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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 불린다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지난 1월 <주홍색 연구>에 이어 두 달 여 만에 <달리의 고치(원제 ダリの繭/북홀릭/2012년 1월)>로 다시 만났다. 책을 받아들고서 제목의 “달리”라는 단어가 낯설어 검색을 해보니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라고 한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화가이며, 특히 연인이었던 “갈라(Gala Eluard; 1894~1982)”와의 지독한 사랑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림에 문외한이다 보니 이름을 알았더라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벌레가 실을 내어 지은 집을 의미하는 “고치(Cocoon,繭)”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제목에 대한 의문은 뒤로 한 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나니 그 의문은 저절로 풀려졌다.

 

 

40대 남성인 “도죠 슈이치”는 전국에 스물여덟 군데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연 매출 100억 엔대의 주얼리 체인의 경영자로, 그 성장세 뿐만 아니라 쉬르레알리슴의 거장인 살바도르 달리를 따라 하는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로 수차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인이다. 그는 달리처럼 밀랍으로 고정시켜 양끝이 삐죽 올라간 콧수염을 기르고, 자신의 사업장과 집을 달리의 미술품들로 도배해놓을 정도로 열광적인 달리 마니아이다. 그의 별장에는 마치 번데기 고치를 연상시키는 캡슐 형태의 기계인 “프로트 캡슐”이 설치되어 있는데, 생체성분과 유사한 액체로 채워진 그 캡슐에 들어가면 40분 만에 서너 시간의 숙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화가 달리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고 큰소리쳤다고 하는데, 달리가 자서전에서 그 안 - 어머니의 자궁(子宮) -이 어땠냐는 물음에 “더없이 편안한 낙원이었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달리 마니아인 도죠에게는 바로 달리가 말한 어머니의 자궁처럼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이자 낙원이었던 것이다. 즉 제목에서의 달리의 고치가 바로 이 캡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도죠가 그 캡슐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달리 수염은 깔끔히 잘려진 채로 말이다. 대학 법학과 교수이자 때때로 경찰 수사에 가담해 눈부신 탐정의 재능을 발휘하는 “필드워크”를 해온 “히무라 히데오”는 과거 사건을 해결하면서 알게 된 경찰의 요청으로 자신의 친구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함께 이 기묘한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고, 살인이 벌어지던 그 시간에 도죠 사장과 같이 있었던 이복 동생, 살해 흉기에 찍힌 지문의 주인공으로 드러난 회사 임원, 아름다운 여비서를 사이에 두고 도죠와 삼각관계였던 회사 디자이너 등이 차례로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지만 모두 이렇다 할 결정적인 알리바이의 허점이나 증거물을 찾지 못하면서 수사는 갈수록 혼선을 거듭한다. 이런 혼선 속에서 일본판 셜록 홈스인 히무라 히데오의 번뜩이는 두뇌는 사건의 진상을 마침내 밝혀내고야 만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아리스의 작품에는 자신이 학생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와 성인 작가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학생 아리스가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작가 아리스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를 집필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평행 우주” 개념이라고 할까? 아뭏튼 엘러리 퀸 보다 더 기발하고 복잡한 설정이다. 참고로 <주홍색 연구>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 인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의 정형화된 공식, 즉 기묘한 살인 현장과 살해 방법, 시간 순에 따라 하나씩 드러나는 증거들과 그에 따라 의심 받게 되는 용의자들, 마지막에 이르러 명탐정에 의해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트릭이 철저하게 깨져버리고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연들이 밝혀진다는 결말 등 추리소설, 특히 정교한 트릭과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신(新) 본격 추리소설”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용의자나 주변 인물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 말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는 장면이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역시나 이런 단서들과 증언들을 제시하여 독자를 수수께끼 풀이에 동참하게 하는, 작가와 독자 간의 “두뇌 싸움”이라는 추리 소설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작가와의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두뇌싸움은 여지없이 독자의 패배로 끝을 맺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불쾌하기 보다는 트릭의 절묘함과 기발함에 오히려 기분 좋은 패배가 되어 버려 독자들이 추리소설에 그렇게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트릭도 결말을 알고 나면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추리하는 과정에서는 과연 트릭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꽤나 정교하고 멋진 트릭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눈에 띄는 데, 도죠를 죽인 살인 무기에 찍혀 있는 지문(指紋)이 범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즉 우연(偶然)에 불과하다는 점은 억지스럽기까지 느껴졌다. 특히 결말에서 히무라의 추리는 명확한 물적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실수로 내뱉은 말과 정황상의 증거에 의한 것이어서 범인이 부인(否認)한다면 증거 불충분이 될 수 도 있는 그런 추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은 전편인 <주홍색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한 올의 보푸라기나 미세한 먼지, 땀과 침과 같은 체액, 심지어 피부 각질 조각 등과 같은 깨알 같은 증거에서 범인을 밝혀내는 오늘날의 “과학 수사” 현장에서 아무리 소설 속에서는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라 하더라도 결국 현실에서는 허구(虛構)일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오늘날 본격 추리 소설을 표방하는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본 추리소설이 이런 본격 추리 외에 “사회파”, “서술 트릭”, “코지 미스터리”, 공포·SF·판타지 등 다른 장르와의 “혼합형 추리” 등 다양한 추리 소설 장르들로 분화(分化)되고 있는 이유가.

