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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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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의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겨울 , 10살이 채 안된 소년이 동요를 부르며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옆에는 이미 큰 눈덩이가 있는 걸 보니 지금 만드는 것은 눈사람의 머리 부분이 될 것 같다. 어느새 완성한 눈덩이를 큰 눈덩이 위에 올려놓기 위해 낑낑거리며 들고 있다. 도와주고 싶어도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 아닌 내 “꿈” 속임을 알기에 그냥 지켜본다. 두 세 번 떨어뜨렸다가 겨우 올려놓은 머리 부분에 숯덩이로 쳐진 팔자 모양의 눈썹과 입을 붙이고, 눈과 코 부분에는 까만 색 돌을 박아 넣고, 아래쪽 몸통 손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어디서 꺾어 왔는지 가느다란 나뭇가지 두 개를 찔러 넣는다. 드디어 완성된 눈사람, 아이는 자신의 작품이 영 대견한지 깔깔거리고 웃고는 자신의 목에 두른 빨간색 목도리를 풀어 눈사람에 둘러주기까지 한다. 눈사람과 나란히 서서 까치발을 뜨고는 머리에 손을 얹어 눈사람과 키를 비교해보는 소년의 모습에 꿈 속임에도 절로 웃음이 나오고 흐뭇해짐을 느낀다.  그런데.......갑자기 TV 화면이 정지되듯 모든 영상이 멈춰버리고, 온통 하얗던 풍경이 잿빛 회색으로 변해버린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잠시동안의 정지가 풀렸지만 실제보다 10배는 느리게 흘러가는 영상, 어느새 눈사람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소년의 입에서 아까의 동요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노랫소리가 아까 소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아니라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질 때 흘러나오는 것처럼 굵은 남자의 목소리로 느리게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순간 소름이 돋는다. 소년 옆의 눈사람도 처음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변했다. 아래로 처진 팔자 눈썹은 치켜 뜬 것처럼 역팔자(逆八字) 형태로 바뀌었고, 까만색 돌을 박아 넣은 눈이 선홍빛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지 않은가. 그 눈 또한 나의 존재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굵고 느린 노래 소리가 끝나고, 순간 정적에 휩싸이고 소년 한 명과 눈사람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뒤를 쳐다보지만 이곳은 내 꿈속 상황이니 나 혼자 뿐이다. 입을 다물고 있는 소년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예의 굵고 느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이제 곧 죽을 거에요”

 

 

그 낮고 굵은 목소리에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옆에 아내가 내 비명 소리에 놀랐는지 같이 일어난다. 나쁜 꿈을 꾸었다고 아내를 안심시켜 다시 재우고는 침대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잠들기 전까지 읽었던 책이다. 내일 아침에 마저 읽자 마음먹었지만 책 결말이 궁금해 조금만 더 읽고 자자 한 것이 새벽녘이 다 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불과 3시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잠마저 망쳐버리고 만 것이다. 책 때문에 꿈자리가 사나워지는 경험,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악몽까지 꾸게 한 책,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이자 현재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 나가는 스릴러 작가라는 “요 네스뵈(Jo Nesbø)”의 <스노우맨(The Snowman/비채/2012년 2월)>였다.

 

 

책에서 악몽을 꾸게 한 장면은 초반 부분에 나온다. 먼저 책의 첫 장면은 1980년 11월 5일, 눈 내리던 날부터 시작한다. 금방 올게라는 말과 함께 어린 아들을 차에 남겨 두고 낯선 집에 들어가서 40분이 넘어서야 차로 돌아온 엄마에게 아들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눈사람을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마치 다른 사람은 절대 들으면 안된다는 듯이 메마른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인다.

 

 

“우린 이제 죽을 거라고요”

 

 

그리고 또 한 장면. 2004년 11월, 24 년 전 그날처럼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저녁, 퇴근한 엄마가 정원에 있는 커다란 눈사람을 이야기하자 아이는 자신이 만들지 않았다며 밖을 내다본다. 엄마의 말대로 눈과 입은 조약돌로, 코는 당근으로 만들었고 꺾은 나뭇가지로 만든 듯한, 앙상한 팔 하나만 있는 커다란 눈사람이 서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사람이란 원래 길가 쪽, 그러니까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서 있는 법인데 집 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아이는

 

“근데 왜 눈사람이 길을 보고 있지 않아요?”

