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트라이엄프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유호 지음 / 청어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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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과 밀리터리 소설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 이름을 익히 들어봤을 “인기” 작가인 “유호”의 작품은 현대의 군인들이 조선 후기로 타임슬립(Timeslip)하여 강대국을 만든다는 <비상(2004, 대체역사소설)>과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전쟁을 그린 <동해(2005, 밀리터리 소설)>를 통해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만났던 작품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직은 설익고 어설픈 면이 없진 않았지만 두 책 모두 내가 즐겨 읽는 장르인데다가 나름 치밀하고 빠른 이야기 전개, 그리고 장르소설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재미”만큼은 뛰어났던 작품들로 기억된다. 그래서 계속 그의 작품들은 눈여겨보곤 했지만 두 책 이후로는 접해보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기존 작품들을 뛰어넘는 완성도와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멋진 소설로 다시 그를 만났다. 바로 <레드 트라이엄프(청어람/2012년 2월)>가 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보통은 첩보 소설이나 스릴러물은 광의(廣意)로 “추리소설” - 사실은 세밀하게 분류하면 목록관리가 힘들어 귀찮아서 그냥 추리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는데, 이 책만큼은 첩보, 액션, 밀리터리, 스릴러 모두를 망라하고 있으니 “첩보액션스릴러”라고 분류해야겠다. 이런 분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스탄불을 출발해서 부산으로 향하던 한국 선적 3만 5천톤급 화물선 “금성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지역에 초계 활동을 벌이던 KDX-3급 구축함 “율곡 이이”가 급히 따라붙지만 금성호는 해적들의 소거지에 강제 정박당하고야 만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긴급하게 정보요원인 “이철중” 소령과 국정원 소속 여자 무관인 “차수연” 대위를 파견하여 케냐에서 활동하는 무기밀거래 에이전트인 “김석훈”과 접촉한다. 이름보다는 “라이언(Lion)" 또는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역시 사자를 뜻하는 “심바”로 더 잘 알려진 석훈은 평소 파티 석상 등을 통해서 눈여겨보던 차수연의 의뢰를 받아들여 해적들과 협상에 나선다. 협상이 있기 전날 밤 이철중 소령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특수요원들과 화물선에 잠입하다가 해적들이 설치해놓은 부비트랩에 걸려 화물선이 대폭발을 일으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석훈은 사투를 벌이지만 절친한 동료를 잃고 해적들에게 붙잡혀 해적들의 부대로 끌려가 그곳에서 금성호 선장 일행을 만나게 된다. 석훈의 동료이자 명사수인 “제니퍼”와 차수연은 석훈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쫓아가고, 천신만고 끝에 석훈과 선장 일행을 구해내고 그들을 지원하러 온 율곡 이이 소속 특수 부대에게 선장 일행의 신병을 무사히 양도한다. 그런데 단순히 납치 사건인 줄 만 알았던 이 사건에는 뭔가 음모가 숨겨 있었다. 금성호 냉동 창고에는 한국인 시신이 있었고 러시아 정보부대인 GRU 출신인 킬러 “미하엘” 일당이 소말리아 해적을 사주하여 납치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동료에 대한 복수를 철칙으로 여기는 석훈은 이 일을 사주했던 미하엘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한 납치사건에 숨겨진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일행들과 이스탄불로 잠입한다. 그런데 일은 이스라엘 모사드, 미국 CIA, 중국 정보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첩보기관들이 얽히고설키는 국제 첩보대전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과연 세계 첩보기관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사드와 러시아 암흑 조직의 대격돌, 거기에 CIA의 개입, 죽은 줄 알았던 이철중 소령이 살아 돌아와 석훈에게 총질을 해대는 등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더욱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고 읽는 속도 또한 더욱 빨라지게 만든다.

 

이 책, 마치 헐리우드 첩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을 아우르는 광활한 로케이션, 가히 전 세계 주요 첩보기관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숨 막히는 첩보전의 세계, 그런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들을 멋지게 극복해내는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씬, 여기에 그 옛날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대신 진행했던 “불곰사업”에 얽힌 추악한 음모까지 곁들여지고 이런 류의 소설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과의 애정씬 등 첩보액션스릴러 장르의 “재미” 요소들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재미 요소들만 모아 놓으면 비약이 심해지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흐를 법도 한데, 역시나 전작들에서 보여준 치밀하고 정교한 설정과 군더더기 없이 빠른 이야기 전개, 긴장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율할 줄 하는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유치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역시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소말리아 해적들과 첩보기관과 벌이는 연이은 총격씬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소설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원거리 저격씬과 일대 다수의 근접전, 폭발물과 부비트랩을 이용한 전투 등등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그대로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사실감 있게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런 호쾌하고 화려한 액션씬들을 좇아가다보면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꼼꼼이 읽지 못하고 다음 페이지를 허겁지겁 열어보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긴장감을 최고조에 다다르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재미에만 치중하다 보니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지만 가까스로 이를 극복하고 멋진 복수까지 해낸다는, 비슷한 소재의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정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이라면 결코 체험해보지 못할 “첩보세계”를 현실감있게 충실히 구현해내고, 여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통쾌한 액션씬들이 그런 한계를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이 책의 작가, 5년여 만에 신작으로 만났는데, 전작들 보다는 한결 뛰어난 재미를 선보이고 있고 장르소설의 본질인 “재미”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계속 진화중인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작가의 작품들에서 더한 재미를 선보여달라는 기대감과 격려의 의미 때문이라도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나와 다른 느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나 혹은 이 서평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재미를 못 느끼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저 친구가 요즘 들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 장르소설을 격하게 사랑하는구나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미리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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