 

 

추리 소설의 재미와 한계, 모두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 - 시리즈 순서가 아니라 읽은 순서의 의미로 - 인 <주홍색 연구> 보다는 추리 소설적 재미는 이 작품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저번 작품을 읽고 그를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었는데, 국내 출판된 그의 작품들이 내가 읽은 두 작품 이외에도 여러 편이 되고, 새로운 작품 출간 소식도 계속 들려오는 것을 보면 그 예감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다. 다음 번에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를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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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仁川國際空港,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부지 면적이 5619만 8600㎡(1,70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8.4 ㎢, 254만 평)의 6.7배에 달하고, 연간 2,700만 명의 여객과 17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웬만한 소(小)도시에 맞먹는 그런 규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항에는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로 종종 만나볼 수 있는 항공기 조종사와 남녀승무원들 뿐만 아니라, 관제사, 세관, 출입국관리사무소, 검역, 보안·검색 업무, 기타 공항 관리 업무 등 공항 소속 근무자들 뿐만 아니라 항공사, 여행사 근무자들에 이르기까지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상주기관과 기타 공항 종사자만도 3만 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중에서 우리가 공항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게 근무자들 중 하나가 고객들의 티켓 발권, 예약, 수속, 화물, 안내, 관리 등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여행사 공항 근무팀 직원들 일 텐데, 이웃 일본에서는 이들을 “아포양(あぽやん)” - 공항(airport)의 약자 ‘APO’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일본어 “양(‘やん’)의 합성어. 국내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찾아봤지만 딱히 부르는 용어는 없고 그냥 공항 지원팀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번에 읽은 “신노 다케시”의 <공항의 품격(원제 あぽやん(아포양) / 윌북 / 2012년 2월)>은 바로 “아포양”으로 근무하게 된 서른 살 남자 직원이 겪는 좌충우돌 활약상과 풋풋한 사랑을 그린 청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행사인 "다이코 투어리스트" 입사 8년 차 남자 직원인 나(“엔도 게이타”)는 “나리타” 공항 근무팀에 발령받은 지 한 달이 된, 이른바 “아포양”이다. 어머니는 화려한 곳이라고 정말 좋겠다고 하시고,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여자들이 많아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다이코 투어리스트 내부에서 공항 근무는 한직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35세에서 40세 사이의 딱히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곳이다. 공항에 배속된 내 나이 이제 29세, 지금까지의 경우로 보건대 공항에 배속될 나이가 아니다. 입사한 이후 본사 수배과와 기획과 같은 알짜배기 자리에서 근무했었고, 딱히 큰 실수를 저지른 기억도 없었는데, 이렇게 한직에 배치된 이유는 아마도 전 부서에서 일처리가 부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따돌림 당하던 과장대리를 위해 과장에게 대들었다가 그만 공항으로 쫓겨 온,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 못한 성격 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올해 나이 서른, 미래의 비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인 30대 전반을 아무 실적도 쌓을 수 없는 공항에서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완전히 맥이 빠지고, 고통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포양”의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아포양의 일, 결코 만만치가 않다. 조폭 아저씨들과 매춘 여행을 떠나겠다는 브라질 출신 여학생, 자신의 방문을 꺼려하는 아들 내외에게 가기 위해 예약해 놓은 패키지 여행을 취소하고는 자신을 데리러 온 아들에게 못이기는 척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노부인, 여권 때문에 가족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공항에 홀로 남은 소년, 예약을 뒤죽박죽 바꿔 놓고 취소하는 바람에 큰 혼란을 겪게 만든 예약부 전임 근무자, 예약이 사라진 것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자신들에게 천벌이 내린 탓이라고 비관하는 신혼 부부, 구조조정으로 아쉽게 이별하게 된 직원들 등 쉴 새 없이 터지는 예측불허의 사건 사고를 수습하느라 연일 정신없고 바쁘게 된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사건들을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한건 한건 해결해나가는 나는 같은 나이의 다이코 에어포트 서비스 직원인 “고가”와 알콩 달콩한 로맨스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로맨스는 “고가” 씨가 유학을 떠나면서 아쉽게도 막을 내리게 되고, 시간은 어느덧 1년이 지나 버린다. 나의 사수이자 나에게 늘 “즐기고 있지?”