 

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날 밤 엄마가 사라진다. 이 두 장면 때문에 그런 악몽을 꾼 것이다. 이제 책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부녀자들의 실종 사건을 맡은 오슬로 경찰청 강력반의 반장 “해리 홀레”는 FBI에서 연쇄살인범 체포 훈련을 받았고, 호주에서 연쇄살인범을 체포한 경력이 있는 노르웨이 유일의 형사이다. 그는 이 실종 사건이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닌 뭔가 공포스러운 일들 - 아직 노르웨이에서는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연쇄살인사건 - 이 일어나고 있다는 조짐을 감지한다. 이런 조짐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에게 온 편지에 적혀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 때문이었다.

 

 

곧 첫 눈이 내리고 그가 다시 나타나리라. 눈사람. 그리고 눈사람이 사라질 때 그는 누군가를 데려갈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눈사람을 만들었을까? 누가 눈사람들을 만들지? 누가 무리(Murri; 해리가 여러 해전 사살한 연쇄살인범의 별명이라고 한다)를 낳았지? 눈사람은 모르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 부녀자들 실종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두 번째로 실종되었던 여인은 잘린 얼굴이 눈사람의 머리 부분에 놓여 있는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만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스노우맨” - 해리는 이 사건의 범인을 편지 속에 나오는 “스노우맨(눈사람)”이라고 부른다 - 으로 의심되는 여러 용의자들이 등장하지만 해리의 추리로 그들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스노우맨의 정체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그때 해리의 머릿 속에 번뜩이는 무엇인가가 떠오른다. 스노우맨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은 바로 해리 자신에 대한 도전이며 그와 가까이 있는, 또한 그를 잘 알고 있는 “누구”라는 것을 말이다. 해리는 범인이 벌일 마지막 살육의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다.

 

 

작가의 전작인 <헤드헌터>를 읽고서 썼던 감상문에서처럼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말 재미있다”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책 속에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재미있는 상황과 설정, 이야기들이 정신 차를 겨를 없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먼저 상관의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안하무인의 성격에 냉소적이며 알코올 중독자이기까지 한, 그러나 천재적인 두뇌 회전과 사건 해결을 위한 집념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인공 “해리 홀레”의 매력을 들 수 있겠다. 벌써 9권의 시리즈 - 이번 작품이 7번째 작품으로 시리즈 중 국내에는 첫 소개된 작품이기도 하다 -로 이어질 정도로, 이제는 “요 네스뵈”하면 “해리 홀레”를 금세 떠올릴 정도로 작가의 대표 캐릭터이자 스릴러 역사상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성공한 캐릭터하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는 “눈사람(Snowman)"을 들 수 있겠다. 어린 시절 다들 겨울철에 한번쯤은 만들어 봤을, 바라만 봐도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친숙한 존재인 “눈사람”이 연쇄살인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는, 즉 뉴욕타임스 평가처럼 익숙한 것이 가장 불길해지는 예기치 못한 의외성이 사람의 공포를 잡을 수 없이 크게 만든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짚어낸 그런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악몽을 꾸게 만든 장면들은 앞에서도 언급한 초반부 두 장면 외에는 중후반부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그 장면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계속 머릿 속에 남아 책을 덮고 나서도 기괴한 모습의 눈사람이 계속 떠오르게 만든다. 즉 책 도입부부터 이 책이 어떻다 하는 방향성과 기대를 결정하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데서 이 책은 분명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주인공과 “눈사람”이라는 의외성이 주는 공포스러운 설정과 함께 독자가 긴장의 고삐를 한 순간도 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이어 계속되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연쇄살인사건들과 수사가 계속되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정황들과 증거들, 그러면서 강력한 용의자들이 계속 등장하지만 이내 주인공에 의해 범인이 아님이 밝혀지는 반전들 - 사실 남아 있는 분량을 보면 벌써 범인이 등장할 리가 없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깔아 놓은 단서들과 복선 때문에 깜빡 속아 넘어 가고야 만다 - 이 이어지면서 한눈 팔 겨를도 주지 않고 중반부까지 숨 가쁘게 전개되고, 결말 에 이르러서는 범인의 정체와 그동안 모든 사건의 내력을 일거에 밝히고는 주인공과 범인의 대결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 때문에 가뜩이나 뗄 수 없는 시선을 아예 책에 파고 들어갈 기세로 더욱 몰입시켜 버린다. 마침내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을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600 여 페이지라는 분량이 너무나도 짧다는 생각이 들어 1~2백 페이지가 더 계속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게 만든다.  이처럼 스릴러 소설의 성공 공식(公式)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책, 그래서 “정말 재미있다”라는 평가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닌 이 책의 재미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이 단 두 권 뿐인 생소한 작가인데다가 북구 유럽인 “노르웨이”라는 배경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이 책과 비교해 볼 만한 작품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작가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별칭 - 인터넷 서점 작가 소개글을 보면 북유럽의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등 서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작가들이 별칭으로 쓰이고 있다 - 중의 하나이자 역시 같은 북구권인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재미와 스릴이 <밀레니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밀레니엄 급(級)” - 우열을 가름하기 힘든 수준일 때 쓰는 표현인 “~급(級)” - 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감상문이 횡설수설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이 책, <밀레니엄>과 함께 서구 스릴러 소설의 평가 기준이 될 것이며 후속작이 기다려지는 작가 중 1순위가 바로 “요 네스뵈”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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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세계사 - 역사의 운명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든다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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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Irony)”

