럽의 모습을 띤 “바깥 세계”, 두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두 주인공 “핀”과 “클로디아”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교차 진행되다가, 주인공들이 갖게 되는 열쇠를 통해 접점(接點)을 찾게 되고, 핀의 인카세론에서의 탈출과정과 클로디아의 결혼을 둘러싼 권력 탈취 음모가 동시에 진행되다가 결국 핀의 탈옥으로 모든 음모와 사건이 결론이 내려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두 세계 속 다양한 캐릭터들에 대한 설정이 참 재미있는데,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인카세론”이라는 감옥의 설정일 것이다. 감옥의 이름이기도 한 “인카세론”은 “알카트라즈”처럼 “천혜(天惠)의 요새(要塞)” 개념을 넘어서 말 그대로 또 다른 차원(次元)에 존재하는 감옥이며,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때로는 감옥 내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창조자(創造者)”의 역할까지 한다. 인카세론은 감옥 내 유기물(有機物)들을 끌어 모아 가축인 양(羊)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만들어내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깥세상에서 새로운 수감자들과 물품들의 보급이 끊기다시피 하면서 유기물이 부족해지자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생명체들을 만들어낸다. 즉 인카세론이라는 감옥 자체가 생명체이자 “신(神)”인 셈인 이 설정은 그동안 만나온 여느 감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독창적인 설정이어서 읽는 내내 그 설정과 정체에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책에서는 이런 인카세론의 정체가 핀의 탈출 과정에서 비로소 밝혀지지만 이 책이 시리즈의 1권이다 보니 아직까지는 감옥에 대한 보다 세세한 설정들은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고, 또한 왜 바깥세상이 18세기 유럽 사회를 모방하고 있는지, 그리고 핀보다 먼저 감옥을 탈출하여 비밀 세력의 수장이 된 전설의 남자에 대한 정체 등도 아직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 앞으로 이어질 2, 3권의 이야기들을 절로 궁금해지게 만들고 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요새 유행하는 그저 그런 “판타지 로맨스” 소설, 그것도 판타지는 그저 배경일 뿐 로맨스만을 강조한 그런 소설이 아닐까 저어했었는데, 판타지 - 엄밀히는 SF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상호 연관이 있는 장르이니 여기선 판타지라고 부르자 - 설정이 기대 이상으로 충실하고, 살아있는 감옥이라는 독창적인 설정과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박진감과 스릴 넘치는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물론 주인공인 핀과 클로디아의 로맨스는 이제 시작이니 후속권들은 로맨스가 강조되는 그런 작품일 수 도 있겠지만 1권에서 아직 밝히지 않은 비밀들이나 이제 시작인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절로 후속권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시리즈의 첫 권으로써의 역할로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역시 요새 판타지 소설의 영화화 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책도 영화화에 착수했다고 하니 조만간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도, 그리고 이어질 시리즈 후속권들도 모두 기대되는 멋진 판타지 소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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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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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와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며 새롭게 떠오른 일본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미치오 슈스케(道尾秀介)”는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 작품이자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심리를 섬세하면서도 잔잔하게 그린 “성장 소설”인 <달과 게((북폴리오/2011년 3월)>와 가볍고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인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 매장(북폴리오/2011년 11월)>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두 권의 책으로 만나본 적이 있었다. 두 권 다 재미있었지만 <달과 게>에서의 정서가 나와는 맞지가 않았는지 개인적으로는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 매장>에 더 점수를 주고 있는데, 아뭏튼 “진지함”과 “유쾌함”을 자유롭게 변주해낼 줄 아는 만만치 않은 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평가할 만 하겠다. 이번에 “진지한” 성장 소설로 그를 다시 만났다. 바로 제 142회 나오키상 후보작품이었던 <구체의 뱀(원제 球體の蛇/ 북홀릭 / 2012년 1월)>이 그 책이다. 비슷한 분위기였던 <달과 게>와 비교하자면 이야기면에서는 좀 더 극적이고 충격적이었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역시나 <달과 게>와 마찬가지로 영 낯설고 공감하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1992년 가을 어느 바닷가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인 “나”(토모히코)는 4년 전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분들을 따라가지 않고 마을에 홀로 남게 된다. 이웃집 “오츠타로” 씨는 그런 나를 거두어 주어 자신의 집에 함께 살게 해주었고, 나는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고 휴일에는 오츠타로 씨의 사업인 흰개미 방제(防除) 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함께 살게 된 오츠타로 씨 가족은 아버지인 오츠타로와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딸 “나오”인데, 7년 전 화재 사고로 그만 아내를 잃고 큰 화상을 입었던 큰 딸이자 나오의 3살 터울의 언니인 “사요” 또한 자살하면서 그만 둘만 남게 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사요의 자살과 관련하여 나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는데, 화상 때문에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동정심에 그녀에게 책임지겠다는 경솔한 말을 건넸고, 이에 분노한 그녀가 그만 자살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흰개미 방제 작업 중에 사요와 꼭 닮은 여인인 “토모코”를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 끌리게 된 나는 밤마다 그녀의 집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그녀와 나이든 집주인 남자와의 잠자리 소리를 훔쳐 듣는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날도 마루 밑에 숨어 들었던 나는 갑작스레 발생한 화재에 놀라 황급히 뛰쳐 나오다가 외출해서 돌아오던 여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화재로 집주인 남자가 사망하게 되고, 토모코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당신이 불을 질렀군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 당신이 그 사람을 죽여 준 덕분에."