를 물어오던, 진정한 아포양이었던 “이마이즈미 도시오”씨가 공항을 떠나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이제는 자신도 어엿한 “아포양”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직으로 좌천당했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여행사 공항근무 업무(일명 “아포양”)를 시작한 한 젊은 청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기만 한 일들을 해결해가면서 자신의 일에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된다는 일종의 직장인판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여행 회사에서 6년간 근무한 작가의 경력이 십분 발휘된 탓인지 공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꽤나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공항 업무들과 종사들의 이야기가 꽤나 색다른 재미를 맛보게 하는데, 이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물론 공항이라는 특수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지만 큰 범주 내에서는 직장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그런 일들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일으키는 그런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객과의 마찰, 상급자와 하급자간, 본·지점 간, 그리고 상급자들 간 등 각종 직급과 회사들 간의 정치적인 알력과 다툼, 입사 동기와의 승진 경쟁, 구조 조정으로 인한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사내(社內) 연애에 이르기까지 직장인들의 일상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그런 일 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인공 엔도가 벌이는 좌충우돌 활약과 로맨스 과정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직장 생활 초년 시절을 떠올리며 감정이입하게 되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특히 그저 정년(停年)을 기다리며 자리보전하는 퇴물인 줄 알았던 소장이 젊은 시절 꿈이 “마음에 안 드는 윗사람을 쥐어박고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는 것이 꿈”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꿈을 꿔봤을 것이다. 나도 입사 10년차 까지는 이런 자신감 때문에 여러번 회사도 그만 두고 옮겨봤었다 - 이었으며, 마지막에 자신의 꿈을 기어코 이뤄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볼 수 있었고, 다른 곳으로 전근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이마이즈미의 인사말에서 주인공 엔도가 아포양으로서의 직장 생활에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해서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공항의 품격" - 원제는 "아포양"이니 아마도 국내 출판사에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 는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소개글에는 

 

공항의 품격이란 잘 꾸며진 공간의 외관이 아니라 여행의 설렘과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 공항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호수 위의 백조처럼 처절하리만치 분투하는 주인공의 유쾌한 한판 역전승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엔도와 같이 공항 근무직 직원들이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다해낼 때 비로소 공항이 그 기능을 온전히 해낸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원제보다 더 제격인, 꿈보다 해몽이 훨씬 좋은 그런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는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공감의 크기만큼은 그 여느 책 들 보다도 크게 다가온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엔도는 과연 이마이즈미가 늘 입에 달고 있던 인사말인  “당신은 지금 웃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아쉬운 로맨스는 그냥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이 책의 후속편 격인 <연애의 품격>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니 후속편이 어서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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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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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K-1, 프라이드, UFC 등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 시합들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중국 쿵푸 영화나 프로레슬링(WWE) 경기와 같은 화려하고 현란한 “가짜” 액션에 길들여진 나머지 바닥에 서로 엉겨 붙거나 또는 가만히 서서 허벅지나 종아리에 발길질을 해대는 이종격투기식 “실제” 액션들이 싱겁게만 느껴지는 탓 - 진짜를 시시하게 느끼고 가짜에 환호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도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도 있겠지만 천성적으로 피를 토하고 살갗이 찢어지며 뼈가 부러지는 폭력 장면에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심찮게 불거지는 폭력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종격투기에 대한 열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분석하는 여러 기사들이나 글들이 있지만 세련됨과 인위성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날것, 즉 꾸미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 폭력성을 현실 속에서 아니라 링 위라는 승인된 공간에서 승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큰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합법적인” 폭력에 열광하는 것은 비단 요즈음 경향만은 아닌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대회에 레슬링과 복싱을 합친 것 같은 격렬한 격투기인 “판크라티온(Pancration)"이 큰 인기를 끌었고, 고대 로마제국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검투사(劍鬪士, Gladiator)들의 시합은 당시 로마 귀족들과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경기였다고 하니 말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금은 그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한때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복싱(Boxing)", 그리고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로 평가받고 있는 프로레슬링,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종격투기에까지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떨까? 