사전을 검색해보면 “반어(反語).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라고 나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사학(修辭學)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지자(知者)로 자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상대방 입장의 내적 모순을 폭로하고, 그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문답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네이버 발췌). 이처럼 모두의 예상과 전혀 반대되는 의외의 결과가 일어날 때 종종 “아이러니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러니한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멀리 갈 것 도 없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독립유공자의 후손 10명 중 6명이 고졸 이하의 학력에다 직업도 없이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가 아닐까? 선친으로부터 가난을 물려받아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고, 그 결과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는 달리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에도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이를 세습까지 해 그 후손들이 여태껏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고 하니 이러고도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들에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듯 하다. <엽기 조선왕조실록>,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등 역사 관련 에세이를 발표해온 “이성주” 작가가 이번에는 세계사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건 33가지를 담은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운명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든다(추수밭/2012년 2월)>을 펴냈다. 전작들처럼 가볍고 유머스러운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 그 어떤 허구의 이야기들보다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작가는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저자의 말”에서 역사와 관련된 수많은 잠언들 중에서 필자가 가장 많이 더듬는 구절이 하나 있다며 다음 구절을 소개한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대 정치권력이 인정한 사실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란 다분히 정치적이고, 그 정치성에 걸맞게 각색, 윤색된 기록이며 팩트(fact)를 주관적으로 해석해 후세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 주는 선을 넘어 팩트 자체를 왜곡할 수 도 있다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가 사실이 아닐 수 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품어보자"고 말한다. 물론 사실관계 자체가 왜곡됐을 수 도 있고, 잘못된 선입견에 의해 고착화된 모습의 역사만 바라볼 수 도 있겠지만 이런 작은 의심이 균열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실체적인 역사에 접근할 수 도 있다는 것, 이런 게 역사를 바라보는 진짜 재미가 아니겠냐고 물으며 이 책은 이런 역사적 재미를 찾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33가지 세계사 속 아이러니한 사건들을 6가지로 나눠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사건들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오전 열한시까지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급진적인 철학 사조 때문에 고국을 떠나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철학 선생이 되는데 아뿔사, 이 여왕은 “아침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새벽 다섯시 강의를 하다가 북국의 새벽공기에 체력이 약해 폐렴에 걸리고 말아 죽고 만다.