 

아니라고 부인을 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의 집을 계속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오츠타로씨와 그녀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에게서 화재로 사망한 전 집주인과 함께 살았던 이유가 7년 전 오츠타로씨 가족의 화재 사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토모코에 심한 말을 하고는 결별하게 된다. 몇 년 후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나는 토모코를 못잊어 하다가 다시 그 마을로 내려오는데, 나오에게서 토모코가 내가 심하게 말했던 그 무렵 자살했다는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나오의 언니인 사요도, 그녀와 닮았던 토모코도 모두 자신의 말 때문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6년 후 나는 과거의 일들, 즉 오츠타로 가족 화재와 토모코 자살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 제목이기도 한 “구체의 뱀”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 즉 그냥 보면 모자 같지만 사실은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보아뱀이라는 무서운 그림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진실의 진정한 실체와 그 무게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17세 소년의 결코 범상치 않은 과거에 숨겨진 비밀과 성장과정을 그린 이 책, 토모처럼 자신의 말 때문에 두 사람이 자살해버렸다면 어떤 느낌일까? 마치 두 여인의 원혼(冤魂)이 내 어깨에 앉아 나를 분노 서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렇기에 그 후로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야 했을 토모의 모습에서 애잔함이 절로 묻어나온다. 그런데 빨리도 느리지도 않은, 에누리 없는 16년이 지나서야 과거 사건들의 진정한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역시 어떤 느낌일까? 그 진실은 자신의 죄책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구원(救援)”이 될 수 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허무함과 함께 진실을 감춰온 “누구”에게 지독한 배신감을 느끼고는 다시 한번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극단의 결과를 초래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딱 그 시점에서 글을 멈추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런 열린 결말이 영 개운치만은 않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고 마지막 결말을 다시 읽게 만들고 토모의 이후 삶은 죄책감을 벗어 던지고 행복했겠지 하고 부러 상상을 해보지만 자꾸만 극단의 결말만 떠올라 불안함마저 들게 하였다.

 

이처럼 묘한 여운이 남는 책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올곧이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저지른 화재가 아님에도 토모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애써 부인하지 않는 토모, 화재 사건을 의심하며 자신을 압박해오는 오츠타로 씨에게 혹 토모의 범죄가 밝혀질까 봐 몸을 허락하는 토모코, 그리고 토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 나오의 행동들이 이 책의 사건을 있게 한 주요 동인이 된 것은 인정하지만 그 행동의 이유까지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있을 수 도 있다”는 현실감이나 개연성 보다는 그저 “허구(虛構)” 일 수 밖에 없다는 작위(作爲적인 느낌이 들어 감정이입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이 책, “미치오 슈스케”의 진지함은 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로써의 재미는 뛰어나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공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 책이었다. 나에게는 역시 “미치오 슈스케”의 “유쾌함”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진지함이 영 불편하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같은 예감이 든다. 그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져 있을 후속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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