인간의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열광이 어느날 갑자기 사그라지지 않는 한 이런 전통은 계속될 것이며 첨단 하이테크 기술과 결합해 좀더 자극적이고 더 잔인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해볼 수 있다. 이런 미래의 “검투사”들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신체 조직이 뛰어난 슈퍼맨과 죄수들이 생사의 격투를 벌이는 TV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런닝맨(The Running Man, 1987)"이나 정치권력이 대중들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롤러 볼'을 만들어 낸다는 영화 <롤러 볼(Roller Ball, 1975)> - 2002년에 “존 맥티어난” 감독이 리메이크했다고 한다 -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무슨 책을 소개하려고 저렇게 소개가 횡설수설일까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잡설(雜說)은 여기까지만 늘어놓고 이제 오늘 소개할 책인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원제 The Hunger Games #1/북폴리오/2009년 10월)로 바로 넘어가야 겠다^^

 

먼저 이 책의 시대적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폐허가 된 북미 대륙에 새롭게 들어선 국가인 “판엠”은 주변 구역의 반란을 처절하게 응징하고는 반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홍보하기 위해 매년 주변 12개 구역의 십대 청소년들을 각각 두명 씩 추첨으로 뽑아 수도인 “캐피톨”에서 생사의 결투를 치르게 한다. 이 결투가 바로 “헝거게임”으로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미래판 “검투사” 시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리얼리티 TV쇼로 국가 전역에 생중계한다. 가난한 탄광촌인 12번 구역에 거주하는 16세의 소녀 ‘캣니스 애버딘’은 아버지께서 탄광 사고로 돌아가시자 집안의 가장이 되어 구역 외곽의 숲에서 밀렵을 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간다. “헝거 게임” 추첨이 있던 날, 캣니스는 첫 추첨 대상이라 절대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자신의 12살 여동생 “프림”이 뽑히게 되자 여동생을 대신해 자원하고 나선다. 또다른 선발자는 동갑내기 소년이자 마을 빵집 아들인 “피타 멜라크”가 되는데, 캣니스는 어릴적 자신에게 빵 덩어리를 던져준 그에게 가슴 속으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마친 캣니스와 피타는 오래전 12번 구역에서는 유일하게 우승했던 인물이지만 지금은 술에 쩔어 사는 멘터 “헤이머치”와 행정관 “에핏 트링켓”과 함께 생환을 기약할 수 없는 길에 오르게 된다. 수도인 “캐피톨”에 도착한 캣니스와 피타는 스폰서를 모으기 위한 사전 행사에서의 화려한 복장과 전투력 측정 테스트에서 참가자들 중에서 캣니스가 최고 점수를 받고 피타 또한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둘의 로맨스가 소개되면서 둘은 참가자들 중 단연 최고의 화제의 대상으로 부각된다. 드디어 헝거 게임이 시작되고, 참가자들이 무기와 보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일대 접전이 벌어지면서 처음부터 사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캣니스는 그런 혼란을 피해 최소한의 보급품과 무기를 챙겨 전투장인 황무지 한 구석에 숨어 버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망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캣니스는 자신의 주무기인 “활”을 사망한 참가자에게서 탈취하고는 본격적으로 살상게임에 나선다. 과연 캣니스는 이 죽음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게임이 진행되면서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가 계속 펼쳐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두 편의 영화나 작가가 모티브를 얻었다는 일본 영화 <배틀 로얄(Battle Royale, 2000)>을 본 독자들 -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배틀로얄>과 <헝거게임>의 공통점을 분석한 글들이 제법 많다 - 이라면 꽤나 익숙한, 혹여 보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스토리 라인에 결말도 쉽게 예측되는 어찌 보면 참 “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막상 읽기 시작하면 식상함이나 진부함을 느낄 겨를이 없이 “마치 게임처럼 중독성이 강해서 도저히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라는 “스티븐 킹”의 평(評) - 앞서 언급한 <런닝맨>의 원작자이자 각본가가 “스티븐 킹”이었다고 한다 - 처럼 시선을 잡아끌어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이 책만의 “특별한”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최후의 승자가 살아남는다는 “서바이벌(Servival)" 게임 특유의 재미를 꼽을 수 있겠다. 최근 공중파, 케이블 TV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는, 가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열 양상까지 빚는 이유도 바로 이런 서바이벌 게임이 주는 재미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마어마한 상금과 혜택, 굳이 별다른 꾸밈이나 장치를 가미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살벌한 경쟁과 인생역정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경쟁의 이면에서 서로 견제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서바이벌 특유의 재미에 푹 빠져 진행자와 포맷만 조금 다를 뿐 거기서 거기인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그렇게 열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가수, 배우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이렇게 열광하는데, 목숨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야 얼마나 더 흥분되고 짜릿할까? 