 

·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위대한 과학자 “퀴리 부인(Marie Curie, 1867~1934)”. 1911년 두 번째로 노벨화학상 수상이 결정되지만 이미 고인이 된 남편의 제자이자 유부남인 “폴”과의 불륜 때문에 노벨상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고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위인전에 나오는 퀴리 부인은 오로지 과학 연구에만 매진하느라 주변은 물론, 자신의 건강까지 돌보지 않는 맹렬 과학자로 그려졌지만 그러나 그녀에게도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 덕분에 온 세상을 적으로 돌려야 했다며 반쪽짜리 위인전을 봐야 했다는 사실이 새삼 화가 난다고 말한다.

 

· 185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마라부트 부족이 마술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독립을 주장하면서 알제리에 독립의 기운이 팽배해진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당대 최고의 마술가인 “로베르 우댕(Houdin)을 섭외하여 알제리로 파견했다. 우댕은 모자 속 대포알 꺼내기, 전자석을 이용한 상자 마술, 총알잡기 마술 등을 선보여 알제리 지도자와 주민들을 경악케 했고, 마라부트족의 주술은 힘을 잃어 반란의 기세도 이내 꺾여버렸다. 알제리가 독립한 것은 우댕이 숨지고(1871년) 한참이 지난 1962년이었다.

 

·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인 소녀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그녀는 “마녀(魔女)”라는 죄명 외에 두번째 죄명이 있었으니 바로 "풍기문란","국기문란", 즉 다리를 훤히 내놓은 반바지를 입었다는 죄란다. 그래서 잔다르크는 “반바지+남성복”을 입었다는 죄로 화형(火刑)을 당했다고 한다. 전쟁을 위해서 치렁치렁한 치마가 아닌 반바지를 입은 게 - 남성들에게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매듭을 많이 달아 입었다고 한다 - 과연 죄일까? 당시에는 여자가 다리를 들어내고, 남성옷을 입은게 큰 죄였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바로 성경 “신명기 22장 5절” 이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여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원 뜻은 성의 정체성을 바꾸지 말라는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문구에만 집착한 당시 종교적 엄숙주의에 잔다르크는 결국 풍기문란이라는 오명(汚名)을 쓰고 죽임을 당한 것이다.

 

· 13세기 중엽, 유럽 최고의 의과대학인 파리 대학에서 외과 과정을 완전히 폐지했다. 이유인즉슨, 의사들이 하기엔 너무 천박한 일이라서 상처를 꿰매고 고름을 짜는 일은 이발사들로도 충분하다는 논리였다. 외과의들은 당연히 반발을 했지만 내과의들이 이발사를 모아 외과 속성반을 가르치면서 외과의들은 이발사들과 같은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이를 한번에 만회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당시 최고 권력자인 루이 14세가 치질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내노라하는 내과의들의 치료에도 낫지 않자 당시 최고의 외과의인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가 치료에 나서 1686년 말끔히 치료하게 되고, 같은 질환을 앓고 있던 많은 귀족들의 치질 또한 낫게 하자 이때부터 외과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게 된다. 만약 루이 14세의 치질이 아니었다면, 외과의사들의 대우는 어땠을까? 펠릭스가 루이 14세의 치질을 고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작가는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교차로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노예해방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던 “링컨 대통령”, 희대의 학살자 “스타린”의 초라한 죽음, 삼국 통일의 명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명장다운 전략전술을 보여 줘야 하는데 늘 정면 승부대신 모략과 음모로 적을 상대했던 “김유신”, 화학전을 위해 준비했던 “겨자가스”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백혈병 치료제로 쓰이게 된 황당한 사건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사속 아이러니한 사건들은 서두에서 말한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처럼 민감하거나 혹은 분통터지는 사건들이 아닌 그저 한번 읽고 웃고 넘길 만한, 그리고 이런 류의 역사 속 에피소드를 소개한 에세이 책들에서 한번쯤은 읽어 봤을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이런 비판이 있을 수 도 있다는 것을 예상했는지 “보는 사람에 따라 재미없을 수 도 있고, 너무 가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책들이 나오지 않는가? 그 말석에 이름 한 줄 더 추가한다 해서 그리 큰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니리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결국 책으로까지 표출되어 버렸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 작가 말대로 가볍다, 너무 흥미위주다 탓하지 말고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역사에 대한 재미있는 상식(常識)인만큼 각종 모임에서 가벼운 이야기꺼리로 활용해 볼만 가치는 충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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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송곳니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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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개의 혼혈종인 “늑대개(Wolfdog)”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년전 소년과 늑대개의 우정을 그린 디즈니 가족영화 <늑대개(White Fang, 1991)>을 통해서였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소년이 역시 자기처럼 설원에서 어미를 여읜 새끼 늑대개를 데려다 키우고 둘은 생물학적 종(種)을 초월한 우정을 쌓으면서 서로를 보살피며 성장한다는 가족 영화인데, 마지막 결말에서 자연으로 돌려보냈지만 소년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 늑대개와 진한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당시 성인이었던 내가 봐도 꽤나 감동적이었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원작인 “잭 런던”의 소설로도 만났는데,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늑대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만 다를 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童話)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못지않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20년 만에 또 다른 “늑대개” 이야기를, 그것도 추리소설로 다시 만났다. 바로 2월 27일 현재까지 128만 명을 동원한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하울링(2012)>의 원작 소설인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凍える牙/시공사/2007년 8월)>이 그 책이다. 이 책에서 늑대개는 사람을 죽이는 공포스러운 존재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와 소설 속 늑대개 못지않게 매력적인 그런 동물로 그려지고 있다.

