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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송곳니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늑대와 개의 혼혈종인 “늑대개(Wolfdog)”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년전 소년과 늑대개의 우정을 그린 디즈니 가족영화 <늑대개(White Fang, 1991)>을 통해서였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소년이 역시 자기처럼 설원에서 어미를 여읜 새끼 늑대개를 데려다 키우고 둘은 생물학적 종(種)을 초월한 우정을 쌓으면서 서로를 보살피며 성장한다는 가족 영화인데, 마지막 결말에서 자연으로 돌려보냈지만 소년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 늑대개와 진한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당시 성인이었던 내가 봐도 꽤나 감동적이었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원작인 “잭 런던”의 소설로도 만났는데,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늑대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만 다를 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童話)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못지않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20년 만에 또 다른 “늑대개” 이야기를, 그것도 추리소설로 다시 만났다. 바로 2월 27일 현재까지 128만 명을 동원한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하울링(2012)>의 원작 소설인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凍える牙/시공사/2007년 8월)>이 그 책이다. 이 책에서 늑대개는 사람을 죽이는 공포스러운 존재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와 소설 속 늑대개 못지않게 매력적인 그런 동물로 그려지고 있다.
북풍이 강하게 불던 어느날 밤 자정을 10분 앞둔 시간에 한 남자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남자가 시킨 맥주와 잔을 쟁반에 담아서 남자에게 다가간 점원은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불덩이가 된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레스토랑은 이내 남자의 몸에서 커튼으로 옮겨 붙은 불이 단숨에 타오르면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신하는 손님들의 비명과 고함소리로 일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경찰은 심야 레스토랑의 화재 사건을 살인 사건이라고 결론내리고 특별팀을 구성하는데, 결혼생활 4년 반 만에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지 1년이 다 된 기동수사대 소속 여형사 “오토미치 다카코”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특별팀에 배속 받는다. 그녀의 파트너는 27년 경찰 생활 중 형사 생활이 15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내내 강력범 수사를 담당해온 베테랑 형사 “다키자와”. 굵고 짧은 목에 작은 키, 추레한 옷차림으로 “황제 펭귄”을 연상시키는 그는 자신의 파트너로 여형사가 배치된 게 영 불만스러워 대꾸도 하지 않고, 다카코는 그런 다키자와에게서 여성에게는 지극히 높기만 한 경찰 세계의 벽을 실감하면서도 꿋꿋이 그를 따라다니며 수사에 나선다. 화재의 원인이 남자의 허리띠에 숨겨진 장치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는데, 특이하게도 시체의 허벅지에는 짐승에게 물린 자국이 발견된다. 특별팀 수사관들은 조를 나눠 주변을 탐문 수사하고 화재를 일으킨 약품의 출처를 조사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동물에 머리와 목덜미를 물려 죽은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조사 결과 사람을 물어 죽인 동물은 늑대와 개의 교배종인 “늑대개”이고, 또한 레스토랑 화재 사건 남자 시체 허벅지에 나 있는 물린 상처 또한 늑대개의 이빨 자국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낸 수사팀은 수입된 늑대개 리스트와 경찰견을 훈련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 간다. 과연 이 기이한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책이 출간된 지 5년 가까이 되었고 영화도 100만 이상 관람을 했으니 결말을 아는 분들도 많겠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 책은 추리소설 일본식 분류법으로 본다면 사회 문제 - 소설에서 살인의 발단이 청소년들의 일탈과 약물 중독에서 시작한다 - 를 테마로 삼고 경찰의 치밀한 탐문과 조사를 통해 사건이 서서히 해결된다는 점에서 “사회파 추리 소설”로 볼 수 있겠다. 처음 도입부부터 기괴하기까지 한 자연 발화 사건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지만 중반 이후 경찰들의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현실감은 뛰어나지만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고, 결말도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주는 묘미는 없어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로는 밋밋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관전 포인트는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 설정과 변화, 그리고 “늑대개”라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소재를 들 수 있겠다.
우선 남녀 주인공인 “다키자와”와 “다카코”의 관계부터 이야기해보자.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는 보수적인 집단인 “경찰”을 대표하는 고참 형사 “다키자와”와 그런 편견을 직접 피부로 느껴왔던 “다카코”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퉁명스럽기만 한 다키자와는 역시나 다카코를 무시하고, 다카코는 그런 다키자와를 속으로 황제 펭귄이라고 부르며 경멸하지만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며 수사에 동참한다. 그런 둘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시점은 늑대개에 물려 죽은 시체가 발견되면서부터인데, 다카코는 세심한 사전 조사를 통해 늑대개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고 다키자와는 그런 그녀가 결코 숙맥이 아님을 알고 내심 놀란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관계가 개선될 수 는 없는 법, 여전히 겉으로는 냉랭하고 불편해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서로를 인정해가고, 조금 있다 언급할 마지막 대목의 추격 장면에서는 다키자와의 목소리에는 다카코의 안전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십분 담겨져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둘의 관계는 완전히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불편한 관계로 끝을 맺는다. 물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한 것은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둘의 관계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쫓아가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물론 남녀 형사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주로 볼 수 있는 진부한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런 두 주인공의 미묘하면서도 재미있는 관계 변화를 여성 작가 특유의 세심한 필체로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두 주인공의 관계설정과 함께 제 3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늑대개 “질풍”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늑대개 “질풍”은 사람을 물어 죽이는 맹수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 <늑대개>의 “화이트팽”처럼 보통 개들을 뛰어넘는 두뇌와 주인에게 지극한 충성심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야수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훈련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그렇다고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지정한 사람만을 죽이는, 주인과 딸이 죽거나 다친 후에도 주인의 명을 계속 수행해가고 주인을 해친 범인을 쫓는 질풍의 모습은 공포스러움보다는 연민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번역가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결말 부문에서 “도마뱀”(오토바이 추적 임무를 부여 받은 경찰) 출신의 다카코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풍을 쫓는 추격전을 벌이면서 질풍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역시 결코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 다카코, 그런 그녀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듯이 멈춰 서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질풍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마저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가장 공을 들였을 장면이었을 텐데 작가가 인터넷 서점과 인터뷰한 글에서 영화 속 이 장면을 만족해했다니 절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질풍의 마지막 모습도 “늑대개”다운 매력과 특별함을 잘 살리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디즈니 영화 <늑대개>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사람과 늑대개의 교감이라는 본질만큼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들간의 관계와 심리묘사, 늑대개와의 교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영화로 어떻게 그려냈을지 영화가 참 궁금한데, 언뜻 생각으로는 다키자와 역으로 송강호는 안성맞춤 - 물론 목 짧고 키 작은 “황제 펭귄”과는 거리가 멀지만 - 같은데 다카코 역으로 이나영은 잘 매칭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나영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평도 있으니 영화를 기대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