특히 서바이벌 게임은 최종 결과보다도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탈락하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더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책의 2/3를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인 “캣니스”의 시점에서 게임 과정을 세밀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존 게임은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밖에 없을 텐데,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수위를 낮추어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마도 어린이 TV 쇼 작가와 청소년용 판타지 소설을 집필해온 경력과 작가가 여성이란 것이 큰 이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에 우연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작위적인 대목들도 있는데, 경쟁자들을 피해 나무 위로 도망간 캣니스가 머리 위에 있는 벌집을 이용해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장면이나 재빠르고 영리한 두뇌로 꽤나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경쟁자가 피타가 바위 위에 놓은 독(毒) 딸기를 먹고 어이없는 죽는 장면들이 바로 그러한 대목이며, 또한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죽는 장면에서도 주인공인 캣니스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무위(武威)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한 우연이나 또는 자기네들끼리 죽고 죽이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어서 다소 맥 빠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처럼 덜 자극적인 액션과 우연이 겹치는 사건의 연속들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과연 이 게임의 최종 생존자는 누구일까 그 생존자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궁금증을 갈수록 증폭시키고, 아슬아슬한 전투 장면이 계속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최고조의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하고는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바라게 만드는 “해피 엔딩”으로 그런 긴장감을 일거에 해소시킨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 독자들의 감정선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긴장의 완급을 어디에서 조절해야 하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즉 흥행 코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두 번째 재미는 책 속 곳곳에 숨어 있는 독재 정권의 폭력성과 현대 미디어 산업에 대한 조롱과 냉소일 것이다. 책 속의 국가인 “판엠”은 세계 경찰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이 몰락하고 그 지역에 들어선 미래 국가인데,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미국의 가치와 정의는 온데 간데 없고 여느 독재 국가 이상으로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으로 주변 국가 - 여기서는 반란을 일으킨 구역으로 설정 - 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도, 수도인 “캐피톨”에는 온갖 부(富)와 향락이 넘쳐나는 말 그대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국가로 설정한다. 그러기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주변 구역들의 주민들에게서 다시 한번 반란의 조짐이 고개를 들 만도 한데 국가는 헝거 게임을 개최하여 실패한 반란의 결말이 얼마나 참담하고 공포스러운지를 주민들에게 매년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헝게 게임은 주민들에 대한 경고성 행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불만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게임으로 무마시킨다는, 지난날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유명했던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다. 적어도 헝거 게임이 벌어질 때 만큼은 고단하기만 삶을 잠시 잊고 자신의 구역 선수들을 열광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마치 4년 마다 전 세계인들이 월드컵과 올림픽에 열광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게임이 누군가에는 오락이 되고 도박의 대상이 되는 상반된 현실을 적절히 대비하여 그 모순점들을 들춰낸다. 지금이야 이런 폭압 정치로 잠시 반란의 조짐이 무마된 것 같지만 언젠가는 폭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 지난 역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듯이 - 그런 폭발을 촉발하는 존재가 바로 “캣니스”가 될 거라는 암시가 여러 군데에서 등장한다. 즉 이미 앞으로 이어질 후속편들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작가는 현대 미디어 산업의 지나친 상업성과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중들에게 어필 -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스폰서”를 불러 모으는 중요한 수단이겠지만 - 하기 위해 화려한 옷차림으로 치장하고, 거짓된 로맨스라는 스토리 - 최근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을 보면 노래 실력 외에도 참가자의 인생 역정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 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과장된 애정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며, 마지막 결말에서는 우승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의 생리를 이용해 위험천만한 모험까지 벌이기도 한다. 바로 오늘날 절찬리에 방송되고 있는 스타 만들기 프로그램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과 의미 찾기는 이 작품을 읽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헝거 게임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이 주는 긴장감과 스릴 만으로도 재미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서두부터 횡설수설하더니 “참 재미있다”라는 결론 한마디 쓰는데 감상을 이렇게나 길게 늘여 쓰고야 말았다. 