 

북풍이 강하게 불던 어느날 밤 자정을 10분 앞둔 시간에 한 남자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남자가 시킨 맥주와 잔을 쟁반에 담아서 남자에게 다가간 점원은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불덩이가 된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레스토랑은 이내 남자의 몸에서 커튼으로 옮겨 붙은 불이 단숨에 타오르면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신하는 손님들의 비명과 고함소리로 일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경찰은 심야 레스토랑의 화재 사건을 살인 사건이라고 결론내리고 특별팀을 구성하는데, 결혼생활 4년 반 만에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지 1년이 다 된 기동수사대 소속 여형사 “오토미치 다카코”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특별팀에 배속 받는다. 그녀의 파트너는 27년 경찰 생활 중 형사 생활이 15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내내 강력범 수사를 담당해온 베테랑 형사 “다키자와”. 굵고 짧은 목에 작은 키, 추레한 옷차림으로 “황제 펭귄”을 연상시키는 그는 자신의 파트너로 여형사가 배치된 게 영 불만스러워 대꾸도 하지 않고, 다카코는 그런 다키자와에게서 여성에게는 지극히 높기만 한 경찰 세계의 벽을 실감하면서도 꿋꿋이 그를 따라다니며 수사에 나선다. 화재의 원인이 남자의 허리띠에 숨겨진 장치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는데, 특이하게도 시체의 허벅지에는 짐승에게 물린 자국이 발견된다. 특별팀 수사관들은 조를 나눠 주변을 탐문 수사하고 화재를 일으킨 약품의 출처를 조사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동물에 머리와 목덜미를 물려 죽은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조사 결과 사람을 물어 죽인 동물은 늑대와 개의 교배종인 “늑대개”이고, 또한 레스토랑 화재 사건 남자 시체 허벅지에 나 있는 물린 상처 또한 늑대개의 이빨 자국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낸 수사팀은 수입된 늑대개 리스트와 경찰견을 훈련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 간다. 과연 이 기이한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책이 출간된 지 5년 가까이 되었고 영화도 100만 이상 관람을 했으니 결말을 아는 분들도 많겠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 책은 추리소설 일본식 분류법으로 본다면 사회 문제 - 소설에서 살인의 발단이 청소년들의 일탈과 약물 중독에서 시작한다 - 를 테마로 삼고 경찰의 치밀한 탐문과 조사를 통해 사건이 서서히 해결된다는 점에서 “사회파 추리 소설”로 볼 수 있겠다. 처음 도입부부터 기괴하기까지 한 자연 발화 사건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지만 중반 이후 경찰들의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현실감은 뛰어나지만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고, 결말도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주는 묘미는 없어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로는 밋밋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관전 포인트는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 설정과 변화, 그리고 “늑대개”라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소재를 들 수 있겠다.

 

우선 남녀 주인공인 “다키자와”와 “다카코”의 관계부터 이야기해보자.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는 보수적인 집단인 “경찰”을 대표하는 고참 형사 “다키자와”와 그런 편견을 직접 피부로 느껴왔던 “다카코”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퉁명스럽기만 한 다키자와는 역시나 다카코를 무시하고, 다카코는 그런 다키자와를 속으로 황제 펭귄이라고 부르며 경멸하지만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며 수사에 동참한다. 그런 둘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시점은 늑대개에 물려 죽은 시체가 발견되면서부터인데, 다카코는 세심한 사전 조사를 통해 늑대개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고 다키자와는 그런 그녀가 결코 숙맥이 아님을 알고 내심 놀란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관계가 개선될 수 는 없는 법, 여전히 겉으로는 냉랭하고 불편해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서로를 인정해가고, 조금 있다 언급할 마지막 대목의 추격 장면에서는 다키자와의 목소리에는 다카코의 안전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십분 담겨져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둘의 관계는 완전히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불편한 관계로 끝을 맺는다. 물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한 것은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둘의 관계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쫓아가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물론 남녀 형사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주로 볼 수 있는 진부한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런 두 주인공의 미묘하면서도 재미있는 관계 변화를 여성 작가 특유의 세심한 필체로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두 주인공의 관계설정과 함께 제 3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늑대개 “질풍”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늑대개 “질풍”은 사람을 물어 죽이는 맹수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 <늑대개>의 “화이트팽”처럼 보통 개들을 뛰어넘는 두뇌와 주인에게 지극한 충성심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야수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훈련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그렇다고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지정한 사람만을 죽이는, 주인과 딸이 죽거나 다친 후에도 주인의 명을 계속 수행해가고 주인을 해친 범인을 쫓는 질풍의 모습은 공포스러움보다는 연민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번역가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결말 부문에서 “도마뱀”(오토바이 추적 임무를 부여 받은 경찰) 출신의 다카코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풍을 쫓는 추격전을 벌이면서 질풍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역시 결코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 다카코, 그런 그녀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듯이 멈춰 서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질풍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마저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가장 공을 들였을 장면이었을 텐데 작가가 인터넷 서점과 인터뷰한 글에서 영화 속 이 장면을 만족해했다니 절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질풍의 마지막 모습도 “늑대개”다운 매력과 특별함을 잘 살리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디즈니 영화 <늑대개>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사람과 늑대개의 교감이라는 본질만큼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들간의 관계와 심리묘사, 늑대개와의 교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영화로 어떻게 그려냈을지 영화가 참 궁금한데, 언뜻 생각으로는 다키자와 역으로 송강호는 안성맞춤 - 물론 목 짧고 키 작은 “황제 펭귄”과는 거리가 멀지만 - 같은데 다카코 역으로 이나영은 잘 매칭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나영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평도 있으니 영화를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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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트라이엄프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유호 지음 / 청어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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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과 밀리터리 소설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 이름을 익히 들어봤을 “인기” 작가인 “유호”의 작품은 현대의 군인들이 조선 후기로 타임슬립(Timeslip)하여 강대국을 만든다는 <비상(2004, 대체역사소설)>과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전쟁을 그린 <동해(2005, 밀리터리 소설)>를 통해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만났던 작품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직은 설익고 어설픈 면이 없진 않았지만 두 책 모두 내가 즐겨 읽는 장르인데다가 나름 치밀하고 빠른 이야기 전개, 그리고 장르소설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재미”만큼은 뛰어났던 작품들로 기억된다. 그래서 계속 그의 작품들은 눈여겨보곤 했지만 두 책 이후로는 접해보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기존 작품들을 뛰어넘는 완성도와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멋진 소설로 다시 그를 만났다. 바로 <레드 트라이엄프(청어람/2012년 2월)>가 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보통은 첩보 소설이나 스릴러물은 광의(廣意)로 “추리소설” - 사실은 세밀하게 분류하면 목록관리가 힘들어 귀찮아서 그냥 추리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는데, 이 책만큼은 첩보, 액션, 밀리터리, 스릴러 모두를 망라하고 있으니 “첩보액션스릴러”라고 분류해야겠다. 이런 분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스탄불을 출발해서 부산으로 향하던 한국 선적 3만 5천톤급 화물선 “금성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지역에 초계 활동을 벌이던 KDX-3급 구축함 “율곡 이이”가 급히 따라붙지만 금성호는 해적들의 소거지에 강제 정박당하고야 만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긴급하게 정보요원인 “이철중” 소령과 국정원 소속 여자 무관인 “차수연” 대위를 파견하여 케냐에서 활동하는 무기밀거래 에이전트인 “김석훈”과 접촉한다. 이름보다는 “라이언(Lion)" 또는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역시 사자를 뜻하는 “심바”로 더 잘 알려진 석훈은 평소 파티 석상 등을 통해서 눈여겨보던 차수연의 의뢰를 받아들여 해적들과 협상에 나선다. 협상이 있기 전날 밤 이철중 소령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특수요원들과 화물선에 잠입하다가 해적들이 설치해놓은 부비트랩에 걸려 화물선이 대폭발을 일으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석훈은 사투를 벌이지만 절친한 동료를 잃고 해적들에게 붙잡혀 해적들의 부대로 끌려가 그곳에서 금성호 선장 일행을 만나게 된다. 석훈의 동료이자 명사수인 “제니퍼”와 차수연은 석훈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쫓아가고, 천신만고 끝에 석훈과 선장 일행을 구해내고 그들을 지원하러 온 율곡 이이 소속 특수 부대에게 선장 일행의 신병을 무사히 양도한다. 그런데 단순히 납치 사건인 줄 만 알았던 이 사건에는 뭔가 음모가 숨겨 있었다. 금성호 냉동 창고에는 한국인 시신이 있었고 러시아 정보부대인 GRU 출신인 킬러 “미하엘” 일당이 소말리아 해적을 사주하여 납치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동료에 대한 복수를 철칙으로 여기는 석훈은 이 일을 사주했던 미하엘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한 납치사건에 숨겨진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일행들과 이스탄불로 잠입한다. 그런데 일은 이스라엘 모사드, 미국 CIA, 중국 정보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첩보기관들이 얽히고설키는 국제 첩보대전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과연 세계 첩보기관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사드와 러시아 암흑 조직의 대격돌, 거기에 CIA의 개입, 죽은 줄 알았던 이철중 소령이 살아 돌아와 석훈에게 총질을 해대는 등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더욱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고 읽는 속도 또한 더욱 빨라지게 만든다.