아뭏튼 재미있는 장르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이 책과 곧이어 개봉 예정인 영화 또한 결코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나저나 “주인공 캣니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후속 시리즈도 무조건 읽게 될 것 같다”는 “스티븐 킹” - 오늘 이 작가 자주 써먹는다^^ - 의 말대로 후속권들 빨리 만나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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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줄리 크로스 지음, 이은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시간여행(Time Travel)"의 방법은 대충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통계 자료는 없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두 번째는 태풍이나 낙뢰, 지진 등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핵폭발 등 때문에 생긴 시공간의 균열을 통해 시간 이동하는 방법인데,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 해상훈련 중에 자기 폭풍에 휘말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의 시간대로 간다는 내용의 영화인 <파이널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 1980)이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체역사소설”들에서도 꽤나 애용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유전자 변이나 또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능력, 즉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超能力)적인 설정인데 미드 <히어로즈(Heroes, 2010)>의 “히로 나카무라”나 “오드리 니페데거”의 소설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주인공 “헨리”가 그 대표적인 예로 앞서 말한 두가지 방법보다는 그 빈도수가 작은 희귀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예 과거 인물로 환생(環生)하는 방법도 있는데 엄밀한 의미로는 시간 여행이라고 볼 수 없어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하자 -.  이번에 읽은 “줄리 크로스”의 <템페스트(원제 Tempest/폴라북스/2012년 2월)는 타고난 시간여행 능력을 이용해 시공간을 이동(Jump)하고 있으니 바로 세 번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희귀한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시간 여행”이야 워낙 흔한 소재이고 최근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을 읽었던 터라 별 다른 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시간여행 능력을 타고난 19세 청년 “잭슨 마이어”는 자신보다 아이큐가 엄청나게 높고 조만간 MIT에 입학할, 말 그대로 “천재” 친구인 “애덤 실버먼”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고 시간 여행 실험을 진행한다. 그렇다고 잭슨의 능력이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에 불과하며, 과거로 간다 해서 역사를 바꿀 수 없는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지만 둘은 시간 여행 기록을 작성하면서 테스트를 진행한다. 그러던 어느날, 기숙사에서 연인인 “홀리”와 달콤한 사랑을 나눈 다음날 아침,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들이닥친다. 괴한들은 잭슨의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그의 아들이냐고 묻고는 둘에게 총을 쏘고 그 순간 잭슨은 2년 전 과거로 강제로 이동(jump)하게 된다. 잭슨은 2년 후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 수차례 시도를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갖혀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페인에 유학 중이던 과거의 자신은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2년 후 미래의 19세 잭슨이 2년 전 과거의 17세 잭슨을 “대체(代替)” 한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잭슨은 아버지께 공부가 싫어서 다시 돌아왔다고 둘러대고는 2년 전 시간대를 살아가게 된다. 잭슨은 과거의 애덤을 만나 시간 여행 기록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그의 협조를 받게 되고, 연인이었던 홀리도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면서 미래로 돌아가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제약 회사 사장인 줄 만 알았던 아버지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닐 뿐더러, CIA 비밀 조직원임을 알게 되고는 혼란스러워 하는 잭슨 앞에 2년 후 미래에 자신을 공격했던 괴한들이 나타난다. 시간 여행자가 자신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잭슨의 아버지는 잭슨과 같은 시간여행자들, 즉 “시간의 적(EOT; Enemy of Time)"과 맞서 싸우는 CIA 비밀 조직 “템페스트”의 팀장으로 역시 시간 여행자 - 이 책에서는 시간여행이 템퍼스 유전자라고 하는 특정 증상 내지는 능력을 유발하는 열성 유전자 때문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 였던 잭슨의 어머니가 낳은 잭슨과 그의 쌍둥이 여동생을 키워왔음이 밝혀지게 된다. 잭슨은 과연 2년 후 현재로 다시 귀환할 수 있을까? EOT와 CIA, 과연 어디가 선(善)이고 악(惡)일까? CIA의 비밀 프로젝트 정체와 EOT의 음모가 밝혀지면서 결말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이 책에서의 시간 여행에 대한 설정이 꽤나 독특하고 색다른데, 책에서는 시간여행을 과거로 이동하지만 현실의 역사를 바꿀 수 없는 “하프 점프(Half-Jump)""와 과거의 시간을 완전히 대체하여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잭슨이 2 년 전 과거로 튕겨간 것과 같은 “풀 점프(Full-Jump)"로 구분한다. 하프 점프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사건을 일으키고, 과거의 인물들을 만난다고 해도 현재나 미래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즉, 저 유명한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시간 역설)”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물론 또 다른 우주, 즉 “평행우주(平行宇宙)”에서는 변동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시간대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풀 점프의 경우에는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완전히 대체해버리는, 즉 동일한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행동이 현재와 미래의 역사들을 바꿔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시간 여행 능력이 열성 유전자에 의해 생겨나고, 잭슨 혼자만이 아니라 수 백 년 전부터 꾸준히 존재해온 그런 자들이니 그들에 의해서 풀 점프가 빈번히 일어난다면 역사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시간여행자들을 제거하는 조직이 바로 잭슨의 아버지가 몸담고 있는 CIA 비밀 조직 “템페스트”로 설정하고 있다. 영화 <점퍼(Jumper, 2008)>에서 순간 이동 능력자들과 대립했던 비밀 조직 “팔라딘”이 연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여행자(EOT) 들도 과거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 - 궁극적으로는 시간의 허물어지는 지구 종말적 상황까지 야기할 수 있다 - 한 지를 잘 알고 있고, 비록 적이지만 템페스트의 시간 변동을 막는 노력만큼은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악(惡)”이라고 규정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잭슨이 본 서로 상반된 미래 모습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3부작으로 기획된 책이라니 2, 3부에서 본격적으로 그 비밀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 자연스럽게 후속작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설정 외에도 시간 여행을 통해서 일찍 세상을 떠난 쌍둥이 여동생과 재회하는 장면들과 2년 전 과거 시간에서 연인 “홀리”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 - 실제 시간에서는 홀리에게 다른 연인이 있었고, 그와 이별한 후에야 잭슨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잭슨은 홀리가 다른 남자와 사랑하는 과거를 아예 없애 버린다 - 들도 꽤나 재미있고 인상적이다. 이미 2년 후 현실에서는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깊은 관계였던 둘이 2년 전 과거에서는 아직은 미성년자들이다 보니 저절로 스킨십이 발생할 그런 상황이 되자 잭슨이 아버지께 방해(?)를 부탁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유머스럽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서 자신 때문에 위험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연인 홀리를 위해 잭슨이 하게 되는 “선택”의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애잔함마저 들게 한다. 앞으로 밝혀질 비밀들도 궁금하지만 잭슨과 홀리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또한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 판타지 소설로서의 재미와 로맨스 소설로서의 감동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 대부분의 판타지 로맨스 소설들이 판타지는 배경일 뿐 로맨스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었다 - 없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판타지 로맨스” 소설 특유의 재미와 감동을 제대로 살린 멋진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 <트와일라잇> 제작 사단에 의해 영화화 예정이라니 영화에서는 시간 여행과 로맨스가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독자들은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다음 편을 볼 수 있는 미래로 “점프”하고 싶을 것”이라는 미국의 전문 서평지 커커스 리뷰 (Kirkus Review)처럼 영화든, 후속편이든 빠른 시일 내에 만나 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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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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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게 1997년 12월 30일이었으니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정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 - 형법상으로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집행을 하지 않는 인권국가에게 주어지는 호칭.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지정한다고 한다 - 지위를 벌써 5년 째 이어가고 있다. 사형제 존폐(存廢) 논란들이야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백 건이 나오니 굳이 여기서 찬반론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개인적 입장을 밝혀두자면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형제도가 흉악범들에게 경종(警鐘)의 의미가 있다지만 집행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 또한 퇴색해질 뿐 더러 유명무실한 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 들기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판사가 공정하고 신중하게 재판한다 하더라도 오판(誤判)의 가능성도 있는데, 1973년 이후 미국에서 107명의 사형수가 후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석방되었다고 하니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 제47회(2001년) 수상작이라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원제 13階段 /황금가지/2005년 12월)>은 바로 이런 “오판”으로 인한 비극과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목인 “13계단”은 일본에서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메는 교수형 대까지 걸어 올라가게 되는 계단수를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검색해봤지만 딱히 자료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 법률이나 법집행 관련 사항들이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 많으니 우리 나라 교수형대 높이도 13계단 쯤 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해볼 만은 할 것 같다.