 

이 책, 마치 헐리우드 첩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을 아우르는 광활한 로케이션, 가히 전 세계 주요 첩보기관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숨 막히는 첩보전의 세계, 그런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들을 멋지게 극복해내는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씬, 여기에 그 옛날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대신 진행했던 “불곰사업”에 얽힌 추악한 음모까지 곁들여지고 이런 류의 소설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과의 애정씬 등 첩보액션스릴러 장르의 “재미” 요소들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재미 요소들만 모아 놓으면 비약이 심해지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흐를 법도 한데, 역시나 전작들에서 보여준 치밀하고 정교한 설정과 군더더기 없이 빠른 이야기 전개, 긴장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율할 줄 하는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유치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역시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소말리아 해적들과 첩보기관과 벌이는 연이은 총격씬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소설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원거리 저격씬과 일대 다수의 근접전, 폭발물과 부비트랩을 이용한 전투 등등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그대로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사실감 있게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런 호쾌하고 화려한 액션씬들을 좇아가다보면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꼼꼼이 읽지 못하고 다음 페이지를 허겁지겁 열어보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긴장감을 최고조에 다다르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재미에만 치중하다 보니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지만 가까스로 이를 극복하고 멋진 복수까지 해낸다는, 비슷한 소재의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정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이라면 결코 체험해보지 못할 “첩보세계”를 현실감있게 충실히 구현해내고, 여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통쾌한 액션씬들이 그런 한계를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이 책의 작가, 5년여 만에 신작으로 만났는데, 전작들 보다는 한결 뛰어난 재미를 선보이고 있고 장르소설의 본질인 “재미”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계속 진화중인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작가의 작품들에서 더한 재미를 선보여달라는 기대감과 격려의 의미 때문이라도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나와 다른 느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나 혹은 이 서평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재미를 못 느끼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저 친구가 요즘 들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 장르소설을 격하게 사랑하는구나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미리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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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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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부터 감정이입이 돼서 다 읽고 나서도 쉽게 헤어 나오기가 힘들 정도로 여운과 감동이 오래 지속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는 내내 겉도는 느낌에 몰입이 되지 않아 애먹는 책이 있기도 하다. 전자(前者)의 경우에는 읽고 나서 감상문(感想文)을 쓰면서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글이 절로 길어지게 만드는 데 반해, 후자(後者)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탓인지 감상 첫 대목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해서 수십번 썼다 지웠다 하게 만들기도 한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이제는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른 “윤성희”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인 <웃는 동안(문학과 지성사/2011년 12월)>은 나에게 어떤 책일까? 처음 대하는 작가이다 보니 낯섦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선호하지 않는 단편 소설집이다 보니 이래저래 우려감으로 시작한 이 책, 아쉽게도 나에게는 “후자”의 책이었다.