 

2년 전(1999년) 당시 나이 25세의 “미카미 준이치”는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이 일어나 다투다가 상대방을 밀쳤는데 상대방이 그만 머리를 땅에 세게 부딪혀 죽어버리는 바람에 상해 치사로 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고는 석방 1개월 전에 가석방으로 출감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거액의 합의금 때문에 집을 팔고 공장을 줄였음에도 아직 다 갚지도 못했고, 동생 또한 그런 집이 싫어 뛰쳐나가고야 만 집안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죄책감에 영 고개를 들 수 없는 미카미를 가석방을 도왔던 교도소 간수장인 “난고 쇼지”가 찾아온다. 10년 전 자신의 보호 감찰관이었던 노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수로 복역 중인, 정권이 바뀌면서 사행 집행이 거의 확실시 된, 그것도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사카키바라 료”의 무죄를 입증하는 의뢰에 같이 동참하자는 것이다. 미카미는 비교적 큰 액수의 의뢰인데가 살인(殺人)을 저질렀다는 묘한 동질감에 그 의뢰를 받아들이고 10년 전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10년이나 지난 오래된 사건인데다가, 살인이 벌어졌을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카키바라가 그나마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당시 “계단”에 올랐다는 것 밖에 없는 참 난감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10년 전 경찰들이 그렇게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한 살인 사건의 흉기(凶器)와 피해자의 통장을 찾기 위해 다시 산을 뒤지고, 당시 주변 사람들을 탐문 수사해보지만 사건의 진행은 영 지지부진하고 사형 집행일은 갈수록 다가오게 된다. 그러던 중 10년 전 사카키바라와 함께 보호 감찰 대상자가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과 사카키바라의 유일한 기억인 “계단”이 있는 건물이 몇 년 전 폐사된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사는 진실을 향해 한걸음 더 내딛게 된다. 여기에 미카미의 살인에 숨겨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결말을 향해 더욱 숨가쁘게 전개된다.

 

10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니 이제 와서 다시 조사한다고 해서 해결이 영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 - 40년 전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에 비한다면 양반이긴 하지만 - 을 풀어가는 과정이 촘촘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 책은 사형 집행일이 갈수록 다가오는 데도 별다른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해 애타는 두 주인공의 심리에 절로 공감하게 되어 긴장감과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고, 실낱같은 단서에서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단초를 발견하고는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부터는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라서 도대체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서 자꾸 결말 부분을 펼쳐 보게 만드는 충동을 참기가 꽤나 어려워진다.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反轉)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게 꽤나 강력했고, 사건이 모두 해결될 즈음 밝혀지는 또 하나의 진실 또한 꽤나 인상적인 그런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과 스릴 만점의 멋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오래된 사건의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도 참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압권은 사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들의 공포와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고뇌와 심리적 죄책감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형 집행 당일날 아침 교도소 복도에 울려 퍼지는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방에 멈춰 섰을 때 발작을 일으키는 사형수들, 온 몸으로 형 집행을 거부하는 사형수들을 13계단이나 되는 높은 위치의 교수대에 끌고 가 그들의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형 집행 버튼을 누르는 - 누가 집행 버튼을 눌렀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 교도관 3명이서 각각 하나의 버튼을 누르게 한다고 한다 - 과정을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려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무리 법의 집행이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는 주인공 “난고”의 고백을 통해서 작가는 사형제도라고 하는 것이 사형수 뿐만 아니라 그 집행자인 교도관들, 그리고 관련한 모두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살인자가 죄를 뉘우치면 형량을 줄여 주는 ‘개전의 정’이 감형(減刑)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나 피해자의 가족이 범인을 용서해도 형 집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법무부 장관의 사형 결정이 법의 정의 실현이라는 원론적인 결정이 아니라 개각(改閣) 등의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 몰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천왕 사망 및 새 천왕의 즉위(卽位) 등과 국가적 기념일에 종종 있는 사면 제도에서 사면 대상이 되기 위해 상고를 하지 않고 형을 조기 확정 - 미확정되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사형수들이 제외되면서 결국 사형 또한 조기 집행되고야 마는 모순들을 하나 하나 꼬집는다. 이처럼 법의 모순과 사형 집행의 과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웃 일본과 유사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 추리소설 본연의 긴장감과 재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 읽고 나서도 법과 사형제도라는 곱씹어 볼만한 생각꺼리와 여운을 남기는 점으로 볼 때, 책 말미에 실려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평(評)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닌 완성도 높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이웃들의 추천에도 미루다 미루다가 이제야 와서 읽었는데, 좀 더 일찍 만나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데뷔작에서 이렇게 놀라운 완성도와 성취를 보여주다니 “다카노 카즈아키”, 이후 작품들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보여줄 지 절로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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