 

 

책에는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학여행을 가던 중 죠스바를 먹다가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죽으면서 입술과 혀가 보라색으로 물들어버린 네 여학생 귀신 이야기인 <어쩌면>부터 당황스럽게 만든다. 여기에 이 단편집의 표제작(表題作)이자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 세 친구가 오래전 함께 훔쳤던 소파를 들고 다니는 장면을 지켜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남자 이야기 - 역시 귀신 이야기이다 - 인 <웃는 동안>, 한때는 금고 판매업자이자 금고털이범이었지만 지금은 죽어서 자신의 집 지하실에 갇혀 - 갇힌 이유가 아버지의 죽음을 감추고 연금을 타먹으려는 못된 아들 내외 때문이란다 -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리를 듣는 죽은 노인 이야기인 <눈사람>도 영 당황스럽기만 작품들이었다. 세편 모두 기발한 상황적 설정으로 주인공들 각자의 상실감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런 이해는 머릿속에서만 가능할 뿐 가슴으로 공감할 수 가 없었다. 이렇게 세 작품부터 올곧이 공감을 못하다 보니 다른 단편들도 영 낯설기만 하고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오래전 가출한 쌍둥이 언니들과 재회하여 소매치기에 나서지만 나이 들어 관절염이 들어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들이 훔쳤던 지갑의 주인공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인 <매일 매일 초승달>, 영화 오래 보기 대회에 참여하여 영화와 함께 자신의 삶을 오버랩해보는 노인 이야기인 <공기없는 밤>, 자신의 초라하기만 한 삶을 가짜 자서전을 쓰면서 위로받으려고 하는 중년 여인 이야기인 <부메랑> 만큼은 읽고 나서 한번쯤 생각할 꺼리를 남겨 놓은 그런 작품이라고 하겠다. 짤막짤막한 10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는 문학평론가의 멋드러진 해설집이 수록되어 있지만 역시나 해설 또한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고, 작가가 직접 소개하는 이 책의 단편들을 쓰게 된 동기들을 써놓은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다소나마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이미 다 읽은 이상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그대로 마지막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책에는 분명 그동안 국내 여느 작가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소재와 설정, 작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유머와 성찰이 담겨 있었지만 올곧이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나에게는 부끄럽지만 곤혹스러운 책읽기였다고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겠다. 그렇다고 작가의 공들여 쓴 작품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간(行間)을 읽어내지 못하고 드러난 겉모습(이야기)에만 치우친 나의 문학적 소양(素養)의 부족함을 탓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감상문 또한 이렇게 짧게 서둘러 마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 “윤성희”를 단편이 아닌 호흡이 긴 장편으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긴 호흡에 맞춰보다 보면 절로 심장박동이 같아질 테고, 좀 더 깊은 공감을 느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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